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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분석>에 게제한 글이다. '꿈'을 다중으로 해석하는 사례로 음미하기를...) 中國 神話 “예(羿)”의 精神分析 - 반복되는 불행의 원인과 의미 - 李 漲 載 A psychoanalytic interpretation of the Chinese Myth, 'Ye(羿)' -The causes and the meanings of repeated misfortunes - ChangJae Lee, Ph.D 1. 精神分析的 神話 解釋을 위한 두 觀點 : 프로이드의 ‘변형된’ 개인무의식, 융의 ‘상징화된’ 집단무의식 고대인과 현대인은 시대정신과 생활환경이 매우 다르다. 그로인해 정신 내부에서 “나는 이런 존재야.”라고 생각하는 ‘자기표상’이 서로 다르다. 또한 외부세계를 해석하는 ‘대상표상’도 서로 다르다. 따라서 고대인의 신화와 정신성을 현대인의 정신관점에서 해석할 경우 오해와 왜곡이 수반된다.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고대인이 어떤 생활을 했고 어떤 사고를 했는지에 대한 ‘공감적 이해’가 필요하다. 옛 풍습들을 연구한 민속학의 자료는 신화 속 상징들의 의미를 고대인의 생활맥락과 사고 차원에서 이해하는데 유용하다. 그리고 ‘정신분석’의 꿈해석 지식과 자유연상 활동은, 신화와 접촉하면서 반응을 일으키는 해석자 자신의 ‘무의식’에서 원시의 흔적들을 음미하고 해석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신화는 그 의미가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즉 해석하는 주체가 어떤 관점과 개념에 익숙한가에 따라 신화의 의미는 다르게 발현된다. 신화의 의미를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해석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꿈해석’ 관점과 방법의 활용이 필요하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꿈과 신화는 무의식이 의식과 타협하여 자체를 ‘변형’시켜 드러낸 기표이다. 억압된 욕동(drive)들과 표상들은 1차적(원초적) 정신작용인 무의식의 전치, 압축, 상징 활동과 2차적(문화적) 정신작용인 자아의 검열에 의해 ‘본래 내용’이 상당히 ‘변형’되어 꿈과 신화로 나타난다(Freud 1900). 이 변형원리와 변형활동 덕분에 무의식의 소망들은 초자아의 내적 비난과 외부세계의 처벌을 피해 죄책감과 불안 없이 분출될 수 있다. 좌절되고 억압된 욕동과 표상들이 유난히 많은 민족일수록 그것의 충족은 물론이고 기억조차 금지하는 초자아의 요구도 강하다. 그로 인해 무의식이 의식에 떠오를 때 ‘변형’되는 정도가 매우 심하다. 신화는, 내부에서 치솟는 욕동들과 그것의 충족을 금지하는 초자아의 명령 사이에서 자아가 겪는 갈등과 불안이 교묘히 변형되어 표현된 꿈ㆍ증상과 그 특성이 유사하다. 가령 신화를 생성하는 재료들, 정신작용들, 정신구조, 목적 등은 꿈ㆍ증상과 유사하다. 따라서 무의식의 내용과 특성ㆍ‘변형 원리들’을 세세히 고려하면서 꿈과 증상을 해석해온 경험과 지식이 축적된 정신분석학자라면 신화에 대한 심층적 의미 해석 역시 가능하다. 고대 신화의 심층의미를 해석하려면 먼저 고대인이 지녔던 ‘신화적 사고’를 이해해야 한다. 프로이드는 ‘신화적 사고’의 본질이 어린이의 사고, 신경증자의 사고, 예술가의 사고, 꿈사고와 유사함을 주목했다(Freud 1913). 고대인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정령(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정령사상과, ‘주술’을 통해 정령을 지닌 자연 대상과 심지어 초자연적 대상(亡者, 神)과 교류하여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술적 사고’를 지녔다. 그런데 이런 생각과 관점은, ‘자기애적 리비도 단계’의 아이가 지니는 ‘자아전능 환상’과 유사하다. 자기애 단계의 아이는 인형이나 자연 대상들이 마치 어떤 정령을 지닌 양 생각하여 대화하거나 무서워하며, 자신의 “생각에 따라 세상이 변화 된다”는 환상을 지닌다. 이 점에서 원시인의 신화적(주술적) 사고는 어린이의 사고와 유사하다(Freud 1913). 그리고 원시인이 타부나 타부 대상에 대해 느끼는 강력한 불안과 복종행동은, 신경증자가 특정 관념이나 행동에 대해 지니는 강박의례 태도와 유사하다. 따라서 신화적 사고는 신경증적 사고와도 유사하다. 원시인류가 겪었던 충격적 사건들은 무의식에 억압되며, 그 중 일부는 욕동에 흡수되어 후손에게 유전된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타부의 근본 내용과 오이디푸스 욕구 그리고 가혹한 타부규칙과 초자아 규칙 사이의 동일성이다. 원시인류에게 근본적 타부규칙은 “토템을 죽이거나 먹지 말 것이며, 동일 토템을 섬기는 부족원끼리는 성관계하지 마라.”였다. 이것의 원래 의미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여자형제들을 성적으로 소유하려는 욕구를 갖거나 함부로 행동으로 옮기지 마라.”이다. 이것은 현대인의 내면에서 작동되는 오이디푸스 욕구에 대한 초자아의 제1금지 명령과 동일하다(Freud 1913). 현대인에 유전된 기질에는 인류의 태고 적 경험 흔적들이 잠복되어 있다. 그것의 일부는 외부의 촉발자극이 주어질 경우 내부 무의식에서 반응을 일으켜 ‘원초적 환상’이나 원초적 감정ㆍ행동으로 의식에 치솟곤 한다. 유아, 예술가, 신경증자는 ‘태고의 무의식(원시적 사고)’에 접촉하여 반응하는 비율이 보통사람보다 기질적으로 높은 사람이다. 원시적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유아, 원초적인 1차정신과정이 활성화되는 수면 중의 인간, 퇴행적 욕동과 유아적 방어기제를 지닌 예술가와 신경증자는 사소한 자극에도 종종 ‘욕동 속의 태고 적 무의식’에 접촉한다. 그들은 자신의 무의식에서 원시인류가 감당하지 못한 채 분열ㆍ억압했던 욕동, 소망, 불안, 콤플렉스와 원시적 정신상태를 다시 경험한다. 그리고 그 긴장에 대처하고 벗어나고자 몽상, 꿈, 작품, 증상, 신화를 산출해낸다. 융에 의하면 신화는 무의식이 ‘변형된 것’이 아니라 단지 ‘상징으로 표현된 것’이다(Jung 1912). 이 상징의 원래 의미는 ‘원시 심성’을 지닌 원시인이나 현대의 ‘정신분열증자’에겐 직관적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과학적 합리성에 물든 현대인의 정신성은 ‘원시 심성’과 단절되어 있다. 그로인해 원시 풍습들의 상징적 의미를 연구한 민속학적 지식과 ‘무의식의 언어’를 탐구한 ‘정신분석’의 도움을 통해야만 비로소 ‘신화적 사고’를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다. 융은 ‘신화적 사고’가 ‘꿈의 사고’ㆍ예술적 사고와 유사하다는 프로이드의 입장에 동조한다. 그러나 신화적 사고가 ‘자기애 단계’에 고착된 미성숙한 유아적 사고이며 병리적 사고라는 프로이드의 주장을 강하게 비판한다(Jung 1912). 신화적 사고는 ‘성숙한 목적’들을 지닌다. 신화에는 모호하고 안전하지 않은 원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현실적 목적’과 정신의 균형과 전체성을 이루려는 ‘선천적 목적’이 담겨있다. 즉 불균형 상태에 있는 당대의 집단정신이 결여한 요소를 보충시켜 인류의 정신 발달에 기여하려는 자율적 균형율동이 담겨있다. 따라서 신화는 ‘자기실현’을 지향했던 고대 인류의 성숙한 사고의 표현물이므로, 결코 미성숙하고 병리적인 사고로 폄하해선 안 된다. 신경증자는 남녀 사이의 ‘성 차이’를 지각한 이후의 오이디푸스기(남근기) 콤플렉스에 고착된 자다. 따라서 그(녀)의 중심문제와 소망은 남근기 성 욕동(오이디푸스 욕구)의 해소이다. 그런데 신경증자의 이런 문제와 소망 및 불안 유형은, 원시인류의 일차적 문제 내지 심리상태와 매우 다르다. 신경증자의 정신은 유년기 콤플렉스를 담고 있는 ‘개인무의식’에 휘둘릴 뿐, 원시인류부터 유전된 ‘집단무의식’에 휘둘리진 않는다(Jung 1912). 원시인의 정신상태는 신경증자가 아닌 정신분열증자의 심성과 유사하다. 분열증자의 내면세계에서는 원시인류가 현실에서 경험했던 중요 사건들이 환상과 환각으로 재현된다. 원시인과 분열증자의 일차적 관심은 남녀 ‘성 차이’를 지각하기 이전인 前오이디푸스기의 ‘생존과 안전’욕구 및 이것의 좌절과 연관된 원초적 불안이다(Jung 1912). 따라서 이들에게 (남근기) ‘성 욕동’은 결코 일차적 욕구나 소망내용이 아니다. 그들은 생명/죽음, 안전, 공허의 문제로 고통 받는다. 따라서 이 결핍을 안정적으로 보충하기 위해 위대한 신화를 창조하고 그것에 집착해온 것이다. 분열증자의 사고내용이 놀랍게도 원시인의 사고와 일치함은 민속학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Jung 1912). 그러나 원시인과 분열증자는 다음의 점에서 매우 다르다. 분열증자는 ‘현대’라는 독특한 문화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며, 현실과의 모든 관계를 ‘상실’한 채, 원시적 환상세계 속으로 퇴행해 고착하는 병을 지닌 자다. 