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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아발달
프로이드반(rroye@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15년 12월 13일 21:18 661
1. 나의 자아발달(네이비님)
삶에 있어서 내 상처를 직접 파헤치면서 의미를 찾으려는 5년의 시간동안 나는 늘 불안했고, 우울했고, 무기력했고, 슬펐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야하는 지? 나는 엄마같이 살고 싶지 않았고, 부모로서 내 자식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기에 나는 참고 견딜 수 있었다. 그렇게 참고 견디었던 그 시간은 결국 내게 커다란 선물을 주었다.

1. 초자아가 따뜻해지다.
나는 어릴 때 비일관적으로 화를 내는 엄마가 너무 무서웠다. 항상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주지도 않고 결과만 가지고 나무라기도 했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어서 잘못한 일까지도 공감받지 못하고 늘 혼났다. 내게는 내 잘못에 늘 “저년 때문에, 애비 닮아서, 그것밖에 못하니? 너를 낳고 미역국을 먹었다니 내가 미친년이지, 그것도 못하니? 너 때문에 내가 제 명에 못 살겠다. 저걸 어디에 써먹을까?”의 언어 폭력과 더불어 머리, 등, 뺨 등 화나는대로 나를 때렸던 엄마가 있다. 그 엄마는, 공부를 잘해서 상을 받았기에 당연히 칭찬받을 상황에서도 “니 부모가 이렇게 고생하면서 키우는데 당연한거지”라고 말하면서 내 수고와 노력을 늘 아무렇지않게 말했다.

아빠마저도 내게 칭찬에 인색하셔서, 한 번은 내가 “아빠는 내가 잘 해도 왜 칭찬을 안해요?” 했더니 아빠 말씀이 “칭찬을 많이 하면 네가 너무 자만해질까봐 일부러 안하는 거야”라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이렇게 부모로부터 따뜻한 정서적 지원을 받는 대신 늘 무서운 심판을 받으며 부모님의 매정하고 무자비한 말들에 늘 마음 아픈 경험을 하며 키워졌다. 물론 어쩌다 나를 칭찬을 할 때도 있었으나, 그런 때는 늘 엄마가 원하는 어떤 일을 내게 시키거나 엄마가 생색내고 싶어할 때였다. 내가 엄마가 산 옷을 맘에 들어하지 않으면 “이거 입으니까 이쁘다, 엄마가 옷 보는 눈이 얼마나 좋은데", 심부름을 시키기 위해서만 ”우리 딸 엄마 심부름도 잘하고 아유~ 착하다“. 그렇게 자라서 인지 나는 누가 나를 칭찬하면 내가 당연히 받을 칭찬을 받는다는 생각보다는 “저 사람은 나를 칭찬하면서 무엇을 시키려고 하나? 나는 이 말을 어디까지 믿고 그에 대해서 반응을 해야하지?”하는 고민이 며칠씩 들면서 칭찬하는 사람이 늘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어떤 일의 결과가 좋지 않으면 나는 “그럼, 그렇지, 내가 뭐 되는게 있겠어? 역시 나는 해도 안되는 사람이야, 난 왜 이렇게 재수가 없을까?” 하는 생각에 늘 힘들었다.

그런데 정확한 시점은 모르겠으나 1-2년 전에 어떤 일의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나의 내면에서 “그래도 애썼다, 수고했어”라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 “애썼다”는 말에 내가 대성통곡을 하고 울었던 경험이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늘 “애썼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 “애썼다”, “애썼다”, “애썼다”..... 그 뒤로 조금씩 조금씩 어떤 일의 결과가 안 좋을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초자아가 내게 따뜻하게, 공감한다고, 이해한다고, 용서한다고 말한다. “애썼다,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 네가 노력한 거 남이 몰라도 네가 알면 되지, 처음에는 실수할 수 있어, 다음에 조금 더 잘하면 되고 그 다음에 더 나아지면 돼, 그렇게 조금씩 알게 되는게 중요한거야, 오늘은 아무생각 말고 맛난 거 먹고 쉬다가 다시 한 번 해보자”라고. 그리고 어떤 일이 잘 되었을 때도 내 초자아가 말한다. “잘했어, 멋있다, 자랑스럽다, 애쓴 보람이 있다, 감사하다, 내 주변인들에게 고맙다, 같이 나눌 사람들이 있어서 좋다, 나는 ‘내가 나인 것’이 참 좋다”라고.


