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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깡학파의 신경증론>- 늦은 강의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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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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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7월 30일 18: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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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민예총 <라깡학파의 신경증론> 강의가 정신분석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 전에 이창재 선생님의 <프로이트와의 대화>를 읽긴 했지만 그때는 그 책의 문장들을 '지나가듯' 음미했기에 그 내용들을 내 것으로 소화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게 정신분석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라깡의 언어로 정신분석을 처음 만났다는 건 한편으로는 행운이었고 한편으로는 독이기도 했던 것 같다.
4학기 강의 중 2학기 째부터 강의들 듣게 된 나는 첫시간부터 '욕망'이라는 말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느꼈고, 강의 중간에 선생님께서 무겁고 진지한 목소리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적잖이 주고 받을 법한 '낯익은' 질문을 던져, '낯선' 무의식을 건드릴 때마다 그 질문들이 윙윙거리며 며칠간 나를 따라다녔다.
그 질문이 내 무의식을 강하게 자극했기에 강의를 듣는 동안 강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보다 질문에 답하는 것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소리내어, 혹은 속으로 그 질문들에 답하고 다른 수강자들의 답을 들으면서 울고, 웃고, 뜻밖의 답을 내놓는 나에게 놀라기도 했다.
강의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브루스 핑크의 본환상 구조를 설명하는 그림과 라쇼의 강박증에 대한 설명이었는데 브루스 핑크의 본환상 구조를 설명하는 그림에서 주체의 자리에 가위표가 쳐질 때에는 마치 내가 가위질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4학기 라쇼의 강박증은 2, 3학기때 배운 내용과 혼동될만한 표현들이 많아 매우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감추고 싶은 부위를 정확히 찌르는 듯한 표현들이 나의 강박적 성향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그동안 강박적 성향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 온 내게 그것은 실로 큰 충격이었다.
"주체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라깡 강의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이자 가장 무겁게 나를 따라다니는 이 말을 들었을 때 좀 씁쓸하긴 해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의 무의식도 그 말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욕망을 주체화하겠다며 내가 던진 질문은 '이건 누구의 욕망이지?'가 아니라 '이건 내 욕망이겠지? 설마 이것까지 타자의 욕망은 아니겠지?'였다. 그 질문은 내가 '내 욕망이 타자의 욕망'임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증거였고, 그 후 타자의 자리에 내 인생의 실제 대타자를 대입해 보면서 그 말에 심한 거부감이 이는 것을 느꼈다.
'나'로 살고 싶어 발버둥 친 많은 시간들 속에 사실 '나'는 없었음을, 그 시간들이 '나'로 살기위한 것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으로 살기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고 지금도 나는 내 자신이 '속이 빈 껍데기'가 될 것 같아 그 말을 인정하는 것이 두렵다. 내게는 '내 욕망이 타자의 욕망', 특히 '엄마의 욕망'임을 인정하는 일이 여전히 어렵다.
그 기본적인 명제도 받아들이지 못한 나이지만 <라깡학파의 신경증론> 강의를 통해 이전과는 조금 다른 눈으로 나를 보게 되었다.
이 강의를 듣기 전에도 나의 신경증적, 정신증적 성향을 확인한 바 있지만 그런 것을 설명해 놓은 '인격 장애', '성격 장애', '-증 환자' 라는 말과 그런 성향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의 시선때문에 그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고립되고 말 거라는 두려움에 문제를 인식하고도 나의 그런 성향을 숨기고 없애려고만 했다.
그런데 신경증에 대한 라깡의 언어와 그것을 소개하는 이창재 선생님의 강의에서는 신경증자에 대한 '따스하고 안타까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동안 숨기고 싶었고, 그래서 무작정 빨리 어른이 되라고 다그쳤던 '어린 나'를 따스하고 안타까운 시선으로 돌아보고 아픔을 이해하는 경험을 하고서야 나의 신경증적 성향과 정신증적 성향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것이 나를 알아가는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본이 되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강의를 통해 얻은 지식보다 '평가의 눈'을 내려 놓고 나를 돌아보는 방법을 배운 것이 내게는 훨씬 소중한 경험이었고 말할 수 없이 큰 '행운'이었다.
라깡의 언어는 이해되기 보다는 '느껴지는' 언어였던 것 같다.
내가 정신분석은 물론 라깡학파에 대해서라면 더더욱 아는 바가 없었고, 라깡의 언어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라깡 강의에서는 선생님도 <프로이트와의 대화>나 다른 강의에서처럼 '친절한' 설명을 해주지 않으셨던 것 같다.
강의를 듣는 동안에는 사실 그 점이 불만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덕분에 나름대로 그 문장들을 음미해 보려고 강의자료를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4학기 강의가 끝날 무렵에야 '한 편의 시처럼 낱낱이 해석하면 그 문장의 의미나 느낌은 사라져 버리고 마는, 그 언어 그대로 있어야 더 저다운 이게 라깡식이라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고, 덜 친절하게 느껴졌던 강의가 오히려 더 고맙고 의미있게 다가왔다.
감을 잡기가 쉽지 않았던 '기표'와 '기의'의 의미도 내가 '라깡식'이라고 생각한 이것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라깡의 언어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라깡의 언어는 굉장한 매력으로 사람을 유혹하지만 결코 완전히 해석되지 않는 '기표'로 남음으로써 끊임없이 그것을 욕망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해석되지 않음'에는 대단한 매력과 함께 '오해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었다. 나는 실제로 라깡의 여러 개념들을 오해했고 그렇게 오해한 개념들을 나의 퇴행 욕구를 합리화하는 데에 이용했다.
정신분석의 기본이 되는 개념들조차 잡혀있지 않은 상태에서 라깡의 정신분석을 접하자 기본은 무시한 채, 기본을 뛰어넘는 개념들에 집중해 귀한 지식이 내게 오히려 '독'이 되었던 것이다.
강의 초기부터 선생님께서 라깡을 소개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운 마음을 여러 번 표현하셨던 것이 이때문이었구나..
하지만 이런 시행착오를 겪었음에도 언젠가 라깡에 대한 강의를 다시 듣게 된다면 그때도 딱 이만큼만 친절한 강의였으면 한다.
라깡학파의 언어도, 그것을 소개하는 강의도 내게는 한 편의 긴 시처럼 느껴졌는데 시가 너무 친절히 해석되면 더 이상 '시'가 아닐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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