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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빙 빈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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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3월 25일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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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빙 빈센트 -유끼님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고 권총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한 미치광이 천재적인 화가로 알려져 있다. 영화 러빙 빈센트는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만을 팔았던 화가 빈센트의 죽음 후 1년, 아르망은(집배원 조셉 룰랭의 아들) 그의 그림을 사랑했던 아버지의 부탁으로 빈센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빈센트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오베르를 찾아간다. 아르망은 빈센트를 그리워하는 여인 마르그리트, 빈센트를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던 아들린, 빈센트의 비밀을 알고 있던 폴 가셰를 만나면서 빈센트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가셰는 예술에 대한 열정이 컸으나 고흐만큼 재능이 없었다. 그래서 고흐와 함께 그림을 그리며 질투도 했지만 그의 열정을 나누게 되어 행복했던 같다. 하지만 예술에 대한 가셰의 미온적인 태도를 고흐가 비난하자 가셰는 홧김에 매독 3기환자라서 절대 안정이 필요한 테오가 무일푼의 빈센트를 위해 혹사하고 있다며 빈센트의 미술에 대한 열정이 그럴 만큼의 가치가 있냐는 폭언을 하게 된다. 빈센트는 가셰의 폭언을 듣고 자살을 선택했던 것이다. 가셰가 그의 총상을 치료하지 않은 것 역시 테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빈센트의 바람에 따른 것이었고(오리진은 이미 엄마에게 거부당한 서러움과 자신이 엄마에게 짐이었다는 생각일 것이다), 가셰는 죄책감과 슬픔으로 고흐의 임종을 오랫동안 지켜주었던 같다.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바닥중의 바닥 인생이지만 언젠간 마음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 모두에게 보여줄 것”이라는 편지속의 빈센트의 다짐에서 가족에 대한 콤플렉스와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초라한 자신을 직면하고 쓸쓸하게 죽어간 빈센트가 느껴져 슬펐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이 부분을 공감하면서 함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고흐 부모는 죽은 형을 애도하지 못해 고흐에게 형 이름을 주고 또한 심한 우울증으로 어린 고흐에게 평생 거리 두고 냉냉하게 대했던 것 같다. 고흐가 부모님을 두렵고 가까워지길 갈망하는 대상으로만 바라본 것과 평생 다른 대상들에게 친밀감과 의존에 대한 불안들과 욕망을 마구 쏟아낸 두려움은 같은 것이다.

나는 고흐의 비극적인 삶을 충분히 이해한다. 왜냐하면 나 역시 고흐처럼 삶 전체가 신경증적인 불안과(미치기 일보직전인 아니 차라리 미쳐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도저히 미치지 않는 절망감) 우울증세로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다. 따뜻한 접촉과 이해를 필요로 하는 인격의 차원이 한 번도 제대로 환영을 받아 본적이 없다. 유아가 세상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모든 움직임을 놓치지 않는 엄마의 주의와 시선 안에 안전하게 안겨있다고 느낄 때 존재의 연속성을 갖게 됨을 배워 알고 있다. 나는 이런 평범한 경험을 하지 못했다. 그 결과 나는 늘 세상과 내가 잘 맞지 않는 다는 느낌이 크다. “아무도, 그 누구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차릴 때 어떻게 상처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정신분석을 공부하기 전엔 불행하고 외로운 나에 대해 말할 힘이 아예 없었다.

남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의 일조차 예를 들면 매일의 출 퇴근마저도 사생결단의 힘으로 버텨 온 기억들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나는 평생을 하루도 마음 편안한 적 없이 지옥에서 살아 왔다. 찢어지게 가난한 육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던 나는 초등학교 입학 전인 약 6-7세경, 어머니가 셋째 남동생과 당시 젖먹이였던 다섯째인 둘만 데리고 가출을 감행하여 약 일 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후에야 귀가한 사건이 발생하여 힘겹게 나는 두 여동들을 저절로 돌봐야 했다.

어머니의 귀가 이후에도 고통스러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당신이 데리고 가출하였던 두 동생들과 남겨진 자식들을 편을 갈라 편애하셨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항상 배고팠으며 주변에 사는 고모 집에 밥을 얻어먹으러 다녔던 수치스러운 기억이 있다. 가난으로 공부니 가정교육이니 하는 고급스러운 단어들은 들어보질 못했다. 그리고 중학 진학을 포기하고 일찍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아이스 께끼(아이스크림)를 팔러 다니면서 생활전선에 뛰어 들었다. 깨끗한 교복을 입고 학교 다니는 친구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만 보아야만 했다. 아이스께끼 철이 지나면 장사와 폐품수집 등으로 수입을 찾아 다녔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아버지가 국가 유공자로 선정되어 학비지원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한 번도 공부에 대해서 지원 받지 못했었고, 당시에는 중고, 대학교 모두가 선발 시험 방식이라 지금보다도 훨씬 더 입시 전쟁이 심각했던 시절로 초등학교 4학년 때 부터 중학교 입시전쟁이 시작되었는데 각 학급별로 선생이 시험지대라는 명목의 잡부금을 걷어서 자체시험을 계속 치렀기 때문에 시험지대 몇 백원을 못내는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의 시험이 끝날 때 까지 복도에서 참관만 하도록 했다 당연히 나는 거의 매 시험 때 마다 쫓겨 나 참관만 해야만 했다. 이런 나를 선생들은 당연히 귀찮고 미운 존재로 밖에 대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공부의 중요성이 무엇이지를 전혀 모르고 무엇 때문에 공부를 해야 하는지 까맣게 몰랐던 나에게 좋은 기회가 왔건만 잘할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기간 중 배웠던 지식의 양이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를 정도로 남아 있지도 않았을 뿐더러 일 년의 시간을 넝마처럼 살아왔기에 어느 학교에 지원을 해야 떨어지지 않고 합격하여 이 행운을 잡을 수 있을까? 하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 고장에서 삼류로 통하는 학교에 지원을 하였다. 허나 진학을 한 이후에도 삶의 태도나 양식이 쉽게 바뀌어 지지는 않았다. 이미 나에게는 공부라는 분위기 자체가 형성되어 있지를 않았고 더구나 일 년 늦게 학교를 다니다 보니 동급생들이 친구로 여겨지지도 않았고 자연스럽게 넝마시절의 뒷골목 친구들에게 인도하였다. 고등학교 역시 실업학교를 진학하게 되었고 졸업 후 공무원에 준하는 하사봉급을 준다는 군에 지원입대를 하게 되었다. 정말 아무런 보람을 느낄 수 없는 무미건조한 삶이었던 것 같다. 29세인 1980년 11월의 마지막 날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은 사내 연애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당시만 해도 그리 흔치만은 않던 약간 특별한 커플로 인식되어졌다.

