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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증 원인론
관리자(cjlee7600@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06년 06월 07일 07:38 6102

<신경증 원인론: 외상, 환상, 사후작용>

정신의 병리현상은 어떤 원인에 의해 어떻게 생겨나는가? 왜 의지와 달리 실수와 증상이 반복되는가? 왜 만물의 영장임을 자랑하는 인간이 안전한 환경에서도, 정신 내적 원인에 의한 스트레스에 휘둘려 사는가? 필자의 정신분석 강의에 참여한 사람들의 절반은 그 원인을 도무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른 절반의 사람들은 자신이 고통받는 원인을 약간은 짐작하지만 증상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발생하는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사상가들은 어떤 설명을 제시하는가? 전통 형이상학자들은 덧없이 변화하는 육체와 세속의 권력에서 영속적 만족을 기대하기 때문에 고통에 빠지게 된다고 말한다. 그들의 눈에 육체와 세속의 권력은 결코 궁극적인 실체가 아니며, 영원한 만족을 제공하는 대상도 아니다. 그런데도 일반 사람들은 마치 그것에 대단한 가치가 담겨 있는 양 관심을 쏟는다. 이 잘못된 관심 때문에 그것을 획득하지 못하거나 그것에서 만족을 얻지 못할 경우 분노나 피해의식, 열등감을 느낀다. 형이상학의 관점은 정신이 고통받는 원인을 나름대로 설명해 준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육체의 건강과 사회적 권력의 소유는, 실제로 정신의 행복과 병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신의 성질을 수십 년간 공부하고 가르쳐 온 학자들조차 사회적 권력의 주변으로 밀려날 경우 정신에 상처를 입곤 한다. 이런 현상은 심지어 ‘세속의 권력은 허망한 것이며, 영혼의 구원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설파하는 종교인에게서도 다반사로 관찰된다. 이런 현실은 더 이상 내밀한 소문이 아니기 때문에 현대인은 더 이상 말과 실천이 어긋나는 학자나 종교인을 진심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현대인은 육체의 건강과 쾌감 그리고 정신적 안정과 기쁨을 제공할 ‘대상’을 원한다. 이런 대상을 오랜 기간 만나지 못할 때 그들의 자아는 불안정해져 강화된 방어기제를 작동하게 된다. 그런데 ‘대상 항상성’이 파편화되는 자본주의와 정보화 환경에서 현대인이 자신의 정신건강을 유지해 줄 신뢰할 만한 ‘대상’을 만나기란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
프로이트는 영원하고 순수한 관념 세계가 덧없고 복잡한 현실보다 가치 있다고 믿는 사변적 학문은 인간 삶을 병리적 방향으로 유도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병리적 정신상태의 징후라는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인간’은 양육자에게 오랜 기간 의존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며, 사회적 관계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지닐 수밖에 없는 불행한 존재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주어진 정신·신체적 조건을 최대한 활용해 ‘불필요한 고통’에서 벗어난 삶을 사는 데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편견과 환상에 고착시켜 인간의 ‘자아 발달’을 저해하는 사변적 학문과 종교의 문제를 극복할 새로운 관점으로 정신분석학을 개척한다.1) 그렇다면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볼 때 정신의 병은 어떤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며,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1. 신경증의 기원: 유년기의 성적 외상

인간은 어떤 원인으로 인해 삶을 즐기지도 못하고, 이익되게 행동하지도 못하는 불행한 심리상태에 처하게 되는가? 자아의 기능이 일부 마비되는 신경증이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프로이트는 신경증자에 대한 정신분석 과정에서 그들 대부분이 유년기에 주위 사람에게서 ‘강한 자극’을 받았으며, 그것이 이후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토로하는 것을 관찰하였다. 억압된 무의식을 의식에 드러내는 정신분석 작업에서 신경증자는 오랜 방어적 저항 기간을 거친 후에 자신이 숨겨 온 콤플렉스가 성적 상처와 관련된 것임을 내밀히 토로한다. 프로이트가 만난 신경증자의 정신분석 과정은 대부분 성적 상처의 회상으로 끝이 난다. 그리고 그 성적 상처는 놀랍게도 대부분 유년기에 생겼다고 표현한다(Freud, 1894: 231).2) 이런 일련의 임상적 관찰을 통해 그는 신경증이 유년기에 가까운 대상에게서 받은 성적 외상(外傷, 상처, trauma)3) 에 의해 발생한다는 이론을 정립한다.
프로이트에게 ‘성적 외상(外傷)’은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일차적으로는 외부 대상에게서 받은 신체적인 ‘강한 자극’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기에 정신의 ‘성적 해석’이 첨가되어야만 심리생리적 충격인 ‘외상(trauma)’이 발생한다. 그런데 아이가 외부 대상과 갖는 성 경험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우리는 조심스레 접근해야 한다. 이것은 때로 신체적 성 자극을 지칭하기도 하고, 아이와 부모 사이의 애정관계를 지칭하기도 한다. 유년기의 외상이란 주로 자신의 간절한 애정 요구가 ‘최초 대상’인 엄마와 ‘최초 성 대상’인 이성(異性)의 부모에게서 거절당했다고 느껴질 때 아이가 받는 보편적 심리 상처를 지칭한다. 그러나 때로는 성인이 아이를 (대리) 성 만족 대상으로 삼아, 강한 성 자극을 반복해서 준 상태를 지칭하기도 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유년기에 지나치게 강한 성적 자극을 받으면 ‘성적 해독(noxa)’이 발생한다. 그 이유는 아이는 아직 성기관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성 자극에 의해 축적된 내적 긴장을 성관계를 통해 외부로 분출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 운동기관이나 인지 능력이 미숙하기 때문에 흥분과 긴장을 운동으로 대리 발산하거나 사회적 노동으로 승화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적 긴장이 축적되면 감당하기 힘든 불쾌로 느끼며, 그로 인한 정신의 붕괴를 막기 위해 본능적으로 병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그리고 병리적 방어기제를 사용한 결과로 자아 에너지가 고갈되고, 정신구조가 기형화되어 신경증 증상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치료 대상으로 본 신경증(히스테리, 강박증, 공포증)4)은 어떤 원인에 의해, 어떤 과정을 거쳐 발생하는 것인가?

2. 사후작용론

기억 흔적의 형태로 의식에 현전하는 재료들은, 새로운 환경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재배열·재기록된다(Freud, 1894: 233).

프로이트는 엠마라는 13세 소녀의 가게공포증 사례분석을 통해 신경증의 발생 원인과 과정을 설명한다. 엠마는 혼자서 가게에 들어가지 못하는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 증상이 발생한 원인을 ‘자유연상’을 통해 추적해 본 결과 엠마는 다음의 사건을 기억해 냈다(Freud, 1895: 353-356).

첫째, 12세에 엠마는 옷을 사러 옷가게에 혼자 들어갔다. 가게에는 손님이 없고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점원 두 사람이 있었다. 엠마는 옷을 고르던 중 우연히 시선을 옆으로 돌렸는데, 두 점원이 나이에 비해 노숙한 옷을 입고 있던 그녀의 ‘옷’을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그중 한 점원의 모습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뭔가에 놀라서 황급히 가게를 뛰쳐나왔고, 집에서 2주 정도 앓다가 전에 없던 가게공포증이 생겼다.

프로이트는 이 기억에서 점원이 엠마의 옷을 보고 웃는 상황만으로는 증상을 유발하는 상처와 병리적 방어기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고는 자유연상을 더 진행하였다. 방어적 ‘저항’을 헤쳐 가며 진행된 몇 달간의 자유연상 결과 가게공포증의 단서가 될 어떤 사건이 엠마의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간신히 떠올랐다.

둘째, 8세 경에 엠마는 사탕을 사러 사탕가게에 혼자 갔다. 가게에는 손님이 없고, 중년의 가게 주인만이 있었다. 엠마가 사탕을 고르던 중 가게 주인이 엠마에게 다가와 ‘씩 웃으며’ 엠마의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성기를 여러 번 압박했다. 엠마는 사탕을 사고 집에 왔으며, 특별한 이상은 발생하지 않았다. 열흘쯤 후에 엠마는 한 번 더 그 가게에 갔고, 아무 일 없었으며, 그 후엔 그 가게에 가지 않았다.

