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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베언 강의를 마치고...
페어페언반(rroye@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12년 07월 23일 20:27 2160
1. 존재에 대한 두려움 (헤라님)
존재에 대한 두려움… 나이든, 나와 살고 있는 사람이든 언젠가는 모두 사라질 것 같은 절망… 두려움으로 가슴 졸이는 얇은 유리 같은 내 인생에 분노를 느낀다. 어느 개그맨이 말했듯이 이 더러운 세상, 내 맘대로 하나 되는 것 없는 이 더러운 세상에 화가 나 미치겠다.

원치 않던 임신으로 나를 배 속에 넣고 있는 열 달 내내 불행했던 엄마는 병원에서 딸인 내가 나온 순간, 다시 한번 할아버지로부터 버림받으며 고통으로 나를 길렀다. 나는 세상에 잉태된 존재의 시작부터 나쁜 영향을 주는 미천한 존재였던 것이다.

멜랑꼴리아 영화에서 우울하고 무표정한 저스틴의 얼굴은 평소 내 삶에서 느끼는 적막한 고요 무드와 너무나 일치한다. 또한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일어나지지 않는 무력감에 축 늘어져 있는 주인공의 이미지 컷은 존재감 없이 (그냥 척하며 살지만) 허탈함에 억지 웃음으로 사는 내가 언제나 접촉하고 싶었지만 절대 소통되지않는 엄마를 생각나게 한다.

나의 존재가 형성되는 순간부터 버려지는 경험이 뼛속에 각인 되었기 때문에 평생 살아오면서 늘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비된 채 고립되어 살아왔다. 너무 무서워 아예 관계에 있어 시작조차 하려 하지 않았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꾸며놓고는 그 안에서 안도하며 살았다. `그것 보단 낫잖아….’

참 불쌍하고, 비참한 인생이다. 난 가끔씩 정말 형용 할 수 없는 공포에 휩싸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가 갑자기 분노 치미는 경험을 반복해서 한다. 사실 그런 나를 알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절대 말로 표현 안 되는 이 공포의 원인을 이제야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담아내기 불가능한 화는 도대체 누구를 향한 것 일 까… 바로 엄마다. 나를 끝없이 좌절시키고 쓸모 없는 인간으로 만들어버린 바로 그 엄마 말이다.

페어베언의 분열 수업을 듣는 내내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아픔에 죽을 것 같았다. 내 존재가 형성되면서부터 버림받았던 깊은 무의식 속에 트라우마를 파헤치면서 나의 고통이 심해지자 가족을 포함하여 내 주위사람들이 나로 인해 피해 받고 있다. 지금 나는 곁에 있는 모두에게 어린 시절 엄마를 맞혀가며 참고 견뎌냈던 고통이 너무나 괴로워 이젠 더 이상 니들 한 테까지 휘둘리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담아 분노로 전달하고 있다.


나는 주부지만 아이 기르는 일이 벅차고, 청소 설거지 등 집안 일에 쉽게 지쳐버리고, 특히 정리 정돈은 죽도록 힘들다. 나에게서는 나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거 같아서 무얼 해도 만족하리만큼 성공적인 결과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내가 죽을 힘을 다해 정리한 집안은 전혀 말끔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지저분한 남의 집이 내가 청소한 집보다 훨씬 깨끗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쓸고 닦아도 왜 그리 안 깨끗하게 느껴지는지… 더러워 보이는 컵은 퐁퐁을 잔뜩 풀어 아주 뜨거운 물로 닦아내지만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거 같아 사용할 수 없다. 오히려 환경호르몬이 나오는 일회용 컵이 훨씬 안도적 마음을 일으킨다.

해도 해도 안 되는 형용할 수 없는 좌절로 무너져 내린다. 내가 뿜어내는 나쁜 영향으로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선생님께 맛있는 커피를 사드리고 싶어서 스타벅스를 찾아 들어가 주문을 할 때 갑자기 아메리카노와 우유가 들어간 라떼 그리고 단맛이 강한 마끼아또를 놓고 고민하게 된다. 라떼는 우유가 들어가 속에 잘 맞으시지는 않을까... 마끼아또는 단맛이 강해 한 모금 마시고 버리시는 건 아닐까… 아메리카노가 너무 진해 속이 쓰리시진 않을까… 하며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고민하다가 에너지가 고갈되어 패닉상태에 빠지고 결국 커피를 살 수 없어진다. 참 웃긴 일이다. 선생님은 나에게 스타벅스 커피를 요구한적 없고, 내가 사다 드린 커피도 물론 사양하지 않을 거다. 나 혼자 북치고 장구 치다가 결국 다 포기하고 파괴 시키고 싶은 충동으로 괴로워하며 선생님을 욕한다. ` 도대체 왜 나를 이리 힘들게 하는 거야… ‘ 이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어도 다가갈 수 없다. 차라리 고립된 삶을 사는 게 더 편하고 좋다.

