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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대상
부모교육반(rroye@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16년 08월 01일 16:53 621
1. 위니컷 수업을 마치고(데미무어님).

둘째를 임신했을 당시 나는 입덧으로 속이 매슥거릴 때마다 사이다를 마셨다. 평소 입에 대지 않았던 탄산음료를 왜 그렇게도 마셨을까... 아이를 낳고난 후 문득 내가 마신 음료는 단지 음료가 아닌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은 행동이었음을 깨달았다. 이제 막 돌을 넘긴 첫 아이의 육아와 집안일, 입덧이 함께 오니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힘들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데 엄마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있던 나는(솔직히 말하면 미운 감정이 많은-엄마는 나를 도와주지 않을 거야, 전화해봤자 소용없어. 나만 상처받을 거야) 엄마에게 선뜻 전화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대신 엄마와의 추억이 담긴 사이다를 마셨다. 어린 시절 나는 자주 배가 아프고 체했는데, 그 때 마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등을 문질러 주면서 나에게 온갖 정성을 쏟았다. 이 때 사이다를 마시면 속이 편안해 진다며 다른 누구보다 먼저 나에게 사이다를 주셨다. 입덧으로 몸이 힘들었을 당시 엄마의 온전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했었나보다. 엄마의 성격은 사이다와도 비슷하다. 잘해 줄 때는 한없이 달달하지만, 엄마의 기분이 나빠지면 톡 쏘는 탄산처럼 마음을 콕콕 찌르는 그것-냉냉함, 차가움, 독설, 날카로운 눈빛, 불신, 의심-을 내뿜는다. 나는 달달함에 이끌려 사이다를 마시지만 톡 쏘는 탄산 맛에 더 이상 사이다를 마시지 않는다.

엄마는 전남강진에서 1남3녀로 태어났다. 아빠의 말에 의하면 엄마는 어려서 먹을 것이 없어서 흙을 먹은 적도 있다고 했다(아빠는 웃으며 반 농담식으로 했는데, 엄마에게는 늘 아픔으로 기억되는 추억인가보다. 엄마는 아빠가 그 말을 할 때면 얼굴을 찡그리며, 매우 불편한 기색으로 하지 말라고 했다). 엄마는 초등학교에 가고 싶어 할아버지에게 보내달라고 했지만 여자가 무슨 학교에 가냐며 거절당했다고 했다. 엄마는 오랫동안 글을 배우지 못한 것을 할아버지 탓으로 돌리며 평생 한스러워했다. 그것은 오랫동안 엄마의 열등감으로 작용하여 자신을 채찍질하며 어떤 일을 하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하신다. 또한 엄마는 본인과 자식들 혹은 남편을 비교하며 늘 엄마가 잘하고 남편이나 자식들은 잘못되고, 못한다고 폄하했다. 엄마는 10살이 조금 더 넘어 서울로 상경했는데, 다른 집에서 일을 도와주며 그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한참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이 많은 시기에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힘든 집안일을 그것도 살기위해서 해야 했던 엄마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을까.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엄마에게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 해달라고 하면 엄마는 “눈물 나게 그런 말을 왜 해”라며 말머리를 돌린다. 나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엄마가 아닌 이모나 아빠에게 들었다. 엄마는 그 시절 힘들고 어려웠던 경험에 대해 누군가와 나누고 소통하지 못한다. 그 아픔을 위로 받지 못하고, 이해받거나 공감 받지 못한 채 혼자서 감내 했을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엄마의 나이가 벌써 60이 넘었는데, 그 오랜 시간 동안 마음 한 켠은 늘 시리고 아팠을 거다. 엄마는 왜 혼자서 끙끙대며 자신의 아픔을 나누지 못했을까. 그건 아마도 장님이셨던 외할아버지로 인해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셔야 했던 외할머니가 먹고 사는 것이 바쁘고 힘들어 마음으로 이해하고 보듬고, 공감해주지 못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받지 못해 채우지 못한 마음의 공간은 늘 대물림 된다. 그것을 누군가 끊어주고 새롭고 연결해주지 않은 이상 그 아픔은 재생산이 된다.

어린 시절 나는 늘 엄마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었고, 마음을 이해받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엄마는 여유가 없었다. 아니 기본적으로 어떻게 서로에게 다가가 마음을 주고 받는지 엄마도 나도 몰랐다. 위로를 받고 싶은 순간에도 나는 늘 혼자라고 느꼈다. 엄마 역시 위로를 받고 싶은 그 순간 누군가에게 위로를 해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어 혼자서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났을 거다. 나는 마음을 이해받거나 공감 받는 대신, 엄마의 마음속에 있는 여러 가지 감정으로 인해- 슬픔과 우울, 분노와 서러움, 무력감과 격노- 때로는 눈치를 보며, 무서워하며, 슬퍼하며, 분노하며 내 의지가 아닌 엄마의 감정에 휘둘려 지냈다. 엄마는 생활고와 해결되지 않은 마음 속 응어리로 인해, 자신을 도와주지 않은 남편이나 자식들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심한 독설을 내뱉고, 윽박지르고, 매질하고, 협박했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당연히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해 자식들에게 그 사랑을 요구했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불안해하며 그것을 받고 싶어 우리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조종하려 했다.

