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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이야기와 문라이트
상담스터디 '함께 라(rroye@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17년 09월 09일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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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부소장 김은옥입니다. 요번 가을학기 '함께 라면' 상담스터디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저희 연구소에서 마음 공부해오신 마음이 따뜻하고 겸손하신 훌륭한 분들과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위로가 되어주는 '살아있는 동반자'관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일곱분으로 시작된 모임이지만 마음이 많이 행복하고 풍요롭네요. 매달 함께 정신분석을 공부하고 상처를 보듬어주는 이 모임의 가치가 힘들게 고통받고 있는 분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부한 내용을 올립니다.


1. 이런 말이 떠오른다. ‘아이고 내 팔자야. 내 팔자가 그렇지 뭐……..’(긍정님)

팔자라는 거 그건 아마도 굴레를 말하는 거 같다. 세상에는 정해진 팔자가 없다. 단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굴레 안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나올 수 없는 신세를 한탄하는 것, 그것이 우리를 긴 한숨을 쉬게 하고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게 하는 게 아닐까.

두 영화를 소개하려고 한다. ‘마리 이야기, 손끝의 기적’과 ‘문라이트(Moonlight)’. 첫 번째 영화 ‘마리이야기’의 주인공 마리는 세상과 단절된 장애아로 현실과 전혀 접촉 할 수 없는 소녀이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이 자기만의 세상에 갇힌 불쌍한 이 소녀는 어느 누구에게도 맘을 열지 않는다. 인격을 갖춘 인간이라기보다는 야생 동물과 같은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녀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접촉 할 수 있도록 목숨을 바쳐 돕기로 결심한 수녀 마가렛을 만나게 된다. 마가렛 수녀님은 마리가 자신만의 세상에서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헌신하는데, 마침내 이 둘은 전쟁과도 같은 힘든 과정을 겪으며 조금씩 변해간다.

영화는 실제 19세기 말 프랑스의 푸아티에 지방에 있는 라네이 수도원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세상과 소통 할 수 없고, 현실과 접촉 할 수 없는 마리가 비로소 자기만의 세상 덫에서 벗어나 마가렛 수녀님과 진정하고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은 영화 제목에서 보듯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평소 건강이 좋지 않던 마가렛 수녀님은 죽음을 앞두게 되고 이 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건강한 이별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영화에서 아직도 나를 가슴 저리게 만드는 장면이 있다. 멈출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부여잡게 만든 장면, 그것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공포에 휩싸인 수녀님에게 손을 잡으며 아름답게 웃는 마리의 얼굴을 보는 그림이다. 야생의 짐승과 같던 마리가 그토록 온화하고, 편안하게 미소 짓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워 반짝거리는 햇살이 비추는 듯 했다.
마리는 수녀님에게 따뜻하고 편안하게 해주는 작별을 선물했고, 결국 그 둘은 서로에게 깊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관계를 맺는 아름다움을 내 안에 각인 시켜주었다. 내가 이제껏 가져 볼 수 없었던 ‘관계’라는 진정성을 잊을 수 없게 가슴속 깊이 새기게 보여주고 만들어주었다.

가을학기에 하인즈 코헛 강의를 듣게 되었다. 코헛은 우리 모두 죽는 날까지 자기대상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하였다. 마리에게 수녀님이 신뢰할 수 있는 대상으로 정신에 자리 잡기까지 튼튼한 자기대상역할을 해주었기에, 죽음을 앞두고 모든 자신의 한계를 내려놓고 인간적 나약함으로 신을 의지하면서도 두려움에 떠는 수녀님에게 마리가 다시 튼튼한 자기대상이 되어 수녀님으로 하여금 평온하게 죽음을 마주하게 도왔던 것이다.
인간끼리도 또 인간을 통해 신의 사랑을 느끼는 이게 구원이 아닐까. 우리는 지금 이 상태를 대상 신뢰, 친밀감, 안정감, 만족감, 행복감으로 표현해볼 수 있겠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참 이상한 감정들이 일어났다. 슬프면서도 희망적이고, 희망적이지만 다시 슬퍼지고... 타인과 관계가 힘든 나로서는 상대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신뢰하고, 거기서 안정감을 느끼고, 다시 행복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전혀 경험해 본 적이 없기에 영화 안의 마리와 수녀님이 서로에게 주고받는 자기대상에 따뜻하고 부러우면서도, 다시 질투를 느끼게 되고, 조금 더 지나면 나만 가지지 못함에 대한 억울함이 격노를 일으켜 슬퍼지고 우울하게 되는 것이다.
친구, 배우자와 자식, 부모님 그리고 먼 타인들에게 자동적으로 적절한 거리가 생겨나거나 경계가 서지 않아 아무에게나 받아보지 못한 엄마의 사랑을 함부로 요구하거나 갈망하는 위험하고 성숙하지 못한 나만의 자기중심성이 내 얼굴을 빨개지게 만들고, 나도 정말 튼튼하게 신뢰할 수 있는 대상관계를 해보고 싶다는 소원을 가져보게 하는 영화가 바로 마리이야기, 손끝의 기적 이였다. 나에게도 기적이 일어나기를 몹시 열망하게 만드는.