2. 시기가 감사로 바뀌다.
나에게는 시기심 많은 엄마가 있다. 누가 “그 집 딸이 예쁘다”고 칭찬하면 “예쁘긴 뭐가 예뻐? 부모 속을 얼마나 썩이는데, 나 닮아서 이쁜거야”, 누가 외국에 놀러 가면 상황이 안 되어 못가면서도 “거기가 뭐 얼마나 좋겠어? 가봐야 다 거기가 거기지, 힘만 들고 난 안가” 누가 안 좋은 일을 당하면 위로대신 “그러니까 사람은 맘을 잘 써야 돼, 못되게 살더니 쯧쯧...” 하는 반응을 보이는 엄마를 보면서 “그래도 저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런 말 한 마디 엄마에게 건네지 못하고 컸다. 그런데 나 역시도 시기의 마음이 주변인에게 자주 드는 걸 느낄 때면 내가 무섭다. 남편이 등산 가면 “잘 다녀와”대신 “난 일하느라고 힘든데 당신만 웰빙이야?” 남편이 음악 들으면서 쉬고 있으면 그 쉬는 게 보기 싫어서 꼭 뭐라도 일을 시켜야 맘이 편했고 주변인들이 여행을 가거나 잘 즐기는 걸 보면 “저렇게 살다가는 노후에 어떻게 되려고 그래?” 라는 반응이 나도 모르게 나왔으며, 나보다 누가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시기심에 안 좋은 소문을 내거나 편을 가르고 이간질을 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작년 4월 세월호 사건을 겪고, 그 사건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오래 아팠는데 그 사건 이후 나는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들기 시작했다. 공부 못해도 내 아이가 살아 있는 것 자체로 감사했고, 매일 싸우는 남편이지만 무사히 네 식구가 모인 것에 나도 모르는 감사가 생겼고, 세월호의 부모가 겪은 고통 대신 나는 4-5월의 봄을 느끼는 것이 미안하면서도 감사했고, 나의 안온한 일상에 감사가 들었다. 그런데 그 감사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 내 친구, 내 이웃, 나의 직업, 나의 건강,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는 나, 반성할 수 있는 나.... 등 감사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면서 내 삶에서 남과의 비교가 점차로 없어지고, 시기하는 빈도가 줄게 되었다. 그러면서 삶의 가치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나의 자기애를 깨고 내가 속한 내 공동체에서 봉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나는 종교를 갖게 되었고, 종교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여러 봉사를 하며 내가 기꺼이 나누고 살 수 있음에 감사한다.