나는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엄마처럼 아이를 대하지 않을 거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런데 어느새 엄마와 비슷하게 아이를 양육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고 견딜 수 없었다.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 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은 내 모습에서 좌절감을 느꼈다. 어쩌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나도 받지 못한 것을 해주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남들은 너무나 편하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위로도 나는 온갖 상상과 지식과 노력으로 만들어냈다. 그렇게 하나하나를 해나가는데 나는 늘 남들보다 2,3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래야 남들의 발꿈치를 따라가는 정도였다. 나에게 양육은 너무나 어렵고, 큰 숙제이며 부담감이고, 책임감이었다. 그런 마음이 나를 또다시 짓눌러 아이와 놀아줘도 함께 하지 못했고 에너지가 고갈되는 느낌이었다.

엄마에게 서운하고 화가 나고 미운 감정으로 똘똘 뭉쳐있던 그 시기, 첫 아이는 내가 가진 마음의 덫을 그대로 물려받아 불안하고 비활동적이며, 자신의 self를 만나지 못했다(아이 답지 않았다). 나는 첫 아이를 볼 때마다 죄책감에 힘들었다. 엄마도 나와 언니, 동생을 볼 때 그와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하루는 나에게 “내가 너처럼 아이를 키웠다면 지금 언니가 이 지경까지 되지 않았을 텐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언니는 마음이 많이 힘들고 아프다. 그래도 엄마가 보기에 내가 더 아이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키우는 것처럼 보였나보다). 또 다른 날은 “내가 너희들 클 때는 여유가 없어서 너희들이 먹고 싶은거 사달라고 하는거 못 사줬어. 지금 얘들(내 아이들)한테는 사달라는거 다 사주고 싶어” 라며 아이들이 사달라는 것을 모두 사준다. 부모가 된 지금 엄마의 그 말이 더 깊이 와 닿는 것은 나 또한 그 시절 엄마의 마음이 더 잘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맙고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런데 아직도 엄마는 잘 모른다. 그 시절 내가 진심으로 원했던 것은 엄마의 공감과 위로였음을.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었음을. 엄마에게는 먹고 사는 일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그것을 잘 모르는 걸까. 아니면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간과하는 걸까. 마음에 신경 쓰고 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 걸까.

엄마가「카메모식당」과「해피해피 브레드」영화를 통해 사람간의 마음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행동과 삶에 영향을 끼치고 그 안에서 삶의 생동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본다면 관계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않을까. 영화을 보는 내내 저렇게 사는 것이 정말 행복이 아닐까 생각했다. 미나 카페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과 닮아있다. 인생의 시기 마다 힘들고 어렵고 슬프고, 아픈 일들이 있지만, 그것을 나눌 누군가가 내 옆에 있다면, 그리고 그들과 맛있는 것을 함께 나누며 삶을 즐길 수 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나와 함께 해줄 것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힘들고 어려운 인생의 비타민이 되지 않을까.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맛있는 것을 나눠먹고, 함께 인생을 즐길 누군가가 함께 하는 공간인 미나 카페와 카메모 식당은 그런 의미에서 중간대상이 된다. 나의 중간대상은 무엇일까... 김밥이다. 어렸을 적 소풍을 가면 아침 일찍 일어나 엄마가 싸주신 김밥을 보며 너무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나를 위해 뭔가를 해줬어라는 마음에 한번 감동하고, 그 맛에 또한번 감동했다. 그래서 나는 입맛이 없거나 힘들 때면 김밥을 먹고 싶다. 아마도 그 때의 엄마의 마음을 다시금 느끼고 싶어서 일 것이다. 오늘은 엄마에게 가봐야겠다. 엄마가 요즘 힘들고 어려운 일은 무엇인지 들어줘야겠다. 그리고 이해해주고, 맞장구쳐줘야겠다. 엄마는 나를 통해 공감을 받고, 나는 엄마를 이해해야 하는 시간이 아직은 더 많이 필요하다. 그러다보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엄마의 좋은 것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발견해 낼 것이다. 그러면 내 인생도 조금 더 풍요로워지고 즐거워지고 행복해 질 것 이다.



2. 경험이 바뀌지 않으면 안 변한다(제니퍼 로페즈님).

