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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즈 코헛 후기
하인즈 코헛반(aaa@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12년 12월 28일 09:21 2573
부모교육 후기


1. 애도 - 시리우스님.
엄마가 돌아가신지 한 달이 되었다. 그러나 내게 엄마는 아주 오래전 돌아가신 분과 같았다고 할 수 있다. 엄마의 부재에 이토록 익숙한 기분이 드는 것을 보면 말이다. 병원에 계실 때 진솔하게 들려주시던 말처럼, 엄마는 어릴 적 자식들에게 별 생각이 없으셨다. 내게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다. 내가 엄마 안중에 없는 딸이었다는, 이 말을 이렇게 툭 던져놓기까지 50년이 걸렸다니. 허탈함을 넘어 우울을 넘어 이제는 그저 홀가분할 뿐이다.

엄마에게서 사랑을 느낄 수 없었던 내 감정은 진실했던 것이다. 이게 엄마와 나의 관계의 정체이다. 그건 엄마의 잘못이 아닐지 모른다. 엄마가 살아온 역사가 있기에. 어쨌든 엄마에게서 내게로 온 사랑은 없었다. 참으로 잔인하지만 그게 진실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도덕에 어긋나는 일이란 점에 비추어본다면 엄마에게 미안하지만 말이다. 그 진실을 삼키기 어려웠으나, 한동안 우울이 왔으나, 꿀꺽 넘기고 나니 마음이 가벼웠다. 진실 아닌 것을 어깨에 둘러메고 사는 일이 고달팠다, 진짜.

아이러니칼하게도, 엄마와 나 사이에 사랑이 없었다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자 엄마를 내 엄마로서가 아니라 한 여자로, 한 인간으로 객관화하는게 가능해졌다. 엄마에게서 사랑과 이해를 받고 싶은 딸의 헛된 기대가 포기되자 어쩔 수없이 엄마에게서 떨어져 나온 기분이랄까. 이런 식으로 엄마와 분리되는 사람도 있는가보다. 수업시간에 배운대로 엄마와의 좋은 애착경험이 있은 뒤 애도 끝에 분리가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겠나. 애착 경험 자체가 없었음에도, 있지도 않았던 것을 있었을 것이라 믿고 살기위해 회피 분열의 마비된 삶을 살던 나는, 엄마와 내가 애초부터 각자 떨어져있었음을 벼락처럼 깨닫고서 엄마에게서 벗어났다.

이런 분리가 내게 일어난 것이 지난 5월경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기까지 반년 정도나마 그렇게 엄마에게서 온전히 떨어져 나와 엄마를 남처럼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다행이긴 했지만, 당연히, 서글픈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지 않는 사랑에 대한 복수심에서 생겨났을 엄마에 대한 경멸, 분노, 가치절하의 감정이 사라져버렸다는 점에서, 그래서 이젠 엄마에 대해 아무런 억한 감정이 없게 되었다는 점에서, 분명 그것은 기쁜 일이었다. 50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게 한 엄청난 사건이었다. 벼락같은 그 분리는, 상담과정에서 자꾸 겉도는 나를 억지로 버텨내던 선생님을 밀어내고 싶은 마음이 고조에 달했을 즈음 꾼 꿈과 함께 왔다. 평생을 모든 것에서 겉돌아 온 내 무드의 근원을 알려준 그 꿈을 만나게 해준 선생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처음엔 그 벼락이 느닷없이 그렇게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그걸 내게 쥐어주기 위해 선생님이 무진 애를 썼다는 것을 그 이후의 시간 속에서 서서히 깨달아갔다. 엄마와 딸이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관계를 못 가져본 나를 안쓰러워해준 것도 뒤늦게 실감했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하염없이 애증의 남편에게만 가있었기에 더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 해도 딸인 나와 엄마가 더 가까이 만날 수 있었을거라는 희망은 없다.

엄마는 그저 자신을 보호해줄 엄마나 아버지 같은 대상을 남편에게서 원했던 ‘아이’였던 거다. 그 욕구가 얼마나 강력했던지 엄마의 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자신을 배신하는 남자의 사기극이 보이지 않았다. 그 ‘설계자’의 한판 놀음에 엄마와 우리 삼남매는 아주 순진하게 당해주었다. 돌아보면, 남편에게서도 자식에게서도 자신의 헌신에 대한 보답을 못 받은 허기를 안고서 가장노릇, 아내노릇, 엄마노릇을 다 해내느라 몸이 바스러졌을 그 ‘아이’가 너무 안쓰럽다. 이런 ‘아이’를, 딸인 나는 하늘같은 엄마로 생각하고 바라봤으니 딸이라는 내 존재가 엄마에겐 참으로 무거웠겠구나 싶다.

나 역시 엄마에게서 채워지지 못한 근원적 허기를 안고 성장을 멈춘 ‘소녀’ 상태에서 애 엄마가 되었기에, 남들 다하는 엄마노릇 아내노릇이 그렇게 힘겨웠을 것이다. 그랬던 내가 엄마한테, 왜 엄마는 날 위해 살지 않았냐고, 왜 내가 원하는걸 주지 않았느냐고 분통을 터뜨리고 원한을 품을 수가 있는걸까 싶다. 엄마에겐 엄마를 성장하지 못하게 만든 엄마의 엄마가 있었을테니 말이다.

