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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드 강의 후기
프로이드반(rroye@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13년 07월 26일 21:56 1891
1. 분열자리 (애도님)

엄마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한 나는 나를 품어주지 않은 엄마로 인해 스스로를 “사랑 받지 못하는 존재”로 정의 내린 것 같다. 프로이드 수업 내내 나의 존재감이나 자존감의 수준이 이렇게 낮았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으니 말이다.

구강기 초기 상처가 있는 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힘들다. 내가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을까봐 두렵고, 다른 사람을 사귄다는 것이 사용 방법을 모르는 새 기계를 매번 바꾸어가며 써야만 하는 강요같이 느껴져서 달갑지 않다. 그렇기에 나는 항상 사람을 만나기에 앞서서 계획을 세웠던 것 같다. A는 알고 지내는 관계, B는 조금은 챙겨주는 관계 등등, 애초에 선을 긋고 그 만남이 얼마나 되었든 넘지 않았다.

어떤 관계를 매번 새로운 느낌으로 업데이트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공포였나 보다. 이것은 사람과의 이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관계의 지속성을 뼛속 깊이 믿지 않았던 나는 짧은 이별조차 늘 마지막을 준비했었다. 그 이별은 진지함보다는 죽음과 맞먹는 이별과 같은 것이었다. 작은 이별조차도 죽음을 준비해야 했기에 상처를 받기 싫은 나의 만남은 항상 인사 수준이었다. 그래서 나의 소개로 만난 사람들끼리 나보다 더 친해지면 당혹감과 배신감이 따랐던 것 같다.

그러나 무의식에서는 늘 엄마와의 만남과 같은 완벽한 융합에 대한 갈망을 품고 살았기에 남편과의 “적절한” 관계는 나에게 일어날 수 없는 재난과 같았다. 너무도 씩씩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남편이 주는 감정은 나에게는 외로움, 버림받음의 수준을 넘어 학대와 같이 느껴졌다. 또한 나를 철저히 며느리로 대해주는 시부모님도 너무나 배신자 같아서 참을 수가 없었다. 최근까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나의 세상에는 온통 나를 제대로 대접해주지 않는 나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이 나의 가치를 알게 되는 때 그들을 버려버리겠다고 복수를 결심했었던 기억이 있다. 너무나도 외롭고 불쌍했던 나의 모습이었는데… 엄마에게 쏴주고 싶었던 말들을 만만한 주변인들에게 퍼부으면서 나를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받고싶은 사랑은 표현도 못한 채 말이다.

몇 주전, 내 무의식 속에 숨겨진 엄마에 대한 분노의 실체를 재차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났다. 평소에 너무도 마음이 쓰였던 친한 동생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녀는 이제 40을 넘긴 젊은 나이였고 내 아이의 친구인 중학생 딸이 있다. 아직도 처녀 같고, 유난히 예쁜 모습의 그녀가 사랑하는 딸과 남편을 남긴 채 암으로 죽은 것이었다. 어린 딸을 남기고 갈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마음이 참으로 안타깝고,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얼마 후 그 몇 배로 그녀에게 화를 내고 있는 내 모습에서 나의 어린 시절을 대면하게 되었다. 어떻게 자식을 두고 죽을 수 있어? 평소에 건강관리를 완벽하게 해서 어떻게 하든 자식을 키우고 죽어야지. 감히 자식을 세상에 홀로 남겨두고 죽어? 어떻게 그리 이기적이야! 남겨진 자식이 무엇을 겪어야 하는지 알아? 등등 나는 끊임없이 화를 내고 있었다. 나를 혼자 남겨둔 나의 엄마에게.

수업을 들을수록 내 모습이 드러나면서 온몸에 남겨진 흉터들이 보인다. 몇몇 상처들에선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는게 보인다. 하지만 참으로 신기하다. 나의 모습을 인정할수록 나에 대한 사랑이 생겨나는 것 같으니 말이다. 꽤 사랑 받을만한 빈틈들이 보인다. 그리고 기왕 너덜너덜해진 것이니 사랑 달라고 떼쓰다 거절당해도 크게 달라질게 없다는 배짱도 생긴다.

경험만이 나를 변화시키고 발달시킨다는 말에 용기를 내어본다. 여전히 수많은 변수들에 대응할 준비를 미리하고 남편에게 다가가 본다. 남편은 나를 버리고 싶지 않았나 보다. 나를 도와서 따뜻한 가정을 만들고 싶었나 보다. 나에게 사랑을 주어도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엄마의 사랑을 달라고 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어 그도 외로왔나 보다. 새로운 관계 경험들을 해보니 남편과도 살만해 진다. 평생 그리워하던 내 편이, 내 가족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남편과의 살만한 관계는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한 두려움을 축소시켜 주는 것 같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본다. 사람들은 평범하다. 때로는 뜻이 맞고, 때로는 안 그렇다. 그 자체로 받아드릴만 하다. 세상이 나를 버려도 내 엄마만은 내 편임을 유아기때 알았다면 내 삶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을 거라는 아쉬움이 든다.

세상의 사람들과의 만남은 여전히 나에겐 하기 싫은 숙제같이 느껴진다. 하기 싫은 숙제도 해야만 하듯이, 하고나면 공부가 되듯이 일단은 해보면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상처 받을까봐 두려워 유리 옷이라도 입고 싶다. 유리 옷이 깨지면 모두 다치는데…그러나 살갗으로 직접 느끼는 세상은 따스한 햇빛조차도 나에겐 녹녹하지 않다.



2. 의존 (분리개별화님)

내 기억으로 태어나서 오십이 다 된 지금 스스로 생각하고 독립적으로 살았던 시간은 10년 남짓. 결혼전까지는 엄마에게, 결혼후에는 남편에게 나 자신이 의식하지못한 채 참으로 긴세월을 편하게 안정되게 의지하며 살았었다. 내가 남편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알지 못했고 남들이 '너희 남편 참 자상하구나' 하는말에 그런가? 좀 그런가보네... 하며 지냈던 시간들.

