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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 신화 해석을 위한 정신분석 관점 및 개념 고찰> 1. 서론 : 동아시아 신화의 ‘심리적 의미’ 이창재((“이 논문은 2003년도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KRF-2003-074-AM0016)”) “환웅은 ‘웅녀와 결혼’해 단군을 낳고, 火神을 낳다가 ‘음부를 데어’ 죽은 이자나미는 ‘황천국의 여신’이 되고, 반고의 죽은 ‘몸에서 만물이 생성’ 되었노라...” 비합리적 상징기호들로 가득찬 신화를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해석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정신분석학은 비합리적 현상들(증상, 꿈, 신화)의 ‘무의식적 의미’를 발굴하는 활동이다. 그리고 정신분석에서의 ‘상징’이란, 의식된 의미 이면에 숨겨진 무의식적 의미를 지칭한다. 그렇다면 정신분석학적 신화 분석이란 ‘신화 기호’들의 무의식적 의미들을 심층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지칭한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이후 오늘날까지 서양신화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해석은 일군의 서양학자들에 의해 꾸준히 수행되어 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신 생활에 영향을 미쳐온 자기 민족의 신화들에 대해, 20세기 첨단 학문인 정신분석학 개념들에 의거해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분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정신분석학을 환자치료가 아닌 자기 자신과 민족의 정신성을 성찰하게 하는 심오한 도구로 ‘인정’하고 수용하기 시작한 역사는 매우 짧다. 그로인해 한국의 신화를 비롯해 동아시아의 신화를 어떤 정신분석 입장과 개념에 의거해 분석해야 하는가에 대해 신화학계나 정신분석학계에서조차 통합된 관점을 가지지 못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본 논문은 동아시아 신화들을 정신분석 관점으로 비교분석하기 위한 ‘토대를 제공’하는데 역점을 둘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신화적 상징들의 심리적 근원인 동시에 ‘본래 의미’인 ‘무의식’에 대한, 기존 정신분석 입장들을 소개하고 그들 사이의 차이점을 명료화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각기 다른 무의식 개념들에 근거해, 신화에 대한 국내외의 정신분석적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를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동아시아 신화 해석에 기존의 정신분석 개념을 어떤 방식으로 적용하는게 좋을지를 논할 것이다. 고대의 신화들이 우리 마음을 여전히 움직이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한국의 ‘천지왕’과 단군, 일본의 이자나기-이자나미, 중국의 반고와 여와 신화의 심리적 의미는 무엇인가? 우주와 인류의 기원신화, 대제앙신화, 영웅신화, 건국신화 등에는 대부분 태초에 발생된 ‘성스러운 가치를 지닌 거대한 사건’들과 그것을 주재하는 어떤 ‘대단한 힘들, 위대한 존재’가 등장한다. 그런데 신화에는 왜 그토록 ‘태초’라는 시점이 강조되며, ‘태초의 사건’들은 왜 그토록 중요한 무엇인 동시에, 괴상하면서도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인가? 이 의문에 대한 전형적인 정신분석학적 답변은 프로이트, ｢두려운 낯설음｣(ꡔ창조적인 작가와 몽상ꡕ, 열린책들, 1996, 132, 138쪽)에 담겨 있다. 가령 ‘인생의 최초 시기’ 받았던 친숙한 자극들이 억압되었다가 갑자기 의식에 솟구칠 경우, 그것은 (억압작용에 의해 변형되어) 괴기스럽게 느껴진다. 미적 검열 작업이 덜된 고대 신화의 경우일수록, 무의식을 자극해 괴상한 느낌을 줄 수 있다. ‘태초의 사건’과 ‘위대한 존재’들의 ‘본래 의미’는 무엇인가? 만약 신화가 초시간적으로 의미있는 인류의 ‘보편적 진실’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인류가 직설법이 아닌 ‘신화라는 독특한 상징매체’를 통해 분출할 수밖에 없었던 은밀한 ‘심리적 진실’의 내용은 무엇인가? 신화에는 인류의 어떤 정신 ‘내용’이 상징화되어 있으며, 또한 어떤 숨겨진 정신 ‘작용들’에 의해 신화가 창조된 것인가? 신화와 상징은 단순히 의식적인 의도와 의식 작용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기에, 이 물음에 답하려면 무엇보다 정신분석학의 고유 주제인 ‘무의식’에 주목해야 한다. 2. 신화 해석을 위한 무의식 유형 검토 인간 정신은 각기 다른 내용과 활동성을 지닌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성된다. 외부세계에 대한 지각판단을 담당하는 의식의 내용은 외부환경과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그러나 무의식은 환경과 시간의 변화와 무관하게 어떤 표상과 감정을 ‘원상태 그대로’ 보존하고 반복한다. 프로이트, ｢정신적 기능의 두 가지 원칙｣(1911), ｢억압에 관하여｣(1915), ｢무의식에 관하여｣(1915), ꡔ무의식에 관하여ꡕ, 열린책들, 1997, 18, 140, 192쪽 : 자기보존 본능에 의해 후천적으로 개발된 2차정신 과정인 의식은 늘 외부현실 상황을 고려하여 내적 욕구를 조절하는 ‘현실원칙’에 의거해 작동된다. 이에 비해 무의식의 내용들은 ‘쾌락원칙’을 따르는 본능적 1차정신과정’에 의해 작동된다. 따라서 무의식은 외부환경이나 시간이나 의식의 변화와 무관하게 자체의 법칙에 의해 작동되고 유지된다. 무의식은 외부세계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외부세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로인해 어떤 경험흔적이 무의식에 들어오는 순간, “원 상태 그대로” 평생 보존된다. 그렇다면 시공을 초월해 반복되는 정신적 특성을 이해하려면 ‘의식의 표상들’(과학, 철학)보다, 무의식과 그 결과물들을 주목해야 한다. 인류의 무의식은 주로 신화와 종교의례, 예술, 꿈 등에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각 민족에게 ‘지속적으로 반복’되어온 신화와 (종교)의례에는 그 민족의 무의식이 당대의 집단의식(시대정신)과 타협적으로 결합해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렇다면 한국, 일본, 중국 민족의 무의식이 어떤 점에서 동일하고 다른지를 이해하는데, 각 민족의 신화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비교 분석은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이다. 이 분석을 위해 먼저 무의식의 유형들에 대한 전통 정신분석 입장들 및 개념들을 살펴보자. 2.1. 프로이트 : ‘억압된 무의식’, ‘본능 무의식’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내용을 두 유형으로 구분한다. 첫째, 개인이 출생 순간부터 ‘환경’으로부터 받는 수많은 자극들 중에서 당시의 자아가 감당하기 힘들어 ‘억압한 무의식’이다. 이 무의식은 주로 충격적 과잉자극들로 구성된다. 출생 이후 개인에게 주어지는 환경과 자극받는 당시의 ‘자아 상태’는 개인들에게 공통된 부분과 다른 부분이 있다. 가령 인간은 태어나 ‘엄마’라는 ‘최초 대상’으로부터 본능의 충족/좌절을 경험하게 되고, 얼마 후에 ‘아버지’를 ‘동일시’하게 된다는 공통성을 지닌다. 본능의 충족/좌절과 연관해 엄마로부터 원초적 자극들을 받는 시기를 前오디푸스기, 아버지의 규범요구로 인해 엄마와의 원초적 관계를 포기해야 하는 격동적 갈등의 시기는 오디푸스기로 분류된다. 프로이트는 유년기를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로 구분한다. 전오디푸스기 대 오디푸스기의 구분은 남근기 이전 시기 대 남근기, 또는 ‘엄마-유아’ 사이의 원초적 2자관계 시기 대 아버지에 의해 운명적으로 ‘사회적 존재로의 변화’를 요구받는 상징적 3자관계 시기(아동기)를 지칭한다. 프로이트, ｢오디푸스 콤플렉스의 해소｣(1924),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 ꡔ성욕에 관한 세편의 에세이ꡕ, 열린책들, 1999, 49-51쪽, 285-320쪽 참조. 이창재, ꡔ프로이트와의 대화ꡕ 민음사, 2004. 7장, 오디푸스 콤플렉스 참조. 필리프 쥘라앵, ꡔ노아의 외투ꡕ -아버지에 관한 라캉의 세 가지 견해-, 한길사, 1998, 70-94쪽 참조., 로버트 M. 영,『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이제이북스,2004.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이 두 시기에, 아이가 어떤 과잉자극(과잉충족/과도좌절)을 경험하느냐에 따라 ‘억압된 무의식’이 개인들 사이에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다. 성격 발달 유형과 자아 발달 양태는, 개인의 성욕동이 ‘어느 시기’에 과잉자극을 받아 억압ㆍ고착되었느냐에 따라 개인들 사이에 동일성과 차이성이 생겨난다. 프로이트는 오디푸스 갈등의 보편성으로 인해 인간은 누구나 남근기에 ‘억압된 무의식’을 지니지만, 그 강도와 환상유형(히스테리형/강박형/공포증형)이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고 본다. 둘째로, 무의식에는 자연적 본능(instinct)과 인간적 욕동(drive)들이 담겨있다. 본능은 고정된 대상과 고정된 행동을 유발하는 생물학적 특성을 지칭하며, ‘욕동’은 문화적 ‘전환성’을 지닌 유동적 본능을 지칭한다. 인간은 본능과 욕동을 함께 지니는 유일한 ‘생리-심리적 존재’이다. 편이상 이 두가지를 혼합해 본능 내지 본능욕동으로 사용한다. 이 본능들은 오랜 진화과정을 거쳐 형성된 것으로, 인류에 공통적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본능을 생존본능과 성본능으로 분류하다가, 말년에는 삶본능과 죽음본능으로 재규정한다. 이 본능들로부터 다양한 본능의 대리자(본능표상과 감정)들이 발생되는데, 본능표상과 감정은 어느정도 억제하거나 억압할 수 있어도 결코 본능 자체를 억압할 수는 없다. 