늘 부족한 마음에 타들어간 엄마의 가슴에서 나온 검은 한숨. 그렇게 우울했던 엄마 옆에서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몰랐을 어린 나의 막연함. 호구지책으로 택해야했을 자기 철수와 고립과 환상의 누적분이 지금의 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엄마의 그 검은 한숨을 내 가슴에 들이 쉬었다가, 엄마에 대한 불쌍함을 담아 맑은 한숨으로 내보낼 뿐이다. 하늘에다 대고 기도할 뿐이다. 천주님, 하느님, 부처님, 하늘과 딸의 모든 신령님. 우리 엄마를 부탁드립니다. 단지, 자기 하나 버텨낼 힘도 없는 주제에, 엄마라는 무거운 이름에 짓눌리면서도 날 버리지 않은 것. 내게는 전해지지 않았던 사랑을 주려고, 온 몸을 부셔 일하고 돈 벌고 밥해주고 공부시켜주고 윤나게 집을 가꾸고 그래서 번듯한 울타리를 만들어 준 것. 그것에 깊이깊이 감사드릴 뿐이다. 정말 감사할 뿐이다.

엄마의 입장이 되어본다는 것. 딸의 입장에선 알 수 없었던 엄마의 사정을 고려해본다는 것. 어린 내가 끌고 다니던, 나이 든 내가 놓지 못하던 많은 무거운 감정들을 떨어내준다. 병실에서 들려주던 엄마의 어린 시절 새댁시절 이야기들을 짜깁기해 처음으로 엄마의 인생을 거꾸로 되돌려보면서, 그렇게 생명력 넘치고 그렇게 이쁘고 그렇게 살림 잘하던 젊은 여자를 이렇게 거친 언사와 깊은 이마주름의 험상궂은 노친네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 자기안의 악마가 한 짓일까, 잘못 선택한 상대 때문일까. 분명한 건 이제 내가 엄마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엄마가 미워서 통째로 엄마를 버렸었다. 아마 엄마의 좋은 부분도 함께 버려졌을 것이다. 미움이 사라지자 차가운 내 가슴의 빙하들이 깨져나간다.

내가 날 좀 좋아하게 됐다. 내가 여자인 것이 좋아진다. 남자들이 전보다 좋아 보인다. 나를 위해 애써주는 남자들이 진짜 마음으로 고맙다. 별거중인 남편이 장례식장에 와 나를 위로해줬다. 그 위로를 진심으로 느꼈다. 지금껏 그가 해준 것에 고마움을 표현했다. 결혼생활에서 좋았던 것, 내 딸의 좋은 부분들 중 많은 것이 내 쪽에서 온 것 같지는 않고 당신 덕분인 것 같다고도 말해줬다. 굳은 표정이 풀려가는게 느껴졌고 술이 달게 넘어갔는지 몇 병을 혼자 비우고도 멀쩡하게 이야기 나누다가 갔다. 얼핏 우리는 신혼시절의 그 때 마음으로 돌아간 듯했다. 문제는 꽝꽝 얼어붙어있던 내 마음이었나 보다.

‘엄마는 바로 나’라고 수업시간 내내 후렴처럼 들었는데, 엄마를 미워하면 나를 미워하는 것이고 엄마를 이해하면 내가 이해되는 것이리라. 내가 밉지 않고, 더 나아가 좀 좋아지기 시작하니까 내 딸도 좀 더 귀엽게 보이고 남자들도 품어주고 싶은 기분이 든다. 친구들과 지인들을 만나도 따듯한 마음이 우러난다. 그래서일까 그들 역시 자꾸 내게 연락들을 하고 내 집을 찾아오고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만나서 밥을 사준다. 친구가 찾아오면 전엔 좀 고상한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배우나 가수의 노래를 들려주고 콘서트 실황을 보여주고 그의 매력을 설명해댄다. 이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소녀 적에 할 짓을 못해봐서 지금 이 나이에 이러는거라고들 하는데, 곰곰 생각해봐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소녀 적의 나는 좋아하는 것에 꽂혀 열광하던 쪽이었으니까. 나는 내가 소녀 시절의 마음을, 그 생생한 마음을 되찾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점차, 상대가 날 주책이라고 생각하든 말든 어떤 생각이나 기분이 들면 그때 바로 메시지를 보내거나 말해버린다. 훨씬 살기가 편한 것 같다. 수업에서 들은 말대로 해볼 참이다. 죽어도 나가서 죽자고. 사람들과 연결되자고. 훨씬 따듯해지니까. 선생님과 공부를 시작할 시점의 나는 추워서 뻣뻣하게 긴장한 한 어린 아이였다. 2년 가까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아이의 주눅 든 표정이 사라져갔고 급기야 지난봄부터는 부지런히 성장하여 지금은 대학생 정도로 큰 기분이다. 어쩌면 난 아직도 엄마자격이 안된 상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철없는 엄마란 것도 있는 법. 이 시절을 딸과 함께 좀 어수룩하게 보내다보면 곧 지혜로운 엄마의 품격을 갖출 날이 올거라 믿는다. 딸이 다 큰 성인이 되어서야 엄마가 되는 역설. 이게 인생인지 모른다.



2. 성격진단에 대한 자기성찰 - 아크투루스님.
이번 코헛 강의 중 성격에 대한 자기진단을 하게 되었는데, 의존성 성격, 망상성 성격, 경계선 성격등의 항목이 내게 해당되었다. 진단 결과를 보면서 왜 내가 이런 성격를 가지게 되었는지 되돌아 보았다.

