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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설법
관리자(cjlee7600@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07년 05월 19일 16:23 2072
<법문>


*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실제로 와서 도와준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관세음보살이 바로 내 안에 있다는 이치다.
내 안에 있는 불성이
관세음보살이 되어 나를 도와주는 것이다.

* 보시는 나중에 되갚음 받는 게 아니라,
그 마음을 내는 즉시 마음이
열리고 속에서 빛이 나온다.
그 빛이 우리를 밝은 곳으로 인도해준다.

* 업을 두려워하지 말라. 업을 만나면,
그것을 통해 내관(內觀)할 수 있으니
도리어 기회가 된다.
업을 내관의 계기로 삼는 게 지혜다.

* 구름이 대기의 표현이듯이,
희로애락도 인간의 기의 표현이다.
마음의 구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하늘의 구름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 무아(無我)란?
나를 세우자마자 무너지는 것이 무아다.
그 자리는 나를 세울 곳이 없다.

* 아는 것이 진정으로 힘이 되려면,
지혜가 받쳐주어야 한다.

* 경전 구절 따로, 생활 따로 되어서는 안 된다.
구절구절이 생활 속에서 증명되어야 한다.

* 망상을 생각으로 보지 말고,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망상이 밀려오면,
피하지 말고 당분간 그놈과 같이
살아버리겠다고 하고 껴안아버려라.
그러면 잦아질 것이다.
그러면 망상과 마음이 구별이 된다.
그래야 참선이 가능하다.

* ‘마음의 눈’에 꼭 이름을
붙이자면 지혜라 할 수 있다.
지혜는 생각과 다르다.

* 체험 없는 신심은 가짜다.
체험 후의 신심이 진짜 신심이다.
이 신심이 나면, 문수고
부처고 조사고 다 쳐버릴 수 있게 된다.

* 마음의 본성은 모두가 같은데,
생각이 일어나 다르게 된다.

* 조금이라도 경험을 하면 아는
생각이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서 머물면 아만통이 생긴다.
어려운 스승 밑에서 공부 안하는
선객은 다 이 병에 걸려있다.
자기 경험만 지키고 사는 문지기가 되고 만다.

* 공부가 발라지면, 저절로 소견이 발라진다.
소견이 바르면, 행동은 正行이 되고,
생활은 팔정도로 나타난다.

* 참선을 하는 사람이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번뇌 망상과 마음이 구별되지 않아서이다.
망상을 봐버리면 공부길로 들어간다. 한 번 알게 되면,
밖에서의 유혹에서 놓여나게 된다.
그러면 자기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공부하면 몸도 아니고
마음도 아닌 것을 관하게 된다.
그러면 세상에 흔들림 없이 살게 된다.

* 시장통에 가면 수많은 묘용(妙用)을 볼 수 있다.
묘하게 있어서 쓰여지는 모습.
그것을 보는 사람은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다.

* 나한테 부처가 있으니,
바로 하기만 하면 틀림없이 체험된다.
그것을 믿고 초보자는 번뇌 망상을 피하지
말고 같이 살면서 그 정체를 봐나가야 한다.

* 임제 스님이 삼현(三玄)을 말씀하셨다.
구중현(句中玄)은 말을 듣다가
의식된 빈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체중현(體中玄)은 몸 안에서 빈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 경우, 몸에서 변화가 오면
그 빈 것은 무너지고 만다.
현중현(玄中玄)은 몸이 비었다고 보는
그 눈이 빈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나와 경계가 다 비기 때문에,
경계가 일체 사라져버린다.
임제선이 겨냥하는 것은 이것이다.

* 불교는 경전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이며 현실과
자기 마음을 관계시키는 것이다.
문제를 인간 안에 있는 부처와
연결시키면 일체가 풀어진다.
이것이 일체유심조의 의미다.
불교는 이렇게 자기 마음을 푸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날마다 부처를 경험하고 산다.
이렇게 불교는 생활이고 쉬운 것이다.

* ‘결(結)’은 어떤 일의
마지막 단계로 맺힌 것을 말한다.
일상어 중에는 이 글자가 들어간 것이 많다.
불교는 이것 풀자는 것이다.
내 마음에 맺혀있는 것 풀자는 것이 불교다.
그것을 풀지 못하면, 그 안에서 뱅뱅 돌게 된다.
윤회가 그것이다. 사람은 맺혀져 있는 게 문제다.
모든 판단에 그것이 개입하고, 화평을 깨고,
상대를 믿지 못하고, 매사에 부딪친다.