그리고 결혼생활중 가장 당혹스러웠던 점은 남편과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때 어젯밤엔 분명히 이렇게하자 결론지어놓고 아침이 되선 딴소리를 하는데 정말 이사람 뭐야? 어제 얘기 다 끝내놓고 변덕이 죽끓는구나. 참 이상한 사람이야 라는 생각에 화를 많이 냈던 기억이 난다. 내가 화를내면 남편의 대답은 "갈등도 못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다른 대안도 찾아보고..." 그런 말들을 이해할수가 없었고 화부터 났다.

"다 결정해놓고... 난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어쩌라구..." 애매모호한 말이나, 결정들을 참을수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상담실을 찾아야만 했던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내자신이 처리를 못하고 판단이 안되서 남편에게 물어보고 이르고 보고하고. 그로인해 아이들과 아빠와의 관계는 나빠지고 악순환의 연속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수준의 나 였던것 같다.

구강기에 걸쳐 문제가 있다는걸 인식하는 순간 문뜩 엄마의 말씀이 떠올랐다. "니가 애기일 때 젖이 모자라서 그렇게 울었는데( 이유도 모른채 있다가 혹시나 해서) 분유를사다 먹였더니 베불리 먹고 울지도않고 잠도 잘잤다고... 니가 너무 소중해서 백일때까지 눕혀만 놨다... 떨어뜨릴까봐 안아주지도 않고..." 헉! 이럴수가... 너무 소중해서 보기만 했다고?

현재의 나는 과거의 엄마 모습인 것 같다. 사랑을 아낌없이 기꺼이 기쁜마음으로 주지만 상대( 우리 아이들)가 원하는방식이 아닌, 소통이 없는, 일방적으로, 내가 내키는대로, 원하는대로 과잉보호에 가깝게 쏟아부은것 같다. 막상 그들은 내게 해준게 뭐냐며.... 사랑에 목말라하고 있는데 서로에게 안타까운일이다.

고착되버린 나의 구강기적 전양가적 감정, 분열의 성격, 아직도 끝나지않은 엄마와의 애착관계등 아직도 넘어야할 산은 많지만 내 노력의 결과가 어떤 것이라는걸 알기에 평생에 걸쳐 나의 리비도 발달에 힘쓸 것이다. 많은 시간투자와 내적갈등을 겪겠지만 이젠 감당할수 있는 힘이 생겼기에 두렵지 않다.



3. 나는 엄마를 재현한다(의사소통님)

엄마는 나를 칭찬해 준 적이 없다. 초등학교 1학년쯤, 몇 달 용돈을 모아 식구들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 온 날도 “필요 없는 것만 골랐네.”하며 시니컬한 반응을 보였다. 칭찬받길 기대하는 나를 묵살하고 “돈 쓴게 아까워서 한숨만 쉰다”고 비아냥거렸다. “물건을 들고 온 게 힘들어서 누워 있다”는 내 말은 엄마에게 들리지 않았다.

엄마는 몇 년 후에도 그 때 일을 엄마식 대로 편집해서 이야기하셨다. 지금까지도 녹음기를 틀어 논 것처럼 엄마의 기억대로 그 때를 추억한다. 엄마는 늘 그랬다. 내가 말해도 엄마식 대로 해석해서 몇 번이고 되풀이해 편집된 스토리를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 어필하면, 대강 거짓말로 덮거나 핑계를 대서 얼버무린다. 그리곤 “별것도 아닌 일에 예민해 한다”며 더 화를 낸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격이었다.

내 부모는 전능한 신이었고, 조금만 잘못해도 비난과 질타를 받아야 하는 나는 나약한 존재였다. 넘어져 무릎이 깨지거나 물을 쏟고 컵을 깨는 어린 아이 실수에도 엄마는 ‘일을 만든다’는 질타를 하고 귀찮아 했다. 내가 커서 엄마의 말을 안 들을 때는 엄마는 죽어 가는 목소리로 아빠나 외할머니에게 도움을 요청 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에는 꿈이나 점을 팔아서 엄마식으로 내 행동을 조정했다. “안 좋은 꿈을 꾸었으니 그 일은 하지마”라거나 “개띠와 닭띠는 상극이다“라고 ”남자 친구와의 궁합이 안좋게 나왔다“고 말하곤 했다.

엄마의 ‘이상한 해석’의 중심은 ‘엄마의 편안’이다. 내가 엄마 뜻 대로 행동해야 ‘착한 아이’가 되고 나를 보고 웃었다. 내 행동에는 내 생각과 감정보다는 ‘엄마가 좋아할까’가 우선시 되었다. 엄마 뜻 대로 여대를 가고, 엄마 마음에 드는 사람과 결혼 했다. 그래야 만족한 미소와 함께 인심 쓰듯 엄마식 사랑(물질적 지원)을 줬다.

가끔 엄마가 들어와서 내 방을 자기식대로 정리하고 나갔다. 내 공책과 옷가지를 보곤 잔소리를 한 바가지하고 사라진다. 내 방 분위기는 주인인 내 취향보다 엄마의 취향대로 꾸며지고 다듬어 졌다. 느닷없는 엄마의 침입은 나를 혼란에 빠뜨린다. 나는 시도 때도 없는 엄마의 침범을 피해 스스로를 내 방에 가두었다. 주인이 불분명한 닫혀진 내 방. 이게 내 마음 상태이다.

커가면서, 엄마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더 튼튼하고 높이 울타리를 쌓았다. 이런 현상은 타인을 대하는 내 방식에서 고스란히 나온다. ‘나를 조정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내 마음을 상대에게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그들이 나를 침범하지 않을 인간임을 시험한 후에 내 마음을 열어 놓는다. 그리곤 그들조차 시니컬한 말투와 도덕적 잣대로 내 방을 쉽게 드나들 수 없게 만든다.

지금 난, 엄마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아들을 ‘나만의 아이’로 만들어 내 생각대로 조정하려 한다. 꿈을 핑계대고 점을 팔아서 남편을 내 마음대로 조정하려 한다. 그래도 안되면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와? 내가 힘든 게 안보여요? 당신이 인간이야? 인간이라면 이렇게 행동 못해.”라며 ‘군림하는 신’이 되서 질타와 멸시를 내뱉는다. 남편이 왜 그렇게 행동 했는 지 생각해 보지도, 들어 보지도 않았다. 나한테 맞춰 준 적 없는 엄마 대신 남편이, 아이가 나를 찰떡처럼 맞춰 주길 원했다. ‘젖 달라’ 보채는 아이처럼 그들의 감정이나 상태는 배제하고 상대가 나에게 즉각적으로 맞추기만을 바랬다.