프로이트는 이 두 사건이 신경증 발생과 모종의 관련이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다. 먼저, 옷가게에서 엠마가 점원의 웃는 모습을 보고 기분 좋음을 느낀 순간, 갑자기 놀라서 황급히 달아난 이유는 무엇인가? 프로이트는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어느덧 사춘기에 접어든 엠마는 점원이 자신의 옷을 보며 웃는 순간, 어떤 흥분을 느꼈다. 그 흥분은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일종의 ‘성 감정’이었다. 그런데 그 성 감정과 그녀의 옷을 쳐다보며 웃는 점원의 모습은 그녀가 까맣게 잊고 있던 무의식 속의 사탕가게 인상과 갑자기 연결(연상)되었다. 그 순간 점원의 웃음은 사탕가게 주인의 씩 웃는 모습과 연결되고, 점원이 바라보던 자신의 ‘옷’은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성기를 압박하던 장면’과 연결되었다. 프로이트는 이를 신경증자들의 정신에서 자주 발생하는 ‘잘못된 연상’이라고 칭한다(Freud, 1895: 352-356).5) 이 뜻밖에 연상된 사탕가게 인상은 엠마의 정신에 과거 그 시점에선 없었던 ‘성적 긴장’을 일으킨다. 그리고 갑자기 엄청나게 생겨난 성적 흥분은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엠마의 정신에서 불안으로 변형된다. 이 불안과 더불어 그녀는 방금 전까지 매력 있게 느껴지던 점원이 과거의 사탕가게 주인처럼 자신을 ‘성추행(공격)’할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적 연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 무의식적 환상과 불안 때문에 황급히 도망간 것이다.
집에 와서 엠마는 2주 동안 정신적 혼미상태로 앓아눕는다. 그 후에 뜻밖의 가게공포증 증상이 그녀에게 출현하였다. 그렇다면 그 2주 동안 그녀의 정신 내부에서 어떤 일들이 발생하였기에 신경증 증상이 생기게 된 것인가?
엠마의 자아는 뜻밖의 ‘기억’으로 인해 발생한 성 흥분과 불안에 대해 정상적으로 방어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자아는 주로 외부 지각에 대한 방어에 주의를 집중하므로 정신 ‘내부’에서 돌출한 뜻밖의 ‘기억’과 그것에 병행된 정서적 불안, 불쾌에 대해서는 미처 대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Freud, 1895: I. 357-358). 따라서 무의식에 대한 ‘억압’ 방어에 실패한 자아는 제2의 병리적 방어기제인 ‘대체·투사·회피’를 황급히 작동한다. 그로 인해 정신이 해체될 것 같은 불안과 위기를 모면하는 대신에 ‘엉뚱하게 대체된’ 대상(가게)에게서 ‘집중된 불안’을 느끼는 공포증 증상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개인의 정신에 순간적으로 발생한 일련의 정신적 연상과 방어작용은 무의식적이다(Freud, 1896: 167). 따라서 엠마는 자신이 놀라게 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가게에 갈 때마다 어떤 불쾌하고 불안한 무의식적 환상에 시달려, 가게에 혼자 가지 못하는 것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엠마가 8세 때에 사탕가게에 두 번째로 다시 간 것을 13세의 지금 기억해 내고는 너무도 괴로워한다는 점이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사탕가게에 어떤 ‘나쁜 기대’를 가지고 다시 간 것인 양 심한 죄책감과 수치심에 시달린다. 그리고 이런 죄책감과 수치심은 엠마가 2주간 앓고 있던 시기에도 출현하였다가 즉각 억압되어 망각된 것으로 추정된다. 즉, 2주 동안 그녀는 자신의 과거 사건에 대한 ‘어떤 기억과 부정적 해석’에 의해 괴로워하다가 방어적 억압이 작동하였고, 무의식의 강력한 회귀 역동으로 억압이 힘들어지자 더 원초적 방어기제인 ‘대체·투사’가 작동한 것이다. 그리고 그 병리적 방어작용이 정신에 고착되었기 때문에 공포증 증상이 생긴 것이다. 가게공포증의 발생은 당시의 엠마에겐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일종의 무의식적 타협책이다. 그 이유는 엠마가 자신의 불미스런 과거를 의식이 기억하여 유지하다간, 내면의 초자아나 외부 대상에게 발각되어 처벌받을 위험이 있다고 심각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모욕받고 버림받아 처참하게 끝날지도 모른다는 주관적 환상과 수치감, 공포에 시달린다. 또한, 그녀의 자아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고 성숙하게 재해석하여 승화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그녀의 자아는 그 어떤 ‘현실적 대응’을 모색하지 못한 채 원초적 방어기제에 과도하게 의존하며, ‘증상’이라는 제3의 통로를 만들어 무의식적 불안과 환상을 상징적으로 분출하게 된 것이다.
‘억압’은 불쾌한 기억을 즉각 망각하게 하는 유용성을 지닌다. 그리고 ‘대체’는 강한 수치감을 주는 사건(성추행)을 덜 창피한 무엇(가게공포)으로 ‘전치’함으로써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완화한다. ‘투사’는 내부적이고 주관적인 원인(취약한 자아, 강한 성 흥분, 불안)을 외부 대상(가게)의 탓으로 돌려, 자책감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런 대체와 투사로 인해 특정 대상(가게)은 본래의 특성(상품 구입)과 무관하게 온갖 부정적 내용(성추행하는 곳, 날 파멸시키는 곳)을 담지한 곳으로 ‘환상화’된다. 따라서 공포증자는 자신의 의식적 판단(가게는 사소하고 안전한 곳)과 무관하게 무의식이 투사된 대상(가게)을 반복해서 ‘회피’하게 된다. 이런 무의식적 동기와 과정을 통해 발생한 가게공포증은 그녀의 삶에 심각한 불편을 유발한다. 따라서 신경증적 타협책은 결과적으로 합리적 선택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타협책’으로 형성된 증상이 개체의 삶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합리성을 지니려면, 증상으로 인한 자아 발달 정지와 심리적 고통이 ‘잠정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일단 증상이 발생하면 무의식의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 한 정신·신체적 고통은 평생 반복해서 지속된다. 따라서 증상을 통한 타협적 방어는 결코 자아의 효율적 자기보존 전략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앞에 서술한 공포증의 원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쪾‘근본 원인’은 8세 때에 사탕가게에서 받은 ‘강한 성적 자극’에 있다.
쪾‘촉발 원인’은 12세 때 옷가게에서 느낀 ‘특이한 자극(성 흥분)’에 있다.