이에 비해 원시인은 ‘신화적 사고’를 통해 당대의 현실에서 자신의 문제들을 능동적으로 해결하고 ‘현실 적응’과 ‘정신 발달’이라는 두 유형의 목적을 추구하는 성숙한 삶을 산 것이다. 융은 프로이드가 이런 점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원시인류가 생명에너지를 비롯해 다양한 의미로 이해해온 ‘리비도’를 편협하게 성 욕동으로만 해석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원시인류의 중심문제와 타부의식을 성 차이 인식 이전의 前오이디푸스기 차원에서 조명하지 못한 채, 오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연관시켜서만 해석했다고 비판한다(Jung 1912). 융은 현대인의 정신 하부구조와 본능에 인류의 선험적이고 보편적인 원형들로 구성된 집단무의식이 있다고 본다. 인간의 목적은 그 무의식의 원형들에 내포된 지혜와 에너지를 의식이 기억하고 통합하여 현재의 삶에 조화되게 활용하고 실현(현실화)하는 것이다. 융은 원형들의 유형을 “그림자(분열된 대극) → 아니마-아니무스 (성정체성) → ‘자기’(대극의 합일)”로 차등화 한다(Jung 1934). 이 위계에는 인류의 선험적인 정신발달 방향과 목적 및 출현한지 2백 만년 된 인류가 시대경험에서 확인한 지혜가 담겨 있다. 고대 인류는 ‘정신의 균형과 발달’을 위해 당대의 집단의식에 보충해야 했거나 미래에 실현해야할 원형 유형을 신화 속 등장인물들의 형상이나 사건으로 상징화했다. 각 민족이 집단의식에 보충해야할 원형의 유형은 민족들 사이에 보편성과 더불어 차이성을 지닌다. 신화 속 영웅들의 특성이 시대와 민족에 따라 다른 것은, 정신발달 상태와 분열된 콤플렉스 내용이 시대와 민족마다 달라서 실현해야 할 자기발달 목표와 원형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프로이드는 신화에 민족무의식의 원래 소망내용이 내부의 ‘변형 작업’과 검열에 의해 왜곡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에 비해, 융은 집단무의식(본능, 원형)은 ‘변형ㆍ왜곡’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원시인의 사고방식인 상징’으로 표현된다고 본다. 신경증자는 꿈과 몽상에서조차 본래의 무의식적 사고와 소망이 ‘변형’된 양태로 표출된다. 이에 비해 분열증자는 비록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는 능력을 전반적으로 상실하지만, 자기만의 환상과 꿈에서 ‘원시적 사실’과 원시인의 표현법인 상징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 문제는 현대인의 정신이 과학적 합리주의에 경도되어 있기 때문에 원시심성과 신화적 사고와 ‘단절’되어 그들의 상징언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Jung 1964). 그러나 원시심성은 현대인의 집단무의식에 여전히 잠복되어 있으며, 말소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민족의 신화와 자신의 꿈을 매개로 자기 내부에서 역동하는 무의식의 메시지에 관심을 기울이면, 원시인의 심성과 어느 정도 접촉하여 교류할 수 있게 된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성욕동과 정신성이 특이한 ‘2단계 발달 구조’를 지님을 성찰한다. 첫 단계인 ‘유년기’에서 개인은 ‘유아성욕’을 ‘억압’하는 험난한 오이디푸스기 통과의례를 성공적으로 거쳐야만 ‘자연동물’에서 ‘문화적 존재’로 발달할 수 있다. 그 후엔 성 욕동 발달이 오랫동안 ‘지연’되는 잠복기가 있다. 그리고 잠잠하던 성 욕동이 갑자기 새롭게 활성화되는 ‘두 번째 단계’인 사춘기 이후에는 생식기능을 지닌 남녀의 성기결합 욕동이 억압된 유아성욕을 ‘통합’해야 하며, 이를 위해 이성과 만족스런 애정관계를 맺어야 한다(Freud 1905). ‘2단계 발달론’은 신화 속 영웅의 유년기 애정관계 체험이 사춘기 이후에 겪는 통과의례 유형과 영웅적 정신성의 형성ㆍ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근본 틀을 제공한다. 나아가서 원시시대의 사건들(1단계)이 오랜 잠복기를 거쳐 현대의 사건(2단계)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원인과 구조를 거시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매우 유용하다(Freud 1940). ‘2단계론’에서 우리는 특히 ‘최초 단계’(유년기, 원시기)라는 ‘구조적 위치’가 지니는 ‘구조적 영향력’에 주목해야 한다. 가령 ‘최초 단계’ 경험이 과도하게 파국적인 경우, ‘둘째 단계’로의 발달은 정지되거나 불가능해진다. 이처럼 ‘최초 단계’는 이후의 정신 구조 형성과 발달에 지속적 영향을 미친다. 개인 성욕동의 ‘2단계 발달구조’는 민족과 인류의 정신 발달 과정을 거시적으로 해석하는 데에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다. 필자는 본 논문에서 ‘2단계 발달론’을 이용해, 특정 신화를 생성해낸 민족이 어떤 정신발달 단계에 ‘고착’되어 있으며, 그로인해 어떤 곤경에 빠지게 되고, 어떤 ‘신화적 소망’과 환상을 지니게 되는지를 드러낼 것이다. 정신의 발달 과정은 상당부분 인류의 계통발달 흔적들을 담고 있는 본능의 힘에 의해 추진된다. 즉 개인의 경험 배후에는 그가 속한 민족 및 인류가 겪어온 독특한 발달 과정 흔적들이 모종의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것을 ‘2단계 발달론’의 관점에서 해석해 보자. 민족의 한 구성원이 ‘현재’ 겪는 특정 경험들의 배후에는 그가 모르는 그의 가문과 민족이 옛날에 겪은 특정한 발달 흔적들이 ‘최초 단계’의 구조적 힘을 무의식에서 내뿜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그 민족의 옛 신화에 대한 정신분석적 해석은 곧 현대의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보이지 않는 내적 힘들을 성찰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개인의 경험 배후에는 후천적인 경험흔적과 선천적인 기질이 함께 작동된다. 가령 개인의 무의식에 있는 ‘본능’, ‘욕동’, 기질은 고유한 내적 압력을 행사해 개인으로 하여금 고대 인류가 겪었던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게 만든다. 즉 개인의 경험과 무의식에는 이미 원시인류와 고대민족의 정신과 경험에 접속하게 하는 흔적과 단서가 들어있다(Freud 1913). 이에 비해 융은 프로이드가 ‘억압’에 의해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유년기 무의식’을 과도하게 강조했기에, 그 배후에서 작용하는 집단무의식(본능)의 거대한 에너지와 깊은 지혜ㆍ목적을 온전히 배려하지 못했다고 본다. 인류와 민족이 그것으로부터 엄청난 생명에너지와 지혜를 얻어낼 수 있는 보물창고는, 불과 수십 년 동안에 형성되는 개인의 무의식이 아니라, 이백 만년 동안 유전되고 체험되어 온 인류와 민족의 집단무의식과 원형이다. 인류의 원형은 주로 신화와 꿈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신화에 대한 해석은, 현대인에게 ‘분열’되어 차단된 집단무의식과의 접촉을 회복하여 정신의 균형과 발달을 이루는데 중요한 매개가 된다. 신화의 심리적 의미를 보다 ‘전체적’으로 이해하려면 신화를 창조한 민족의 정신성에 대한 ‘다층적인 인식’이 요구된다. 인간 정신에 대한 탐구는 프로이드 이후 세계정신분석학계 내부에 현존하는 6~7 유형의 정신분석 학파들에 의해 다중의 발달이 이루어져 왔다. 21세기 한국의 정신분석학자로서, 우리는 이제 프로이드와 융을 비롯해 현대 정신분석학자들이 발견해낸 정신분석 관점과 개념들을 주체적으로 종합하여 ‘신화’ 해석에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이창재 2004). 프로이드와 융의 관점은 상호 대립되는 요소와 상호 보완 요소를 함께 지닌다. 가령 ‘원시인의 정신성’을 前오이디푸스기에 고착된 분열증자의 심리에 연관시켜 해석하는 융의 입장은, 오이디푸스기에 고착된 신경증자의 심리와 연관시키는 프로이드와 외견적으로는 대립된다. 그러나 인류와 유아의 정신발달 과정이 자폐적인 분열증 상태로부터 경계선 상태를 거쳐 신경증적 상태로 전개되는 것임이 발달심리학과 현대 정신분석학자 컨버그에 의해 공론화된 오늘날, 두 관점은 이젠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인간의 정신 내부에는 분열증적 요소와 신경증적 요소, 정신의 초기발달 흔적들이 함께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Kernberg 1976). 신화의 일차 목적이 현실에서 좌절되고 금지된 욕구들을 ‘자유롭게 충족’하는데 있다는 프로이드의 ‘소망충족’ 관점과, 결핍되고 미발달된 요소를 보충하여 정신의 균형과 발달을 이루는 것이라는 융의 ‘보상’(compensation) 관점은 서로 다르다. 