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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콜과 마담푸르스트의 비밀정원
함께라면(rroye@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18년 02월 04일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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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푸르스트의 비밀 정원과 몬스터 콜 - 상담스터디


1. 마담 푸르스트의 비밀 정원과 몬스터 콜(옐로우 님)
폴은 아주 어릴 적 부모님을 잃고 쌍둥이 이모에 의해서 키워진다. 이모들이 운영하는 댄스 교습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폴의 모습은 마치 로봇 같아 보였다. 어린 아이처럼 과잉보호를 받는 것과 달리 무표정한 얼굴과 생명력 없는 눈은 자신의 삶에 대한 아무런 의지가 없는 사람 같아 보였다. 우연히 마담 프루스트를 만나면서 웃음을 되찾고 스스로조차 기억하지 못했던 과거를 기억 낚시를 통해서 다시 만나며 아버지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과 그에 얽힌 오해를 풀어 간다. 또한 이모들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삶을 살아 갈 수 있게 되는 과정이 꼭 나와 같아 너무 놀랐다. 영화를 보면서 폴이 잘 공감이 되었던 것은 나도 부모교육 수업과 상담을 통해서 아버지와의 관계를 새롭게 할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에 대해서 많은 증오와 혐오를 가지고 있었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 쳐지게 싫은 마음이 컸었다. 엄마는 늘 아버지에 대해서 느끼는 좋지 않은 감정이나 생각을 어린 자식들 앞에서 거르지 않고 표현하셨다. 외갓집 식구들도 어쩌다 우리 집에 오면 엄마니까 참고 살아간다고 그래서 불쌍하다고 하셨다. 부부싸움이 있을 때 아버지는 종종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맞고 있는 엄마를 볼 때 마다 아버지가 나쁘고 몹쓸 사람임을 확신했었다. 성인이 되자 엄마는 아버지하고 무슨 일이 생기기만하면 나에게 달려와 하소연을 했고 난 엄마보다 더 분노하면서 아버지를 몹쓸 사람으로 치부 했다. 나한테 아빠에 대한 미움을 한껏 쏟아놓은 엄마는 마음이 가라앉아서 집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아버지를 향한 분노가 가라앉지 않아서 ‘어쩜 인간이 그 모양일까?” 하며 내내 곱씹곤 했다.

신문이나 뉴스에서 여자를 괴롭히는 남자들에 대한 기사를 보면 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많이 느꼈다.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날까봐 두려웠고 아버지가 죽으면 장례식도 안 갈 거라고 했을 정도로 미워하고 싫어했다. 코헛 수업을 듣던 중에 나에게 아버지 자리가 없음을 발견하고 크게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40년이 넘는 세월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아버지와 관계를 맺어 본 적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엄마 때문에 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고 엄마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그게 아버지라고 생각하며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담과 수업을 통해 이해가 되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한 오해를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아버지와 나는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었다.

아버지와 나는 이년 정도 잘 지냈는데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에 많은 상처를 받았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내가 아버지와 새롭게 관계를 맺고 아버지를 떠나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큰 위로가 되고 감사 했다. 아버지도 너무 많은 결핍을 가지신 분이라 감정조절이 어려웠고 외부세계와 접촉하지 못해 평생을 쳇바퀴 돌 듯 가게와 집을 오가며 일만 하시긴 했지만 그래도 엄마를 버리지 않고 가정을 지키셨던 것, 오랫동안 자신의 일을 꾸준히 하셨던 것, 어려운 사람들의 딱한 처지를 생각해 도움을 주셨던 따뜻한 면도 있었다는 걸 추억하게 된다. 아버지를 만날 수는 없는 슬픔이 크지만 사랑받았던 경험으로 어렵고 힘들 때나 일하기 싫어질 때 아버지를 불러 얘기하는 게 나름 힘이 될 때가 있어 행복하다.

연희씨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과 안정감을 배우자를 통해 해결하려고 했을 때 부모와의 관계가 없었던 경험으로 외로웠을 수 있었겠어요. 실제로 배우자는 제2의 부모이기도 해서 어린 시절의 상처를 씻어줄 수가 있거든요. 배우자의 사랑으로 평생 따라다니던 외로움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사람도 있어요. 아마 연희씨도 남편의 신뢰로운 사랑으로 평생 따라다니던 불안정감과 외로움이 경감된 부분도 있고, 오랜 시간동안 아버지 관계의 부재로 남편이 잘 느껴지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친밀해지기 위해 먼저 다가가거나, 사랑 표현을 하거나, 원하는 것을 말하고 싶을 때, 갈등이나 고통을 위로하거나 받고 싶을 때 외로울 수 있죠. 남편과의 거리감이 크다면 연애할 때 느꼈던 기분 좋은 감정과 배려는 건강한 마음에서 나온 게 아니라 불안과 두려움을 해결하려고 발달된 눈치에서 나왔던 것일 수 있어요. 각자의 히스토리에서 생긴 바람이 만들어 낸 허상이 크면 그 위에 지어진 집이 견고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그 결과는 지속적으로 소통이 되지 않고 외롭고 불안하다는 거죠. 외로움을 직면하지 않으려고 화를 내는 거구요. 부모에게서 채워지지 않은 자기애적 욕구는 늘 관계를 어렵게 하는 것 같아요.