신경증은 일반적으로 유년기에 겪은 ‘근본 원인’에 사춘기 이후의 ‘촉발 원인’이 결합할 경우 발생한다.6)
그런데 이것으로 신경증의 원인이 충분히 설명되는가? 프로이트는 이 두 원인에다 ‘사춘기 도래의 지연’이라는 ‘발달론’적 요소를 덧붙인다(Freud, 1895: 356). 이것은 유년기와 사춘기의 성 욕동 유형과 자아 발달 상태가 매우 다르다는 걸 뜻한다. 이런 차이성이 부각되는 이유는 양 시기 사이에 ‘잠복기’라는 심리-성적(psycho-sexual)으로 평온한 시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잠복기’는 유년기의 정신 관점과 사춘기의 정신 관점 간의 ‘차이성’이 증가하는 기간으로서, 신경증 발생에 고유한 역할을 담당한다. 왜냐하면 이 ‘차이성’은 신경증 발생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사후작용’이 기능하기 위한 주요 조건이기 때문이다. 가령, 자아와 성기관이 미성숙했던 8세 때 받은 성기 자극은 당시의 엠마에게 ‘성적인 의미’로 해석되지 않았다. 그런데 잠복기(8~12세) 동안 교육을 통해 습득한 성 지식과 성 욕동의 발달로 인해 사춘기에 접어든 엠마는 옷가게에서 예기치 못한 ‘성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현재(사춘기)의 관점과 정서’로 과거 사건에 ‘성적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즉,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관점’에 의해 사후(事後) 기억되는 과정에서 일종의 새로운 ‘사후해석’이 작동한 것이다. 이 사후작용으로 인해 과거 사건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성적 의미’와 ‘성 흥분’, ‘성추행’을 당했다는 ‘심리적 불쾌·불안’이 뜻밖에 발생한다. 그렇다면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해 ‘사후해석된 기억’이 과거 경험의 의미와 정서를 변질하여 ‘정신적 상처’를 일으킨 것이다(Freud, I.: 356). 이런 ‘심리적 사실(psychological fact)’의 변질은 성 욕동과 자아 상태가 나이에 따라 변화하였고, 교육에 의해 성에 대한 특정 가치 관점이 정신에 각인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Freud, 1896: 164).
여기서 우리는 과거에 외부에서 받은 자극을 ‘보통의 지각’에서 충격적 상처로 변질시키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사후작용’의 정체를 주시해 보자. 엠마의 신경증을 발생시킨 사후적(Nachtr glich) 작용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는 ‘지연작용(deferred action)’이고 다른 하나는 ‘소급작용(retroactive action)’이다.
지연작용
‘지연작용’이란 강한 외부 자극이 곧바로 병을 일으키지 않고 무의식에 있다가 ‘나중에’ 우연히 어떤 유사 자극과 결합할 경우 증폭 효과에 의해 비로소 병인으로 작동하여 증상을 일으키는 것을 지칭한다. 이 ‘지연작용’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발생하기 때문에 갑자기 이 증상이 생긴 당사자는 당황하며, 도대체 왜 이런 증상이 발생하는지 그 원인과 과정을 알지 못한 채 각가지 억측과 상념에 잠기게 된다. 지연작용은 이처럼 먼 과거의 어떤 사건이 오랜 기간 잠복된 상태로 있다가 불현듯 그 병리적 힘을 드러내기 때문에 병인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정신에 예기치 못한 상처와 불안이 발생하므로 위급상황에 대처하는 병리적 방어기제를 작동하게 한다. 그로 인해 자아의 인식 기능은 심각하게 훼손된다. 일단 신경증자가 되면 병리적 방어작용으로 인해 증상의 원인을 스스로의 힘으로는 좀처럼 ‘성찰’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의 삶은 기억도 나지 않는 먼 과거의 어떤 생각과 정서에 반복해서 휘둘리게 된다(프로이트, 1939: 102-104).7) 엠마의 경우 8세 때의 사탕가게 사건은 그 당시에는 ‘상처’가 아니었다. 그러나 무의식에 보존된 ‘강한 자극’의 ‘흔적’이 나중에 12세 때 사소하지만 특이한 자극과 결합되는 순간, 지연작용에 의해 ‘과잉자극(상처)’으로 변형된 것이다. 프로이트는 당대의 금욕적 가치관에 의해 억압된 자극 중에서 특히 유년기의 성적 자극 ‘흔적’이 잠복기라는 ‘지연 기간’을 거쳐, 성욕과 성 지식에 눈뜨는 사춘기에 받는 사소한 자극과 결합하여 ‘지연작용’을 일으키고, 그로 인해 ‘상처’가 발생한다고 해석한다.
지연작용은 신경증이 유년기에 받은 강한 성적 외부 자극에 기인한다는 ‘성적 외상설’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다. 즉, 신경증은 유년기에 외부 대상에서 받은 성적 ‘과잉’자극에 기인한다. 프로이트는 ‘외상설’을 일명 ‘유혹설’이라 부르기도 한다. ‘유혹’이란 누군가가 성적 과잉흥분을 유발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성 흥분이 내부에 과도하게 축적되고 외부로 분출되지 못하면, 그 개인은 어찌 되는가? 이 경우 정신에 축적된 성적 긴장은, 승화되지 않는 한 ‘성적 해독(害毒, sexual noxa)’이 되어 신경증의 원인이 된다.8) 프로이트는 초기(1892~1897)엔 유년기에 받은 유혹이 신경증 발생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유혹은 아이에게 ‘성적 해독’을 발생시켜 필연적으로 병리적 방어기제를 작동하고, 그로 인해 나중(사춘기 이후)에 증상이 발생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치료 과정에서 내담자의 입을 통해 직접 듣거나 여러 상황을 종합해 구성한 유년기의 외상적 유혹 사례는 ‘원초적 장면(자신의 출생 비밀과 연상된 부모의 성교 장면)’의 목격, 가까운 인물에 의한 강간, 성적 학대, 성적 공격, 유혹받음 등이다. 이처럼 유년기에 받은 성적 과잉 자극이 해독을 발생하고, 그 독이 병리적 방어기제 작동을 유발하여 잠재된 병리상태를 유지한다. 그러고는 ‘잠복기라는 지연 기간’을 거쳐 사춘기 이후의 촉발적 사건과 결합하는 순간 지연작용에 의해 외상과 증상이 발생한다. 이것이 외상설(유혹설)이다. 외상설에서는 정신에 각인된 과거 사건의 흔적은 이후의 정신상태에 평생 영향을 미친다. 즉, 인간은 의지와 의식으로는 좀처럼 과거의 흔적을 지울 수 없는, 과거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무의식에 억압된 흔적은 의식에 의해 기억되어 재해석되지 않는 한 계속 강박적 영향을 미친다(프로이트, 1907: 87).
무의식의 외상 흔적이 미치는 부정적 영향력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신분석가와 ‘정신분석’ 작업이 필요하다.9) 이미 무의식의 상처, 불안, 병리적 방어기제에 고착되어 있는 개인은 아무리 지식과 합리적 사유 능력이 높을지라도 의지와 의식으로 자신의 무의식을 엄밀히 인식하고 변형할 수 없다. 또한, 의식은 정신현상을 일으키는 정신작용에 대해선 객관적 인식을 결코 가질 수 없다. 정신작용은 ‘인식의 조건’이므로 ‘직접적 인식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로 인해 정신작용 대부분은 무의식적이다. 또한, 인간의 정신작용은 완벽한 기능체가 아니다. 정신작용은 외부 상황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방어적으로 위축되기도 하고, 능동적·창조적 기능을 발휘하기도 한다. 즉, 개인의 정신작용은 의식의 의지에 의해 합리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 욕동과 외부 세계와 각각 타협하는 관계에서 그 기능이 결정된다. 따라서 프로이트는 정신작용에 병리적 영향을 미치는 외부 환경과 내부 요인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자아가 미성숙하고 약한 유년기에 외부에서 받는 과도한 성적 자극은 정신에 큰 부담을 준다. 그에 따라 과도한 방어활동이 작동하여 자아 발달을 저해한다. 유년기의 성적 외상(유혹)이 자아 기능의 부분적 마비상태인 신경증을 유발하는 것이다.10) 프로이트는 유년기의 외상 흔적이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위치를 이동하면 그 영향력이 해소되는 현상들을 거듭 관찰했다. 그래서 신경증을 유발하는 무의식의 흔적을 추적해 기억하고, 의식에 통합하는 정신분석 작업을 시도한다. 그런데 그는 이 과정에서 새로운 정신활동에 주목한다. 이것은 또 다른 종류의 사후작용인 ‘소급작용’이다. 그는 이 독특한 작용이 신경증을 유발하며, 역으로 신경증 치료의 열쇠임을 자각한다. 그리고 ‘소급작용’의 역할에 주목함으로써 ‘외상설’을 포기하고 ‘환상설’을 구성한다. 그렇다면 그가 정신분석 초기부터 주목한 ‘소급적 사후작용’이란 무엇인가?

소급작용: 사후해석

경험, 인상, 기억-흔적들은 새로운 경험과 조화되기 위해, 또는 새로운 발달 단계의 획득과 조화되기 위해 나중에 ‘개정’할 수 있다. 이 사후작용 속에서 과거 사건들은 ‘새로운 의미’뿐만 아니라 ‘새로운 심리적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다(Laplanche, 1973: 111).
‘소급작용’이란 현재의 정신 관점에 의해 과거의 경험을 (재)해석하여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심리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프로이트에 입문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정신분석이 마치 개인의 과거가 현재를 좌우하는 단일한 결정론인 양 오해한다. 그런데 개인 삶의 모든 문제가 유년기에 받은 상처에 기인한다고 설명하는 것이 정신분석의 전부는 아니다. 개체는 과거의 경험을 소급하여 ‘현재의 관점’으로 재해석하기도 한다. 바로 이 재해석이 과거 사건에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여 과거와 ‘현재 정신’상태를 모두 변하게 한다. 문제는 어떤 종류의 사후해석과 의미 부여를 하느냐다. 병리적 소급작용을 하면 상처와 증상이 발생하며, 역으로 성숙하고 긍정적인 소급작용을 하면 상처와 증상이 해소된다. 정신분석이 신경증자의 무의식에 억압된 과거 상처를 그토록 집요하게 기억해 내려 하는 까닭은 바로 억압되어 망각된 과거는 의식에 ‘기억’되어야만 비로소 소급적 사후해석에 의한 개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엠마의 경우를 통해 그녀의 신경증이 어떻게 이 소급작용에 의해 발생하였는가를 살펴보자.