* 요즘엔 사회 걱정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정치, 경제가 다 싫고,
입만 열면 만사를 부정적으로 말한다.
자기처럼 사회 걱정하는
사람만 찾아다녀 끼리끼리 모인다.
유유상종이다. 사회 문제를
자기들이 다 떠맡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은 자기 마음이 문제인 줄 모른다.
자기가 자기를 등지고 있는 줄 모른다.
사회 걱정 하느라고 자기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자기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면, 사회가 문제일 수밖에 없다.
자기가 복잡하니, 사회가 복잡하다. 자기가 단순해지면,
사회도 단순해진다. 사회 걱정에 앞서 자기
걱정을 해야 사리에 맞다.
자기가 풀어지면,
사회도 풀어지게 되어 있다.
진리의 고향으로 돌아가면,
사람들이 모두 부처의
묘용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 마음을 미리 일으키지 않고 사람을 대하면,
상대방의 마음이 환히 비친다.
재벌이나 정치가나 스타도
마음엔 어둠이 쫙 깔려있다.

* 가르쳐보니까, 믿음으로 시작하는
사람은 변화가 빨리 오고,
아는 대로 맞춰가는 사람은 어렵고 마음이 시끄럽다.

* 본성에서 나오는 마음과 번뇌에서
나오는 마음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 모든 사람은 항상 곧 깨칠 준비 상태에 있다.

* 자기 마음을 보는 눈이 생기려면, 생각을 놓아야 한다.

* 믿음만 있으면, 많이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

* 법문 듣는 게 중요하다.
듣다가 순간적으로 자기와 계합될 수 있다.
그때 자각이 오면서, 씨앗이 싹트기 시작한다.

* 부처나 중생이나 마음은 같은데,
부처는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중생은 마음에 집착한다.

* 구름 사이로 한 번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지만,
구름이 흘러가고 나서 다시 그때
그 하늘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미 흘러가버린 것에 집착하지 말라.
설사 부처를 보았다 해도 그것은 그때 부처고,
지금은 다시 시작해야 한다. 법집에서도 놓여나야 한다.
경험이 있어 지키면 아만을 부른다.
구름 위에 집을 지어놓고 살고 있는 사람은 빨리 나와라!

*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불성이 있다.
젊은이는 뛰쳐나가고, 늙은이는 주저앉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누구나 공부가 가능하다.

* 옛사람이 말했다. “내가 이불 속에 들어가면,
부처도 따라서 들어가고, 내가 일어나면,
부처도 일어난다. 부처 가는 곳을 알려면,
내 마음 가는 곳을 보면 된다.”

* 어마어마한 부처님 세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생활 자체가 부처님 세계다.

* 부처 마음은 지극히 고요하고 지극한 낙이다.
나한테도 그런 마음이 있는가
참작해 보는 것이 참선이다.

* 관자재보살이란 관하니까 스스로 자유자재한
지혜가 있다는 것을 안 보살이다.
그 분이 있는 곳엔 번뇌가 끊어진다.

* 자기 마음을 보면, 모든 도리가
하나로 꿰뚫어져 있는 것을 알게 된다.

* 마음이 복잡한 사람이 세상을 보면,
산이 산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항상 출렁이게 되어 있다.
고통의 연속이다.

*누구에게나 자각 증상이 있다.
그러니 누구에게나 ‘깨닫는 성품’도 있다.

* 초보자가 담박에 이뭣고 화두를 잡으면,
죽도 밥도 안된다. 화두는
바른 믿음이 있는 자에게 가능하다.
초보자는 믿음부터 다지고 들어가야 한다.

* 불성의 개념을 이해하고 참선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 법문은 잘하는데, 자기 감정 하나 조절 못하고
이상에만 사는 선객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정직하게 자기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주인을 지키는 세퍼트 노릇만 하고 산다.

* 불성이란? 조주는 무(無)라고 했다.
형상이 없다. 그런데 여기
이 순간에 있으며 작용하고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작용을 하고 있다.
있는데 보이지는 않으니, 이뭣고? 하게 된다.

* 관하는 힘이 커지면, 정이 익혀지고, 지혜가 생긴다.

* 화두법은 불교의 핵이다.
붓다가 경험한 것을 나도 경험하는 것이다.

