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깡의 신경증론 강의에서 '욕망의 주체화'라는 말이 아주 중요하게 들리는데 그 개념이 잘 정리되지 않아 질문 드립니다.
제가 강의에서 이해한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욕망의 주체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내 욕망이 타자의 욕망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인정하게 되면 내 안에 들어 와 있는 여러 대타자의 욕망 중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여러 욕망 중에는 유난히 강한 욕망이 있고, 덜한 욕망이 있게 마련인데 강한 욕망은 그것이 타자의 욕망임을 인정하더라도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내 안에 있는 여러 대타자의 욕망 중에 가장 강한 욕망을 선택하게 되었을 때 그것을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대타자의 언어가 내 속에 너무 강하고 깊이 각인되었거나 내게 아주 중요한 대타자이기때문에 그 욕망이 강한 뿌리를 가지고 있어 그 욕망을 선택하게 된다면 그건 주체화로 볼 수 없을 것 같은데...... . 그러면 이런 경우 그 욕망을 선택하는 것이 강한 욕망에 끌려가는 것인지 주체적인 선택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리고 신경증자의 욕망과 관련해 욕망의 주체화를 생각해 볼 때 자신의 욕망 중 어떤 욕망이 신경증자의 욕망이고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욕망이 신경증자의 욕망회로를 따라 작동될 때 그것이 신경증자이기때문에 갖는 욕망임을 알고, 그 욕망으로부터 거리를 두거나 자유로울 수 있다면 이것도 욕망의 주체화 과정으로 볼 수 있을까요?
강의 초기에는 제 욕망 중 어떤 욕망이 히스테리의 욕망임을 깨달았을 때, 그것은 히스테리의 욕망이므로 그 욕망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무의식적 욕망은 버리고 싶다고 쉽게 버려지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쨌든 그것도 제 욕망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제 욕망 중 어떤 부분이 히스테리의 욕망임을 알았을 때 그러한 욕망이 생기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그것이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되거나 그 욕망에 따라 행동하고 싶지 않다면 그 욕망으로부터 거리를 두거나 그 욕망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내 욕망이 히스테리의 욕망임을 아는 것으로부터 제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 답변
ㆍ작성자 : 관리자 ( cjlee7600@hanmail.net | http://www.freudphil.com )
ㆍ제목 : [RE] 욕망의 주체화에 대하여
수업에서 들은 내용을 자신의 삶에 적용해 음미해본 후에, 남는 잔여물을 질문하는 태도가 매우 좋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무의식이 대타자의 욕망에 의해 구성되고 좌우된다는 것을 정신분석 공부를 통해 자각하고서 그러한 사실을 마음으로 반성하고 수용한 후, 삶의 태도를 바꾼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간단한 작업이 아님니다.
신경증자는 높은 지성으로 상당한 지식을 축적할 수 있고 대단한 '반성'능력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무의식에서 작동하는 대타자무의식이 어떤 것이고, 자신의 '본환상 구조'가 어떤 것이고, 자신이 무의식에서 고착되어 있는 욕망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수업을 통해 지식으로 아는 것은 그 윤곽을 '의식의 머리로' 정리한 것이지, 무의식에 접촉해 절절히 무의식과 대면하는 '정서적 인식'은 아닙니다.
'자신의 무의식에 대한 진정한 성찰'이란 '무의식과 접촉하는 동시에 그것을 밖으로 표출해 대상화(언어화)함으로써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신경증자나 보통사람은 대타자무의식에 융합되어 '자신도모르게' 그것의 명령과 욕망에 따라 살아갑니다.
질문자가 대타자무의식이 어떤 것인지를 머리로 판단하여 대타자의 욕망들 중에서 자신이 마음에 드는 것만 '선택'해서 따르는 행위는, 질문자가 '머리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 실제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이것이 '정신분석 수업'과 '정신분석 체험'의 차이 입니다.
정신분석 수업에서 들은 내용을 자신의 무의식 분석에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분은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보통의 경우는, '정신분석 체험'을 통해서야( 분석가의 대타자 역할 전이를 통해서야) 비로소 자신 내부에 구체적으로 어떤 대타자무의식이 '자기'의 자리를 차지하고 '자기' 행세를 하며 '자기'의 욕망과 인생을 좌우하는지...조금씩 조금씩 알아가고, 수용할 수 있게 됩니다. '무의식의 환상'은 머리로 그리 쉽게접촉될 수 있는게 아닙니다.
욕망의 주체화란 ....오랜 기간에 걸쳐 대타자무의식의 정체와 무의식적 본환상이 조금씩 조금씩 성찰되고 횡단되는 과정을 뜻하며, '주체적 선택'이란 무의식의 환상 구조가 변화된 만큼만 가능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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