옷가게 점원이 엠마의 옷을 쳐다보며 웃는 것을 본 순간, 이미 사춘기에 접어든 그녀는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야릇한 성 감정을 느꼈다. 그 성 감정이 느껴지는 순간 무의식에 묻혀 있던 과거 사탕가게 장면이 갑자기 떠오른다. 그 순간 소급작용에 의해 그녀는 과거에 겪었던 일이 일종의 ‘성추행’이었다고 해석한다. 그 순간 ‘억압’이 작동하여 성 흥분은 강한 불쾌감으로 변질되고, 자신을 쳐다보며 웃고 있는 점원이 과거의 사탕가게 주인처럼 자신을 ‘성추행’할지도 모른다는 신경증적 환상과 불안이 돌출한다. 그 순간 놀라서 가게를 뛰쳐나간다.
불쾌하고 불안한 기억은 즉각 억압된다. 그로 인해 엠마는 자신이 왜 옷가게를 뛰쳐나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녀에게 왜 가게공포증이 생기게 되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그녀는 반복해서 가게공포에 시달릴 뿐이다. 여기서 점원의 미소를 보고서 기분 좋은 성 감정이 드는 순간과 갑자기 어떤 불쾌와 불안감이 들어 가게를 뛰쳐나가는 순간 ‘사이’를 주목해 보자. 그 짧은 찰나에 엠마의 정신에는 독특한 병리적 ‘소급작용’이 작동한다. 엠마는 4년 전 사탕가게 사건이 갑자기 떠오르는 순간, 그것을 사춘기의 ‘현재 관점으로 소급하여 해석’한 것이다. 그로 인해 성적 의미가 없었던 과거 사건에 ‘성적 의미’가 부여되자 갑자기 ‘성 흥분’이 방출되었다. 그리고 잠복기 동안에 습득된 금욕주의적 도덕관으로 인해 과거에는 없었던 ‘추행당했다’는 생각이 ‘새로 발생’하여 강한 심리적 불쾌, 불안, 수치감이 생성되었다. 즉, 과거 사건이 ‘소급작용’에 의해 (재)해석되는 순간 그 사건은 ‘상처(trauma)’로 변질된 것이다. 조금 ‘특이한 사건’이 ‘섬뜩하고 수치스런 상처’로 변질되는 순간, 정신은 강한 불쾌감 때문에 그것을 의식 속에 계속 담고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억압이 작동하여 불쾌하고 불안한 표상과 정서를 무의식으로 밀어낸다. 그 결과 억압되어 무의식에 보존된 ‘불안한 생각과 환상’으로 인해 가게에 갈 때마다 원인 모를 공포에 시달리는 증상이 발생한 것이다.
과거의 흔적은 모두 소급적 (재)해석의 대상이 된다. 이런 사후해석은 성 욕동의 ‘발달’과 인지 능력의 변화 그리고 문화 환경의 변화에 의해 발생한다. 이 소급작용은 개체가 새로운 차원의 의미에 접할 수 있게 하며, 무의식에 묻혀 온 경험을 재활성화한다. 이 재활성화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병리적 정신상태에서 이루어질 경우 그 개인은 ‘부정적 의미해석’으로 인한 뜻밖의 상처와 증상에 휘둘린다. 그러나 성숙한 정신상태에서 소급작용이 일어나면 과거 경험에 긍정적이고 통합된 의미가 부여되어 삶의 새로운 희열과 성장이 일어난다.
프로이트는 정신에 ‘소급작용’이 발생하기 위한 조건으로 무의식에 억압되는 유년기 과잉자극, 잠복기, 성 욕동 발달상태의 변화, 촉발 사건, 문화적 가치 교육에 의한 (초)자아 관점의 변화 등에 주목한다.

3. 새로운 병인론: 환상설

프로이트는 신경증자들이 유년기에 성적 유혹을 받았다고 ‘한결같이’ 생각한다는 사실에 대해 어떤 의혹을 갖게 된다. 이들의 생각은 개인 경험의 우연성과 개연성을 넘어 과도한 보편성을 지닌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신경증자의 부모나 친척은 모두 성도착자이어야 한다. 이것이 사실이란 말인가? 프로이트는 자신의 기차공포증을 떠올리며, 자기 부모가 어릴 적에 자신을 유혹했는지 ‘꿈 해석’을 통해 ‘자기분석’을 한다.11)
그는 4세경에 엄마의 벗은 몸을 보고 혼자 흥분했던 장면을 기억해 냈다. 그러나 엄마가 어떤 능동적 유혹을 한 것은 아니었다. 부모가 능동적 유혹자였다면 남동생과 여동생들도 유혹을 받았을 것이고, 신경증자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들에겐 신경증이 없었다.12) 그렇다면 신경증이 외부 대상이 아이에게 능동적으로 가한 강한 성 자극에 기인한다는 이론은 엄밀한 보편성을 지닐 수 없다. 아버지의 사망과 더불어 밀려든 깊은 충격에서 벗어나고자 수년간 자신의 무의식을 분석한 결과 프로이트는 신경증자가 유년기에 ‘외부에서 받았다’는 유혹은 사실이 아니라 내부 요인에 기인한 환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린다. 즉, 성인신경증자가 유년기에 주변 인물의 유혹을 받았다고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성 환상이 유년기 말엽에 보편적으로 억압된 것에 기인한다. 그 억압되어 망각된 성 환상은 무의식에 보존되어 있다가 정신분석 과정에서 우연히 떠오르는 순간, 마치 현재의 장면인 양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신경증자는 성 환상을 마치 사실인 양 착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년기 말에 성 환상에 대한 억압이 발생하였다는 것은 유아들이 이미 성 욕동과 성 감정을 지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겪었다고 믿는 성적 유혹의 정체는 무엇인가? 프로이트는 정신분석 과정에서 회상된 성적 장면은 사실에 대한 기억이기보다 유년기에 지녔던 환상 내지 회고적 은폐 기억(screen memory)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한다(프로이트, 1901: 70, 75).13)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그런 성 환상을 보편적으로 갖게 되는 것인가? 프로이트는 이를 욕동이론으로 설명한다. 즉,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독특한 성 욕동을 지니며, 그 성 욕동으로부터 성 환상이 발생한다. 이 성 환상은 아이가 부모를 동일시하여 초자아가 생긴 이후부터 억압되어 무의식에 묻혀 있다가, 정신분석 과정에서 분출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14) 이런 추론에 따라 그는 성 욕동 발달론을 구성한다.

4. 성 욕동 발달장애: 유아성욕 고착

프로이트는 유아에게 선천적 성 욕동이 있다는 확신과 더불어 지금까지 주장해 온 외상설을 포기하고 환상설을 정립한다. 여기서 환상이란 무의식에 억압된 유아성욕에서 발생한 유아적 성 환상을 지칭한다. 이 성 환상에는 많은 ‘양’의 정서 에너지가 부착되어 있다. 그로 인해 사춘기 이후에 이 환상을 자극하는 어떤 대상이나 자극을 접할 경우, 강한 정서적인 역동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 환상은 무의식이기에 당사자는 자신이 왜 어떤 대상에 대해 강한 욕망과 흥분을 느끼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다. 즉, 유아 성 환상은 성인이 느끼는 욕망의 무의식적 ‘원인인 동시에 모델’ 기능을 한다.15) 그런데 성인이 되어 유아성욕과 유아 성 환상에 과도하게 고착할 경우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과 검증력이 떨어져 사회생활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 결과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타협책으로 신경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성인의 성 욕동이 유아성욕에 고착되어 ‘성기 욕동’으로 발달하지 못할 경우 신경증의 원인이 된다.
이 ‘발달론’의 관점에 의거해 엠마의 사례를 다시 해석해 보자.

첫째, 엠마는 이미 유년기에 성 욕동과 성 환상을 지니고 있었다. 8세 시기는 성 욕동이 잠잠한 잠복기 초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녀에게 8세 적 사탕가게 사건은 강한 성 자극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억압된 오이디푸스 성 환상으로 인해) 중년의 가게주인의 행동에서 엠마는 모종의 흥분을 느꼈을 수 있다.16) 그래서 10일 후 다시 사탕가게에 가게 된 것일 수 있다. 이 경우 8세 때의 사건이 큰 고통을 주지 않았다면, 그것을 신경증의 근본 소인으로 간주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무릇 ‘쾌감’이란 정신이 ‘감당할 만한 흥분’을 뜻하기에 ‘외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8세에서 12세 사이의 오랜 잠복기 동안 엠마에겐 사회적 도덕 교육이 주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시대의 금욕주의 문화를 고려해 볼 때, 성에 대한 모든 생각과 정서는 금지·부정되고 억압되었을 것이다. 이 경우 억압된 무의식이 불현듯 의식에 떠오르면 의식을 구성하는 중심관념과 심한 마찰을 일으켜 정신의 불균형과 불안, 죄책감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억압이 일어나는 원인은 성 욕동 자체에 있기보다 과거의 성 자극·성 환상과 현재의 도덕적 (초)자아 관점 사이의 불일치·대립에 있기 때문이다.17)
셋째, 12세 엠마는 옷가게에서 점원을 보며 뜻밖의 성 감정을 느꼈고, 그것이 8세 때의 흥분과 우연히 ‘결합’된다. 그런데 사춘기의 민감하고 왕성한 성 욕동으로 인해 성에 대해 무덤덤했던 잠복기의 흥분은 (무의식의 성 환상과도 연결되어) 더욱 강하게 증폭될 수 있다(Freud, 1896: 167).18) 그리고 그 ‘강한 흥분’에 대항하는 ‘억압’작용에 의해 당시의 지각 자체와 다른 불쾌감과 섬뜩한 성 환상(성추행)이 발생한다(프로이트, 1901: 70, 75).19) 예기치 못한 강한 흥분과 표상이 내부에서 솟구치면, 평상적 방어가 힘들어진다. 그로 인해 더 강력한 방어기제(대체, 투사)가 추가로 작동하며, 그 결과로 공포 증상이 발생한다.
성 욕동 발달론은 ‘사후작용’론과 결합하여 신경증의 발생 원인에 대한 확장된 이해를 제공한다. 이 이론들에 의거해 프로이트는 그의 숙원이던 신경증 원인에 대한 ‘정신분석’만의 고유 설명 모델이 확립되었다고 확신한다.20) 이 해석에서 우리는 신경증의 원인은 성적 요인에 있다고 프로이트가 강조한 이유를 곰곰이 음미해야 한다. 이것은 다른 본능과 달리 인간의 성 욕동은 유아기부터 성기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큰 변화를 겪기 때문이다(Freud, 1894: 236).21) 이 변화가 과거 사건에 대한 의미 해석의 ‘차이’를 확대하며, 그로부터 강력한 사후작용과 ‘상처’, 병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하여 증상을 일으킨다.

