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드 정신분석 연구소

사이트맵


커뮤니티


연구소 홈페이지에 게시된 모든 이미지 및 내용을 연구소와 저자의 동의 없이 다른 홈페이지 및 다른 미디어에 직접 게시 또는 편집후 게시 등을 하실 수 없습니다. 이 경우 법적 책임을 져야하오니 이 점 주의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내가 인간관계를 잘 못하는 이유
위니캇반(rroye@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13년 12월 31일 22:52 3104
1. 좋은 사람님.
나는 재미있고 유쾌하고 착하고 언제나 누군가에게 항상 보고싶은 사람이길 원한다.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남기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힘들어 한다. 나 나름대로는 지금까지 인간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이 생각이 바뀌고 있다. 그것은 내 생각과는 달리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가 내 입장에서만 좋았던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 내가 말할 때 잘 웃어주는 사람,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행동이 내 눈 밖에 나지 않아야 하는 기준이 나에게 있었다. 그래서 그 사람의 개성이나 특징,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무시하고 약간의 안좋은 표정만 보여도 쟤는 아니야라고 단정짓고 그 사람이 아무리 이쁜짓을 해도 이쁘게 보지 않았다.

또한, 나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쁨을 받고 싶었지만 항상 내주위를 보면 나를 따르는 동생(여자, 혹은 연하의 남자)만이 있었다. 조숙이 몸에 베어 어른인척 일일이 간섭하는 행동이나 말투는 참견하거나 나이에 맞지 않는 잘난척 정도로 들렸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엄마가 되어 나를 돌보듯 주변의 동생들을 돌보고 챙겨주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나를 따랐음을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뿐 가까이 있을때만 신경을 써주었지 멀리 떨어져 있거나 먼저 그 동생들이 연락을 하지 않을 때는 그 친밀감은 다 사라지고 그냥 아는 언니나 누나가 되었다. 성격 좋고 나무랄곳이 없는 사람이 나인줄만 알고 살아왔는데 이러한 이유로 뒤돌아보면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는 듯하다. 이성에 있어서도 시작도 하기 전에 혹시 나중에 버림 받을까봐 미리 선수쳐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는 “역시 나는 나 혼자가 제일 편하고 좋아”하면서 다시 내안에 숨었다.

두번째 위니컷 수업을 들으면서 나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의 대부분을 설명해 줄 수 있는 “회피적 애착장애”가 그것이다. 수업 이후 왜 내가 이런 행동을 하고 이렇게 밖에 살 수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고부터 어쩌면 진짜 나의 변화가 이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림받지 않기 위해 조숙해졌고, 조숙해서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못하고, 누군가 의지하려하면 너무 힘들어 했다. 그러면서 또 떠나가려하면 붙잡으려고 무던히 노력하다가 그냥 내가 놔버리는 그런 관계의 연속, 갈등이 생길때에도 부딪쳐서 해결하려하지 않고 피하기만 하는, 이것이 내가 인간관계를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수업시간에 내가 인간관계를 잘하는 이유, 못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숙제가 주어진 이후에 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말이었다. 너무 가까이, 너무 멀리하지 말라는 말이지만 내가 과연 이대로 실천하면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하려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내 자신도 아직 모르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내 잣대로만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것, 친하다면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집착에 대해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내 인간관계에도 어느 정도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2. 관심님.
여태까지 ‘인간관계’는 내 인생에서 별로 중요한 단어가 아니었던 것 같다. 인간관계를 잘해서가 아니라 관계를 잘못하는 걸 알기에 내가 못하는 일에 대해 별로 신경쓰고 싶지 않았고 대신 혼자 재밌게 놀 수 있는 능력을 발전시키다보니 어느 정도 나이들고부터는 딱히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 외롭다거나 하는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물론 현재 내가 외롭다는 감정을 많이 느끼지 않는 데에는 오랫동안 내 버팀목이 되어주고 나를 귀히 여기는 남편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 덕분이라는 걸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이번 학기 위니캇 수업을 들으면서 가장 많이 느껴졌던 것은 내가 자기애적 성격 경향이 강하구나라는 것이었다. 자기애적 성향의 사람은 에너지의 대부분을 자신에게 쏟아부으며 타인에게 나눠줄 사랑이 별로 없고, 늘 사랑이 고프지만 타인에게 양보하고 그를 배려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관계에서 얻는 기쁨을 느낄 확률이 낮다. 자기애적 성향은 이기적인 것과는 좀 다르다. 둘다 자기중심적이기는 하지만, 이기적인 것이 의식적인 도덕적 판단을 포함하는 것이라면, 자기애적인 것은 (현재 내 수준에서 이해하기로는) 뭐를 모른 채--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해서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이 어떤 건지 정서적 차원에서 알기 어려운 채--얼마되지 않는 에너지를 자기 자신에게만 오롯이 집중하는 상태이다. 남의 입장이 되어보고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남에게 양보하는 게 어떤 건지 정서적으로 알기 어려운 상태에서 내가 옳고 내가 잘난 사람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 이런 상태에서 인간관계를 잘 할 수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또 인간관계를 잘 못하는 것은 내가 잘난 사람이라는 자기애를 해치니까 인간관계에 소극적이 되는 수순이 이어진다.

그나마 내 인생을 두고 볼 때 다행인 것은 내 자기애적 경향을 감싸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고 또 내 자기애가 나란 인간의 핵심이 아니며 나의 다른 좋은 부분들을 알아보고 귀히 여기는 사람을 어릴 때 만나 지금까지 부부로 같이 살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순간 탁 느껴졌었다. 나는 늘 내 생각만 하는구나. 나는 이 사람이 무얼 원하는지, 왜 우울해하는지 혹은 왜 화를 내는지 이해하려고하지 않는구나. 나는 늘 내 생각만 하는구나... 하지만 딸아이는 다르다. 나는 자기애적인 엄마 밑에서 자라 자기애적인 사람이 되었지만 딸아이는 그렇게 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사랑 많이 받고 자라 사랑에 넉넉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내가 덜 자기애적 엄마가 될수록 딸아이가 더 따뜻한 삶을 살게 되리라는 생각이 수업을 들으면서 많이 들었고 내가 죽을 때까지 노력해야될 부분이라 생각된다.

또 수업을 들으면서 나의 빈곤한 인간관계를 좀더 넓히고 깊게 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 설득되기도 했다. 사실 현재의 나는 사회생활에서 너무 바쁘고, 문화/예술 방면에서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혼자 잘 놀고, 말하자면 외로울 틈이 거의 없다. 하지만 늘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싶은 욕구가 내게도 있고 그것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걸 조금씩 느끼는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주변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걸 의식 차원에서는 알고 있다(실천을 잘 못한다는 말이다^^). 내가 마음을 열고 내 주변 사람들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양보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사소한 것 같지만 만나서 같이 밥먹고 얘기하고 하는 것들이 결국은 중요하다는 걸 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들여다보고, 딸아이 덕분에 강제로라도 많이 배우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시간과 관심을 내고... 인간관계에서 나아지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려고 한다. 내겐 중요한 첫걸음이다.




3.세상이 두려운 달팽이님.
“너의 작품은 너무 선이 곱고 섬세하구나! 언젠가 닭싸움 하는 곳에 가서 치열하게 닭싸움 하는 장면을 보아야겠다. 곱고 섬세하지만 치열함이 없다. 작은 바람에도 겁이나 머리를 내밀다가 다시 자기 집으로 머리를 넣는 달팽이 같다. ” 대학원 지도 교수님이 늘 나에게 하시던 말씀이다. 나는 그때는 아니 몇 년 전만 해도 그 교수님이 나의 작품을 평가하신 말씀이 맞지 않는 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확히 이해가 안 갔다. ‘내가 머리만 내밀다 작은 자극에도 놀라 머리를 넣는 달팽이 같다고... 내가 얼마나 강한 아이인데... 잘 모르시면서 ’ 라고만 생각했다.