프로이트, ｢본능과 본능의 변화｣(1915), ꡔ무의식에 관하여ꡕ, 104쪽 : “본능은 ‘지속적인 충격을 주는 힘이다. 더욱이 외부작용이 아니라 신체 내부작용이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무의식이 의식에 미치는 제반 영향력은 바로 이 결코 완전히 억압될 수 없는 본능에너지에 기인한다. 프로이트는 원시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과정에서 인류가 반복해서 겪은 강력한 체험들은 무의식에 억압되었다가 그 중의 일부가 본능에 흡수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프로이트, ｢자아와 이드｣, ꡔ쾌락원칙을 넘어서ꡕ, 열린책들, 1999, 110쪽 : “자아는 이드에서 칼로 자르듯 분리되어 있진 않다. 자아의 하부 일부는 이드와 합병된다. 억압된 것 역시 이드와 합병되어 이드의 일부를 구성한다.… 억압된 것은 억압으로 인해 자아와 단절되어 있지만, ‘이드를 통해’ 자아와 의사소통할 수 있다.” “자아와 이드(‘그것’, 본능)의 차이를 지나치게 엄격한 의미로 받아들여선 안된다. 자아는 이드가 특별하게 분화된 부분임을 유념해야 한다. 자아경험이...연속되는 세대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충분한 강도를 갖고 자주 반복되면, 이드의 경험으로 변형되고, 이것의 인상이 ‘유전’에 의해 보존된다. 따라서 이드 속에는 수많은 자아의 잔재물이 숨겨져 있다.” 프로이트, ｢자아와 이드｣, ꡔ쾌락원칙을 넘어서ꡕ, 129쪽. 자아의 충격적 경험들이 ‘본능으로 전환’되어 유전되는 과정에서 동물들과 차별되는 독특한 ‘인간적 본능(욕동)’이 형성된다. 이 인간적 본능은 심리-생리적인 ‘전환성’을 지닌다. 이 전환성에 의해 외부의 자극들이 심리과정을 거쳐 생리적 본능에 흡수되기도 하고, 본능으로부터 심리과정을 거쳐 문화적 상징물이 외부세계에 창조되기도 한다. 이창재, ｢성욕동 발달과 문화적 성숙 사이의 관계｣, ꡔ성과 철학ꡕ, 철학연구회 편, 철학과 현실사, 2003, 283-293쪽. 프로이트, ｢자아와 이드｣, ꡔ쾌락원칙을 넘어서ꡕ, 1999, 117, 139, 151쪽, ｢본능과 본능의 변형｣, ꡔ무의식에 관하여ꡕ, 113-114쪽 : 자아경험의 ‘본능적 전환’에 의해 형성된 가장 독특한 인간적 본능이 성욕동이다. 프로이트는 성욕동의 전환성과 ‘2단계 발달성’에 의해, 인간에게만 문화와 더불어 신경증이 발생됨을 주목한다. 본능은 또한 대리자(표상과 감정)들을 통해 외부로 분출하여 쾌락을 얻어내려는 성향을 지닌다. 그런데 외부압력으로 인해 본능표상들과 감정들이 오랜기간 과도하게 억압될 경우, 내부에 축적된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모종의 대리분출이 작동된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원초적 환상’이다. 프로이트는 “개체발생이 계통발생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원시인류에게 반복되었던 충격 경험들이 본능과 더불어 ‘원초적 환상’으로 유전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가 주목한 인류 보편의 원초적 환상은 오디푸스 환상이다. 이 ‘무의식적 환상’은 의식의 도덕관념들과 충돌하기 때문에, 신화나 예술작품, 꿈 등을 통해 ‘상징적으로 변형되어’ 투사된다. 프로이트의 예술작품 및 신화분석의 초점은 작품창조의 무의식적 내용과 동기가 단연 유아성욕과 오디푸스 갈등 및 이에 대한 충족에 있음을 드러내는데 모아진다. 프로이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년기 기억｣, ꡔ예술과 정신분석ꡕ, 열린책들, 1998, 31-113쪽 참조. 정신분석가 김광일은 각 민족의 신화는 ‘오디푸스 콤플렉스’를 다양한 양태로 반영한다고 본다. 이 무의식에 대해 어느정도 자아통합이 된 문화권에서는 오디푸스 욕구에 대한 변형과 차단이 비교적 덜한 데 비해, 초자아와 도덕적 금기압력이 강한 민족의 신화에는 오디푸스 갈등의 내용이 차단되거나 심하게 변형되어 있다. 김광일, ｢한국신화의 정신분석학적 연구｣, ꡔ한국전통문화의 정신분석ꡕ, 교문사, 1991, 56-60쪽. 이처럼 무의식은 선천적 본능과 원초적 환상들, 그리고 후천적으로 경험되었다가 억압된 과잉자극들로 구성된다. 이 (두 유형의) 무의식 내용과 에너지는, 자아가 약해지거나, 어떤 현재자극이 무의식의 특정 내용과 우연히 결합되어 갑자기 치솟을 때 자각된다. 이 경우 보통의 인간은 자아 방어막의 균열된 틈을 통해 본능들과 억압된 충격자극들이 한꺼번에 의식에 솟구치는 사태를 결코 감당할 수 없다. 그로인한 엄청난 불안을 완화시키기 위해 무의식은 신화ㆍ꿈ㆍ증상 등을 통해 의식에로 표출된다. 프로이트는 67세(1923)에 새로운 정신구조론과 본능론을 제시한다. 여기서 정신내부는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 이드/자아/초자아로 구성된다. 이드는 쾌락원칙을 추구하는 삶본능과 해탈(무자극)원칙을 추구하는 죽음본능으로 구성되며, 그 자체는 전적으로 무의식적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규범요구를 ‘동일시’함으로써 ‘유년기 말에 형성된 초자아’는 무의식과 의식 양쪽에 걸쳐있다. 그리고 이드의 본능욕동들과 초자아의 규범 요구와 외부세계의 ‘현실 요구’를 삼중으로 고려하여 통합하는 자아 역시 의식의 부분과 무의식의 부분을 함께 지닌다. 자아의 활동 중에서 특히 중요한 ‘방어작용’은 무의식적으로 작동된다. 이 정신구조론은 다양한 외부대상들이 각각의 정신 조직에 미치는 영향과 내부 조직들 사이의 상호 역동적 관계 이해에 유용하다. 가령 유년기 외부 대상(엄마, 아버지)의 힘이 어떤 정신조직에 어떻게 어떤 영향을 미치며, (초)자아와 본능욕동이 어떻게 상호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게 한다. 이 이론에 의거한다면, 신화란 원시인류의 ‘본능무의식’ㆍ유년기의 ‘억압된 무의식’과 당시대인의 (집단)의식 사이의 타협적 결과물이기보다, 각 정신 조직의 독특한 요구와 그들 사이의 관계’가 외부 환경을 고려해 ‘방어작용을 거쳐 통합적으로 표현된’ 것으로 해석된다. 2.2. 융 : 원형과 집단무의식 프로이트는 억압된 개인적 경험들과 유전된 본능 및 원초적 환상을 통털어 ‘무의식’으로 지칭했다. 이에 비해 융은 무의식을 개인무의식과 집단무의식이란 명칭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그는 프로이트가 ‘억압된 무의식’에 해당하는 개인무의식만을 주목했다고 비판한다. 칼, 융, ꡔ원형과 무의식ꡕ, 융연구원 번역위원회, 솔, 2003, 156-159쪽. 프로이트는 1913년 ꡔ토템과 타부ꡕ이후부터는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하기 때문에 ‘선조들의 경험’ 흔적이 후손에게 ‘전승’된다는 생각을 했다. 프로이트, ｢토테미즘의 유아적 재현｣, ꡔ토템과 타부ꡕ, 김현조 역, 경진사, 1993, 195, 209(주 178), 224-225, 229쪽. 이 책 4장에서 프로이트는 다아윈의 진화론을 정신분석학과 접맥시키려한다. 그리고 ｢편집증 환자 슈레버｣(ꡔ늑대인간ꡕ, 열린책들, 1996, 369쪽) 맨 끝에 덧붙힌 글에서 자기 입장이 융과 유사함을 언급한다. “편집증 환자 분석을 통해 나는 융의 주장이 타당함을 발견했다. 융은 인류가 신화를 만들어 내는 힘이 사라지지 않았고, 신경증에선 지금도 먼 과거와 동일한 정신적 산물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는 개체의 문제에 적용했던 정신분석 명제들을 인류의 문제로 넓힐 때가 곧 오리라 생각한다.” 한편 융은 말년 작품인 ꡔ인간과 상징ꡕ에선 “태아의 형성 과정이 역사 이전의 진화과정을 반복하듯이, 마음도 역사 이전의 단계를 밟으면서 발달한다. 꿈은… 유아기와 함께 선사시대의 ‘회상’을 불러일으킨다는 내용을 프로이트도 이미 파악했다.”고 언급한다. 융, ꡔ인간과 상징ꡕ, 열린책들, 1996, 99쪽. 그런데 융은 이런 ‘경험론적 전승’ 입장에 반대해, ‘인간성’의 ‘선험적’ 모델로 태초부터 존재한 ‘원형’들의 ‘선험적 유전’을 주장한다. 이 원형들은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초경험적인 것이기에 결코 경험에 의해 ‘새롭게 생성, 변형’되는 것이 아니다. 원형들은 개인무의식보다 근원적인 인류공통의 집단무의식을 구성한다. 이 원형 내지 ‘인간적 본능’에는 이미 ‘인간’이 실현해야 할 전형적이고 보편적인 인생 방향과 발달 단계가 내재해있다. 융의 원형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관념을 연상시킨다. 실체란 내재된 본질목적을 지닌 독립적 존재이며, 고유한 본질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태’에서 본질이 현실에서 실현되는 완상된 ‘현실태’로 움직여가는 목적론적 존재이다. 이때 외부세계의 환경은 개별적 실체의 본질이 실현되는 것을 촉진하거나 방해할 수는 있어도, 본질 자체에 영향을 미치진 못한다. 마찬가지로 비록 의식과 무의식으로 분열된 인간정신이 (재)통합 상태를 향해 수만년동안 ‘진화’해왔을 지라도, 통합해야될 핵심대상인 집단무의식의 ‘원형’들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다. 이는 의식에 대립되는 개인무의식(그림자)과 인류의 집단무의식을 자아가 하나하나씩 통합하여, 무의식의 힘과 내용을 능동적으로 활용해가는 것으로서, 융은 이를 ‘개성화 과정’으로 명명한다. 인간의 가장 강한 욕동은 성욕동이 아니라, 정신 속에 본래부터 내재되었지만 외면되어온 집단 및 개인무의식 내용과 힘을 의식에 통합하여 정신의 ‘전체성’을 구현하는 “자기 실현(개성화)” 욕동이다. 융, 같은 책, 261. 집단무의식에는 ‘인간 원형’들과 더불어, 오랜 선사시대 과정을 통해 인류의 정신에 통합된 ‘원형이미지’들이 함께 유전되어 있다. 융에게 영웅의 원형은 그림자, 아니마-아니무스, ‘자기’를 대면하여 통합하는 이미지로 나타난다. 이 원형은 각 민족의 신화나 역사 속에서 예수, 석가, 단군 등으로 형상화된다. 그런데 이런 영웅 이미지들은 이미 존재하던 영웅의 원형이 역사 속 인물을 통해 구현된 ‘의식적 표상들’일 뿐이다. 이런 의식적 표상들과 원형은 다른 것이다. 원형은 태초부터 선천적으로 존재해오는 것이며, 결코 의식적 경험에 의해 그 본질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것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정신의 ‘역사적 진화과정’을 필요로한다. 그런데 융이 뜻하는 집단무의식에 ‘유전’되는 ‘역사’란 의식의 역사가 아니라, 동물적 교감을 갖고 살던 고태적 ‘선사시대의 흔적’들을 지칭한다. 