나에게는 세 분의 어머니가 계시다.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내 엄마와 성당에서 만나 나를 자식처럼 예뻐해주시는 내 엄마보다 2살 어리신 A자매님과 성모님이다. A 자매님은 아들만 둘을 두셨는데 나를 예뻐하셔서 밥도 사주시고 차도 사주시고 텃밭에서 나오는 것들도 가져다주시고 좋은 글도 보내주시고 봉사 등에서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 격려도 해주시고 조심스럽게 충고도 해주시고 가끔씩 손 편지도 써주신다. 나도 저런 엄마가 되고 싶다고 여겨질 만큼 품이 넉넉하신 분이시며 따뜻하시기 때문에 나는 현재 그분과의 관계를 통해서 내 엄마에게 받지 못한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아주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있다.

다음으로 내가 요즘 가장 많이 의지하며 사랑을 달라 조르기도 하고 투정도 부리면서 조금씩 마음으로 가까워지고 있는 분이 성모님이다. 나는 성모상을 지나갈 때 인사를 잘 하지도 않고 그 얼굴을 유심히 쳐다본 적도 없으며 늘 그냥 마음속에서 불편했었다. 때문에 막상 성모상 앞에 앉아도 할 말이 없었으며 “성모님”이라는 호칭도 너무 어색해서 소리 내어 불러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올 봄 엄마와 말다툼 후 집에서 성모상을 보는데 갑자기 흐느껴지면서 엄마에게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성모님, 전 엄마의 따뜻한 사랑이 뭔지 모르겠어요. 그러니 저 좀 대신 사랑해주세요. 저는 남들이 “다 자식 낳아보니 우리 엄마가 이렇게 힘들게 키우셨구나”하는 그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게다가 전 엄마에게 무엇이든 받아도 감사하지 않고 받은 것보다 더 큰 것을 빼앗길 것 같아서 받는 게 부담스럽고 싫어요. 성모님, 말씀 좀 해주세요. 엄마의 사랑을 못 느낀다고 제가 나쁜 딸이 아니라구요, 그리고 엄마의 조건적 사랑을 거절해도 그래서 수시로 부를 때 안가도 저는 괜찮다고요. 늘 변하지 않는 엄마에 대해 저도 모르게 바뀌기를 바라는 게 제 욕심이고 환상이라구요. 저는 비록 제 엄마의 사랑은 못받았지만 성모님이 엄마 대신 저를 사랑해주실 수 있다고 대답 좀 해주세요”하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나는 성모님 상 앞에 가면 예전에 갖었던 불편함이 많이 없어졌다.

그리고 올 여름부터 나도 모르게 성모님 앞에서 하는 기도의 내용이 많이 바뀌어 “성모님! 감사합니다. 제가 힘들고 제가 성모님이 보고 싶을 때 제 엄마와는 달리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인자한 표정으로 서 있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투정부리고 떼쓰고 화내도 엄마처럼 무섭게 보복하지 않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엄마처럼 제가 말할 때 중간에 말자르지 않고 다 들어주셔서, 방어하지 않으셔서, 화내지 않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제 엄마처럼 아이들에게 무서운 엄마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성모님 닮은 모성으로 제 아이들을 따뜻하게, 조건 없이 사랑해주고 믿어주는 어미 되게 도와주소서. 그리고 제게는 무서웠지만 더 무서운 엄마 밑에서 더 힘들게 자란 제 엄마의 상처를 이해하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그래서 제가 제 엄마를 좀 더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하고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수업 시간에 수 없이 들은 말. ‘경험이 바뀌지 않으면 안 변한다’. 나는 이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된다. 그리고 중간 영역이 ‘수정과 회복이 일어나는 곳’이라면 나의 새로운 엄마와의 경험 역시 나의 중간 영역일 것이다.

나는 참 운이 좋으며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근래에 많이 들고 있다. 왜냐하면 중간 영역이 ‘수정과 회복’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할 때 나에게는 중간 영역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 꽤 크고 좋은 한옥에서 증조할머니까지 모신 대가족 속에서 살았다. 내가 엄마한테 혼나서 울고 있거나 속상해 있으면 혹은 심심해하면 증조할머니가 몰래 부르셔서 장롱 속에서 자개 서랍을 여시고 그 안에서 사탕, 과자, 엿, 동전 같은 것을 꺼내 주셨다. 증조할머니 방에서 몰래 먹던 그 맛이란. 그 곳에서 머물다 나오면 힘이 났던 추억이 있다. 그리고 또 한 곳은 고모들이 공부방으로 쓰던 다락방인데 엄마한테 혼나거나 심심해서 그곳에 가면 레코드 판, 우표 수집책, 연예인이나 요리 사진 스크랩북이 있었고 거울 앞에서 고모들 몰래 핀을 꽂고 머리띠를 하면서 행복해했던 시간이 있었다. 또 아빠와 고모들과 증조할머니의 품에 안겨 그 분들의 귓볼을 만지면서 잠들거나 위로 받았던 따뜻한 기억도 그 한옥 집에서였다. 지금은 그 한옥을 세 주어 그곳이 식당으로 바뀌었지만 나는 기운내고 싶을 때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 추억의 한옥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며 “여기는 툇마루였고, 여기에 광이 있었고, 여기가 장독대 자리고, 여기서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여기 마당에서 메주를 담그고, 뒷마당에 모란꽃이 피었었는데...” 라고 추억을 얘기하며 맛있는 밥과 더불어 따스함까지 얻어오기 때문에 그 한옥은 현재 내게 소중한 중간영역이다.