그러나 현대의 신화해석자에게 그 다름은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이기 보다 신화의 의미를 다중으로 음미하게 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필자는 독자들의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종합을 기대하며, 신화 해석에 두 관점을 함께 활용할 것이다. 두 유형의 해석은 독자에게 때로 각기 다른 주장으로 지각될 것이고, 때로 상호 보완성을 드러낼 것이다. 인간의 정신성은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어떤 민족의 정신을 균형 있고 종합적으로 해석하려면, 하나의 정신분석 관점과 개념에 머물기보다, 맥락에 따라 거기에 적합한 관점과 개념을 선택ㆍ적용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프로이드의 ‘유년기 무의식’(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론은 일반인들의 정신과 정서에 강한 공명과 방어를 함께 일으킨다. 그리고 그가 주장한 ‘성욕동의 2단계 발달론’은 고대 인류의 충격적 사건들이 현대인의 정신에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치는 원인과 구조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프로이드를 통해서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에게 낯설고 무의미하다고 간주했던 옛 사건들과 옛 신화들이 어떻게 해서 ‘현재 우리의 삶’과 깊은(잠복된) 연관을 지니는지를 명료하고 생생하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 집단무의식 해명을 초점으로 신화의 상징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민속학을 오랜 기간 연구했던 융의 관점은, 신화의 의미를 ‘인류와 민족 집단의 정신발달 과정’이라는 거시적 차원에서 이해하는데 유용하다. 가령 신화에 등장하는 신과 영웅들의 비합리적 행위와 괴이한 형상은 (융의 안내 덕분에) 당대 ‘집단의 문제’(콤플렉스)와 대결하기 위해 고대인의 정신이 새로운 ‘변환’(transformation)을 겪고 있다는 거시적 상징임을 알 수 있게 한다(Jacoby 1995). 프로이드와 융은 꿈사고, 유아적 사고, 예술적 사고, 신경증적ㆍ분열증적 사고를 통해 현재 우리의 정신 밑바닥에서 역동하고 있는 ‘원시적 사고(신화적 사고)’에 접속하는데 각기 고유한 안내자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옛날부터 한국인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고대 중국인의 정신성은 어떠한가? 이를 음미하기 위해 고대 중국신화 ‘예’의 신화소(神話素) 하나하나에 대한 자유연상, 적극적 연상(확충), 해석활동에 몰입해 보자. 2. 中國 神話 ‘예(羿)’에 대한 精神分析 타인에게 좋은 일을 하고도 ‘반복’해서 불행한 상황에 빠지는 인간의 내적 문제는 무엇인가? 신화에 그런 인간상이 출현할 경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 의문을 중국 신화 “예”를 통해 음미해보자. <하늘의 왕 제준과 태양 여신 희화 사이에서 열(十) 태양이 생겨났다. 그들은 ‘큰 나무에 있다가 ‘태양여신의 규칙’에 따라 번갈아 가며 하늘로 나갔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열 태양은 한꺼번에 하늘에 솟아 ‘제멋대로’ 날아다녀 세상엔 큰 재난이 발생했다. 신통력을 지닌 ‘무녀’ 여축이 이를 해결하려 굿을 했으나 태양열을 이기지 못해 타죽었다.>(김선자 2002) 신성한 힘을 대변하는 하늘 왕과 따스한 온기를 지닌 태양 여왕 사이에서 태어난 ‘열 태양’은 왕손들ㆍ지역 족장들의 상징이다. 원시시대에 ‘열(十’)은 ‘꽉 찼다’, ‘완전하다’는 의미와 함께 ‘위험하다’, ‘불길하다’는 양가적 의미를 내포한다. 국토가 넓은 고대 중국에는 권력을 지닌 지역 왕들이 꽉 차게 많았을 것이다. ‘예’ 신화의 배경이 중앙집권 국가 기틀을 준비하던 최초시기인 요임금 시대임을 고려한다면, 열 태양은 독립된 권력을 지녔기에 통제하기 힘든 각 지역 왕들이거나 왕위 계승을 노리는 많은 왕손들을 의미한다. ‘원시인의 마음’으로 보면 인간 생명을 절대적으로 좌우하는 소중한 태양이 ‘하나’만 있다고 생각하면 ‘불안’하게 느꼈을 수 있다. 하나 밖에 없는 태양이 어느 날 갑자기 뜨지 않는다면, 모든 생명체가 멸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양이 많으면 걱정이 없을 텐데”라는 원초적 ‘안전 욕구’와 ‘원시적 사고’가 ‘열 태양’ 이미지를 창조한 것일 수 있다. 태양이 어머니 여신인 동시에 아들 신으로 등장하는 점이 특이하다. 한국, 이집트, 그리스 등 많은 민족들에게 태양은 아버지 신, 남성 신으로 등장한다. 반면에 일본에선 태양이 여신으로 상징된다. 태양은 밝은 빛과 따스한 온기를 뿜어내 만물의 생명을 자라나게 한다는 점에서 아이를 정성스레 양육하는 어머니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강하게 뻗치는 ‘햇살’과 불변ㆍ불멸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생명의 씨앗(정액)을 뿌리며 영원한 법을 세우는 남성적 아버지의 상징이기도 하다. 각 민족의 무의식이 태양의 어느 특성을 절실히 동일시하고 싶어 하느냐에 따라 태양은 모성 신으로 느껴질 수 있고 부성 신으로 의미 부여될 수 있다. ‘큰 나무’는 자연의 기운들이 제멋대로 요동치지 않게 응집시키고 버텨주는 ‘우주목’의 상징이다. 원시인은 생명의 번식과 자연 질서가 풍성한 열매 맺음과 오랜 수명을 지닌 ‘신성한 큰 나무’에 의해 유지된다고 믿었다.(프레이저 1890) 이 신성한 나무는 민족에 따라 ‘어머니 신’으로 숭배되기도 하고 아버지 신을 상징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자식들의 원초적 충동과 불안을 넒은 가슴에 품어주고 담아줌으로써 환경과 ‘대상’에 대해 긍정적인 ‘관계 욕구’를 지니게 한다. 이에 비해 아버지는 자식들의 자기애적 충동들에 신성한 법과 규범을 각인시킴으로써 타자의 욕망과 시선을 배려하는 사회적 인격체로 전환시킨다. 무릇 자식들은 어머니와 아버지 각각의 특성을 흡수하여 하나로 통합하는 정신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존재다. ‘예’ 신화는 ‘중국’이라는 통일국가 관념과 역사가 형성되기 이전인 요임금 시대를 배경으로 삼는다. ‘요’ 시대는 객관적인 문자기록이 없이 말로 전해진 전설의 시기다. 생존에 절대 영향을 미치는 ‘태양’이 ‘예’ 신화에서 어머니신과 아들 신으로 등장함은, 당대 사회가 모계사회의 요소를 지녔다는 징표다. 모계사회에서 아들들은 ‘어머니의 말씀’을 쫒는다. 그래서 열 태양이 엄마의 큰 몸을 상징하는 큰 나무에 의존하듯 매달려 있다가, 하루씩 차례로 하늘에 오르는 이미지가 출현한 것이다. 이는 성스러운 태모(대지)의 자궁에서 고귀한 생명체들이 매일 탄생해 세상을 떠돌다가, 노쇠하면 대지의 품으로 되돌아와 묻히는 영원회귀 리듬을 연상시킨다. 또한 어머니(대지) 품에서 양육되어 아버지(하늘)의 사회로 나아가는 인간정신의 발달 과정에서, 유아가 엄마에게 밀착해있던 최초시기(시대)의 상징적 반영이다. 고대인은 생명체들이 자연에서 태어나 활동하다가 늙고 죽는 현상에 대해 공포와 궁금증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태양의 뜨고 짐이 이런 생노병사와 밀접히 연관된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것을 “큰 나무(어머니)에 매달려 있다가 차례로 떠오르는 열 태양(아들)” 은유로 표현함으로써, 고대인은 ‘세상’에 대해 나름의 안정된 이해와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태양과 인류와 세상은 생명을 잉태ㆍ양육하고 거두어가는 ‘여신(지모신)이 주제’하는 신성한 법칙에 따라 변화하는 것으로 정리된 것이다. ‘차례로 떠오르는 열 태양’은 자연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고대 중국의 ‘시간 단위’와도 연관된다. 가령 일 년 열두 달과 하루의 움직임을 열두 가지 동물(‘12지’)로 상징했듯이, ‘열’ 태양은 五行(금목수화토)에 陰陽을 곱한 시간 단위인 10간(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상징일 수 있다. 시간을 질서 있게 규정하는 것은 집단정신을 안정시키는 근본 요인이기 때문이다. 하늘에는 하나의 태양으로 족하다. 그런데도 ‘열 태양이 한꺼번에 떠오름’은 의식의 질서가 무의식에 의해 전복되어 통제되지 않는 사태에 처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자연의 신성한 규칙을 깨뜨리는 심각한 타부행동이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타부는 집단의 생명과 영혼을 보호하기 위해 수호신이 명령한 절대규칙이다. 따라서 타부를 어기면 그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과 우주에조차 심각한 재난이 일어난다. 