즉 ‘의식의 경험들은 결코 원형에 흡수되거나 유전될 수 없다. 융, ꡔ인간과 상징ꡕ, 이윤기 역, 열린책들, 2000, 67쪽. 가령 대립된 무의식을 의식에 통합해 ‘자기’의 본래적 전체성을 실현해가는 ‘영웅의 원형’과 더불어, 그 원형을 구현하는 단군과 주몽, 반고와 여와, 스사노오와 오쿠니누시, 오시리스와 아도니스, 페리클레스와 헤라클레스, 모세와 예수 등등의 영웅이미지들이 집단무의식에 함께 담겨있다. 이 집단무의식은 인류출현 때부터 선사시대까지 오랜기간에 걸쳐 형성된 것이다. 그로인해 출생 이후 단기간의 경험 과정에서 억압된 개인무의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축적된 지혜들과 강력한 본능에너지를 담고 있다. 따라서 개인무의식의 배후에서 역동하는 집단무의식을 외면하고는, 결코 인류의 정신성과 그것의 결과물인 신화에 대해 거시적이고 ‘전체적인whole’ 의미파악을 할 수 없게 된다. 프로이트처럼 경험되었다가 ‘억압된 유년기 무의식’에만 주목하면, 선험적 집단무의식의 심오한 내용들과 거대한 힘을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집단무의식에 있는 인류공통의 원형들은 ‘아니마-아니므스’, ‘자기’를 비롯해 인생에서 보편적으로 중요한 ‘典型’들 ‘전형’이란 인생의 본질적인 사건 및 관념을 지칭하며 가령 출생, 사랑, 결혼, 권력, 진리, 영웅 등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것들에는 그것에 해당하는 선험적 원형이 있다. 이 원형들은 ‘인류로서의 개인’이, 인류의 고유 목적인 ‘자기실현’을 위해 자아의식에 하나씩 통합해가야할 내적 인격의 요소와 단계를 지칭한다. 자아의식이 그림자와 아니마를 거쳐 집단무의식의 심층부에 있는 ‘자기’ 원형을 통합하면, 정신의 균형과 인격의 ‘전체성’이 실현된다. 이 경우 무의식의 에너지와 지혜를 자유롭게 활용해 거대한 업적을 창출하는 영웅과 초인들이 출현하게 된다. 원형들과 원형들을 구현하는 영웅이미지들은 주로 신화와 꿈을 통해 상징적으로 발현된다. 융은 동서양의 신화들 속에서 공통된 원형이미지들을 발견한다. 이 원형상징들은 그것의 의미를 ‘전체적으로’ 인식하는 자에게만 그 힘과 지혜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2.3. 대상관계론 : ‘모권적 무의식’, ‘모성적 무의식’ 클라인과 위니컷은 이 용어를 관용적으로 사용하진 않았다. 위 용어는 클라인의 ‘박해하는 모성적 초자아’, 위니컷의 수용하고 돌봐주는 ‘보통의 좋은 엄마’를 반영하면서, 프로이트ㆍ융과의 비교를 명료화하기 위해 필자가 구성한 것이다. 프로이트 이후 현대 정신분석학계의 두드러진 동향은, 前오디푸스기에 엄마가 유아의 정신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이다. ‘엄마’란 인류 모두가 최초로 대면하는 절대적 대상이다. 자궁으로부터 험란한 출산 과정을 거쳐 나와 갑자기 탯줄이 끊긴 아기는, 처음 접하는 낯선 세상에 대해 혼돈과 불안을 느낀다. 프로이트의 동료 겸 제자였다가 1924년에 결별한 오토 랑크는, 출생 과정과 직후에 태아가 느끼는 격심한 불안과 상처는 평생 지속되는 불안의 원형이라고 본다. 탄생 초기 몇 개월 간의 유아불안을 가장 세밀하게 분석한 정신분석가는 클라인이다. 그 때, ‘위대한 창조자이자 구원자’인 엄마가 나타나 ‘새로운 세상’이 안전하고 뭔가를 욕구할 만한 곳임을 아기에게 느끼게해야 한다. 만약 엄마로부터 안전하고 포근한 정서적-신체적 느낌을 받지 못할 경우, 그 아기는 원초적 불안에 휩싸여 병리적 방어기제에 고착되며, 불안을 달래줄 안전한 ‘환상적 대상’을 평생 갈구하게 된다. 이처럼 ‘엄마’라는 대상은 가장 절박하고 무기력한 인생 최초시기에 출현하여, 평생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할 ‘강한/약한’ 정신구조와 지워지지 않는 정신-신체적 흔적(내적대상, 환상)을 남기는 ‘신적 존재’이다. 2.3.1. 클라인 : ‘모권적 무의식’ 유아의 내면 세계를 최초로 정밀 분석한 정신분석학자는 클라인이다. 그녀는 프로이트의 죽음본능과 원초적 환상 개념을 확장시켜, 출생 후 3개월 동안 엄마와의 관계경험에 따라 유아의 내면세계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가를 연구한다. 먼저 유아는 죽음본능과 삶본능 및 그 본능들에 의해 자연 발생된 원초적 환상들을 갖고 태어난다. 이 무의식적 환상들은 주로 유아의 최초 (부분) ‘대상’ 대상관계론에서 ‘대상’이란 상식적 의미의 일반적 대상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유아의 정신형성과 발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외부대상과 내적대상을 뜻한다. 주로 엄마 내지 엄마를 상징하는 대상이 이에 해당된다. 그리고 유아의 최초대상은 젖가슴, 눈 등의 ‘부분 대상’이다. 제이 그린버그 & 스테판 밋첼, ꡔ정신분석학걱 대상관계이론ꡕ, 한국심리치료연구소, 1999, 30-36쪽. 인 젖가슴 내지 ‘엄마 몸’ 속의 내용물과 연관된 다양한 像들로 구성된다. M.Klein, "The Importance of Symbol Formation in the development of the Ego"(1930) The slected Melani Klein, edited by Juliet.Mitchell. New York, The Free Press, 1986, pp.96-98. 유아에게 ‘엄마의 몸’은 단순한 하나의 몸이 아니라, 그 속에 중요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신비한 세상이다. 그 속에는 아버지의 남근을 비롯해 맛있는 음식 등 값진 것들이 들어있다. 그로인해 유아에게 시기심이 발동할 경우, ‘엄마 몸’을 파괴하거나 오물로 가득 채우는 환상을 만들어낸다. ‘엄마 몸’에 대한 선천적 환상들은, 원시인류의 모성신 이미지들에 반영되기도 한다. 엄마가 아기에게 좋은 관계 체험을 제공하면, 삶본능이 활성화된 유아는 내사(introjection)를 통해 ‘좋은 엄마像’들을 내적 대상으로 축적하게 된다. 반면에 좌절시키는 불안한 관계 체험을 하면, 죽음본능과 파괴적 환상들이 솟구친다. 이를 감당키 힘든 유아는 파괴적인 욕동과 환상을 외부의 ‘엄마 몸’에로 투사하며, 그 투사로 인해 형성된 파괴적인 엄마像들로부터 잔인하게 공격당하는 극심한 박해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그 박해 대상이 내사되어 내적대상이 되면, (죄책감과 무관한) 원초적이고 가학적인 ‘모권적 초자아’로 자리잡게 된다. M.Klein, Ibid. pp.122-123. 모권적 초자아란 괴롭히고 박해하는 내적대상(‘나쁜 양심’)을 지칭한다. 그것은 희생물을 집어삼기는 구강기적 환상에 기인한다. 구강기에 고착된 정신분열증자들은 ‘내면의 명령’을 거부할 경우, 자신의 몸을 물어뜯고 찢고 탐욕스럽게 집어삼키는 끔찍한 구강기 환상들에 시달린다. 유아의 ‘약한 자아’는 이런 가학적인 내부대상들을 감당하기 힘들므로, 원시적 방어기제가 작동해 정신 내면을 ‘좋은 내적대상’ 영역과 ‘나쁜 내적대상’ 영역으로 ‘분열’시킨다. 이 분열된 내면세계는 각각 외부로 투사되어 좋은 엄마상과 박해하는 나쁜 엄마상들을 반복해서 생성해내게 된다. 그로인해 초기 3개월 사이의 유아에게 이 세상은 전적으로 나쁜 대상(엄마상) ‘부분 대상’이란 시공간적으로 하나로 통합되지 못한 단편적 이미지들을 지칭한다. 가령 깨무는 이빨을 지닌 젖가슴, 집어삼키려드는 ‘거대한 입’, ‘성교하는 부모상’, 쩨려보는 커다란 눈, 거대한 팔, 거대한 남근, 광대한 엄마의 몸 등등의 이미지이다. 이런 유아적 부분 대상 이미지들은 신화 속 등장 대상들의 특징 묘사에서 종종 발견된다. 들과 전적으로 좋은 대상들로 분열되어 보인다. 클라인은 ‘엄마 몸’을 향한 시기심과 파괴욕동의 투사와 내사로 인해 형성된 ‘가학적 초자아’의 박해환상과 불안에 시달리는 이 최초 정신 시기를 ‘편집-분열적 자리’라고 명명한다. 이 시기에 엄마가 유아에게 좋은 관계 체험을 계속 제공할 경우, 내사된 ‘좋은 엄마상’들이 축적되어 이 불안한 격동기는 보다 안정된 정신 단계인 ‘우울적 자리’로 넘어가게 된다. ‘우울적 단계’에서 유아는 분열된 ‘부분 대상’들을 하나의 ‘전체 대상’으로 통합하는 능력을 어느정도 지니게 된다. 그 결과 나쁜 엄마상과 좋은 엄마상이 모두 ‘동일한 엄마’로부터 나온 것임을 자각하게 된다. M.Klein, "The Psychogenesis of Manic-Depressive States", The slected Melani Klein, edited by Juliet.Mitchell, New York, The Free Press, 1986, p.118. 그와 더불어 자신이 ‘편집-분열 단계’에서 ‘나쁜 대상(젖가슴, 엄마)’을 향해 퍼부었던 잔인한 파괴 환상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완전히 통제할 순 없는 파괴욕동으로 인해 내면의 ‘좋은 엄마’마저 상처입힐지 모른다는 우울감에 젖는다. 이런 죄책감과 우울감은 자기를 가혹하게 책망하는 ‘모권적 초자아’를 강화시킨다. M.Klein, Ibid, pp.122-123. ‘편짐-분열적 자리’에서의 모권적 초자아가 죄책감과 무관한 일방적으로 ‘가학적인 초자아’인데 비해, ‘우울적 자리’에서의 초자아는 가혹성과 더불어 ‘좋은 엄마상’을 함께 내포한다는 차이를 지닌다. 이 우울적 단계는 좋은 내적 대상들이 축적되고 손상된 내적대상들을 ‘회복’시키려는 삶본능이 증대되면서, ‘부권적 초자아’(paternal superego)가 형성되는 프로이트적 오디푸스 단계로 발달해간다. 유아가 출생 초기에 거치는 두 ‘발달 단계’ 체험은 ‘모권적 초자아’로 정신구조화되며, 오디푸스기에 내면화되는 ‘부권적 초자아’와 통합되어 정신구조의 핵을 구성한다. 그리고 모권적 무의식과 그것에 연결된 박해 및 우울불안은 ‘나쁜 대상’을 경험할 때마다 재활성화된다. 따라서 인간은 가학적인 모권적 초자아에 기인된 불안을 통제하기 위해, 그것을 외부로 투사해 안전한 상징대상으로 가시화한다. M. Klein, Ibid., p.98. “상징과 환상을 풍부하게 형성하려면 충분한 양의 불안이 필요 조건이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파괴적 여신들은 이 ‘모권적 무의식’의 상징적 반영물이다. 2.3.2. 위니컷 : ‘모성적 무의식’ 클라인이 가학적인 모권적 무의식을 규명했다면, 위니컷은 공격성과 불안을 공감해주고 안아주는 ‘모성적 무의식’을 부각시킨다. 그는 유아기의 엄마 경험이 무의식적 정신구조의 형성ㆍ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위니컷에 의하면 인간은 타고난 본성을 온전히 발현하고픈 ‘참자기’ 욕구를 지닌다. 위니컷, ｢참자기와 거짓자기｣, ꡔ성숙과정과 촉진적 환경ꡕ, 한국심리치료연구소, 2000, 211-216쪽. 