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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베언의 '도덕적 방어'
페어베언반(rroye@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15년 07월 28일 07:47 833
페어베언의 '도덕적 방어'

1. 도덕적 방어 (에레보스님).
나는 아마도 페어베언 이론에 딱 들어맞는 전형적인 분열형 인간일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아니, 구체적인 인간관계에 들어가면 언제나 내가 무엇이든지 양보할 마음상태를 갖고 시작한다. 지나치게 이기적이거나, 못 됐거나, 비상식적이거나 한 사람들과는 아예 관계를 시작하지 않지만 내가 호감을 가지고 있고 상대도 나에 대해 그러하다면 그 관계에서 거의 모든 것을 양보하고 희생하고 이해하고 해결해주고 들어주는 사람은 나다. 이런 인간관계를 평생했더니 이제는 내 의견이나 취향이라는 것은 거의 없어졌고, 언제나 나보다 조금 더 무엇인가를 많이 아는 듯한 친구들의 패션정보, 육아정보, 생활정보, 여행정보, 맛집정보, 쇼핑정보 같은 것을 무조건적으로 따라하다가 결국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이 수업을 듣고 있다.

나는 지나치게 자신감이 없고, 자존감이 낮다. 이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지만 내 자신에 대한 나의 느낌이 그렇다는 것은 나로서도 어떻게 바꿔볼 도리가 없다. 누군가 처음보는 사람이 옷을 잘 차려입고 상냥한 웃음을 띄며 내게 먼저 말을 걸어 온다면 나는 그 순간 아메바가 된듯한 흐물거리는 느낌으로 상대의 호의에 쩔쩔매며 바보같은 실없는 리액션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싫지만 항상 그런 식이다. 겪어보니 상대가 내가 싫어하는 유형이라면 그저 조용히 거리를 두고 다시는 안 보려고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매몰차게 거절하지도 못해서 상대가 집요하게 연락을 해올 경우 끊어내지도 못하고 끌려 다닌다. 그런데 그럭저럭 말도 통하고 괜찮은 사람이라면 그 때부터 나의 이 평생의 불치병, 향단이 증후군이 시작된다. 향단이 증후군이란 말그대로 춘향이 아가씨를 모시는 향단이의 심정으로 상대의 모든 것을 수발들고, 도와주고, 해결해주면서 나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모교육 수업을 받고 내 어린시절을 돌아보니 나의 성장과정과 내 부모님과의 관계로 볼 때, 나는 반드시 그렇게 될 운명이었다.

나는 영리했고, 말귀를 잘 알아들었고,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감각적으로 정신적으로 예민했으며, 눈치가 매우 빨랐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우리 집에서 나를 포함해서 아무도 없었다. 내가 어렸을 적 가족으로부터 주로 들었던 말은 계집애(나는 나에 대한 악의적 이 표현이 끔찍히도 싫다), 못되 쳐먹은 애, 못생긴 애, 나쁜 애, 지독히도 말 안듣는 애,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애, 어쩜 너는 그 모양, 네가 하는 짓이 다 그래, 하는 척만 하는 애, 자기밖에 모르는 애, 꼬라지가 엉망인 애, 더러운 애, 게으른 애, 등등의 표현으로 비난을 받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쯤엔 이런 정의들에 대해서 부단히도 저항하고 반항하고 그런 표현을 하는 가족들과 격렬히 싸웠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그런 정의들이 이미 나를 규정하는 내 인격의 한 부분이 되었음을 알고 절망했다. 왜 아니겠는가?

나는 어린시절부터 애정결핍이었고, 방치되어 자랐으며, 집안 식구들을 비롯해서 아무도 나에게 인격적인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인격적인 관계'라는 것은 우리 집안에서는 턱도 없는 표현으로서, 대표적으로 엄마아빠와의 사이가 그랬다. 엄마는 아빠를 증오했고, 자신의 삶이 불행한 것은 아빠 때문이었다고 평생을 매일 말했다. 엄마와 아빠의 성격은 정반대였고 대부분의 경우 엄마의 판단과 일처리가 아빠의 그것보다 나았으므로 아빠는 일찌감치 집안에서 무능력자, 우유부단자, 열등한 어떤 사람으로서 자리매김한 체 그렇게 대접받고 사셔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호락호락 당신의 고집과 주장을 꺽지 않으셨으므로 두분은 매일매일 격렬하게 다투셨다. 엄마가 악다구니와 저주의 표현들과 인격모독, 비난의 말들로 아빠의 주장을 깔아뭉개는 과정은 처참했고, 비참했고, 괴로웠고, 무서웠다. 나는 매일매일 엄마아빠의 큰소리나는 싸움을 들으며 그런 것을 느꼈다. 내 영혼이 쪼개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무서웠고 괴로웠으며 이 비난의 말들이 지금 당장 끝이 나기를 바랬지만 매번 그렇지 못 했다.