태양은 자연의 생명원기를 담고 있는 고귀한 ‘토템대상’이다. 그런데 ‘좋음’을 간직한 토템일지라도 ‘과도’하거나 타부에 어긋나면 나쁨으로 변질되어 재난이 초래된다. 원시시대에서 왕과 왕족은 백성의 ‘생명원기’인 신성한 ‘마나’를 보유한다고 믿어졌다. 그래서 그들은 보통사람들이 함부로 접촉해선 안 되는 신적 존재 내지 타부대상으로 간주되었다. 바로 그 때문에 집단과 우주의 질서와 안전을 위해, 왕과 왕족들 스스로 보통사람보다도 엄격하게 타부규칙을 준수해야만 했다(Frazer 1890) 그것을 어기면 집단 전체의 질서가 깨지고 재난이 발생하므로 가혹한 처벌이 내려졌다. ‘열 태양’이 한꺼번에 떠올랐음은, 당대의 타부 규칙이 깨진 상태다. 이는 기존 사회체제가 심각한 곤경이나 중대한 변화에 처해있음을 의미할 수 있다. 가령 모계제의 문제점이 극대화되어 붕괴된 모습일 수 있고, 기성 권력자와 신생 권력자 사이에 치명적인 ‘권력 투쟁’이 일어났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집단에 재난이 일어날 경우, 고대인들은 수호신에게 바치는 정성스런 제물과 제사장의 주술을 통해 신들을 위로하며 신들에게 인간의 소망을 전달했다. 그래서 국가의 재난 사태를 진정시키고자 유명한 무녀(제사장) ‘여축’이 ‘굿’을 한다. 이때 무녀는 고통을 호소하는 어린 자식들의 심신 상태를 헤아려 마술같이 해소해주던 최초 보호자인 유아기 어머니의 대리자다. ‘주술’을 통해 고통상태를 벗어나고 싶어 하던 고대인의 마음은 곧 전능한 해결사였던 유아기 어머니가 다시 나타나주기를 바라는 소망과 유사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마술적 해결사인 무녀조차 ‘과도한 태양열’을 이기지 못해 죽고 만다. 기성질서가 해체되는 엄청난 위기가 집단에 닥쳤음을 감지케 하는 대목이다. 태양여신의 절대규칙이 깨졌고 문제를 해결하는 ‘大타자’ 역할을 하던 무녀의 ‘신통력’이 무기력해졌음은 곧 강력했던 모계사회의 질서와 권위가 새로 변화된 시대환경에선 무력화되었음을 암시한다. 이제 그 집단은 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 새로운 ‘대상’과 체제를 필요로 한다. 고대 중국인의 집단무의식은 그것을 문제의 해결을 명하는 새 권위자인 ‘하늘의 아버지 신’ 제준과 그의 전령인 남성 영웅 ‘예’로 형상화한다.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모성중심에서 부성중심으로 권력의 이동과 정신성의 큰 변환이 일어난 것이다. 가족의 차원에서 어머니는 부자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자인 동시에 갈등을 중재하여 해소하는 자다. ‘중재자’ 역할을 하는 무녀가 죽었음은, 아버지와 아들들, 기성세대와 신세대 사이의 갈등과 긴장이 한정 없이 고조되는 상태를 암시한다. ‘무녀가 태양열에 타죽었음’은 내부의 강한 욕동과 외부의 거친 자극들로부터 집단의 정신을 방어해주던 보호막(大타자, 동일시 모델)이 무기력해진 상태다. 이는 무의식의 충동들이 자아의 방어막을 뚫고 의식에 출몰해 집단정신이 혼란 상태에 빠짐을 의미한다. 타부가 깨지거나 부재한 상태란 우리와 타자, 아군과 적, 주관세계와 객관세계 사이의 ‘경계’와 규범이 모호한 일종의 정신병 상태다. ‘꿈’이나 신화에서 좋게 전개되던 장면들이 갑자기 나쁜 상태로 바뀌면, 거기엔 ‘금지된 욕망’과 연관된 무엇이 표출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를 저지하고 은폐하려는 강력한 ‘방어’가 작동되었기에, 불합리하고 기괴한 형상들이 출현하게 된다. 그렇다면 태양들의 집단 난동은 원아버지(씨족장)의 독점권력 체제에 대한 자식들의 오이디푸스 욕구 표출일 수도 있다(Freud 1913). 또한 이 신화소에선 ‘규칙에 따라 질서 있게 뜨는 태양’이라는 ‘좋은 상태’와 한꺼번에 제멋대로 뜬 열 태양이라는 ‘나쁜 상태’가 극명히 대립된다. 이런 양극적인 대립 형상은 세상을 ‘전적으로 좋은 대상’ 대 ‘전적으로 나쁜 대상’으로 ‘분열’시켜 정리하는 ‘경계선 인격 단계’를 반영한다(Kernberg 1976). 인간의 정신내면은 좋거나 나쁜 ‘자기이미지’와 ‘대상이미지’로 구성되어있다. 그런데 ‘자기’가 약하고 미성숙한 아이나 원시인은 정신내면의 ‘좋은 대상’이 ‘나쁜 대상’에 의해 오염되고 파괴될까봐 ‘좋은 대상’이 ‘나쁜 대상’과 섞여있는 상태를 못 견딘다. 그래서 고통스런 자극을 감당하지 못하는 인간은 원시적 방어기제를 작동시켜, 정신내면을 ‘좋은 대상’들로만 구성된 부분과 ‘나쁜 대상’들로만 구성된 부분으로 ‘분열’시킨다. ‘분열’은 부정적 요소들이 자기 내부에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게 ‘블록’을 형성하고 ‘해리’시키며, 외부대상을 향한 ‘투사’를 유발한다. 분열과 투사 방어기제가 반복되면, 어떤 문제를 자신의 내부에서 발견하는 자기성찰이 불가능해진다. 그 결과 더 이상 정신의 통합과 발달이 불가능한 편집증이나 ‘경계선’ 상태에 고착된다. <하늘 왕 제준은 ‘반신반인’이며 활쏘기의 명수인 ‘예’에게 활과 화살을 주어, ‘하늘의 법’을 어긴 태양들을 제압하여 지상의 재앙을 해결하라 명한다. 예는 아내인 항아를 데리고 지상에 내려와 한 태양에 활을 쏘니 그 태양은 빛을 잃고 떨어져 ‘세 발 까마귀’로 변한다. 남아있던 태양들이 당황해하였지만, 한 태양만 남겨두고 모든 태양을 활로 쏘아 떨어뜨렸다. 그러자 지상의 큰 재난이 진정되었다.> 하늘 왕은 신성한 법을 준수하게 하는 상징계의 중심이자 유년기의 이상적 동일시 대상인 ‘거대한 아버지’의 상징이다. 그가 ‘제멋대로인 태양들’을 제압하라고 공격무기인 활과 화살을 준 것은, 왕과 태양들이 상호 대립된 위치에 놓여있음을 의미한다. 인류의 최초 단계인 일처다부제의 모계중심 사회에서 여러 자식들을 거느리며 권력을 지닌 어머니와, 그녀의 보호막을 믿고 아버지를 무시하던 자식들과 이에 분노하는 아버지가 연상된다. ‘예’는 새로운 大타자로 등장한 하늘왕의 명령을 받들어 ‘아버지 법’의 위력을 드러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왕의 권위와 남성성의 상징인 활과 화살로 기성의 권력 대상들을 공격하니, 그들은 예가 쏜 활에 의해 ‘거세되어’ 빛과 힘을 상실한 ‘세 발 까마귀’로 변한다. ‘세 발 까마귀’는 태양신의 상징인 동시에 ‘일상의 틀’을 넘어서는 괴상함과 비범함을 지닌 존재다. ‘삼’(三)은 둘로 분열된 대극을 통합하는 성스러운 숫자이고 ‘까마귀’는 하늘의 신성한 동물이다. 그렇다면 ‘세발 까마귀’는 요임금 이전 시대에 권력을 지녔던 어떤 태양숭배 집단을 상징한다. 활을 쏘아 ‘태양을 땅에 떨어뜨림’은 ‘대상의 권위와 힘’을 ‘거세’했다는 의미다. 한 태양이 빛을 잃고 떨어지자, 다른 태양들이 당황해함에도 불구하고 예는 계속 활을 쏘아 아홉 태양을 모두 제거한다. ‘아홉’(九)은 중국에서 황제의 숫자다. 이는 제거된 대상들이 ‘왕’ 역할을 하던 대상들임을 암시한다. 예가 아홉 태양을 모두 제거했다는 것은 명료한 문제해결로 보이지만 뭔가 과도하다는 느낌이 남는다. ‘아홉 태양’을 거세했음은 새로운 권위대상으로 등장한 하늘 왕의 권위를 높여줌과 동시에 상처를 준 행위이다. 비록 미워하던 대상일지라도 자신의 혈족을 모두 상실한 아버지의 마음이 좋을 수만은 없다. 지상에서 고통 받던 민중을 직접 구원해준 예는 하늘(궁궐)의 왕과 달리 백성의 무의식과 소통하고 반영하는 원형상이다. 따라서 예의 행위엔 권력자에 대한 백성의 시기심이 교묘히 변장되어 있을 수도 있다. 프로이드의 ‘변형’이론을 고려한다면, 예가 쏜 화살의 핵심대상은 ‘아홉 태양’이기보다 태양여신 자체다. 그런데 남성 영웅이 모성 신을 살해한다는 것이 중국인의 정서에 조화되지 않기에, 어머니 살해가 신화에선 ‘그릇된 자식들’ 살해로 ‘전치’된 것이다. 부모가 싸우면 자식들이 피곤해지듯이, 권력자들이 전쟁상태에 있을 때 크게 고통 받는 존재는 백성들이다. 그래서 백성은 전쟁상태를 해소하여 ‘안전’과 안정감을 줄 힘 있는 영웅을 갈망한다. 자기애를 지닌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그런 영웅이 되길 소망한다. 가령 불안한 가정상황에 처한 아이는 상상과 환상 속에서 초인적 능력을 발휘하여, 불안한 사태를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평정시킨다. 예가 ‘반신반인’임은 신과 인간, 왕과 백성, 환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중재할 능력과 임무를 지닌 자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인간은 누구나 의식과 무의식, 자아이상과 본능충동 등의 서로 대립된 두 세계 사이에서 갈등한다. 따라서 인간은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조화롭게 통합해야 할 힘겨운 정신발달 과업을 지닌 주인공이자 ‘반신반인’이다. <열 태양이 일으킨 가뭄으로 지상이 혼란에 빠지자, 사방에서 괴물들이 출몰해 날뛰며 백성들을 괴롭혔다.> 하늘에서의 난동을 제압하자, 이번엔 지상에 괴물들이 출현한다. 하늘의 무법자들이 왕족을 상징한다면, 지상의 괴물은 무엇의 상징인가? 그것의 민속학적 의미는 당대 백성들을 불안하게 하던 중요 ‘대상’, 충격적 사건, 열악한 환경, 그리고 내부의 충동과 콤플렉스 등이다. 신화에는 무의식의 콤플렉스들이 원초적 언어인 이미지, 원형상징, 또는 민속적 상징을 빌어 출현한다. 