결혼을 했으니 당연시 되는 순서로 연년생으로 아들과 딸을 순산하여 잘 키워 내며 한동안은 행복한 삶이 지속되었다. 이런 나의 행복함에 더해 지역의 공영방송사에서 회사의 창립기념일 특집으로 우리 부부의 만남부터 당시 현재까지의 전반에 대하여 30여분 가량의 특집방송을 내보내기도 하여 일약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도 되었다. 하지만 나의 행복은 딱 거기까지만 이었다. 나의 33세 이른 봄. 큰아들 4세 작은딸 3세가 될 때 아내로부터 충격적인 불륜사실을 고백 받게 되는데 깊은 어둠속에서 나를 노리고 있던 잔인한 운명은 그날 그렇게 그 사나운 발톱을 드러내 나의 심장을 후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고 숨을 못 쉬며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 나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당시 3살과 4살 이었던 자식들 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 어미로부터 버림받고 혼자서 감당 할 수 없는 슬픔을 이를 악물고 버텨내야만 했던 고통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갔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평생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게 되면서 그날 밤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그래 “이제 나는 죽자. 나는 죽더라도 자식들에게 만은 내가 겪었던 그 지옥속의 슬픔을 물려주지 않겠다. 나 하나 희생하여 모두가 평온할 수만 있다면 그 희생을 감당하리라” 어떠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먼저 아이들에게 엄마를 빼앗거나 가정을 깨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그 결론 이후의 나의 삶은 본격적인 지옥이었다. 희망을 잃어버리고 아무리 찾아봐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 그래서 오로지 죽어야 만 해결 될 것만 같은 저주스런 삶의 반복일 뿐 이었다. 그 이후 억울한 마음을 다스리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평온한 마음을 찾는 원동력을 만들기 위해 삶과 죽음의 문제, 인생의 의미에 관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불교와 수많은 철학이론들과 여러 종교 이론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또 오십 세 즈음부터 마음수련을 접하게 되어 그렇게 한 십여 년을 천국에서 보냈음에도 아니 천국에서 조차도 라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나의 마음속을 계속해서 짓누르던, 아니 자리 잡고 있는 응어리는 없어지지 않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면서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이후 마음수련 단체의 여러 가지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행태들에 실망을 한 나는 60세 즈음부터 마음수련과 결별을 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다시 시작되는 본격적인 마음의 고통은 지난시절 마음수련을 통해서 얻었던 최고의 진리를 모두 망각시켰다. 그 다음엔 불교식 수행법을 통하여 평온을 찾기 위해 전국의 사찰을 찾아 다녔다.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위빠사나를 본격적으로 수행해 보기 위하여 미얀마에서 3개월이나 수행을 해 보았으나 완전한 평온은 찾지를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정신분석이라는 종착점에 도달했다. 정신분석을 만나기 위하여 내가 태어나고 자란 그리고 많은 것이 남아있던 고향을 떠나왔다. 정신분석을 제대로 받으려면 많은 시간과 열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일 년간 분석을 통하여 어떤 깨달음이나 구체적인 변화된 상태가 있었는지는 평가하긴 힘들다.

허나 지금 내 마음의 상태는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날들이 평온한 일상으로 변하였고, 그런 평온한 일상이 당연한 보통의 일상으로 바뀌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을까 한다. 이러한 축복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전혀 모를 것이다. 불행했던 과거의 추악하고 복잡한 인생사 전반과 또한 원인도 이유조차도 명확히 모르면서도 무작정으로 시달려야만 했던 모든 심리를 총 망라하여 지극한 평정심으로 어루만지면서 지지해 주시고, 내가 겪었던 억울하고 힘들었던 상황들에 대하여 꼼꼼하게도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 하여 해석에 대한 재해석, 재재해석들을 통하여 나의 꽉 막힌 숨통을 틔워주신 이창재 선생님과 강의를 통하여 명쾌한 슈퍼비전을 제공해 주신 김은옥 선생님 덕분에 이제는 더 이상 고통의 책임에 대해 神을 향해 주먹을 휘둘러 대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수퍼비전 :
많은 사람들의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원시적 공포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실망에 대한 좌절감, 사나운 욕지기, 재수가 없는 일, 전쟁 같은 살벌한 싸움, 사랑 없는 마음, 취약성, 외로운 절망감, 친밀하고 돌봐주는 것을 거부하는 이기심, 약탈자에게 빼앗기는 억울함은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스스로 돌보도록 방치된 어린 아이가 내면에 있는 것입니다. 엄마가 아이를 지탱하도록 적절하게 구축되지도 못했고 잃어버린 결과입니다. 엄마에 대한 바람은 평생 동안 크게 일어나는데, 결코 충족될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세상이 자신에게 너무 적은 것을 제공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을 만들지요.

아마 박 선생님도 사람들이 세상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고 또는 자신이 그들로 하여금 원치 않는 존재라고 느끼게끔 만들었다는 의심으로 절망에 빠져 사셨을 겁니다. 무의식에서 무력하고 곤궁한 사람을(아기를)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느끼고 생각했을 거예요. 사랑에 굶주리고 방치된 아이를 스스로 바라보는 일은 고통스럽습니다. 자신에 대한 두려움만큼이나 숨기고 싶은 것이 어디 더 있을까요. 하지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감정을 마음 속에 숨길 때 자기자신을 방치한 죄책감이 매우 커집니다. 그 죄책감이 커지면 삶에서 많은 불행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 유아적 허기와 의존욕구를채워주지 않는 사람에 대한 좌절과 분노는 빌딩하나를 날려버릴 만큼 그 위력이 클 것입니다. 초기 엄마 박탈이 클수록 부정적 모성 전이가(유아적 전이) 언제나 어디에서나 불쑥 일어납니다.