다음으로 또 다른 나의 중간 영역은 기도이다. 화나고 속상할 때 무조건 기도문을 외운 후 가만히 앉아 20-30분쯤 지나면 마음에 서서히 고요와 평온이 찾아온다. 그 때의 그 느낌이 너무나 좋고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죄에 대해 용서를 빌고 나면 살 힘이 생긴다. 게다가 내가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랑이 내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틈틈이 누군가 생각날 때 기도를 하게 되는데 그 경험 역시 나를 나답게 살게 하는 힘이다. 또 나에게는 부모 교육 수업으로 만나서 정기적으로 만남을 갖는 모임이 있다. 그 모임 안에서 우리는 자신의 상처, 관계에서의 문제, 현재 내 상태 등을 솔직히 나눔으로써 이해 받고 공감 받고 위로 받기 때문에 다른 모임과 달리 그 모임에서 나는 타인 표상에서 자유로우며 진짜 “나”로 소통하며 나와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그 밖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공부 역시 나의 중간 영역이다. 나는 올 해 카톨릭 통신 교리 신학원에 입학하여 이제 한 학기를 마쳤다. 그 곳에서 배우는 인간학, 철학, 영성신학을 공부했는데 이는 인간의 유한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며 가치 있는 사람이란 것, 신 앞에서 겸손을 배우고 삶에서 내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일어나는 모든 어렵고 힘든 일들은 회피하고 버릴 것이 아니라 그것들 또한 내 삶에 의미가 있는 것이며 그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는 동안 나는 내 삶과 존재에 대해 어떻게 살 것인지? 내 태도를 선택하여 내 삶의 주인으로 현재를 잘 사는 것이 내 아픔과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승화시키는 것임을 배우고 있다. 이 과정 역시 내게는 중간 영역이다. 왜냐하면 이런 공부를 통해서 미시적으로는 “나”를 그러나 거시적으로는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기 때문에 관계에 있어서의 갈등과 어려움에 빠른 수정과 회복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바위를 부수었다. (중략) 바람이 지나가고 지진이 일어났다.(중략) 지진이 지나간 뒤에 불이 일어났다. (중략)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의 성경 구절을 가지고 두 달 전 미사에서 노신부님의 강론을 하셨다. 강론 내용은 “우리는 살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지진, 바람, 불이란 환경에 놓일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살리는 것은 지진, 바람, 불과 같은 것을 다 없애버릴 만큼의 크고 강한 보상이 아니라 누군가의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라고.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따스함, 위로, 공감, 이해, 감사, 용서라고. 그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외부에서도 얻을 수 있지만 내 내면에서도 얻을 수 있으며 우리도 누군가의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힘을 얻어 살기 때문에 그렇게 얻어진 힘을 가지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사람으로 살아야한다”는 것이었다.

해피해피 브레드와 제인에어를 보는데 갑자기 그 강론의 내용이 떠올랐다. 아마도 영화 속 주인공들 역시 힘들고 고단했지만, 결국 그들이 힘을 얻고 살아갈 용기를 얻었던 것은 나지막하지만 조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 준 주변 사람들 덕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사람은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지만 결국 살아갈 힘도 사람에게서 얻는다”는 문장으로 영화의 감상과 과제를 마치는 소감을 대신한다.


3. 중간대상과 중간영역(소피마르소님)

에밀리 브론테의 제인에어는 내가 20대 초반 대학생일 때 처음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을 뿐더러, 고등학생일 때에는 교과서와 참고서, 문제집이외에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참 늦게 접한 셈이다. 당시 남녀간의 사랑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그때 ‘제인에어’를 로맨스 소설로 받아들였다. 그리곤 왜 제인에어가 젊고 잘생긴 목사를 놔두고 늙고 못생기고 괴팍한 로체스터에게로 돌아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게 생각난다. 그 이후론 제인에어를 다시 읽지도, 또 여러 번 나온 영화도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수업 중 선생님께서 중간대상과 중간영역에 관련해서 이 영화를 추천해 주시면서 과제까지 내어주셔서 ‘제인에어’ 영화를 감상했지만, 아직까지 왜 이것이 중간대상 및 중간영역과 관련이 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마 이 글을 끝낼 때쯤에는 떠오르는 것이 있을까? 여튼 이 영화와 중간대상 및 중간영역을 연결짓는 것은 잠시 미뤄두고, 단지 영화에만 집중했을 때 내 마음을 잡았던 한마디가 있었다. 난 오히려 이 말이 나를 계속 생각하게 했다.