가령 열악한 환경이나 ‘나쁜 대상’에 오랫동안 시달려 자아가 쇠약해진 개인이나 집단의 경우, 내부의 열등한 요소나 충동, 부정적인 자극들을 ‘감당’하지 못해 정신의 한 부분에로 ‘분열’시킨다. 즉 정신을 ‘전적으로 좋은 부분’과 ‘전적으로 나쁜 부분’으로 나눈다. 그리고 내부 짐을 덜기위해 ‘분열’시킨 부정적 요소들을 외부로 투사한다. 그 결과 투사된 무의식의 부정적 요소들은 ‘전적으로 나쁜’ 특성을 지닌 ‘괴물’로 형상화되어 나타난다. 그 괴이한 형상들은 내부의 파괴욕동과 나쁜 내적대상이 투사된 환상이지만, 원시적 정신은 ‘그것’이 마치 ‘전적으로 나쁜 실재 대상’인 양 섬뜩한 박해불안을 느낀다(Klein 1935). 그래서 보통사람들은 그 괴물들을 회피하면서, 어떤 ‘전적으로 좋은 대상’(영웅, 신)이 나타나 괴물을 대신 처치해주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자아가 미성숙한 유아, 편집증자, 분열증자, ‘경계선 인격자’는 고통스런 현실 상황에 처할 때마다 분열과 투사를 사용해 자신을 방어한다. 신화에 집단을 곤혹스럽게 하는 ‘괴물’들이 다중으로 출현했음은, 고대 중국의 민족정신이 ‘분열’과 ‘투사’로 자신을 방어하는 ‘편집-분열적 정신구조’와 박해불안 상태에 처해있었다는 징후다. <첫 번째로, 중원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뱀의 몸에 사람 얼굴’을 한 못생긴 괴물 ‘알유’다. 그는 ‘아이 울음소리’를 내어 사람이 다가오면 문득 나타나 잡아먹는 괴물이다. 예는 그를 화살로 처치했다.> ‘뱀의 몸에 인간 얼굴’을 하고 ‘아이 울음소리’를 내는 괴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고대인에게 어린애는 노동생산력과 자기방어력을 지니지 못한 무기력하고 의존적인 존재다. ‘울음소리’는 뭔가를 충족시켜 달라 애걸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다. ‘아이 울음소리’는 특히 구강기의 음식(애정) 결핍과 생존불안을 표현하는 기표다. 도와주려는 ‘좋은 대상’을 오히려 ‘잡아먹음’은 ‘시기심’과 ‘탐욕’을 의미한다. 시기심은 ‘좋은 대상’에 접근해 ‘좋은 것’을 강탈하고 대신 자신의 나쁜 것을 집어넣어 파괴하는 활동이다. 그리고 탐욕은 ‘좋은 대상’에 접근해 좋음을 자기 마음껏 흡수하여 고갈시켜버림으로써 좋은 대상을 파괴하는 활동이다(Klein 1956). 믿을 수 있는 양육자(보호자)가 없는 불안한 ‘환경’에 처한 유아나 원시인의 정신 내면에선 엄청난 탐욕과 시기심이 들끓는다. 그것이 투사되어 공동체의 ‘좋은 것’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삼켜 파괴하려드는 ‘환상적 실재’인 괴물 알유가 출현한 것이다. ‘알유’는 주위 사람들의 생명에너지를 독식하며 생존하는 ‘의존성 성격장애자’ 또는 ‘좋은 것’을 혼자 독점하며 백성의 ‘식량’을 빼앗아가는 착취자의 상징이다. 이런 괴물은 자신의 생존과 욕구충족에만 관심을 쏟기에, 자신이 타인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 결코 자각하지 못한다. 알유가 출현했음은 당대인의 생활환경이 매우 빈곤하고 안전히 보호해줄 지도자가 없다는 징후다. 물질과 정신이 모두 빈곤한 고대 중국백성은 ‘식량’을 강탈해 독식하는 폭력배나 지역 탐관오리들에 대해 파괴적인 분노가 들끓었을 것이다. 그 파괴욕동과 시기심이 외부세계로 투사되면 얼굴은 아이처럼 순해 보이지만 몸은 탐욕스런 뱀인 ‘집어삼키는 괴물’ 알유가 출현한다. 먹을 것 걱정에 시달리던 고대인은 구강결핍으로 내부에서 들끓는 탐욕과 시기심을 해소해줄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대상‘을 갈망했을 것이다. “부디 타인을 배려하는 지도자가 나타나 탐욕스런 괴물 알유를 제거해 주었으면!” 영웅은 집단의 생존과 정신성 발달을 위해 일차적으로 외부의 적을 없애, 공동체의 식량결핍을 해소해야 한다. 그리고 정신 내적으로는, 집단무의식의 구강기적 탐욕과 의존욕구, 파괴적 시기심, 박해환상과 대결해야 한다. <두 번째로, 2미터나 나온 ‘날카로운 이빨’로 백성에게 행패를 부리는 괴인 ‘착치’를 힘들게 처치한다.> 엄청 ‘길고 날카로운 이빨’은 구강기 가학충동의 표상이다. 가뭄이나 전쟁으로 먹을 식량이 부족해 ‘좋은 음식’을 입으로 씹고 삼키는 욕구가 좌절된 옛 인류에겐, 구강기 공격성이 강하게 활성화된다. 그 공격성이 외부로 투사되면 날카로운 이빨로 찌르고 물어뜯는 ‘구강형 괴물’이 출현한다. ‘예’가 착치와 싸워 그를 제거했음은 집단의 ‘안전’을 위협하는 외부세계의 포악한 인간과, 구강욕동의 좌절로 인한 내부의 파괴욕동과 박해환상을 억제했다는 기표다. <세 번째로, ‘아홉 개의 머리’로 물과 불을 뿜어대어 사람들을 괴롭히며 목숨이 끈질긴 괴물인 ‘구영’을 ‘아홉’ 화살을 쏘아 강가에서 죽인다.> 물과 불은 옛날부터 인간 생존에 필수 요소다. 그런데 생존을 위해 의존해야만 하는 대상일수록, 그것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때 오히려 근심과 재난의 근원이 된다. 원시인류에게 ‘자연’은 생명력을 주는 존엄한 대상이자 재난을 일으키는 괴기스런 대상이다. ‘분열’된 양극성 정신구조를 지닌 원시인류는 생명을 주는 자연과 재난을 일으키는 자연이 동일한 대상임을 자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험악한 자연에 대한 공포는 외부로 투사되어, ‘아홉 머리로 물과 불을 뿜어내는’ 괴물 ‘구영’이 출현하게 된다. 구영은 물과 불을 과잉 분출해 홍수와 가뭄을 일으키는 ‘괴기스런 자연’에 대한 원시인류의 ‘무의식적 환상’인 것이다. 구영은 또한 내면에서 과도하게 솟구치는 파괴욕동과 성욕동이 만들어내는 환상이다. 옛 인류의 정신상태는 종종 아이들의 꿈과 환상 속에서 재현된다. 아이의 꿈에 ‘아홉 머리’로 물과 불을 뿜어대는 섬뜩한 괴물이 나타나면 그것은 과잉흥분을 일으키는 남근욕동과, 그것에 대해 ‘거세’위협을 가하는 ‘무서운 아버지’와 초자아를 의미한다. ‘목숨이 끈질김’은 억제해도 반복해서 솟구치는 성욕동의 특성이다. 예가 ‘아홉 화살’을 쏘아 그 괴물을 죽임은, 무절제하게 솟구치는 남근 욕동을 강력한 초자아의 명령(‘아홉 화살’)에 의해 ‘제압’했다는 의미다. <네 번째로, 거대한 날개로 폭풍을 일으켜 집을 부수며 사람을 채가기도 하는 사납고 거대한 새 ‘대풍’을 줄을 묶은 화살을 쏘아 땅으로 당겨 큰 칼로 처 죽였다.> 폭풍은 어디서 어떻게 일어나는가? 원시인류는 자연생명체 속에 내재하는 정령들의 어떤 힘이 자연현상을 일으킨다고 믿었다. 가령 폭풍은 신성한 하늘을 나는 ‘거대한 새’의 신령스런 날개 짓에 의해 일어난다고 상상했다. 그러면 거대한 괴조가 폭풍을 일으키며 하늘에서 쏜살같이 내려와 매섭게 사람을 채가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어린아이들은 종종 그런 꿈을 꾼다. 그 꿈속의 괴물 새는 실상은 아이 내면에서 들끓던 분노와 파괴욕동과 보복 당할지 모른다는 박해공포가 꿈 이미지로 발현된 것이다. 그 아이가 두려워하는 본래의 대상은 자신의 공격성과 불안을 공감하여 ‘담아주기’는커녕 비난하고 처벌하려드는 어머니나 아버지 또는 가혹한 초자아다. 오이디푸스기 남아는 어머니와의 애착관계를 방해하는 아버지에게 엄청난 분노를 느끼지만 거세불안 때문에 이를 억압한다. 그 결과로 내향화된 공격에너지는 초자아에 흡수되어 내적 욕망들과 자아에 대해 가혹한 감시와 내적 처벌을 가한다. 이것이 ‘높은 하늘’(초자아의 위치)에서 지상의 ‘나’(자아)를 향해 매섭게 공격하는 괴물 새로 형상화되곤 한다. 초자아의 힘은 너무도 강해, 자아가 형성해낸 방어막인 집이나 어떤 은신처도 괴물이 일으키는 폭풍에 의해 여지없이 파괴되고 만다. ‘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고 하늘로 날아가는 괴물 새’를 화살에 매어둔 줄을 잡아당겨 ‘땅으로 끌어내’ ‘칼로 처 죽임’은 무슨 뜻인가? 여기서 ‘하늘’은 무의식의 환상세계, 땅은 의식의 현실세계의 표상이다. ‘하늘’은 감당키 힘든 현실의 상처와 불안을 회피하게 해주는 자아전능적 상상계다. 상상계에 위치한 인간은 ‘자기애적 환상의 힘’ 때문에 좀처럼 거세되거나 죽지 않는다. 이에 비해 ‘땅’은 상상계에 위치한 원시자아의 원시적 환상과 콤플렉스를 해체시키는 ‘현실자아’와 상징계의 힘을 상징한다. ‘예’는 상상계에 함입된 당대 집단정신의 부정적 표상(그림자)인 ‘대풍’과 대결해, 변화된 사회 현실을 인식하게 하는 선각자다. <다섯 번째로, 코끼리도 삼켜버리는 거대한 구렁이 ‘파사’가 호숫가에 나타나 사람을 잡아먹자, 험한 필사적인 싸움 끝에 활과 칼로 죽인다.> ‘큰 구렁이’는 거대한 입과 몸으로 아이의 인생을 자기마음대로 통제하여(집어삼켜) 손상된 자기애를 보상받으려드는 ‘자기애적 엄마’의 상징이다. 아이의 자기중심적 정신이 타인을 배려하는 성숙한 정신으로 발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엄마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태로부터 ‘분리’ 되어야 한다. 그런데 자기애적 엄마의 경우 탐욕과 유기불안을 극복하지 못했기에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자식들이 독립해 자신에게서 떠나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다(Kernberg 1980). 