부모대상 경험이 나쁠수록 나이들어서도 부정적 감정의 외부 투사와 그로인한 부정적 전이가 더 강렬하게 일어나지요. 만나는 권위 대상과 주위대상이 무책임하고 애정 없이 나를 이기적으로 통제하는 것 같고(엄마처럼), 엄마대신 스스로 돌보며 똑똑하게 살아온 자신에게 지나친 부담과 요구를 해서 엄마에 의해 버려지고 방치된 아이로 취급하는 것 같아 억울합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 착취할까봐, 그리고 거부하고 버릴까봐 경계하게 되지요). 그래서 일이든 관계이든 돌봐주는 대상에 대한 시기심과 불안으로 늘 혼수상태에 빠지는 게 부지기수입니다.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은 증오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느껴지는 불길한 예감 등).

현실에서 대상을 신뢰하지 못하고, 긍정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사람으로 경험하는 것은, 의존상태의 아이가 자신의 욕구보다 부정적인 엄마의 욕구를 더 우선시한 결과입니다. 박 선생님과 관계 맺었던 상대방들도 선생님이 자신을 원치 않는 사람으로 느끼게 하니 상처 받는 경우가 많았을 것입니다(가치 있는 확신을 주지 않아서).
어릴 적 엄마에게서 산산조각 난 감정을 다시 느끼는 것은 너무나도 끔찍스러운 일이기에 아마도 늘 안 그런 척, 필요 없는 척, 착한 척 참고 살았기에 작은 좌절에도 피해의식이 크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짓뭉개져 부글부글 끓고 있는 고통스러운 실망과 그 실망감에 대한 이차적인 증오의 실체는, 엄마와 나 사이의 초기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하는 신뢰로운 경험들로 상징적인 좋은 엄마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늘 박 선생님은 더 나아지기 위해 좋은 사람과 장소와 지식을 찾아다니셨잖아요. 뭐든 열심히 해서 인정을 받으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훌륭한 마음의 자원입니다. 물론 작은 실패도 있었지만, 중요한 건 그로인해 많은 것을 지켜내셨을 겁니다. 그것이 선생님에게 있는 건강한 자존심과 희망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무의식 속에 분노가 많으면 다양하고 구체적인 감정을 느낄 수가 없게 되요. 공격적인 증오는 계속해서 나오려하고 이를 막으려하면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래서 지치고 혼란스럽고 불안한 거예요. 상담을 통해 분노를 처리하는 작업을 하세요. 눈치 보지 말고 신뢰할 수 있는 상담자에게 힘들었던 순간에 대한 아픔을 끝까지 반복해서 풀릴 때까지 표현하세요. 분노가 많은 사람은 분노 이외에 다른 감정을 느끼지도 표현하지도 못해요. 인간관계의 중요한 요소인 감정적 세심함이 없어지고 세심함을 바탕으로 한 친밀한 교제나 대화의 기쁨을 잃어버리게 되거든요. 스터디에서도 힘들었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풀어놓는다면 힘이 생기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선생님 편이 되어줄 것입니다.

유아적 전이와 다른 좋은 모성전이는 이러합니다.
잔인하게도 인간은 백번 잘해줘도 한 번의 실수를 기억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해서 수많은 좋았던 기억보다
단 한 번의 서운함에 오해하고 실망하며 틀어지는 경우가 참 많아요.
서운함보다 함께한 좋은 기억을 먼저 떠올릴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 되세요.

먼저 고맙다고 먼저 미안하다고 말한다면
사람관계는 나빠지려고 해야 나빠질 수 없습니다.
사람관계에서는 이기고 지는 것이 없습니다.
먼저 고맙다고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세요.

식사 후 적극적으로 밥값을 계산하는 이는
돈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돈보다 관계를 더 중히 생각하기 때문이고
일할 때 주도적으로 하는 이는 바보스러워서 그런 게 아니라
책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고

다툰 후 먼저 사과하는 이는 잘못해서 그러는게 아니라 당신을 아끼기 때문입니다. 늘 나를 도와주려는 이는 빚진 게 있어서 그런게 아니라
진정한 친구로 생각하기 때문이며

늘 카톡이나 안부를 보내주는 이는 한가하고 할일이 없어서 그러는게 아니라
마음속에 늘 당신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잊지 마세요.

소중한 인연을 아끼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진정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유끼님의 발표와 집단 피드백 후 피드백 :
꿈에 집인 것 같은데 처음 본 흑인 소년을 입양했습니다. 그 아인 7-9세정도로 보이는 격투기 선수라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 소년의 손을 잡고 “그래 이제 여러 가지를 배워야하는데 말도 안통하고 어쩔까?” 하면서 걱정을 하다가 학교에 데리고 가서 입학인지 전학인지를 시키고 나왔습니다. 낯설고 말이 통하지 않는(부담스러운, 거리감이 느껴지는) 그 흑인 소년이 누구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흑인 소년은 그동안 홀로 고립되어 소통불통으로 살아왔던 어린 시절의 저 인 것 같습니다. 애정욕구가 병적인 유년기와 아동기에 박탈당하고 거부된 아이입니다. 나이를 먹었지만 저는 아직도 어린 시절 받지 못했던 사랑과 관심 그리고 보호를 받고 싶은 바람이 큰 것 같습니다. 안정된 분석과 수업 그리고 스터디를 하면서 제가 보호받고 지지받는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깊은 바램은 엄마의 사랑을 받는 것이겠지요. 저 자신이 아이가 되어 다시 사랑받고 싶은 소망이 아닐까 합니다. 저를 제대로 돌봐주지도 않고 삶의 방해물 같은 귀찮고 부담스러운 존재로만 인식한 엄마로 인해(엄마역할이 손상된) 저 자신이 불필요하다는 존재라는 느낌 때문에 늘 분노하고 있던 아이요. 그 아이를 만나서 정말 다행입니다.