어느 순간부터 두 분이 저렇게 싸우시는 것은 나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엄마의 말대로 조금 더 착했더라면, 내가 엄마 말대로 집안일을 좀더 열심히 했더라면, 내가 엄마 말대로 엄마 심부름을 좀더 싹싹하게 잘 했더라면, 내가 엄마 말대로 하나님을 더 열심히 잘 믿었더라면, 내가 엄마 말을 아무튼 잘 들었더라면 두 분은 싸우지 않으셨으리라. 두려움과 불안이 더 심하게 느껴지는 싸움이 일어나는 날엔 차라리 내가 저분들 대신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죽어서라도 두분이 사이좋게 지내실 수 있다면 그렇게 하리라고. 혼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기도 했고 엄마가 불러준 나의 죄목록을 읊조리며 기도해 보기도 했다.

엄마는 대식구를 거느리셨는데 우리 집에는 우리 가족만 사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 6명과, 외할머니, 막내삼촌 가족 3명, 시골에서 상경한 고모의 대학생 큰아들 1명이 살았다. 끔찍하게 많은 이 사람들로 인해서 개인공간이라든가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은 어릴적부터 아예 없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쉽게 침범했고 방해했고 간섭했다. 모든 면에서 그랬다. 감정적, 인격적, 물리적 공간에서 서로가 서로를 침범했다. 그러므로 집안의 유일한 여자아이이자 막내의 위치였던 내가 존중받고 이해받고 사랑받기를 기대하기는 애시당초 불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엄마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특유의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그저 버티고만 계셨고 그래서 그 보상차원이었는지 교회생활을 무척 열심히 하셨다. 이제보니 그건 신앙생활이었다기보다 숨막히는 집안살림으로부터 놓여나 개인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위로할 유일한 사회생활이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다. 교회에서의 엄마와 집안에서의 엄마는 다른 사람이었고 나는 그 차이가 이해가지 않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엄마는 교회 가기를 싫어하는 나에게 믿음이 없다는 이유로 매질을 하셨고 아무튼 무엇인가 나의 확연한 잘못이 드러날 때마다 매질을 하셨다. 나를 때리는 몽둥이나 채찍의 통증은 너무 아파서 고통스러웠고 처음엔 매를 맞으며 나의 잘못을 기꺼이 반성하고 후회하다가 도무지 끝나지 않는 매질의 고통과 통증 때문에 이윽고 분노가 치솟고 간절히 그 행위가 끝나길 바라는 울부짖음이 되다가 결국 엄마를 증오하는 감정으로 그 야단법석은 끝나곤 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공포심과 맞물려 내 끝도없는 박해불안의 원인이 되고 있는 줄 어린 그 시절엔 알지 못 했다.

나는 어릴적부터 주로 혼자 지냈고 친구 사귀는 법을 몰라 그냥 날 받아주는 아이들을 졸졸 따라 다녔다. 어린 나이에도 가끔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과 나는 왜 사는걸까라는 의문이 떠오를 때면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이해되지 않는 불안과 공포심이 두려웠다. 엄마는 뜨겁게 기도를 하시는 분이었고 엄마의 강요에 의해 나도 따라 기도하기 시작하면 그 기도는 종종 죄의식과 이 죄많은 아이는 왜 살아 있는 것일까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으로 가득했다.

엄마의 강압에 의해 그 나이또래 아이가 흡수할 수 없는 수준의 기독교 교육을 잔뜩 받고자란 나는 그 결과로 내 머리 속에는 기독교인 행동 대강령같은 것이 새겨져 있었다. 1. 절대로 남을 미워하지 말아라. 2. 모든 것은 죄인인 네 잘못이다. 3. 네가 착한 아이가 되고 너만 열심히 한다면 하나님께서 네 꿈을 이뤄주시고 언젠가는 너를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혹시 구원해주실지도 몰라.4. 사람을 사랑해라. 즉 네 고집은 다 버리고 양보하고 착한 사람이 되어라. 5. 너는 너무 못됐고 믿음이 없는 아이다. 그러니 항상 죄의식을 갖고 살아라. 예수님은 너를 위해 돌아가시고 네 죄를 용서하셨다지만 네가 언제 다시 나쁜 아이가 될지 모르니 아예 처음부터 네가 죄인인 것처럼 숨죽여 사는 것이 좋다.

물론 이런 생각들은 강압적인 엄마와 공포적 종교윤리의 혼합을 어린아이의 방식으로 이해한 것이었지만 나는 그것이 분명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믿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하나님의 뜻이 싫었다. 반항을 하느라고 마음 속에서는 늘 신앙을 갖는 일에 대한 갈등이 가득했다. 그러나 이제 생각해보면 이런 사고방식이야말로 페어베언의 도덕적 방어와 그로인한 분열이 신앙적인 차원으로 이뤄진 것임을 깨닫는다. 엄마를 향한 분노와 원망과 갈망과 좌절을 모두 나의 잘못으로 분리해 내재화시켜 놓고 상대를 예수님처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거나 용서하지 못하는 나의 부족함을 내면적으로 무섭게 질타하면서 나는 집밖을 나가서는 가장 순하고, 상냥하고, 충성스럽고, 자기 주장이나 고집이 없는, 상대의 모든 것을 받아주고 견뎌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나를 발달시켜 나갔다. 자기의 분열이자 진정한 향단이의 탄생이다.