‘그가 나와 같지 않음’을 탄식하면서 남편과의 불화를 모두 ‘남편의 불성실성’으로 돌렸다. 엄마가 내게 보였던 비아냥 대는 말투와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느낌을 받을 때면 나는 더욱 남편을 갈구었다. 내 정성과 노력을 “그까짓 걸 가지고, 넌 참 할 일 없다”는 차가운 답이나 가정 대신 회사나 시댁이 우선시 되는 날에는 나 혼자 어릴적 분위기에 빠지곤 했다. 어릴적부터 느껴온 ‘밀리는 분위기’, 내 성의를 무시한 듯한 느낌을 받으면 상대에게 질타와 멸시가 나간다.

압도된 내 분위기로 상대를 밀어 내고 또 다시 상대에게 그렇게 행동을 유도하는 것을 이제 알았다. 하지만 내 무의식은 계속 과거를 재현하려 한다. 아직도 난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는 데, 반응이 늦거나, 아이가 즉시 답을 안주면 매서운 말총이 뱉고 싶어 진다.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나는 사랑받고 싶어 하고 동시에 그 대상에게 화내고 질타하는 가학적인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 불안한 내 모습을 볼까봐 완벽한 척, 강한 척 위장한다. 그리고는 ‘그들이 나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하고 불안해져서 또 잘해 준다.

나는 ‘마약 같은 기집애’이다. 나를 끊을 수 없게 그들이 좋아하는 것(명품을 사주거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행동) 것으로 꼬시고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눈총과 말총으로 상대를 짓밟는다. 따뜻함, 다정함, 여성스러움보다는 도덕적 잣대, 완벽함, 규율로 내 식구들을 대한다. 또, 그들의 감정을 읽고 위로한 적이 없다.

내 목표는 ‘상대를 파괴하지 않고 사랑하기’이다. 이제 남편과 아이의 행동을 평가하는 재판관이 아닌, 그의 아내가, 엄마가 되고자 노력 한다. ‘그들의 방식’을 수용하려 한다.
이제는 사랑하는 그들에게 내쳐지는 것이 두려워서 열어 놓지 않았던 내 감정도 보여주려 한다. 내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상대와 소통하기. 나는 이제야 걸음마를 띠는 아이같다. 처음이니 많이 넘어지고 다치겠지. 그렇다고 안할 수는 없다. 오늘도 조심스럽게 상대와 소통하는 법을 시도해 본다.



4. 나의 무의식(성찰님)

프로이드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엔 모든 것이 재미있고 새롭고 나를 돌이켜 생각해보는 것이 깨달음을 얻게 했다. 수업을 들으면 내가 풀지 못했던 문제들의 해답을 하나씩 얻었고 그 답을 문제에 적용시켰을 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수업이 끝나가는 이 시점엔 좀 혼란스럽다.. 내가 나 스스로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든다. 나에게 어떤 문제들이 무의식중에 나타나고 있는지 좀 더 생각하고 정리를 해보아야 알 수 있겠지만 어린 시절 나를 돌이켜 보자면..

어린 시절 엄마는 나를 친할머니에게 맡겨놓고 항상 일을 하셨다. 자라면서 내가 무의식중에 나타낸 문제점들을 본다면 나는 구강 후기에 결핍이 있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나는 남매 중 맏이였고 동생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항상 맏이니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동생을 돌봐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나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도 크셨다. 나는 나의 생각과 의견을 말하는데 지독하게 소극적이었고 부모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안된다고 생각했기에 내가 싫건 좋건 간에 엄마가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했다. 나의 엄마는 강하고 씩씩한 사람이었지만 난 엄마를 안쓰러워했다. 부모나 친구 관계에서 평상시엔 너무 순하고 조용한 사람이었지만 내가 용납할 수 없는 시점에 다다르면 폭력적으로 변했다. 자해를 하거나 소리를 지르고 주변의 물건을 모두 던져버리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부모나 남들이 보기엔 별거 아닌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에겐 좀처럼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다가왔다.

예를 들어보자면.. 대학교 2학년 때 쯤 난 과 친구 두 명과 작업실을 같이 쓰고 있었다. 그 중 한 친구는 우리에게 얹혀 지내는 친구였는데 그 친구가 한 날 밤에 남자 친구 몇 명과 술판을 벌였더랬다. 좀 시끄럽고 했는지 다음 날 건물주인 아주머니께서 나를 불러 주의를 주셨다. 난 그 친구에게 조심해 줄 것을 부탁했고 그 친구는 별일 아닌데 유난을 떤다는 듯한 리액션을 보였다. 그 애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아서인지 난 순간 화가 났고 작업실에 있는 그 애의 물건을 모두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아무도 나를 제지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 때는 그것이 자기표현의 수단이었다. 그나마도 대학생이 된 이후에 표출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엔 내 마음대로 내 결정대로 모든 일을 해나갔다. 굉장히 겁이 많이 났었지만 부모님의 엄청난 반대를 무릅써가며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폭력적으로 나를 표현하는 것은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줄어들었고 반항을 하면 할수록 자유롭게 느꼈던 거 같다. 아마 무의식속에 웅크리고 있던 내 자아가 성인이 되었을 때부터 조금씩 일어서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5. 올가미(독립님)

두 번째 듣는 프로이드이지만 역시 정신분석을 바탕으로 한 부모교육 수업은 참 어렵다. 그렇지만 내 문제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더 구체적으로 알고 이해하게 된 시간들도 있었고, 마음이 놓여지고 풍요로워 짐을 경험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나는 얼마 전 영화 ‘올가미’를 보았다. 영화 초반부터 엄마와 아들 관계가 평범하지 않은....... 연인 같은 느낌........ 엄마에게 아들은 자식이 아니라 남자 같았다. 아들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로 화장대의 물건들을 다 쓸어버리고 주먹으로 거울을 깨버리는 모습,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매운탕을 끓이며 간 좀 봐 달라고 부탁하는 며느리에게 분노에 차서, 도마 위에 올려놓은 파를 난도질 해 냄비에 던져 넣고는 그 칼로 냄비를 휘젓고 씽크대 안으로 날려버리는 모습만 봐도 자신과 아들, 둘만의 행복한 세상을 빼앗기고 아들을 차지해버린 며느리에 대한 증오가 어떠한지를 너무나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자신만 바라보고 살아왔던 아들과 둘만의 행복한 세상을 다시 찾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어머니의 모습.......... 그 시어머니의 모습,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느낌들과 분노가......... 나는 낯설지 않다.