3. 분열이 점점 통합되다.
나는 엄마의 분열로 인해 잃고 산 게 많은데 그 중에 너무 슬픈 것 중 하나가 친가 쪽 사람들과의 형식적인 왕래를 하게 한 것이다. 나는 어릴 적에 대 가족에서 살았고 고모들이 너무 예뻐했고 나에게도 고모가 특별했는데 엄마가 언제나 안 좋은 친가 얘기를 자신의 감정을 실어서, 편집해서 이야기해주었기에 내가 큰 고모와 싸운적도 있고 몇 십년을 미워하면서 살았다. 내가 이제는 친가쪽 사람들에게 조카로서, 동생들에게는 사촌 누나로서, 관계를 잘 하고 싶은데 엄마가 싫어하셔서 엄마한테는 굳이 말하지 않고 한다. 그런데, 엄마한테 말하지 않고 챙긴 것을 엄마가 알게 되시면 “넌 돈도 많다, 다 너보다 나아. 걔들은 뭐 너하나 하나 해주는 거 있어? 어차피 받지도 못할거... 너도 받을수 있는 것만 챙겨”하면서 못마땅해하신다. 그럼에도 나는 분열로 인해 멀어진 내 친가 쪽 사람들에게 챙겨주고 싶은 생각이 들면 내 능력껏 챙겨주고, 참석할 수 있으면 가족 대소사에 참석하면서 좋은 관계를 맺어가고 있으며 내 시댁과의 관계 역시 가까워졌음을 느낀다. 그 외에 나는 누가 내게 안 좋은 말을 하거나 의견이 충돌 될 때 반드시 그날 그걸 풀지 못하면 잠도 못자고 아무 일도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기다리기가 어느 정도 된다. 3일, 7일, 15일, 한 달...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객관화 되는 정도가 달라짐에 나도 깜짝 놀란다. 3일까지는 나의 자기애적 화로 인해 분하고 속상하다가 7일 정도 지나면 “저 사람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보름이 지나면 “나는 뭐 잘 했나?, 나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까?” 한 달이 지나면 내가 왜 그랬는지가 통찰이 되면서 “그 사람도 그럴 수 밖에 없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엄청 컸던 일이 결국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거나 아주 가벼운 일이 되어버림을 나의 경험으로 느끼면서 “이런 변화가 나의 통합이 아닐까? 잘 하고 있구나”내가 대견할 때가 더러 있다.

처음 이곳에서 상담을 받고 수업을 들었을 때부터 시작해서 “내 팔자야” “이런 부모를 만나서 내가 입은 피해가 얼마야?” “나는 이런 부모를 만나서 어쩔 수 없이 살았기 때문에 모든 문제는 어쩔 수 없는거야. 그런데 왜 그 인생의 책임을 내가 지고 내가 바뀌어야 하는거지? 나도 지금 너무 억울해 죽겠는데..” 라는 생각이 1-2년 전까지도 지속되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 ‘나 자신을 변화 시켜야한다는 것’과 ‘내 인생의 책임자는 나’이며 ‘진정한 삶의 의미는 내 과거나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곳에서, 현실 속에서 찾아야한다는 것’과 나의 어쩔 수 없었던 과거 상황이 나에게는 ‘좌절하여 나를 주저 앉히고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삶에 순응하는 시련이 아니라 나를 더 성장시키고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좌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좌절이 가치있었다는 생각이 커질수록, 그만큼 나는 자유로워지고 있다.



2. 나의 자아발달(주황님)
나는 ‘결혼을 할 수 있을까’라고 걱정될 때 남편을 만났다. 다른 사람에게선 느낄 수 없었던 안정을 주는 그와 고민없이 결혼하고, 결혼과 동시에 아이가 생겼다.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일이 막연하게만 느껴졌을 때 한 결혼과 임신은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유난히 잠을 자지 않고 목청껏 울어 산후조리원 간호사들을 힘들게 했다. 말 못하는 아이가 울면 뭐가 필요한거지라는 생각보다 얘는 왜 이렇게 울지,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하지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었다. 호기심에 휴지를 다 뽑아놓고, 물을 쏟고, 쉬를 하고, 장난감을 다 엎을 때 깔끔떠는 나에게 용납되지 않아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에게 소리지르고, 무서운 엄마가 되었다. 운다고 안아주지마라, 오냐오냐하면 버릇 나빠진다고만 하는 어른들 말만 듣고 육아지식이 없어서, 몰라서 그런 실수를 범했다고만 생각했는데 정신분석을 공부하면서 내 유년기를 돌아보며 ‘몰라서’가 아니라 나는 그럴 수밖에 없는 엄마라는 무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린시절 기억 속 아빠는 외부활동을 좋아하셨다. 주말이면 우리 가족은 산으로 들로 여행을 많이 갔다. 그러나 집에서 오순도순 즐거운 시간을 보낸 기억은 별로 없다. 집에서 아빠는 혼자 티비를 보거나 취미생활을 했고, 엄마는 집안일을, 동생과 나는 방에서 공부하거나 놀며 아빠 눈치를 봤다. 또 아빠가 늦게까지 술을 드시고 오는 날이면 엄마와 무섭게 싸웠고, 어린 동생과 나는 말리지 못하고 무서워서 방에 숨어 있었다. 아빠는 술을 좋아하고 경제관념이 없는 편이라 내가 어릴 때 집에 경제적 어려움이 크게 두어번 온적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아직도 모른다) 어른들이 쉬쉬하는 걸 다 알았고, 엄마 혼자 우리를 키우려고 버티는 걸 알면서도 나는 모른척 했다. 엄마는 사는게 힘들어 자신을 꾸미는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자식들도 살갑게 돌볼 여유가 없었는데 나는 그런 엄마가 부끄러웠다. 이렇게 엄마를 외면하고 부끄러워하면서 내가 만족을 찾은 것이 공부였는지도 모르겠다. 공부시간은 힘든 엄마를 외면하는 것이 정당화되고, 공부를 잘하면 학교에서 선생님의 관심, 친구들의 부러움을 살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힘든 상황을 외면해온 경험은 내가 클수록 주변을 모른척하고 대인관계를 좁게, 내 안에 갖히게 하는 굴레가 되고 있다.