작업을 할 때 내 그림의 주제는 늘 ‘나무’다. 새벽 안개속의 나무, 시냇물 옆의 조용한 나무... 나무는 심리적인 상징으로 무의식적인 나를 의미한다. 늘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너무나 큰, 거짓으로 덩어리만 큰 그런 자아... 그런 자아의 성장만을 지금도 늘 채우고자 급급해 하는 나를 그린 것이다. 정말 섬세하고 곱다. 누가 보아도 그냥 선하고 섬세하다. 닭 싸움의 치열함 보다는 작은 바람으로도 흔들리고 휘청거릴 것만 같은 나무... 그게 나다. 그래서 나는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도 잘 흔들린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으려고 무엇가 조짐이 이상하면 재빨리 머리를 달팽이 집속에 넣어버린다.

그래도 지금까지 나는 사람과의 관계를 아주 잘 한다고 생각했다. 운도 좋게 어려서부터 친구들이며, 선생님들은 잘 챙겨주고 예뻐해 주셨다. 많은 친구가 있는 것은 아니 였지만 늘 사랑받고 지냈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40살이 넘어 지금은 속 얘기 한마디 할 친구가 단 한명도 없다. 너무나 씁쓸하다. 그렇게 잘해주었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간 건지.... 살다보니 여러 가지 환경적 여건으로 자주 못 만난 것도 있지만 ... 가만 생각해보면 나는 늘 달팽이처럼 안 좋은 상황이나 관계가 형성되면 먼저 숨어버린다. 그냥 달팽이 집이라는 자아 속으로 숨어버리고 단절한다. 거북이등 딱지 같지도 고목 나무 같지도 않게 얇은 달팽이 집이라는 자아속으로 숨어버려 다시는 보지 않으려 했다.

언젠가 김은옥 선생님이 ‘오랫동안 친구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그 사람의 심리적, 관계적 발달 과업에 중요한 과업이라고... all bad, all good을 잘 통합하는 대상 항상성이 있는 통합된 사람이라고....’ 했던 말씀이 생각난다. 나는 늘 all bad가 되면 그 사람의 good은 조금도 생각이 안 난다. 전혀.... 안난다. 모든 것이 나쁜 대상이 되어 지금까지의 그 사람의 모습과 관계를 끼어 맞춘다. 그리고 나의 주관적 생각은 곧 사실이 된다. 그 사람이 된다. 나는 여러 사람을 괴물로 만들어 버렸다. 때론, 내 부모님도, 시부모님도, 친구도, 은사도.... 모든 것이 약한 내가 만들어 버린 왜곡된 그들이다. 그렇게 40년을 넘게 관계를 가졌다. 그리고 한번도 내가 잘못 생각했고 판단했다고 여긴 적이 없다. 내 오해와 같은 내 생각은 곧 사실이다.

부모교육을 매학기 마다 들으며 나는 너무나 부끄럽다. 나의 양파 껍질이 하나하나 벗겨지면서 나를 볼 때마나 나는 왜 이 모양이지... 내가 만든 생각과 감정이 다객관적 사실이 아닌 주관적 사실이며 관계들이였다. 늘 조그만 불편하면 거절하고, 단절했다. 30년 지기도 작은 일로 단칼에 베는 단절의 관계를 가졌다. 지금도 오로지 길게 나에게 남아 있는 30년 지기... 그 귀한 친구를 때론 아주 못된 인간으로 만들고... 몇 달이 넘게... 아니 때론 나의 부모처럼 다 받아 주지 않으면,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면 일년이 넘게 연락을 단절한다. 늘 그랬다. 왜 내 마음을 몰라... 너가 나에게 이것 밖게 못해 줘... 나는 부모, 남편, 친구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적 의존기때의 부모 역할을 기대한다. 알아서 나를 받쳐주어야지,,, 어떻게 이렇게 나에게 할 수 가 있어... 감히... 나의 얄팍하고 오만한 자기의 껍질을 채우기 위해 주변 사람들의 작은 손짓이나 눈짓, 말으로도 상처 받고 움크리고 다시는 펴지 않는다. 왜 그런걸까? 아직도 정확히 그 이유를 모르겠다. 다 받고 아니 착취하면서도 나는 나의 부모님께, 남편에게 더 잘 해달라고 한다. 나는 하나도 노력을 안하면서.... 계속 받쳐주고 채워 달라고 한다. 친구들에게도... 알아서 잘 해주라고 한다. 내가 생각한 만큼 안 돌아오면 그녀는 all bad가 된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은 안중에 없다. 나만 편하고 좋으면 된다. 그들이 얼마나 나에게 실망하고 힘들고... 하는 그들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다.

지난 부모교육을 들으며 그게 나라는 사실을 안 후에는 정말 내가 밉고 싫었다. 요즘 나는 많은 생각을 한다. 부모님께도, 시부모님께도,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친구에게도, 학교의 선배나 동료 선생님들에게도,,,,예전에는 내가 중심이 되어 생각하고 관계를 맺었던 것을 지금은 그들이 중심이 되도록 노력한다. 그랬더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그들의 마음이 보이고 생각이 읽혀졌다. 참 마안한게 많다.... 나는 요즘 큰 숙제가 하나 생겼다. 내가 손해보고 ... 내가 상처 받자... 또 30년 지기 내 귀한 친구를 절대 버리지 말자.. 비록 작은 달팽이 껍질속으로 상처 받을까봐 숨어버리는 나지만.. 상처 받으면 어떻고... 달팽이 껍질이 깨지면 어떤가... 그래도 죽지 않는 것을 .... 노래 가사처럼 언젠가는 바다로 가는 거북이처럼 더욱 강하고 단단해지지 않으까...




4. 참음님.
1. 나와 친구 A
나는 여러 친목 모임이 있는데 친구 A가 있는 모임에는 너무 나가기가 싫어서 회비만 내고는 잘 나가지 않았다. 부모 교육을 듣기 전까지는 A가 너무 이상한 애여서 나를 항상 힘들게 한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음식이 다 시켜질 때쯤 와서는 자기 감정 내키는대로 누가 상처를 받든 말든 자기 하고 싶은 말만하고 자기 기분이 나쁘면 몇 년 전 꼬투리까지 잡아서 언제나 남을 좌불안석케 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여겨 난 굉장히 싫었다. 그런데 위니캇 교육을 처음 듣고 나자 A가 싫은 이유가, 마치 내 엄마를 보는 것 같이 불안하고 무서워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 두번째 교육을 듣고 나서 A를 보는데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깜짝 놀랐다. 그래서 그 아이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해보았다. 그랬더니 A는 아무 때나 화를 내거나 친구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친구들이 자기 회사 친구의 사돈 얘기까지 경청을 하면서 적절히 관심을 가지고 A를 주목할 때는 친절하다가 화제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거나 본인 이야기에 기대 이상의 반응이 안 나오면 다른 약속이 있다고 가버렸다. 그런데 그 아이가 가고나면 이상하게도 내가 A와 비슷하게 주목받고 내 우월성과 중요성을 확인받고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며 친구들이 경청을 해야 나 역시 그 모임이 만족스러웠다. 결국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A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관계에서 ‘타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그러니까 정서적으로 타인에게 감정과 관심을 쏟지 못하는 자기애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몇 달 전부터 여러 모임에서 서툴더라도 내가 사회자 역할을 하면서 누구든 1/N만큼의 말할 기회를 주고 그 말이 지루하고 재미없어도 열심히 잘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A를 통해 깨달은 게 또 하나 있는데 나는 과거에 내가 옳다는 과대자기의 확신을 가지고 다른 친구들에게 내가 A에 대해 느끼는 불편한 느낌을 말하며 은근히 내 의견에 동조하기를 바랬는데 친구들 중 몇은 “걔는 둘이 만나면 안그러는데”, “그래도 자기 고민을 말하면 발 벗고 나서서 잘 도와줘”, “성질이 지랄같긴 하지만 그래도 꽁하고 있는 애들 보다는 낫잖아” 등 내가 기대했던 대답이 나오지 않자 내 안에서의 분노는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내 의견에 모두 동조할거라는 내 환상이 현실과 달랐을 때 나는 창피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큰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 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내가 대상항상성이 부족해서 상대를 전체적인 실체로 파악하지 못하고 긍정 혹은 부정으로 이분화해서 어느 한쪽과만 관계를 맺기 때문이고, 특히 부정적인 측면과 관계하면서 살아가는 내 분열 때문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 싫을 때, 그 이유는 그 사람에게서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이 발견되서라더니 내가 딱 그랬다.