사실 나는 외향적 기질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과 어울려 맥주 한잔하며 웃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 시작은 잘 진행되다 이내 내 이야기는 남의 뒷담화로 이어지며 혼자 열 내다 결국 찝찝한 마음으로 돌아와서는 박해 불안에 시달리고 잠수를 다시 타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질과 다르게 양육한 우리 엄마때문에 지금껏 혼돈을 경험하며 고통 받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기대고 싶지만 기댈 수 없고 세상에서 축만 낼 것 같은 내 존재가 무의미하고 가치 없이 느껴진다. 나는 따뜻한 엄마의 손길과 응원을 절대적으로 갈구 하고 싶은 순간 순간이 있다. 엄마… 나의 엄마…… 한번만이라도 제발 만나고 싶다. 내가 필요한 그 순간에 내가 원하는 그 공간에서…보고 싶다. 하지만, 지금 나는 무섭게 외롭다.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이 갈망을 형용할 수만 있어도 속이 시원해지려나...




2. 멜랑콜리아 (헬레네님)
이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와 엄마 사이에는 관계라고 할 만한 것이 애초에 없었다는 사실을. 태어나서부터 내내 몸은 이 지구의 일원이었을지 모르나 내 본성은 멜랑콜리아라는 행성에 혼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밤이면 그 행성을 향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태아적의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른하게 드러누워, 자신이 속한 그 고향에 온 존재를 내맡기던 저스틴의 심정을 난 알 것 같다. 지구에서의 저스틴이 살아도 산 존재가 아니었듯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죽어있었다는 것도.

태어나 첫 1년에 이미, 지금의 나는 기억도 못하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고 그 기억이 내 무의식에 남아 지금의 나를 마음껏 지배하고 있단다. 최초의 3년 안에 모든 것이 결정되고 말았다는 전설. 듣고 싶지 않고 믿고 싶지 않던 그 전언을 받아들이고 나니 차라리 마음이 홀가분하다. 그 시기에 각인된 기억은 내 몸과 마음에서 치열히 작동하여 늘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동일한 스토리를 반복 상영해왔단다. 그래서 난 함께 관계란 걸 시작해볼만한 대상이 못되는 사람을 배우자로 점지했고 결혼기간 내내 원맨쇼랄까 대상이 없는 일인극을 해왔다. 내가 낳은 딸과도 아마 비슷하게 서로가 맞닿지 못하는 그 우주적 막연함의 드라마를 재연했고.

아기인 나와 엄마의 초기접촉 불량으로 인해 분열의 여왕으로 성장한 나. 관계를 시작하는 법을 아예 습득하지 못한 채 나만의 세계로 철수 회피했고 거기서 안온하나 무지한 삶을 지속했다. 설사 관계가 시작되었다하더라도 초기의 압도적 침입과 간섭에 데인 나는 타인에게 휘둘리는 일을 방어하는데 최선을 다하느라 진짜 살아야할 인생을 탕진했다. 그렇게 사람으로부터 철수하거나 아니면 제발 날 이해해달라는 메시지를 깽판치며 파괴적으로 외치다가 상대가 겁먹고 질려 도망가게 만들었다.

페어베언의 흥분시키는 엄마/거절하는 엄마의 강의를 듣고 또 한번 머리가 쿵~. 알고 보니 내 아버지가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정반대로, 흥분시키기만 하고 절대 주지는 않던 대상이었던가 본데 애증의 그 관계 안에서 얼마나 끌탕을 했을지 내가 참 불쌍하다. 그 기대와 희망 때문에 늘 관계에서 너무 오래 기다리거나 너무 오래 나를 희생했던 것도 같다. 안될것 같은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스위치가 되지 않았던 이유도 그런 아버지의 거짓된 제스처 때문이기도 했다는 깨달음.