* 대개의 선객들은 깨치는 것은
이런 것이다 고는 아는데,
자기가 깨치지는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나온 선문답은 병폐다.

* 마음을 알아야 한다. 작용은 하는데
마음도 부처도 중생도 아니다.
[???] 불성을 관해서 마음에 대한
감지가 와야 화두를 할 수 있다.

* 불성은 망상이 아니라, 실상이다.

* 불성을 자각하면서,
감지하면서 묘용을 봐야 의정이 생긴다.

* 불교의 ‘없다’는
‘있되 물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있되 걸리지 않는다’고 해도 좋다.

* 일반 불자들은 큰스님을
친견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한다.
있는 문턱도 없게 해야 하는데,
없는 문턱을 왜 있게 하는지 모르겠다.

* 육조사의 공부 분위기는
부처님 당시와 같이 해보려고 한다.

* 생활 자체가 불교지, 경 공부가 불교가 아니다.
모든 행동 속에 여래가 있기 때문이다.

* 나는 하나인데, 일어난 번뇌도 번뇌,
없애려는 생각도 번뇌다.
하나인 나에게서 두 생각이 나니
충돌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번뇌를 없애려고 하지 말고,
번뇌를 보려고 하라.
번뇌와 같이 살 줄 알아야 참선 잘하는 사람이다.

* 번뇌가 일어나면, 그 때문에 자기 마음이
가려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번뇌를 주시하여, 이윽고 가라앉으면,
그때 마음을 경험할 수 있다.
연꽃은 시궁창에서 핀다.
불성은 번뇌와 같이 있다. 번뇌를 좋게 써야 한다.

* 정이 깊어지면 식이 밝아지는데,
그때 화두를 안 하면 식의 밝음에 놀아나게 된다.
화두로 무심까지 가야 그 식이 쉬어진다.
밝은 식도 번뇌의 일종이다.
그것을 ‘마른 지혜(乾解)’라고 한다.

* 번뇌 망상을 확실히 감지할 수 있어야 공부가 시작된다.

* 공부가 안된 사람은 앉아야 되고,
된 사람은 생활 중에서 공부해도 된다.

* 믿음이란? 나는 부처 마음이 있는데,
단지 흐트러져 있다는 것.

* 틀리면 빨리 다시 시작해야 용기 있는 사람이다.
용기 있는 사람만이 공부를 성취한다.

* ‘빨리’가 아니라 ‘바르게’!
바르게 공부하려면 법문을 들어야 한다.
마음 바뀌는 것은 순간이다.
그 순간은 대개 법문 듣는 중에 온다.

* 자기를 믿으면 걱정할 게 없다.
번뇌가 있어도 그곳에 내가 있고,
천당이나 지옥에 가도 그곳에 내가 있다.
내가 있으면 걱정할 게 없다. 번뇌는 내가 아니다.
그러면 뭐가 나냐?

* 석가가 자기를 보았다는 게
어떤 경험일까? 생각해 보라.

* 마음의 6개 문(육식)으로 나가면 바로 시장통이다.
안에 있으면 마음이다.
마음을 알고 행동하면, 무위(無爲)가 된다.

* 귀신은 몸 없는 귀신이고,
사람은 몸 있는 귀신이다.

* 많이 풀려고 하지 말고, 하나를 풀려고 해라.
그 하나 때문에 윤회하게 된다.

* 자기 마음의 말을 듣게 되면,
세상의 상식이나 도덕에 사로잡히지 않게 된다.

* 육식이 비어야 윤회가 끊어진다.
참선은 무서운 공부다.
마음뿌리가 비어있다는 것을 경험하는 공부다.
몸과 마음은 뿌리 없는 나무다.

* 선문답이나 게송은 자기와
남을 속이는 일이 되기 쉽다.

* 진리의 고향, 믿을 데가 있으면 얼마나 좋으냐.
거품과 환상이 걷히는 곳.

* 성품은 비어 있으면서 비추는 성질이 있다.

* 종교, 종교 하는데,
깊은 차원에서 보면, 종교는 없고 사람만 있다.

* 마음은 오장육부에서 일어나는 작용으로,
감정과 기운과 지혜 등으로 표현되고,
생각은 두뇌 안에서의 뇌파작용이다.
사람들은 대개 생각이 앞서기에 마음을 모른다.
서산대사는 “마음을 모르고
공부하면 어리석음만 는다”고 했고,
육조 혜능은 “마음을 알아야
성품을 본다”고 했다.
망상은 망할 생각이다.
상(想)은 상(相)에 집착한 마음이다.