또 다른 영화 문라이트 Moonlight.
영화를 보는 내내 얼마나 멈췄었는지 모른다. 영화를 다 본 후에는 사실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꼈고, 영락없이 이 공포는 내 꿈에 반영되었다. 나를 휩쓴 공포는 과연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내가 벗어낼 수 없는 삶의 굴레에 대한 절망감의 공포일 것이라 여겨진다. 나와 엄마 사이 밖 관계를 벗어나 나를 찾을 수 없는 굴레에 대한 힘듦의 공포………
자기가 경험한 것에 대한 울타리 밖의 체험을 하지 않고서 새로운 자기를 찾기 란 얼마나 어려운가. 샤이론은 가난하고

아버지 없이 마약 중독자이며 집에서 매춘 일을 하는 엄마에게 길러졌다. 하지만, 마약과 폭력의 흑인 사회 환경에서도 왕따이고, 의지할 곳 없이 외롭게 방치되어 살아간다. 인간적으로 자연스럽게 느껴야 하는 친밀감이나 우정이 성자극과 겹쳐서 사랑과 성이 뒤엉켜져 자신이 경험한 사춘기 경험을 결국 못 벗어난다.

사실 스토리의 전개가 드라마틱하게 극적인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장면 하나하나가 가슴에 콕콕 박히며 머리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미지의 영화이다. 영화 끝에는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공포에 사로 잡혀 있는 나를 꺼내야 했으며, 꿈속에서는 다시 나를 찾으려는 여행을 떠나야만 했다. 사람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환경의 울타리 안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을 박차고 세상 밖의 현실에 접촉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사실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 같다. 더욱이 양육환경이 매우 열악하다면, 잠재능력이 있다 해도 가능성의 퍼센트는 제로라고 생각된다. 노력으로 될 수 없는 현실이 바로 우리가 가진 굴레인 것 같다. 생물학적 유전자 때문이 아니어도 길러진 양육 환경은 영락없이 우리를 지배한다. 그 덫은 나오기 힘든 멀고 긴 터널 안과 같은데, 그 터널 끝의 빛을 보기란 가능할까 라는 의문이 든다. 이것이 바로 내가 느낀 공포인 것 같다.

나는 편집증 엄마에게 양육되었는데, 현실이라는 것을 모르는 채 모호한 상태로 나만의 세계에 갇혀 살았다. 눈이 있어 볼 수 있고, 귀가 있어 들을 수 있어도 세상과 타인에게 접촉 할 수 없었으니 장애아인 마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 무엇이 현실인지 알 수 없었고, 타인을 모르는 채 자기 중심성에 빠져 있었으니 나만의 굴레 안에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나의 주체를 가지기 어려웠고 외로움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성숙하지 못한 채 어릴 적 충분히(마땅히) 받아야 할 무조건적 사랑을 아무에게나 바라고 기대야만 했다.



사실 나는 다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충족되었어야 하는 엄마라는 인격으로부터 진정한 사랑 받은 경험이 없다. 따라서 나 스스로를 관리 할 수 있는 능력이나 타인과 적절한 관계를 맺으며 적절한 의존을 조절 할 수 없어 늘 불안하고 외로운 삶을 살아야 했다.