엄마는 나한테 통짜로 부재했으면서 도리어 요구는 진땅해대는 욕망덩어리 블랙홀. 이런 엄마와 아빠라~. 기막히게 고통스런 조합의 산물인 나의 출발점이 이토록 비협조적이었다면 지금 내가 나이 대비, 너무 뒤쳐진 발달단계에 서있을지라도 좀 용서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 잘 버텨왔노라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악전고투를 해오느라 애썼다고 날 토닥여줄 근거는 되는 것 같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어있었고 늙은 노인 같았던 내 기분을 영화 멜랑콜리아의 첫 장면에서 만났다. 살았으되 이미 죽은 자의 모습이었던 저스틴의 얼굴, 하늘에서 떨어지는 죽은 새들. 존재의 천근만근 무거움과 살 가치 없음과 활력제로의 존재 상태를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그림이 어디 있겠나? 라스폰트리에 감독은 아마도 인물들에게 말을 시키는것도 줄거리를 펼쳐가는것도 지겨운듯, 그냥 영화 초반에 쉴새 없이 들이붓는 이미지들의 폭탄만으로 접촉 불량의 영혼이 느끼는 우울함의 우주 속을 다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영화 초반의 그 장면들만으로 말로 다 표현 못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수업에서 추천해주지 않았다면 따로 챙겨보고 싶은 의욕이 들지 않았을 영화기에 더더욱 그 속시원함이 각별하다. 무릎이 푹푹 빠지는 한걸음 한걸음, 고립의 절정 같은 외딴 곳 대저택의 음울함, 어두움, 분명 기쁜 날이어야 할 결혼식의 웨딩드레스 뒤에 끌려오는 밧줄 덩어리들, 면사포깔고 물위에 죽은듯 누워있는 저스틴의 참자기...

자기 안위 이상의 것이 보이지 않는 철없는 아버지. 얼마나 자기 안에 힘이 없으시길래, ‘엄마, 나 무서워요~’하고 애처로이 호소하는 딸에게 ‘결혼해 살아봐라 이건 새발의 피란다,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라’하며 내쳐야하는 엄마. 참으로 익숙한 장면이었다. 자기애적 내 아버지와 우주 속 고아이긴 마찬가지였을 내 엄마의 자화상이었다. 이렇게 화면에 비춰진 내 부모의 모습에 증오보다는 짧은 웃음밖에 안 나왔다면 부모를 부모로만 보는 딸의 위치에서 조금은 벗어났다는 뜻일까? 아버지도 엄마도 언니도 형부도 그 누구도 정말 기댈 구석이 없구나. 손 내밀 때 멀뚱 서있는 저 ‘친밀한 관계의 사람들’. 인간이 서로 소통한다는 것의 한계가 느껴졌다.

우주가 멸망할 것 같은 은유를 동원해야만 한 인간이 빠진 우울의 깊이를 전달할 수 있단 말인가. 우울한 자의 내면은 아무도 모른다~ 우울한 자가 되어보기 전에는... 영화는 그렇게 말하는듯 싶다. 내가 영화 후반에서 공감했던 것은 멜랑콜리아에 이미 살고 있었기에 다가오는 멜랑콜리아 앞에서 점차 침착해지는 저스틴의 모습이었다. 우울에서 도망치려는 언니와 형부의 갈급함에 대비된 평온함이, 실상 늘 우울한 우주 속에서 기거해왔던 내 과거를 참 차분하게 묘사해줬다는 기분이다.

일상에서 맥을 못 추고 늘어져있던 저스틴이 도리어 두려움에 사로잡힌 언니와 조카를 돌보는 여유를 보이고, 식욕을 되찾아 쵸콜릿을 골라먹고, 혼자 목욕도 거뜬히 해내는 모습에서 우울의 세계에 너무나 익숙하게 존재해온 그녀에 대한 안쓰러움이 전해졌다. 너무 슬퍼말아, 언니, 지구는 너무 사악해. 우주엔 우리뿐이야...라고 말하는 그 고독한 동생 앞에서 언니는 정말 지금껏 홀로 고립된 삶을 살아온 저스틴의 삶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음을 절감했을지 모른다. 언니 클레어가 우울을 더 잘 보여줬다는 사람도 많던데 내겐 커스틴 던스트가 연기한 저스틴보다 더 완벽한 우울의 아이콘이 나올 수 있을까 싶다.