나의 어린시절을 생각해보면, 내가 느낀 감정들은 주로 외롭고 무섭고 두렵고 서러웠다. 이 부정적인 감정들을 느끼면 불안해서 누군가와 함께 이 감정을 나누고 싶었지만 얘기할 상대가 없었다. 나에게는 감정적으로 기댈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셨는데다가, 오빠와 언니가 있었지만 엄마는 오빠와 언니도 늘 평가절하하셔서 그들에게도 내 마음 기댈 수 없었고, 사실 누구에게도 믿음이 가지 않았다.

엄마는 늘 불안해 보였고 화를 잘 참지 못하셨다. 나의 엄마는 약하고 어린아이 같으셔서 부정적 상황이나 감정을 조용히 인내하지 못하셨다. 그래서 엄마에게 나의 힘든 마음을 얘기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까지는 그저 엄마의 기분을 살폈던 것 같고, 중학교 이후부터는 내 감정이 점점 무뎌지면서 타인의 기분을 잘 느끼지 못하는 둔감한 내가 되어 갔다.

나의 자기대상인 내 엄마의 유아적 모습과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나는 어른으로 성숙하지 못하여 유아적 의존성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 것같다. 40년을 넘게 살면서 나는 누구의 의존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지 못했다. 무엇보다 내 두아이의 의존을 받아주지 못하고 내 감정을 가장 일순위로 살아왔던 것이 제일 후회스럽고, 내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남편에게 성인으로서의 상호적 의존이 아닌 나만을 돌봐주기 원했던 나의 유아성이 부끄럽게 생각된다. 또한 동료와 친구간에도 내 의존을 받아줄 것 같으면 내게 맞는 사람, 아니면 맞지 않는 사람으로 치부해버렸던게 뉘우쳐진다.

어릴때부터 나는 늘 엄마에게 감정을 도무지 용납받을 것 같지 않아서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었는데, 엄마와의 신뢰로운 경험 부족으로 인해 타인을 믿을 수 없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사람관계에서도 비언어적 메시지를 읽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미리 읽고 예측하며 불안해 한다. 수업 중에 선생님께서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말고, 보이는 것만 봐야 한다고 했는데 말이다.

믿을 수 없는 것 때문에 나는 상당히 불안하고 걱정이 많다. 신뢰로운 대상경험을 한 사람하고라도 제대로 지속적으로 하게되면, 나의 불안감이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된다. 남편과 내 아이들, 내 주변인들에 대한 믿음이 생겨날수록 내게 더 안정감이 찾아올 것이다. 이번 코헛강의까지 2년 반의 수업을 듣고, 1년간의 상담 과정을 통해서 나의 자존감이 많이 향상되었다. 내 엄마가 봐주었던 내 모습은 비록 하찮고 초라했지만, 수업을 통해서 내 엄마가 본 내 모습이 내가 아니라고 알게 되었다. 이제는 의존적 성격으로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며, 불안에 떨면서 살고 싶지 않다. 방어로서의 삶이 아닌, 성숙한 삶을 위해서 앞으로도 사람관계에서 노력하며 배우고 나를 성찰하며 살아 갈 것이다.



3. 유리아이 -베가님.
나는 프로이드를 시작으로 코헛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 소중한 강의를 들으면서 늘 안개속을 걷는 것 같았다. 마음이 무겁고 저 멀리 무엇인가가 보일 듯, 알 듯 하면서 그냥 멍했다. 때론 슬프기도 했고, 때론 부모님에게 화가 나기도 했고, 또 시간이 지나자 부모님과 나의 가족들이 다 이해되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요번에 들은 코헛 강의는 나를 더욱 이해하게 만들었다. 왜 내가 작은 일에 격노하고 화내고 힘들어 하고 많이 공허했는지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래도 왜 그랬는지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어렴풋하게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를 들어갈 쯤인가... 가족들과 백화점으로 외식을 갔었다. 나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많이 화가 나서 부모님께 때를 썼다. 무엇인가를 원했는데... 부모님이 들어 주시지 않았다. 지금도 그것은 생생히 생각이 난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느낀 것이다. 그러나 엄마, 아버지는 모르셨다. 결국 아버지는 화가 나셔서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 한복판에서 나에게 따귀를 때리셨다. 그 어린 아이에게...

가만 생각하니 집에서도 자기의 성을 못 이겨 어린 아이에게 보이면 안될 화를 많이 내셨다. 밥을 불어 먹으면 복이 달아난다고 화를 내다 못해 상을 엎으시고 그런 아버지가 미워 대들면 손이 올라오셨다. 늘 나는 분노가 많았다. 화가 나는 일이 생기면 그 화를 내다 못해 끝까지 진이 떨어질 때 까지 냈다. 하물며 초등학교 저 학년때 옆 짝궁이 새로 산 공책을 만져 구겨졌다고 집에 와서 그 공책을 깔깔이 찢고 그 아이와 같이 찍은 단체 사진을 찾아 그 아이의 얼굴만 찍어 놓았다. 나는 늘 작은 것에 격노하고 나에게 작은 무시의 화살을 던진 사람은 마음으로 수차례 공격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늘 내마음속에 담고 있는 언어가 “두고봐! ”라는 말이다. 그 말은 예전에는 나에게 함부려 하거나, 맘에 안들거나, 힘들게 하는 사람, 아니 때론 친한 친구들에게 했던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내안에 나쁜 나에게 늘 투사하는 말이었다. 작은 눈빛에도, 손짓에도, 말에도 깨지기 쉬운 약하고 나쁜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랬는 지.. 나는 어려서부터 내 연민이 많았다. 다른 사람은 중요하지 않다. 모든 중심이 나에게 있었다. 유리 같은 그 아이가 깨질까봐 누가 돌을 던질까봐, 누가 화살을 쏠까봐,,,나는 그 아이를 보호해야 했다. 예전에는 그것이 자존심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지금도 나는 그 유리 아이를 지키려고 매우 예민하고 민감하다. 그래서 부모님보다, 남편보다, 아이들 보다.. 그 유리 아이가 더 중요하다. 그 아이의 감정이, 마음이 늘 먼저이다. 그 아이를 달래 주려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사고, 먹고 한다. 때론 나의 아이들이 나를 화나게 할 때도 그 유리 아이와 나의 귀한 아이들이 싸움을 한다. 그리고 그 유리 아이의 마음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코헛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유리 아이만 발견한 것이 아니다. 내 아버지 안의 달램을 받아보지 못한 화가 난 작은 아이를 만났다. 너무나 그 아이가 불쌍하고 애처로웠다. 격노를 지닐 수 밖에 없었던 나 같은 아이가 보였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내가 어릴 적 아버지는 철없던 나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달램을 못 받은 아이가 보채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아버지 안에 힘들게 그 아이를 키우고 달래준 엄마가 있어 너무나 감사했다. 또한, 10년이라는 세월을 부부로 살면서 나의 유리 아이를 달래준 나의 자기 대상이 되어준 남편에게 너무나 감사하다.