나이가 들며 당연히 발달해야 하는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에 현실감 없는 불안정한 일상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해야 했다. 예전에 입에 달고 살던 말 ‘아이고 내 팔자야……’ ‘내 팔자가 그렇지 뭐……’ . 절대로 벗어 낼 수 없었던 팔자는 바로 내 굴레였던 것이다. 끊임없는 현실 접촉의 도전은 번번이 무너져 나를 절망에 빠뜨리고, 격노하게 만들었었다. 아무리 해도 해도 안 바뀌는 내 팔자 탓을 하며.

유아적 성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발달이 멈춰 성숙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내가 절대적으로 원하는 것이 있다. 버티기, 견뎌내기, 담아내기, 기다리기이다. 이 네 가지를 하지 못해 아주 많은 관계를 파괴적으로 만들었었다. 물론 타인을 공감하고, 진정으로 이해하는 능력이 핵심적이겠지만, 아주 기본적인 내 주체가 없기 때문에 이 발달 단계까지는 많은 시간과 죽을 것 같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전에 이 네 가지를 꼭 이루고 싶다. 아직도 나에겐 진실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거대한 파괴 역동이 작동해 시작도 전에 끊어 버리는 것이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순간도 남들은 자동적으로 당연하게 일어나는 사소한 기다림이나, 자신을 담아내고 보는 일이 쉽겠지만, 나는 죽을힘을 다해 끝까지 사수하듯이 고통을 견뎌야한다. 정말 억울하고, 차라리 쉽게 무너지고 싶지만,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소중한 인연을 지켜내 관계 가치를 높이는 귀중한 일을 하고 싶다. 내 뜻이 이뤄 질 수 있도록 함께 있어주는 소중한 그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끝까지 버텨 우리만의 진정한 관계를 반드시 경험할 것이다.



2. 성숙을 향하여(자신감님).

추천해주신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너무나 교과서적이네’라는 생각을 했지만 반복해서 읽다보니 그동안 부모교육 수업을 받으며 배웠던 내용들과 느낌들이 연결되어 교과서의 내용을 의미 있게 이해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나에게 그런 배움의 시간이 없었다면 책의 중요한 내용들이 피상적으로 읽어지고 무슨 소린지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 했을 것 같다.

[아동은 사랑받은 경험으로부터 동기를 얻어 성숙을 지향하며 발달한다. 아동이 사랑받지 못하는 느낌을 계속 갖게 되면 자기 자신을 스스로 관리하는 능력을 발달시키지 못하고 그로 인해 그들의 사회화와 완만한 정서적 성장에 장애가 발생한다. 사랑받는 경험은 아동에게 안정감을 주고 의존욕구를 충족시키며 무력한 아동을 생존하게 하는 힘이다.] (page 9)

나의 유년기를 다시 되돌아보고 생각하려하면 금세 우울해지고 큰 슬픔이 밀려온다.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게 집과 부모로부터 줄곧 나는“빨리 이곳을 탈출해야 되는데...” 라는 생각이 밑도 끝도 없이 마음속에서 올라 왔던 것이 기억난다. 나 자신도 모르게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땐 알 수 없었다. 안델센의 동화‘성냥팔이 소녀’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읽을 때마다 추위와 배고픔, 갈 곳 없는 가난한 소녀의 모습에 큰 공감이 갔다.

너무나 불안하고 혼란스런 엄마, 외부세계와 전혀 접촉하지 않고 사셨던 부모님으로 인해서 엄마의 생각할 수도 없는 불안과 혼란은 그대로 내 것이 되었고 사회화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한 체 4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았다. 나의 엄마는 증오, 분노, 짜증, 화가 나는 감정들을 거르지 않고 말과 행동으로 쏟아내고, 많은 것들을 내 손과 발이 돼서 대신 해주고, 세상은 위험하고 무서운 곳이기 때문에 늘 조심해야 하고 사람들을 절대로 믿어선 안 된다고 강요하셨다.

폭언과 방치, 과잉보호가 반복되는 환경에서 나는 배워야 하는 것들을 부모로부터 배울 수 없었다. 내 존재에 대한 커다란 수치감, 열등감, 타인을 향한 적대감과 의심, 조절되지 않는 감정과 충동들, 무기력, 무망감이 내 마음 자리를 차지해버렸고 계속된 발달의 실패에 나는 고도의 자기중심성을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발달하지 못한 체 살아가는 것은 삶을 고통스럽게 했다. 초등학교부터 중 고등학교 대학시절까지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는 나에게 너무나 낯설고 불편한 공간이었다. 선생님들이 하시는 말씀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학습이 어려웠고 또래 아이들이 성취해야하는 것들을 나는 해 낼 수 없었다.