3. 흥분시키는 엄마, 거절하는 엄마 (닉스님)
엄마란 나에게 어떤 존재였던가... 강의를 들으면서 끝없이 내 머리를 맴돌던 질문이다. 현실 대신 자신이 만든 환상을 보여주며 나를 유혹하던 엄마와 무서운 모습으로 나를 공격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는 어떤 비밀이든 자신에게 털어놔야 한다고, 늘 잘못을 용서할 준비가 되었노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며 자신을 관대한 존재인양 이상화시켰다. 그러나 나는 엄마에게 저지른 잘못들을 털어놓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듣는 곳에서 언니나 동생의 잘못을 경멸하며 내뱉는 엄마의 강렬한 언어는 나를 마비시키기에 충분했고, 이는 너도 이런 잘못을 저지르면 가차없으리라는 일종의 경고이며 엄포였기때문이다.

엄마는 강렬하게 유혹하는 분이셨다. 나와 동생에 비해 초등학교 시절 학업성적이 좋지 않았던 언니에게 항상 혼수를 넉넉히 해줘서 의사나 판검사와 결혼시킬테니 걱정말라고 했다. 이후 언니의 학업성적이 충분히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애초의 언니에 대한 시각을 수정하지 않고 그냥 돈으로 시집이나 잘 보낼거라고 늘 얘기하였고, 막상 혼인 적령기가 되자 "괜찮은 아이는 미팅해서 남자를 잘 만난다"며 그동안 연애 한번 하지 못했던 언니를 비난하며 엄마의 호언장담을 부정하였다.

엄마의 이런 모습에 좌절하며 언니가 엄마에게 반항할때 오히려 나는 언니를 비난했었다. 나에게도 해당되는 엄마의 유혹적인 말들을 믿지 않은 우월감이기도 했고, 반대로 독립적인 모습을 보이면 엄마가 나를 돌아봐주지는 않을까 하는 애타는 몸짓이기도 했다. 엄마는 항상 자식들의 기대를 한껏 부풀리고 냉정하게 버렸다. 뿐만아니라 이러한 포기가 자식들의 선택인양 외부에 얘기하고 다니셨다. 또한 덧붙혀 자신은 한없이 넉넉한 존재인데 자식들이 받지 않으려는 효자들이라 줄 필요가 없다고 말하곤 했다.

일상을 버텨내기 위해 삶의 리비도가 온통 나에게만 향하던 어린시절, 엄마는 정말 기대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대상이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나는 항상 모자라고 부족한 자식이었기에 절대적인 순종과 좋은 학업성적만이 내 존재의 이유가 되었다. 출생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며 그다지 똑똑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엄마가 키워준덕에 공부는 조금 하는 아이. 이렇게 규정된 나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나를 경멸하는 엄마에게 아무것도 표현하지 못한 억압된 절망과 분노는 결국 학업에서 중요한 시기에 계속 잠으로 일관하며 공부를 망쳐 엄마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직장에서도 수동적으로 일하며 나 스스로를 하찮은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지금도 엄마를 생각하면 화가나 보이는 완강한 뒷모습과 그 주위를 감싸던 냉냉한 기운이 기억나고 한편으론 흥분해서 끝없이 장미빛 미래를 주겠다고 유혹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완강한 모습이 얼마나 나를 마비시키고, 유혹하던 말들이 나를 애타게 하다가 절망시켰는지 엄마는 알까...

페어베언 강의를 들으며 채워지지 않는 갈망으로 인해 허기지고, 스스로를 파괴하려는 증오상태로 세상을 살아온 나를 보았다. 그동안 세상살이가 왜 그렇게 무섭고 힘들었는지 강의를 통해 조금은 깨달았다.




4. 수업을 마치고... (님프님)
부모교육 강의를 들으며 나 자신을 조금씩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엄마와 사이가 무척이나 안 좋아 졌는데 (물론 예전에도 좋았던 건 아니지만) 페어베언 수업을 들으면서 이젠 엄마 얼굴도 쳐다 볼 수가 없게 됐다. 예전엔 하루가 멀다 하고 들락거렸던 친정집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친정집을 떠올리면 그 순간 숨이 꽉 막혀오고 가슴이 터져 나갈 것만 같아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되어 버렸다.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좁은 관에 갇혀 나갈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고 숨은 쉴 수가 없게 되는 그런 느낌은 어렸을 때부터 자주 떠올랐던 느낌인데 ......