성경에 ‘룻기’서를 좋아해서 많이 읽었던 기억이 나요. 거기에 나오는 보아스와 같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정말 열심히 기도했던 때가 있었어요. 부모로부터 심리 정서적 지원 뿐 아니라 물질적인 지원도 제대로 받아 본 경험이 없어 제 자신의 모든 것을 책임져 줄 상대를 너무나 간절하게 찾았던 것 같아요. 기도의 응답인지 운이 좋아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괜찮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연애를 하던 6개월 동안은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하고 좋았어요. 문제는 결혼을 하고나서였는데 부모와의 관계에서 처리해보지 못했었던 여러 감정과 욕구들로 많은 좌절을 경험하면서 불행한 제 진면목을 보게 되었지요.

결혼 후 신기하게도 연애할 때 느꼈던 좋은 느낌들은 어디론가 갑자기 다 사라져 버리고 남편의 존재가 너무나 낯설고 어렵고 불편한 느낌만 남았어요. 뭔가 알 수 없는 불안정한 감정과 슬프고 불행한 마음 때문에 단 하루도 마음이 편하고 좋았던 때를 기억할 수 없어요. 남편의 말 한마디, 작은 행동과 눈빛에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나 그렇지 않은가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어떤 것이든 저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삐져있으면서 며칠 씩 말을 하지 않거나 화가 나면 서재 방 책상 위 물건들을 남편이 보는 앞에서 다 쓸어버리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는 행동을 주기적으로 반복 했죠. 어떤 날들은 새벽 한 두시에 차를 미친 듯이 몰고 다니기도 했는데 그때 느꼈던 강렬한 감정은 외로움이었고 제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다고 느껴지는 감정이었어요. 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이런 행동들은 아무리 좋은 성경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해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는데 종교적인 열심을 가지고 있었던 때라 이런 제 모습을 보면서 신도 저를 버렸다고 생각을 했어요.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백혈병에 걸릴 만큼 컸었는데 죽음을 가까이 두고도 바뀌지 않았지요. 투병 중에 저의 인간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제가 선생님을 만나 수업을 듣고 상담을 시작했었죠. 비로소 제가 왜 이럴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씩 알게 되고 그제야 저의 파괴적인 행동들은 조금씩 멈추게 되었어요. 남편에게 저의 진짜 원하는 것을 표현하지도 못했고, 먼저 다가가거나 사랑을 표현하는 건 자존심이 상하고 엄청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져 할 수가 없었는데 저는 남편이 제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주길 바래서 그랬던 거예요.

기대했던 것이 돌아오지 않았을 때 분노 대 폭발하여 파괴적인 행동으로 결말을 삼았어요. 부모에게 정서적 채움을 받지 못했던 욕구들은 제가 어른으로서 동등한 관계를 하지 못하도록 했고 건강한 방식으로 욕구를 채우지 못해서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었어요. 남편이 아무리 잘해주어도 이상하게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 늘 남아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예전처럼 파괴적으로 관계하지 않아요. 오랜 세월 저의 성격적 문제를 정리하고 나니 이젠 남편을 잘 못 느끼는 문제가 남겨져 있어요. 제가 아마도 정신분석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남편을 사랑 없는 무정한 인간 취급을 하며 엄마가 아버지를 몹쓸 사람으로 느끼고 살았던 것처럼 저도 똑같이 그렇게 살고 있을 거 같아요.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관계만 회복 된 게 아니고 제 결혼생활이 완전 바뀐 역사도 있었네요. 이 영화 주인공은 폴이기도 하지만 저 이기도 해서 더 의미 있는 것 같아요. 부모의 부재로 인한 상처가 삶을 살아가는데 삶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 제 삶을 돌아보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어요.

몬스터 콜을 보고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 엄마, 학교에서는 왕따, 아빠와 함께 살 수 없는 현실은 어린 코너에게 너무 가혹하기만 하다. 아이에게 이 보다 더 최악인 현실이 또 있을까? 엄마를 떠나 보내야하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으나 엄마의 병세가 더 악화되어가는 현실 속에서 코너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지 공감이 간다. 몬스터가 들려주는 이야기 중에서 나는 첫 번째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몬스터는 첫 번째 이야기를 통해서 모순 된 것이 동시에 성립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왕자는 여왕을 내쫒기 위해 사랑했던 농부의 딸을 죽여 여왕을 살해범으로 몰아내고 왕이 되어 평화로운 나라를 만든다. 다행히 몬스터의 도움으로 여왕은 목숨을 잃지 않고 도망쳐서 살아간다. 왕자와 여왕의 모습을 통해 온전히 착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없고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그 두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 앞에서 순간 뭔가 잠시 주춤 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엄마를 지켜보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 그냥 끝났으면 좋겠다는 코너의 진심을 얘기해야하는 과정이 고통스럽고 처절하게까지 느껴졌다. 그로 인해 가졌던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가 ‘나는 제일 큰 벌을 받아야 돼’ 라고 얘기하는 코너의 모습도 너무 안쓰러웠다. 엄마가 오래 살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코너가 듣고 싶어 하니까 엄마는 계속해서 나아질 거라고 말했고 코너는 그 말을 믿기도 했고 한편으론 믿지 않았다. 그래서 ‘차라리 빨리 끝나라. 얼마나 외로울지를 상상조차 하기 싫지만...’ 두 가지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고 자기 때문에 엄마가 죽는 거라고 말하는 코너에게 몬스터는 그건 사실이 아니고 고통이 끝나길 바란 거 뿐 이고 당연한 거라고 얘기해 준다. 왕자는 살인자이면서 좋은 왕이었고, 약제사는 성격이 못됐지만 생각이 옳았고, 인간은 복잡한 짐승이여서 때론 고통스런 진실보다 거짓 위로가 필요할 때도 있다고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중요하지는 않지만 뭘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코너를 다시 일깨워준다.