뭐든 직접 나서야 하는 외할머니 밑에서 자란 엄마는 그런 외할머니를 진절머리 나게 싫어하고 아직도 만나면 싸우면서도 분리되지 못했다. 늘 간섭하고 확인하는 할머니로부터 지지를 받은 적 없는 엄마가 나를 지지하며 키웠을 리 만무하다. 할머니는 엄마뿐만 아니라 첫 손주인 나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고, 패셔너블하고 마당발에, 엄마곁에는 항상 할머니가 계셔서 나는 그런 엄마가 부럽고, 할머니가 우리엄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부모교육 수업을 들으면서 나를 지지해주지 않은 엄마를 키운 할머니가 가장 원망스럽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회적 지위와 자신감을 잃은 아빠 역시 사사건건 나와 부딪혔다. 피아노선생님이 피아노로 진로를 권유할 때도, 남들 다 가고싶어하는 외고에 갈때도, 서울로 대학을 가려고 할때도. 나는 뭔가 하고싶은 것이 있을 때 늘 어김없이 반대할 부모님과 싸워야할 걱정부터 했는데, 대학을 다니다가 법학으로 전공을 바꿀 때는 엄마아빠가 모두 지지해주었다. 돌아보면 남편과의 결혼(남편을 직접 만나고서야 지지해주셨지만)외에 유일무이한 일이다. 아마 그래서 그 오랜시간 즐거운 마음으로 아낌없이 내 청춘을 고시공부에 바쳤나보다.