사춘기가 되자 친구가 몹시 필요했던 나는 본격적으로 내 자신을 분열시켜 사회적 거짓자아를 발달시켜 나갔다. 기본적으로 조용하고 진지하고 깊이 생각하는 성향이지만 가볍고 수다스럽고 아주아주 착한 모양새로 친구들을 상대하다가 내가 동경하는 류의, 나와는 정반대의 환경에서 존중받고 사랑받으며 균형감 있게 자란 근사한 대상을 만나면 깊이 충성했다. 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구원받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좋은 성적도, 다재다능함도, 모두가 부러워하는 어떤 능력들도 스스로에게는 그저그런, 내가 사모하는 친구나 이상형을 위해 헌신할 도구정도로밖에 인식되지 않았다.

당연히, 나의 이런 성향은 직장생활 중 상사로부터 잔인하게 착취당하는 결과를 낳았고, 그 결과 건강을 잃었고, 중풍이 발생하기 직전 상황까지 가서야 회사생활을 그만 두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아이를 무서워하고 쩔쩔매며 육아문제에 관한한 무조건적으로 친구들의 말을 따르는 자신을 만들었다. 나는 도대체 내 생각이라는게 없었다. 나와 그토록 갈등관계에 있었던 엄마는 결혼 전에 병으로 돌아가셨고, 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 엄마와는 정반대의 가정을 만들리라는 철저한 다짐이 있었다. 나는 절대로 집에서 화를 내지 않았다. 남편이 아무리 불합리한 것으로 나를 모욕하고 화를 내도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화를 냄으로써 또 다시 어린 시절의 그 불안한 분위기가 재현되는 것이 끔찍이도 싫었다.

그리고 아이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인 허용의 육아를 적용했다. 매번 좌절하고, 빼앗기고, 참아야 하고, 야단을 맞았던 그 경험이 싫었으므로 내 아이에 대해서는 그 반대의 경험을 하게 하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 반대의 육아방식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으므로 이미 먼저 아이를 낳아 키우는 친구들의 조언을 신앙처럼 맹신했다. 그러다가 친구들의 관점에서 내가 아이를 너무 오냐오냐하고 버릇없이 키운다는 지적을 받으면 깊이 상처받고 아이를 쥐잡듯이 잡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친구들의 감시를 받으며 육아에 대해 심하게 친구들의 눈치를 보며 불안불안하게 살던 어느 날, 봇물 터지듯이 친구들이 그런 나를 두고 한 마디씩 비판을 해댄 말들이 나에게 홍수처럼 들이 닥쳤다. 드디어 모든 것이 무너졌다.

나는 가까운 사람을 만나면, 아주 친한 사람에게는 내 생각을 주장하기도 하고 냉철한 자기 주장도 펼치는 성향이지만, 그냥 가까운 사람에게는 일방적으로 그 사람의 의견에 끌려 다니고, 내 생각을 숨기고, 그 사람이 원하는대로 해주면서 그 사람의 의견에 휘둘리는 경향이 강하다. 페어베언의 도덕적 방어 차원에서 말하자면, 옳은 것은 상대방이고, 나는 나쁜 아이이므로 절대로 내가 뭔가를 주장해서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결정사항에 나의 영향력을 끼치는 일은 없게 하되, 대신, 상대의 스트레스, 불쾌, 슬픔, 두려움, 상대의 어떤 시련들의 악감정들은 다 내가 흡수하자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친구들은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연락이 뚝 끊겼다가 나쁜 일이 발생할 때만 나를 찾았다. 내가 자신들의 문제들을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해결해 주려고 노력할 때는 나에게 선물이나 식사대접같은 것으로 보상을 하고 그 문제가 끝나면 다시 연락이 끊기고 나는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문제가 없을 때 우리가 만나면 나와 그 친구들 사이에는 할 말이 없어서 어색하고 냉랭한 분위기만 흘렀다. 나의 행동방식과 관심성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관심도 없는 일상잡기나 패션, 남의 흉보기 같은 것들을 하는 것이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므로 내가 억지로 그런 화제에 동참하거나 아니면 친구에게 크나큰 위기 상황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친구들이 나에 대해 매우 고강도의 비판을 했다는 것과 그 결과로 분명하게 느껴지는 왕따 상황에 내가 처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나는 스스로 친구들과의 모든 관계를 끊고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다. 2년 정도를 집안에 갇혀 지내는 동안 잘못한 것은 내 자신이고 나는 친구들에게 죽을 죄를 지었으며 나의 어떤 말과 행동들이 친구들을 몹시 화나게 하고 상처입게 하고 그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무섭게 질책했다. 도덕적 방어 기질 때문에 절대로 친구들을 나쁜 사람이라고 규정하지 못 했다. 약물중독자(위장장애, 허리디스크 진통제, 관절염 약같은 것을 복용하고 있었다), 정신병자(회사생활에서 얻은 공황장애로 장기간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었다), 이단(나는 깊이 기도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고, 가끔 하나님의 음성같은 것이 들렸다), 치매(내가 친구들에게 했던 어떤 말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더라며 어떤 친구들이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같은 표현으로 나를 비난했다는 친구들에 대해서 억울했지만 내 잘못이라고 결론내린 후 변명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자신을 심하게 질책하고 날마다 무너져 내려갔다. 그 당시에 내가 가장 원했던 것은 내가 처음부터 존재조차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을텐데 였다.