5. 외상설과 환상설 사이에서

신경증의 원인은 실제로 겪은 외상에 있는가, 아니면 내부의 성 욕동 발달 좌절과 사후작용에 기인한 환상에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한 프로이트의 입장은 말년에 이르기까지 단일하지 않다. 정신분석을 ‘무의식’을 규명하는 첨단 학문으로 정립하기 위한 운동 과정에서 그는 여러 학자들에게서 정신분석의 비과학성과 비도덕성을 비난하는 공격에 직면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신경증의 원인이 무엇인가의 문제는 그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만약, 정신분석이 과학처럼 사실을 ‘객관적’으로 규명하는 학문이라면, 신경증을 일으키는 원인에 대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신경증의 원인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가 제시될 수 있는가? 프로이트는 의지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정신·신체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이 무의식에 있으며, 무의식은 객관적이고 직접적으로 관찰되지 않음을 성찰한다. 그리고 그 무의식의 핵심에는 유년기의 ‘성적 상처’가 있을 것으로 해석한다. 문제는 그 ‘상처’가 외부 대상에게서 받은 외상(外傷)인지, 내부의 성 욕동과 사후작용이 만들어 낸 주관적 환상인지에 대해 엄밀한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아이와 성인은 성 욕동 발달 양태와 정신구조가 다르므로 유아의 비언어적이고 비규범적인 지각들을 성인의 언어적 사고로 정확히 재현하는 기억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억된 내용이 정확한 사실인지에 대한 객관적 확인이 어렵다. 이 때문에 정신분석은 검증할 수 없는 자료를 통해 자기 이론의 정당성을 보증받으려는 비학문적 가설이라고 비난받는다. 이런 비난에 답하기 위해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에서의 구성』을 통해 다음의 입장을 밝힌다.

정신분석가의 과업은 “과거 사건이 정신에 남겨 놓은 ‘흔적’ 중에서 어떤 원인(억압)에 의해 ‘망각’된 부분을 판독, 또는 보다 정확히 말해 ‘구성’하는 것”이다(Freud, 1937: 258-259). 이런 (재)구성 작업은 수천 년간 묻혀 온 유적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의 작업과 유사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고고학자는 중요한 부분이 이미 상당히 소실되었거나 ‘파괴된 대상’을 짜 맞추어(수천·수만 년 전의) 원대상을 재구성한다. 이에 비해 정신분석가는 현재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무의식의 자료를 다룬다. 개인의 과거는 정신 속에 대부분 보존되어 있다. 심지어 강력한 방어기제에 차단되어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과거 경험도 꿈, 증상, 실수, 전이 등을 통해 그 정체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분석가는 내담자의 ‘전이’ 표현과 꿈을 통해 무의식의 과거 표상과 감정이 생생하게 ‘반복 재연’되는 자료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만약 고고학이 땅 속에 묻힌 인류 역사의 비밀을 밝히는 하나의 소중한 학문으로 인정받는다면 무의식에 묻혀 있는 정신의 자원과 비밀을 탐색하는 정신분석이 ‘학문’으로 인정되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Freud, 1937: 259-260).
정신분석적 ‘구성’이란 자유연상에서 나온 파편화된 자료를 하나로 통합하여, 무의식이 증상을 통해 의식에게 드러내고자 하는 ‘본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분석가는 내담자가 뱉은 말 중에서 사소한 전의식의 언어를 방어적으로 각색한 ‘무의식의 언어’와 분리·선별하여 이리저리 짜 맞추어 증상을 유발한 원인(외상, 환상, ‘부정적 사후해석 관점’)을 ‘구성’한다. 그리고 내담자가 망각한 외상과 성 환상 그리고 부정적 사후해석 관점이 지금까지 정신에 미친 무의식적 영향들을 ‘해석’한다. 분석가의 ‘구성’은 망각된(억압된) ‘사실’을 정확히 판단한 것일 수도, 분석가의 주관적 상상일 수도 있다. 이 구성이 신경증자의 무의식적 병인을 온전히 반영하는가 아닌가는, 분석가의 해석에 대해 내담자의 무의식이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의해 파악된다(Freud, 1937: 261-262). 만약, 분석가가 구성한 내용이 무의식의 병인(病因)을 제대로 지적한 것이라면, 내담자는 깊은 ‘정서적 인식’ 반응을 보인다. 반면에 부정확한 구성일 경우, 내담자의 무의식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신분석가가 ‘구성한 진실’의 본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실제 있었던 ‘외부 사실’을 반영하는가? 아니면 환자의 ‘주관적 환상’에 대해 분석가가 만들어 낸 ‘또 다른 환상’인가?
이 의문에 대해 프로이트는 ‘분석가의 구성’이란 일종의 ‘추측(conjecture)’이라고 말한다(Freud, 1937: 265). 그런데 그것은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내담자의 무의식을 역동시켜 자신의 망각된 진실을 상기하게끔 만드는 치유적인 추측이다. 그런데 내담자가 상기한 무의식적 진실의 정체는 주관적 환상인가, 아니면 외부적 사실인가? 이에 대한 프로이트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내담자가 상기한 것은 분석가가 구성한 바로 그 내용이 아니라, 그 내용과 연관된 어떤 무엇일 수 있다. 분석가의 정확한 구성활동에 자극되어 억압되었던 무의식이 의식으로 회귀되지만, 여전히 내적 저항이 발생하기 때문에 회귀된 무의식은 덜 중요한 대상으로 ‘대체(전치)’된다. 이 대체된 무엇은 ‘일종의 환상’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환상에는 유아기에 경험하고 잊혀졌다가 회귀한 ‘사실’이 왜곡된 방식으로 담겨 있다. 분석가는 이런 ‘왜곡된 사실’에 부착된 신경증자의 리비도를, 그것의 환상성을 자각시킴으로써 ‘철수(de-cathexis)’시켜야 한다. 분석가의 ‘구성’은 억압되어 상실된 경험 조각들을 (의식의 자료로) 회복시켜 현실 검증력을 높이는 효력을 지닌다.
신경증의 원인에는 과거에 경험하였다가 억압되어 망각한 ‘사실적’ 외상의 측면과 내부의 욕동, 병리적 방어기제, 부정적 사후작용이 만들어 낸 환상의 측면이 함께 있다. 또한, 신경증자가 지닌 성적 환상(거세, 유혹, 원초적 장면 등)에는 개인이 직접 겪은 사실이 아니라 인류의 ‘원초적 환상’이 개인에게 유전된 요소도 있다(Freud, 1937: 268-269).22) 이 경우 그것에는 환상의 요소와 더불어 원시 인류가 겪은 사실의 요소가 섞여 있다. 그리고 정신분석 과정에서 분석가의 구성과 해석에 자극받아 내담자가 망각하였다가 우연히 기억해 낸 내용에도 환상의 요소와 사실의 요소가 함께 내포되어 있다. 왜냐하면 어떤 사실이 한 번 억압되어 망각되었다가 ‘(재)상기’될 때에는 결코 원형 그대로 회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환상적 사실성’은 인간 정신의 독특한 현실이다. 신경증자는 정신분석 과정에서 기억한 과거 내용을 자신이 겪은 사실인 양 믿는다. 그런데 이런 믿음의 이면에는 우리가 엠마의 경우에서 관찰한, ‘현재 관점’의 소급적 사후해석이 은폐되어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프로이트는 이 사후작용이 정신에 일으키는 심리적 효력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 사이에서 갈등한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 한편에는 자유연상과 ‘구성’활동을 통해 내담자의 무의식에 억압된 과거의 진실을 원형 그대로 발굴하여 ‘자기인식’을 돕는 것이 정신분석의 본질이라는 실증주의적 과학 정신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여전히 계몽주의적 과학 정신에 의거해 정신의 영역에서 환상과 진실의 차이성을 명료하게 구분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앞둔 말년까지 무의식의 ‘성찰’을 강조하면서, 내담자의 현재 정신 관점과 기대에 만족을 주는 치료기법(공감기법)을 경계한다(Freud, 1937). 신경증의 근본 치료를 위해서는 현존하는 증상의 원인뿐만 아니라 더 깊은 무의식에 숨겨진 근본 원인을 기억하여 그것의 환상성을 성찰·해체하도록 자극해야 한다. 그래서 내담자가 자신의 ‘무의식적 현재 환상’에 안주(고착)하지 못하게끔 현상태를 공감해 주길 원하는 내담자의 (자기애적) 욕구를 좌절시키는 ‘비공감적 치료술’의 필요성을 계속 강조한 것이다(Freud, 1937: 231-233).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소급작용’에 대한 고찰을 통해, 무의식적 과거에 대한 ‘사실 대 환상’의 엄밀한 구분이 원리적으로 힘든 것임을 자각한다. 따라서 말년의 프로이트는 외상설과 환상설 사이에서 단일한 입장 표명을 유보한 채, 상황에 따라 양쪽 관점을 모두 적절히 인정하는 태도를 취한다.
6. 사후작용의 현대철학적 의미: 시간, 인과, 의미의 비결정성
신경증의 발생 과정에서 사후작용의 역할에 대한 프로이트의 성찰은 철학자들에게 시간성, 인과성, 의미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 관점을 제공한다. 이를 음미하기 위해 다시 엠마로 돌아가 보자.
그녀의 가게공포증 원인은 무엇인가? 8세 때의 사탕가게 사건인가? 아니면 12세 때의 옷가게 경험인가? 아니면 8세와 12세 사이의 ‘잠복기’에 교육을 통해 정신에 각인된 당대의 금욕적 가치관인가? 8세 때의 사탕가게 사건만으로는 엠마에게 증상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8세 때의 사건을 떠올리게 한 촉발적 자극을 받지 않는다면, 엠마는 평생 정상적으로 살아갈 가능성을 지닌다. 따라서 8세의 사건이 결정적 병인이라고 규정하기는 곤란하다. 그렇다면 12세 때의 옷가게 경험인가? 그러나 이 경험만으론 신경증의 발생을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왜냐하면 당시 엠마는 불안이나 불쾌감이 아닌 흥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증상을 일으키는 ‘상처’는 잠복기 동안 금욕적 도덕 교육에 의해 생겨난 것인가? 금욕적 성교육만으로는 인간 일반에게 상처(trauma)가 발생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신경증을 유발하는 병인은 어디에 위치하는가? 어떤 사건이 병의 원인이고, 어떤 사건이 병의 결과인가?