이런 깨달음을 얻고 나자 나는 더 이상 그 모임에 나가기를 회피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곳에서도 사회를 본다. A말에 호응을 해주다가 은근히 다른 화제로 돌려 다른 친구에게 말할 기회를 넘기고 A가 아직 자기 말 안 끝났다고 하면 “나 금방 가야돼서 그래. 다른 애들 근황만 듣고 다시 너 길게~~ 얘기하게 해줄게. 기다려줘~”라고 말 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A친구는 불편하다. 그래도 그 불편함의 실체를 알아야 내 문제를 객관화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불편함이 힘들어도 참으려고 노력한다. 그런 참음이 내겐 또 하나의 성장이니까.

2. 나와 직장 동료 B, C
나는 주변에서 내 성격이 좋다고 말하면서 따르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는 내 주변에 내가 불편해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미 회피, 철수했기 때문에 내 곁에는 나를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호의적이라 할지라도 내가 개인적인 대화든 공개적 회의든 내 의견이 지지를 받지 못하고 내 의견을 반박하거나 나의 실수를 적나라하게 지적하면 겉으로야 “그래, 내가 그런 점이 좀 있지. 고맙다. 생각도 못했는데”라고 말하지만 뒤로는 분노를 삭히면서 “내 너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응징의 메시지가 바로 뜨고 꼭 복수를 하고 만다. 한 번은 내가 힘들어하는 동료 B에게 어떤 해결을 제안 했는데 B가 “내가 알아서할게. 거기까지는 신경 안써줘도 돼”라는 말을 했고, 결국에는 간섭과 통제를 위한 관심이었지만 내 제안이 거절당했다고 생각하자 먹은 밥이 체할 정도로 나의 좌절과 분노는 컸다. 결국 나는 B에게 미리 한참 전에 전달했어야 할 일을 일부러 마감 하루 전에 전달하는 응징을 가하고야 말았다.

비단 B뿐 아니라 남편이든 엄마든 어떤 관계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이는 내가 너무 비겁하고 괴롭고 무섭다. 분노가 조절이 안되고 계속 보복하는 내 행동이 제어가 되지 않아 나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작년 11월부터 우리 직장에서 다른 파트에서 일하며 나보다 두 살 어리지만 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전공하며 인격적으로 성숙하려고 노력하는 C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는 처음에는 1주일에 1-2회 정도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면서 내가 어떤 일에서 느끼는 내 감정을 두서 없이 이야기하고 C는 들어주는 역할을 많이 했다. 이런 C를 보면서 한 때, 나는 “내가 또 내 자기애 때문에 남을 또 이용해먹는구나” 하는 생각에 미안하기도 했으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C도 치매 걸린 아버지 이야기, 6남매 사이의 갈등, 경제적 문제 등 자기 이야기, 자기 감정이나 느낌 등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이가 되었다. 단,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주저리 주저리 남의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를 듣되 의견이 어떤 지를 먼저 구하지 않으면 어떤 해결책도 말하지 않으며 직장에서 좋은 의존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무수히 많은 관계 속에서 내가 관계를 잘하는 멋진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 살았다. 그러나, 그것은 내 환상 속 착각이었고 현실 속 관계 속에서는 ‘회피, 철수, 복수, 응징, 분노, 공격, 분열’등을 사용하면서 ‘관계를 잘 하는 척’ 살고 있었다. ‘잘하는 척’의 ‘-척’이 깨질 때 너무도 나는 고통스러웠지만 그 고통과 마주해야 해결책이 생김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때문에 이번 학기의 부모 교육을 마치면서, 나는 내가 새로운 경험을 하도록 좋은 수업 해주시는 김은옥 선생님에 대한 감사와 함께 앞으로 계속해서 남편, 시댁, 엄마, 자식, 이웃 등 여러 층위의 관계를 잘 성찰해서 대면하고 바뀌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 내게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5. 유리 벽을 깨고님.
학창시절 새학년 새 학기가 되면 친구들은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학년이 끝날때쯤 나에게 친근하게 남아 있는 친구는 없었다. 그냥 그렇게 아는 친구로 남아 있었던 기억들, 친한듯 친하지 못한 잡힐듯 잡히지 않던, 이유를 알 수 없는 그 느낌. 친구가 있어도 나는 늘 외로웠다. 나는 그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기만 하면 친구도 그 자리에 있어 줄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나의 마음은 표현하지 않으면서...

게다가 마음은 늘 움직이고 변하는 것임을, 지키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여전히 인간 관계는 나를 힘들게 했다. 나를 보여주기 힘들었고 어렵사리 표현했던 마음 조차도 어느 순간이 되면 아깝고 억울하고.
그래 너는 너 나는 나 이렇게 적당히 사는거야 라는 생각속에 다시 나를 가두었다.

도대체 얼만큼 받아야 배불리 젖을 먹은 아이의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걸까...

그저 아깝지 않을 만큼만 주고 억울하지 않을 만큼만 받는 저울질 하는 나의 삶은 내 아이에게 남편에게 조차도 그대로 행해지고 있었다. 사소한 부탁도 들어주기 싫고 그들을 위해 요리하는 것 조차도 귀찮았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아이를 건조하게 만들고 또 내 남편을 얼마나 힘들게 했을까... 하지만 이제, 몸으로 보여줘야하고 마음은 표현 해야하고 표현 할 수록 가벼워짐을 느낀다.

노력!. 그러나 가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느껴질 때는 내가 불쌍하고 나를 그런 방식으로 키웠던 나의 엄마가 원망스럽고 그래야 했던 엄마도 불쌍하다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 그래도 나는 노력 할것이다. 딱딱한 알을 깨고 나오는 새처럼 나를 둘러 싼 유리벽을 깨고 삶은 즐겁고 가벼운 것임을 내가 손을 뻗으면 모든 것은 손에 닿을만큼 가까이 있음을 내 아이에게 반드시 가르쳐 주고 싶다.