참자기의 형성과 발달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촉진적 환경ㆍ충분히 좋은 대상관계’ 경험이다. 유아에게 엄마란 존재의 근원이며, 행복과 불행을 절대적으로 좌우하는 삶의 ‘환경’이다. 위니컷의 ‘환경적 엄마’란, 여성적 모성성의 비형식적, 비분별적, 비규범적 수용성등을 지칭한다. 내면에 ‘좋은 엄마’를 내면화한 개인은, 형식적 틀들이 해체되거나 생각이 없는 상태에 처할지라도, 불안이 아니라 삶의 따스한 질감들이 느껴진다. 이는 마음껏 신뢰하며 의존했던 유아기 ‘환경 엄마’가 정신 내부에 배경적 힘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신화 속의 ‘형상이 명료치 않은’ 신들(지모신, 디오니소스, 귀신..)은 ‘환경 엄마’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엄마가 유아에게 어떤 환경을 제공하느냐에 따라, 유아의 ‘자기’가 발달하느냐 침체되느냐가 결정된다. 그리고 엄마는 원초적 욕구와 불안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유아의 권리를 수용/박탈시키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관계 ‘대상’이다. 그렇다면 ‘참자기’의 발달을 촉진하기 위해 유아에게 필요한 환경 및 대상관계는 어떤 것인가? 유아는 엄마에게 안아주기(holding), 거울반응(mirroring), 침범하지 않고 지켜보기, 버텨주기, 자아지원 등을 비롯한 헌신적 ‘환경ㆍ대상 관계’를 원한다. 위니컷, ｢부모-유아 관계이론｣, 같은 책, 55-78쪽. M. 데이비스/D, 윌브릿지, ꡔ울타리와 공간ꡕ, 한국심리치료연구소, 1997, 119-161쪽 참조. 가령 포근하게 ‘안아주는 환경’을 엄마로부터 제공받지 못한 유아는, 자기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더 이상 ‘안전하게 의존’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갖지 못한다. 그로인해 ‘땅’이 꺼져 무한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멸절불안에 시달리며, 자기가 파편화된다. 이 경우 유아는 생존을 위해 참자기 발달 욕구를 포기한 채, ‘환경(절대적 엄마)’의 상태를 먼저 살피게 되고, 자신의 욕구가 아닌 ‘환경의 요구’들에 순응하는 거짓자기가 된다. 위니컷, ꡔ성숙과정과 촉진적 환경ꡕ, 82쪽. 거짓자기란 자기 내부로부터 솟아나는 본능적 활력과 느낌들을 포기한 채, 항상 ‘안전’을 제일 관심으로 삼아 외부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가짜’ 인격이다. 유아는 또한 엄마가 자신의 존재와 자발적 몸짓들을 사랑스럽고 소중하게 바라보고 ‘반영하는 거울’이 되주길 원한다. 만약 엄마가 유아의 마음상태를 있는 그대로 공감-반영하지 못한 채, 역으로 자신의 욕망을 유아에게 투사ㆍ강요하게 되면, 아이는 자기상태와 어긋나는 ‘거울’로 인해,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혼란스러워지며, 정서와 신체가 통합되지 못한다. 가령 유아가 흥겨워 엄마를 바라볼 때 엄마가 슬픔에 젖어있거나, 유아가 고통스러워할 때 엄마가 싱글벙글해하며 유아를 바라보면, 유아는 자기 상태를 온전히 반영하는 거울로 엄마를 사용할 수 없게된다. 유아는 (공감, 반영해주는) 엄마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해야 ‘자기애’가 충족되어 자기가 발달하게하는데, 자신이 아닌 ‘엄마의 감정과 이미지’ 만을 보게될 경우,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는 ‘엄마의 노예’가 되고 된다. 온전한 자기거울을 갖지 못한 아이는 대상의 욕망이 곧 자기의 욕망인 줄 착각하며, 대상의 욕망에 부응하려 급급하는 거짓자기가 된다. 참자기 발현을 위해 중요한 또다른 요소는 타고난 공격성이 관계 속에서 ‘대상(양육자)’에게 온전히 수용되는 경험이다. 위니컷, ꡔ박탈과 비행ꡕ, 한국심리치료연구소, 2001, 19-41쪽. 유아는 깨물고 울부짓고 버둥거림을 통해 타고난 공격성을 표출한다. 이것을 엄마가 유아의 자연스런 욕구와 몸짓으로 수용하고 버텨주며, 보복하지 않은 채 사랑으로 되돌려주면, 유아는 자기존재와 자기로부터 나온 모든 것들을 소중한 것으로 느끼게 된다. ‘자기’ 욕구를 그대로 표현해도 보복받지 않는 이 자기애적 환상 상태를 유아기에 충분히 맛보게되면, 유아의 공격성은 파괴충동이 아닌 창조적 자기표현 욕구로 전환된다. 바로 이 창조적 활동에너지에 의해 개인의 고유한 자기가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위니컷은 주관적 환상 단계로부터 객관적 사실 인식 단계로 넘어가는 사이에 ‘과도기 단계’(transitional stage)라고 하는 독특한 정신발달 시기가 있음을 발견한다. 이 단계에서 유아는 주관적 환상만도 아니고 객관적 사실도 아닌, 주-객 혼합적인 창조적 ‘놀이와 상상’을 활성화한다. 위니컷, ꡔ놀이와 현실ꡕ, 한국심리치료연구소, 1997, 14-32쪽. 이 활동에서 유아는 공격성을 자유롭게 표출해도 파괴되지 않은 채 항상 함께 있어주는 ‘과도기 대상’을 경험한다. 인형이나 담뇨 조각 등의 과도기 대상은, 부드럽고 파괴되지 않으며 원할 때마다 늘 함께 있어주는 엄마를 상징적으로 대체한다. 이 과도기대상 경험이 충족되면, 자기애가 충족되어 ‘자기’가 탄력있어지고 ‘대상’에 대한 신뢰감이 안정되어, 엄마로부터 불안없이 분리해 새로운 대상들과 창조적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유아의 타고난 자기가 안정되게 형성ㆍ발달해갈 수 있게 해주는 환경은 최초대상인 엄마가 제공한다. 유아기 엄마 관계 체험은 ‘참자기/거짓자기’를 비롯한 정신의 핵심구조나 구성성분이 되어, 인생의 중요한 대상 관계들 속에서 반복된다. 이 ‘모성적 관계’ 형성이 실패할 경우 그 개인의 무의식은 결핍된 모성성과 묻혀진 참자기와 억압된 공격성에 대한 보상과 대리만족을 평생 갈구하게 된다. 전능한 힘으로 마음껏 세상을 창조하는 신과, 두려움 없이 공격성을 사용해 ‘자기를 주장’하고 실현하는 영웅 신화는, 당대 인류의 참자기가 상징적으로 발현된 것이다. 또는 신화 속 ‘대상’(영웅, 신)들과의 ‘환상적 대상관계’를 통해서나마 결핍된 ‘모성적 무의식’을 보충시키고 전능 환상적 ‘과도기 경험’을 재활성화시켜, 침체된 참자기를 발달시키고 싶어하는 민족무의식의 표현물이다. 2.3.3. 코헛, 라깡 : ‘자기애적 무의식’, ‘언어적 무의식’ 위니컷이 주목한 ‘자기’에 대한 관심은 코헛의 ‘자기대상’론에 의해 극명화된다. 이 새로운 입장은 현대문화의 포스트모던적 탈중심화 경향과 연관해 발병률이 높아진 ‘자기애적 장애’ 및 ‘경계선 장애’의 치료과정에서 등장한다. 코헛의 사망 이후 1980년대부터 부각된 ‘자기심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의 발달을 위해 무엇보다도 유년기에 ‘자기애’가 온전히 충족되어야 한다. 자기애의 일차적 충족은 먼저 유아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가치 있게 여기며 사랑해주는 엄마 체험으로부터 온다. 그리고 자기애의 이차적 충족은 아동이 ‘이상화’할 수 있는 ‘강력한 (부모) 대상’ 경험으로부터 온다. 코헛은 자기애를 안정되게 충족ㆍ유지시켜주는 이 대상들을 ‘과대적 자기대상’과 ‘이상적 자기대상’으로 칭한다. 정신의 응집력과 통합력은 이 두 유형의 ‘자기 대상(self-object)’이 정신 내부에 안정되게 확립되었느냐에 의해 좌우된다. 코헛, ꡔ자기의 분석ꡕ, 한국심리치료연구소, 1999, 21-40쪽 참조. 만약 자기대상이 결핍ㆍ손상될 경우, 개인은 결핍된 자기애를 충족시키기 위해 평생 ‘자기 대상’이 되어줄 대상을 찾아 헤매느라, 온전한 ‘대상관계’와 정신발달을 하지 못하게 된다. 신화에 등장하는 전능한 신들과 영웅들은, 각 민족이 내면에 소유하고 싶어 한 ‘완벽한 자기대상 모델’로 해석할 수 있다. 동아시아 신화분석을 위해 참고하면 좋을 또다른 무의식 유형은 라깡의 ‘언어적 무의식’이다. 라깡은 프랑스 ‘구조주의 언어이론’을 프로이트의 무의식론과 결합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남근기(오디푸스기)에 언어적 규범 체계를 내면화할 뿐만 아니라,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고유한 언어적 상징계 속에 둘러싸여 그것의 힘을 내면화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다. 따라서 정신구조의 최초 형성에서 각 민족의 ‘언어’가 미치는 영향으로 인해, 민족무의식은 민족의 언어처럼 구성된다.” 라깡의 ‘언어’ 개념을 이해하려면 언어학자 ‘소쉬르’ 이론을 비롯한 구조주의 언어이론에 대한 선이해가 필요하다. 그의 ‘언어’는 언어체계와 언어의 ‘의미화’ 작용을 총칭한다. 의미의 ‘언어적 생성 원리’와 증상의 ‘무의식적 생성원리’ 사이의 연관성 이해가 라깡의 핵심주제이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표-기의 관계론, 은유작용와 연관된 연합관계론, 환유와 연관된 연사관계론을 주목해야 한다. 이창재, ｢‘의미의 기원’에 대한 니체, 소쉬르, 프로이트의 해석｣, ꡔ니체와 프로이트ꡕ, 철학과 현실사, 2000, 241-288 참조. 따라서 각기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지녀온 한중일 민족의 민족무의식적 차이성과 유사성을 이해하는데, ‘언어적 무의식’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3. 무의식의 ‘변형 활동’ 유형 : 1차과정적 변형 대 2차과정적 변형 위에서 언급된 각각의 무의식 내용들은 그 자체로 의식되지 않으며, ‘모종의 변형과정’을 거쳐 신화로 표출된다. 그렇다면 신화의 표면적 내용으로부터 무의식의 심층 의미들을 추적하려면, 무의식이 신화로 표출되는 과정에서 어떤 ‘숨겨진 변형 과정’을 거치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신화 해석에 공헌하는 프로이트의 위대한 독창성은, 이러한 변형과정이 자아의 2차적 정신활동 보다, 본능의 독특한 1차적 정신작용들에 의해 수행된다는 것을 발견한 데 있다. 프로이트는 두 유형의 변형 작용 모두를 주목한다. 그의 지형학적 정신모델에 의하면, 무의식은 의식에로 분출되는 과정에서 ‘前의식’에서 행해지는 2차적 ‘검열’ 활동들에 의해 변형된다. 프로이트, ｢꿈검열｣, ꡔ정신분석 강의ꡕ(1916), 열린책들, 2002, 198-199쪽 : 프로이트가 발견한 꿈 검열 작용에는 무의식적 ‘꿈사고’에 대한 “재료의 누락(삭제), 완곡화, 약간의 수정(강조점의 이동, 내용의 재편성), 유사 내용으로의 대체, 암시로 바꿈” 등이 있다. 이런 작용은 신화 검열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변형은 무의식의 본능이 지닌 독특한 1차적 활동성에 의해 이루어진다. 