남편이 시댁 식구들을 만나거나 그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 “어쩜 저렇게 자기 식구들만 챙길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곱지 않았었다. 시댁 식구들과 함께 있는 남편은 내 남편이 아니라 남 같이 느껴진다. 낯설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나는 이방인이고 소외되어 있다. 그들이 사라지고 남편과 나만 있으면 나는 너무 행복할거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도 남편이 주말이면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강의도 들으러가고 사람들을 만나러 나간다. 나는 그런 남편을 견딜 수 없어서 나도 모르게 싫은 마음을 온 몸으로 표현하게 된다. 남편이 서재에서 혼자 오랜 시간 책을 읽어도, 인터넷을 하거나 영화를 보고 있는 것도 용납이 안 된다. 내가 버려지고 사랑받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때문이다. 남편에게 연락을 했는데 바로 연결이 되지 않으면 갑자기 큰 불안을 경험하기도 한다. 누가 알 수 있을까? 이러한 마음의 고통을.......

나와 같지 않으면 “어떻게 그럴 수 가 있어?” 하며 격노가 일고, 나와 같지 않은 그 상태를 나는 이해할 수도 견딜 수도 없었다. 뒤돌아보면 그동안의 결혼 생활은 이렇게 갈등과 혼란의 연속이었고, 단 하루도 마음편한 날이 없었다. 나는 늘 남편한테 화가 나 있거나 그 결과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껴져 토라져 있는 날이 많았다. 남편이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 것이 문제이며, 남편 때문에 내가 불행한 삶을 살게 된 것이라고 원망했다.

결혼하기 전에는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집을 나갈 궁리만 하고 살다가,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서 살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남편과의 관계가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 오랜시간 수업과 상담을 통해서 내가 왜 이렇게 불편한 삶을 살아가고, 고통스럽게 갈등하며 살아야 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시간들은 참 힘들었지만 힘든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시댁식구들과 관계의 경험들을 넓혀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을 알아주시는지 시어머니께서도 나를 살갑게 대해주신다. 남편과도 문제가 생기면 피터지게 싸우지 않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도록 적절히 조율해서 해결 할 수 있다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남편과 함께 하지 못하는 시간들이 생겨나면 내가 몹시 불안정해진다는 사실도 알았는데, 그럴땐 다른 방법으로 먼저 남편을 초대해서 내가 안정감을 잃지 않으려는 연습도 해본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일들이다.

이렇게라도 연습해 보고 경험을 바꿔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의 도움때문이다. 값진 것을 배우며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너무나 어린 .. 기억도 나지 않는 시절의 상처와 발달 정지로 나는 매사가 “사랑이야?”, “아니야?”, “ 끝장을 내든지”, “ 말든지 ” 이것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아 온 것 같다. 아직도 나는 모르고 있는 게 너무 많고, 안되고 있는 것들이 많은 걸 분명히 알지만 예전보다 삶이 훨씬 편해졌다. 다음 학기엔 또 어떤 것을 발견하고 노력하는 나를 만나게 될까? 기대가 된다.



6. 엄마와 나(분리님)

나는 보수적이고 도덕적인 부모님의 1남 1녀 중 막내로 오빠와 함께 많은 사랑과 관심 속에 키워졌다. 엄마는 교사로 15년 이상을 재직하시다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오빠와 나의 교육에 집중하시기 위해 학교를 그만 두셨다. 엄마의 교육열은 매우 뜨거워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만 세 살 무렵) 피아노를 배웠고 그 후로 계속해서 바이올린, 미술, 무용 등 많은 조기교육을 엄마의 뜻에 따라 배워냈고, 음악 쪽에서 꽤 두각을 나타내어 유치원 때는 온갖 콩쿨에서 수상을 하였다. 엄마, 아빠에겐 항상 자랑스럽고 착한 딸이었고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하기 위해 계속해서 공부와 피아노를 열심히 하는 모범생으로 자랐다. 엄마는 몸이 약하셨고, 그런 몸으로 오빠와 나를 위해 3 년간 매일 새벽 기도를 가서 3000 배를 하실 정도로 자식을 위해 헌신하였다.

결혼을 해서도 직장을 다니는 나의 형편 상 친정 바로 옆에 살면서 엄마의 도움으로 육아와 가사를 무사히 해낼 수 있었다. 엄마의 사랑과 헌신에 무척 감사하면서도, 항상 너무나 도덕적인 엄마의 성격 탓에,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나를 무겁게 짓누르는 듯한 부담감에 불안하고 우울한 감정이 자주 나를 괴롭혀 왔던 것 같다. 나중에 내 딸을 키워주시면서 내가 어렸을 때의 이야기를 하시던 중 기저귀를 뗄 때 여름철에 해야 한다고 생각하셔서(난 12월 말이 생일이다) 한 돌 반쯤부터 아주 열심히 강하게 시키셔서 가을 전에 배변훈련을 무사히 마쳤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 땐 나도 무심히 넘겼었는데 아마도 그 때(항문기 후기) 고착이 되었던 듯 싶기도 하다.

항상 모든 일에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마음이 놓이는 성격 탓에 학교 다닐 때는 준비물이나 과제를 잊은 적이 거의 없고 학용품이나 준비물을 여분으로 사다가 재어 놓아야만 마음이 편안했었다. 그런 성격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서 집안의 식료품이나 생필품들, 그리고 아이들의 속옷 류까지도 미리미리 세일 때 충분히 사서 저장해 놓고는 흐믓해 했다.

우리 아이들의 과제나 학습도 미리미리 점검해서 잊은 것이 없나 확인하고, 늘 주지시키며 어쩌다 과제나 준비물을 안 챙기면 늘 그런 성격이 이해가 되지 않아 화를 냈다. 그런 나의 성격을 우리 큰 아이(딸)은 어렸을 때부터 못 견뎌 하며 자기가 유치원 때부터 자기 일은 자기가 한다고 나를 밀어 냈고, 그런 강한 성격 탓에 딸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늘 자신의 힘으로 자립을 해 왔다.