꿈수업과 부모교육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고통스러웠지만 내가 대인관계에서 그런 결과를 맛볼 수 밖에 없었던 어린시절의 성장과정들을 하나하나 들추고 분석하고 재해석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드러난 나의 불행했던 성장과정과 엄마의 폭언과 짜증을 나에 대한 애정이라고 믿으며 스스로를 탓했던 도덕적 방어기제의 형성과정의 실상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애도가 일어났다. 나는 외롭게 자랐고, 비난받았고, 나 자신의 본성을 왜곡시킨 체로 거짓자아에 숨어서 자랐다. 그런 나를 이해해주고 사랑해주고 구원해 줄 어떤 사람을 찾아 평생을 갈망하며 살았지만 그런 사람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나의 그런 약점을 쥐어잡은 사람들로부터 실질적으로, 정서적으로, 시간적으로, 인격적으로, 관계적으로 착취만 당했다. 내가 원하는만큼의 애정을 주고 관심을 주고 곁에 있어줄 사람은 없었다. 남편도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왜 그 때, 내가 그 친구들로부터 그렇게 일방적으로 매도당하고 비난 받을 때 당당하게 내 입장을 주장하고 내 생각을 말하고 친구들의 나에 대한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는 대항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기꺼이 그 비판을 흡수하고 그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나라고 받아들여야만 했을까. 왜 그랬을까. 그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아픈 눈물이 솟는다.

나는 최근 이창재 선생님과의 예비상담을 통해서 그토록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엄마와의 갈등감정을 해소하는데 성공했다. 놀라운 경험이었고 치유와 회복이 어느 정도 일어났지만 나는 그것이 내 회복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그 당시에는 알지 못 했다. 지금은 부모교육과 꿈수업을 진행하면서 가끔 견딜 수 없을만큼 힘들고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 수업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더러 있다. 그리고, 내 4세짜리 남자아이가 나의 엄마가 나에게 퍼부었던 비난의 말들을 내 입에서 나오게 만드는 행동을 하며 나를 힘들게 할 때마다 그 때 엄마가 느꼈던 감정이 이런 것이겠구나 생각하면서 똑같은 감정적 폭력을 내 아이에게 휘두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괴롭고 힘들 때가 많다. 나는 나의 과거를 분석하는데는 성공했지만 그 과거를 어떻게 회복하고 내자신을 찾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히 답을 알지 못한다. 자주 의기소침해지고, 여전히 대인관계는 두려우며, 이제 간신히 내가 싫은 것을 억지로 참고 양보하거나 희생할 필요는 없다는 것 정도를 느끼고 실천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 결과로 남편과의 사이가 매우 나빠졌다. 그리고 절대악처럼 느껴지는 시어머님에 대한 박해불안으로부터 기인된 그 두려움을 대면하고 콘트롤 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다행히 매우 말이 잘 통하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수 있게 되었으며, 산다는 것은 그다지 불행의 산더미만은 아니라는 좋은 느낌도 더러 있다.

공부를 더해 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아무 의욕도 없었고 매일 아침 새로운 날이 시작되어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던 나에게 해보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것이 반갑고 기쁘다. 나는 아직 내 자신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모르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 방법을 더 확실히 알아 가리라고 기대한다. 내가 그런 해결점을 느리지만 서서히 한 단계씩 찾아갈수 있도록 선구자의 길을 걸어갔던 모든 심리학자들에게 경의와 감사를 표한다. 나를 가르치고 계시는 선생님께도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완성되지 않은 길이지만 더이상 숨겨져 있지도 않은, 덮어놓고 감내하고 살지 않아도 될 어떤 검증된 회복의 방법론들을 찾아내 주시고 그 일에 헌신하고 계신 모든 관계자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서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어떤 절망적인 상처 받은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좋으니 회복의 숨통을 틔어줄 지혜와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2. 영화 <보이 후드> 속에서 발견한 나의 도덕적 방어 (가이아님)
영화 보이후드를 봤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성인이 된 주인공 메이슨과 나의 차이를 발견하면서 아프지만 나는 또 내 과거와 직면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한 꼬마가 자라 대학에 입학하게 되는 12년의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로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보여주는데, 보는 내내 나는 각 시기별로 내 모습이 어땠는지를 주인공 메이슨의 성장을 통해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였다. 메이슨은 엄마와 누나, 2명의 새아버지들 그리고 방학이나 주말에 만나는 친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누구나 다 겪는 사춘기와 연애, 진로 등 특별할 것 하나없는 과정을 지나 대학에가게 된다. 그런데 다소 밋밋한 영화의 반전이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있었다. 주인공 메이슨이 대학 기숙사로 가려고 짐을 챙길 때 어머니가 갑자기 울며 아들과 하는 대화.