코너와 한 마음이 되어 줄거리를 쫒아가고 있는 나에게 이와 같은 몬스터의 이야기는 나의 맘 속 어디선가 마음이 놓이는 경험을 하게 했다. 불확실 한 것과 애매모호 한 것을 잘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저것, 좋은 것과 나쁜 것, 내 생각에 맞춰 옳은 것과 그른 것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나에게 세상의 일은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코너가 가지고 있던 갈등과 생각들이 하나하나 해결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참 좋았다. 내적인 갈등이 있을 때도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대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결국은 그에 맞는 과정들을 겪어 내야 성숙의 길로 갈 수 있는데 그 ‘과정’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도 되어서 그런 것 같다. 어려울 때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서 어려움에서 빠져 나오고 일이 해결 되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되지 않더라도 또는 내가 생각지도 않았던 큰 일이 생겨도 그것을 참아내고 감당 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내 자신에게 얘기해 본다.

나에겐 어떤 것이든 조금도 손해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서 조금의 좌절도 하려하지 않는 태도가 있다. 또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순간 그 자리에서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또는 누군가가 나타나서 해결해 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도 있다. 기쁘고 좋은 감정이외의 다른 감정들은 느끼고 싶지 않아 외면한다. 그래서 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더라도 해피엔딩이나 가볍고 재밌는 것만 보고 싶다. 조금의 불편한 것도 참을 수 없어 떨어 버리고 싶어서 안달복달 하는 나의 태도로 현실에 발을 내딛고 살지 못했던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발달을 연습해 보느라 시작했던 학교도 이제 곧 마지막 학기를 남겨 두고 있고 센터도 2년째 운영 중이다. 학교도 다니고 쉬는 날도 없이 거의 매일 일을 해보면서 내가 이 공부를 하기 전에 얼마나 아무것도 안 하고 살았는지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배우고 있다. 내 모습을 보면 이렇게 애쓰고 노력한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버리는 일이 생길까봐 걱정스러울 때가 많이 있지만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고 싶다.

코너도 연희씨도 또 세상의 많은 사람들도 아마 평화롭고 조화로운 실망이 없는 세상에 살고 싶어 해요.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세상에 살기 위해 노력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런 노력은 실패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어떤 현상의 한쪽 측면만 보면요. 모든 평화와 조화 그 이면엔 불안과 갈등이 짝을 이루어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배려하는 모습도 자신의 모습이고 분열과 갈등을 만드는 것도 자신이란 말이죠. 오히려 자신의 두 모습을 지각하고 있는 사람일수록 갈등에서 놓여나기 쉽습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면도 나요.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하는 거칠은 면도 나에요. 인간은 원래 모순된 존재예요. 이 상황에선 이렇게 살고 저 상황에선 저렇게 사는 존재입니다.

모순을 적절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안정된 정서가 필요한데요. 안정된 정서란 무엇일까요? 일상생활을 성실하게 살고, 자신감 있는 태도를 갖고, 감사해하고,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 아닐까요. 남이 좀 부족하더라도 약점을 참아주고 갈등이 일어나고 모순이 있다 해도 품을 수 있는 능력요. 이러한 거룩한 일관성은 원래부터 모순위에 있었어요. 부모는 자녀가 수없이 모순을 가져도 이를 받아주고 수용하지요. 이런 수용을 기반으로 자신의 일관성을 발전시켜 나가는 거구요. 인간이 가지는 일관성은 모순을 수용하는 사랑의 행위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인간이 원래 모순된 존재라는 것과 상황에 맞춰 이렇게 저렇게 살 수 있다는 말씀이 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더 넓은 마음과 생각을 갖게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안정된 정서가 필요하고 자신의 모순을 수용 받는 경험을 통해서 일관성이 발달한다는 것의 연관성은 아직까지 잘 느껴지지가 않지만‘거룩한 일관성’이란 단어가 마음에 들어와 계속 곱씹게 됩니다.

연희씨 아침에 눈을 떠서 이어지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일상적인 삶 말예요. 어떤 사람은 그저 의미 없이 돌아가는 쳇바퀴처럼 또는 감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요. 또 어떤 사람에겐 한 순간 한 순간 소중한 의미를 부여해서 경험되는 자신이 살아있음이 축복이고 감사일 수 있겠고요. 후자의 경우는 자신의 경험에 연속성을 갖고 있는 경우일 거예요. 살아오면서 좋고 나쁜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수용한 삶의 자세요. 존재에게는 삶의 목적이 있고 뜻이 있다고 생각해요. 또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굴곡을 경험하면 더 겸손하고 조심하라는 뜻도 있겠지만 균형과 조화를 이루라는 더 큰 뜻이 있기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요즘 하루를 보내고 자리에 누우면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좋은 마음으로 일 하다가도 으이고 내 팔자야 하면서 한숨이 절로 나오는 때가 많이 있었는데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똑같은 일상의 삶이 어떤 사람의 경우 의미 없이 돌아가는 쳇바퀴나 감옥같이 느껴질 수 있다는 표현이 저의 상태라 생각되네요. 제가 경험의 연속성이 없어서 가치나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잘 되지 않고, 좋고 나쁜 경험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 수용하는 게 참 어려워요. 특히 나쁘고 힘든 경험은 절대 하고 싶지 않고 나에겐 그런 일이 생겨선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있어요. 나쁜 경험이란 단어만 들어도 강력한 거부감이 들어요. 얼마 전 유학을 간 아이의 학교적응문제로 마음이 복잡하고 어려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주신 피드백이 힘이 되요. 아이문제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각성 상태가 되어 음식을 먹을 수 없고 자지도 못하는 상태가 계속되어 힘들었어요. 외부에서 무슨 자극이 들어오면 그것을 담아 소화하고 처리하는 능력이 없어서 이렇게 생활이 온통 마비 되어버려요. 현실이 없는 저의 상태와 좌절하지 않으려는 저의 본능 때문에 갈등이 크다고 느껴지네요. 살아가면서 여러 굴곡을 경험하면 더 겸손하고 조심하라는 뜻도 있지만 균형과 조화를 이루라는 더 큰 뜻이 있다는 말씀을 새겨보며 글을 올립니다.