반면 작은 아이(아들)는 나의 불안감과 완벽주의를 그대로 닮아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 미리 조바심을 내며 모든 걸 다 준비해 나가려고 노력 중이나, 능력이 모자라는지라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하고 자기자신을 늘 자책하고 우울해 한다. 그리고 나는 좁은 공간이나 어두운 곳을 병적으로 못 견디는데, 예컨대 비행기의 창가 쪽 좌석도 숨이 막히는 듯하여 진땀이 나고, 홍콩에 살 때 메이드 방이 매우 좁고 햇빛이 들지 않았는데 그 방에 들어가면 마치 갇혀버릴 것 같아 늘 바로 뛰쳐 나오곤 했다. 또 MRI 검사가 필요했는데 그 좁고 답답한 공간에서 30~40 분 간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에 검사 자체를 포기했었다.그 검사를 하다가는 차라리 미쳐 버릴 것 같았다.

그런데 네 살 무렵에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이 엄마께 아직 피아노를 배우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으니 내년쯤 시키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 드렸다는데 그 말에 엄마가 매우 실망하여 나를 어두운 다락방에 가두고 피아노를 열심히 배울 거라고 대답할 때까지 거기서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내가 막 울면서 열심히 하겠다고 꺼내달라고 한 후 정말 놀랄 만큼 빠르게 피아노를 배워나갔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나의 이 폐소 공포증이 그 때 기인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기억 나지도 않는 그 옛날의 이야기지만 그 때의 공포가 지금도 답답하고 좁은 공간, 어두운 좁은 공간에 지금도 살아 남아서 아직도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 같다.

너무 고맙지만 지겨울 만큼 나를 구속했던 엄마의 사랑을 벗어나 오랜 기간 연애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한 후 나의 인생은 많이 바뀌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해도, 무슨 말을 해도 항상 내 편이 되어 주는 남편에게서 나는 무한한 자유와 해방 감을 느꼈다. 언제나 내 곁에서 나의 다 자라지 못한 미성숙을 넓은 마음으로 이끌어 주고 내가 도와 달라고 손을 내 밀면 항상 다가와 주는 남편 덕에 내 의지대로 살고, 꿈꾸는 삶이 생겼다. 그러면서 엄마의 간섭과 지나친 요구에 분연히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내 의견을 똑똑히 밝히게 되면서 엄마는 다소 섭섭해 하고 내가 못 되졌다고 하시면서도 이제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받아 들이시는 것 같다.

나도 이제 내 자식들을 떠나 보낼 준비를 하며 불안과 집착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 수업을 통해 좀더 나를 깨닫고 나의 문제점을 찿아 좀더 건강한 엄마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7. 친밀감(융합님)

지금도 그렇지만 난 젖 가슴에 항상 집착을 한다. 왜 그러는지 무엇이 이렇게 집착하게 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끊임없이 만지기를 원했다. "엄마가 일하느냐고 바빠서 증조할머니에게 너를 맞기고 하루에 한번 젖 물리기가 힘들었다"라는 말을 듣고 어렴풋이 그래서 내가 집착하나? 그런 정도로만 생각 했지 그로인해 발생한 나의 문제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프로이드 수업을 들은 후 왜 내가 원가족과의 친밀감을 느끼지 못했는지(사랑받고 자랐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음), 그로인해 지금의 내 가족 특히 아이들에게 미안한, 해서는 안될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할때가 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정말 사랑의 감정인지... 사랑이라는 것을 잘 모르는 나는 나와 닮은 아이를 보면서도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가 맞나? 라는 생각을 할때가 있다. 정말 나는 엄마가 맞나? 남편이 어느 순간 나를 버겹게 생각한다는 것을 느낄 때 영락없이 나는 남편에게 모든것을 다 해 주길 원하고 좋은 남편, 아빠이기를 한없이 요구할 때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끝도 없는 의존, 그러면서 원하는 것을 받지 못할때 내 안의 시기심은 남편뿐만 아니라 나까지도 망쳐버리곤 한다.

생각해보면 학교, 직장안에서도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 너무도 어려웠다. 그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 나는 나쁜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항상 힘들고 어려워도 부탁을 다 들어주고 혼자시간에 또 바보같은 나를 탓했다. 그러면서 누군가 또 부탁을 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이러한 일들은 항상 반복되어 나를 힘들게 했다. 반면에 내 일에 대해서는 부탁도 못하고 혼자 끙끙댔다. 내 일을 부탁하는 것도 남들에게 누가 될까봐 걱정을 한다. 그러면 난 또 나쁜 사람이 된다.

수업을 듣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을 이렇게 키운 엄마를 원망하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나는 엄마에 대해 어떠한 분노나 화난 감정을 느낄 수 없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생각나는 것이 없다. 엄마에게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해서 일까? 단지 화가 나는 것은 지금의 내가 아이들에게 잘 못한 것만 보인다는 것이다. 양육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엄마로 인해 나에게 나로인해 우리 아이들에게 영향이 미쳤다라는 그런 원망이 안든다는 것이다. 어쩌면 엄마를 나쁘게 생각하면 나는 나쁜 딸이 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아이들 양육에 있어 어찌 다뤄야하고 상황에 따라 어떻게 해 줘야하는지에 대해 나는 전혀 알지 못하고 아무런 생각이나지 않는다.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답을 알려달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고 정답인듯이 아이들에게 적용하고 그것에 맞지 않으면 나쁜, 말을 안듣는 아이라 생각해 항상 비난하고 아이들 탓으로만 돌렸다. 그런데 이것이 투사를 하는 엄마의 전형적인 모습인것을 알고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언제나 나에게 맞춰 통제하고 조종하고 이것이 나였던 것이다.