이런 일은 학교에서 뿐만 아니고 다른 장소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일어났다. 나만 혼자 동떨어져 있고 섞이지 못하는 이방인 같은 느낌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떨쳐지지 않았다. 외부세계와 접촉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몰려오는 불안함과 공포는 내가 이뤄 나가야 하는 많은 것들에서 회피하게 했고 결국 무엇이든 제대로 배울 수도 성취할 수도 없게 했다.

나는 결혼 생활도 어려움을 피해갈 수 없었는데 나의 융합하고 싶은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을 때, 내가 기대했던 것이 돌아오지 않았을 때 나는 남편에게 격노하고 화를 냈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리고 남편이 나 이외에 다른 외부세계와 연결되어 무엇인가를 할 때마다 나는 남편이 그것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나의 결혼 생활은 결혼하기 전 내가 알지 못했던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하면서 내 인간성에 대해 고민하게 했고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은 남편과의 관계를 파괴적으로 끝내고야마는 그 알 수 없는 힘을 이길 수 없었다.

종교로도 해결되지 않자 신이 나를 버렸다고까지 생각을 했다. 해결되지 못한 융합욕구와 의존성이 문제였는데 그것은 내가 중한 병에 걸릴 만큼 결혼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다. 발달하지 못한 인격을 가지고 사는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건지 40년의 내 삶이 증명해주고 있는 것 같다.

5년 동안의 수업과 상담을 통하여 나를 이해해보고 외부세계와 연결되어 발달하지 못한 많은 것을 연습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동국대 사찰음식 1년 과정, 새로운 악기인 오르간을 배우면서 1년 동안 성당에서 반주자로 봉사해 보기, 사이버 대학 2학년으로 편입해서 지금은 벌써 졸업반이다. 매번 꾸준히 시간에 맞춰 들어야하는 수업과 제 때 제출해야하는 과제들과 시험. 이것들을 빼먹지 않고 3년째 성실히 해 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작년엔 새로운 일이 하고 싶어 레슨 하는 일을 그만두고 토즈를 오픈하여 1년째 운영하고 있다. 작지만 내 사업체를 꾸리면서 사람들과 어울려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영화‘마리 이야기’를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던 것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소녀 마리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자신의 생애를 바쳐 돕는 수녀님과의 관계를 보면서 내가 부모교육 수업과 상담을 통해 나의 유년기 상처들을 치유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려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닮아 있어서였다. 마리가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어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아무하고도 소통할 수 없는 상태는 불안과 혼란스러움 그리고 외부세계와 접촉능력이 전혀 없는 엄마의 정신세계에 갇혀 옴짝달싹 할 수 없이 마비되어 느끼지도 못하고 표현하지도 못하는 내 모습과 같다.

거절당함의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커서 나의 real want 를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나는 내 자신이 외부세계와 연결되어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갑자기 몸이 돌덩이처럼 무거워지고 에너지가 전부다 고갈되어 힘을 쓸 수 없을 것 같이 느껴진다. 실제로 바닥이 다 갈라져버린 사막 같은 곳에 햇볕은 뜨겁게 내리쬐는데 양동이엔 물이 다 떨어져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있는 모습이 상상이 되고 연료가 다 떨어져 버려 쓸 수가 없는 상상이 마구 떠오른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못할 것만 같다. 그런데 너무 신기한건 막상 그 일을 시작하거나 끝내놓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멀쩡해진다.

이런 순간을 경험 할 때마다 성경에 나오는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린 광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거라사 지방의 광인은 무덤사이에 거처하였고 쇠사슬과 고랑을 끊어버릴 만큼 힘이 세 아무도 제어할 수 없었고 밤낮 무덤사이에서나 산에서 소리를 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게 하는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 치유함을 받고 온전하여진 내용의 이야기다.