6. 희망님.
분리수거를 위해 종이박스와 신문지 쌓아 둔 것 을 본 엄마가 서둘러 치우신다. 나중에 내가 할 거라고 그냥 두라고 하지만 “ 누군가 와서 불을 지르고 가면 어떡하니?” (우리 집은 5층인데 도대체 누가 와서 불을 지르고 간다는 걸까?) 아이의 치료를 위해 내는 상담비를 보시고는 “그 사람이 혹시 니가 가지고 있는 돈을 뜯어 가려고 괜찮은 애를 이것저것 시키라는 거 아니냐?” 법륜 스님의 설법이 좋아서 들어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하니까 “다 똑같은 사기꾼이지......... 교회 목사들처럼” 엄마는 날이 어두워지면 가게에서 일하시던 것을 멈추고 집에 불을 켜 놓으려 가신다. 도둑이 들어오면 안 되니까........ 평소에 주무실 때 이불도 제대로 펴지 않으시고 맨 바닥에서 그냥 웅크리고 주무시는 엄마의 불안을 나는 지켜본다.
세상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외롭게 혼자 세상을 사시는 분..........

내가 아기였을 때 너무 많이 울어서 주위 사람들(특히 외갓집 식구들)로부터 미움을 한 몸에 받았고 백일쯤 지났을 때 나의 울음소리에 화가 나신 아버지가 나를 여러 번 내 치셨다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으면서 컸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 중 하나도 여동생이 징징거리다가 아버지께 야단맞는 모습이다. 여동생 또한 동네 사람들로부터 정말 징그럽게도 징징거리던 아이로 통했다. 너무나 불안한 엄마는 우는 나를 진정 시키고 , 징징거리던 동생을 달래주고 욕구를 만족 시켜 주실 수 없는 분이 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아이가 울거나 불편한 무엇인가를 표현 하면 어쩌지 못 할 때가 많았는데 그 때마다 '쟤가 왜 저러나, 사람 정말 힘들게 하네........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거야? ‘ 아이를 향한 내 반응도 늘 이런 식이었다.

일만 하시는 아버지, 아버지의 손과 발이 되어 그 옆을 지키시는 엄마. 엄마는 일하시는 아버지를 두고 잠시도 자리를 비우지 못하셨다. 일이 바쁘신 날은 그럴 수 있지만 일이 없는 날에도 엄마는 아버지와 함께 계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부모님은 24시간 늘 함께 계셨다. 가게 주변에서 장사 하시는 몇 분들과 단골손님만 부모님께서 알고 지내셨던 것 같다. 부모님 두분 다 친구를 만나러 가신다든지, 모임에 가시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우리 집에 사람들이 찾아와서 시간을 보내고 가는 일도 우리가 함께 누군가의 집에 가 본 적도 없다. 부모님은 외부 세계와 접촉하지 못하고 가게와 집만 왔다 갔다 하시며 사셨던 것 같다.


나 역시 세상을 탐색하고 배울 기회가 없어 외부세계와 연결 될 수 없었다. 나는 외부세계의 새로운 것에 연결되려 하는 일이 어렵고 낯설고 두렵고 불편하다. 그래서인지 남편이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러 다니는 것에 대해서도 싫고 화가 나는 마음이 올라온다. 꼴 보기 싫은 마음도 들고 그 사실은 나를 상당히 불안하게 만든다. 그래서 남편이 새로운 경험을 하러 나갔다 오는 날은 꼭 싸움을 하게 된다. 또한 남편과 아이가 집에 있으면 난 내가 하고 싶은 것이나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한다. 이런 나를 보니 왜 엄마가 아버지를 두시고 잠시도 자리를 비우시지 않으시고 그 옆을 지키셨는지 이제는 이해가 된다.

나는 부모님을 너무나 창피하게 여겼고, 내가 우리 부모의 자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도 했다.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었으면.........제발.......’ ‘나는 자랑스럽지도 매력적이지도 못하지. 열등하고 가치 없잖아.’ 이런 느낌은 사람들 속에 있으면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외부세계와 단절된 채 종교에 기대어 그럭저럭 살아온 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한정되어 있다. 때로는 아예 할 말이 없을 때도 있다. 나와 관계하는 상대방을 잘 느끼지도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데 어떤 때는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못 알아들을 때도 있고,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못 알아차릴 때도 있다. 사람들을 만나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참 답답하고 난감해진다. 사람들 속에 있으면 나는 지구 아닌 다른 별에서 살다가 온 사람 같다. 어디를 가나 꿔다놓은 보릿자루 . 이방인..........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인데 내가 사람들의 이름을 잘 외우지도 못하고 얼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이 이유 때문이리라.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마땅한 것들에 대해서 엄마로부터 설명을 들어 본 적도 가르침을 받아 본 기억도 없다. 엄마 품에 안겨본 기억이나 엄마의 따뜻하고 친밀감 있는 말을 들어 보지 못했다. 누군가 어렸을 때의 느낌을 표현 해 보라고 한다면 무질서, 혼돈, 캄캄함, 공허, 아무것도 없는........... 이런 단어들만 떠오른다.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아무런 자극도 받지 않고 아무하고도 관계하지 않으시고 살아온 불안한 엄마를 경험하면서 자동적으로 나도 똑같이 그런 삶을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나’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의 상처들, 아픔들, 지금까지도 겪고 있는 고통들..........

좁은 공간에서 다섯 식구가 오랜 시간을 함께 하긴 했으나 몸만 같이 있었을 뿐 아무런 소통도 관계도 하지 않고 각자 외롭게 지냈던 우리 가족. 부모님에게서 느꼈던 거리감은 내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거나 남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것이나 다를 게 없을 것 같다. 과거의 나는 그러했지만 지금은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경험 하면서 난 요즘 세상을 배워가고 있고 세상이 조금씩 살만해져 가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너무 커서 솔직히 상담이 어렵게 느껴지는 날들도 많았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그런 나를 견뎌 주셨다.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그런 내 모습 그대로를 이해받고 수용 받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안심이 된다.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안정감....... 선생님의 열심 때문에 지난 한 해 아주 조금 자랄 수 있었다. 새로운 한해는 내 열심도 보태어 조금 더 성숙의 길로 가보고 싶다.




7. 좋은 의존님.
지난 학기에 프로이트을 주제로 부모교육을 할 때 생소하기 했지만 신선하고 재미있게 수업을 들었다. 이번학기에 위니캇 수업을 들으며 객관적인 나와 내 주변인을 보게 되어 힘이 많이 들었다. 선생님께서 인간관계를 잘하는 이유와 인간관계를 못하는 이유에 대한 주제로 과제를 내주시니 다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나를 돌아보기 위해 나의 부모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였다.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는 나의 아버지는 가정적이고 자상하신 분이라고 생각했으나 결혼을 하고 난 뒤 부인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보면서 가부장적이고 모든 당신의 생각과 행동이 옳다는 독선적인 모습과 자식의 잘못을 마지막에는 엄마의 잘못으로 결론을 지으시는 분노에 찬 모습을 보며 엄마가 참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러실 수 밖에 없을까하는 생각을 해보며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의 친정아버지는 당신이 3살적 나이에 어머니를 떠나보내셨다. 위니캇이 말한 절대적 의존기에 해당하는 그 나이에 친엄마를 잃고 내가 알고 있는 친할머니. 아버지에게는 계모의 손에 크게 되었다. 절대적 의존기에 건강한 엄마를 통해 molding을 잘 맺어 상대적 의존기로 넘어가야 했지만 그러지 못하셨다. 절대적 의존기에 안정감있고 존재감 있는 엄마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자라지 못하셨다. 절대적 의존기를 제대로 보내지 못하시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시게 된 것 같다. 자아의 힘이 있어야 공격과 방어 즉, 분노와 자아를 동시에 쓸 수 있지만 아버지는 충동에 따른 분노를 잘 다스리지 못하셔 참자기로 사시지 못하신 것 같다. 언제나 남에게 보여지는 당신의 모습이 중요하셔서 좋은 남편, 훌륭한 아빠, 멋진 사회인으로의 역할을 하시려고 애를 쓰셨다.