러빙 빈센트를 공감하며 -하루님
엄마에게서 보살핌을 받지 못해 경계선 인격장애를 가진 고흐는 불행하다. 그는 천재 자질을 세상에 알릴 수 없었을 뿐더러, 생애 동안 그림을 한 점밖에 팔 수 없었고, 창녀에게 잘린 귀를 선물한 미치광이로 알려지고, 스스로를 비천하게 여기는 고통 속에서 아파하다가 결국 파괴적 욕망으로 자살을 선택하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보통사람이 느낄 수 없는 그만의 주관적 환상 속 아픔을 이해해 볼 수 있었다. 고흐 그림을 누구든 아무리 가치 있다 평가를 했어도 그는 쓰레기처럼 느껴져 내놓을 수 없는 작품처럼 여겨졌을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빈세트는 자신의 모든 작품을 습작이라고 했다. 누군가가 인정을 해주면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캔버스는 엄마의 몸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하얀 종위(엄마 몸)위에 ‘펜’으로 엄마에게 하고픈 말을 원 없이 표현한다. 물감은 감정일 수도, 자기가 생성해낸 변, 상징적인 창조물이다. 유아기 엄마관계에서(죽은 형 때문에, 엄마의 우울 때문에) 아기 고호가 모성 결핍과 박탈이 심했던 것이다. 짙은 물감으로 엄마에게 강하게 뭔가를 표현한 것이다. 고흐의 여동생도 정신병이었고, 막내도 자살했으며 테오도 정신착란이 있었다. 정서소통을 못하고 접촉을 못하는 엄마를 만나면 고호 형제들 같이 된다. 형의 죽음에 눌려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할 수밖에 없었던 고흐는 애착장애를 갖게 되어 어른이 되어서도 평범한 대인관계를 가질 수 없었고 적절한 사회생활도 할 수 없었다. 고흐는 가족들이 억지로 참고 데리고 있는 개로 자신을 비유했다. 만일 그가 자신을 표현할 수 있고 삶의 고통을 진심으로 소통으로 이해받았더라면 자살이라는 참담한 파멸은 막을 수 있었을까? 물론 그림은 대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실패의 유일한 해결책이었겠지만 그에게 고통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방법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 같다.

천재임에도 불구하고 성취감이나 자존감을 전혀 가질 수 없었고, 자기의 능력과 가치를 느낄 수 없는 불행 속에 갇혀 지내야 했던 고흐의 삶이 왜 이리 절절하게 나의 아픔으로 느껴지는 것일까. 그의 고통스러운 마음이 화폭 영상으로 전해져 느껴졌다. 교재에서도 나와 있듯 초기 거부당했던 경험으로 인한 과도한 애정욕구 때문에 나는 남편과 가족을 돌보는 성숙한 여성의 태도를 발전시키지 못했고, 현실에선 억지로 적응을 해왔지만 심리적으로는 비참함에 빠져 살아왔다. 무의식적으로 남편을 어린 시절 채워지지 않았던 욕구를 채워주는 사람으로 부모에게서 거부당했던 것을 보상해주는 사람으로만 여겼었기에 실망스러운 마음이 분노로 치닫고 복수하는 패턴을 반복하며 삶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며 살아왔다.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오래된 기억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 참담하다. 23세에 대학 졸업을 앞두고 부모에게 도망치듯 결혼한 나는 동갑 남편 외에 잘 지내는 사람 없이 미국 생활을 시작하였다. 친구나 가족과 멀리 떨어져 외로운 생활을 하며 첫 아이를 임신하고 낳았는데 삼칠일 산간을 해준 엄마는 출산 21일이 지난 후 한국으로 떠나버렸다. 핏덩이 아이와 단둘만 남겨진 공포가 나를 극도의 불안으로 치닫게 했다(그때는 불안과 공포인지도 모르고 마비되었다). 어느 날 끔찍한 불안한 충동이 일어났는데 신생아를 차에 태우고 가발가게를 찾아가서 영화에나 나올법한 긴 머리 가발을 사 놓고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비게이션도 없던 때라 옐로페이지에(미국 전화번호부) 나오는 주소만 보고 어떻게 그 핏덩어리를 데리고 찾아갔는지 황당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 기억이 도무지 충격이고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상담 후에야 심각한 산후 우울증을 앓았음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꾸려가는 보금자리를 만드는 인생의 성숙한 과정이 아니라 부모에게서 도망가, 받지 못한 욕구를 채우고 보상받으려는 돌파구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올바른 목표가 아닌 잘못된 길이라) 어리고 무능하게만 여겨졌던 남편에게 부모님 이상으로 좌절감을 느끼며 증오가 일어났었다. 엄마이든 남편이든 그들과 나를 연결 짓지 않고서는 나 자신을 표현할 수도 존재할 수도 없기에 이들에 대한 원망이 평생 이어지고 있다. 혼자서는 진정한 나를 느끼고 행동할 수 없는 게 나의 병이다. 믿고 사랑받고 싶은 대상이 옆에 있으면 그들과 다르게 나 자신이 되질 못한다. 평생 나의 인간관계는 오리진과 같은 형태, 집착하고 버림받음의 반복이었다(나의 두려움을 행동화하면 사람들은 나를 떠나게 된다). 가까워지고 멀어짐에 따라 나는 엄청난 혼란과 증오를 견뎌내야 한다.

남편도 이른 나이 부모와 떨어져 제대로 발달과제를 완수하지 못한 성인 아이다. 서로 존재가 가진 절박한 외로움 때문에 만신창이가 되도록 싸우고 또 싸웠다. 오랜 시간 모든 것을 함께 하면서도 서로에게 불성실하다는 내용으로 계속 상처를 주었던 것 같다. 남편이 거리를 두면 강렬히 분노하고 소리치며 공격적인 행동을 일삼았다. 그 분노가 상대방을 밀어내는 행동이라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남편을 절박하게 끌어당기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서로 죽겠다고 위협하면서 존재감과 자존감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나의 실수를 전혀 깨닫지 못했다. 남편과 나는 경계선 성격구조를 가져 자아상(자기표상), 타인표상, 대인관계 표상이 매우 부정적이고 그 결과 불안정하니까 분노이든 쾌락이든 충동조절이 되질 않는다.