엄마: 오늘은 내 인생의 최악의 날이야!
아들: 무슨 소리예요?
엄마: 떠날 건 알았지만 이렇게 신이 나서 갈 줄은 몰랐어.
아들: 신나는 건 아니예요. 그럼 울어야해요?
엄마: 결국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거야,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이혼하면서 네가 난독증일까 애태웠던 일, 처음 자전거를 가르쳐주던 추억, 그 뒤로 또 이혼을 하고 석사를 따고 원하던 교수가 되고 누나를 대학에 보내고 너도 대학에 보내고 .. 이젠 뭐가 남았는지 아니? 내 장례식만 남았어. 어서가!! 그 사진은 두고 가(사진을 챙기는 아들에게).
아들: 왜 걱정을 미리해요? 40년이나 앞당겨서.
엄마: 난 그냥....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 (절규한다)

영화 속 엄마의 절규에 나 역시 흐느껴 울었다. 그 엄마의 절규가 사실 내가 자라면서 자주 듣던 내 엄마의 울음과 같았기 때문이다. “00야, 나는 가난한 집의 큰딸로 태어나서 맨날 니 외할머니한테 맞고 크다가 어디 부잣집이 있다고 해서 시집을 왔더니 맨 13명 대식구의 일 천지에, 니 애비가 나한테 잘하기를 하니? 돈을 내 맘대로 써보기를 하니? 할 일은 많고 누가 알아주기를 하니? 난 이렇게 살다보면 언젠가 좋아지겠지? 언젠간 좋아지겠지?하고 살았는데 누구하나 나 힘든거 알아주는 사람도 없구, 니 애비는 늘 내 앞에서 잘난 척만 하고 나를 무시하고, 산다고 열심히 살았는데 이제는 다리가 아파서 잘 걸을 수도 없고(40대부터 관절염) 이렇게 살아서 뭐하니?”하면서 울었던 내 엄마의 모습과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다음 장면은 우는 엄마를 뒤로 하고 메이슨이 집을 나서면서 차에서 듣는 노래가 나온다.
날 보내줘요.
난 당신의 영웅이 되는 것엔 관심이 없어요.
나는 보호자가 되고 싶지도 않아요.
그저 싸우고 싶을 뿐인걸요.
당신의 무도회
당신의 퍼레이드에 참가하고 싶지 않아요.
누구든 다른 사람과 자유롭게 걸을 자격이 있어요.

이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머리로는 참 잘했다라고 메이슨을 부러워했지만 사실 마음으로는 슬펐다. 머리와 가슴이 일치되지 않는 이 불편함. 이 불편함이 사실은 내 진실이리라. 왜냐하면 난 아직도 엄마와의 분리 개별화의 문제가 남아 있어서 아마도 내가 스무 살의 저 상황이었으면 난 우는 엄마를 위로하다가 결국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엄마의 울음에 나도 모르게 죄책감이 들고 내가 열심히 자식을 키워준 사람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나만 생각해서 나는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며 결국 나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빨리 버리고 싶어서 나는 엄마에게 맛있는 것도 함께 먹고 아빠 욕도 더 많이 하면서 엄마 말을 더 열심히 들어줬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어릴 적부터 “장녀답게, 엄마가 사랑하고자 하는 아이답게, 순종하는 딸답게, 힘들어하는 엄마를 배려하는 철든 자식답게....”살기를 강요받았다. 나는 “엄마가 원하는 자식답게” 커지기 위해서 늘 엄마에게 맞으며 혹은 다시 상기하고 싶지도 않은 많은 언어적 모욕과 상처 속에서 키워졌다. 난 엄마와 아빠의 싸움 속에서 항상 그 싸움의 원인으로 지목 당했고, 그 싸움의 화살은 언제 내게 돌아왔다. “엄마는 니 아빠랑 이혼할거야”하는 말에 “그래 더 이렇게 살지 말고 이혼해”라는 말을 했다가 “저년은 지 부모가 이혼을 한다는데 말리기는 커녕 이혼하라고 부추기는 나쁜 년”, “자식을 낳고 부부 사이가 더 좋아지는 부부도 많은데 우린 너 낳고부터 맨날 싸워”라며 엄마의 풀리지 않는 분노는 내 차지가 되어야했고, 엄마의 부당한 처우에 자주 울었던 내게 “집구석에서 기집애가 맨날 우는데 집구석이 잘 될 리가 있냐? 우리가 맨날 요모양 요꼴로 사는 것도 다 너때문이야”라는 무서운 말을 듣고 자랐다. 그래서 내 눈에 언제나 혼 한 번 안 내고 나랑 비교하는 동생보다 잘 할 수 있는 건 엄마 얘기를 듣고 엄마를 공감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면 엄마는 결국 웃으면서 다정했고 나는 웃는 엄마를 보면서 언제나 ”역시 난 엄마의 소중한 자식이야“하는 생각으로 뿌듯했던 적이 많았다.

그 뿐만 아니라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엄마가 짝사랑하던 이혼남의 이야기도 엄마에게 들었고, 심지어 그 남자를 엄마가 소개시켜줘서 함께 만나 적도 있을만큼 나는 사실 정말 엄마와 딸, 그러니까 부모 자식 간의 경계가 없이 난 엄마의 모든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었으며 엄마 마음에 쏙 드는 대답을 골라 엄마를 만족시켜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왜 엄마는 내 친구가 누군지도 궁금해하지 않으며, 내가 어떤 꿈을 갖고 사는 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 나는 어떤 고민이 있는 지 등에 대해서 궁금해 한 적이 없음에도 난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 한 번 안하고 자랐다.