비롯 아직은 나의 유리 아이가 작은 눈빛이나 시선에 깨질까봐 불안하지만... 예전처럼 불쑥 불쑥 그 아이가 화내거나 울진 않을 것 같다. 유리는 깨지기도 하고 강한 불에 닿으면 녹아내리기도 하지만 때론 아름답고 맑기도 하다. 그래도 이젠 그 유리 아이를 감싸주는 나 자신도, 남편도 있으니깐 덜 화나고 불안하다. 진정 바라는 것은 그 아이가 이젠 유리가 아이고 더 단단한 아이로 성장하길 바란다.



4. 낮선 부모님 -카펠라님.
코헛 강의가 끝나갈 무렵 너무도 멀고, 참으로 낯선 엄마와 아빠를 만나게 되었다. 나를 품어주지 않은 나쁜부모였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만 5세가 넘도록 부모님과 함께 살지 못했던 나에게는 그저 엄마 또는 아빠라고 불리는 분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우리 집이라고 해서 간 곳에는 이미 “가족”이 있었다. 부모님과 언니들, 오빠는 서로에게 익숙해 보였고 나는 다르지 않도록 눈치껏 행동하며 애써야만 했다. 나의 머릿속에선 o, x로 나뉜 상자가 있어 관찰한 모든 것들을 나누었던 것 같다. 이런 특별한 경험은 세월과 함께 무의식 속에 봉인되어 버렸고 추억이 되어 살아가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나의 빈약한 자아는 여지없이 “결혼생활”이라는 과정에서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엄마의 부재로 인하여 찬사받지 못한 나의 과대자기는 남편의 평범한 눈빛에 분노하기 시작했고, all good과 all bad로 모든 것을 나누어 저장해야만 안정감을 들었다. 타인의 상황이나 처한 현실은 고려대상이 될 수 없었다. 모든 행동에는 이미 정답이 정해져 있었고 그 답과 다른 것들은 평가절하되었다.

엄마 관심의 중심이 되어보고 싶었지만 이미 엄마에게 나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항상 있었고, 그런 일들로 인하여 갑자기 등장한 나는 잊혀지기 일쑤였다. 나는 존재감을 인정받기 위해 늘 엄마를 살피고 그녀가 원하는 것을 미리 하고자 노력했다. 그녀가 만족해야만 기뻤고 칭찬을 듣고자 기다렸다. 이런 나의 노력은 오히려 챙기지 않아도 스스로 잘하는 신경 쓸 필요 없는 막내로 엄마에겐 각인되었나 보다. 엄마의 “말썽을 피워야 신경을 썼지”라는 말로 되돌아 오니 말이다.

신뢰할 수 없었던 엄마의 경험은 건강한 의존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부탁을 하지 않으면 해주지 않는 남편에게 늘 분노했으니 말이다. “엄마=나”를 채워보기 위해서 “남편=나”를 요구했었다. 동시에 엄마에게 거절당한 경험은 이미 거절당한 나를 부탁하기에 앞서서 준비해 두었다. 나는 특별하다는 유아적 생각에서 내려올 수가 없어서 남편의 이유 있는 거절조차 소화가 되질 않았다. 거절을 준비하고도 거절을 받아들일 수 없는 모순이 나에게는 있었다.

“나는 나다”라는 튼튼한 자아가 없어서 남을 통해서만 나를 느끼고자 했기에 늘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타인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가 없어서 조그만 변화에도 긴장하고 불안해 했었다.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의존할 수 없는 나였기에 스스로 보호하기 위하여 물건을 통해 삶을 통제하였었다. 모든 사물에 위치를 부여하고, 순서를 부여하고, 의미를 부여했다. 나의 법칙을 깨는 사람은 나를 존중하지 않는 거라 여기며 분노도 했었다.

이러한 과거의 나의 모습으로 내 성격을 진단해 보자면, 나는 강박성 성격, 의존성 성격, 회피성 성격, 분열성 성격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망상성 성격, 히스테리, 자기애성 성격, 경계선 성격 등에서도 나의 모습이 들어있었다. 정신분석 수업과 상담은 나의 분노대상이 남편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었다. 내가 미치도록 벌주고 싶은 엄마가 있었고 이것을 방치한 아빠가 있었다는 것을 찾아내 주었다. 드디어 부모님과 묶인 끈을 끊어내고 내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었다. 너무도 외롭고 사랑받는게 힘들어서 늘 혼자가 제일 편하다고 느꼈던 나에게 누군가와 함께 나누며 사는 것이 훨씬 의미있고 행복한 삶이라는 것도 깨닫게 해주었다.