지금도 우리 부부는 현실이든 상상이든 버림받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는 그나마 상담을 통해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를 바꿔 가고 있지만 남편은 아직도 부정적인 말과 행동 때문에 불안정하고 극단적인 인간관계속에 있다(자폭수준이다). 남편은 부정적 자아상이 강하고 자의식이 유난히 약하다. 무절제한 행동에 감정기복이 심하고, 끊임없이 분노한다. 폭언과 폭력이 다반사인데, 때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편집증적 사고로 주변사람들을 몹시도 괴롭힌다.

나는 어린 시절 가족들과 관계를 전혀 맺을 수 없는 불행한 인생을 살아야 했던 것처럼 부부관계도 그러하다. 교재 3장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인간의 근본 욕구 중에서 사랑받는 것이 성보다 중요하다. 그 이유는 사랑을 받는 것이 자기 보존 본능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나는 서로 같이하며, 함께 성숙해가며 문제를 해결해가고 올바른 충동에서 비롯되는 성을 나누기보다는 부모(엄마)에게 받고 싶은 무조건적 사랑만을 요구하고 갈망하여 나라는 인간을 보존하기 위한 유아기적 본능만을 원했다. 나에게 사랑은 무조건 받는 것이었다. 헌데 박탈로 인한 애정의 욕구가 과할 때 어린 시절 받지 못했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은 바람이 강해져 엄마역할이나 아내역할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지인과 우연히 함께한 식사자리에서 한 남자 분을 만났었다. 꿈꾸던 이상형으로 나이가 지긋하고 외모와 학벌 등 모든 게 완벽했다. 지적이고 매너도 훌륭하고 따뜻한 인품을 지닌 그가 정말 멋지게 느껴졌다. 그가 나에게 보내는 매력과 관심에 빠져 한 참을 행복해 했다. 나의 모든 잠재능력을 꺼내 사랑을 주고받고 싶어졌다. 그 후로 나는 주관적 환상 속에서 만들어내는 그와의 관계를 시작했다. 내가 가진 것을 다 잃어도 괜찮았고 그 행복함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 정신 못 차리고 환상에 빠져있는 동안 결국 남편이 눈치를 채게 되었고 결과는 참담하고 끔찍했다. 남편은 나의 변명의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폄하하며 온갖 악의적인 말과 행동으로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

아마도 거절당하고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성은 단 일 프로도 없는 감성 백프로 상태로 나를 단죄하며 성실하게 가꾸어온 내 주변의 인간관계를 망쳐버렸다. 실제 나와 관계없이 홀로 공포에 빠져 만신창이가 되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혼자 있지 못하는 불쌍한 어린아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이 일이 터지지 않았어도 평생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폄하할 줄만 알았지 진정한 상대의 결핍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자기 성격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나에게 비난만 일삼는 남편이 너무나 무섭고 혐오스러웠다. 자신이 모욕 받은 것만을 가지고 평생 주변사람들을 괴롭히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평범한 사람과 한 번 살아보고 싶은 소망이 컸었다. 나도 구원받고 싶었던 것이다. 내 안에도 자라지 못한 어린 아이가 있어서 남편이 자기 기분을 통제하지 못하고 기분을 풀어주려는 사람에게 조차 몹시 화를 내면 너무나 무섭고 외로움을 느끼며 그의 기분을 풀어주고 기운을 북돋우려 애를 쓰며 거짓으로 살아왔다. 보통사람들은 사소한 문제로 격분하지 않고 대립하지 않고 다정하고 따뜻하게 대체로 평온하게 살아간다고 한다.

나는 남편이 분노를 해소할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해 자살을 할까봐 너무나 두려웠다. 또는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기에 스트레스가 극심하면 정신 질환 증세를 보일 수 있다고 배웠기에 남편의 편집증 증세를 참아가며 버텨내었다. 남편이 상대하고 싶지 않게 하는 많은 행동에 대해 나는 현실에서 잘 대처를 하질 못한다. 어린 시절 엄마관계 역시 그러하다. 엄마로부터 결코 독립적이거나 주체적인 적이 없어서인지 나는 남편이 엄마처럼 느껴진다.

사실 친부모보다 더 잘 챙겨주시는 시부모님이 계신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원해주시는 시부모님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고마운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자꾸 다른 환상을 가지며 그들을 버려버리고 새로운 다른 부모님을 찾고 싶은 욕망 때문에 항상 된 관계를 맺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 끝없는 의존심과 원초적 인 부정적 엄마 상이 지워지지 않아 계속해서 부수고 새로 짓고를 반복하는 굴레 안에 갇혀있는 것 같다. 나의 주관적 환상에서 그려지는 모습들은 내가 원하는 것을 그려내는 것이기에 현실적이지 못한 상이다. 내가 만난 남자는 나만을 바라보고 샘솟는 샘처럼 사랑을 듬뿍 담아내는 환상 속에서 완벽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환상은 깨지게 되어 있고 허상일 뿐이라서 엄청난 수치심만 남는다.

누군가가 나를 돌봐주기를 지나치게 바라고 돌봐주는 사람에 대해 의존적이라 그와(그게 누구든) 분리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의존적인 문제가 나에게 크게 있다. 다른 사람의 조언과(힘과 지혜가 담긴) 확인 없이 뭐든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고, 삶의 중요한 부분을 다른 사람이 책임져주길 바란다. 지지나 보호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두는 게 어렵고, 동기도 있고 능력도 있지만 자신감이 부족해서 뭐든 끝까지 성취하기가 되질 않는다. 혼자라는 과장된 두려움 때문에 아마도 지지해줄 사람을 절실하게 찾는 것 같다.