어제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너 애한테 너무 무섭게 굴지마라. 애가 우리집에 와서 다 얘기하는데 들어보니까 엄마가 화만내고 무섭다더라. 애 기죽이지 말고 칭찬 많이 해주고 예쁘다 해줘라. 그거 얼마나 이쁜 자식이니?” 매번 반복되는 레파토리인데 부모교육 4년째까지 나는 이런 얘기를 들으면 “나한테 엄마는 어땠는데? 저런 얘기를 나한테 어쩜 저리 죄책감없이 잘하지? 내가 엄마였으면 나한테 먼저 사과를 했을텐데...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 나무란다더니 치!” 이런 반응이 저절로 올라오면서 내 아이에게 계속 시기심이 들고 아이가 더 미웠는데 최근에는 ‘삶을 사는 모든 사람은 누구나 모든 역할이 생경하다. 왜냐하면 그 역할로 처음부터 살아보지 않은 삶이니까. 그래서 누구나 처음이니까. 때문에 잘 모르는 실수를 저지르고 산다. 나 역시 내 아이에게 지금도 잘 몰라 헤매면서도 언제나 의식에서는 무의식과 달리 최선을 다한다고 여기고 살기 때문인 것’을 알게 된 후 나는 내 아이에 대한 훈육적 문제에 있어 엄마의 말이 조금씩 들린다. 이제는 엄마가 그 역할을 나에 이어 내 아이에게 두 번째로 하고 있기에.

마음에서 조금씩 엄마와의 화해가 되고 있어서인지 요즘은 엄마가 하는 생생내는 말 “너 키우느라 고생 많이했다, 나도 먹고 살기 힘들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나 아니었음 벌써 니네들은 니 아빠 손에서 밥도 못 얻어먹고 컸을거야”는 엄마의 “의식”에서의 말을 “무의식”으로 듣고 더 이상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의식”에서 정말로 최선을 다했다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기 때문에 “의식”으로 엄마의 말을 수용하고 “무의식”으로 우리 엄마를 “가엷은 내 엄마!!! 엄마도 참으로 불쌍타!”고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대사 중에 “사람들은 왜 항상 순간을 잡으라고 할까? 난 좀 다르게 생각해. 순간이 우리를 잡는 게 아닐까?” 라는 말이 있다. 나 역시 성인이 되어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볼 때 유난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는가하면 다른 사람들은 기억하지만 유독 나만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나는 그 동안 어떻게 살았나? 나 역시 아기때라 기억은 못하더라도 구강 전 후기의 문제부터 각 영역에 걸쳐 갖고 있는 상처가 있는데, 상처를 받았던 그 순간에 잡혀서 내 인생을 계속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그 순간에 잡혀서 살기를 거부한다. 그 순간 역시 내 삶의 일부이지만 난 이제 그 일부로 내 인생의 전체가 마치 피해를 당했다거나 그 순간을 만들어준 내 엄마를 가해자라고만 여기면서 살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 나는 이제껏 그저그렇게 살아온 내 삶이 앞으로 어떻게 더 대단히 좋아지리라는 환상의 기대를 하는 대신 앞으로 살게 될 내 그저그런 미래의 삶을 다만 담담히 의연히 받아들이면서 지금부터 내게 주어진 순간 순간을 그저그렇게 살고 싶을 뿐이다.



3.“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니캐님)

어디를 가든 어떤 상황이든 내가 잘못하지 않았더라도 왠지 내가 먼저 사과해야하고 미안해해야하고 고마워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은 이런 이상한 일들의 반복....

아이들을 데리고 공룡전시회에 갔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 휩쓸려 몸을 움직이던 중 돌이 갓 지난 정도의 아기가 부모의 손도 잡지 않은 채 걷고 있었다. 아기의 몸과 내 다리가 약간 스친듯하여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미안~’이라 말하였다. 그 말을 들은 아기의 아빠는 내가 마치 자신의 아이에게 크나큰 상처라도 입힌 사람이라도 되는냥 눈을 부랴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너무 억울했지만 아무 말도 못했고 계속 억울함을 풀길이 없어 화가 난 상태로 그 날을 보내야 했다. 미안이라는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여 또 내 스스로가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일상생활에서도 엘리베이터를 붙잡아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 대신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한다. 그것은 그냥 문을 닫고 올라가도 되는데 내가 탈 때까지 열림 버튼을 누르고 기다려준 그 사람의 시간을 내가 낭비하게 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초등학생 시절 아빠는 항상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셨다. 부모님의 싸움과 아빠의 반복되는 지긋지긋한 훈계를 들을 때마다 내가 아빠를 술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지 못해서 매일 이런 일이 반복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빠가 퇴근할 시간에 맞춰 자주 가시는 술집 앞에서 혼자 아빠를 기다리곤 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기 위해 나는 그들을 보살피듯 혹은 내가 양육자인 것 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맞춰주었다. 그리고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기 위해 부탁에 대한 거절도 할 수 없었고 내 부탁도 하지 못했다. 왠지 내가 부탁하면 그 사람의 시간을 빼앗는 것 같고 방해하는, 도움이 안되는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였다. 그러면서도 차라리 내가 더 하고 말지라며 내 자신을 더 힘들게 했다. 일을 마치면 그에 따른 해방감이나 기쁨이 있어야하는데 괜히 화가 나고 혹시 잘 못한 것이 아닌가 불안하기만 했다.