나의 어릴 적 아버지는 항상 말씀하셨다. “아빠는 가족이 제일 중요하며 난 너희들을 위해서는 모든 걸 다해줄 수 있다”며 슈퍼맨 아빠를 당당히 외치셨다. 그 당시 난 정말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하고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인지 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해야하는지 고민하면서 살지 않았다. 그냥 시간이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운이 좋게도 그렇게 되었다. 다행히 어머니는 유복한 가정에 사랑이 많으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게 자라셔서 나는 절대적 의존기에 엄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좋은 내적 대상관계를 맺을 수 있을 수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다른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와 관계를 맺게 되는 사람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마음을 나누고 하는 것이 좋았다. 나는 중고등학교시절에는 내성적이며 말이 많지 않은 아이였다. 3살차이나는 여동생은 나보다 키 도 키고 날씬하며 얼굴도 예쁘고 항상 밝은 아이였다. 나는 동생보다 여러모로 부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앞에 나서지 못하며 말이 점점 없어지게 되었다. 친척들은 나는 곰, 동생은 여우라는 말로 옭가매며 늘 자신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대학교에 가서 학교생활과 서클, 동문회활동 등 여러 활동을 활발하게 하면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남앞에 나서기 두려워하고 수줍음 많던 내가 나의 내재되어 있었던 좋은 대상관계를 맺을 있었던 힘이 나타나면서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절대적 의존기에 엄마와의 moding이 잘 되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과 인간관계를 하면서 부족한 점은 무언가의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항상 아버지가 모든 결정을 내려주셨고 모든 결과와 책임도 아버지가 맡아주셨다. 그것이 잘못되었을 경우에 내실 걱정과 화가 두려워 나는 부담감과 책임을 회피하려는 마음에 그런 것 같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난 참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슬퍼졌다. 내가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사소한 결정을 내릴 때도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맡기려고 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인 것 같다.

지금은 나의 인생의 사춘기이다. 마음이 많이 혼란스럽고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도 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많다. 지금 돌아보면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다시 공부를 시작할 때도 그것이 나를 위한 결정이었는지 혼란스럽다. 나를 알아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큰 딸로서 가지게 되었던 부모님의 지대한 기대와 관심으로 힘들어도 힘들다고 얘기하지 못하고 내색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지나치게 존중하여 내 감정과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게 되어 모든 결정을 하는데 어려워하며 나를 숨기게 되었다. 아마도 난 아빠가 이렇게 말씀해 주시길 바랬을지도 모른다. “너는 무슨일이든 할 수 있어, 너는 그런 능력이 충분히 가지고 있단다. 잘할 수 있어.”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경계를 주어 힘있는 엄마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조금씩 어른스러워지며 내 스스로 나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시간들을 기대하며 참자기로 살아갈 수 있는 나의 40대를 기대해본다.




8. 반복님.
어릴적부터 ‘어른스럽다’는 말을 들은 나는 스스로 ‘완벽한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게 유치해서 이성적으로, 객관적으로 행동하려 했다. 친구간의 대화에서도 마치 훈계하는 선생님같은 그런 말을 했다. “너 수업중에 자면 어떡하니?” “그만 좀 떠들어라” 친구들 말문을 막는 그런 말들. 다행히, 그런 내 행동을 카리스마로 받아 들이고 좋아해 준 친구, 내 본심은 안 그렇다며 감싸 안은 친구들이 몇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지 고맙다. 지금 같으면 어떡할까? “어제 늦게 잤어?. 피곤했나 보내” 우선은 그렇게 말할 것 같다.

내 말은 비수여서 상대를 많이 아프게 한다. 지금 생각하면 상대가 싫어할 만한 말만 고르는 지 참 신기하다. 상대가 나에게 조금이라도 상처를 주면, 가차없이 그가 아파할 만한 이야기로 복수를 한다. 내가 중2때였나, 내 짝꿍이 나보고, 살 좀 빼라고 했다. ‘지가 뭔데 나한테 살빼라 말라야’,분해하면서, 코에 핸디캡이 있는 그 친구에게 “사람 신체 가지고 놀리지 마. 너보고 개코 원숭이라 하면 좋겠니?”라고 맞받아 쳤다. 그리고 우린 3년간 말을 안했다. “그래, 내가 좀 뚱뚱하지?. 나도 걱정이야” 그러고 쉽게 넘어 가지 못했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자존심 상해하고 ‘내 자존심을 건드리는 상대’를 짓밟아야 속이 시원해 진다.

나는 그들에게 ‘완벽한 인간’으로 비춰 지길 바랬다. 그렇다고 내가 완벽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유능한 아이’. 그들의 격찬을 받고 싶었다. 그것이 관계 맺는 법이라 여겼다. 그들 앞에서 난 아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마치 기계같이.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 놓은 적도 없었고, 언제나 즐겁고 명랑한 척 했다. 이런 방식은 비단 친구 관계뿐 아니라, 모든 타인을 상대하는 내 방법이다. 남편도, 엄마도, 아이도 훈계만 했지, 그들과 감정적 교류를 하지 못했다. 겉으론 잘 어울리지만, 깊은 관계를 거부했고, 먼저 남에게 손을 내미는 일도 없다. 적당히 간격을 두고, 적당히 친한 척하고, 서로 상처받지 않을 정도만 적당하게 사귀면 되는 거였다. ‘세상은 나 혼자 살아 가는 거니까. 내 고민은 내가 해결해야 하는 거야.“ 이게 내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친구는 ‘다 잘하는 아이’가 아닌 ‘친한 아이’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친구란 ‘못나도 내 친구. 실수해도 내 친구’임을 마흔이 넘은 나이에 알게 되었고 ‘내가 완벽하지 않아도 나를 흉보거나 내치지 않음(버려지지 않음)’을 이제야 느낀다. 그동안 나는 내 실제 모습을 보고 그들이 실망하거나 그들에게 버려질까봐 두려워 했던 거다. 사람을 만나면서 ‘버려짐’을 걱정해, 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해 본 적이 없는 나는 불쌍한 아이다. 연애 시절, 갑자기 찾아 온 남친에게 ‘저녁밥을 먹고 부은 내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그냥 보낸 적이 몇 번 있다. 언제나 한시간 이상의 화장과 한시간 이상의 의상 준비 후에 애인을 만났던 나로선 머리도 안감은 맨 얼굴로 밖을 나가는 건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다. 결국 그 남친은 ‘내가 자기를 안 좋아한다’ 오해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어느 누구를 만나도 감정 교류는 하지 않고 완벽하게 보이려는 내 욕구가 우선이었다. 스스로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고, 그들과의 만남이 때로는 나에게 힘든 일이었다. ‘아닌 척, 완벽한 척하려니’ 집에 오면 공허함이 들었다. ‘조숙과 가식’ ‘내가 아닌 나’로 타인을 만나 왔다. 그들이 갑작스레 다가옴은 나에겐 침략과 같다. 가면을 쓴 후, 완벽한 변장을 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면을 쓴 나는 그들에게 공감을 할 수도 없고 그들도 나에게 공감할 수도 없었다. 만나도 즐겁지 않고 허탈했다. 마치 찌그러진 거울을 보고 ‘이게 내 모습’이라 착각하는 것처럼, 가면 쓴 내 모습이 나인 줄 알고 살아 왔다. 솔직함, 진실함은 없었다. 상대 역시, 나를 진심으로 대한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무조건 자주, 많이 만나면 되는 줄 알았다. 이건 내 본딩 욕구 때문이었을 것이다. 안 만나면 불안해 지는 내 분리 불안으로 가까운 사람들이 힘들어 했다. 남편을 불러 들이고 아이에게 집착했다. 버려 질 것 같은 두려움에 나를 그대로 보여 주지 못하고, 분리 불안으로 인해 상대를 힘들게 만든 나다. 나는 계속 내 말에 동조를 하지 않으면 또다시 상대가 보기 싫어지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9. 존재의 연속성님.
위니캇 수업시간에 역할전담, 조숙, 거짓자기인 사람들 사례를 통합해서 묘사한 그들의 겉모습이라고 선생님이 4가지 특징을 말해줬다: (1)지나친 역할수행 (2)지나치게 충고, 떠맡음 (3)타인에게만 초점 (4)마술적 사고. 난 너무나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수천 개의 사례를 통합해서 묘사한 특징들이 마치 누군가가 나의 삶을 보면서 묘사하고 있는 듯 하였다. 내가 조숙한 건 알았지만 난 그건 좋은 걸로 알았다. 어릴 때부터 항상 어른처럼 행동하고 얌전하고… 알아서 다하고… 챙기고… 시킨 것들은 완벽하게 수행하고… 항상 남을 배려(?)하고… 무슨 일이든 잘 될 거야 라고 믿고…