그래서 자기애적 엄마로부터 독립하려면 ‘엄마-자식’ 사이에 피나는 이별 싸움이 있어야 한다. 뱀은 실재로 자기보다 큰 동물도 삼키는 ‘큰 입’과 ‘큰 위’를 지닌다. ‘코끼리를 삼킨다.’는 표현에 주목한다면, 파사는 ‘탐스럽고 거대한 엄마 몸’을 삼키고 싶어 하는 유아와 원시인류의 구강기 탐욕이 투사된 환상대상이다. <여섯 번째로, 광포하며 거대한 멧돼지인 봉희가 성소인 天神 제단에 나타나 참배자들을 위협하자, 산 채로 잡았다. 이로써 마침내 지상의 모든 재앙을 해결하자, 멧돼지를 제단에 제물로 바치며 하늘 왕께 ‘승천’을 요청한다. 그러나 하늘왕은 어떤 응답도 하지 않았다.> 1) 大他者의 沈黙 멧돼지 ‘봉희’는 어떤 ‘위치’에 있는 존재인가? 옛날부터 멧돼지는 강력한 공격성으로 농작물을 마구 짓밟아 피해를 주는 재앙신의 상징이다. 그것은 백성을 재앙으로부터 수호해주는 하늘 왕과 ‘예’에 대비된다. ‘천신’은 타부규칙을 안전히 유지시켜 백성과 자연의 위험한 충동들을 통제하는 수호신(토템)이다. 제단(天壇)은 보통사람은 접근할 수 없고 왕이나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신성한 타부영역이다. 그곳에 멧돼지가 침입한 것은 백성들의 정신에 힘과 안정감을 주던 공동체의 도덕규범과 종교적 경계가 무너진 사태다. 타부를 어지럽히는 무뢰한이 출현하면 이에 전염되어 민중의 억압된 충동들도 역동하므로, 집단정신은 혼란스러워진다. 예는 타부를 침범한 봉희를 생포해 하늘 왕께 제물로 바친다. 예는 지금까지 고대 중국인의 정신과 육체를 불안하게 했던 외부의 포악한 대상들과 내부의 원시적 충동ㆍ환상ㆍ불안들과 대결하여 제압해왔다. 그리고는 자신의 노고와 업적을 왕에게서 ‘인정받기’를 희망하며 ‘승천’을 요구한다. ‘왕(아버지)에게 인정받음’은 당대 집단정신의 표상인 예가 정신의 통합과 성장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로 하는 조건이다. ‘승천(하늘에 오름)’은 사회에 공헌할 탁월한 능력을 지녔거나 업적을 이룬 자에게 주어지는 명예, 성공, 팔루스 인정 기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늘 왕으로부터 어떤 응답도 주어지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공동체를 위해 목숨 바쳐 헌신했건만 어떤 인정이나 보답도 받지 못하는 경우 ‘그 인간’의 정신성은 어찌 되는가? 혹시 ‘그 인간’이나 집단에게 어떤 근본 문제와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늘 왕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예는 매사에 의욕을 잃는다. 게다가 아내 항아마저 지상에 남게 된 것에 실망하여 아홉 태양을 제거한 예의 경솔한 행동을 비난한다. 그러자 예는 방황을 시작한다.> 2) 정체성 혼란 가치와 의미를 결정하는 ‘大타자’로부터 자기 행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개인과 집단은 정신의 정체성 형성과 자존감 유지에 문제를 지닌다. 大타자로부터 버림받는 자는 상징계의 규범에 대해 긍정적인 가치감을 지닐 수 없게 되며, 상징계에 긍정적으로 적응하는 삶을 살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아내 항아는 왜 ‘아홉 태양’을 제거한 예의 행동이 경솔했다고 비난했을까? 그리고 하늘 왕에게서 어떤 응답도 없음은 무엇을 뜻하는가? ‘아홉 태양’의 제거는 모계사회의 중심체계를 무너뜨린 행위였다. 그리고 출현한 괴물들은 대부분 ‘모성의 보호막’이 결핍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후유증상 내지 병리적 환상들이다. 그런데 고대 중국인의 집단정신 상태를 반영하는 ‘예’에겐 아직 ‘부계사회의 가부장적 힘’이 기대했던 만큼 만족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예는 태양 여신과 하늘 왕, 모계사회와 부계사회, 어머니 동일시와 아버지 동일시 사이에서 갈등하며 방황한다. 상심한 예가 안정된 정체성과 ‘힘의 주체’가 되어 만족스런 삶을 영위하려면 어찌해야 되는가? <예는 천하를 떠돌다가 낙수 강가에서 물의 신 하백의 아내 복비를 만나 사랑을 속삭인다. 그러나 이를 알고 노한 복비의 남편 하백과 싸워 그의 한쪽 ‘눈’을 다치게 하자, 복비와의 사랑도 끝이 난다.> 3) 연애 실패 왕과 아내 모두에게서 인정받지 못하자, 억울함과 화를 주체하지 못해 세상을 방황하던 예는 ‘강의 신’ 하백의 아내에게 애욕을 느낀다. 강은 고대인에게 농경수와 식수를 제공하는 생명의 원천이다. 따라서 ‘강의 신’은 고대인의 생존에 매우 중요한 신이다. 집단의 생명을 좌우하는 신의 위치와 가치는 마치 어린아이의 생명을 좌우하는 부모와 유사하다. 그렇다면 예가 유독 ‘물’(생명력, 애정)의 상징인 ‘강신의 아내’에게 욕망을 느낌은, 고대중국인이 정신의 회복을 위해 최초양육자의 따스한 애정 보충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다. 이는 또한 ‘아홉 태양’과 더불어 상실된 모성적 태양여신과 모계사회의 ‘좋은 기억’에 대한 당대 집단정신의 그리움과 회귀욕동을 상징한다. 고대중국인의 무의식을 대변하는 ‘예’가 집단 수호신(토템, 아버지)의 아내와 사랑에 빠짐은 무슨 의미인가? 이는 고대인이 무의식의 어떤 금지된 욕망을 어머니를 연상시킬 ‘성질과 위치’(‘권위자’의 아내)를 지닌 ‘(금지된) 대상과의 사랑’으로 전치시켜 은밀히 대리충족하려는 소망의 기표다. 그리고 상징계의 아버지로 등장한 하늘 왕에게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상처를, 퇴행하여 ‘여인’의 사랑으로라도 보상받고 싶다는 기표다. 그런데 예는 과연 ‘복비’와 진정한 애정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인가? 하백과의 대결에서 예가 승리하자, 복비는 기뻐하기보다 연인관계를 단절하고 하백에게 돌아간다. 예는 결국 오이디푸스 ‘삼각관계’에서 ‘여인’으로부터 가장 소중한 애정대상으로 선택받지 못한 것이다. 아내와의 불화에 이은 복비와의 사랑실패는 고대 중국인에게 이성과의 만족스런 사랑관계 능력이 심각하게 결핍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이런 미숙한 애정 능력은 이후의 부부관계에서 더 극명히 드러난다. <‘예’는 항아와 다시 결합하나 지상에서 늙어감이 느껴지자, 곤륜산의 서왕모에게 찾아가 불사약을 얻어낸다. 그 약은 두 사람이 먹으면 지상에서 영생케 하며, 한 사람이 먹으면 하늘세계로 올라가게 한다. 그런데 고향이 그리웠던 항아는 예 몰래 약을 혼자 다 먹고 하늘로 올라간다.> 4) 부부관계 파산 ‘불사약’은 신처럼 영생하고 싶어 하는 인류의 소망을 충족시키는 신비의 보물이다. ‘예’의 처지를 불쌍히 여겨 불사약을 준 서왕모는 마치 아이의 결핍과 불안을 파악하여 보충해주는 유아기의 전능한 어머니를 연상시킨다. 예는 서왕모의 따스한 배려에 위로를 얻음으로써, 하늘 왕에게서 무시된 상처를 회복하는 듯 보인다. 그런데 예의 정신발달과 행복을 위해 필요한 아내 항아는 ‘하늘나라’로 ‘돌아가고’ 싶어 불사약을 혼자 탐식한다. 남편보다 자신과 자신의 고향(부모)을 더 소중히 생각한 항아는 부모로부터 ‘분리-독립’하지 못한 유아적 인격체의 상징이다. 그래서 자신의 애정결핍을 채워주지 못하는 남편과, ‘현실세계’를 뜻하는 지상나라 대신에, ‘유아기 부모’와 함께 했던 상상계인 하늘나라(어린시절)로 퇴행하고자 ‘신비의 불사약’을 ‘혼자’ 먹은 것이다. 이런 지독한 자기애적(narcissistic) 퇴행 행동은 현실 환경이 너무 열악하거나 불만스러워 어떤 즐거움도 누릴 수 없을 때 종종 발생한다. 이것은 항아가 예와의 관계에서 어떤 기쁨도 누리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무릇 가정환경은 사회 환경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예의 가정파탄은, 고대의 중국사회가 결혼한 여성들에게 만족을 제공하지 못해 많은 여성들이 자기애적 상상계에서 보상을 구하는 삶을 살았다는 의미다. 예는 결국 이상적 동일시 대상인 하늘 왕, 애정대상인 복비, 편안한 안식 대상인 아내 모두에게서 버림받는 처지가 된다. 이런 불행한 사태의 심리적 요인은 어디에 있는가? 일차적으로 예는 모성성의 상징인 서왕모 이외의 어떤 여인들과도 온전한 친밀관계와 애정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을 보이지 못한다. 예가 당대의 민족무의식을 반영하는 인물상이라면, ‘예’는 모계제를 공격하는 화살을 쏜 주역인 동시에 어머니 애착에서 온전히 ‘분리ㆍ개별화’되지 못한 양면적 존재다. 그는 제3의 여인과 성숙한 애정관계를 맺을 정신의 성장을 미처 이루지 못한 자기애적 인격의 원형상이다. 자기애적 성격자는 자신의 결함을 온전히 성찰하지 못한다. 그로인해 원인도 모른 채 ‘권위자’(하늘 왕, 하백)와의 관계에서 실수와 실패를 반복했던 것이다. 강박신경증자는 무의식에서 자신을 ‘거세되지 않은 완전한 주체’라고 여기는 자기애적 환상을 지닌다. 그는 만족을 주던 ‘최초대상(젖가슴, 어머니)’을 영원히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는 환상을 통해 ‘최초대상’의 상실을 보상받으려 드는 자다(핑크 1997). 