나의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세상과 단절 되어 사시는 분들이다. 나는 자라면서 부모님께서 친구들을 만난다고 외출을 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왜 우리 부모님 주변엔 사람들이 없는지 아무하고 관계하지 않으시고 일만 하시면서 사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린 우리들이 어디를 가고 싶다고 얘기하면 아버지는 늘 “할 일이 많은데 ....다음에 가자” 고 말씀 하셨다. 매번 미루셨고 단 한 번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셨다. 정작 일이 없는 날이 되어도 아버지는 우리를 데리고 나가지 않으셨다. 명절 때 친척집을 가는 것 말고는 가족들과 집 밖을 나가 본 기억이 없다. 어린 마음에 아버지에 대해서 많이 원망 했던 것 같다. 아무 하고도 관계하지 않으시고 외출도 안 하시고 혼자서 일만하시는 아버지 .......

“치사스러워~ 네 아버지한테 돈 타 쓰는 거. 나도 밖에 나가서 돈도 벌고 운동도 다니고 내가 배우고 싶은 거 있으면 배우러 다닐 거야” 하고 엄마는 매번 결심하시고 큰 소리 치시지만 그 동안 단 한 번도 돈을 벌려고 시도해 보신적도 없다. 뭔가를 배우러 다니실 여건이 충분히 되는데도 늘 말씀 뿐이셨다. 집과 가게 그리고 아버지의 곁을 맴돌 뿐....... 엄마는 말씀 하신다. “네 아빠하고 살면서 무능력한 바보가 됐다.” 고...... 외갓댁 친척들은 “네 엄마니까 너희 아빠 같은 사람하고 살은 거야. 어떤 여자가 네 아빠 같은 사람한테 붙어있어~. 네 아빠 때문에 엄마가 고생을 말도 못하게 했지.” 나도 아버지가 나쁘게만 느껴졌고 불쌍하고 힘없는 엄마편이 되어 아버지를 마음껏 미워했다. 그리고 엄마를 위로하며 살았다.

하지만 수업을 들으면서 더욱 분명히 이해한 것은 엄마가 아버지와 살면서 무능력한 바보가 된 것이 아니라 엄마는 외부세계와 접촉하는 능력이 전혀 없으신 분이라는 사실이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고 아버지 때문이라니! 엄마 자신은 돌아보지 않고 매번 아버지를 이상하고 나쁜 사람으로 만드시는 태도들도 수업을 들으면서 더욱 분명히 알게 됐다. 그런 엄마를 보고나니 엄마와 똑같은 내가 있었다. 엄마의 세계에 갇혀서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사회화 되지 못한 어린 시절 나의 모습 그리고 나와 똑같은 현재 아이의 모습이 영화필름처럼 한 순간에 펼쳐졌다.

나는 집 밖을 나가면, 보게 되고 부딪히는 모든 환경들이 불편하고 낯설고 어색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떤 때는 나하고 전혀 상관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세련되어 세상의 문화와 문명을 향유하며 누리며 사는데 나만 어디서 뚝 떨어진 원시인 같은 느낌이 들 때도 많았다. 사람들을 만나려고 하거나 연락을 하고 싶을 때 나는 매번 ‘할까? 말까?’ 망설이는데 많은 시간들을 보내고 그런 마음 속 갈등은 솔직히 고통에 가까우리만큼 괴롭다. 막상 만나기로 하고 나면 ‘괜히 만나자고 했나?’ 하면서 커다란 불안이 스윽 하고 올라와 나를 삼켜 버린다.

잠시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돼 버린다. 사정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레슨시간을 옮기는 것에 대해서도 편하게 그냥 말 하면 되는데 엄청 미안 해 하면서 상대의 눈치를 보며 어렵게 얘기한다. 잘못을 저지르거나 실수를 한 것도 아닌데..... 이런 얘기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부탁 할 때도 마치 내가 뭔가를 크게 잘못한 사람처럼 느끼며 말한다. 남에게 부탁하는 표현은 더 못한다. 말이 나오지 않으니 참 답답하다.