나는 늘 협소하게라도 안정감을 누리길 바라지만 발달을 못하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정신분석공부를 통해 알아 가고 있다. 의존에서 비롯된 우유부단함으로 비난도 받았지만 극진한 관심도 받고 자랐고 지내오고 있다. 이러한 유대관계를 끊고 독립성을 보여야 하는 때가 오기는 온 것 같은데 쉽지가 않다. 선생님은 나이에 맞지 않게 과도한 관심을 받으려하고 하는 나의 태도를 옳고 그름으로 볼 게 아니라 지지를 받는 사람을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이라고 알려주셨다. 엄마의 과잉보호 속에서(사실 엄마도 독립적이지 못하다) 나 스스로 돌볼 능력이 되지 않는다고 강요받으며 자랐기에 돌볼 능력이 되는 사람을 찾아다니나보다.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서 뭔가를 시작해봐야겠다. 작은 소소한 문제부터 큰일까지 차근차근 해결해나가며 유아기적 욕구를 벗어버리고 가치 있는 나를 찾을 수 있다면 환상 속에서 고통 받는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작은 믿음을 2018년 봄날을 앞에 두고 가져본다.


영화 “러빙 빈센트”에서 나를 찾는 길을 발견하다. -나츠님
가시나무 새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러빙 빈센트”를 보고 이 노래 가사가 생각났다. 내 안의 수많은 나. 어떤 게 진짜 나인지도 모르고 살기도 하며, 분열로 부정적인 나를 거부하고 언제나 좋은/선한 나만을 인정하고 싶어 하는데, 영화에서 사람들의 분열된 다른 고흐에 대한 평가는 나를 성찰하는데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편지를 전해주기 위해 아르망이 고흐의 흔적을 찾아가고 그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에 따라 느끼는 고흐에 대한 증언 “미치광이, 착하고 조용한 사람, 반짝이는 별, 자상한 네덜란드인”으로 다 다름에 같은 사람을 두고 저렇게 평가가 다를 수 있다니. 가셰의 “그의 죽음 말고 그의 삶에 대해 얼마나 알죠?”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한편으로는 나도 죽게 되고 누군가 내 흔적을 찾아 간다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궁금해졌다.

나는 어릴 적부터 죄책감에 시달렸다. 학교에서 친구가 돈을 잃어버렸을 때 내가 훔쳐갔다고 하면 어쩌지? 선생님이 화가 나시면 나 때문인가? 동생이 아파도 나 때문인가? 하는 과도한 죄책감을 갖은 아이였다. 그 뿐 아니라 심부름을 하건 지시받은 일을 할 때는 실수하면 어쩌지? 잘못되면 어쩌지? 라는 불안이 심한 아이였다. 늘 내가 잘못하지 않았어도 내 탓 같았고 부족한 아이, 나쁜 아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러한 과도한 죄책감과 불안 때문일까 그 이후 배우자를 고를 때 도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을 정도로 기본적인 질서나 도덕을 무시하는 사람에게 늘 화를 냈었다(남편의 직업은 경찰이다). 실제로 나는 주차 시 차선 가운데 정확히 대며 누군가가 신호를 위반하거나 주차를 조금만 삐뚤게 해도 사진을 찍어서 신고하고 싶고 실제로 사진도 찍는다.

엄마는 늘 내게 화를 냈다. 종손이면서 아들을 못 낳은 것에 대한 서운함으로 할아버지는 우는 내게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데 저년이 울어서 되는 게 없네” 라는 소리를 자주 하셨는데 어느 날부터 엄마가 그 소리를 내게 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 뭐가 잘못되면 “너 때문에 되는 게 없네”, “니가 성질부리고 울고 짜증을 내는데 너 때문에 이 집안이 잘 돌아가겠다”, “니우는 소리가 집 밖을 넘어 가는데 아주 복 받겠다”, “집안의 젤 큰 딸이 동생들 건사하나 못하고 모범이 못 되는데 동생들이 잘 하겠니?” 이런 말을 듣고 자라서인지 뭐든 화가 났다가도 결국 내 탓인 것 같아서 억압하고 철수했다. 그런 영향으로 나는 직장에서건, 성당에서건 그 외의 어떤 공동체에서든 갈등이 생겼을 때 병리적 죄책감을 느낄 때가 많다. 또 내 죄책감은 잘못에 대해 “내 탓”이라고 언제나 나를 평가 절하하는 한편 높은 기대로 자신의 실패를 보상받으려는 부모님의 태도 때문에 우월감과 낮은 자존감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무조건 누구에든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사랑에 부응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물론 지금의 나는 훌륭하고 이상적인 조건을 갖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만족할 때도 있고, 내 부족한 점을 인정한다. 나는 죽은 첫 아이의 이름을 물려받아 첫째 빈센트로 인정받으려고 했던 고흐가 28세에 자기기 하고 싶은 그림 그리는 일을 찾았을 때 “나”로 사는 방법을 찾은 것 같아서 기뻤다. 나 역시 어린 시절에는 내 소리가 아닌 부모의 목소리로 살았기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준 모습을 근본적으로 거부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글을 수첩에 적어 놓은 적이 있다. 지난 온 삶 속에서 “리틀 부모”로 살았음을 대면하는 용기가 필요함을 영화를 통해 성찰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성당에서 작년 한 해 부모 교리 교사를 했다. 아이들이 첫영성체 예식을 무사히 마치고 나서 가르쳤던 엄마들이 모임에서 나에 대해 뒷 담화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슨 내용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뒷 담화를 했다는 그 사실에 이미 내 분노는 폭발 직전이었다. 내가 봉사자로서 얼마나 열심히 봉사를 했는데, 지들이 뭐라고 나한테 감히, 어디 들어나 보자. 그래서 그 엄마들을 카페에 다 모이게 했다. 그리고는 지난 1년을 돌아보니 너무 부족했고 미안했다는 얘기부터 시작하여 한 명씩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이 자리에 나가기 전 변명하지 않고 남탓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진짜마음은 “난 얘기를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괜찮은 사람이야, 니들이 아무리 욕을 해도 나는 별로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어. 난 니들보다 성숙하니까” 라는 자기애적 태도가 컸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한 시간 반 동안 듣고 돌아왔는데 그날부터 엄청난 분노가 일어났다. 그들의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내가 그 중 좋아했던 믿었던 a, 내가 너무나 싫어했던 불성실했던 b, 자기 성찰은 못하면서 유아기적 태도로 늘 자기만 바라보라했던 c, 나를 잘 도와줘서 내게 호의적인 줄 알았던 d.