칭찬을 받아도 그것이 정말 잘해서 그런건지 그냥 하는 말인지에 대해서도 의심했다. 이런 것은 사회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에 가지고 갈 가방이 낡아 새 가방이 필요했지만 엄마에게 새로 사 달라는 말을 못하고 보조가방을 책가방 대신하여 들고 다녔다. 왠지 새 가방을 사달라고 하면 고생하시는 부모님께 폐를 끼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엄마가 알아서 가방을 사주시길 바랬고 내가 불쌍했고... 그래서 너무 우울했다. 나는 대상과 관계함에 있어 항상 서툴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 대상이 나를 싫어할까봐 전전긍긍 불안해한다. 그리고 나에 대한 부정적인 눈빛, 몸짓, 말투에 내 몸이 완전히 와르르 무너져내려 내가 없어져 버릴 듯한 아픔에 어떤 대응도 못하고 좌절한다. 그리고는 그 대상과 다시는 관계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나 혼자 관계를 끊어버린다. 감정이 좋을 때는 나의 오장육부를 다 떼어 줄 것처럼 행동하다가도 말이다.

방송에서 어떤 신경정신과 의사가 ‘남의 말에 상처를 잘 받는 사람’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보았다. 예를 들어 잔칫집에 가서 자신이 먹다 남긴 음식이라도 주인이 싸 주지 않는 다면 그것은 내 음식이 아닌 주인의 것이다. 누가 뭐라하든 그것을 내가 먹지 않으면 내것이 아닌것이고 그 말은 상대방의 것이라고... 이 설명을 들으면서 “그래~ 내가 먹지 않으면 되는거야”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 상황에서 나는 또 주워 먹을 것 같다. 그것은 그 상황에서 좋은 대상이 되려고 하는 나로 인해 ‘나는 그 말을 들어도 싸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내성적이라고 하면 많이 놀란다. 너무 쾌활해 보이고 알고 지내는 사람도 많고 어딜가나 말도 잘하고 재미있다고.. 그러나 나는 페어베언이 말하는 전형적인 분열성 성격자이다. 1:1의 관계에서는 너무 어색해하고 언제나 관계속에서 철회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했을 때도 회피하려 하고 누군가가 “짠”하고 나타나서 이 일을 해결해주길 바란다. 또한 누구든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 상태, 내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해 주길 원한다. 착한 일을 하면 표현하지 않아도 알아서 보상해 주길 원하는 것 말이다.

정말 이제는 착한 딸, 착한 친구, 좋은 이웃이 되기 싫다. 나도 한번 나쁜 사람이 되고 싶다. 하고 싶은 말 하면서, 항상 죄책감 느끼지 않으면서, 가슴에 묻어두지 않고 내 스스로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나에서 나오고 싶다. 하지만 아직 어린 아이인 나는 누군가가 I AM이 되기 위한 방법이나 정답을 알려주고 가르쳐 주길 바라고 있다.



4. 분열성 자리 (빅토라이아님)
페어베언 수업을 듣는 중에 나는 꿈을 꾸었다.
<성당에서 알고 지내는 분을 우연히 길에서 만났다. 그 분 옆에는 아들이 함께 있었다. 더운 날씨에 시원한 음료수를 사 주시겠다며 나를 음료수가 있는 자판기 앞으로 데리고 가셨다. 나는 괜찮다고 안 먹어도 된다고 사양했지만 그 분께서는 그런게 아니라면서 기어코 음료수가 진열되어 있는 냉장고 앞으로 나를 데리고 가신다. 그 분께서 음료수 값을 지불하고 나는 냉장고 문을 열게 되었다. 열려진 냉장고 앞에서 나는 당황했다. 냉장고 안은 지저분했고 위 칸은 잘려 나간 페트병이 내동댕이쳐져 있었고 아래 칸들은 텅 비어 있었다. 내가 마실 수 있는 음료수는 없었다. 지저분하고 텅~ 비어진 냉장고 내부의 모습>

꿈은 계속 생각이 났고 잊고 지냈던 과거의 내 모습이 함께 떠오른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치매에 걸리신 시아버지께서 아주버님과 시누들이 모여 사는 일산으로 오셨고 돌아가시기 6개월 전 까지 주말이나 일이 없는 날은 남편과 함께 아버님이 계신 곳에 가서 시간을 보내야 했던 때가 있었다. 나는 그 곳에 가면 힘든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시댁 식구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게 몸서리치게 싫었고 그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없게 된 것 때문에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일산을 가야하는 날이 가까워 오면 나는 남편이 너무 미워서 차갑게 대했다( 너는 날 왜 이렇게 힘들게 해. 이 나쁜~~ ).