하지만 이 같은 행동의 이면에서 난 항상 자유롭지 못했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해야만 인정받고 사랑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난 항상 최선을 다해야 했고 항상 힘이 들었다. 내가 마치 모든 해결책을 다 알고 있는 걸로 착각하면서 남에게 충고하고 그를 위하는 것이라는 믿으면서 대신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나에게 보다는 항상 타인에게 안테나가 향해 있어서 난 항상 긴장하였고 언제나 나는 마지막이었다. 어떠한 일, 사건에도 난 “다 알아서 잘 해결 될 거야” 라는 마술적 사고로 나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문제의 핵심과 해결책을 외면하였다.

몇 달 전 우연한 기회로 나의 어렸을 때 사진들과 객관적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6-7개월 정도 된 사진 속의 나는 완벽한 남자아이다. 발가벗겨서 찍은 사진들은 내가 여자아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다. 나의 돌 사진 역시 남자아이 한복을 입고 있다. 남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나는 남자아이처럼 머리가 짧고 남자아이 옷을 입고 남자아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남동생이 태어나고 나서야 사진 속 나의 머리는 여자아이처럼 길러진다. 2-3세 때 사진 속의 내 얼굴은 우울하다. 세 번째 딸로 태어난 나는 친할머니가 내가 딸로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화로 듣고 전화기를 던지셨다고 했다. 그 후 친할머니가 날 보고 내 밑에 남동생을 볼 거라고 확신하셨고 그 순간부터 나의 삶은 남동생을 보기 위한 구술들로 이루어 졌다. 밑에 남동생을 보기 위해 나는 남자아이처럼 꾸며지고 다루어 진 것 같다. 거기다가 내가 11개월 정도 되었을 때 부모님은 아버지 직장일로 집을 6-7개월 정도 떠나야만 했었다. 엄마는 그 당시 만4살 정도인 큰딸만 데리고 갔다. 난 그 당시 (1960년대) 자식들을 남편에게 주고 이혼한 고모와 친할머니 손에 양육되었다. 부모님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버지가 2-3개월 동안 굉장히 아파서 엄마는 병원에서 아빠 곁을 지켜야 했다. 아버지 치료 후 바로 남동생이 태어났다. 결국 나에겐 엄마가 11개월부터 어느 날 갑자기 없어져 버렸고 다시 나타났을 땐 남동생과 같이였다.

셋째 딸로 태어난 나는 태어나자 마자 남자아이처럼 다루어 지고 양육 당한 것이다. 어린 난 거울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었을까? 남자 같은 여자아이? 여자 같은 남자아이? 나에겐 존재의 연속성이 없었다. 난 나 자신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태어난 순간부터 남동생을 보기 위한 수단이었다. 나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11개월부터 나에게 주어진 부모와의 갑작스런 이별은 나를 조숙하게 만들 수 밖에 없었고 준비되지 않은 분리로 부모님과의 융합을 원하는 나는 거짓자기로 살 수 밖에 없었다. 나에게 부모님은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 거짓자기 모습은 3세경 친할머니가 나를 데리고 부산의 큰집에 가서 몇 달씩 있었던 것이다. 난 정말 가지 싫었지만 나를 데리고 가는 친할머니나 엄마에게 가기 싫다는 말을 할 수 없었고, 집이 그립고 엄마가 보고 싶었지만 집에 돌아가고 싶다거나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조차 친할머니에게 할 수 없었다. 어린 난 거의 매일 밤에 이부자리에서 엄마를 생각하며 혼자 슬펐고 항상 우울했던 기억이 난다. 3살짜리가 칭얼대거나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없었다.

조숙한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아니 버림받지 않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했고 모든 것에 칭찬을 받으려고 나의 에너지를 고갈 시켰다. 난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생각할 틈도 없이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모든 리비도를 다 쓸 수 밖에 없었다. 무엇을 성취하더라도 나의 깊은 마음 속에 항상 뭔가 텅 빈 공간이 있었고… 많은 것을 성취했지만 난 즐기지 못했고 항상 긴장 속에서 살았다. 가끔 난 이해할 수 없는 우울감속에 빠져 들었다.

결혼생활을 돌이켜 보아도 난 완벽한 며느리, 아내의 역할수행을 하느라 나 자신은 없었다. 완벽한 며느리로서 누구에게나 칭찬을 받아야 나의 부모님이 나를 자랑스럽게 여겨 주실 거라고 믿었고 그것만이 내가 살아야 하는 길인 줄 알았다. 나의 참자기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면 난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줘야 하는 것이라 믿었고 시부모님께 남편을 대신해 내가 떠맡아 해결해 주었다. 덕분에 남편은 더욱 무능하게 되었고 그 화살은 나에게 결국 돌아왔다. 내가 훌륭한 며느리, 훌륭한 아내, 착한 사람, 좋은 사람, 좋은 딸로 타인에게 보여 지는 것이 너무나 중요했던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훌륭한, 착한, 좋은” 역할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었다. 남편의 외박, 실패, 외면에도 난 “언젠가는 날 알아 주고 모든 것은 다 잘 될꺼야” 라는 마술적 사고로 매일 힘든 생활을 버티어 냈었다.

이 모든 것이 존재의 연속성이 없었던 나의 유아기 시절의 결과라는 것이 정말 믿어 지지가 않는다. 내가 거짓자기로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을 이해하면서 요즘 난 내가 얼마나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여행을 가서 너무나 아름다운 경치를 봐도 난 "아~ 너무 좋다!" 라는 깊은 감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힘든 일이 생기면 난 그냥 느끼는 것 자체를 부인하고 아무런 일이 없었던 양 쿨하게 행동한다. 내가 쿨한 것이 아니라 실은 힘듬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일어난 엄마와의 분리로 난 나의 모든 감각기능을 마비시켜야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망상 속에서 50년 넘게 살아왔던 나는 이제야 현실이란 것을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고, 나의 감성과 느낌들이 타인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모든 것을 망상 속에서 사고하고 감각했던 나는 이제 아주 조금씩 다양한 현실의 기쁨과 아픔을 느껴 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 또한 감각의 통합에 문제가 있는 나에겐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나의 부모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어쩔 수 없었던 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나 또한 내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사건과 일들이 나의 아이들에게 똑 같이 상처와 병리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의 무의식뿐 아니라 의도하지 않은 환경도 자식들에게 예기치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무섭고 놀라운 일인 것 같다.