프로이트는 꿈의 무의식적 의미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의 원초적 변형작용인 “압축, 전치, 상징적 이미지화” 및 ‘반대되는 것으로의 대체’, 모순성의 병존, 다중적 동일시 등을 발견한다. 프로이트, ｢꿈작업｣, ꡔ꿈의 해석ꡕ, 열린책들, 1998, 397-414쪽 참조. 의식이 주목해오지 못했던 바로 이 ‘본능의 변형작용’으로 인해, 자아의 검열 작용과 무관하게 무의식은 이해되기 힘든 대상으로 존재한다. 아울러 이 변형작용으로 인해 자아의 검열을 통과해 의식에로 분출될 수 있게 된다. 개인과 민족의 무의식은 ‘본능의 1차적 변형 원리’들과 자아의 2차적 검열 원칙들을 하나하나 세세히 음미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신화 속 주인공들의 묘한 특징과 괴이한 사건들은 (2장에서 언급한) 무의식들이 1차변형과 2차검열에 의해 다중적으로 변형된 상징기호들이다. 프로이트는 억압된 유아성욕을 다시 충족시키고 싶어하는 무의식적 소망이 신화와 작품, 꿈, 증상을 발생시키는 근본추동력과 목적이라고 본다. 프로이트, ꡔ정신분석 강의(상)ꡕ, 306, 321쪽. 프로이트, ꡔ토템과 금기ꡕ 4장, 참조. 그런데 억압된 소망들은 초자아의 요구와 대립되기 때문에, 자아에 의해 견고히 방어된다. 따라서 무의식의 내용물이 자아의 방어막을 뚫고 나가려면, 독특한 효율적 탈출 작용들이 작동되어야 한다. 그래서 ‘인간적 본능’의 원초적 활동성인 압축과 전치, 상징적 이미지화 등등이 역동하게 되는 것이다. 융은 본능에 의해 ‘1차적 변형활동’들이 행해진다는 프로이트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다. 본능으로서의 원형과 집단무의식은 그 자체로 변함없이 태초부터 있는 것이므로, 스스로 변형작용들을 행하진 않는다. 원형들이 어떤 양태로 의식에 지각, 왜곡되느냐는 개인이나 민족의 정신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본능에 대한 원초적 직관능력과 민속학적 상징지식과 정신구조에 대한 심층심리학적 지식을 균형있게 통합한 인간은, 신화 속 상징들의 무의식적 의미에 대해 ‘직관적 접근’이 가능하다. 신화에 상징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원형’들과 집단무의식은, 과도한 ‘과학적 합리주의’로 인해 본능과의 원초적 교류능력을 상실한 현대인에겐 감동 없는 무의미한 이미지로 보일 뿐이다. 칼 융, ꡔ인간과 상징ꡕ, 열린책들, 1996, 92-94쪽. 원형 및 집단무의식 상징들의 ‘변장성’은 ‘현대의 특수한 집단의식’에 기인된 2차적 변형 때문이지, 결코 원형 자체의 변형활동에 기인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신화적 상징들을 해석하는데 프로이트처럼 ‘1차적 변형 작용들’이 세세히 고려되지 않는다. 무의식의 상징적 변형활동에 대한 프로이트와 융의 관점 중 어느 것이 진실을 반영하는가? 오늘날 이에 대한 하나의 보편적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디푸스적 행동이 강하게 표출된 신화는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할 수 있고, 前오디푸기의 모성적 ‘자기(애)’ 내지 관계욕구가 강하게 표현된 신화는 융과 대상관계론의 입장으로 해석함이 더 타당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 신화 해석에 있어, 일단 두 입장의 타당성을 모두 열어놓고, 사례에 따라 어느 해석이 더 합당한지 주목해보자. 4. 신화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연구 동향 신화에 대한 정신분석적 해석의 토대는 프로이트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신화를 꿈, 작품, 증상과 더불어 무의식과 정신구조를 이해하는데 필수 대상으로 간주했다. 신화와 꿈ㆍ증상ㆍ예술작품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에 관한 프로이트의 관점과 분석 글은 여러 논문에 분산되어 있다. ꡔ꿈의 해석ꡕ, ꡔ창조적 작가와 몽상ꡕ, ꡔ토템과 타부ꡕ, ꡔ모세와 유일 신앙ꡕ, ｢세 상자의 모티브｣, ｢불의 소유와 그 통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년기 기억｣ 등을 참조할 것. 신화의 심층심리를 해석하기 위한 그의 가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이 정리는 필자의 프로이트 연구 내용과 앙지외의 논문을 종합한 것이다. D. 앙지외, ｢프로이트와 신화｣ 동문선, 계간 ꡔ세계 사상ꡕ, 1997, 47-93쪽 참조. 첫째, 신화는 고대 인류의 (민족)무의식이 ‘투사’된 결과물이다. 즉 신화는 외부대상과 ‘사실’에 대한 서술과 더불어, 내면세계의 표현물이다. 둘째, 신화는 억압된 무의식이 ‘회귀’하여 ‘변장(압축, 전치, 상징화)된’ 모습으로 표현된 결과물이다. 억압해야 했고, 끊임없이 ‘회귀’하려 들며, 변장시켜야 했던 무의식의 핵심내용은 오디푸스 콤플렉스이다. 셋째, 개체발생이 계통발생을 ‘반복’하듯이, 아이들의 사고는 원시인류의 태고적 상태를 재현한다. 따라서 어린이 또는 유년기 욕동과 환상 ㆍ 불안에 고착된 신경증자의 무의식을 분석하면, 신화에 투사ㆍ전치된 원시인류의 무의식을 규명할 수 있다. 프로이트, ｢편집증 환자 슈레버｣, ꡔ늑대인간ꡕ, 369쪽. “<꿈과 신경증에서 우리는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아이가 생각하는 방법과 정서생활의 독특함을 만나게 된다.> 이제 이 명제에 다음을 덧붙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야만인, 즉 원시인도 만나게 된다. 원시인은 고고학과 민속학 연구를 통해 우리에게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넷째, 신화와 꿈, 증상, 예술작품의 무의식적 발생과정 및 발생구조는 동일하다. 따라서 꿈, 작품, 증상에 대한 분석 방법과 분석된 자료를 신화해석에 동일하게 적용하고 활용할 수 있다. 다섯째, 신화는 무의식을 의식에로 상징적으로 재현함으로써 현실 속에서 충족하지 못한 소망을 간접적으로 대리 충족시키려는 목적을 지닌다. 정신분석 역사상 중요한 신화 연구 업적은 주로 1906-1920년에 이루어졌다. 가령 아브라함의 ｢꿈과 신화｣(1909), 존스의 ｢햄릿과 오디푸스｣(1910), 융의 ｢리비도의 변모와 상징｣(1912), 페렌치의 ｢오디푸스 신화에 나타난 쾌락원칙과 현실원칙의 상징적 재현｣(1912), 오토 랑크의 ꡔ영웅 탄생의 신화ꡕ(1909)와 프로이트의 ｢세 상자의 모티브｣1913, ꡔ토템과 타부ꡕ1913 등이 그것이다. 이 시기의 프로이트 제자들은 프로이트의 무의식론과 오디푸스 콤플렉스ㆍ 리비도 발달론을 신화 해석에 충실히 적용하는데 몰두했다. 한 예로 존스는 융이 리비도를 비성적인 생명에너지로 해석하고 집단무의식을 강조하는 신화적 상징론을 제기한 데 대해, “오직 억압된 것만이 상징화된다.”고 주장한다. D. 앙지외, 같은 책, 76쪽. 즉 어떤 무엇이 무의식의 상징이 되려면 ‘의식에 드러내서는 곤란한’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뱀은 융의 해석처럼 지혜의 상징이기 보다 남근으로, 반지는 충실성의 상징이기 보다 (여성의) ‘질’로 해석해야 된다. 프로이트 후기 정신구조론을 계승한 자아심리학자 아를로우는 ꡔ자아심리학과 신화연구ꡕ(1961)에서, 신화를 “집단에 속한 개인들의 본능충족, 방어, 적응과 같은 다양한 목적을 지닌 ‘공유된 환상’”으로 해석한다. 미국정신분석학회, ꡔ정신분석 용어사전ꡕ, 한국심리치료연구소, 2002, 252쪽. 즉 개인은 문명화된 삶을 위해 유아기의 본능적 소망을 포기하는 대가로 공동체가 수용할 수 있는 소망을 신화의 형태로 부여받는다. 또한 신화는 개인에게 공동체의 ‘이상적 자아’를 제공함으로써 초자아 형성에 도움을 준다. 프로이트의 이론을 보완하는 새로운 신화 분석 모델을 제시한 인물은 클라인이다. 그녀는 프로이트의 후기 죽음본능론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그녀 특유의 유아기 정신발달론에 의거해 신화를 해석한다. 그녀에게 신화란 초기 심리 발달 단계(‘자리’)에서 ‘모권적 초자아’와 무의식적 환상 및 불안들이 분열ㆍ투사ㆍ전치된 상징물이다. 신화란 유아기의 강렬했던 ‘내적 경험’들이 집단의 언어로 표현된 것이다. 가령 영웅신화는 ‘좋은 내적대상’들이 손상되는 경우 어떤 과정을 거쳐 회복되며, 좋은 대상과 나쁜 대상 사이의 ‘분열’이 (‘우울적 자리’에서처럼) 어떻게 통합되는지를 교훈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신화적 상징들이란 초기 유아의 환상, 불안, 삶ㆍ죽음본능 등이 전치된 결과물이다. 이러한 가정을 바탕으로 그녀는 ꡔ오레스테이아 해석ꡕ(1963)에서, 자기 엄마를 살해한 아들의 원초적(전오디푸스기적) 심리상태를 비롯해, 딸을 죽인 아버지, 남편을 죽인 아내, 복수의 여신ㆍ정의의 신이 각각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해석한다. M.Klein. "Some reflections on The Oresteia"(1963), in Envy and Gratitude and other works. New York, The Free Press, 1984, pp.275-299. 이 논문에서 클라인은 ‘아들이 엄마를 죽이게 된 원인’을, 동일시해온 아버지(아가메논)가 엄마에게 살해당하자 아들의 자아가 손상된 것이 촉발적 원인이며, 그동안 묻혀졌던 ‘편집-분열적 자리’에서의 가학적 초자아의 박해환상과 박해불안이 아들(오레스테스)에게 엄습한 것이 주원인이라고 해석한다. 클라인의 신화 분석은 프로이트가 충분히 규명하지 못했던 前오디푸스기의 유아심리에 대한 독창적 이론과 임상자료들을 토대로 수행되었다는 점에서, 신화 분석 역사에 새로운 모델을 첨가한다. 융학파는 각 민족의 신화적 상징들에 어떤 유형의 원형들이 주로 투사되어 있는가를 주목한다. 융학파의 관점에서 보면 신화 속 주인공들의 특징과 행동들은 ‘억압된 소망’이 변장된 개인무의식(그림자)의 상징이기보다, 그 민족이 ‘정신의 균형과 발달’을 위해 대면하고 ‘보충’해야할 집단무의식(아니마-아니무스, 자기) 유형이 무엇인지를 전달하는 상징이다. 가령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근친상간 이미지들은 프로이트에겐 유년기에 억압된 오디푸스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다는 ‘소망’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이에 비해 융은 그것을 그 민족이 그동안 외면하여 발달시키지 못한 집단무의식의 ‘兩性性’ 욕구(아니마-아니무스)가 발현된 상징으로 해석한다. 