서양 고대·중세 형이상학과 근대 이성은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와 미래로 단일하게 흘러간다고 해석해 왔다. 이 관점으로 보면 현재의 증상이 발생한 원인은 항상 과거에 위치한다. 그런데 소급작용에 의하면 정신세계에는 ‘고정된 과거 현재 미래’란 실재하지 않는다. 즉, 과거란 끊임없이 이동하는 ‘현재’에 의해, 그리고 미래의 ‘현재’ 시점에서 그 내용이 바뀔 수 있는 무엇이다. 그렇다면 과거는 단지 과거인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내포한다. 어떤 자극은 정신에 지각되었다가 새로운 자극에 밀려 의식에서 사라지는 ‘과거의 흔적’이 되는 동시에 시간 의식이 없는 무의식에선 항상 역동하고 있는 ‘현재’며, 사후작용에 의해 앞으로 그 의미와 가치가 변화될 가능성을 지닌 미래다. 따라서 ‘정신의 세계’에서는 ‘고정된 객관적 과거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무엇에 대해 명료한 ‘과거 사실’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어떤 특정한 현재 순간에만 ‘잠정적’으로 유효한 발언이다. 과거/현재/미래라는 발생학적 선후관계 구분은 결정적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시간 구분은 사실을 지칭하는 기호가 아니라 잠정적인 쓰임 기호일 뿐이다. 중요한 점은 어떤 경험이 개인 정신의 어떤 ‘구조(의식/무의식)’에 위치하느냐다. 그것이 ‘의식’이라는 특정 구조 속에 위치하게 되면, 직선적 시간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무의식’에 위치하게 될 경우 무의식에는 시간 의식이 부재하기 때문에 과거/현재/미래의 구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 생각들을 신경증의 원인론에 적용해 보자.
우리가 ‘지연작용’을 주시하면, 인간 정신은 늘 따라다니는 과거 흔적의 영향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처럼 해석된다. 반면에 ‘소급작용’을 주시하면 정신세계에서 과거 흔적은 (그것이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기억될 수 있는 한) 현재의 자아에 의해 그 의미와 가치가 개정될 수 있는 무엇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과거 경험이 아닌 ‘현재의 정신 관점’ 내지 자아 발달 상태다. 신경증자를 비롯해 자신의 무의식에 대한 ‘자기인식’을 회피하는 사람은 늘 과거 흔적에 반복해서 휘둘리는 삶을 살게 된다. 반면에 자신의 무의식에 대한 ‘자기분석’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현재의 발달된 자아 관점’에 의해 부정적인 과거 환상을 긍정적인 현재의 의미로 변형한다. 그리고 외부 세계의 새로운 자극을 수용하고 통합하는 과정을 통해 자아가 ‘발달’해 가기 때문에 발달된 사후해석 관점에 의해 주체적이고, 새로운 의미 세계를 살아가게 된다. 신경증자는 과거의 의미 세계에 ‘고착’되어 늘 ‘과거적 현재’를 살아간다. 이에 비해 성숙한 자는 새로운 자극에 대한 개방적 수용과 과거에 대한 새로운 사후해석으로 인해 과거에 고착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프로이트의 사후작용론은 또한 전통 형이상학과 근대 이성의 단일한 인과 관점을 전복한다. 두 종류의 서로 다른 사후작용이 활동하는 정신세계에서는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일의적인 규정이 어렵다. 가령, 과거의 흔적이 현재의 정신 관점을 결정하는 원인이기도 하고, 현재의 정신 관점에 의해 과거의 의미가 개정되기도 한다. 이런 상호 영향관계에 놓여 있는 ‘심리적 현실’에 대해 기존의 인과 범주에 의거한 일의적 설명은 타당성을 지니기 어렵다. 왜냐하면 기존의 인과 범주는 시·공간적 방향성과 필연적 관계성을 내포하는데, 쌍방향으로 사후작용하는 정신세계에 대해 시·공간적 방향 설정과 필연적 관계가 제시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심리적 사실’에 대한 이해에 적합한 새로운 ‘인과’관점의 개발이 요구된다.
프로이트의 사후작용론은 또한 포스트 모던 기호론의 선구적 모델이 된다. 즉, 어떤 경험(기호)의 의미와 가치는 일의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정신상태와 외부 상황에 따라 예측할 수 없게 변한다(Lacan, 1977: 48-49).23) 프로이트는 엠마에게 성에 대한 새로운 가치 교육을 통해 그녀 스스로 자신의 부정적 과거 환상(성추행)을 ‘보통의 사건’으로 사후해석하게 도와줌으로써 증상을 해소할 수 있었다. 이처럼 사탕가게와 옷가게 경험은 엠마에게 ‘상처’의 원인이 될 수도 있고, 인생에 대한 폭넓은 이해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동일한 사건일지라도 개인의 정신 관점과 외부 세계의 가치 시선에 따라 그것의 의미와 가치가 크게 달라진다. 따라서 정신세계에서는 병의 ‘객관적 원인’이 존재하지 않는다.24)
프로이트가 제시한 두 종류의 사후작용론에는 이처럼 근대사상을 전복하고 현대사상을 개시하는 혁명적 인간학과 인식론, 의미론이 담겨 있다. 그에게 ‘정신분석’이란 병리적(부정적)으로 고착된 사후해석을 성숙한(긍정적) 사후해석으로 변화시켜, 삶의 의미를 다중적으로 음미하게 돕는 활동이다. 이런 정신분석 이론과 관점, 기법을 현대인은 자신의 정신 발달을 위해 어떻게 수용하고 활용해야 하는가?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적 ‘구성’은 정신분석의 최종 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예비 작업일 뿐임을 강조한다(Freud, 1937: 260). 이 말은 일반 학문은 탐구 대상에 대한 구성(해석)이 탐구활동의 최종 상태와 최종 목표지만, 정신분석은 ‘구성’을 통해 고통의 원인을 인식하고, ‘훈습’ 과정을 통해 그 깨달음을 자기 것으로 숙성하는 ‘실천적 학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이론과 현실 사이의 끊임없는 교류활동이 없는, 이론 중심적이고 사유 중심적인 탐구활동은 의식의 자기애적 환상에 빠질 위험이 있음을 늘 경계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사유가 현실과 일치하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활동을 경시하는 인문학은 일종의 자기애적 사변활동이라고 비판하는 프로이트에 대해, 현대의 인문학자는 어떤 응수를 할 수 있는가? 현대의 인문학자는 자기 자신과 인류의 정신적 고통에 대해 얼마만큼의 현실적 치유 능력을 지니는가? 자본주의가 생활의 의미와 가치를 규정하는 환경 속에서 스트레스와 상처를 호소하는 내담자나 대중에게 정신분석가나 인문학자는 프로이트를 넘어설 어떤 정신적 힘과 메시지를 전해 줄 수 있는가?25)