* 마음은 항상 있다.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괜찮지만,
마음이 실리지 않은 생각은 헛돈다.

* 미운 사람이 옆에 있을 땐, 미워할 수 있다.
하지만 미운 사람이 옆에 없는데도,
미운 생각이 떠나지 않으면 그것은
미운 생각이 망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 망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있지도 않은데 혼자
만들어 있다고 하는 것’이 망상이다.

* 망상이 쉬어지면, 생각이 쉬고,
그러면 마음이 보인다.
그때 부처의 성품을 돌이켜 그 묘용을 본다.
마음이 일어나는 곳을 보면, 생각이 끊어지고
맑아져서 미워하는 마음이 보인다.
그 마음이 보이면 지혜로 바꿔진다.
마음을 보면, 내가 바꿔진다.
참선은 사람을 바꾸는 공부다.

* 내가 있는 곳에 부처가 있다는 것을 알면,
밖으로 찾는 마음이 쉬어져 살만하게 된다.
사람들은 괜히 나를 가려놓고
스스로 속아서 밖으로 찾으러 다닌다.
‘나’에 집중하면,
생활이 단출해진다. 일이 공부로 돌아온다.
사람 대하는 눈이 변하니까,
사람을 달리 대하게 된다.
일반인들은 작심삼일이지만,
참선을 하면 근본이 변할 수밖에 없다.
마음을 모르니 작심하지만,
마음을 알게 되면 작심할 필요가 없다.
가려진 것을 벗기는 새해를 맞자.

* 생명에서 벗어나는 게 망상이다.

* 바깥으로 치닫는 것을 안으로 돌이키는 것,
견문각지를 돌려 그것을
대하는 자를 보는 것이 참선이다.
바깥은 환상이고,
그것을 대하는 내 안의 본성이 나의 진실이다.

* 번뇌 망상은 내 마음을 대상에
뺏겨서 돌아올 줄 모르는 것이다.
불교는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 참선을 하게 되면,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도리라는 것을 알게 되고,
삶 자체가 교실로 변한다.

* 눈이 보는 게 아니라 눈의 뿌리가 눈을 통해 보는데,
그것이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마음을 돌이키면 바깥 경계는 끊어져 나가 버린다.
참선은 끊어가는 공부다.

* 다른 삼매는 깨어나면 다시 흩트려지지만,
참선 삼매는 그 자체가 깨어있는 것이다.

* 내 마음을 봐야지. 펄펄 살아있는 이 마음을 봐야지,
일어난 생각을 따라가면 안 된다.

* 참선은 무슨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더 현실적이고 정확하고 생생해지는 것이다.
이상한 공부가 아니라,
환상을 벗겨 깨어있고자 하는 것이다.
세상을 잘 살려고, 정상인이 되려고 공부하는 거다.
이것을 거꾸로 생각하는 것이 전도몽상이다.

* 사람은 환상으로 꿈을 몇 층이나
지어놓고 그 안에 갇혀 산다.
그 환상과 자기 본성 사이의 거리가 ‘겁’이다.

* 공부하면 시공이 없어지니까, 부처, 육조,
마조와 마주 대하게 된다. 노사(老死)가 없다.
늘 그 분들과 함께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

* 부처는 불상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다.

* 상념 속에 있는 망상,나를 떠났으니 망할 놈이다.
* 여러 마음 중에서 어떤 것이 眞마음이냐?
견문각지를 대하는 자를 관하면
다 사라지고 하나만 남는다.
그게 一句다. 그것을 깨달아버리면
다른 雜마음에 초연해진다.
초연해지니까, 그림자(幻)가 되어버려,
집착이 끊어진다.

* 견문각지가 비었더라.
빈 것을 알고 대하는 자는 누구냐?

* 참선을 하면, 모든 경전이 일거에 다 풀린다.

* 선악이 없는 게 아니라,
선악 속에 있지만 물들지 않는다.

* 불성은 심왕이다. 심왕이 사자후를 하면
뭇 짐승(잡심)이 도망친다.

* 어디다 화두를 하느냐?
깨달음의 씨앗에다 화두를 두어야지!
그래서 ‘佛性 觀’을 한다.