“명암에서 밝음도 중요하지만 어두움도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마라.”(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이런 뜻으로 생각된다) 제인 에어가 자신이 가르치는 아델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은 마치 내게 한 말인듯 내게 훅 들어왔다. 나는 밝은 사람이다. 주위 사람들은 내게 항상 웃는다면서, 밝아서 좋다고 한다. 나도 다른 사람의 그런 이야기가 좋았고, 내가 그들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고, 그래서 더 밝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거의 항상 업되어 있었고, 그렇지 않은 날은 스스로도 뭔가 큰 일이 생긴 것처럼 불안했다. 어렸을 때 우리집은 어두웠다. 부모님은 하루가 멀다하고 싸우셨고, 부모님 어느 누구도 따뜻하지 않았다. 엄마는 항상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었고 가족뿐만아니라 이웃과도 자주 싸우고 욕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아빠는 사업으로 바쁘셨고 내가 아빠에게서 따뜻함을 느꼈던 것은 엄마로부터 혼나서 집에서 쫓겨나 바깥에서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었을 때 아빠가 구세주처럼 나타나 나를 데리고 들어가신 기억이다. 그 외에는 아빠는 내 삶에 있어 외부인이었고, 돈을 벌어와 집을 굴러가게 만드는 분이셨다.

언니는 항상 우리의 가정사에서 멀리 떨어져서 공부에 몰두하고 매진해 있었으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었고 여동생인 나와 서로의 고민이나 걱정을 나누고 위로하는 사이가 아니었다. 언니는 내게 높이 있는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오빠는 우리집안의 모든 풍파를 다 떠안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안고 세상과 또 부모님과 많이 부딪혔다. 그런데, 그런 집안에서 부모님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네가 제일 애교가 많다” “네가 있어서 웃는다” 하는 부모님 말씀은 나를 최고라 생각해 주는 것 같았고, 나의 존재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밖에 나가 집에 오면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엄마와 이야기를 하고 아빠가 오셔도 내 방으로 올라가지 않고 텔레비전을 같이 보다가 부모님과 함께 잤다. 다 커서까지도 안방에서 부모님과 같이 자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행동이 비정상이라는 이야기를 대학 졸업 후에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알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우리집의, 부모님의 어릿광대가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잊혀져 갔고 부모님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내가 즐겁고 행복한 것이었다.

또한 나는 갈등이 생기는 것이 두려웠다. 어렸을 때 부모님의 싸우는 소리에 숨죽여 울면서 우리가 어떻게 될지 몰라 두려웠고, 부모님의 싸우는 소리가 무엇보다 듣기 싫었지만 그 소리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에, 또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아야 했기에 더 집중해서 들으려 했고, 그 안에서 나오는 끔찍한 소리들은 내 몸속 곳곳에 깊숙이 박히는 것 같았다. 두려웠고 무서웠다. 그래서인지 뭔가 갈등이 생길 조짐이 보이면 나는 자동반사적으로 얼른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우울함, 짜증, 분노, 갈등은 내가 가장 마주하기 힘든 것들이었고, 이러한 것들을 나는 저 깊고 깊은 구석진 방 한쪽이 숨겨두었고 꺼내보지 않았다. 마치 로체스터가 자신의 미친 아내를 자신의 성 깊숙한 곳에 패어팩스부인과 그레이스라는 하녀이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숨겨두었던 것처럼 나도 내게는 그러한 부정적이고 나쁜 감정이 없는 것인 양 행세했고 나는 "착한아이", "사람좋은 사람"이 되었다. 나는 명암이 살아있는 입체적이고 생동감이 있는 사람이 아닌 뻔한 평면적인 사람이 되었다.

영화속의 로체스터도 부모로부터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채 가문의 부를 위해 희생된 존재였다. 그는 사랑과 애정을 갈구하며 프랑스 무희의 거짓사랑에 속고, 부모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욕구와는 무관한 결혼을 하도록 요구받았고, 또 그는 부모의 인정을 받기 위해 그 결혼을 받아들였다. 로체스터가 결혼을 통해 얻은 것은 가족의 인정이 아닌 가족의 모든 부정적인 그림자들을 갖게 되는 희생자의 역할이었다. 로체스터는 그러한 부정적 그림자들을 깊은 곳에 숨겨두곤, 이리저리 부유하며 생활하고 어느 누구와도 솔직한 정감어린 관계를 맺지 못하고 무감각하게 떠돌아다녔다. 그러나 누군가와 진정한 관계, 동등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자신의 어두운 면, 자신이 숨겨 놓은 부분과 대면할 줄 알아야 하는 것 같다. 영화에서도 로체스터는 자신의 어두운 면, 즉 숨겨둔 미친 아내를 제인에어에게 끝까지 숨겼다가 결국은 결혼식 도중 밝혀지게 되어 제인에어는 로체스터로부터 도망을 가고 로체스터는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게되었다.