한 명씩 그들의 말을 떠올릴 때마다 “왜 그런 자리를 만들어서 안 들어도 될 소리를 듣고 힘들어 하게 되었을까? 감당도 못하면서. 너의 과대 자기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거야.”하는 내면의 소리와 그 대상들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으로 그들을 매일 한 명씩 번갈아 가면서 죽였다 살리기를 반복했다. 내 문제를 객관화하기 위해 애를 쓰는 시간을 지내면서 그들의 말을 곰곰이 계속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부정적 감정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성당에서 보는 사람들이 모두 내 얘기를 아는 것 같고, 꼴좋다고 조소할 것 같은 편집망상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인사도 제대로 못했고, 눈도 마주칠 수 없었다.

그러면서 그들의 말과 여러 번 대면하면서 책에서 나오는 그 순서대로 분노, 부정, 타협, 우울, 수용의 단계를 밟으며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었겠다, 그 말도 맞네, 내가 이런 생각을 못했었구나” 라는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거의 한 달쯤 지나자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을 했고 고해성사도 보았다. 보속의 내용은 “억지로 용서하지마라, 괜찮지 않다는 걸 인정해라. 다 용서하고 아무렇지 않다는 건 어디 소설에나 나오는 얘기다, 그러니까 억지로 아무것도 하지마라. 단, 하느님께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하라는 말씀을 주셨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들을 미워하는 것에 대해 병리적 죄책감 없이 지냈고 지금은 묵주기도 중에 성모송을 바칠 때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편하게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느낀다. 그 사람들에 대한 충분한 탐색을 갖지 않고 처음부터 지나친 애정을 주고 믿은 것도 내 탓이고, 그 사람들을 더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고, 얼마나 힘든 지에 대해 알아보려하지 않은 것도 내탓이라는 것을. 그리고 세상은 관계 속에서 “네편/내편”으로 나뉘어 적과 아군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 수만큼의 다양한 입장이라는 게 존재하는 것임을 그런 입장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내 문제라는 사실이 인식되자 잘은 모르겠지만 혹시 이런 과정들이 관계에서의 애도의 과정이라면 이 과정 끝에는 타인에 대한 더 큰 이해와 사랑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영화에서 아르망이 고흐의 자살을 “나약함” 때문이라고 말할 때 아버지는 “때로는 우리가 삶에 부딪혀 무너지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약하고 모자라서가 아니라 삶이란 것이 그런 것이다”라고 말하는 대사에서 나는 위로를 받았다. 그 말에는 어릴 적부터 들었던 “네 탓, 네가 나빠서, 너 때문에 안되는거야” 라는 엄마 말이 옳은 말이 아님을, 결국 나에게 어떤 잘못이 있다가 보다 삶이란 그런 것이라는 더 큰 명제 속에 포용된 나의 죄책감에 대한 안전한 느낌이랄까? 강한 사람도 고통과 실망감, 견디기 힘든 환경 속에서 나약함에 빠질 뿐이지 선천적으로 약한 의지(나약함)를 타고 태어나 것은 아니라는 말에서 늘 벗어나고 싶었던 “나쁜 아이”라는 말에서 자유로워질 것 같은 희망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는 대사처럼 나는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해주기를 바라는 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자신을 사랑한 사람, 그 사랑의 힘으로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


수퍼비전 - 다른 사람을(존재자체에 대한 공격) 끝없이 불신하고 의심하는 편집증적 성향의 어떤 사람이 현실의 민정씨에게 큰 영향을 지속적으로 미친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전염되어 어떤 대상에게든 의심하고 비난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날 것입니다(불쾌한 불안).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어른에게도 이러한 결과가 생겨납니다. 이러한 피해의식의 분노가 반복된다면 일이나 관계에도 일반화가 될 것입니다. 매사 못마땅한 행동과 태도로 트집을 잡고 그로인한 말다툼과 입씨름이 일어나고, 믿었던 사람이 신의를 저버리거나 무례하거나 얕보는 행동을 한 것에 지속적으로 분노가 일어나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피할 정도로 싫어하는 것에 대한 피해의식의 공포도 일어나고, 적대감이 담긴 눈빛과 말로 질시가 나가고, 음모와 공격의 타깃이 된 것 같아 늘 심기가 불편할 것입니다.

편집증적인 사람의 특징은 다른 사람을 끝없이 불신하고 나쁘게 의심합니다. 아무런 근거 없는 평범한 행동도 자신을 나쁘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해석합니다. 전화를 빠뜨리거나 생일을 잊는 작은 실수에도 적의가 일어나지요. 편집성향의 부모는 아이의 순수한 의도나 자연스러운 본능적인 태도를 부당하게 왜곡해서 바라봅니다.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이유로(불편하다는 이유로) 아이의 행동을 경멸이나 위협의 의미로 해석해요. 여기서 호의적인 말이나 행동을 아예 받아들일 수 없어요. 아이가 어릴 적부터 엄마에게 편집망상으로 공격을 당하면 살아가면서 어떤 작은 무례한 행동이나 상처를 대면하거나 용서하지 못하게 됩니다. 정확하게는 매사 소소한 좌절이나 갈등에 대하여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모습이나 다른 사람이 보여주는 나에 대한 정보를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반격할 뿐입니다. 편집증성 망상은 인지기능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근심, 분노, 무관심, 따지고 고발하는 단죄는 자신에게 벌써 이미 해를 끼쳤다고 믿기에 이러한 망상으로 다른 사람과 친밀하고 행복한 관계를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그/녀와 가족이 되면 끊임없이 충실성과 신뢰를 증명하며 살아야 합니다(자신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불성실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진심을 털어 놓지 못하는 것은 편집증 성격을 가진 사람의 방어입니다(불리한 것은 없앤다). 민정씨가 성당에서 경험한 일은 아마 별 것 아닌 실수와 의도가 없는 일을 매우 과장해서 받아들이고 행동한 것일 수 있어요. 그 실수나 잘못을 곱씹으며 그들을 더욱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이 느껴집니다. 자신이 옳고 잘못이 없다는 완벽한 관점은 가족이든 친구이든 동료이든 이웃에게 비정상적인 사고와 감정을 감내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아요. 누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선 불만을 표현할 수도 있어요.