이렇게 지지받지 못하고 자란 내 유년기는 내 아이의 무의식을 망치고 있었다. 내가 동경하고 존경하는 남편의 기질, 성격이 똑같은 아이의 행동을 나는 긍정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 자기 좀 봐달라고 이뻐해달라고 재잘거리는 것도, 노래를 크게 부르는것도 시끄럽게 들리고,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놀고싶어하고 발달이 빨라 배우고 싶어하는 것도 조용히 있길 바랬다. 바램이 아니라 조용히 하게 만들었다. 어질만한 물건은 뺏고 소리지르는 나를 아이는 아주 빨리 학습했고, 그럴수록 나는 더 격노하는 악순환이었다. 육아서를 아무리 읽어도 변화하지 못했는데 부모교육을 들으면서 내 아이의 순수한 도화지에 내가 무서운 괴물을 그려넣은 걸 깨닫고 억지노력이 아닌 마음이 움직여서 아이를 따뜻하게 보고 있는 중이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아이가 ‘예전 엄마는 싫어, 지금 엄마는 좋아.’라는 말을 반복하고, 최근에 우유를 쏟고서 잔뜩 주눅든 목소리로 ‘엄마 어떡해?’ 라고 묻길래 ‘괜찮아. 우유를 빨리 먹고 싶었구나. 엄마도 어릴땐 그랬어’ 라고 얘기해주자 긴장을 풀고 ‘엄마도 진짜 그랬어? 웃기다~’라며 깔깔거리더니 장난스럽게 ‘이상하다..엄마가 화를 안내네’라며 피식 웃는 모습을 보니 너무 미안한 마음과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어 가슴이 벅찼다. 유치원 선생님도 아이가 친구와 사이좋게 양보한 얘기를 자주 전해주시고 전보다 친구들과 트러블이 많이 줄었다고 하니 아이에게 정말 감사하고 더 많이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시부모님과의 관계가 편치 않다. 우리 부모님과 달리 모든 애정을 쏟아 자식을 키우신 시부모님과 남편을 과잉보호 중의 과잉보호라고 폄하했다. 결혼 후에도 아들을 놓아주지 못하고, 나에게서 내 이름을 뺏고 ‘00엄마’ 내조 잘하고 아이 잘 키우고 시부모님 공경하는 것이 내 임무라고 강요하시는 모습에 늘 분노가 가득찼고, 남편도 그 그늘을 못 벗어난 것 같아 원망만 했다. 그러나 내 무의식을 들여다보니 내가 받아보지 못한 지지와 관심에 대한 부러움, 꿈을 이루지 못한 탓으로 자신감 부족, 그리고 엄마에 대한 불만을 엄마에게 하지 못하고 사회적 비난을 적게 받는 시어머니에게 풀고 있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이 과제를 위해 수업노트와 이런저런 책을 보면서 시부모님이 당신들의 방식으로 내게 관심과 애정을 표하시는 것도 내가 곡해하는구나라는 생각을 깊이 하고 남편에게 우리 남편 잘 키워주신 어머님께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남긴 날 밤, 어머님이 내가 하는 취미활동의 전시회 작품을 보시곤 대단하다며 칭찬해주시는 꿈을 꿨다. 늘 어머님이 내게 화내거나 비난하는 꿈을 꿨는데 처음으로 칭찬하는 꿈을 꾼 것이다. 아직 이 사실을 남편에게 말하지 못할 정도로 변화가 미약하지만 말이다.

또, 내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내 무의식과 엄마와의 대화, 화해이다. 엄마는 내게 늘 뭔가 숨기려만 했고 나도 외면해왔는데, 최근에 부모님의 노후에 대해 얘기하다가 엄마의 MBTI 유형을 말해주며 아빠를 원망만 하지 말고 엄마아빠는 이렇게 다르고 엄마가 외곬수적인 성향이 강하니 아빠를 이해해주려고 노력하라고 적극적으로 말했다. 엄마가 가끔 아빠를 원망하는 말을 하면 나는 아무말 없이 웃고 넘어갔는데 처음으로 엄마, 아빠의 관계로 엄마와 ‘대화’를 한 것이다. 그러자 엄마는 밤새 고민을 했는지 다음 날 그 누구에게도 말 못한, 내 엄마가 아닌 아빠의 아내로서의 묵은 속마음을 말해주며 친구에게 고민상담을 하듯 깊은 얘기를 했다.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가 조금 이해되었고, 의지되기 보다는 이제 내가 보살펴야할 대상으로 인식되어 걱정되고 부담스럽기도 하던 엄마가, 옆에 있으면 서로 힘이 되고 더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아직은 성급하지만 내 삶이 정신분석을 알기 전과 후로 나뉠 정도로 내 마음 속은 무의식을 직면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변화의 욕구로 가득차 있다. 항상 나를 지지해주는 건강한 남편과 내 삶의 거울인 사랑하는 딸이 있기에 내 자아는 더 발달해야하고,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3.나의 자아발달(보라님)
어린시절을 돌이켜보면 좋은 추억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았을뿐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노력한 기억도 없다. 대학, 직장, 결혼 인생의 매 순간을 그냥 정해진 길을 가듯 그렇게 갔다. 나는 어떻게 성장해왔을까 생각해보니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주변에 없었고 나 자신도 누구에게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하는지 몰랐다. 어쩌다 궁금한 일이 생겨도 알아내려하지 않고 혼자 생각의 나래를 펴다 그대로 주저앉았다.