나는 한 두 사람하고만 친하게 지낸다. 나는 왜 다른 사람들과 두루두루 관계하지 못하는지, 성인이 되어서도 연애 한 번을 제대로 할 수 없었는지 분열적 자리에 고착된 사람들이 가지는 특성에 대해 배우면서 이해가 되었다.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지만 관계할 수 없었던 나 자신이 온 마음으로 이해되었다. 내가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나의 무의식의 느낌 때문이라는 것 을 ......관계에서 느꼈던 어려움들이 내가 기억 할 수 없었던 초기 상처 때문 인 것을 .....

사람들과 나 사이에서 아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내 자신이 그들로부터 외면당하고 거절당할 것만 같은 느낌은 거의 공포 수준이다. 나의 잘못이나 실수를 누군가가 얘기하면 내 존재가 부정되어지는 것 같아 괴롭고 조금의 좌절이 나에겐 폭풍처럼 느껴져 견디기가 어려워 참지 못하고 대충 빨리 해치워버리고 포기하고 도망가고 ........

선생님의 수업을 통해서 내 자신이 진심으로 이해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마음 속 자리 잡고 있는 어린 아이에게 네가 나빠서가 아니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토닥이며 말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안도하고 있는 그 무엇도 (뭐라 표현 하면 좋을까?)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의식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굉장히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뭔가 무거운 짐이 툭 떨어져 조금은 더 자유로워진 느낌이 있다. 세상을 향해서 사람들을 향해서 손을 내밀 조금의 용기도 생겼다. 그리고 이번 수업은 들으면서 내가 무엇을 노력해야 하는지 알게 해준 고마운 수업이었다. 아무 노력도 안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솔직히 나는 그동안 무엇을 노력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었기 때문이다.



5. 거부하는 대상 (레아)
엄마는 따뜻한 분이셨지만 20명이 넘는 대가족의 살림을 하셨기 때문에 나에게까지 물리적 시간적 몫이 돌아오질 않았다. 엄마가 없는 큰집은 공허했다. 엄마는 일을 보시느라 방문을 잠궈놓고 있을때가 많았고 그럴때마다 밖으로 엄마를 찾아 헤매며 길을 잃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나마 엄마가 눈에 보이는 시간동안은 내가 엄마를 얼마나 원했던지에 대해 악을쓰고 짜증을 부리던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 댓가는 엄마가 외출을 하시는 날이면 할머니로부터 혹독하게 주어지곤 했다. 할머니는 넓은 마루를 가로질러 3층복도 끝에 있는 쓰레기통에 나를 곤두박질 치려 발버둥치는 아이를 힘으로 끌고 갔고 그때마다 내존재에 대한 무너지는 모욕을 경험했다. 엄마에 대한 리비도적 갈망은 엄마로부터는 피드백 받지 못한채 무시로 일관되었고, 좌절당한 채 쓰레기통에 쳐넣어지는 죽음의 공포와 분노는 엄마를 향한 원망대신 반리비도적 자아를 형성시켜 죽음의 본능으로 내 안의 내적대상으로 자리잡은 듯하다.

마음속의 늘 공허함은, 엄마를 간절히 원했지만 응답받지 못한 엄마관계의 실패이며, 어린시절 치맛자락을 잡고 늘어지는 아이에게 묵살이라는 방법대신 한번이라도 뒤돌아보며 눈을 맞춰주며 관계해주는 엄마가 있었다면 삶에 대해 느끼는 알 수 없는 공허감과 나를 좌절시키는 대상과의 본딩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지금도 사진을 찍거나 거울속의 내모습을 보면 어색하고 자신이 없고 생일이 되어 축하받는것이 부담스러울때가 많다. 내가 어디에서부터, 왜 태어났을까 라는 불행한 마음상태는 엄마가 나를 중요한 시기에 행복하게 맞아주고 반겨주고 반응을 해주지 못해 형성된 나의 좌절된 내적세계, 내적대상이다.