결국 나도 내 배우자와의 관계속에서 드러나는 갈등을 맞서지 못했다. 피하려했고 싸우려 했으나 거부당한다 생각이 들어 관계맺기를 접었다. 또한 서로 동등한 관계를 갖기 보다는 보호받으려고만 했다. 결국에는 내가 가장 대면하지 않고자 했던, 어릴때부터 나의 가장 큰 소망 중 하나였던 '화목한 가정'과는 상반된 "이혼"이라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혼을 하게 되면서 나는 내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부분을 보게 되었다. 예전에 나는 돈을 굉장히 비천하게 여겼다. 우리 집은 부유했지만 사랑이 없었기 때문에 또 우리 부모님은 내게 돈은 주셨지만 사랑을 주지 않으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또 돈 때문에 싸우는 부모님을 보면서 나는 돈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용없는 것인지, 그리고 사랑의 정반대에 돈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집이 부자인 것이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돈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이야기 하는 것은 부끄럽고 저급한 일이라 생각했다. 결혼 후 아이가 생기면서 남편은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했고, 남편에게 모두 맡겨두었다. 결국은 그 는 남편이 가정에 충실하길 바랬다. 그 사이에서 갈등이 있었고, 남편의 거짓말이 있었지만 돈과 관돈이 문제가 되어 우리의 신뢰는 무너졌고 헤어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돈 계산을 하게 되었고, 돈이 필요해지고 중요해졌다. 돈은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이 내게 주신 돈이 사랑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비록 내가 원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그분들은 그분들의 방식대로 내게 사랑을 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직도 나는 나의 어두운 면을 많이 모르고 있다. 알기 위해서 문을 살짝 열었다가 무서워서 닫은 적도 많았고, 또 나의 어두운 부분이 숨겨져있는 방이 있다는 것조차 모를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 어두움이 나를 입체적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


제인에어를 보았고, 글을 써 내려 갔지만 아직도 제인에어와 중간대상, 중간영역을 연결짓는 것은 쉽지 않았다.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중간영역, 중간대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건지 걱정이 되었고, 다른 영화를 봐서도 만약 연결을 짓지 못한다면 이건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카모메 식당을 선택했다. 다행이 이 영화에서는 느낌이 왔다.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고향의 맛을 전해주는 곳, 위로가 되는 곳, 새로운 현실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곳이 바로 카모메 식당이었고, 그런 곳이 바로 중간영역, 중간대상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내게 중간대상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수업시간에 이야기 했던 것처럼, 내가 사랑하는 대상의 냄새와 그리고 접촉하는 것이 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냄새를 맡는 것을 참 좋아한다. 어렸을 때 엄마의 냄새를 좋아했고, 수업시간에 얘기했던 것처럼 엄마가 아빠랑 싸우고 시골 친정집에 갔을 때 엄마의 냄새가 밴 잠옷을 두고 오빠와 쟁탈전을 벌였던 적이 있다. 그리고 우리 아들과 사랑했던 사람들과 있을 때에 나는 그들의 냄새를 맡으며 편안함을 느끼고 내가 그 사람에게 속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나는 접촉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 펑퍼짐하고 시원하고 푹신한 엄마의 엉덩이에 머리를 대고 누워있을 때에는 그 어떤 소파도 이보다 더 편할 수 없었다. 또 나는 남자친구 뿐만 아니라 여자 친구와 다닐 때에도 나는 꼭 팔짱을 끼고 손을 잡고 만나면 악수하고 포옹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최근에도 힘든 일이 있을 때에는 아들에게 안아달라고 한다. 아들이 안아 줄때의 냄새와 몸의 느낌은 나를 위로해준다.

또 내게 중간대상이었던 것들을 생각해보니, “상상놀이”도 포함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엄마는 짜증도 많고 무섭고 화도 많이 내셨지만 그래도 내게는 좋은 기억도 있다. 그것은 엄마가 이불을 휙 덮으면서 해주신 ‘포장귀신’이야기며, 엄마가 시골에서 살았을 때의 이야기를 해주었던 것들, 그리고 내가 어렸을 때 안방에 있던 자개장롱의 동물 모형을 보면서 엄마가 이야기를 만들어 주셨던 기억이 있다. 그런 것들 때문인지 나는 혼자서도 상상해서 이야기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 어렸을 적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는데, 엄마는 안방의 화장대에서 화장을 하고 있었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고, 나는 그 방 아랫목에서 이불을 덮고 있으며 방의 양쪽 벽에 놓인 자개장롱의 그림을 보며 혼자서 중얼거리며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또 나는 문구점에서 파는 종이 인형 외에도 내가 직접 그리고 오려서 나만의 종이인형을 만들어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서랍 속에서 종이인형을 꺼내서 혼자서도 신나게 이야기를 만들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 실은 다 커서도 그리고 지금도 아주 가~끔 나는 자기 전에 누워서 천장을 쳐다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상상놀이”는 외로웠던 내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현재 내가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는 주로 외로울 때이니까...새로운 깨달음이다.