2. 세 가지 꿈(화이트 님)
나는 지금보다 더 높은 자아발달을 하고 싶다. 이것이 현재 겪어내야만 하는 과제이고 소원이다. 생산적인 일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한 상태로 집에 들어가 잠을 자고 음식만 섭취하는 퇴행을 몇 번이고 반복하며 답답해하는 힘든 나의 자아 상태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고 이것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가? 우선 내가 당면한 과제를 정확하게 파악해보고 싶다. 최근에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서 나의 결핍된 부분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상상계에서(유아적 수준) 벗어나 상징계의 삶을(어른의 정체성을 성취하라는) 살아내라는 과제가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외부 현실에서 일어나는 실수와 실패 그리고 세상에 대한 탐색과 도전을 하지 못하고, 느슨하고 피상적인 인간관계의 모습은 나의 내면의 진실과 닮아 있다. 이젠 거꾸로 내면적 진실로(알고 느끼고 경험을 바꾸어) 외부 세계가 달라져 나의 정체성을 완성해야 한다.

유치한 어린아이와 같은 환상을 해소하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복잡한 현실에서 살기를 진심으로 소망하기에 나의 몬스터를(퇴행욕구) 마주해 보고 싶다. 이 년 넘게 분석상담을 받으면서 선생님은 살아가면서 불안을 경험하고 괴로움을 견뎌 내는 게 성숙이라고 격려해주시고 현실로 따라오라고 하시지만 난 무의식의 진면목이 잘 보이질 않는다. 내 마음인데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뭐든 열심히 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달리 늘 초라해지는 나를 바라볼 때마다 두려움과 외로움, 열등감, 수치감이 느껴진다. 밤마다 나를 마중 나오는 몬스터의 얘기를 이젠 감당할 수 있을까.

퇴행의 정의는 '성숙단계의 도전을 감당할 수 없을 때, 본능적 조직의 이전 단계로 후퇴'하는 것이다. 정신 기능은 그렇다면 어디까지 퇴행하는 것인가? 본능적 조직 이전 단계로 후퇴할 때 이전 발달 단계에서 해결되지 않은 갈등과 불안은 정신기구 안에 고착(약한 부분) 으로 남게 된다. 이 고착이 정신 기능이 어디까지 퇴행할 지를 결정하는 것이며 바로 자신이 이전에 극복했던 활동을 재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발달상 1.나는 어느 단계에 있고, 2.현재 어떤 성숙 단계의 도전에 부딪히는 것일까? 3.또한 나는 어디까지 퇴행하는가?, 4.퇴행의 양태는 어떠한가?

나는 최근 한 달 사이에 세 개의 꿈을 꾸었다. 먼저 꿈 내용을 소개하자면 첫 번째로 '똥과 오물' 꿈이다. 나는 중학생이다. 학교 내 복도와 여러 공간에서 똥과 오물이 들어있는 남자 소변기가 있는데(공간 가득히 뉘어져 있다) 이것을 다른 친구들과 치우고 있다. 나는 그것을 치우다가 넘어지고 다리에 오물이 튀었다. 오물에 닿지 않으려고 최대한 조심했는데, 결국은 다리에 묻어버린 것이었다. 불쾌했지만 이내 덤덤해졌다.

두 번째 꿈은 '품평회'에 대한 것이다. 나는 유학을 가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다. 스튜디오 수업에서 학생들의 품평회가 열렸다. 나는 스티로폼 조각들을 핀으로 헐겁게 고정시킨 작품을 전시실 여기저기에 배치했다(작업을 위한 핀들이 바닥에 헤쳐져 있다). 작품은 견고하게 만들어지지 못해서 조금만 건드려도 툭툭 떨어진다. 그리고 헤쳐져 있는 핀과 압정을 밟을까봐 피해가며 조심스레 걷는다. 다른 외국 학생들의 작품은 도기/금속 등을 이용하여 지정된 한 자리에 견고하게 제작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미용실' 꿈이다. 나는 미용실에 머리를 커트하러 갔다. 헤어디자이너가 내 의사를 묻지도 않고 커트를 한다. 시간이 지나 보니 마치 왜구나 청나라의 변발을 연상하게 하는 스타일이 되어있다. 내 머리가 왜 이렇게 됐는지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미용실 스태프들이 나에게 박수를 치며 요즘 유행하는 이 머리가 나에게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 원하지 않았던 이 머리가 '정말 잘 어울리는 건가?'하고 긴가민가해 한다.