사실 이 숙제를 하면서도 내가 상징계의 사람이 아니기에 글자 그대로만을 보고, 남들이 이해 못하는, 나만의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써 내려가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무의식이라는 것,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고 언제 밖으로 튀어나와 나와 타인을 힘들게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달라지려는, 더 많은 나에 대한 성찰과 수업을 통해 행동의 변화가 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8. 오뚜기 인형(사과님)

「가족과 식사를 하고 식당에서 나와 걷다보니 내가 치마를 식당에 벗어놓고 그냥 걷고 있었다. 너무나 창피해 그 식당으로 다시 달려갔다. 그곳에 젊은 청년 3명이 식당 앞에 서 있었다. 나를 보고 마구 무어라 말하며 나의 손과 어깨를 때리고 꼬집었다. 너무나 아팠다. 손끝이 에리고 아팠다. 그곳을 도망 쳤다. 한창을 뛰어서 어느 건물에 들어갔다. 건물을 들어가 보니 너무나 큰 벽으로 둘러 쌓인 방이 나왔다. 나가고 싶다. 가슴이 답답하다. 그런데 나갈 수가 없다. 너무나 높은 벽은 창문도 높았다. 그 방에는 소녀들과 귀신들이 있었다. 귀신들이 들어와 나를 괴롭힌다. 나가고 싶어 나는 커튼을 타고 창문으로 향했다. 뛰어내리자! 아 뛰어 내릴 수 있겠다! 아 그런데 다시 보니 건물은 10층보다 더 높은 건물이었다. 발밑에 보이는 차와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았다.... 결국 갇혔다.」


요 근래 여러 가지 일들과 관계로 맘과 머리가 복잡했다. 아! 그래서 이런 꿈을 꾸었나 보다..... 자문하며 일어나자마자 금방 꾼 꿈을 적었다. 내 인생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나는 늘 지난 30년 지기인 친구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건다. 그 친구는 내 마음보다 더 정확하게 나를 알고 내가 망설이는 길을 명확히 가르쳐 준다. 나는 그 친구가 이 세상에 없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물론 30년이라는 세월을 넘길 때는 우린 수 많은 산을 넘었다.

요즘 복잡한 마음으로 친구를 귀찮게 했다. 친구도 여러 가지 일들로 맘이 복잡한데... 나 때문에 더욱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참다 참다 전화를 거니... 아니나 다를 까 전화를 안받고 피한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 너도 나이도 많으니.. 너의 일은 너가 알아서 처리하라는 것 같았다. 너무나 서운했다. 아니 서운하다 못해 그래 다시는 너하고 연락 안할 거야.. 하며 완전히 돌아 섰다. 늘 그랬다. 지난 좋았던, 고마웠던 일들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 그냥 내 마음은 그래 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다시는 연락도 보지도 않겠다... 라고 나쁜 마음으로 좋은 마음을 온전히 다 뒤 덮었다.

나는 엄마에게도 동료 선생님들에게도,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까? 미워할까?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아니 너는 정말 나쁜 사람이야! 를 무한 반복한다. 그래서 그들을 힘들게 만든다. 그 친구가 예전에 이런 말을 했다. 너를 사귀는 게 정말 너무 힘들었다고... 너를 너무 좋아해서 참고 견딘 거라고...., 이 말은 남편도 늘 하는 말이다. 나는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왜 그러는 지... 배운것에 의하면 구강기 후기 고착이라서.... 하지만 정말 늘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고,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나의 잣대에 올려놓고 이리 재고, 저리 재고를 수천 번 한다. 아무리 잘 해 주었더라도 한 순간에 모든 것은 끝이 난다. 잘해준 기억이, 사랑해준 기억이 하나도 생각이 안난다.

예전에는 한번도 깨달지 못했지만 ...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그냥 잔 바람에 흔들리는 오뚝이 인형 같다. 그래서 슬프다. 관계나 환경에 그냥 흔들린다. 중심은 나인데... 너무나 약하다. 그래서 중심을 잡으려고 내식으로 해석하고 결론을 내린다. 사실이 아닌 주관적인 힘 조절이다. 요즘은 나의 가족, 친구들에게 마음속으로 미안하다는 사과를 한다. 이렇게 흔들거리고 중심 약한 내 옆에 늘 있어주어서 감사하다고 ... 사과를 한다.



9. 오디푸스 컴플렉스(이상화님)

나는 늘 주변에서 어른이나 상사가 어떤 일을 시키면 그 앞에서는 “네”하지만 돌아서서는 앞에서 차마 하지 못한 말대꾸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머리를 맴돌고 결국 편집된 생각 끝에 ‘더러워서, 잘났으면 자기가하지...’ 같은 말들이 자동적으로 떠올랐고 “니가 이거는 제일 잘 하니까 고생스럽더라도 부탁한다”는 상사의 말에는 ‘얼마나 부려먹으려고 갑자기 띄워주고 야단이야’, 시댁 어른이나 친정 부모님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그 내용이나 어른이 말씀하신 의도가 수용되기보다는 그냥 말대답 안하고 적당히 대답해야 얘기가 길어지지 않고 빨리 끝나니까 언제 끝나나 시간만 가늠하면서 앉아있거나 했다. 이건 모두 의도하고 한 건 아닌데, 머리로는 ‘이건 아니지’하면서도 늘 어른이나 상사 등 손윗사람에게 저절로 일어나는 나의 자동적인 패턴이었다. 이런 내가 너무 싫었는데 프로이드 수업을 통해 나의 이런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인 행동이 왜 그런것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번 수업을 통해 나의 오이디푸스적 문제를 생각하다가 이제야 이해가 되는 어릴적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어릴 때 부모님의 부부싸움 후 꼭 엄마에게 “너 때문이야, 우리집에 너만 없으면 부부싸움할 일도 없고 집도 조용했을텐데 너 때문에 하루도 집이 조용할 날이 없어”라는 엄마의 분노에 찬 말을 고스란히 들어야했다. 막연하게 저런 나쁜 엄마에게서 태어난 내가 너무 불쌍하다는 자기연민에 늘 속상하고 억울하기만 했는데 어떤 기억이 나면서 그렇게 맞추고 싶었던 퍼즐의 일부분이 맞춰졌다. 그랬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 엄마는 어떻게 살았는지를 물어보는 내 질문에 한 달에 2-3번 집에 들어오는 무책임한 아버지의 큰 딸로 언제나 동생 돌보고 집안 일하느라 초등학교도 못나오고 성질 사나운 엄마의 매를 피해 산으로 도망다니기 일쑤였단 어릴적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이렇게 자란 엄마는 늘 아빠를 무시했다. 아빠에게 쓰레기 버리기, 마늘 까기, 재봉하기 같은 사소한 일들을 시키고 아빠가 어떤 실수를 하면 “저 못나서 못하는 거지”라는 말로 언제나 평가 절하하는 말들로 기를 죽였다. 그런데 아빠가 엄마한테 못 참는 한 가지는 애를 때리거나 욕하거나 소리 지르는 등 아이에게 함부로 하는 것은 절대 참지 못하셨다. 그런데 엄마의 화풀이 대상은 언제나 큰 딸인 나였고 그로인해 부부싸움이 일어났으니 엄마 입장에서는 싸우는 원인이 언제나 ‘나’라고 생각했을 수 밖에.... 게다가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 엄마 입장에서는 언제나 딸 바보인 아빠에게는 분노가 그리고 자식에게 시기심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국 살기 위해서 나를 그렇게 사랑해주고 예뻐해주시는 아빠랑 소원해지며 아빠를 무시한 채 엄마에게 많은 의존을 하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나는 엄마처럼 살아지고 있었다. 그래서 난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못 배우고, 돈도 없고, 부모님도 안계셔서 엄마처럼 내 맘대로 쥐락펴락 할 수 있을 것 같은 남자랑 결혼을 했다. 그런데 남편은 내 아빠랑 다른 사람이었다. 현실을 다루는 직업인이라 ‘현실’과 ‘그 현실 속 관계’ 또한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고 ‘그 현실 속에서 관계하는 사람 사이의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나는 내맘대로 안되는 남편이 너무 힘들어서 남편보고 지방으로 발령 받아서 가고 주말부부를 하는 게 어떨지를 진지하게 제안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점차 깨닫고 남편에게 나의 문제에 대해서 솔직히 용기 내어 얘기하면서 feedback을 받는 요즘 나는 내 남편이 내 아빠와 다르다는 점과 우리 아이들의 아빠라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아직도 내가 내 문제를 해결하고 자유로워지려면 갈 길은 아직 멀고 힘들겠지만 그래도 내가 조금씩 조금씩 자랄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것과 살면서 온통 결핍 천지였던 내 내면 안에 점점 감사한 점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기쁘다.