생각해 보면 엄마로부터 찬사 받지 못한 나의 과대자기와 결핍을 토대로 완벽하게 환상에서 만들어낸 이상화된 부모상은 힘든 나의 삶의 원인이 된 것 같다. “부모를 나쁜 존재로 만들 수 없어 스스로를 사랑 받지 못할 존재로 여긴다”는 말은 오늘도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나는 사랑받기 충분한 존재이기 때문에…



5. 나는 자기애자 -스피카님.
코헛의 강의를 듣고 어떤 것으로 과제를 할까? 고민하던 차에 3년 전 남편과 내가 아이 문제로 인해 어느 상담기관에서 상담을 받았던 그 당시 상황과 나의 태도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상담 전 검사를 했고 검사 결과를 듣던 날이었다. 배우자에 대한 불만이 무엇인지를 묻는 상담자의 말에 남편은 “남편으로서 저를 하나도 존중하지 않아요. 제가 다림질을 해 달라거나 단추를 달아달라고 하면 못한다고 세탁소에 맡기고 저더러 찾아오라고 하고, 공공기관에 가서 서류 하나 못 떼고 부동산 가서 필요한 정보 하나 못 알아보고 다 저를 시키면서 저더러 아는 게 없다고 무식하다고 그래요. 그리고 저한테는 뭘 고치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하면서 제가 뭐 하나 지적만 하면 앉혀놓고 설교를 하면서 제가 틀렸다고 화를 내거나 자기 변명만하면서 곧죽어도 잘못했단 말을 안해요. 자기는 그렇게 하면서 만약 제가 잘못했다고 안그러면 아주 난리가 나요.

자기나 처가 식구가 필요한 걸 금방이라도 안 알아봐주면 닦달을 하면서 제 동생이 아는 병원을 소개해달라거나 뭘 부탁하면 신중하게 골라야한다는 등 이유를 대면서 함흥차사예요. 제가 방 좀 치우라고 해도 대충대충, 옷에서 먼지를 떼어달라고 해도 대충대충하고 제가 참다가 화를 내면 울고 삐치고, 애가 문제가 있는 것도 제 탓이고 장인, 장모가 서운한 것도 다 제탓이고 저만 아주 나쁜놈 취급을 받으면서 살아요. 저는 정말 너무 힘든데 이런 말을 하면 저만 못나서, 제가 무능해서 그런거라는 말만 하니 어떻게 살겠어요.”라고 얘기했다.

거의 정확하게 남편의 이야기가 기억이 되는 이유는, 남편 입에서 저렇게 나를 폄하, 비난하는 말들이 엄청나게 쏟아져나왔다는 사실에 분노를 참을 수 없어서 일부러가 아닌데도 하나도 안 놓치고 그 내용이 거의 다 기억이난다. 그런데 공동상담을 마치고 개별상담 시간에 상담자가 “남편은 만성 우울증도 있고 부인에게 의존하고 싶어하고 사랑받고 싶어하고 겉으론 강해도 여리고 여성스런 부분도 많고 가정을 지키고자 나름 노력하는 좋은 분이시네요. 그런데 검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남편이 현재 성능면에서 시속 50km로 가는 분이시라면 부인은 시속 100km 정도로 간다고나할까? 남편이 부인에게 맞추려고 속력을 더 내면 차가 고장이 납니다. 그런데 100km로 가는 사람은 잘 따라오나 확인도 할 수 있고 속도를 줄이면서 맞춰줄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 결과를 듣고 남편에게 인간적 연민이나 측은지심을 느끼기보다 ‘어디서 내가 나보다 한 참 못난 걸 남편이라고 결혼을 해서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사나?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못 배운 사람이랑 결혼하는 게 아니었는데 내 팔자야’라고 암울해하면서 그 뒤로 몇 달 간 남편에게 냉담히 대하면서 우울해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 부모교육을 통해 내가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나자 3년 전 일이 떠오르면서 당시의 남편이 느끼는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자기애가 강한 이기적인 사람이었는지, 그래서 그로인해 우리 남편이 얼마나 힘들었을 지가 이해가 되며 너무 부끄럽고 창피하다. 또한 내가 상담결과에 그렇게 절망했던 이유 역시 이해가 된다. 나는 남편을 동등한 ‘부부’라는 생각 대신 제 2의 엄마라 여겨 모든 걸 내 편한대로 남편을 옆에 두고 남편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받기만 하려 한 사람인데 그런 날 보고 남편을 이해하고 남편에게 맞춰주라니... 내 무의식에서 얼마나 저항이 강했을까?

상담 후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이 조금씩 되면서 남편과의 관계가 너무나 달라져있다. 나와 남편은 저녁 식사 시간이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가 된다. 둘이 반주를 곁들여 하루에 있었던 일과 아이들, 주변 이야기를 하는데 주로 내가 듣고 남편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많이 준다. 나는 이제 다림질, 바지 밑단 수선, 단추달기 등을 내 손으로 하고 세탁소에 가지 않는다.