세 가지 꿈을 아우르는 공통적인 현실 자료로는 분별없이 급하게 수습한 상황 또는 사람들과의 접촉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불안과 실망이 컸다. '똥과 오물' 꿈을 꾼 시기에는 목적에 맞는 투자라고 생각했지만 다소 충동적으로 막연한 기대만으로 큰돈을 한꺼번에 써버렸다. 또한 막연히 분리개별화의 문제를 인식하고 섣불리 해결하기 위해 성급한 결정을 해버린 결과로 후회되는 어려움이 생겼다. 주체성을 가지고 좀 더 현실적으로 세상과 대결해보려는 시도였으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철저한 계산 없이 즉흥적으로 결정내린 이 과잉행동은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품평회와 미용실 꿈은 꿈꾸기 일주일 전에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을 또 기대하며 성급히 다시 약속을 잡아 만났지만 실제로는 오랜만의 만남처럼 신선하지도 신나지도 않은 시간낭비, 정서적 낭비를 한 지루한 시간이었다. 또 어머님이 이 주전에 장 내시경검사를 하시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집과 상담실을 하루에 두 번이나 오가게 되었고 약속장소를 숙지하지 않아 실수로 일어나는 일로 어머님에게 짜증이 났었다. 또 점심을 먹고 출발한 학원에서 동료와 간단하게 커피나 간식을 해도 좋았을 텐데 그 사람에게 맞추느라 과식을 한 경험과 얼마 지나지 않아 친분 있는 동생들을 집에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했지만 가치 있는 대화도 그렇게까지 잘 되지 않았다. 사실 인스타 그램에 가방사진을 부탁하기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제대로 현실적인 검토를 통해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준비 없이 한 근거 없는 부탁이었기에 아무와도 소통되지 않았었다.

현실 자아가 미발달되어 실수를 바로잡지 못하고, 위 사례와 같이 나의 좋은 의도와 현실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늘 매치가 되지 않고(현실을 일부만 자각해서) 그리고 상징계 코드를 못 읽어 늘 엇갈리는 여러 가지 일로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허탈, 탈진, 분노, 짜증, 무가치감, 혼란, 무력한 감정이 자꾸 일어나 피곤하고 우울했다.

이 상황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첫 번째로 나는 현실 원칙, 규칙에 대한 내면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결과 외부 현실을 분별하고 우선순위를 구분 짓는 조직화의 부재가 크다. 두 번째로 주체적으로 내 삶을 매니지먼트 못하는 상태로 그때그때 닥치는 상황에 휩쓸려 즉흥적으로 수동적으로 수습하기만 하는 모습이 있다. 세 번째로 이때마다 퇴행이 오는데 현실적 자아조절 기능이 없어져 주체적 행동을 못하거나 상식적이지 못한 행동 뒤 수치감으로 무기력하게 잠만 자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음식을 가리지 않고 섭취만 하는 모습이 크다.

나는 인격발달이 항문기 초기에 고착된 것 같다. 항문 괄약근은 항문기 후기에 발달하니 항문기 초기엔 괄약근이 조절이 불가능하다. 물론 내가 이 시기부터 전혀 발달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 엄마와의 관계에서 아버지 관계까지는 나아갔으나(외디푸스 진입) 어떤 스트레스로(또는 트라우마틱한 좌절로) 자꾸 항문기로 퇴행한다는 뜻이 정확할 것 같다. 물론 과잉 충족도 분리개별화 실패의 원인이겠다. 남근기에 좌절이 크면 좋았던 때로 되돌아가서 행복하고 싶은 마음이 당연하다(정신분석의 관점). 즉 싸는 낙으로 산다는 것이다. 첫 번째 꿈에서 남자 소변기가 바닥에 눕혀있던 게 인상적이었는데 배설이라는(앉아서 배변하기도) 상징적의미가 숨겨져 있었다(내가 충격 받을까봐 꿈이 변장을 시킨 것이다^^).

즉 양육자에게 수동적으로 의존하는 상태로서 수면만 취하고 섭취에 집중하는데 그 목적은 배설의 쾌감을 느끼기 위한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께서는 먹을 때는 공부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데, 공부하기 싫어서 계속해서 먹을 것만 찾은 사실도 이를 입증한다. 현재에도 이는 반복적으로 외부 현실을 충동 조절 없이 모두 섭취해버리고, 배설로 일관하는 패턴이 강하다. 항문기 후기까지 발달을 해야 공격성도 적절하게 사용하고(자기주장, 집요함, 꼼꼼함의 유지능력 등), 창조성이 결실을 맺게 되는데 말이다.

또한 항문기는 배변훈련을 하는 시기로 규칙을 내면화하는 시기라고 배웠다. 삶에 대한 통제감과 자율감을 성취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내 마음대로 고집대로 사회적 상황을 무시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나는 규범화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아버지가 내재화되고 과대자기가 수정되는 변형적 내재화가 실패). 이년 넘게 분석을 받으면서 부모님의 문제가 객관화되지 않아 늘 답답하다. 부모에 대한 이상화와 함께 건설적 비판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문제의 구분이나 정도를 잘 헤아리기가 어렵다. 사실 현실에서 부모님과의 관계가 친밀감보다 거리감이 매우 크다.