(미주)
1) 프로이트는 자신의 ‘학문적 사유 방향’에 끊임없이 압력을 가했던 당대의 독단적 종교와 금욕적 도덕 관점의 문제를 드러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에게 사변철학은 현실세계의 병리적 실상을 외면한 채 ‘관념’에 과도한 가치를 부여하고서 거기에 자기애적으로 도취하는 강박증적 활동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과학적 사유를 외면한 채 특정한 신념을 강요하는 종교는, 그 발생 원인과 발생 과정이 신경증 증상의 발생 과정과 너무도 유사함을 드러낸다. 형이상학과 종교는 ‘거대한 관념’을 제공함으로써 ‘자기애적 상처’를 ‘보상’해 주지만, 정신을 ‘발달’시키진 못한다. 프로이트, 『토템과 금기』의 「애니미즘, 주술, 관념의 만능」, 『종교의 기원』의 「모세와 유일신교」(1940/1997), pp. 112-113, 136-141 참조.
2) 신경증의 원인에는 사건이 발생한 ‘시기’가 결정적이다. ……만약, 유년기와 사춘기에 어떤 성적 ‘장면’도 없었다면 방어는 병리적 결과를 지닐 수 없다.
3) 트라우마(trauma)란 신경증 증상이 발생하는 직접적 원인이 되는 충격적 상처를 의미하며, 일차적으로 급작스럽고 강력한 ‘외부’자극에 기인한다. 그리고 이차적으로 그 외부 충격에 의해 내부의 방어막이 뚫려 내적 상처가 생긴 상태를 지칭한다. 흔히 의학에서는 교통사고 환자를 트라우마 환자로 칭한다. 왜냐하면 강한 외부 충격을 받아 신체 내부의 균형이 깨진 상태며, 그 후유증이 오래 가기 때문이다. 트라우마가 ‘외상(外傷)’으로 번역된 이유는 그것이 ‘내적 환상’에 기인하기보다 외부의 자극에 기인한 상처라고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분석에서는 내적 환상과 내부 작용(‘소급적 사후 해석’)에 의한 트라우마 발생이 빈번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 트라우마는 외적 자극과 내적 자극 모두에 기인한 상처의 의미를 지니므로 맥락에 따라 ‘외상’과 ‘상처’라는 언어를 병행해 사용할 것이다.
4) 프로이트는 신경증을 현실신경증과 정신신경증으로 구분한다. 현실신경증은 외상이나 갈등으로 인해 발생한 병이 아니라 단지 성 욕동 분출의 부적절함으로 인한 자아 기능의 마비 상태를 지칭한다. 따라서 무의식에 대한 정신분석이 불필요하며, 현실 경험을 통해 성 욕동을 적절히 분출하게 해 주면 해소될 수 있다. 현실신경증은 ‘불충분한’ 성 욕동 분출로 인한 불안신경증과 ‘불만족스런’ 성 욕동 분출 경험에 기인한 신경쇠약증으로 구분된다(Freud, letter, SE, Vol. I. pp. 188. 190-192). 정신신경증은 ‘전이신경증(히스테리, 강박증, 공포증)’과 ‘자기애적 신경증(편집증, 분열증)’으로 구분된다. 프로이트는 성 욕동을 외부 대상에게 ‘전이’할 수 있는 ‘전이신경증’만이 정신분석 관계 맺음과 치료가 가능하다고 본다. 반면에 성 욕동이 외부 세계에서 철수하여 자신의 자아에 부착된 자기애적 신경증은 분석가와 내담자 사이의 정신분석 관계가 맺어지지 않기 때문에 정신분석 치료가 불가능하다.
5) 프로이트는 주관(환상)적인 잘못된 연상(연결)으로 인해 잘못된 결론인 ‘상처’와 히스테리 증상이 발생한다고 해석한다. 이런 ‘잘못된 연결’은 특이하게도 주로 ‘성적 영역’에서만 발생한다. 그 이유는 성 감정과 성에 대한 해석 관점이 유년기와 사춘기 이후에 매우 달라지기 때문이다.
6) 엠마의 경우를 ‘구조론’의 관점으로 표현하면, 증상은 ‘무의식’의 흥분 자극과 ‘(전)의식’의 자극이 ‘결합’할 경우 무의식이 의식으로 ‘회귀’하여 ‘의식의 구조’를 일부 점령·마비시킴으로 인해 발생한다. 또한 이를 ‘경제론’의 관점으로 표현하면, 증상은 무의식에 축적된 많은 ‘양’의 흥분이 전의식의 작은 ‘양’의 흥분과 ‘결합’하여 생긴 뜻밖의 ‘과도한 흥분’을 비경제적으로 처리한 결과 발생한다. 프로이트는 항상 ‘구조론’과 ‘경제론’을 혼합하여 증상의 원인을 설명한다. 구조론은 주로 무의식과 의식 구조의 차이성과 상호관계, 어떤 경험이 정신의 어떤 구조(의식/무의식)에 위치하느냐에 따른 가치 변화 등에 주목한다. 그리고 경제론은 어떤 사건이나 대상에 욕동 에너지가 얼마만큼 ‘집중, 반집중, 과도집중, 철수’되느냐에 따른 결과와 욕동 ‘양’의 다양한 ‘변형적 이동’활동(승화/증상/꿈)을 탐구한다.
7) 자료를 찾을 수조차 없는 먼 옛날의 ‘큰 사건’이 오랜 잠복기를 거쳐 나중에 지연작용을 일으켜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 예로 프로이트는 신화·종교의 발생구조를 든다. 예를 들어, ‘모세 살해’와 유대교의 발흥, 예수 살해와 기독교의 발흥은 태초의 ‘원아버지 살해 사건’의 흔적이 토템 숭배와 터부 의례가 발생한 후 문명의 변화와 더불어 억압되었다가 오랜 잠복기를 거쳐 시대의 ‘어떤 긴급한 사건 및 필요’와 결합된 ‘지연작용’에 의해 강력히 ‘회귀’하여 생긴 결과물이다. 개인신경증 발생구조도 이와 유사하다.
8) 오이디푸스기(3~6세)의 남자 아이는 그동안 자신의 성욕 충족 대상이었던 엄마에게서 성적 접촉을 거절당하는 충격적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 경우 엄마는 남아에게 성적 자극을 유발하면서 성적 충족을 제공하지 않는 대상이 되어 ‘성적 해독’이 발생한다. 프로이트는 이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성인신경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한다. 이 상황은 아이의 ‘거세공포’로 인해 성 욕망을 단념하고 외부 세계의 요구를 내면화함으로써 조기 수습되고 망각된다.
9) 자기 혼자서는 내부의 무의식적 방어작용으로 인해 좀처럼 자신의 무의식에 접근하기 어렵다. 연륜 있는 정신분석가와의 ‘전이적 분석관계’ 속에서 ‘자유연상’이 이루어질 경우, 무의식은 더 크게 역동하고 더 심도 있게 자각된다.
10) 필자의 ‘정신분석’ 강의에 참여한 수강생들이 제출한 ‘자기분석’ 보고서에는 유년기에 우연히 받은 ‘과잉 성 자극’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가게 된 인생의 질곡 과정을 표현한 사례가 적지 않다. 그중 한 예는, 4세경에 20대 친척 여성에게서 강한 ‘유혹’을 여러 번 받은 이후부터 20대 후반의 청년이 되기까지 의지와 무관하게 성적 일탈을 반복해 왔음을 ‘자기분석’한다. 이처럼 아이의 미숙한 자아가 감당할 수 없어 ‘억압’한 유년기 과잉자극은 그 뿌리가 성찰되지 않는 한 평생 ‘반복’된다.
11) ‘무의식’에 대한 깊은 지식을 지녔고 ‘꿈 해석’을 할 수 있는 자는, 프로이트처럼 자신의 무의식을 ‘자기분석’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분석만으로는 내적 저항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12) 현대 정신분석가 코헛의 관점에서 보면, 유아기 엄마 경험에 결핍이 있는 아이일수록 성 만족을 통해서라도 대리 보상을 받고자 성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프로이트에게 기차공포증이 생긴 것은 유아기 모성 결핍으로 ‘자기’가 취약하였기 때문일 수 있다. 이에 비해 형제자매에게 신경증이 없었던 것은 유아기에 무난한 엄마와의 관계로 인해 ‘자기(애)’가 튼튼하였기 때문이라 해석할 수 있다. 프로이트가 엄마를 평생 곁에 두고 살았고, 여성 관계에 미숙하였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유아기 모성 결핍이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그가 신경증의 원인으로 유난히 ‘유혹’과 유아성욕에 주목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13) 무의식은 결코 그 자체를 의식에 드러내지 않는다. 따라서 무의식에 관한 대부분의 기억들은 ‘현재의 정신 상태’가 감당할 수 있는 양태로 변형되어 기억되는 ‘은폐 기억’이다. 정신의 병리성이 깊을수록 은폐성이 높다.