4. 중간대상(소피아 로렌님)

꿈을 꾸었다. 아름다운 해변이 펼쳐져 있었고 사람들이 저마다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아름다운 광경에 감탄하며 사람들 틈에 나도 기분 좋게 있었다. 남편, 아이와 함께 화장실에 갔다. 아이가 나오지 않았는데 남편은 기다리지도 않고 그냥 가버렸다. 남편을 불러 보았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린다.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너무나 섭섭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었고 ‘어쩜 저럴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한다.

새로운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을 준비하는 동안에 꾸게 된 꿈이다. 학교를 졸업한 뒤로 나는 아이들에게 피아노와 노래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20년 동안 해왔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하려고 지금은 준비 중에 있고 9월에 독서 센터를 오픈할 예정이다. 처음 이 일을 시작 하겠다고 했을 때 남편과 나는 이 일이 가져다주는 안정적인 수익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처음엔 남편이 관심을 보여 적극적으로 알아보면서 추진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새로운 일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흥분되고 기대 되었다. 하지만 일을 진행 하면서 막상 현실적인 문제에 하나 둘씩 부딪히게 되니까 남편이 시작한 것을 후회하기도 하고 계약을 파기할지를 고민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렇게 고민하는 남편을 보면서 나는 남편보다 더 불안해했고 기대하고 있던 일을 못하게 될 거 같아서 실망스런 마음과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좋을지 몰라서 여러 날을 많은 갈등 속에서 보냈었다. 그 때 나는 ‘누군가 대신 이걸 결정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남편이 어떻게 하는지 살피기만 했고 그 일에 대한 나의 생각이나 마음은 하나도 표현하지 못했다. 내가 하겠다고 밀어 붙여서 혹시나 ‘잘 안되면 어떡할까?’ 하는 생각만 내 머릿속에 있었다. 어떤 일이든 내가 주체가 되어 결정을 한다든지 선택해야 할 때 나는 정말 죽을 거 같다.

어떠한 일들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해서 내가 처한 상황이나 환경에 좀 더 잘 적응 하고,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가는 것이나 지루한 일상을 잘 견뎌내며 삶을 잘 유지해 나가는 것도 중요한 자아 능력의 한 부분인데 그동안 나는 왜 그렇게 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이번 수업을(중간대상-중간영역) 통해 더 이해하게 된 거 같다. 엄마와의 분리를 이뤄내지 못해서 독립된 인격으로 발달을 할 수 없었던 나는 중간 대상을 만들 수 없었다. ‘주체’ 됨이 없기 때문에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고 힘 있는 대상이 옆에 있어야 안정감을 느껴 내가 유지되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현실을 살다보면 이런 저런 일이 생길 수 있는데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일이 생기면 나는 무엇이든지 완전히 망쳐지고 안 될 거 같고 불안하고 재수가 없고 나쁜 무드와 감정에 파묻히고, 그 다음엔 그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취약한 나의 자아는 아주 사소하게 조금이라도 그런 감정을 경험하면 그냥 거기서 끝인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을 달래주거나 위로해 줄 수 없다. 남편이라는 중간 대상을 통해서 외부 세계로 나오려 했던 나는, 현실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누구나 그런 현실적인 고민을 할 수 있는데) 사업을 시작도 안했는데 우리가 하려는 사업이 잘 안 될 거 같은 불길한 느낌이 마구 몰려오고, 나는 이 일을 하고 싶은데 남편이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닌 것에 대해서 섭섭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 꿈에서 우리를 남겨둔 체 그냥 가 버리는 것으로 나온 것이다. 사업을 계획하고 일을 진행하는 여러 날 동안을 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좌불안석이 되어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는데 은행이나 구청에서 간단한 서류를 떼는 것도 벅차고 힘들게 느껴져서 일을 보고 오면 그 외엔 아무 것도 못하고 종일 드러누워 있고 몸이 돌덩이가 된 것처럼 무겁고 아프고 밥을 여러 끼니를 먹지 않았는데도 배고픔을 전혀 못 느끼는 상태가 계속되었다.