6. 나는 울보 (니오베님)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예민한 울보였다고 한다. 지금도 오랜만에 친척 어른을 만나면 “울보, 울례야! 그렇게 울더니 지금은 안우냐?” 하고 놀림을 받을 정도다. 나는 6남매 중 장남인 아빠, 증조할머니까지 모시고 사는 13식구의 맏며느리인 엄마의 첫 딸로 태어났다. 집안에서는 아들을 원했으나 첫 딸이라 집안 어른들이 싫어하셔서 엄마는 불편한 마음에 7일 만에 산후조리를 끝내고 집안 일을 했다고 한다. 내가 젖달라고 울어도 다 같이 일하다가 젖먹이러 가는게 마치 혼자만 쉬는 것 같아서 제 때 내게 젖도 잘 주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뭔가 허기에 울고, 불편해서 울고.. 엄마 찾아 울고.. 그렇게 일년을 보내고 다음 해엔 같은 집에 사촌 남동생이 태어났다. 이후 나는 사촌동생에게 내 장난감을 누나니깐 양보하라는 소리에 울고, 먹을 것을 뺏겨서 울고, 사촌 동생이 울면 니가 애를 어떻게 한거 아니냐고 오해 받아 울고, 밤이 되면 내 맘을 이해해주고 미러링해주는 대신 엄마한테 “너는 니것도 못 지키고 왜 바보같이 뺏기고는 우냐, 그런 너 때문에 내가 아주 속상해 죽겠다”는 엄마의 말에 또 울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기집애가 울면 집에 망조가 든다는데.. 쟤는 왜 이리 우는 지.. 아주 갖다 버려”라는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엄마에게 등짝을 얻어 맞고는 그렇게 울다 잠이 들었다. 이게 태어나서 나의 2세까지 성장에 대해 들은 말이다. 그 이후 나의 친동생이 태어나면서 난 더 많이 울었다고 했다.

나는 사랑받고 존중받는 대신 매일을 울고 살았다는 어린 시절 이야기가 너무 슬프다. 당연히 아기로서 누려야 할 모든 것들을 누리고 산 게 너무 없다는 사실에 화도 난다. 난 내가 너무 많이 울고 예민해서 나 때문에 엄마가 너무 힘들게 살았다는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믿고는 정말 엄마에게 미안해 하면서 그렇게 바보같이 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누릴 권리도 못 갖게 하고는 나 때문에 엄마가 힘들었다고 어릴 적부터 내게 하소연하고 나에게 죄책감을 갖고 살게 한 엄마에게 분노가 치민다.

이런 성장기를 갖고 있는 내가 구강초기의 문제를 갖고 ‘관계’맺기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나는 페어베인의 구강초기의 문제가 분열성 성격을 갖게 한다는 수업 내용과 ‘부분 대상 관계’의 예를 들었을 때 갑자기 내 어릴 적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에피소드가 계속 생각이 났다. 가령, 어릴적 생각나는 기억에.. 나는 집에서만 울보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친척집을 방문하여 낯설거나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을 보면 그냥 어색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갑자기 울음을 터트려 상대방을 난감하게 하고는 한 삼십분쯤 있다가 진정이 되어 울음을 그쳤던 기억이 여러 번 있었던 게 생각이 나고, 외갓집에 가고 싶다고 해서 데려다줬는데 엄마 보고 싶다고 먹다 토하구 병나서 엄마가 데릴러 왔던 기억, 집을 떠나서 친척집을 방문하면 집에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집에서 엄마, 아빠는 뭐 하고 있을 까? 하는 생각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분리불안이 너무 심했던 그런 예들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또, 수업을 통해서 내가 갖고 있는 ‘탐욕’에 대한 부분의 이해가 아주 잘 되었다. 나는 아빠의 지독한 편애를 받고 살았지만 그런 아빠도 늘 내게 “너는 너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야, 3남매의 맏이가 되어서 뭐 하나 양보하는 법도 없고 다 니가 가져야하고 욕심만 부리니 너 정말 큰일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여러 번 있으셨다. 나는 3남매 등록금을 동시에 다 대려면 힘드니까 누구하나 휴학해야한다는 말에 동생들은 한 번씩 휴학을 했지만 나는 끝까지 나 혼자만 대학원까지 쉼없이 학교를 다녔고 대학원 다닐 때는 동생이 회사 다니면서 모아 둔 돈을 내 등록금으로 쓰면서 나는 미안함보다는 부모의 능력 없음을 탓하면서 그렇게 철없이 살았다. 해외에 여행이 가고 싶으면 동생이랑 같이 가는데 나는 학생이고 동생이 직장을 다니니까 동생이 더 많이 내고 함께 가거나.. 동생이 내 가방, 신발을 사주게 만들거나.. 지금 생각하면 창피하지만 그 땐 내가 무슨 정신으로 살았나 싶게 난 원하는 게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꼭 갖었던 것 같다. 결국 갖었지만 스스로도 썩 좋진 않았고 부모님에게 질타를 받으면서도 난 왜 내가 그런지 정말 의문이었는데 페어베인 수업을 통해서 나는 나에 대한 이해도 되면서 내가 참 부끄러웠다.