10.성숙님.
지난 학기 처음 접한 프로이드 수업이 조금은 낯설고 충격적인 것이었다면, 위니캇 수업은 보다 현실감있게 깊이 와닿았던것 같다. 수업내용의 많은 부분, 어떤 때는 거의 전부가 나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처음엔 수업을 통해 깨닫게 되는 내 모습이 버거워 수업후 며칠씩 힘들었던 적도 있다. 그동안 나름 지켜왔던 자존감이 근본부터 흔들리는 느낌이 들어 수업을 그만둘까 잠시 고민도 했다. 이제 원인은 어렴풋이 알았으나 그 해결방법은 너무 아득하고 멀게만 느껴져 이 잘못된 모든 것들을 어떻게 풀란 말인가 하는 절망감에 우울하기도 했다.

위니캇 수업을 들으면서 `아~~이게 나구나!' 라고 소름끼치게 와닿았던 개념은 회피성 애착장애, 자기애적 엄마, 조숙이었다. 이중에서도 나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단어는 '자기애적 엄마' 였다. 이 수업을 듣기전 나는 스스로 그만하면 원만한 인간관계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며 (특히 어려운 형편이나 사회적 약자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상처주는 말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나의 의견이 옳다고 우기지 않았고 늘 겸손하려 애썼다. 누구와도 적을 만들지 않고 좋은게 좋으거지...너그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철저히 가정밖에서의 모습이었고, 가정내에서는 내가 생각한 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으면(통제되지 않으면) 화가 치밀어 오르고, 남편과 아이들을 교묘하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대로 조정하고 싶어했다. 내 머리속에 있는 깨끗하고 그림같은 거실,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범생, 그것이 완벽한 것이며 이상적인 것이며 옳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못한 모습은 전부 고쳐져야할 '악'으로까지 생각되었다.

그 모습속엔 나의 강박적 사고와 불안이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상반된 모습으로 인간관계를 해왔을까? (사회에서, 가정에서...) 수업초기, 엄마에대한 나의 이미지는 굉장히 긍정적인 것이어서 엄마의 문제를 잘 볼수 없었다. 그런데 수업을 들으며 문득문득 잊었던 옛기억과 엄마가 하셨던 말들이 떠올랐다. "너는 정말 내가 가장 힘들 때 태어났는데 너무 순하고 착해 열이 펄펄 끓어도 울지도 않고 방안에서 혼자 끙끙대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가 살수 있었다. 자라나면서도 혼자 알아서 공부하고 속한번 썩이지 않고 알아서 커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예전엔 그런 말을 들으면 '나도 참 무던히도 착하고 효녀였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수업을 듣다보니 열로 얼굴이 발갛게 되어 애처롭게 엄마가 안아주길 기다리며 떨고있는 아기인 내가 보였다. 왜 울지도 못했을까?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

그게 바로 까마득히 떨어지는 멸절불안, 그런거 아니었을까? 나의 유년기시절의 엄마 역시 시부모, 시동생 네명과 같이 사는 스트레스를 어쩌지 못하셔서 늘 화가 나있는 모습이셨고 때론 심하게 아프시기도 해 엄마가 싫으면서도 저러다 돌아가시면 어쩌나 하는 불안도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엄마환경속에서 나는 엄마 품에서 늘어지는 경험이 많이 부족했던것 같다. 그래서 스스로 나의 부모가 되어 나를 지키려는 듯 늘 나만 믿었고 나의 노력만 믿었다. 그러니 늘 긴장했고 불안이 많은 아이였다. 다행히 중,고등학교 시절을 거치며 나의 노력들이 보상받기 시작하며 자존감도 높아지고 엄마도 그런 나를 고마워하고 자랑스러워 하셨다. 하지만 그건 내가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는 제대로 된 I am 이 아니라 내가 무언가를 잘해야만 인정받고 사랑받는다는 잘못된 자존감이었다. 그러니 늘 우월감과 열등감 사이를 오고갔다.

조숙으로 비롯된 나의 생존전략인 안전감추구는 주목받고 싶은 욕구는 있었으나 주목받는 상황이 부담스러워 튀지않고 무난한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 무엇을 해도 최고가 되기보다는 나름 만족할만한 상위그룹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타인으로부터 받았던 상처가 너무 아팠던 나는 다른사람에게 상처줄까봐 내 의견이 필요한 상황에도 말하지 못하고 애매한 웃음만 짓고 있었다. 또 내가 남들에게 친절했던 것 처럼 그들도 나에게 친절하기를 바라며, 내 스스로 겨우 만들어 놓은' 내'가 위협 받을까봐 늘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상처받지 않으려 전전긍긍 했던 것 같다. 건강한 I am도 없었고 건강하게 공격성을 쓸 수 없었던 , 적은 없지만 절친도 없는 무해무익한 인간관계를 해왔던것 같다. 아니 아예 진정한 인간관계가 없었는지 모른다.

또한 real이 없었던 나는 현실에서의 상호관계보다는 공상(예를 들어 가수를 좋아한다거나...)속에서 혼자 다가갔다 언제든지 상처받지 않고 철수할수 있는 일방적 관계속에서 더 편안함을 느껴왔는지 모른다. 힘들 때도 친구에게 속내를 털어놓기보다 음악에 빠져들기와 가수에 대한 탐구? (남과 공유하지도 않는...)가 더 쉽고 위안을 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스스로 스트레스 관리를 잘한다 생각했다. 밖에서는 온화해보였던 나였지만 집에 돌아오면 비교적 느슨한 방어속에 밖에서 쓰지 못한 공격성과 자기애적 성향이 고조되었던 것 같다.

머리로는 좋은 엄마이고 싶었으나 교훈적이고 때론 차가워 아이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해주지 못한 것 같다. 내가 그래도 가장 헌신적으로 관계했다고 생각하는 나의 학생들과의 관계도 (내가 학생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장점을 보려고 노력했던 만큼 내 아이들에게 했더라면...) 나의 아이들보다는 나의 할 일 (나의 성취감)을 더 가치있고 기쁘게 여긴 자기애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Lesson하려 방음이 된 방으로 들어가버린 엄마를 문 밖에서 바라보며 아이가 느꼈을 단절감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또 한가지, 엄마와의 Holding이 제대로 되지 않은 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이 있다. '내 안엔 내가 너무도 많아...' 라는 노래 가사처럼 나를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는 나에게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깊어지지 않는 어려움이 있음을, 내 안의 불안이 기도하는 것을 어렵게 함을 절감한다. 하지만 왠지 언젠가는 이 모든 문제들이 조금씩 풀릴 수 있을 것 같은 소망이 있다. 나를 알아가는 나의 노력과 함께 절대자의 손이 더하여져 그의 은혜로 내가 다듬어지기를 (우리 엄마가 신앙 안에서 정말 많이 변하셨듯이) 감히 소망해본다.