또, 남편이 같은 음식은 두 번 다시 안 먹고 냉동 음식을 싫어해서 매끼 새로 반찬을 하는 편인데, 처음엔 직장 생활에 아이 돌보기까지 너무 힘들었지만 이것으로 남편이 존중받고 있는 느낌에 행복하다는 얘기를 듣고 가끔씩 속에서 ‘시팔, 짜증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엄마랑 떨어져 산 이후로 1년 6개월째 나는 요리솜씨가 느는 소소한 기쁨과 다양한 응용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으며 매끼 새로운 반찬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예전엔 남편이나 아이들이 요구할 때 나도 모르게 ‘귀찮아’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이제는 ‘귀찮다’라는 생각이 드는 빈도가 줄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더러운 걸 내가 왜 해?’하고 나는 변기청소나 쓰레기버리기 같은 집안일은 하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내가 더러우면 남편이라고 안 더럽겠나’ 싶은 생각에 내가 먼저 하는 편이다. 물론 나는 위에 나열한 일들을 아주 쿨하게 하지는 못하고 때때로 공치사를 아직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러나, 남편이 나의 공치사에 대해 “그러게, 고생했어, 잘 먹었어”라고 말해주면 또 힘이난다.

이런 일상에서의 작은 변화와 더불어 내가 달라진 게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 남편에게 감사하며 남편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예전엔 남편의 단점만 눈에 들어와 못 살겠다고 여겼던 때가 많았다. 함께 있으면 싸우니 차라리 다 잘 때 늦게 들어오는 게 날 도와주는 거라고 여겼던 마음이 지금은 밖에서 몸 쓰며 힘든 일 하는 사람이니 어디 다치지 않고 무사히 들어오는 게 고맙고, 예전엔 아들 둘과 뒹굴며 유치하게 노는 게 수준이 똑같다고 마음에서 계속 무시가 일어났는데 지금은 놀이를 통해서 아이들에게 규칙을 가르쳐 주고 힘으로 버텨주면서 놀아주는 남편에 감사하다.

또 직업상 현실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인데 예전엔 남편 말을 들으면 남편이 만나는 사람들이 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니 나한텐 절대로 안 일어날 일들을 왜 저렇게 얘기하는 지 이해가 안되어 경청 대신 무시했던 내용이 지금은 ‘세상이 그렇구나, 그런 인과 관계로 저런 사건이 일어났구나, 현실보다 더 한 소설은 없구나’하고 듣고 배우는 일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남편이 싸울 때 내게 “너는 책장의 책만 많이 읽으면 뭐하냐? 그 많은 책을 읽고도 내 말 뜻을 이해 못하니.. 너 저 책들 다 읽은 거 맞냐?”라는 말을 많이 하면서 답답해했는데 이제는 그 답답함의 정체도 알게 되었다. 그런 바로 내게 ‘상징’을 이해하는 능력이 없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었다. 지금 나는 부모교육을 통해 상징을 이해하는 능력이 조금씩 생겨서 예전처럼 말꼬리를 잡고 싸우는 일이 많이 줄었다. 이 역시 나의 부부 생활을 달라지게 한 요인이다.

이런 변화들은 한동안 성장이 멈췄던 내 안의 ‘나’가 조금씩 자라면서 일어난 것이다. 나는 내면의 어린아이인 ‘나’가 다시금 자랄 수 있어서 너무 뿌듯하고 기쁜 한 편, 어떤 관계가 좋아질수도 더 나빠질수도 있는 그 중심에는 ‘나’가 있다는 현실적 사실에 ‘나’를 아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다시금 느끼며 과제를 마친다.



6.사랑받고 싶은 어린 아이 -페가수스님.
내 안에는 사랑받고 싶어하는 어린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 세상에 분노해 있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체물을 찾고 있다. 아이, 남편, 쇼핑…. 이들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난 아이처럼 떼를 쓰고 그들을 질시했다. “왜 이것뿐이 못하냐.”고. 하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날 좀 봐 줘. 날 좀 안아줘. 사랑해 줘.”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나 대신 완벽하게 읽어줄 사람을 갈구한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반영받은 적 없는 나는 엄마에게 칭얼대거나 엉겨본 적이 없다. 화가 났을 때, 엄마에게서 위로받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런 나는 칭얼대는 내 아이를 볼 때마다 짜증이 난다. “나도 엄마한테 못 받았는데 내가 너한테 해줘야 하니?. 엄마도 혼자서 해결했으니, 너도 알아서 해.” 이게 내 마음이었다. 신혼 초에는 남편을 갈망했고, 아이를 낳고는 아이에 올인했다. 매일 늦는 남편은 내 대체물이 될 수 없슴에 아기를 ‘텅빈 나’를 채워 줄 자기대상물로 삼았다. 아이는 내가 피곤하면 자야 했고 엄마인 내가 답답하면 몸이 아파도 밖으로 나가 놀아야 했다.
내 감정대로 움직여야 엄마인 나에게 덜 혼날 수 있었으니까. 내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격노했고 격노한 사실조차 잊고 다시 그를 함입했다. 텅빈 나는 내 마음안에 대상을 함입하려는 욕구가 강하다.

상대에게 나를 보여주지 않고서 그들이 나를 맞춰 주지 못함에 격노한다. 내 불안이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모르고 언제나 환경과 상대만을 탓한다. 그들 앞에서 난 완벽한 사람인 척 해야 하기에 내 감정을 솔직하게 말해 본 적도 없다. 나는 점점 작은 것에도 폭발하고 더 완벽한 척 했다. 내 요구는 말하지 않고 그들이 나를 맞춰 주지 못하는 것에 화를 냈다. 또, 난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신기하게도 듣기 싫은 것은 안 들리고, 하기 싫은 것은 잘 잊는다. 그리곤 오리발이고 남 탓을 한다. “난 안 그랬어.”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도리어 상대에게 화내고 질시하고 발뺌하고. 결국 내가 사랑하고 관계하고 싶은 이들이 내 곁에서 떠나게 만든다.