가맹점이기 때문에 본사에서 여러 사람들이 나와서 일을 도와주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부담스럽고 버거웠다. 내 자신이 주체가 되어 무엇인가를 할 때마다 나타나는 증상들이다. 신기한 건 어느 순간에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 모든 증상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다행이도 며칠 전부터 다시 정신이 차려지게 되었다. 인테리어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어 모습을 갖춰 나가는 것을 보니 기쁜 마음이 들고 내 사업장이 생긴다는 사실이 설레게 한다. 이번 일을 겪는 과정에서 발달을 이뤄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다시 한 번 경험하게 됐다. 중간 대상을 만들지 못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었고 외부에서 오는 어떤 자극들이나 부정적이고 어려운 감정들을 처리하지 못해서 현실에서 많은 것을 미루고 회피하고 배우지 못하고 성취하지 못했던 과거를 생각해 본다.

지난 4년간의 부모교육 수업과 상담을 통해 내 삶에 적잖은 변화들이 있었고 조금의 힘도 생겼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일은 나의 발달을 돕는 또 다른 장이 될 것이다. 물론 두렵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지만 내 성장을 위해 도와주시고 계신 선생님도 계시고 친구들도 있기 때문에 더 힘을 낼 수 있을 거 같다.


2.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친구가 다니는 교회를 따라 갔던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신앙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은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그 곳에 몸을 담고 있지만. 5학년 때 교회를 다니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성경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밑도 끝도 없이 하느님이란 존재가 그냥 너무 좋아서 어린 나이에 새벽기도를 열심히 다녔던 기억이 난다. ‘내가 어떻게 어려서부터 어쩜 그렇게 하느님을 믿는 일에 열심일 수가 있었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신앙심이 참 깊어’ 라고 예전엔 생각했지만 수업을 들으며 느꼈던 것은 병든 부모의 경험 때문에 안정되고 따듯한 좋은 부모를 경험하고픈 내 욕구가 나 자신이 원하는 하나님을 내 맘대로 만들어 놓고 섬기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다닐 때는 학교 선배의 권유로 나는 이@@ 목사가 있는 구원파 교회에 다니게 됐는데 24살부터 약 12~13년 동안을 그 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지냈다. 보통 열심이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살았다. 시간, 물질, 재능 등.

이 교회가 전하는 메시지만 구원의 진리이기 때문에 이곳을 제외한 다른 교회는 일반 교회라 부르고 거기엔 복음이 없다고 믿었다. 나의 영혼을 구원해 주신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쳐 살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형제자매들이 희생과 수고를 아까와 하지 않았고 워낙에 많은 모임들은 교회 중심으로 생활을 하게 했다. 같은 믿음을 가지고 같은 삶의 목표(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 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외부 세계와 단절 된 체 완전히 퓨전 되어 지냈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지금은 내가 어떻게 그런 종교에 빠져 있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엄마에게 좋은 의존의 경험도 없고 분리 개별화를 성취하지도 못하고 오로지 융합 하고자 하는 욕구만 간절했던 내게 이곳은 내가 삶을 살 수 있도록 나를 지탱해주고 안정감을 주는 그런 곳 이었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발달을 저당 잡히고 대신 안정감을 얻었다고나 할까.

그 때 그 종교가 아니었으면 너무나 취약한 나는 정신이 붕괴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중간대상- 중간영역은 세상과 나를 연결 시켜주는 다리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인데 중간 대상을 만들지 못한 나는 외부에서 오는 자극들을 견뎌 내지 못해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었고 인간관계도 융합하는 관계만 반복해서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정리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4년 동안 공부하고 상담을 병행하면서 발달의 과정을 하나씩 해 나가고 있다. 힘든 시간들을 보냈지만 성취해 가는 기쁨도 크다. 내가 의식도 하기 전에 이미 자동으로 나를 통째로 휘두르고 있는 이 무의식의 힘을 어떤 언어로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그저 놀랍기만 하다. 시간이 갈수록 내가 선생님과 함께 공부하고 상담했던 시간들이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내 삶의 주체가 되어 살아가면서 어떤 것들을 배우게 되고 어떤 좋은 일들로 채워지게 될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











28 성격유형론 수업을 마치고.  부모교육반17.06.12
27 위니캇강의를 마치고...  부모교육반17.01.17
26 중간대상  부모교육반16.08.01
25 나의 자아발달  프로이드반15.12.13
24 페어베언의 '도덕적 방어'  페어베언반15.07.28
23 코헛강의를 마치고.  코헛반14.12.23
22 두번의 위니캇 강의를 마치고.  위니캇반14.08.06
21 내가 인간관계를 잘 못하는 이유  위니캇반13.12.31
20 프로이드 강의 후기  프로이드반13.07.26
19 하인즈 코헛 후기  하인즈 코헛반12.12.28
18 페어베언 강의를 마치고...  페어페언반12.07.23
17 이별과 상실(경계선 인격장애)  위니캇반 8.11.12.25
16 라푼젤을 보고나서...  위니캇반 7.11.07.17
15 4년의 상담을 마치고  자유인11.05.17
14 위니컷 수업을 마치고  위니컷반6.1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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