추가로 유추할 수 있는 바는 현재 나의 발달과정에서 도전에 부딪히는 지점인데, 철저한 현실계산과 검증을 통해 현실을 선별/분별해야하는 과제에 도전하고 싶으나 잘 되지 않는다. 유능감을 갖고 싶으나 현재 나의 무능력과 비효율적인 시간사용, 현실과의 컨텍 제약의 원인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나는 늘 소망을 감정의 형태로만 표출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이러한 미숙한 감정만 있다는 것은 사실 환상속에 사는 것과 같다. 환상속에서는 모든 게 가능하지만 현실에선 그렇지가 않다. 어릴 적부터 나는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점차 진짜 감정을 표현하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발달정지의 이유). 아버지도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외로운 분이시다. 요새 나는 아버지를 참 많이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아버지는 자수성가를 하신 성실하신 분이시다. 하지만 정신분석에서 배운바와 같이 성인 아이는 일을 잘하지만 정서적 관계를 잘못하고 정서적으로 어려워지면 해결을 못한다. 아마도 이러한 영향 때문에 나는 정서적 지원 없이 혼자서 지내온 것 같다. 대를 이어온 외로움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지금까지는 외로움 자체를 없애려 해서 문제가 생겼던 것 같다. 몬스터가 꿈에 나타나 아버지가 어떤 외로움을 경험하셨는지 보게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마도 같은 외로움이 일 것이다. 지금 이순간은 외로운 나를 수용하면서 아버지를 이해해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나라는 주체에 기초한 기준과 가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로 부터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말을 잃은 채 이모들의 과잉보호 속에서 발달이 정체된 폴이 우연히 마담 프루스트의 도움으로 과거의 상처와 진실을 알게 되면서 분리개별화를 성취할 수 있었다. 나만의 주체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영화 중 폴처럼 나의 뿌리인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철저한 객관화가 필요하다.

어머니는 나와 기질적으로 맞지 않아서 내가 기대하는 반응에 반대로만 행동하셨다.(엉뚱한 반응 / 하나마나한 반응)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나를 통해 강하게 이루려는 분이며, 하나의 관점으로만 세상을 보고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할 수 있는 힘이 없으신 분이다. 그것은 나에 대한 성찰로 현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타인과의 공감능력이 떨어져 엉뚱한 반응으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거나, 글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글자 그대로 세상을 이해해 센스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는 또한 반대로 이상적으로 다른 관점을 통해 유레카 경험을 하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게 하는 원천(결핍에서 오는 욕구)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지금과 달리 내게 친구 같았지만 강한 이상화 대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도 생각나는 바는 무엇인가를 잘못해서 아버지가 손들고 벌을 서라고 하셨는데, 나는 그 상태에서 오줌을 바로 싸버려서 그 상황을 무마시켰고 부모님은 그것에 대해 처벌보다는 같이 웃으시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께서 너무 사랑스럽게 봐주셔서 해야 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을 나에게 강하게 경계 지우시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부모님 사이는 그렇게 좋지 못했다. 아버지는 나와 다르게 어머니의 종교생활을 강하게 막으셨고, 그에 대하여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는 자유를 억압하는 대상으로 아버지를 평가절하 하셨다. 무엇보다도 나는 금지의 언어, 즉 초자아가 약하게 형성되었다. 그래서 내게는 한계라는 것이 없다. 눈치보고 타인을 맞추는 것과 역으로 타인에게도 한계를 설정해주지 못한다. 자신 있게 참자기로서 타인에게 나를 표현하고 설득하는 것이 전혀 되질 않는다.

하여 경계 없이 타인에게 주인공 자리를 내주고는 실망감이 엄청나다. 그리고는 실망감의 원인이 나의 능력 탓으로 느껴져 타인의 기준에 맞지 않는 나라고 평가절하 한다. 이럴 때 나는 자신감이 무너진다. 부모님은 여러 면에서 부족하셨지만 자신들이 처한 환경과 능력에서 최선을 다하셨고 여러모로 과잉보호를 하신 것 같다. 여기까지 성찰하는 게 정말 쉽지 않았다. 현실에서 흐릿하게만 느껴지는 내 실체가 부끄럽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버겁기도 하다. 선생님은 내가 발달 과정 속에 있다고 위로 해주신다. 하지만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이와 같은 심정이다. 올해 진정한 나를 발달시켜 보기 위해 새로운 도전으로 대학원에 입학했다. 전공 공부와 새로운 인간관계 경험으로 내년쯤 스터디에서 더 진보한 나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3. 몬스터 콜과 마담푸르스트의 비밀정원(핑크 님)
예전에 가끔 나도 모르는 새에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곤 했었다. 그 대화 상대는 대부분 엄마였다. 때로는 화를 내며 항의하기도 하고, 변명을 하기도 하고, 억울하니 알아달라고 하소연 하고 있기도 했다. 그 내용이나 형식을 모두 떠나서 이제 깨닫는 것은 강력한 힘으로 나를 짓누르던 엄마가 얼마나 내 무의식에 깊이 박혀있나 하는 점이다. 현실에서의 엄마는 이미 80이 넘으셔서 나이 든 노인네의 안쓰러움과 연약함을 보여주지만 내 무의식에 살아있는 엄마는 여전히 어린 나를 마음 아프게 하고 억울하게 했던 괴물 같은 이미지이다. 아직도 분리개별화의 문제를 껴안고 있는 나는 나와 엄마의 문제를 들여다보느라 지쳐서 아이들 문제를 들여다 볼 엄두도 못 내고 있기도 하다.

영화 몬스터 콜이나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내 무의식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그 진실을 표현해 냄으로써 진정한 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면 나도 나의 아이들도 조금은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영화 몬스터 콜의 주인공 코너는 암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엄마와 단둘이 살아가는 소년이다. 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엄마를 바라보는 소년은 그것이 못 견디게 고통스러웠지만 자신의 고통을 억압하고 스스로를 챙기고 돌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사실은 자신의 이런 고통을 끝내고 싶은 무의식적 소망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코너의 꿈을 통해 잘 나타난다.