난 진짜 내 모습이 들킬까봐 두려웠겠지. 텅빈 나, 어리고 유치한 나, 완벽하지 않은 인간임을 알고 그들이 나한테 실망할까봐 두려웠다. 할머니와 아버지의 과한 침범들이 울타리 역할은 되었지만, 나를 불안하고 폐쇄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내 안의 불안을 소화시키지 못해서 나 역시 그들처럼 밖으로 폭발하고 주변인들에게 전염시킨다. 사랑을 넣어줘야 할 아들의 마음에 내 불안과 격노를 넣고 불안하고 화내는 아이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야만 감당할수 없는 내 불안과 격노가 좀 가라 앉으니까. 난 내 모습이 어떻게 잘 못되었는 지, 어떤 식으로 해결 할 지 모른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바른 평가인지도 구분가지 않는다. 또 왜곡하고 있는 건 아닌 지.
다만 다른 사람의 행동을 통해 과거 내 행동들이 떠오르고 진심으로 반성하는 일들은 잦아 졌다. 부부 싸움(친구 남편이 바람피다 들켰다)후 아이와 친구들 앞에서 남편을 욕하고 때리고….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수십번 전화하는 친구 모습을 보면서, 과거 내가 보였다. 남편에게 이유를 묻지 않고 소리 지르고 마치 난 신처럼 남편을 측정했고 남편은 내 앞에서 죄인이 되어 묵비권을 행사했고 더 밖으로 나돌았다. 내 감정 표현이나 조율은 없이 경멸과 환멸로만 그를 대했다. 그게 내 대화법이었다.

그 때 내 마음을 표현 하였다면. 무감각한 남편도 조금은 달라졌을 텐데. 먼저 말하는 게 지는 게 아닌데… 왜 자존심이라 생각했을까. 조금씩 무미건조한 내 삶에 감정이 생기기 시작한다. 아이를, 남편을, 엄마의 감정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고 그동안 정리가 되지 않았던 내 안에 감정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품었던 상처가 이해로 바뀌면서 그들을 놓아줄 수 있었다. l 첫 남자친구: ‘이년동안 연애했지만 결국 바람나서 딴 여자에게 간 인간’으로 야속해 했다. 그러나 나중에 안 사실이 그에게 결혼이 부담스러울 정도의 큰 빚이 있었다. “결혼하면 어디에 집 살거야?.” “집이 있어야 결혼할 수 있겠지?” “그럼, 집 없이 어떻게 살아?.” 그러는 나와 결혼 할 자신이 없었겠지. 결국 편하게 상대할 수 있는 여자를 선택한 거였고.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어서 스스로 물러난 거다. 그는 나를 만나는 동안 최선을 다했다. 그도 돈때문에 나와 헤어지는 게 힘들었을 거다.

아버지; 갑자기 아버지를 떠나 보내고 난 많이 힘들었다. 울타리가 없어진 불안함. 내 감정을 정리하지 못하고 엄마의 엄마 노릇에 버거워 했다. 내가 다 무너질 것 같은 느낌에 난 아버지를 놓을 수 없었다. 그 동안 내 가정은 서서히 붕괴되고 있었다. 슬픈 내 감정을 몰라 주는 남편이 야속했고 아버지같이 행동하지 않은 남편이 싫어 졌다. 아버지가 나간 자리를 채워 주지 못하는 남편, 이건 내 착각이었다. 난 남편에게 내가 힘들다는 것을 말해 본 적도 없고 남편 역시 자기 세상에 빠져 남의 기분을 살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빠져 나간 자리에 남편이 채워 주길 바랬지만 그에게 말조차 한 적이 없었다. 내 욕구를 읽지 못하는 남편을 더 밀어내고 난 더 못된 아이로 심술 부렸다. 이것은 어른의 소통법이 아닌데. 지금도 알면서 내 행동은, 말은 어느새 또 어린애가 되어 심술을 부리고 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내 감정을 알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그들과 소통하지 않고 나만의 생각으로 대해 왔다. 내가 그린 그들의 모습이 진짜 모습이 아니라 내 눈에 비친 모습이라는 것을 알았다. 왜곡된 눈과 귀를 가진 내가 사람들을 제대로 본다는 게 쉽지는 않다.

게다가 내 안의 불안과 스스로 만든 상처들이 비슷한 분위기만 되면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하지만 감정을 표현하고 인정하면 내 안의 불안이 사라지고 상대와의 관계가 조금씩 나아짐을 느낀다. 서서히 그들과 부딪치면서 조율하면서 다시 세상에 나가려 한다.



7. 나의 의존성 -카스오페아님.
수업중 성격 자기지단 질문지를 작성하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남에게 의존하는 유아와 같은 의존성이 내안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은 것이다. 중년이 된 나이에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을 지기보다 끊임없이 남의 눈치를 보고 동의를 얻어야만 안심이 된다. 남의 의견을 하나의 생각으로, 의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절대적인 명령으로 받아들이게 된 이면에는 나의 무서운 엄마가 자리하고 있다.