11. 상대적의존님.
위니캇 수업에서 보면 엄마와 떨어져서 키워졌던 나는 절대적 의존기 때 “I am”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것 같다. 이 상태로 상대적 의존기로 넘어간 나는 회피성 애착을 하는 아이가 되었고 마음 속에는 커다란 자기애를 숨겨놓은 채 겉으로는 남에게만 맞추는 사람으로 살아온 것 같다. 꿈을 꾸었다. 새벽인지 저녁인지 어둑어둑하다. 습한 안개가 자욱하다 못해 차가운 기운마저 돈다. 두 개의 산. 높고 메마르고 암벽이 산 우두머리까지 드러나있는 산이다. 이런 두 개의 산꼭대기가 철로 된 거대한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여자아이는 그 다리를 건너 집에 가려고 한다. 다리를 건너려는 순간, 다리 구석구석이 부식되고 몇몇의 나사가 풀려있어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에 아이는 건널 수가 없다. 여자아이는 “이 다리는 철로 만들어졌어. 내가 올라가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아. 이것은 큰 다리야!”를 반복해서 주문처럼 외운다. 그리고는 다리를 마치 사다리를 올라가듯 엉금엉금 기어서 간신히 건너갔다. 다음 장면은 집 안의 모습인데 너무 담담하다. 그렇게 힘들게 집에 도착했건만 그 여자아이도 다른 식구들도 그저 일상적인 모습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나의 경험을 이렇게 그대로 꿈을 꿀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난 만 5세에 외가에서 집으로 왔다. 꿈에서의 다리가 이 경험을 상징한다고 한다. 죽을 것 같아서 건너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죽을 것 같이 힘들게 본가로 들어갔다. 그런데 엄마는 마치 아침에 놀러 나갔다 들어온 애처럼 나를 대했었다. 어떠한 특별함도 없이 말이다. 이 집에서 난 누구지?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등등 질문도 못한 채 낯선 집에서의 적응은 엄마의 도움 없이 눈치만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당근, 사과, 의자 등등을 외우듯이 엄마도 외웠던 것 같다. 엄마라는 존재를 느끼고 하나의 대상으로서 경험한 것이 아니라 호칭으로만 기억된 엄마만 있었다는 것을 공부하기 전에는 몰랐었다. 그래서 무의식이 뭔지 몰랐던 수업초기에는 우리엄마는 포근하고 따스한 분이라고 말했었다. 공부를 해갈수록 나의 엄마는 포근하고 따스하지만 생명이 없는 곰 인형 같이 느껴졌다. 밀쳐내지도 공격하지도 않지만 나를 느끼지는 못하는 곰 인형 말이다. 그리고 위니캇 수업을 들으면서 내 무의식 속에서의 엄마는 차가운 바위산이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힘든 나를 마치 투명인간 대하듯이 대했던 엄마의 무딤이 어린 아이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차가운 바위산처럼 느껴졌나 보다.

본가에 들어와서 느낀 것들(엄마에게 난 뭐여요? 이 집에서 난 뭐여요?)을 설명받지 못했기에 나는 혼돈스러웠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아야 하는 건지 참으로 이상했지만 엄마에게 편하게 질문을 할 수도 없었다. 그저 다른 식구들의 일상이 편안해 보여서 나도 그런 척 해야만 정상 같았다. 그 집에서 나는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믿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세상에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먼저 배운 나에게 인간관계라는 것이 있었을까…

“I am”이 없는 나는 인간과 관계를 하는 것이 힘이 든다. 그래서 나는 오랜 시간동안 인간이 아닌 물건들과 관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평생을 유지했던 나만의 완벽한 공간이 누구와도 관계할 수 없어 항상 불안했던 나의 유년기를 암시해준 것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어려서는 내방, 결혼해서는 내 집이 곧 나를 보호해주는 보호자였다. 그랬기에 그 안의 모든 물건들에게 자리와 순서와 역할을 주고 통제함으로써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고자 했었다. 생명이 없는 물건들에게 의미를 부여했었고,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는 그것들의 의리에 안정감을 느꼈었다. 항상 내가 놓아둔 자리에 있는 나의 물건들은 엄마가 주지 못했던 일관된 안정감을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필요할 때 내 곁에 있어주지 않았던 엄마대신 물건들은 항상 내가 놓아둔 그 자리에서 내 필요를 채워주었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내 물건의 위치가 바뀌어 있으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했었다. 마치 침공당한 사람처럼 날카로워져서는 상대의 의미 없었던 행동을 있을 수도 없는 무식한 행동으로 평가절하해야만 살 것 같았다. 나의 물건들은 세상의 누구도 이제껏 주지 못했던 안정감을 주는 고마운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엄마와 관계라는 것을 해보지 못했기에 사람들의 변화무쌍함은 나에게 신나는 경험이 아니라 더 큰 불안으로 느껴져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다. 볼 때마다 달라지는 사람들이 힘들어서 소화가 안됐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만나면 투명인간이 되고 그들이 나를 뚫고 지나가게 만들었다. 엄마가 나에게 했듯이 말이다. 이런 나의 트라우마를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꽤 넉넉한 인품을 지녔다고 착각한다. 어떠한 평가나 의견도 표시하지 않는 내가 그러한 오해를 종종 하게끔 만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스스로도 최근까지 꽤 인간관계라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별로 싫어하는 사람도 딱히 좋아하는 사람도 없는 나는 참 무난한 사람이라고 믿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에게도 속내를 털어낼 수 없는 나의 외로움이 인간관계가 없었던 삶의 결과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왜 진작 물건이 아닌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결혼생활을 20년 넘게 했건만 대부분의 세월은 혼자였다. 남편은 매번 맞춰줘야만 하는 대상이라 힘들었고 아이는 얼마만큼 해주어야 하는지 몰라서 힘들었다. 함께 있으면 숨이 막힐 것 같아 혼자이고 싶었고, 막상 혼자가 되면 무기력감과 불안감에 휩싸여 쉴수조차 없었다. 이게 바로 “나” 였었다. 내가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상태가 바로 현재의 “나” 였었다. 관계를 하려면 “나”와 “남”이 필요한데 이제야 나는 나를 알아가고 있는 것이다. 엄마가 정리해주지 않아 혼란스러웠던 “I am”을 내 스스로 조금씩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상처가 있어도 그게 나라는 것을 알아낼수록 편안해진다. 내가 나를 알아낼수록 나와 다른 남이 보인다. 그리고 나와 남이 다를수록 신기하고 재미있다. 예전에는 불안했던 다름이 새로운 경험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굳이 내가 다른 사람들과 같지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남편이 나와 달라서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되고 이런 나를 떠나지 않고 버텨준 그에게 의지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아이에게는 엄마인 내가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아빠와 다양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커나갈 것이라는 것도 확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가족이 뭔지도 알게 되었다. 본가에서 외웠던 가족이라는 용어가 아닌 서로 주고받는 관계하는 가족 말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한지 20년이 넘었지만 3년차 새색시이고 낼 모레면 50이지만 사춘기 아이이다. 이제 시작한 인간관계를 내 인생의 소중한 추억으로 담아내고 싶다. 그래서 10년 후엔 풍요로운 감정을 가진 멋진 할머니이고 싶다는 소망을 해본다.


























28 성격유형론 수업을 마치고.  부모교육반17.06.12
27 위니캇강의를 마치고...  부모교육반17.01.17
26 중간대상  부모교육반16.08.01
25 나의 자아발달  프로이드반15.12.13
24 페어베언의 '도덕적 방어'  페어베언반15.07.28
23 코헛강의를 마치고.  코헛반14.12.23
22 두번의 위니캇 강의를 마치고.  위니캇반14.08.06
21 내가 인간관계를 잘 못하는 이유  위니캇반13.12.31
20 프로이드 강의 후기  프로이드반13.07.26
19 하인즈 코헛 후기  하인즈 코헛반12.12.28
18 페어베언 강의를 마치고...  페어페언반12.07.23
17 이별과 상실(경계선 인격장애)  위니캇반 8.11.12.25
16 라푼젤을 보고나서...  위니캇반 7.11.07.17
15 4년의 상담을 마치고  자유인11.05.17
14 위니컷 수업을 마치고  위니컷반6.11.05.17
[1] [2] 
   

▲ Go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