10. 의존(신뢰님)

"김경혜씨는 지나친 의존성이 문제가 아니라 지나치게 의존을 못한다는게 문제 인 것 같군요." 라는 선생님의 지적에 짧은 찰나 생각이 잠깐 멈추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한번도 그런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의존을 하는게 문제지 의존을 못하는게 문제라니... 의존을 못하는게 아니라 의존을 안하려는 거 아닌가? 독립적인 성인이 되려면 당연히... 꼬리를 물고 반박하려는 생각이 이어지다가 문득 그랬었나, 그게 나의 문제였을까, 그럴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를 정반대 방향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팩트는 똑같은데 다른 해석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늘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잘 컨트롤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고 믿었다.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실수하면 반성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성숙해간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은 나혼자 해나가야 한다고...

결국 자유의지가 중요한 거라고 믿는 나는 어른들 틈에서 자란 조숙한 아이였던 것같다.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과 일의 영역이 점점 넓어지면서 내안에서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 내가 책임지고 보살펴야 하는 일이 이렇게 많은 걸까? 나는 늘 참고 양보해야만 하는 걸까? 내가 너무 이기적인 사람인가?" 때론 이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나약하게 느껴지고 누군가에게 떠맡기고 피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이렇게 또다른 나는 굉장히 의존적이고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하는 아이였다. '아' 이게 원래의 '나'였구나. 근데 그건 내가 생각하는 멋진 내가 아니다. 그래서 거꾸로 이렇게 독립적인 사람이 되려고 그런 나를 극복하려고 애쓰면서 살았던 것이다.

난 원래 의존을 못하는 사람이란다.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니 오히려 많은 일들이 수월하게 설명되는 것도 같다. 사소하게는 집안청소도 쉽게 도우미에게 못맡긴다던지, 신혼시절 남편이 설겆이 해주는 것도 고맙게 받지 못하고 타박하여 이날까지 한번도 해주지 않게 만든다든지, 맏며느리에게만 너무 많은 일을 시키신다고 불평하며 해왔던 제사며 집안의 모든 대소사까지 사실은 내가 남이 하는 걸 못미더워 지레 떠맡게 된 그야말로 사소 고생을 하는 경우였다는 것을. 그러다 보니 다들 내게 의지하고 미루고 내 일은 점점 늘어나서 나는 당연히 힘들고 버거워지고...

그렇구나 남에게 의존을 못하다는 것은 내가 잘나서 의존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완전히 믿지 못하는 거였구나.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말이 없는 사람이지만 한결같이 나를 사랑해준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늘 뭔가 미진한 구석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나때문이었구나. 내가 남편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고 나를 다 맡기고 그의 사랑을 오롯이 있는 그대로 다 받아주지 못했구나. 오히려 그에게 의지하고 싶은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마치 그에게 종속되어 나의 독립성이 훼손된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럴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그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줄 사람이었는데 내가 그러지 못했다는 깨달음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내가 나를 갑옷속에 감추고 살아왔나보다. 아쉬웠다. 이제 두 아이는 다 자라고 우리 둘만의 시간이 많다. 이제는 부모와 함께 한 시간보다 더 오래 같이 살아온 이 사람에게 나를 솔직하게 내보이고 믿고 의지하려고 한다.



11. 구강기(융합님)

아는 언니의 권유로 수업을 듣게 되면 나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말에 주저없이 선택하여 듣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모든 것을 충족시켜 준 그래서 부족함 하나없이 생활할 수 있게 해 주신 나의 부모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부모상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결혼해서도 주위에서 인정하는 완벽하고 책임감 강한 남편을 만나 중2 딸과 5살 늦둥이 아들을 두며 15년 가까이를 살았다. 그러나 결혼해서 40여년 가까이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작은 고민하나 없이 살아오면서 항상 마음 한 구석에는 이런 편안함과 행복이 언제까지 일까하는 막연한 불안함이 늘 있어왔다.