나에게 엄마란 무조건적 사랑을 베푸는 존재가 아니라 맘에 들지 않으면 최소의 도움마저 거부할 것 같은 존재였다. 집안이 어렵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늘 돈 걱정을 해야했고, 최소한의 의식주를 소비하는데 대해 죄책감을 가져야 했다. 어린 내가 할수 있는것은 엄마에게 순종함으로서 내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뿐이었다. 혹시나 버려질것 같은 공포와 싸우면서 주변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나는 오직 순종하고 복종함으로서 엄마에게 나는 약한 존재라고 백기를 내보임으로서 생존을 이어갈수 있었다. 하지만 충족된 경험이 없어 산산조각이 난 과대자기를 안고 생존을 하기위해 복종을 할때 나는 항상 수치감에 시달려야 했다. 지금도 나는 외부 현실을 그대로 읽지 못하고 나에게 가해지는 위협을 피하기 위해 상대방에 맞추고, 의존하고는 후에 분노하곤 한다.

어른이 된 나에게 스스로 살아가는데 가능한 경제적 여유와 위협적인 엄마가 없으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웅크리고 있으면서 안전감을 느끼고 싶을때가 많다. 안전을 위협받는다고 느끼는 나에게 정서적 관계와 자아실현은 먼 얘기로 느껴진다. 아직도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하는데 많은 힘이 들지만 주변사람들과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 어른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해본다. 그래도 요즘은 상담과 교육을 받으며 내가 느끼는 안전감이 사실은 무력감이고, 남과 진정한 관계를 해야만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을 수 있음을 경험해 가고 있다.



8. 분노 -프로키온님.
작은 일에, 아무렇지도 않은 일에 자꾸 화가 난다. 막 소리 지르며 뭔가를 때려 부수고 싶다. 혼자서 누군가를 두들겨 패는 상상을 한다. 그래도 화가 안풀리면 아이의 꼬투리를 잡아 아이를 두들겨 팬다. 왜? 날 화나게 하니까... 날 우습게 보니까.... 내 기분이 나쁘니까...

얼마 전까지의 나의 모습이다. 아무도 나를 화나게 하지 않았는데 난 화가 났다. 그들이 나를 기분 나쁘게 하고 우습게 알고 비웃는 것 같았다. 난 나 혼자만의 상상의 세계에서 판단하고 행동하고 혼자서 물러났다. 이렇게 혼자서 처리하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았다.

수업시간에 받은 성격자기진단 질문지를 보니 난 회피성과 망상성, 경계선에 해당되는 사항이 많았다. 수업시간에 들은 내용으로는 악성자기애가 심한 것 같다.

나는 어릴 적 기억이 별로 없다. 이것도 원초적 방어기제일까? 불행했던 나의 과거를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우리 엄마는 항상 바쁘셨다. 아이가 네 명이나 있었지만 식모언니에게 우리를 맡기고 엄마는 자기만족을 위해 항상 밖으로 나갔다. 원치 않는 셋째 딸로 태어난 난 엄마아빠의 관심을 얻기 위해 엄청 애썼다. 하지만 반응은 별로... 공부 잘하는 큰 딸과 야무진 둘째 딸, 그리고 그토록 원하던 아들에 가려져 난 나의 존재감이 없었다. 언니와 남동생 사이에 파묻혀 거저 크는 아이였다. 난 항상 엄마아빠의 눈치를 보며, 상황을 살피며 그들이 원하는 행동만 하려고 애썼다. 그래야 버려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부모님의 말을 안듣거나 부모님이 나를 놀리고 싶을 때 나에게 했던 “너, 홍은동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니 엄마 거기 있어...!”라는 말이 나에겐 진짜로 느껴져 무서웠다. 나를 한 소중한 아이로 품어주고 인정해 주지 않았던(그들은 했다고 할지도 모른다...) 부모님 때문에 나는 내 자아를 찾거나 관리하지 못하고 남이 나를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에 철수와 회피를 반복하며 사람을 사귀어도 좋은 관계로 진전을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곤 나 혼자 나에게 모멸감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죽도록 미워하며 혼자 복수의 상상을 하며 나의 불안을 달래왔다.

또 내가 받아보지 못한 대접을 누군가가 받거나 누리는 것에 대해서 시기심과 질투심으로 그 사람이 얄밉고 부러웠다. ‘네가 뭔데...? 왜 넌 이런 대접을 받는데...? 무슨 복으로...?’ 그 질투의 화살이 심지어 우리 아이에게도 향한다. ‘넌 운도 좋다! 근데 왜 내 마음에 들게 못해? 이렇게 누리고 살면서...!’ 부럽기만 할 뿐 충분히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된다는 생각에 동조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다. 내 가치관이 생각이 바뀌면 내가 무너질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을 공유하지 못하고 부정하며 나를 지켜내려고 애써왔다.

하지만 이제 조금은 나의 분노와 불안을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여지껏 왜 그렇게 불안해하고 분노하며 살아왔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남을 부러워하고 그들과 공유하는 것이 결코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솔직하게 드러내고 살아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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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위니캇강의를 마치고...  부모교육반17.01.17
26 중간대상  부모교육반16.08.01
25 나의 자아발달  프로이드반15.12.13
24 페어베언의 '도덕적 방어'  페어베언반15.07.28
23 코헛강의를 마치고.  코헛반14.12.23
22 두번의 위니캇 강의를 마치고.  위니캇반14.08.06
21 내가 인간관계를 잘 못하는 이유  위니캇반13.12.31
20 프로이드 강의 후기  프로이드반13.07.26
19 하인즈 코헛 후기  하인즈 코헛반12.12.28
18 페어베언 강의를 마치고...  페어페언반12.07.23
17 이별과 상실(경계선 인격장애)  위니캇반 8.11.12.25
16 라푼젤을 보고나서...  위니캇반 7.11.07.17
15 4년의 상담을 마치고  자유인11.05.17
14 위니컷 수업을 마치고  위니컷반6.1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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