부모 교육을 들으며 받은 선물은 궁금증이다. 왜 어떻게... 그안에서 생기는 과정들이 있다는 것. 주변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한 궁금함이 생겨나자 어떻게 해야하는지 방법이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객관적 상황파악을 하기보다 혼자 고민만 하다가 아니다라는 주관적 판단이 서면 그냥 피해가거나 거부하던 나에게 첫번째 시련은 시어머니였다. 해야할 것을 강요받았다 생각하고, 방법을 강구하지 않던 내가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았을리가 없다. 안부전화 한 통 거는것도 힘이 들고 걸려온 전화에도 네 아니오 단답형은 기본이었다. 표현하지 않고 뒤돌아서 시어머니 흉을보고 당연하듯 남편과도 갈등은 이어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끄러운 일이지만...이제는 시어머니와 관계가 가벼워진 느낌이다 별일은 없냐는 질문에 아니요 있어요라는 말에 시어머니가 웃으신다. "그래 뭔일이냐..." " 글쎄 애들이..애들 아빠가..." "어머니 우리 이번엔 김장배추 좀 적게 해요..." 이렇게 시시콜콜한 대화는 편하게 이어져가고 동서에게 내 생각을 얘기했을 뿐인데 카톡에 하트가 날아온다. 다른 사람들에겐 수고와 감사라는 표현을 아끼지않으면서 수고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있는 남편에게 같이 수고한다는 말 조차도 얼마나 쓰기 힘들었는지 내 말 한마디에 고마워하는 남편을 보며 예전엔 당연하다 생각했을 일이 부끄럽다. 아이를 생각하면 더 부끄럽다. 한참 호기심 강할 시기에 안전핀이라는 명목하에 나온 제품으로 온 집안의 여닫이는 다 걸어 잠그고 내가 정한 틀안에서만 호기심을 갖기 원했고 아이의 불편한 마음을 살피기 전에 메뉴얼을 뒤지는 엄마였다. 그 안에서 아이의 자립심과 궁금증은 얼마나 제약을 받고 답답해하다 시도도 하기전에 나처럼 포기를 배웠을까...

주변 사람을 만나며 커피값을 내고도 불편했던 것은 돈이 아니라 마음이 없어서 였다 그래야할 것 같은 막연한 느낌에서 나온 행동들에 사람들 또한 무감각했을것이다. 안주고 안받는게 편하다는 생각은 정신에서 물질까지 이어져 주면서도 아까웠던 경험들도 있다. 김은옥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말씀하셨던 'give & take' 물질도 정신도 주고 받아야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아 부끄럽지만 나를 키운 엄마에게서 배우지 못한 소중한 가치를 알려주신 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싶다.



4.자아발달(분홍님)
갓 태어난 아기가 성인이 될 때까지 성장에 필요한게 무엇이 있을까. 안전한 환경, 따뜻한 보살핌.. 많은 이들이 얘기하는 그것을 단지 물질적이고 무드로만 생각했었다. 사실 외형으로는 대부분이 무난히 성장해가지만 정신을 이루고 있는 구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단계를 거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새삼 배웠다.

자아를 형체로 표현하자면 집인거 같다. 집은 또한 엄마의 상징인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초기 엄마가 나의 자아발달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전에도 자주 꾸었지만 수업을 하면서 더 자주 집에 대한 꿈을 꾼다. 꿈에서 나의 집은 벽이 허물어져 내 모습이 사방에 노출되기도 하고, 지붕이 없어서 허허벌판과 다름없는 곳이기도 하다. 한편으론 구불구불한 미로와도 같은 방에서 낯모르는 이가 불쑥 튀어나와 몹시도 놀라게 하기도 하는 곳이다.