나는 남편에게 늘 화가 나서 삐져 있었고 내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서 알아주지 않으면 격노했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고생하고 힘든 불쌍한 사람이 되어 반년을 우울과 불행함 속에서 살았다. 6개월 후 아버님께서 돌아가셨고 바로 아이가 생겼다. 이상하게도 나는 아이가 생겼을 때도 기쁜 것이 아니라 결혼해서 지금까지 시댁 일로 힘들었는데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이렇게 힘든 일만 연달아서 생기냐고 울고 또 울고. 아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에 이상하리만큼 억울한 마음이 들고 내 인생이 엄청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막상 아이를 낳아 놓고 보니 너무 예쁘긴 한데 아기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이 힘이 들고 어려워 쉽게 지쳐 버렸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이가 점점 커 가면서 함께 무엇인가를 하자고 요구하는 것이 많아지기 시작할 때 나는 속에서 짜증과 귀찮은 마음이 몰려와서 아이의 요구를 받아 주지 못했다. 가끔 한 번씩 함께 놀아 줄 때 나는 그 시간이 그렇게 지루할 수가 없었다. 결국은 아이가 만족스럽게 느낄 때까지 놀아주지 못하고 어떤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먼저 끝내버리고 말았다. 떠올랐던 과거 속의 나 자신이 그때 왜 그렇게 고통스러웠는지 이해해 본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시간이든 마음과 물질이든 주는 것이 너무 아깝고 억울하게 까지 느끼는 나를 만났다. 극도로 “나” 밖에 알지 못하는 자기중심적인 삶을 사는 나에게 나의 노력과 수고 정성을 요구하는 모든 외부세계의 상황이나 사람에 대하여 내가 느끼는 감정은 “도대체 나를 왜 이렇게 힘들게 해~~ 이 몹쓸 X!"

좋았다가도 갑자기 싫어져서 갖다 버리고 관계를 하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의미 없이 느껴져서 연락을 끊어 버리고 결국은 남아 있는 것이 없도록 모두 싹 쓸어 버려 “ 아무 것도 없음” 상태로 만들어 놓고야 마는 나. 주일 아침이면 미사에 갈까? 말까? 를 매번 고민하고(막상 가고 나면 마음이 즐거워지고 힘을 받아 좋아하면서). 상담 선생님께는 “상담을 조금만 쉬었다 해요. 상담을 쉬는 동안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성당도 열심히 나가고 있을께요” 라고 말하고 오겠다고 상담을 가기전날 마다 결심하고 있고. 막상 상담이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선생님과 좋은 시간을 보내면서 힘을 받고...

당겨졌던 고무줄을 놓으면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가려는 고무줄처럼 자기대상이 없었던 상태로 자꾸만 돌아가 버리려고 하는 나. 마실 음료수가 없는 텅 빈 냉장고의 모습이 나와 연결된다. “너야~~”

나의 부모님 두 분 모두 외부 세계와 전혀 접촉하지 않고 사신 분들이다. 나는 우리 부모님과 함께 무엇이든 해 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 부모님에 대해 떠올리면 별로 생각나는 것이 없다. 엄마로부터 정서적, 지적인 교류 뿐 아니라 살면서 되는 것과 안되는 것들에 대해서도 배웠어야 하지만 그런 가르침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실수 하거나 안되면 그냥 영문도 모른 채 핀잔을 듣고 얻어 맞거나 쫒겨 나거나 했던 것만 기억이 날 뿐. 너무나 불안했고 한이 많고 불행하다고 여기며 살았던 엄마로 인해서 나는 내 발달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 받을 수 없었다. 생애 초기의 큰 결핍으로 인해 주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 그래서 받아 먹기만 (꿀꺽!)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던 과정을 이번 페어베언 수업을 통해 정리하게 되었다.

항상 거절당하고 좌절한 경험뿐인 나에겐 어떤 순간이 오든, 어떤 상황에 던져지든 항상 안되고 실패하고 나쁘게 되고 망쳐지고 파괴되어 버리는 것들이 먼저 떠오르고 그런 느낌에 익숙하다 . 좋은 기대를 하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다가오지만 그들을 거부한다. 꿈에서처럼 내게 음료수를 사주시겠다고 내 손을 잡아 이끄시는 분에게 안 마셔도 괜찮다고 극구 사양하는 나의 태도처럼 말이다(“됐어요..... 필요 없다구요!!). 내가 나를 나쁘게 생각하고 좋은 것을 주고도 의심해서 당당하게 줄 수 없고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가 그 일어나는 욕망을 최소화 시키거나 그러다 결국은 못주게 되는 .........

수업과 상담을 통해서 외부 세계와 접촉하고 경험들을 바꾸어 가는 작업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 학교를 다니면서 만나게 된 친구들, 성당에 다니면서 알게 된 형제 자매들, 아이의 학교 봉사 모임을 통해서 만나게 된 엄마들 ......... 알게 된 사람들이 꽤 있다. 요즘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마음속에 어떤 안도감 같은 것을 느낀다. “휴 ~ 다행이야. 괜찮은걸 ~~ 안전 한 거 같아” 얼마 전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요즘 자주 하게 되는 말이다. “아버지~ 그래도 세상이 꽤 괜찮아요. 사람들이 그렇게 나쁘지 않아요. 아버지도 이것을 조금이라도 알고 누리다 가셨으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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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중간대상  부모교육반1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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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페어베언의 '도덕적 방어'  페어베언반1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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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이별과 상실(경계선 인격장애)  위니캇반 8.11.12.25
16 라푼젤을 보고나서...  위니캇반 7.11.07.17
15 4년의 상담을 마치고  자유인11.05.17
14 위니컷 수업을 마치고  위니컷반6.1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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