그는 ‘욕망대상’을 이미 ‘자신의 소유물’로 내면에 지니고 있기 때문에, 현실에서 접하는 타자의 존재가치나 욕망을 그 자체로 인정하거나 공감하질 못한다. 그 때문에 타자일반과 진정한 친밀관계나 상호주체적인 대화관계를 맺지 못한 채 스스로 고립되는 상황을 반복해서 초래한다. 강박증자는 의식으로는 누군가를 위해 많은 정성을 기울인다. 그러나 그것은 의식의 관념과 행동일 뿐, 무의식의 구조와 정서는 항상 자기중심적이다. 그는 욕망 대상(환상)을 자기 내부에 지니고서 ‘그 대상’과 더불어 산다. 그로인해 그가 현실에서 접하는 어떤 여성들도 진정한 욕망대상이 아니라 무의식의 성 환상을 일부만 자극하는 ‘부분대상’ 내지 일반적 타자에 불과하다. 예의 경우 그는 겉으로는 아내나 연인에게 사랑을 갈구하며 관계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마음속의 ‘그 여성’(어머니, 태양여신, 서왕모)과 관계하는 것이다. 현실의 어떤 여성과도 진정한 친밀관계를 맺지 못하므로, 그와 관계하는 여성들을 이내 답답함과 깊은 우울에 빠지게 만든다. 그리고는 마치 자신이 애정대상들로부터 부당하게 거부당해 상처받는 것인 양 착각하는 사태에 반복해서 처하게 된다. 무의식의 차원에서 보면, 이런 불행은 스스로에 의해 자초된 것이다. “나의 진정한 가치를 모른 채 날 함부로 비난하고 실망시키는 이 하찮은 여자들아. 너희들이 나를 아무리 거부해도 난 상처받지 않아. 내 삶이 너희들에 의해 영향 받을 줄 알지? 천만에. 난 이 세상에서 거세되지 않은 유일한 분이며, 내가 소중히 여기며 그리워하는 진짜 연인은 내 마음 깊은 곳에 늘 그대로 있단 말이야!” 강박증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고착되어 있기 때문에,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권위자(하늘 왕, 하백)와 좋은 관계를 맺기 어렵다. 나아가 아버지에 대한 긍정적 동일시에 실패해 양가감정과 갈등에 시달리기에, 자신 역시 타인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베푸는 온전한 권위자 역할을 하기 힘들다. <아내와 불사약 모두를 잃게 된 예는 고통을 잊고자 제자들에게 궁술을 가르치는 일에 몰입한다. 다행히 ‘봉몽’이라는 뛰어난 수제자를 얻고 기뻐한다. 그러나 봉몽은 스승의 활솜씨를 질투하여 복숭아 몽둥이를 예에게 내리쳐 죽인다.>. 5) ‘불행한’ 최후 어머니 애착에서 온전히 ‘분리ㆍ독립’하지 못했거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심한 남자는 아버지 역할도 스승 역할도 진정으로 하기 어렵다. 제자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상태에서는 의식의 힘으로 헌신적이고 고상한 스승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수제자와 친밀관계 국면에 접어들 경우, 무의식에 ‘분열’되었던 ‘엄마-나’ 관계 속의 상처와 불안, 아울러 오이디푸스 상처와 갈등이 역동한다. 그로인해 한편으로 탁월한 스승 역할을 행하지만 다른 편으론 스스로의 권위를 깨뜨려 지금까지 쌓아온 공적을 ‘무효화’(undoing)시키는 자기모순 행동을 저지르곤 한다. 공동체를 불안하게 하는 ‘나쁜 대상’들과 필사적으로 대결한 예의 행동은 의식의 차원에서 보면 매우 정의롭다. 그런데 이후 그의 정신은 자신이 처치한 아홉 태양과 모성신, 괴물들, 연인의 남편 ‘하백’이 사실은 자기 인생에서 중요한 ‘대상’의 부정적 측면임을 자각한다. 예가 ‘왕’과 국가로부터 공식적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은, 그가 ‘권위자’ 일반을 향한 당대 집단무의식의 부정적 메시지를 내포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타부 일탈자들을 처치한 예에게 역설적으로 타부파괴성이 담겨있는 것이다. 예는 ‘권위 대상’을 갈망하고 증오하는 고대 인류의 경계선 인격과 강박증 인격의 상징이다. 경계선 인격은 자신의 연약한 정신을 응집시켜줄 힘있는 권위자를 갈망하고 우상화한다. 그러나 그 대상에게서 어떤 실망과 좌절을 느낄 경우 태도가 돌변하여 극도의 증오와 경멸감을 분출하는 ‘양극 감정’을 지닌다. 이에 비해 ‘대상’에 대한 ‘양가감정(애증 갈등)’을 지닌 강박증자는 무의식에서 금지된 욕망의 충족(타부 파괴)을 반복하면서 아울러 초자아로부터의 심한 비난에 시달린다. 그는 죄책감을 벗어나고자 자신을 처벌하고 파멸시키는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한다. 이런 자기 파괴적 무의식은 제자에게 암암리에 전달되어, 자신을 몽둥이로 잔혹하게 때려죽이는 ‘행동화’를 유발한다. 마치 부모의 무의식이 자식에게 내사되어 반복되듯이, 예는 제자(자식)에게 공격당함으로써 왕(아버지) 대신 ‘아홉 태양’ㆍ괴물들ㆍ하백을 파괴했던 자신의 삶을 복제시킨다. ‘예’의 이런 최후 모습은 권력자의 횡포가 두려워 공격성이 극도로 내향화된 고대중국 민중의 ‘피학적 무의식’ 상태를 반영한다. 복숭아나무는 생명력의 상징이다. 복숭아는 생기 넘치는 여성의 젖가슴을 연상시키며 그 활력 때문에 죽음욕동의 상징인 나쁜 귀신들을 쫒아내는 힘을 지닌다. 가령 일본의 시조신 이자나기는 저승 귀신들을 쫒을 때 복숭아 열매를 던지고 복숭아 막대로 내려쳤다. 그렇다면 복숭아 몽둥이로 어떤 대상을 내려침은, 그 대상을 제물삼아 집단의 생명력이 활성화되기를 기원하는 관습 의례로 볼 수도 있다. 예는 젊은 수제자에게 자신의 생명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집단에 공헌하는 영웅의 마지막 길을 간 것이다. 집단과 영웅은 외견적으로는 상호 힘을 주는 긍정적 관계인 듯 보이지만, 다른 편으론 대립적 긴장관계를 지닌다. 그것은 영웅의 ‘최후’ 모습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아무리 강력한 힘을 지녔던 영웅일지라도 ‘인간’이기에 나이가 들면 노쇠해지기 마련이다. 그로인해 한 때 집단의 우상이던 영웅은 노쇠해질 경우 집단의 ‘이상화된 환상’을 깨뜨림으로써, 집단에 불안을 일으키는 ‘짐’이 되곤 한다. 집단이 칭송하는 영웅은 집단을 위해 기여하는 비범한 힘을 지니는 기간과, 더 강한 새 영웅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갈망되는 ‘잠정적 영웅’인 것이다. 집단이 원하는 ‘완전한 모델’이 되려면 그는 힘이 노쇠하기 전에 새 영웅에게 살해당해야 한다. 그래야 집단의 생명력이 안전히 유지된다고 고대인은 믿었다(Frazer 1890). 그래서 신화 속 ‘예’는 자신의 과업을 실현한 후에 집단이 원하는 영웅 상에 걸맞게 가장 유능한 제자에게 살해당한 것이다. ‘예’신화에 표현된 파괴적인 스승과 제자 관계는 고대 중국 백성의 무의식이 ‘권위 대상’에 대해 시기와 박해불안, 그리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고착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이런 ‘분열’된 분노와 파괴욕동이 예 신화를 통해 표출되면, 부드럽게 정화되어 공동체를 위한 에너지로 전환된다. 이 점에서 예는 중국민족의 정신적 불균형을 보상해주는 소중한 영웅 상으로 존재한다. <예는 죽은 후에 ‘나쁜 귀신을 쫒는 역할’을 하는 귀신의 우두머리인 종포신으로 섬김 받는다.> 6) 죽은 후의 보상 종포신은 밭에서 제사하기도 하고 방 안에서 제사지내기도 하는 민중의 신이다. 산천의 신과 일월의 신에게 홍수와 가뭄 및 역병 등의 “재해를 막아 달라”는 의미에서 제사하는 것이다. 즉 예는 국가나 왕이 공식적으로 제사지내는 영웅 신이 아니라 민간인이 자연재해를 피하기 위해 숭상하는 민중의 신이 된 것이다. 힘없고 불안한 일반백성들의 무의식엔 포악한 ‘괴물들’을 퇴치한 ‘예’의 행동과 능력이 보배롭게 느껴졌던 것이다. ‘예’가 죽어서 자연재해를 막아주는 수호신으로 숭배되었다는 사실을 초점으로 신화 전체를 사후해석(事後解釋)한다면, 예가 퇴치한 태양과 괴물들은 옛날에 실재했던 ‘자연재앙’들의 상징이다. ‘열 태양’은 극심한 가뭄을, 괴물들은 농작물의 흉년과 식량을 축내던 ‘나쁜 대상’들, 거대한 새 대풍은 폭풍의 상징이다. 그리고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 괴인, 큰 뱀, 멧돼지는 고대중국인을 괴롭혔던 야수나 주변 민족을 상징한다. 3. 첨가하는 말 ‘예(羿)’는 힘든 일을 하고도 권위자의 인정을 받지 못해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워하던 고대 중국민중의 형상이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타자(왕과 공동체)를 위해 봉사만할 뿐,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향유’하지 못한 인격체다. 중국신화는 그 기저에 공동체 중심주의를 강하게 깔고 있다. 그것은 고대 중국의 집단정신이 열악한 생존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개인의 행복과 정신발달보다 집단의 안전에 일차적 관심을 쏟아야만 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공동체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왕’과 사회가 요구하는 과업을 충실히 수행하는 인격이 일차적 ‘영웅 상’들로 등장한다. 