수업을 듣게 되면서 나와 주변의 관계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남편에게서 아빠의 모습이 보이고 나에게서 엄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놀라움과 혼란스러움이 동시에 생겼다. 나의 부모와 남편, 나 모두 애착관계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춘기를 겪고 있는 딸아이를 보면서 나의 사춘기를 되돌아보면 나는 왜 이런 자연스러운 발달과정을 부끄러워하며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나의 경우에는 구강기에 고착되어있는 것 같았다. 우선 나를 돌아봤을 때 40대의 어른이지만 여전히 아이처럼 타인에게 의존적인 경향이 많은 것 같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아빠가 해결하겠지, 남편이 해결하겠지. 내가 아닌 누군가가 어떻게든 문제와 고민을 해결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고 사는 것 같다. 늘 남편이 하는 말이 “넌 다 알아서 해주는 사람있어서 참 편하겠다. 좋겠다. 나도 나중엔 너처럼 살고싶다”라는 말을 하곤했다. 나의 무의식속에 구강전기에 충족되지 못한 구강성욕에 대한 결핍과 욕망이 역동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남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선하고 인정받는 사람이지만 나의 무의식안에서는 상대방을 나의 일부로 착각하고 원하는, 쾌락을 마음껏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의존적인 성향이 잠재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나는 다른 사람과 융합하고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편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상대방에게서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어한다. 그래서 더 대상관계에 집착하는 것 같다. 사람좋다라는 말을 많이 듣지만 그 이면에는 충족되지 못한 나의 욕구가 무의식속에 잠재해있는 것 같다. 나의 무의식 속에 구강기의 욕구가 제대로 발휘되지 않아 혼자 분리될까봐 곁에 누가 없으면 못 견디는 성격이 되어 누군가와 늘 같이 있고 싶고 관계를 맺고 하는 것 같다. 지금은 나아졌지만 손톱을 심하게 물어뜯는 습관이 있었는데 분리불안을 상쇄하기 위한 한 방편인 것 같다.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지가 가장 먼저 염려가 되어 “싫어요, 못해요, 아니해요”라는 거절이나 부정의 말을 공격성으로 사용하지 못한다.

과제를 부여받고 나서 많은 고민을 했다. 처음 수업을 시작하면서 느꼈던 흥분과 설레임에 수업을 들으며 조금씩 나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혼란스럽고 창피하기도 하고 좌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변화하여 나의 부모와 남편, 아이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지가 고민해야 할 숙제이다.


12. 메아리(용기님)

나는 부모님에게 안부전화 한통 돌리는 것이 왜 그렇게 힘이 드는걸까. 전화 했을때 엄마의 반응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과거의 무의식때문에 오늘도 난 수화기를 외면한다. 제대로 내 생각을 마음을 표현하고 살았다면 부모에게 이렇게까지 닫힌 마음이 되진 않았을텐데... 결국, 누구든 표현하지 못한 죄다.

좋은 마음으로 어쩌다 전화를 해도 엄마는 마치내가 내 가족을 굶겨 죽이는 사람처럼 오늘도 한 숨만 짓는다. "밥은 제대로 해먹고 사니?" 가벼운 마음으로 한 안부 전화일뿐인데 이내 나는 힘이 빠진다. 엄마는 왜 나에게 에너지를 주지 못하는걸까. 돈이 전부가 아니였음에도 마치 풍요롭지 못하게 키운것만이 죄인 듯 생각하는 엄마. 나를 키웠던 방식에 대한 원망. 원망이 지나고나면 용서와 이해가 찾아올까?

프로이드 수업을 들으니 난 구강기에 고착된 사람이다. 내가 정한 좋은것과 나쁜것의 틀안에 갇혀 모든것을 생각하고 아이가 그 틀을 벗어난다는 생각이들면 가차없이 보복을 했다. 또, 다른 사람이 나에게 친밀하게 다가오면 그사람이 좋은지 나쁜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생각하느라 항상 뒤로 물러서고 도망치고 뒤늦게 후회를 했다. 생각에만 빠져서 행동을 할 여유가 없다.

이런 감정들이 엄마로 인해 내가 그랬듯, 내 아이를 항상 짓누르고 있다는걸 수업을 듣고 깨닫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닫힌 사람인지... 엄마와의 전화 통화에서 느껴지는 내 답답한 감정들을 아이도 똑같이 느끼며 살았을텐데... 표현도 못한채 아니 손톱을 뜯으며 온 몸으로 표현해도 못알아듣는 엄마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이제 아이에게는 양가감정이 아닌 중간지대를 주고, 나를 몰라준다고 공감만이라도 제대로 해달라고 분노의 대상으로만 보이던 남편도 나와같은 감정이 있음을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엄마에게만은 풀리지 않는 감정은 어찌 처리해야할지... 어쩌면 이것도 구강기에 고착된 행동일까....

수업을 들으며 항상 무언가 나를 억누른듯한 느낌이 표현의 부재였다는걸 알았다. 무거운 닻을 단듯 가라앉아만 있어서 무엇을 얼마나 잃고 있었는지도 몰랐던 삶. 아직도 난 뿌연 안개속을 헤메듯 살고있다. 하지만 수업을 들으며 안개속에 희미한 길이 보이는건 희망이다. 이제는 가볍게 살고 싶다. 현실적인 노력속에 깃털을 단듯 가볍게! 이것이 단지 희망만으로 끝나지 않기를!.




28 성격유형론 수업을 마치고.  부모교육반17.06.12
27 위니캇강의를 마치고...  부모교육반17.01.17
26 중간대상  부모교육반16.08.01
25 나의 자아발달  프로이드반15.12.13
24 페어베언의 '도덕적 방어'  페어베언반15.07.28
23 코헛강의를 마치고.  코헛반14.12.23
22 두번의 위니캇 강의를 마치고.  위니캇반14.08.06
21 내가 인간관계를 잘 못하는 이유  위니캇반13.12.31
20 프로이드 강의 후기  프로이드반13.07.26
19 하인즈 코헛 후기  하인즈 코헛반12.12.28
18 페어베언 강의를 마치고...  페어페언반12.07.23
17 이별과 상실(경계선 인격장애)  위니캇반 8.11.12.25
16 라푼젤을 보고나서...  위니캇반 7.11.07.17
15 4년의 상담을 마치고  자유인11.05.17
14 위니컷 수업을 마치고  위니컷반6.1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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