구체적으로 누군가 민정씨에게 다가와 불만을 표현했을 때 그와 대화를 하거나 싸울 수는 있겠지요. 다른 사람을 향한 불신이 크면 너무나 독립적인 사람이 된답니다. 자신의 판단으로 인상을 쓰고, 거리를 두고, 홀대하고, 피하고, 무시하고, 우울해하며 사람들을 거부하게 되지요(원망과 괴리감). 민정씨의 단호한 이런 태도는 부모의 행동을 관찰해서 배우고 동일시한 모습인 것 같습니다. 민정씨와 관련해서 문제가 생겼다면 누구든 상의, 해결하러 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불성실하고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아무에게도 자신의 진정한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게 되요. 다른 사람들 말에만 휘둘려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하다 보니 진이 빠지고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것이죠. 또 이러한 갈등은 주기적으로 반복되죠.


선생님과의 피드백으로 어릴 적 엄마의 문제 해결 방식이 생각났습니다. 엄마는 여러 모임의 장을 맡고 있었는데 늘 전화통을 붙들고 살면서 자주 큰소리로 사람들과 싸웠던 기억이 났어요. 지금 기억나는 말들 중에는 “누가 그런 말을 했어? 또 뭐래? 이게 어디서” 그 다음에는 엄마의 의견에 반대하거나 뒤에서 욕을 한 사람을 불러내어 설득을 시키거나 아예 안 보거나 아니면 다른 가만히 있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서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구구절절 설명했고, 늘 “넌 가만히 있어봐, 내 얘기 다 듣고 말해”라고 하면서 자기애적 태도로 일방적인 얘기만 늘어놓고 결국 상대가 “알았다”는 얘기를 해야 “제 까짓 게 어디서 사람을 뭘로 보고”라는 말로 모든 일이 끝났던 사실이 기억이 났습니다. 그동안 전혀 떠올려지지 않았던 엄마의 모습과 제가 똑같이 닮았다니 너무나 놀라 무섭고, 창피하고, 불편하고, 불쾌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결국 엄마와 같은 편집증적 성향과 피해의식으로 분노가 일어나서 성당에서 그런 만남을 한 것입니다. 저는 자라면서 엄마가 이해가 안 된 적이 많았어요. 엄마는 할아버지 집을 다녀오면 “창고에 쌀이 많던데 모르긴 몰라도 우리만 안주고 다른 자식들은 다 줬을 걸” 친척을 길 어디 식당 앞에서 만났다면 “나만 안 부르고 지들끼리 식당에서 밥 먹고 나오나보다”, “너 내가 시킨 거 왜 안 해놨어? 잊어버리긴 무슨. 어제 나한테 혼났다고 일부러 그러는 거 누가 모를까봐?” “말 안 해도 다 알아, 내 눈치가 백단인데” 이런 말도 안 되는 남을 끊임없이 나쁘다고 의심하고 불신하는 엄마가 혐오스럽고, 공포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누군가의 의도 없이 한 말이나 행동에 대해 상징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우선 내가 받은 수치심이라는 상처에 모든 에너지가 집중되어 발끈해서 복수를 일삼았던 것 같습니다. 엄마를 닮아 저 역시 성당 부모교리 자모들이 나에게 상처를 줄 의도도 없이 자기들끼리 편하게 한 이야기를 아주 작당을 하려고 모인 것이었고 나에 대한 아주 나쁜 얘기했을 거라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늘 과장되게, 장황하게, 긴 시간 동안, 일방적으로, 듣지도 않고, 억지스럽게, 사실보다 느낌으로 다른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한 저의 증오와 자기애적 태도가 이제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그 누구와 대화를 해도 왜 제 감정만 남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진짜 갈등은 하나도 해소되지 않고 반복되었다는 것도 알 것 같습니다. 계속 지적인 추리로만 합리화하고 누군가를 돕거나 그들의 요구에 맞춰주는 것에, 감정을 공감해주는 것에 대해 왜 그리 억울한 저항감이 컸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어릴 적 엄마의 증오 앞에 벌벌 떨고 그 시간이 지나가길 억지로 참으며 소화하지 못했던 부정적 감정이 늘 다시 리콜되고 있었습니다.

민정씨 자신의 증상을 다 이해하고 바꾸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증상은 무의식이기 때문입니다. 민정씨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민정씨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일 수도 있어요. 사람이 한 말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상처를 받는 경우는 반드시 편집증적인 태도입니다. 이 비극적 상황은 이유가 있습니다. 피해망상이든 과대망상이든 그 안에 완성해보지 못한 의존과 분리라는 주제가 있어요. 주체가 타자에게(엄마-아기) 묶어 경계를 만들 수 없으면 말과 생각도 다 융합되고 말죠. 엄마의 힘이 온통 몸과 정신에 강하게 영향을 주면 아이는 자신의 의지를 박탈당합니다. 엄마의 말을 묵묵히 따르면서 다르게 사는 모든 기회가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민정씨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변하고 싶을까요.



182 태풍이 지나가고 함께라면18.06.1061
181 분열성자리 프로이드연구소18.05.2888
180 러빙 빈센트 함께라면18.03.25186
179 몬스터 콜과 마담푸르스트의 비밀정원 함께라면18.02.04770
178 꿈해석 상급반 강의 목차 관리자17.12.09286
177 내사랑 그리고 프레셔스 함께라면17.11.05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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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위니캇강의를 마치고... 부모교육반17.01.17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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