융, ꡔ원형과 무의식ꡕ 190-194쪽, 주 29. 이런 상징은 자신의 반대 성을 자아에 통합하지 않은 채 계속 단절된 상태로 지내면, 정신적 불균형으로 인해 집단무의식에 함몰되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포한다. 1970년대 이후부터는 ‘대상관계론’과 라깡의 입장을 응용한 패미니즘적 신화분석이 대두되고 있다. J. 크리스테바,ꡔ사랑의 정신분석ꡕ 민음사, 1999, 30, 58, 70, 84쪽 참조 이 책에서 저자는 기독교 교리와 성경 주인공들의 무의식적 의미에 대해 여성주의와 라깡을 결합한 시각에 의거해 해석한다. 남성성이 ‘언어적 상징계’의 규범적 분별의식을 대변한다면, 여성성은 언어적 분별 이전의 상상계와 실재계, 가장 근원적인 ‘모성적 수용성’,‘코라’, 1차적 동일화, 본능적 활동성을 지칭한다. 따라서 ‘실재계/상상계/상징계’의 통합 구조로 이루어진 인간정신에 있어, 여성성의 결핍은 심각한 정신장애를 유발한다. 이 입장은 엄격하게 분별ㆍ평가하는 남성적 상징계에 대해 ‘모성적 수용성’의 본원적 가치를 부각시키며, 내면화된 모성적 여성성이 인간의 정신ㆍ정서 발달에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강조한다. 모성성은 ‘자기’와 ‘자아’의 ‘배경적 힘’으로 작용한다. 가령 유아기에 ‘부정적 모성성’을 내면화했거나 모성성이 결핍된 개인은 정신의 핵인 ‘자기’가 취약하게 된다. 그로인해 내적충동들과 외부자극을 대면하거나 통제하기 힘들어져 원초적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그 결과 원초적 방어기제에 고착된 정신구조가 형성되어, 정서적으로 편안한 대상관계가 힘들어진다. 반면에 ‘긍정적 모성성’을 내면화한 개인은 낯설은 자극들이나 변화에 불안없이 유연하게 대응하는 정서적 힘을 지니게 된다. 이렇듯 유아기(전오디푸스기)에 내면화된 모성성은 아동기(오디푸스기)에 습득된 언어적 분별의식의 배후에서 정신의 응집성을 지지해주는 토대 역할을 한다. 따라서 여성적 모성성은 유아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며, 정신발달을 위해 분리ㆍ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재)활용되야할 인류 공통의 성질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정신적 성숙이란 “엄마로부터 분리되어 아버지의 규범체계로 진입”하는 것이라는 개념으로 단순화될 수 없게 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원시상태로부터 문명상태로, 유아상태로부터 성인의 상태로 발달해가는 과정은 원초적 상상계인 모자관계로부터 사회규범적인 상징 관계로의 이행으로 단순 도식화되지 않는다. 인류의 유년기인 기원신화로부터 주체성 확립을 위한 격동기인 사춘기의 영웅신화를 거쳐, 성숙한 주체로 고양되는 ‘변환신화’에 이르기까지의 정신발달 과정에서, 모성성에 대한 개인의 관계 정립은 다중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인류의 신화가 모권적 신화로부터 부권적 신화로 진화되어 왔고, 신화 속 영웅들의 행동이 ‘모권적 지배로부터의 해방’ 활동이라는 일방적 해석 관점은 비판된다. 프로이트, 융, 대상관계론 및 최근 입장들은 신화에 대해 각기 고유한 의미해석을 발생시킨다. 어떠한 관점이 신화분석에 가장 참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아직 국제적으로 중대한 논쟁거리가 되고 있지 않다. 이것은 현재의 세계정신분석학회를 구성하는 분석가 그룹의 학문적 성향과 권력 분포도 및 상호 대화 능력에 의해 영향 받을 것이다. 현재 “세계정신분석학회”의 다수는 프로이트의 후기 역동적 정신구조론을 발전시킨 자아심리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에 널리퍼진 자아심리학은 “자아의 현실적응 기능 및 발달조건”에 주목한다. 이 입장에서 보면 신화란, 당대인들의 자아가 본능의 안전한 (상징적) 분출과 ‘자아 이상’의 확립을 통해, 험난한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생성ㆍ유지하는 것으로 해석될 것이다. 이에 비해 남아메리카에서 유행하는 클라인 학파의 경우, 죽음본능에 기인하는 유아의 불안과 파괴욕구, ‘엄마의 몸’에 관한 ‘분열’된 부분대상 환상들과 통합된 환상이 각 민족의 신화에 어떻게 ‘투사’되어 있는가를 주목할 것이다. 그리고 영국에 뿌리를 둔 위니컷 학파의 입장에서 보면, 신화란 유아기 ‘모성적 무의식’과 자아전능적 ‘과도기 단계’ 경험의 상징적 재현물이다. 주관적 환상과 객관적 사실의 혼재물인 신화 속 신들과 영웅은, 어떤 공격적 표현에도 보복하지 않는 ‘과도기 대상’의 기능을 재현한다. 그로인해 신화는 각 민족에게 모성적 결핍과 자기애를 보충시키고, 억압된 공격성을 창조적 활력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코헛 학파의 입장에서 보면, 신화 속에 화려하게 등장하는 신과 영웅들은 각 민족의 ‘자기’ 안정과 활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기애’(self-love)를 충족시켜주는 ‘자기 대상’ 모델들이다. 신화 속 주인공들은 그 민족에게 결핍된 ‘과대적 자기애’와 (‘강력한’ 존재와의 동일시에 의한) ‘이상적 자기애’를 충족ㆍ유지시켜주는 ‘과대적(모성적) 自己 對象’과 ‘이상적 自己 對象’ 역할을 할 것이다. 20세기 후반부터는 정신분석가를 양성하는 각 나라의 정신분석연구소들에서 프로이트, 자아심리학, 대상관계론, 자기심리학, 라깡 이론을 함께 교육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위 이론들의 장점을 통합하는 독특한 신화 분석 관점과 개념이 탄생될 것으로 예견된다. 외국의 동향들에 비해 우리나라의 정신분석적 신화 연구 역사는 상대적으로 짧고 단순하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부터 정신과의사 이부영을 중심으로 소수 정신분석가들이 융학파의 관점에서 민담과 신화에 대한 해석을 시도해왔다. 이부영, ꡔ한국민담의 심층분석-분석심리학적 접근ꡕ, 집문당, 2000. 융계열의 또다른 신화분석가로 이죽대, 이유경 등이 있다. 그리고 정신과의사 김광일이 1960년대 후반부터 프로이트 관점에 입각해 신화 분석 담론을 발표했다. 김광일. ｢한국 신화의 정신분석학적 연구-오디푸스 복합｣, 1967. ꡔ한국전통문화의 정신분석-신화, 무속, 그리고 종교체험ꡕ, 교문사, 1991. 가령 단군 신화에 대한 그의 해석을 주목해 보자. “하느님 환인의 ‘서자’인 환웅이 아버지로부터 세 보물을 ‘물려받아’ 3천의 ‘무리와 더불어’ 세상에 내려와, 곰이 여자로 변신한 웅녀와 결혼해 단군을 낳았다.” 김광일은 한국의 신화가 너무도 질서롭게 보이는 것은, 유교를 숭상하는 선비계층에 의해 신화가 문자로 최초 기록되는 과정에서, 과도한 검열과 변형이 이루어졌기 때문으로 본다. 그렇다면 변형된 결과물로부터 본래의 무의식을 추적해가는 정신분석가인 그는 위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환웅이 ‘서자’라면 권력에서 소외된 설움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하늘에 정착하지 못한 채 지상으로 내려온 것은, 오디푸스 욕구로 인해 형제들(삼천의 무리)과 단결해 아버지를 폭력으로 처치하고, 그의 힘(세 보물)을 약탈해 세상에 내려온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곰’녀와 결혼했다는 표현에서, 곰은 동북아시아의 토템동물이다. 또한 곰은 원모(原母)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토템동물과 신은 ‘심리적으로 동격’이므로, 신과 동격인 원모와 신의 아들이 결혼한 것이 되므로, 근친상간 욕구가 숨겨져있다.…” 김광일, ｢한국 신화 속의 오이디푸스｣, 같은 책, 35-36쪽. 위 해석은 오디푸스 이론을 한국신화 분석에 그대로 적용한 예이다. 위 신화는 융, 대상관계론, 자기심리학의 관점과 개념으로 각각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프로이트적 한국신화 분석의 대부인 김’의 장점은 환자들의 분석 사례들을, 프로이트적 상징분석 관점의 타당한 근거자료로 제시한다는 데 있다. 김광일, ｢신화와 정신병｣, 같은 책, 87-105쪽. 어떤 신화이론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임상자료이다. 신화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해석이 학문적 힘을 지니려면, 임상체험과의 접맥이 요구된다. 이 조건 때문에, 자기자신과 내담자들에 대한 정신분석 체험이 없는 문학비평가들에 의한 신화분석이 학문적 힘을 지니기 어렵다. 그러나 그는 프로이트 이후의 정신분석 연구 동향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 이후 프로이트적 신화 연구를 발전시키는 뚜렷한 후속 연구자들이 없다가, 원로 정신분석가 조두영에 의해 민담 연구물과 예술작품 분석이 최근에 출판된 상태이다. 조두영, ꡔ프로이트와 한국문학ꡕ, 일조각, 1999. ｢심청전｣에 나오는 꿈들에 대한 조두영의 해석은 정통 프로이트적 정신분석의 완숙성을 드러낸다. 조두영, 『목석의 울음』서울대학교출판부,2004. 그밖에 정신에 대한 임상적 자기분석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일부 문학비평가들에 의해 프로이트와 융의 이론을 문학텍스트 분석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있어왔지만, 정신분석에 대한 ‘체험적 인식’의 결핍으로 인해 그 학문적 가치가 미미한 차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정신분석 관점이 한국, 중국, 일본 신화의 ‘무의식적 의미’를 분석하는데 가장 적합한가에 대한 논의는 아직 국내 신화연구가들에 의해 ‘문제화’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의 융학파 분석가들은 오직 융의 관점에서만 신화의 의미를 해석해 보이는데 급급해왔다. 융이론가들이 프로이트의 이론을 숙지하여 통합하거나, 또는 프로이트 계열의 자아심리학을 공부한 국내 정신과의사 그룹이 융의 신화이론을 연구해서 통합하는 작업은 아직까지 조성되어 있지 않다. 이 상황에서 현대 정신분석학적 입장들까지 다중적으로 고려하여, 그 각각의 입장에서 동아시아 신화를 분석해보이고, 나아가 기존 정신분석 입장들이 동아시아 신화를 해석하는데 어떤 장점과 한계를 지니는지 반성하는 작업은 시대적 여건을 넘어서는 요구와 시도로 볼 수도 있다. 5. 