정신분석학자는 이런 영웅상이 ‘검열’되고 변장된 이미지임을 유념하여, 고대인이 비합리적 상징들을 통해 전달하는 무의식의 메시지를 읽어내야 한다. 가령 예는 집단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탁월했지만, 자신의 행복과 인격발달을 성취하는 데는 무능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표면적으로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넘어 통치자의 요구와 집단의 요구를 실현하는 성숙한 행동을 보인 영웅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에겐 사회적 보상과 개인적 행복이 너무도 결핍되어 있다. 이런 인격은 결코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이상적 동일시 대상이 될 수 없다. 예의 ‘꼬인 인생 모습’ 에는 당대 민중의 ‘꼬인 무의식’이 투사되어 있다. 예(민중)는 표면적으론 권위자의 명령과 당대 대타자의 규범요구를 충실히 수행한다. 그런데 ‘정신분석의 눈’으로 보면 그의 정신과 행동은 과도하게 억압된 공격성과 징벌적 초자아로 인해 모든 긍정적 관계들을 파괴하여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그는 결코 성취한 과업의 결실을 온전히 향유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 ‘예’에겐 불행들이 ‘반복’된다. 그는 천제의 명령을 받아 태양들을 제압했고, ‘괴물들을 퇴치’했지만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한 채 버림받는다. 연애에 몰입했으나 경쟁자 하백과의 삼각관계 애정대결에서 패배한다. 그리고 서왕모의 모성적 배려로 불사약을 얻었으나, 그것이 오히려 ‘아내와 영생을 모두 상실’하게 하는 화근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 열정을 쏟아 제자를 키웠으나 제자에게 살해당한다. 죽은 후에도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제사지내주는 ‘주요 신’이 되지 못한다. 이처럼 불행한 모습들은 대체 ‘누구’에 관한 이야기인가?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괴상한 영웅’ 이야기를 외부세계를 향해 뱉고 싶어 했을까? ‘예’는 누구의 어떤 무의식을 반영하는가? ‘선행’에도 불구하고 예에게 주어진 반복되는 불행의 심리적 원인은 대부분 무의식의 ‘반복 강박’에 기인한다. 예는 아버지 관계, 부부관계, 연애관계, 제자 관계 모두에서 반복되는 좌절을 겪는다. 이는 ‘예(羿)’라는 구비신화를 창조해낸 주체인 고대 중국민중의 정신성에 심각한 ‘대상관계’ 결함이 있다는 징후다. 예의 화살 공격에 당황해했던 ‘아홉 태양’을 어떤 대화나 타협도 없이 모두 살해한 것은, ‘대상’을 향한 시기심이 심하다는 징후다. 그리고 부부관계 파산은 유아기에 엄마와의 애착관계에 문제가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하늘왕에게서 공적을 인정받지 못했음은, 백성과 왕 사이에 온전한 대화 관계가 형성되지 못했다는 기표다. 예가 살해한 괴물들은 고대 중국인들의 무의식에 있던 파괴욕동과 부정적 내적대상, 박해환상과 박해불안이 투사된 형상들이다. 그것들은 고대 중국인의 집단의식이 대면하여 통합해야 할 ‘분열-해리’된 가학적 구강욕동과 항문욕동의 기표다. 다수의 괴물들은 중원을 둘러싼 여러 종족들에게 끊임없이 침략 당했던 중국민족의 박해불안을, 불사약을 구함은 죽음불안의 반영이다. 예 신화에 등장한 여인들은 고대중국인의 다양한 정신 유형을 드러낸다. 항아는 자신을 보호해주고 자신만을 위해주는 힘 있고 자상한 대상을 필요로 하는 자기애적 인격의 원형상이다. 그리고 복비는 아버지 같은 남성의 애정을 갈구하는 히스테리의 원형상이다. 히스테리는 힘 있는 누군가의 애정대상이 되기를 갈망하며 대상을 유혹하지만, 막상 그 대상이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불안이 올라와 그를 피하게 된다. 그래서 예가 하백을 물리치고 자신을 독점적으로 소유하려는 상황이 되자 예를 피한 것이다. 그렇다면 예의 억울함과 죽음불안을 공감해주며 예의 요구를 흔쾌히 들어준 서왕모는 어떤 정신 유형을 상징하는가? 예의 유일한 조력자는 ‘서왕모’ 뿐이다. 서왕모는 고대중국인의 무의식 중심에 위치하는 ‘좋은 엄마상’ 또는 근원적 욕망대상의 표상이다. 그녀가 준 불사약은 유아기 엄마가 아기에게 준 젖과 애정의 상징이다. 그런데 여인들과의 관계에서 예의 애정충족 욕구가 모두 좌절된 것을 반추해보면, 서왕모는 예에게 과도한 애정을 베풀어 결과적으로 유아적 모성애착에 고착시킴으로써 성숙한 남성성 발달을 방해한 ‘남근 엄마상’이다. 엄마가 남아에게 과도한 애정을 쏟을 경우, 남아는 성장한 후에도 모든 여인들이 마치 어릴 적 엄마처럼 늘 자신을 가치롭게 여기면서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자기애적 환상에 고착한다. 이런 강박증적 성격과 환상은 애정관계이든 권위자와의 관계이든 평생 반복되는 불행의 원인이 된다. ‘대상’들과의 관계에서 나쁜 상황이 반복되는 원인은 다양하다. 가령 개인사의 차원에서 뭔가를 욕망할 때마다 어떤 불안이 일어나 ‘관계’가 파괴되는 것은, ‘초기 상처’를 재현하는 행동을 통해 무의식의 긴장을 완화하려는 몸짓이다. 이점에서 예의 ‘반복’되는 인간관계 실패는, 고대 중국민족의 정신에 초기 상처가 매우 깊어 모든 자극과 긴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고픈 죽음본능이 크다는 기표다. 태양들과 괴물들의 난동을 제압하고, 복희와 연애를 하고, 불사약을 구하여 아내에게 주고, 제자를 키우는 등의 ‘예’가 한 행동은 ‘삶 욕동’의 표현이다. 그러나 그 관계들이 좌절을 반복하고 있음은 고대 중국인이 감당해내지 못한 깊은 정신 문제를 반영한다. 그것은 공격성 표출이 극도로 억압ㆍ내향화되어 생겨나는 극심한 자아파편화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과 세상을 파괴하고 싶어 하던 당대인의 죽음욕동이 매우 강했다는 기표다. 예가 죽은 후 추대된 ‘종포신’은 인생의 ‘만족’이나 행복 증진과는 무관하다. 그는 단지 죽음으로부터 보호받으려는 ‘안전’욕구에 의해 숭배되는 신인 것이다. 4. 맺는 말 이 논문의 일차 초점은 신화에 등장하는 대상들과 사건들이 어떤 ‘무의식적 의미’를 지니는지 다중으로 해석하는 데 두었다. 그런데 신화는 ‘사실’의 요소와 ‘소망 환상’의 요소를 함께 내포하며 무의식의 ‘원 의미’들을 개념이 아닌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신화의 의미를 의식의 관점과 개념으로 단순명료하게 ‘설명’하는 순간, '그것‘의 참뜻은 사라지게 된다. 필자는 이 점을 고려하여 정신분석 개념들을 ‘유동적으로 적용’해 마치 시와 꿈을 음미하듯이 신화의 무의식적 의미를 ‘불확정적’으로 연상하고 해석하였다. 이 논문의 이차 초점은 신화 속 등장인물의 특성과 행위를 음미해 당대인의 정신발달 상태와 정신구조 유형 및 사고 유형을 임상적으로 진단하는데 두었다. 가령 ‘예’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괴물들의 성질을 세세히 주목하니, 고대의 중국인이 클라인의 ‘편집-분열적 자리’ 박해환상, 박해불안, 원시적 방어기제 그리고 프로이드의 구강기 욕동들에 많이 고착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의무에 헌신하지만 반복해서 불행에 빠지는 예의 모습에서 고대중국인의 반복강박과 강박증적 정신구조가 읽혀졌다. 또한 예 신화에 개인감정 묘사가 거의 없고 공동체를 위한 과업수행만이 부각된 것은, 고대중국인이 주체적 감정과 판단력을 지닌 ‘개인’으로 분리-독립하지 못한 정신단계에 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아울러 예의 곤혹스런 최후는 당대의 중국인이 “영웅은 노쇠하기 전에 강한 힘을 지닌 후임자에게 살해되어야 집단의 활력이 유지될 수 있다”는 원시적 정령사상과 ‘주술적 사고’를 지녔음을 드러낸다. 예 신화의 의미에 대한 정신분석적 해석은 고대중국인의 정신성과 인류의 ‘무의식’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삼천년 전 중국인의 정신성과 현대 중국인의 정신성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현대 중국인의 정신성에 대한 지식이 축적된 이후에야 온전한 비교와 해석이 가능해 질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고대 중국인의 무의식에 대한 이해를 축적하면, 현대 중국인의 정신성 이해가 보다 용이할 것으로 추정된다. 무의식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무시간성과 반복되는 보수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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