이는 나의 문제, 즉 경계없음(최소한의 벽도 없는 집의 모습), 분열된 모습(온갖 짐이 무질서하게 쌓여있는 모습), 침범의 경험으로 인한 공포와 불안(집에서 사는 낯선이의 모습)이 표현되는거 같아 서글프다. 안전하고 아늑해야 할 집의 모습이 집의 형태조차 갖추지 못한 모습을 보면서 구조조차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나의 모습을 보는거 같아 서글프고, 나의 방과 짐이 노출되고 마음대로 드나드는 낯선이의 모습을 보면 나의 경계없음으로 인한 혼란을 느끼게 되어 불편해진다. 꿈에서 무던히도 나에게 말하려고 하는 나의 상태는 이토록 위태로운데, 묵은 짐을 끌어안고 완강하게 낡은집에 사는 모습은 변화를 거부하고 현재의 상태만을 고집하는 나의 모습과 좋은 물건조차 쓰레기와 구분하지 못하는 심한 분열을 의미하는거 같아 절망스럽기도 하다.

예전에 나는 허허벌판에 서 있거나 사막에서 틀만 있고 최소한의 바람도 막아주지 못하는 곳에 서있는 모습으로 꿈에 있곤 했다. 수업을 들으면서 뭔가 조금씩 지어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도 사실은 머리속에서만 그려진 허상에 불과하고 결국 내가 경험하면서 해결하여야 할 일이라는걸 새삼깨닫게 되었다. 나의 모습과 만나는것이 두려워, 정신분석 수업을 마치 대학의 교양수업과 같은 가벼운 수업으로 치부하고 삶에서의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면서 나의 불건강을 합리화하고자 하면 할수록 나의 삶이 더 혼란스럽과 불편한 무엇이 되는거 같아 답답한 마음이다.

가만히 기억을 짚어보아도, 나는 엄마와 진정으로 대화해본 기억이, 엄마가 나의 얘기를 들어준 기억이 생각나지 않는다. 힘들고 어찌할 바를 모르던 일들을 혼자 해결해나가기 위해 나는 모든 에너지를 써왔고, 아직도 나의 리비도는 나에게만 고착되어 있다. 강의를 들으면서 나의 모습이 이렇게 초기에 있는가 싶어 막막한 심정이 들때가 많지만, 앞으로도 강의를 들으면서 사람들과 접촉하고 한가지라도 더 실천하고 움직이면서 생동감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5. 나의 자아발달(빨강님)
외부세계와 접촉되지 못해서 현실을 살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심리 정서적으로 가용하지 못하고 너무 불안한 엄마를 경험한 나는 적절한 발달을 할 수 없었다. 유년기를 지나 잠재기로 들어서면서 그 때부터 많은 것을 학교에서 배우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시간들을 보내게 되는데 나에게 있어서 ‘학교’ 라는 공간은 늘 낯설고 불편한 공간 이었고 또래 아이들이 배우고 익히는 것들을 제대로 따라가기가 너무 어려웠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많이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이 난다. 학교뿐만이 아니고 어디를 가든지 낯설고 어리둥절하고 불편한 마음이 있어서 주변의 것들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어른이 돼서도 무엇인가를 새로 배우려고 하지만 그것도 왠지 나에게 맞지 않는 것 같아서 한두 번 해 보고 그만두기를 계속 반복하거나 맘에 있어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무엇인가를 제대로 배울 수도, 성취할 수 도 없었다.