동아시아 신화에 대한 정신분석 개념틀 적용 방법 앞에 논의된 무의식 유형들과 신화 분석 관점들을 토대로 한국, 중국, 일본의 신화를 분석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각각의 정신분석 입장은 자신의 개념이 인류의 정신내면을 보다 진실되게 ‘보편적으로’ 반영하는 지식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 개념에 의거해 각 나라의 신화들을 해석할 경우, 동아시아 신화들의 공통된 무의식적 의미가 드러날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신화학자 정재서는 중국의 창세신화 “반고”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반고는 4가지 불변적 신화소에 의해 구성된다. 그 네 가지란 1) 혼돈 2) 반고의 탄생(혹은 존재) 3) 천지개벽 4) 반고 ‘신체의 변화’이다... 이는 세계 창세신화들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혼돈, 우주적 거인, 천지개벽, 死體化生”의 모티브에 상응한다....그것은 무정형의 혼돈이 거인 반고로 肉化되고, 공간이 분할되면서 천지가 개벽되고, 반고가 해체되면서 만물이 탄생되는, 파괴와 창조가 짝패처럼 수행되는 ‘창세의 매 단계’ 상황이다.“ 정재서, ｢중국 창조신화의 역사적 변이 양상과 의미｣, ꡔ창조신화의 세계ꡕ, 소명출판, 2002, 223-226쪽. 위 해석을 앞장에서 논의된 정신분석 개념들과 관점들을 활용해 다양하게 재해석해보자. 신화가 억압된 소망들의 충족을 위해 추동된 무의식의 상징적 투사ㆍ전치물이거나, 서로 다른 ‘정신 구조’나 내적 대상(환상)들의 상징적 반영이라면 반고 신화는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 1) 혼돈 : “천지가 아직 열리지 않은 먼 옛날, 우주는 혼돈과 어둠만이 가득한 ‘거대한 알’ 모양을 하고 있었다.” 요시다 아츠히고 외, ꡔ우리가 알아야할 세계신화101ꡕ, 이손, 2001, 271-273쪽. ‘천지가 열리기 이전의 혼돈’ 상태란 ‘의식’이 출현해 ‘세상을 분별하기 이전’ 상태를 의미한다.(융) 또한 엄마에 대한 유아의 무기력한 절대의존 상태(위니컷), 원초적 파괴욕동으로 인해 분열된 가학적 부분대상들로 가득찬 유아의 불안한 마음 상태(‘편집-분열 자리’)를 상징한다.(클라인) 나아가 “‘나’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출생의 비밀을 알고 싶다!)”는 아동의 궁금증을 반영할 수도 있다.(프로이트) 그렇다면 이것의 민족무의식적 의미는 다음과 같이 해석해 볼 수 있다. “이제 막 새로운 집단을 형성한 우리민족은 생존과 박해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뭔가를 시작해야만 한다. 그러나 무엇을 어찌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다. 으, 어린시절의 보호자처럼 절대적 힘을 지닌 누가 우리의 앞날을 알려줬으면 좋으련만!” 2) 탄생 : “그 알 속에 ‘거인 반고’가 ‘잠자고’ 있었는데, 자면서 계속 성장했다. 1만8000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보이는 것은 ‘어둠 뿐’이었다.” ‘거인 반고’란 곧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 양 바라봐주는 엄마의 눈에 비추인 ‘나’(코헛의 ‘과대적 자기’) 내지 “이 세상은 내가 원하는 데로 존재한다.”는 자아전능 환상에 뿌듯해하던 ‘자기애적 단계의 나’를 상징할 수 있다.(프로이트) 그 ‘나’(자기, 자아)는 아직은 잠자는 듯 미약하지만, 앞으로 무한한 성장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민족무의식적 의미는 “지금의 우리민족은 초라하고 무기력하다. 그러나 ‘주술’을 통해 ‘뭐든지 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믿던 옛날(애니미즘 시대)처럼, 뭔가 거대한 일을 해보고 싶다!”로 해석된다. “거인은 손바닥을 펴서 ‘팔을 휘둘러’ 눈앞의 ‘혼돈과 암흑을 힘껏 갈라놓았다’. 갑자기 ‘큰소리’가 울리고 ‘거대한 알’이 ‘파열’되었다. 응어리져 움직이지 않던 ‘혼돈과 암흑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혼돈과 암흑이 ‘갈라짐’은 자아의 발생 내지 엄마의 ‘안아주기’에 의한 불안의 해소상태를(위니컷), ‘큰소리’는 아기자신의 울음소리 내지 오디푸스 갈등의 고통을, ‘거대한 알의 파열’은 탯줄이 끊어짐 내지 엄마 품으로부터의 분리ㆍ독립을, ‘혼돈의 움직임’은 성욕동의 활성화(발달) 내지 수동성으로부터 능동적 욕망 태도로의 변화를 상징할 수 있다.(프로이트) 이 귀절의 민족무의식적 의미는 “힘있는 누군가의 지원없이 뭔가를 독자적으로 하기엔 힘들고 두렵구나. 그러나 이젠 그만 무력하고 수동적인 현실을 벗어나, 우리민족의 거대한 힘(팔, 남근)으로,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 세상을 좌지우지 하고 싶다!” 로 해석된다. 3) 천지개벽 : “두 팔로 하늘을 받치고, 두 다리는 ‘굳게 땅을 밟고’, 하늘과 땅 사이에 ‘우뚝 섰다’…” ‘천-지 분리’란 남성과 여성의 성차이를 인식하는 충격적 사건 내지, 엄마와 아버지가 확연히 분별되는 오디푸스기로의 진입을 암시한다. 이러한 정신 분화가 온전히 이루어지려면, 먼저 엄마와의 관계에서 ‘나’의 본래성이 존중받는 ‘자기애 단계’를 성공적으로 통과해야 한다. 그렇다면 “‘땅’을 ‘굳게 밟는’”다는 것은 ‘좋은 엄마’의 양육에 ‘충분히 의존’할 수 있었음을 지칭하고(위니컷, 코헛), 그로인해 엄마를 향한 나의 ‘남성적 욕망’이 온전히 발달했음을 암시한다.(프로이트) ‘천지 사이에 우뚝섬’은 “엄마-아버지-나” 사이의 오디푸스 3자 관계에 놓이게 되었음을 상징한다. 아이는 자신을 향한 엄마의 절대 애정을 확신하며, 아버지(하늘)를 향해 ‘두 팔’로 자신의 욕구를 거침없이 표현한다. 위 귀절의 민족무의식적 의미는 “우리 민족은 지금 강력한 외부세력과 대결해야만 하는데 불안하다. 힘 있는 누군가의 지원이 절실하다! 의존할 수도 없고 자립할 수도 없는 지금의 갈등상태에서, 나의 어려움을 전적으로 해소해주던 ‘어릴 적 부모’같은 전능한 존재가 그립구나! 어릴 때처럼 안정된 ‘환경’만 주어진다면, 우뚝 설 수 있을 텐데...” 4) 반고신체의 변화 : “반고는 ‘완전히 지쳐… 쓰러져 죽었다’. 죽을 때 내뿜은 숨은 바람, 구름, 안개로, 소리는 천둥으로, 왼쪽 눈은 태양으로… 몸과 손발은 산으로, 피는 강으로 되었다.” 천지만물을 창조했다면, 반고는 절대자일 것이다. 그런데 그 위대한 신이 왜 죽게 된 것일까? 이런 ‘비합리적 부분’일수록 무의식의 ‘변형(압축, 전치, 상징화)’이 크게 작동된 부분이며, 숨기고 싶은 가장 아픈 내용이 담겨있는 부분이기에 주목해야 한다. 반고의 탈진과 죽음은 오디푸스기의 운명적 상처와 거세불안으로 인해 ‘자기애적 나’가 고통스럽고 수치스럽게 ‘거세’됨을 상징한다.(프로이트) 그리고 자기애적 환상이 깨지고, 아버지를 동일시해 내면화하는 순간, 아이에겐 본능억압과 더불어 언어적으로 분별되는 새로운 외부 대상들이 풍성히 출현한다. 이제부터 아이는 이 대상들을 향유함으로써 ‘자기애적 나’가 거세된 것을 ‘보상’받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죽음’이란 ‘새로운 탄생’을 위해 수용해야 하는 운명적 조건인 것이다. 그런데 중국인은 민족의 조상인 동시에 ‘심리적 동일시’ 대상인 반고(‘나’)가 죽어 그로부터 만물이 만들어졌다고 표현한다. 이는 중국민족이 비록 사회적 삶을 위해 비록 원시적이고 유아적인 삶을 포기(거세)했지만, ‘자기애적 나’를 완전히 포기하진 않았음을 암시한다. 우주의 근원은 어디까지나 ‘우리 중화민족’인 것이다. 그런데 ‘몸’으로부터 만물이 생겨났다는 상징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열쇠는 “엄마 몸 속에 온갖 가치 있는 것들이 담겨있다”는 유아의 선천적인 ‘엄마 몸’ 환상을 규명한 클라인에게서 얻을 수 있다. 수백의 민족들과 토착세력들이 존재했던 중국의 고대사를 참조할 때, 위 상징들의 민족무의식적 의미는 “힘쎈 외부세력과의 싸움에 지고, 민족 내부의 분열과 갈등으로 탈진하여, 더 이상 기존 국가를 유지하기 어렵다. 자존심이 상한다! 그러나 새로운 현실 체계를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니, 새로운 삶이 펼쳐지는구나. 으. 비록 상처 받았지만, 이 세상의 주인은 여전히 우리다!” 한국의 창세신화인 ꡔ천지왕본풀이ꡕ와 일본의 창세신화인 ꡔ이자나기와 이자나미ꡕ역시 앞의 경우와 유사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신화학자 이지영이 분석한 ｢천지왕｣ 신화소들인 “천상신 하강-천부지모형 신성혼-인세시조의 지상탄생-부친찾기 승천-인세차지 경재-치소 좌정” 각각에 대해서는 전오디푸스기 개념틀과 오디푸스 개념틀에 입각한 보다 드라마틱한 무의식 분석이 가능하다. 이지영, ｢한국 창세시조신화의 전승 변이 연구｣, ꡔ창조신화의 세계ꡕ, 소명출판, 2002, 223-240쪽 참조. 창세신화에 대한 정신분석적 해석에는 출생 직후 초기 1년간 내지 전오디푸스기에 벌어지는 유아의 심리상태를 분석한 클라인과 위니컷, 코헛의 개념이 매우 유용하다. 그리고 영웅신화나 건국신화 해석에는 유아에서 성장해 오디푸스 갈등에 휩싸이는 아동 및 사춘기 소년소녀의 격동적 심리를 묘사한 프로이트와 인생 전반의 인격발달(‘개성화’) 과정을 묘사한 융의 개념이 유용할 수 있다. 이 개념들을 동아시아 신화 해석에 각각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는 신화의 유형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동아시아 신화 분석을 위해 우리가 고심해야 할 중심 문제는, 인류 공통의 무의식 성질을 설명한다고 주장하는 각 정신분석 이론들을 가지고, 어떻게 동아시아 신화와 서양 신화 사이의 차이성과, 동아시아 각 민족신화들의 특수성을 규명할 수 있는가이다. 각각의 정신분석 개념을 통해, 동아시아 신화들 사이의 공통성을 추론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각 민족 신화 이면에 있는 민족무의식의 고유성은 어떤 개념틀과 어떤 방법으로 드러낼 수 있는가? 이에 대해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앙지외의 말을 음미해보자. “서구의 개념틀을 인류의 보편적 틀로 함부로 일반화하지 말자. 정신분석학들이 행하는 신화 해석은 언제나 동일 산물을 만들어 냄으로써 차이점을 평준화하고, 차이점을 소멸시키는 메카니즘으로 보일 수 있다.....