코너는 교회 공동묘지에서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 땅이 갈라지고 교회가 무너질 때 갈라진 땅 사이로 빠진 엄마를 구하기 위해 손을 뻗어 엄마의 손을 잡고 있는 꿈을 꾼다. 하지만 손을 잡고 있기가 너무 힘들고 무서운 그 순간 항상 꿈에서 깨어난다. 이 고통을 끝내기 위해 스스로 엄마의 손을 먼저 놓아버렸다는 진실을 알기 두려웠던 코너는 무의식적인 죄책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자신은 벌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마음을 학교 친구에게 투사하여 자신을 그 친구의 폭력 속으로 던져 버린다. 그리고 그 폭력을 견딤으로써 자신이 충분히 벌 받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코너에게 어느 날 12시 7분이면 찾아오는 주목나무 몬스터는 코너에게 자신의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세상에는 거짓 같은 진실이 많고 완벽하게 선한 사람도 또 악한 사람도 없으며, 대부분의 사람은 그 중간 어딘 가에 있다는 현실을 가르쳐 주고 코너의 죄책감을 덜어주며 진실을 말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 결과 아빠나 엄마로부터 의존의 욕구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돌보는 어른스러움으로 무장하고 현실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할머니에게 모두 쏟아 부었지만 무의식 속에서는 엄마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자신의 고통을 끝내고 싶어 하는 마음 즉, 엄마가 빨리 죽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죄책감과 동시에 ‘엄마가 떠나지 않으면 좋겠다는 어린아이다운 소망을 가지고 있었음을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현실에서 엄마의 손을 놓지 않으면서도 마침내 진정으로 엄마를 떠나보낼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코너에게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코너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평생을 엄마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엄마의 죽음과 자신이 느꼈던 여러 고통들을 직면하지 못하고 애도하지 못하여 영원히 고통스러웠던 과거에 사로잡혀있지는 않았을까?

나는 오빠, 여동생 사이에 낀 둘째이자 큰딸이기도 하다. 이위치는 엄마와 내가 원하는 것들 간에 큰 간극을 만드는 단초가 되었다. 나의 엄마는 악성 자기애자여서 아빠를 포함하여 가족 모두를 그녀가 생각하고 그려나가는 완벽한 인생 스토리 속 등장인물들처럼 다루었다. 그 이야기 가운데 그녀로부터 부여 받은 각자의 역할들이 있었고 얼마나 그 역할을 잘 수행하느냐에 따라 그녀의 칭찬이나 사랑 여부가 결정되어졌다(사실 그녀를 완벽하게 만족시킨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 누가 진실 된 사랑을 받았을까 싶지만). 그 안에서 나의 역할은 엄마를 언제든지 이해하고 도와주고 오빠와 동생에게 뭐든지 양보해서 집안이 시끄럽지 않게 해야 하고 엄마가 없을 때는 가족 모두를 돌보는 이른바 살림밑천 큰 딸이었고, 내 스스로 나는 그저 그냥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해주고 나도 내 것을 챙겨도 혼나지 않기를 바라는 두 형제 사이에 낀 박탈감 많은 둘째일 뿐 이어서 충족되지 않은 것들로 언제나 허덕였다.

자라면서 집안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었고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부모를 가지고 있었으며, 남들에게 좋은 집안 딸 같은 인상을 주어 부러움을 받았지만 내 내면은 마치 공장에서 가발을 만들어 집안을 돕고 오빠, 남동생의 학비를 대던 70년대의 그 큰딸 같은 자아상을 가지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이런 엄마에게 의존할 수 없었고 오히려 엄마의 의존의 대상이 되어 적절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의존의 욕구가 해결되지 못했다는 것은 내 상처와 불안의 출발이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강박적 행위의 원인이 되었다. 더 나아가서 엄마의 완벽한 그 그림 속에서 나의 오빠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성공적 이여야 했기 때문에 오빠와는 달랐던 나의 개성이나 자질들은 오빠의 것보다 열등하고 나쁜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세뇌를 받았다.

실제로 나는 오빠가 대학을 갈 때까지 오빠가 나보다 공부를 못하고 있었다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그에게는 엄마의 전폭적인 지지와 기대가 있었고 나는 감히 가지지 못했던 훌륭한 자질들과 좋은 머리가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무엇을 가졌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늘 자신 없고 사람들이 나의 본 모습을 알까 봐 전전 긍긍하고 내가 뭔가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 같은 죄책감도 들고 사람들의 눈치만 보면서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나를 만든 원인들이었던 것 같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나는 결혼을 하여 첫째로 아들을, 둘째로 딸을 얻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너무 많은 혼란과 고통 속에 있었다.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주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그 전까지는 내 내면과 상관없이 겉으로 보여 지는 조건들로 어떻게든 살아졌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엄마 같은 엄마는 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하던 공부와 일을 모두 그만두고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 지상 과제인 것처럼 생각했었지만 자아상이 튼튼하지 못했던 나는 엄마의 자아와 나의 자아가 마구 섞인 상태에서 아이들을 키운 것 같다. 또 해결되지 못한 결핍으로부터 나를 강박적으로 방어했던 나는 아이들의 감정을 읽어 충분히 공감을 해주지도 못했고 아이들이 그 나이 때면 할 수 있는 실수를 너그럽게 보아 넘기는 대신에 내가 완벽하게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강박적으로 행동했다. 엄마로부터 자연스럽게 체득한 게 없었기 때문에 너무나도 열심히 육아서를 읽어 단어카드 만들듯이 내용을 요약 정리하여 붙여놓고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그 일들을 수행하기 위해 애썼다.