‘엄마와의 공생’ 이란 관계만 있을 뿐 더 이상 발달을 할 수 없었던 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도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엄마’ 와 ‘아이’ 의 관계만 있는 만남 외엔 더 이상의 어떤 관계도 할 수 없었다. 부모교육을 4년쯤 공부하였고 상담을 받으면서 내가 하지 못한 발달들을 힘들게 해가고 있는데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그 노력이 헛되지 않고 생활 속에서 더 많이 발휘되어지는 느낌이 든다. 작년 한 해는 내가 세상을 살면서 가장 보람된 한해를 보낸 것 같아서 내 인생의 최고의 해라 꼽을 수 있겠는데 앞으로 더 좋은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 자신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이버대학이긴 하지만 그곳에서 내가 해보고 싶었던 공부를 하면서 2학년 과정을 잘 마쳤다. 제 때에 수업을 들어야 하고 요구하는 과제들을 정해진 기간 안에 제출해야하고 적잖은 학업 분량이어서 부담스러웠지만 나도 내가 그렇게 성실하게 해낼 수 있었다는 사실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물론 엄청 힘들긴 했다. 아이들 레슨 하는 일도 해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했기 때문에 어떻게 그것들을 다 해 낼 수 있었는지 생각할 때 마다 내 자신에 대해서 자부심이 느껴진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모임도 내 삶을 즐겁게 해주는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8월엔 오르간을 새로 배우기 시작했고 두 달 쯤 지났을 때 성당에서 반주봉사를 시작하기도 했다.

늘 나에게 있었던 문제였겠지만 내가 변화를 시도하는 중에 겪었던 어려움들이 있다. 첫 번째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나는 무엇인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생기면 나의 일상들을 모두 밀어 버리고 그것만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의 일상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생기면 갑자기 그것 외에 다른 것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이 느껴지고 무의미해지니 말이다. 가령 예를 들면 학교 시험 기간이면 2~3주 전부터는 아이들 레슨 하는 것도 시험 뒤로 미뤄야 되겠다는 생각이 먼저 올라오고 성당에 반주 봉사하는 것도 잠시 쉬고 싶고 집안 일 또한 돌보지 않고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피하고 싶어진다.

두 번째는 내가 주체가 되어서 책임을 지고 무엇인가를 해 내야 할 때마다 무기력함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작년 가을에 있었던 합창연주 때 곡 중 솔로를 맡았던 적이 있었는데 연주가 있는 당일 뿐 아니라 그 전날도 마음이 너무 무겁고 심지어 몸까지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파오는 것 같았다. 연주전에는 기분도 좀 up 되어 있어야하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에너지도 있어야 하는데 몸과 마음이 얼마나 무거운지 힘을 내려고 이렇게 저렇게 발버둥 쳐 보지만 그럴수록 더 깊이 빠지게 되는 늪과 같았다. 에너지를 끌어다 쓰고 싶지만 모든 것이 바닥나 있는 그런 그림만 계속해서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런데 신기한 건 연주가 끝났을 때 나한테 언제 그런 것이 있었냐는 듯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대학을 다닐 때 노래를 해야 할 때만 되면 이런 느낌에 시달렸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난 내 전공공부를 거의 할 수가 없었다. 무엇인가 알아보기 위해서 사람을 만나야 한다든지 어떤 기관을 찾아가야 한다든지 하면 불편한 마음이 올라오고 꼼짝도 하고 싶지 않지만 막상 갔다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런 느낌이 사라져 버리는 것을 크고 작게 매번 경험한다.

세 번째는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 사람에 대해서 누군가가 부정적인 말을 하면 나는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나 입장을 생각지 못하고( 떠오르지도 않음) 그 부정적인 말만 있게 되어 그 사람에 대해서 참지 못하고 관계를 끊어 버리게 된다. 상대방이 왜 그렇게 했을까? 내가 잘 못 안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도무지 나지 않고 빨리 치워버려야겠다는 마음만 있는 것이다. 자라지 못한 나의 자아 중심적인 모습 때문이기도 하고 좋고 나쁨이 나뉘어져서 전체를 두루두루 볼 수 없어서 이기도하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잘 억압되지 않아서 참지 못하고 그대로 쏟아내야지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분열’에 대한 것을 공부할 때 하셨던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어머니들 제발 조금씩 좀 참아보세요. 그럼 좋은 일이 생긴다니까요~ . 참으면 분열 되어 내가 만날 수 없었던 또 다른 방의 문이 열려요. 해보세요!“ . 새로운 한 해는 확실히 인식하고 있는 나의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서 만큼은 극복하기 위해서 더 많이 노력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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