물론 오디푸스 조건에 의해 인간의 정체성과 공동체가 기초된다는 점 때문에, 억압된 무의식이 보편적이긴 하다. 그러나 히스테리자, 강박증자, 공포증자가 각각 고착되있는 오디푸스 콤플렉스 중심내용이 서로 다르듯이, 오디푸스 콤플렉스의 구성요소들은 개인(민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주체(민족)의 오디푸스 콤플렉스를 그만의 독특한 경험으로 만들었던 ‘사건, 기억, 방어기제’의 차이를 주목해야 한다.” 앙지외, 같은 책, 82쪽. ( )내용은 필자의 첨가임. 전통 정신분석 입장들이 고유하게 부각시켜온 정신내부의 보편적 내용들 내지 무의식 유형들은 그 종류가 한정되어 있다. 본능들과 그것의 표상들, 불안과 방어기제, (유아적, 원시적) 환상, ‘내적 대상’, ‘언어’ 등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모권적 초자아와 부권적 초자아, 모성적 무의식, 자기애적 무의식, 언어적 무의식, 개인무의식과 집단무의식 등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이 내용들 각각은 나름의 보편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것들 사이의 ‘결합 양태는 다양’할 수 있다. 그것들의 구성방식은 리비도 발달단계와 자아 발달 양태에 따라, 신경증 유형 내지 성격 유형에 따라 개인마다 사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전통 정신분석 개념틀들을 활용해 민족무의식들의 차이성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는가? 프로이트의 무의식론에 의거한다면, 각 민족의 신화들에 ‘어떤 비합리적 내용’이 강조되거나 반복되며, ‘어느 정도’로 ‘변형’해서 표현되고 있는가를 주목해야 한다. 이것에 의해 각 민족이 억압해온 무의식 내용의 차이를 비교할 수 있으며, 억압 강도의 차이는 1차변형과 2차검열이 신화에 얼마만큼 적용되었는가에 의해 판별할 수 있다. 또한 프로이트의 성욕동 유형론에 의거해 각 민족의 신화가 주로 어떤 유형의 성욕동에 고착되어 있으며, 공격성은 어떻게 표현되는가를 파악해, 각 민족에게 ‘발달/미발달된’ 정신요소를 비교할 수 있다. 프로이트의 후기 정신구조론에 의하면, 신화 속에서 원초적 욕망들을 표현/억압하는 주인공들의 성격과 행동 스타일을 통해 각 민족 초자아의 유연성/경직성 강도를 비교할 수 있다. 그리고 신화 속 주인공들이 반복해서 사용하는 ‘방어기제’ 유형을 찾아내면, 각 민족이 어떤 정신 발달 단계에 고착되어 있는지를 분류ㆍ비교할 수 있다. 프로이트가 주목한 정신질환은 히스테리, 강박증, 공포증이다. 위니컷은 ‘거짓자기’와 반사회성 성격에, 클라인은 편집증, 분열증, 우울증에, 코헛은 자기애적 장애, 경계선 장애에, 융은 분열증에 관심을 쏟아왔다. 이 증상들은 특정 콤플렉스에 대한 (기질적 차이에 따른) 서로 다른 반응 유형을 지칭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각 신화 속 주인공들이 지닌 증상 유형을 비교하여 각 민족무의식의 (기질적) 차이를 비교할 수도 있다. 또한 신화 속 주인공들의 이미지나 행동 속에 반영된 ‘원초적 환상’들이 각 민족마다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할 수도 있다. 원초적 환상이란 분출되어 통합되지 못한 ‘본능적 무의식’으로 인한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발생된 것이다. 따라서 이를 통해 각 민족의 정신 배후에서 작용하는 본능적 기질의 특수성들을 추적, 비교할 수도 있다. 한국의 문헌신화의 경우 공격성을 반영하는 ‘원초적 환상’이 과도하게 완곡화, 억압되어 있다. 반면에 구비전설 속에는 ‘한맺힌 귀신상’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생존을 위해 강대국과 권력층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던 상황이 오래 지속되는 과정에서, 공격성의 외부 분출이 과도하게 억압ㆍ투사된 양태로 볼 수 있다. 클라인의 개념들에서 중요한 것은 ‘엄마-유아’ 관계에서 작용하는 파괴욕동과 무의식적 환상, 박해불안, ‘분열’과 ‘투사와 투사적 동일시’, 혹독한 초자아, 시기와 질투 등이다. 이 개념들에 의거해 각 민족 신화에 등장하는 여성신들의 ‘좋은/괴기스런’ 이미지나 불합리한 행동에서, 파괴욕동과 불안 ㆍ 방어기제 유형, 모권적 초자아 양태를 비교할 수 있다. 위니컷의 개념틀에선 참자기/거짓자기, ‘좋은 엄마’ 역할, 과도기 단계와 과도기 대상, 공격성과 창조성 등이 중요하다. 이 개념틀에 의거해, 각 민족 신화 속 주인공들이 공격성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며, ‘자기’의 개성을 어느정도로 창조적이고 활력있게 표현하는가를 판별해 거짓자기의 강약을 비교할 수 있다. 코헛에겐 자기대상, 과대적 자기애, 이상적 자기애, 동일시 등이 중요하다. 이 개념틀에 의거해서는, 각 신화 속 신들이 각각 어떤 유형의 자기애를 충족시켜주는가와, ‘이상화된 신들, 영웅들’의 특성 비교를 통해, 각 민족이 필요로하는 결핍된 자기애와 자기대상이 각각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를 비교할 수 있다. 위에 소개된 각 학파의 개념들을 다중적으로 적용할 경우, 각 민족무의식의 차이성들이 더 명료히 분별될 수 있다. 이처럼 정신분석 개념과 관점들을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는가에 따라, 동아시아 신화의 공통성과 각 민족신화의 특수성이 함께 부각될 수 있다. 민족무의식의 고유성을 해석하는데 우리가 주의할 또다른 것은, 개인무의식의 문제가 민족무의식의 문제와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개인의 환상에는 집단의 환상이 이미 배경적 요소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서로 소통된다. 그렇지만 개인무의식의 구성이 민족무의식의 구성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개인의 정상적 성욕동 발달은 前오디푸스기 과정을 거쳐 오디푸스기의 문제에 운명적(구조적)으로 직면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개인이 지닌 집단환상은 이와 다를 수도 있다. 가령 투쟁성을 사회차원에서 강조해온 민족은 집단적으로는 가학적(항문기적)일 수 있지만, 그 가학성이 그 사회가 공인하는 특성 내지 요구일 경우, 그것에 ‘적응’하는 개인은 오디푸스기를 정상적으로 통과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개인은 사적 영역에선 사적 환상에 따라 행동하고, 집단 속에선 집단환상에 따라 움직이곤 한다. 개인의 환상은 일생동안 두세 번 재조직되기도 하는데 비해, 문명은 동일한 환상(전통) 속에서 천년을 살기도 한다. 개인의 성숙/퇴행 수준과, 그 개인이 속한 집단이 성숙/퇴행하는 수준 역시 서로 다를 수 있다. 가령 일본 왕족들에게 빈번했던 근친결혼은, 오디푸스 콤플렉스 및 자기애 단계에 고착된 한 양태로 볼 수 있지만, 이것과 일본 민족집단의 정신 상태는 다를 수 있다. 이처럼 개인무의식의 형성 과정과 집단무의식의 형성 과정은 상호 독립적 차원을 지님을 유념하고, 민족들 사이의 차이성 규명에 활용함이 좋다. 6. 결론 지금까지 동아시아 신화를 ‘정신분석’ 관점과 개념을 활용해 주체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필요한 예비지식들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이를 요약한다면 첫째, 프로이트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정신분석 관점 및 개념들에 대해 소화된 지식을 지녀야 한다. 둘째, 신화에 대한 정신분석 연구가 각기 고유한 관점과 개념틀을 근거로 이루어져 왔음을 주목해야 한다. 셋째, 각 입장과 개념들을 신화해석에 다중적으로 적용할 경우, 동아시아 신화들의 공통성과 차이성을 총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을 것으로 예견된다. 위에 논의된 내용들을 토대로 동아시아 신화들에 대한 구체적이며 다중적인 비교 해석이 전개될 것이다. 전통 정신분석 개념들을 다중적으로 활용한 신화해석에 의해 동아시아 민족의 정신적 공통성과 차이성이 명료히 드러날 수 있는지 여부는 구체적인 신화 해석 과정에서 검증되거나 부정될 것이다. 정보의 세계적 교류가 고속화되고 있는 오늘날 정신분석학은 더 이상 ‘서양의 학문’으로 분류될 이유가 없다. 정신분석학 개념들이 한국인들에게 아직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여러 무의식 유형들에 대해 온전한 ‘정서적 인식’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화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연구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최신의 이론 및 임상 동향을 주체적으로 통합한 정신분석학적 신화 연구는, 더 이상 동서양이라는 굴레에 얽메여있지 않다. 무의식에 관한 체인된 배경지식을 갖고 있다면, 동아시아 신화 해석의 선구적 안내자는 우리 자신일 수 있다. 참고 문헌 M. Klein. "Some reflections on The Oresteia"(1963), in Envy and Gratitude and other works. New York, The Free Press, 1984. ______, "The Importance of Symbol Formation in the development of the Ego"(1930) The slected Melani Klein, edited by Juliet. Mitchell. New York, The Free Press, 1986. ______, "A contribution to the psychogenesis of Manic-Depressive States(1935), Ibid. J. Laplanche and J.-B. Pontalis, "Symbolism" in The Language of Psychoanalysis, New York, Norton & Company.1973. C. G. Jung. The Essential Jung, Princeton: Princeton Univ. Press, 1983. S. 프로이트, 「인간모세와 유일신교」「토템과 타부」「불의 입수와 지배」『종교의 기원』,열린책들, 1998. ______, ｢두려운 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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