자기도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원하지 않는데 자기를 파괴하며 짐승처럼 살고 있는 모습, 치유함을 받고 정신이 온전하여진 이 모습이 내가 겪는 이런 경험과 유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와 상담을 하기 전엔 알 수 없이 작동하는 힘에 눌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순간을 맞서며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밀어내지 않고 해내고 있다. 거라사 광인의 기적을 지금 현실에서도 체험하며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나의 독서 센터를 오픈 한 초기는 좀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리를 잡아 안정적이 되었고 적절한 수입도 들어와서 걱정할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변하지 않고 아직도 여전히 초기에 오픈 할 때 마음처럼 위태로움이 느껴지고 불안하다. 무엇이든 잘 안될 거 같고 곧 망해버릴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내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이제 무슨 일을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고 내 통장에 돈이 조금씩 쌓이고 있지만 남편에게 나 돈이 하나도 없으니까 생활비 내 통장으로 넣어줘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살고 있고 내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살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이 온전히 내 것으로 느껴지지 않아서 슬플 때가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무엇이든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경험들이 계속해서 쌓이고 있다는 것이다. 마리가 변화되는 과정이 쉽지 않았던 것처럼 나의 성장을 위한 과정도 결코 쉽지 않았다. 마리에게 헌신적인 마가렛수녀님이 계셨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처럼 내 삶에도 중요한 대상이 있었기 때문에 내 경험의 한계를 뛰어 넘어 삶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렇지 못했다면 살던 삶을 반복하면서 고통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내 앞으로의 삶에 좋은 일이 자꾸 생길 것 같은 기대와 설렘이 있다. 새롭게 발견해 가는 내 모습을 만나는 것도 기쁜 일이다. 성숙을 향해가는 길에 좋은 가족들이 생겨 기쁘고 맘이 든든하다. 귀한 모임에 초대되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해보고 싶다.



3. 마리이야기와 문라이트(신뢰님)

영화 ““마리 이야기””와 ““문라이트”” 는 주인공 마리와 샤이론의 성장-성숙에 관한 이야기이다. 마리는 신체적 장애로 인해 자신 만의 세상에 갇혀 있어 발달이 멈춘 아이이고, 샤이론은 그가 가진 결핍된 환경에서 비롯된 정서적 문제로 인해 발달-성숙이 멈춘 주인공이다.

마리는 눈과 귀의 장애, 그에 대한 부모의 몰이해로 인하여 인간이라기 보다 야생의 짐승과 같은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마리가 마가렛 수녀님을 만나고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을 통하여 마침내 현실을 살아가는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병에 걸려 누워있는 마가렛 수녀님을 위하여 스프와 물이 있는 쟁반을 들고 들어와 수녀님이 드시게 하는 장면과 수녀님의 묘소를 찾아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수녀님과 대화하는 장면은 마리의 성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엄마와는 할 수 없었던 자기대상 경험을 통하여 수녀님을 믿을만한 내적 대상으로 내면화하면서 자기가 형성되고 타자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홀로 죽음의 공포에 직면한 수녀님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수녀님의 자기대상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나갈 수 있었고, 좋은 관계 경험을 통하여 돌아가셔도 계속 관계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문라이트””의 샤이론은 미혼모인 엄마 밑에서 자라는 외로운 아이다. 더구나 엄마는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마약까지 투여하는 등 그에게 제대로 된 양육과 사랑을 줄 수 없는 사람이다. 이러한 결핍과 왜소한 신체조건 등으로 학교에서도 왕따를 당하는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햇빛처럼 다가와 아버지처럼 돌봐준 후안은 샤이론에게 힘들 때 찾아올 수 있는 안식처를 제공하고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조언을 나누어 준다.

달빛이 비추는 바다에서 후안으로부터 수영을 배우고 그를 믿고 스스로 물에 뜨는 모습은 샤이론이 이 세상에서 다시 성장을 시작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매우 감동적이었다. 또한 결국 무엇이 될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후안의 조언 역시 샤이론이 이 현실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그것을 용기 있게 드러낼 수 있게 해 주는 힘이 되었던 것 같다. 결국 마약상으로 나름 입지를 갖고 사는 모습이 딱 후안을 동일시한 아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특별히 ““나””의 문제에서 마리와 샤이론을 바라볼 때, 처음 가지는 느낌은 우습게도 부러움이다. 내 인생에도 마가렛 수녀님이나 후안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지금 나는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말이다. 물론 수녀님이나 후안과 같은 존재 이전에 ““나””의 첫 번째 대상인 ““엄마””로부터 충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았다면 수녀님이나 후안과 같은 존재에 대한 갈망조차 이렇게 강렬하지는 않았을 것 같기는 하다.