* ‘불성 관’을 하면,
보는 자마저 바깥으로
떨어져 나가고 관만 남는다.
그게 의정이다.

* 저녁예불 할 때 종을 치면서 “종소리를 들으면
번뇌가 끊어진다(聞鐘聲 煩惱斷)”고 한다.
종소리를 듣고 있는 그 자리가 부처님이다.
귀는 부처님과 연결되어 있다.
귀를 통해 들을 줄 아는 것,
듣는 성질이 부처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들을 줄 아는
그 마음을 보면 번뇌가 끊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그 선심(禪心)에 들면,
지혜가 자라나고 보리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면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는다(離苦得樂)’가 된다.
이것이 종교의 목적이다.

* 깨달은 자가 본 인생의 실상은 苦海라는 말이 맞다.

* 지진 해일이 밀려와서, 사람 시체는 산처럼
쌓였는데 짐승 시체는 없었다고 한다.
확실히 사람은 환상 속에 살고,
짐승은 본능의 실상 속에 살고 있다.

* 살아있으면 속에서 열(급한 마음)이 난다.
그 마음을 봐야 수행이 된다.
가장 가까운 자기 마음을 봐야 한다.

* 속상한 마음이 날 때,
바로 공부의 기회로 삼으라.

* 살아있는 한, 민감한 몸이 있는 한,
근심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생각만 많지 돌이켜보지는 않는다.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 만남이란? 마음이 열려
만나는 게 진짜 만남이다.
날마다 같이 사는 가족이나 직장 동료도
마음을 열지 않고 만나면 헛 만남이다.
오랜만에 만나도 마음을 열고
만나면 깊은 만남이 된다.
스승과 도반과의 만남이 그렇다.
서로 거룩하고 귀하고 아끼는 만남이 된다.

* 자기 지혜를 억누르고 있는 마음을 봐야 한다.
그 마음이 풀려야 한다.
막힌 마음 푸는 게 공부의 급소다.

* 성현이란 남에게 잘 묻고 들어서
바른 판단을 하는 사람이다.

* 생각을 생각으로 없애려면 안 되고,
믿음으로 조복 받아야 한다.

* 살아있으니까 걱정하게 된다.
그것을 인정하면 여유가 생긴다.
기운이 내려가고 차분해진다.
어려운 일 만나면 바로 풀려고 하지 말고,
그것을 대하는 나를 봐야 한다.
내 마음에 여유가 생겨야 어려운 일을
객관적으로 보고 해결할 수 있다.

* 생각이 일어나서 나온 망상은 정상이다.
살아있으니까 일어나지, 죽었으면 일어나는가?
인정하고 부처의 씨앗과도 같이 있다고 믿는다.
불성의 거울에 자꾸 비추면
비밀이 드러나 수그러든다.
그러면 고요해지고 지혜가 생긴다.
정혜쌍수가 된다.

* 내 안의 부처를 발견하지 않고는
중생의 삶을 벗어날 수가 없다.

* 마음이 바뀌면 새 생활이 늘 태어난다.
지혜로 지식을 쓰게 된다.

* 불교는 앎을 배우지 않고, 관(觀)을 배운다.

* 공부는 새로운 것을 아는 게 아니라,
잘못된 것을 아는 것이다.

* 의정은 홀로 역력하게 있다. 그게 活句다.

* 소수의 큰스님만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것은 소승불교다.
대승불교는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생심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살려내는 것이 참선의 참모습이다.

* 천하장사도 번뇌를 이길 수 없다.
불성을 믿는 마음에 의지하여 가라앉힐 수밖에.

* 마음공부에도 복덕방이 필요하다.
번뇌 망상을 내가 직접 없앨 게 아니라,
불성에 대한 믿음이라는
복덕방을 매개하면 거래가 쉬워진다.

* 자기가 자기에게 속지 않아야 남에게도 속지 않는다.

* 자아가 공이 되면 외부의 색(色)도 공이 된다.
한쪽 손바닥이 비면,
다른 쪽 손바닥으로는 소리를 낼 수 없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비우는 것이다.

* 수행은 자기 허물 보는 것.

* 사람의 마음을 바꿔주는 것 이상의 보시가 없다.

* 주역에서 근신하라고 읽는 것은
화두를 들 때 관하는 것과 같다.
한 생각 돌이키라는 말이다.

* 집착하는 동안은 지혜가 안 생긴다.
놓아서 고요해지면 지혜가 나온다.