책에서 아이들이 고집이 세져서 혼자 밥을 먹고 싶어 하는 시기가 오면 아이가 혼자 먹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는 구절을 읽고는 자유롭게 흘리도록 아기의자 밑에 넓게 비닐을 깔아놓고 밥을 차려주지만 몇 숟가락도 먹기 전에, 한 두 개씩 비닐에 음식이 떨어지는 것을 보는 순간 저걸 또 어떻게 치워야 하나 하는 생각과 완벽한 나의 상태가 무너지는 것 같은 불안감에 갑자기 숟가락을 뺏어서 먹여주고 있었던 내가 생각난다. 겉으로 그 나이에 맞는 독립을 허락하는 좋은 엄마 같지만 사실은 독립의 맛도 보기 전에 다시 아이를 무기력한 아기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비슷한 일이 있을 때마다 아이가 느꼈을 혼돈과 좌절, 분노 같은 감정들이 하나도 와 닿지 않았다. 나의 아들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엄마의 감정적인 배려를 받아보지 못한 채 엄마의 세상에 갇히게 된 것 같다. 스스로 무언가를 해결해 보려는 의지는 엄마에게 박탈당하고 끊임없이 엄마의 눈치 만 보는 걸로 자신의 에너지는 다 써버리고 세상으로 나갈 힘이 남아있지 않은 무기력한 어른아이가 되고 있는 것 같아 몹시도 마음이 아프다.

더구나 엄마의 나에 대한 메시지는 분명했던 데 반해 나는 나의 상처 때문에 아들에게 서로 모순된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나는 둘째로 나를 닮았다고 생각한 딸을 키우면서 점점 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고 내가 엄마와 오빠에 대해 가졌던 미움을 아들에게 투사하여 괴롭혔다. 그 아이의 특성이나 감정은 나에게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알아챌 수도 없었다. 나의 성취감과 평가를 위해, 또 엄마보다 내가 더 좋은 엄마라는 확인을 위해 아이의 성공을 채찍질 했지만 사실 나는 엄마가 그토록 인정해 주지 않던 나와 같은 자질을 타고 난 딸아이의 성공이 나의 성공인 것 같아 그것을 더 간절히 원하고 아들의 실패를 바라는 무의식적 소망이 있었음을 가슴 아프게 인정한다. 이런 마음을 감추기 위해 겉으로는 더 열심히 아들아이를 뒷바라지 하였던 것 같다. 겉으로는 잘 하라고 전폭적으로 도와주지만 무의식적인 메시지는 넌 잘 하면 안 된다고, 잘 될 수가 없다고 아이에게 말하고 있었으니 아이가 느꼈을 혼돈과 상처와 분노를 이제 와서는 상상도 할 수가 없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의 주인공 폴을 보면서 마치 나의 아들을 보는 것 같았다. 폴은 아기 때 부모를 잃고 이모 두 분과 함께 사는 피아니스트이다. 아기 때의 충격으로 기억과 말을 잃어버린 채 이모들의 과잉보호로 만들어진 안전한 세상에서 감정 없이 기계적으로 살아간다. 이모들의 꿈인 피아노 콩쿠르에 해마다 나가 상을 받는 것만이 삶의 목적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우연히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으로 들어가 그녀를 만나고 그녀의 차를 마시며 자신의 무의식을 탐험하게 되면서 그 안전한 세상을 깨고 그녀의 충고대로 비로소 현실에서 자신 만의 인생을 살게 된다. 그의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폴은 아빠가 엄마를 죽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아빠, 엄마의 죽음이 이모들의 그랜드 피아노가 천장을 뚫고 떨어지는 사고로 인한 것임을 기억해 냄으로써 마비된 자신의 세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모들은 자신의 피아노 때문에 폴의 부모님이 죽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폴을 자기들이 생각하는 안전한 세상에 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지원해 주었고 그 안에서 폴은 자신이 아닌 채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마치 내가 아들의 실패를 소망한 죄책감 때문에, 내가 좋은 엄마임을 더 증명하기 위해 과잉 보상적으로 아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라고 아들에게 집착했던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폴이 해마다 대상을 받게 하기 위해 콩쿠르에 내보내는 이모들처럼 말이다. 끊임없이 아들을 다른 집 아이들과 비교하고, 내 스스로도 다른 엄마들과 비교하고 경쟁하여 상처받고, 지나치게 적대적인 시기심으로 오히려 그들이 나보다 더 가진 것에 대한 적개심에 불타오른다. 그 결과 감당할 수 없는 불안과 죄책감이 몰려오면 아들을 더 채찍질 하는 동시에 한 번에 모든 것을 포기 하고 싶고 보호받고 싶은, 누군가 이 모든 것을 대신해 주었으면 하는 퇴행욕구가 일어나 며칠씩 밖에도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한 상태로 집에 스스로를 가두기도 하였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그 안에서 아들은 자신의 것이 아니 인생을 남이 조정하는 롤러코스트에 올라 탄 것처럼 정신없이 흔들리고 불안해하며자기발달의 기회를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의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독립을 갈구하고 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아들에게 공부를 계속 하라고 충고해 보지만 진정한 독립은 경제적 독립이라며 얼른 졸업하고 돈을 벌 수 있는 로스쿨에 진학하겠다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아이에게 또 전심전력으로 쏟아 부을 것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한걸음 물러서서 아들을 지지하는 방법은 나의 결핍을 충분히 애도하여 엄마로부터 분리개별화를 성취하고 아들의 결핍 또한 충분히 애도하여 그 아이를 독립시킬 수 있게 하는 것 일 텐데 무척이나 어렵게 느껴진다. 또 한편으로는 나의 아들 역시 내면으로부터의 몬스터 콜을 경험하고 마담 프루스트와 같은 지지자를 만나는 기회를 꿈꾸어 본다. 코너처럼. 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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