나의 엄마는 그 시대에는 흔하지 않은 전문직 여성으로 매우 성취 지향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실제로 그녀는 외적으로 무척 성공하였고 누가 봐도 부러워할 만한 인생을 살았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나와 나의 형제들은 그럴듯한 외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여러 내적 결핍으로 인하여 고통 받고 있고 현실을 살아가는 데 문제들을 일으키면서 성숙한 인간이 누리는 행복을 가지지 못한다. 나의 세상은 엄마에게 온통 저당 잡혀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게 묶여 있었다. 나의 인생에 내가 없고 엄마가 나 대신 내 자아가 되어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내가 가진 고통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얼굴에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지만 돌이 막 지났을 때 마당에서 넘어져서 생긴, 꽤 큰 흉터가 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 사건은 전적으로 엄마의 이야기로 나에게 기억되어졌다. 나는 오랫동안 이 흉터에 대해서 신경쓰지도 않았고, 흉터를 지우기 위한 그 어떤 시술에도 관심 갖지 않았다. 엄마는 이 일을 이야기할 때 ‘다친 아기’-나는 어땠는지에 대해 얘기해 본 적이 없었다. ‘아이가 얼마나 아팠을까’ 라든지 ‘얼마나 놀랐을까’라든지 하는 공감의 표현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다만 ‘엄마 자신’만이 존재하는 이야기들, 주로 자기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는 이야기, 병원을 어떻게 데리고 갔는지, 성형외과가 아닌 일반외과에 데리고 간 아빠를 얼마나 비난했는지 등의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엄마였던 것이다. 그 이후 엄마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상처를 잊어버렸고, 나도 그녀의 시선으로 나의 흉터를 바라보고 아무 느낌도 없이 지워버리게 되었다. 상담하는 가운데, 거의 50년이 지나서야 이 사건을 떠올리며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나의 생각, 감정까지 결정지었던 것이다.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던지 상관없이, 장애의 세계에 갇힌 마리처럼, 엄마의 돌봄도 받지 못한 채 고립되어 자신 만의 세상에 갇혀있던 샤이론처럼 나는 엄마가 만들어 놓은 세상에 갇혀 사는 것 만 허용 받고 그 안에서 만 생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실감각, 특히나 심리적인 현실성은 오랜 기간의 발달과 경험을 거쳐 개발되며, 발달 상의 장애는 현실감각을 손상하고 왜곡시킨다고 하는데 나는 엄마의 세상에서 이런 능력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발달시킬 수도 없었던 것 같다. 때문에 많은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왜곡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말도 안 되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면서 너무나 오랜 세월 미성숙하게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양육하는 과정에서 엄마와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던 나를 인정하는 것은 죽기보다 힘들었고, 나 때문에 상처받고 내 세상에 갇혀있는 나의 아이들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더 큰 고통을 불러일으킨다. 이 스터디를 통하여 멈추었던 성장을 다시 시작하고 성숙한 성인이 되도록 노력하며 다른 멤버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기를 소망해 본다.



180 마리이야기와 문라이트 상담스터디 '함께 라17.09.0948
179 일반적인 욕망을 갖는다는 것 류류17.08.2361
178 통과의례 해안17.08.2354
177 답변 감사드립니다 류류17.08.2330
176 성격유형론 수업을 마치고. 부모교육반17.06.12162
175 고생했어. 내가 봤어. 수고했어. 류류17.02.01177
174 위니캇강의를 마치고... 부모교육반17.01.17250
173 <사이 무의식>을 읽고 보들17.01.12173
172 사이무의식과 대상인연을 읽고 류류17.01.10200
171 고통을 감내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류류16.12.03167
170 고통 감내 방법의 차이 관리자16.12.04190
169 저에게 고통의 의미 혹은 상태 류류16.12.04171
168 고통 견딤 관리자16.12.07176
167 답변 감사드립니다 류류16.12.08121
166 자아 능력 키우기 관리자16.12.09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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