* 참선 외에는 중생의 속성을 결판낼 길이 없다.

* 아는 것은 결국 망식(亡識)이다.
아는 게 나쁜 게 아니라,
아는 것에 집착하여 머무는 게 나쁘다.

* 선(禪)을 볼 시(示)와 홑 단(單)으로 보아서
간단한 것을 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짝이 없는 것을 보는 눈이랄까?
‘한 손으로 치는 소리 내봐라’도 이 소리다.

* 선방에서 통솔하는 사람을
‘노끈 세우는 사람(入繩)’이라고 한다.
번뇌 망상은 어지러워 세울 수 없다.
다 쉬어버리면 자성(自性)에 의해서 한 노끈만 선다.

* 참선은 인간의 정신을 바로잡아주는 진리다.

* 부처님은 인간의 마음에 통달한 분이다.
선은 인간의 마음을 통달하는 공부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유일한 공부다.

* 답사는 옛날 사람들 손때 묻은 것 보러가는 거다.

* 내가 어디에 붙들려 있나 잘 살펴봐라.
그것 깨닫자는 공부다.

* 마음에서 풀어지면 모든 것이 풀어진다.
일체유심조의 가르침은 여기에 있다.

* 부처님의 말씀이 아무리 좋아도
그 말로 번뇌 망상이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교입선(捨敎入禪)하라는 거다.

* 큰스님이 주장자 치켜들고
“알겠느냐?”고 묻는 것을 보았는데,
양심이 의심스러웠다. 자기 문제도 해결 못한
사람이 남을 윽박지르는 것 같아서다.
참선은 참 정직해야 하는 공부다.
스님들의 숩관적인 법문에 속지 마라.
속으면 ‘부처는 부처고 나는 중생’이라고 포기하게 된다.
‘자기를 중생이라고 한정시키는 것’이 큰 문제다.

* 번뇌 망상을 인정해야
자각이 되고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다.
여유가 생기면 번뇌가 같이 있는 불성을 믿어라.
오만가지 작용을 다 하는데
보이지는 않는 그것을 확인해나가면,
결국 의정만 남고 화두로 들어간다.

* 자성의 성질을 설명한 것이 불경이다.
원래 불성이란 말을 육조가 자성으로 바꿨다.
참선으로 자성을 체득하고 불경을 보면 다
‘내 소리구나’ 하게 된다.

* 누가 천국으로 가는가?
자기가 번뇌 망상을 털어보면 안다.
속일 수가 없다. 하지만 번뇌 망상 속에
그대로 있으면서 깨달으면 즉시 서방정토가 된다.
기독교의 에덴동산도 이 소리다.
부처가 나를 절대로 떠나 있은 적이 없다.
서방정토가 나를 떠나 있은 적이 없다.
나 스스로 가려있을 뿐이다.

* 번뇌 망상에 손대지 마라.
원래 뿌리가 없어서 그냥 두면 사라진다.
만지면 덧난다.

* 지금 한국에는 참선이 유행이지만 옳은
공부길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책보고 하다가 혼자 머물고 있거나,
경험 반 아는 것 반 섞어 머물고 있다.
안되면 어록에 매달리고 그러면 영영 진전이 없다.
식이 밝아지는 것은 조심해야할 단계이다.
나는 사람들이 헛고생 좀 안하고 공부하도록
인도할 수 없나 해서
‘불성을 관해가는 법’을 만들었다.
내가 초보자 시절로 돌아가서 불성을 염하고
관해가니까 번뇌 망상이 길을 비켜주더라.
미세망념만 남게 되는 그 상태에서
불성의 성질을 돌이키니
그대로 관이 안으로 향하여 이뭣고가 된다.
앞으로 초보자들은 ‘불성을 관해가는 법’을
공부하면 기초가 단단히 닦아질 것 같다.

* 묘용을 통해 부처 마음이 나타난다.

* 사람들은 진리를 지나치게 상상으로 대하고 있다.
실제 생활의 순간에 마음 바꿔
변하는 거지 무슨 신통이 아니다.

* 일반 삼매는 고요하기만 하지만,
화두 삼매는 정혜쌍수다.
고요하면서도 성성(惺惺)히
깨어있어 경계를 환히 내다본다.
물들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거울에 비유하는 것이다

현웅 스님/ 육조사
글쓴이 : 光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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