14) ‘초자아’는 프로이트가 성 욕동론과 성 환상설을 주장한 중년에는 충분히 명료화되지 못하다가 말년(1923)에야 ‘정신구조론’과 함께 명료화한 개념이다.
15) 프로이트는 인간의 ‘소망(욕망, wish)’이란, 유년기에 맛보았던 성 쾌감 지각을 ‘사춘기 이후에’ 재경험하려는 욕구라고 규정한다. 이 경우 다시 맛보고 싶은 유아성욕과 유아 성 환상은 ‘무의식이기에’,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끄는 어떤 대상을 강하게 욕망하면서도 정확히 대상의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냥 ‘뭔가’를 원하고 있음을 느낄 뿐이다〔프로이트, 소원성취에 대해서(1900), 꿈의 해석 7장〕.
16) 라캉이 욕망의 원인이며, 모델로 서술하는 ‘Object a(타대상)’는 프로이트가 제시한 유아 성 환상의 기능과 매우 유사하다. 그런데 라캉은 욕구/요구/욕망이라는 구조적 특성만을 주목할 뿐, 욕동경제론의 ‘양’적 이동성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점에서 프로이트를 왜곡한다.
16) 외상설을 주장할 당시 프로이트는 유아가 성 욕동과 성 욕망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이런 유아에게 과도한 성 자극을 주면 ‘성적 해독’과 불쾌감을 일으켜 훗날 신경증의 원인이 된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유아성욕을 인정하게 되면 해석이 달라진다.
17) 현재 정신의 중심에 위치하는 관념, 도덕 관점과 갈등을 일으키는 생각, 정서는 모두 억압의 대상이 된다. 이 말은 억압작용이 서로 대립되는 내부 관념과 관점 사이의 충돌과 투쟁에 기인됨을 의미한다. 이런 정신 내부의 싸움은 마치 외부 세계 권력 집단 사이의 싸움을 연상케 한다. 신경증의 원인을 환상설로 규정하면, 트라우마의 원인은 ‘환상과 환상 사이의 갈등’으로 서술할 수도 있다.
18) 만약, 성적 경험이 성적으로 미성숙한 시기에 발생하고, 그것에 대한 기억이 성적으로 성숙한 이후에 발생한다면, 그때 그 기억은 과거 경험 그 자체보다 훨씬 강한 효과를 갖게 된다.
19) “성인기의 강력한 힘은 어린 시절의 체험을 회상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쳐 왔다.”…“어린 시절 기억에서 우리는 진정한 기억 흔적이 아닌, 이후에 수정된 흔적을 갖게 된다. 결국 이런 수정된 기억이란, 그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심리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20) 세상 사람들은 유아성욕론과 성 욕동 발달론이 당대의 도덕 가치관에 대립되었기에 프로이트의 이론을 공개적으로 수용하지 않았다. 특히, 칼 융은 프로이트의 성 욕동론과 성적 외상설을 단지 신경증자들이 주관적으로 구성한 ‘회고적 환상’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프로이트는 비록 유년기와 무의식에 관계된 영역에서는 사실과 환상에 대한 엄밀한 구분이 불가능하지만, 유년기의 ‘유혹’과 ‘원초적 장면’ 등을 ‘순수한 환상’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는 ‘원초적 환상’이라는 개념을 새로 도입하여, 원시 인류가 겪었던 경험이 유전되어 개체의 정신 속에서 환상을 유발한다고 제시한다. 이 경우 그 환상은 적어도 인류가 겪은 ‘역사적 사실’을 내포하기 때문에 순수 환상은 아닌 것이다. 즉, 아무리 소급적 사후작용에 환상성이 개입한다 해도 상처와 정신질환은 최소한 순수환상에 의해 발생하진 않는다〔Laplanche & Pontalis, Primary Phantisies(New York: Norton & Company, 1973), pp. 331-332〕.
21) “하나의 불쾌한 사건이 발생하고, 그것이 나중에 재기억되면 새로운 불쾌를 방출한다. 이 경우 새로운 불쾌는 방어할 수 없으며, ‘기억’은 마치 그것이 현행하는 사건인 양 활동한다. 이런 경우는 오직 성적 사건일 경우에만 발생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적 사건이 방출하는 흥분의 크기가 시간(성적 발달)과 더불어 증가하기 때문이다.”
24) 프로이트가 제시하는 성 욕동 발달 과정은 다음과 같다.
24) 구강기→항문기→남근기→잠복기→성기기(사춘기부터 죽을 때까지). 여기서 구강기부터 남근기까지를 유아성욕기로 지칭하며, 성기기 이전 시기를 전(前)성기기로 지칭한다. 프로이트는 유아성욕기와 성기기 사이의 정신·성적(psycho-sexual) ‘차이’가 사후작용과 트라우마 발생의 원인임을 강조한다.
22) 프로이트는 ‘원초적 환상’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외상설과 환상설 사이의 중간 입장을 취한다. ‘원초적 환상’이란 인류가 원시시대부터 겪은 외상적 경험들이 이드에 유전되어 개인 정신에 발생하는 환상이다. 이것은 개인 정신에 때로 병리적 사후작용을 일으키는데, 개인이 직접 겪은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환상이다. 그러나 원시 인류가 실제로 겪었던 사건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환상은 아니다.
23) 기표(사건, 대상)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삶의)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고 보는 탈근대적 기호론은 특히 라캉과 데리다에 의해 활발히 주장되었다. 데리다는 의미 발생의 조건이 어떤 ‘안정된 실재’가 아니라 기호 사이의 차이와 지연활동에 있음을 제시한다. 그리고 라캉은 기표의 은유·환유적 활동에 의해 정신에 의미가 생성되고 억압되는 것임을 정신분석학적으로 드러낸다.
24) 정상/비정상에 대한 규정은 문화와 시대에 따라 큰 차이를 지닌다. 가령, 중국에서는 우울증이라는 것이 병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우울증이 ‘질병’으로 판단된 것은 단지, 미국의 정신의학이 어떤 증상을 설명하기 위해 생물의학적·인과적 존재론을 가정하였기 때문이다. 문화에 따른 정상/비정상의 기준이 다름을 조정하기 위해 전 세계의 정신분석가, 정신의학자, 심리학자 들이 모여 ‘질병 분류 기준’에 대한 새로운 ‘합의’를 일정 기간마다 시행하고 있다(DSM) 〔문화와 사고(교육과학사, 1997), 9장 참조〕.
25) 이 글에서 지면 관계상 프로이트가 제시한 신경증의 다중 원인을 모두 설명하지 못했다. 그 원인을 주목하는 프로이트의 시각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쪾초기 : 외상-성적 외상-유년기 성적 외상, 사후작용, 불완전한 방어작용, 갈등과 비경제적 타협 형성.
쪾중기 : 성 환상, 성 욕동 발달장애(좌절, 고착)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쪾후기 : 자아 발달장애, 경직된 초자아, 과도한 죽음 욕동, 나쁜 환경, 역동적 정신구조의 불균형, 심화된 갈등.
프로이트 이후의 자아심리학에서는 신경증의 주요 원인을 ‘자아 발달장애’로 보며, 이는 고착된 방어기제 유형 및 불안 유형과 연관된다. 대상관계론자들은 초기 대상(엄마)관계 장애로 인한 ‘자기’와 자기애의 취약성을 신경증의 주요 원인으로 본다.


이창재 (라깡과 현대정신분석학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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