다음으로 수업을 통해 나는 ‘나의 관계 맺기’ 방식을 아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나는 부모 교육을 듣기 전까지 내 주변에는 나보다 잘난 사람이 없었다. 나는 우선 누구를 만나면 그 사람의 장점이나 일반적인 면보다는 단점이 눈에 먼저 확 들어와야 나랑 비슷하거나 부족하다는 생각에 그 사람이 편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자꾸 사람의 흠을 잡게 되고 나중에는 내가 저런 시시한 사람을 만난다는 생각에 그것 또한 맘이 편치 않아서 친밀한 관계를 오래 할 수 없었다. 이런 관계 맺기는 내가 결혼하는 배우자를 결정하는 것에도 물론 영향을 주었다. 이 모든 것들은 나의 열등감을 비롯해서 부분 대상관계만을 맺을 수 밖에 없었던 내 문제였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계속 남을 오해하고 미워하고 비난하며 내 주변에는 왜 이런 사람만 있는지 진심으로 괴로워했던 적이 아주 많이 있었다. 그런데 알고 나니 주변인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럽고 내 스스로도 너무 창피하다.

나는 지금까지 약 2년 정도의 부모교육을 들었지만 이번 학기의 페어베언 강의는 정말 너무 힘들었다. 매 수업마다 나는 내가 억압하고 방어로 굳게 닫혔던 내 무의식이 조금씩 더 크게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매 수업마다 잊고 있었던 기억,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여러 에피소드가 수업 중간 중간에 막 생각이 나면서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데 나중에는 정말 감당이 안 되어 무서웠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내가.. 아니.. 내가 왜 그랬는지의 내 행동들에 대한 이해가 너무 잘 되면서 내가 만들었던 내 과대 이미지가 깨진 것, 그 대신 부끄럽고 창피함이 그 자리를 채웠을 때 나는 그 불일치가 너무 혼란스럽고 무서웠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의 멈췄던 발달이 다시금 성장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나는 부모교육을 통해 나를 점차 알아가고 있지만 더 알기가 겁날 때가 너무 많다. 그러나, 이제 나는 ‘관계’ 속에서 힘들게 사는 게 아니라 ‘관계’ 속에서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그리고 자유롭기를 원하기 때문에 수업 내용이 힘들어도 잘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의 미성숙한 발달을 성찰하게 하고 동시에 내 상처를 보듬고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이번 페어베언 교육을 통해서도 나는 얻었다. 그 점을 정말 감사히 여기며 이번 학기를 마치게 되어 기쁘다.



7. 내 모습을 찾아가기 위한 첫 걸음( 토르님)
나의 예상과 달랐던 수업, 그리고 생소한 페어베언... 수업 첫날부터 당황스러웠다. ‘내 이야기는 아니구나......난 그 정도는 아니겠지’라는 생각으로 수업을 들어가다 점점 ‘ 아, 내가 그렇구나. 모두 내 이야기이구나. 아니, 어떤 게 내 이야기이고 어떤 게 아니지......?’ 지금도 역시 나에게 적용시켜 생각하고 이해하기란 어렵기만 하다. 선생님께서 구강기에 고착된 병리적 사람은 그 치료기간도 길고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친다고 하셨는데 난 치료대상은 아닐 거라는 생각과 적어도 구강기에 고착된 사람은 아닐 거라는 생각으로 그냥 남의 이야기로만 여기며 수업을 들었던 거 같다.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변하는 듯하다가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와 그 모습 그대로인지, 왜 나는 아이 행동 하나하나마다 어찌해야할지 혼란스러워 했는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간다. 어릴 적 무섭게만 느껴졌던 엄마, 그래서 엄마에게 한 번도 무얼 요구해본 기억도 따스한 지지 한번 받아본 기억도 없다. 엄마가 그 당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성인이 된 나는 이해하지만 그로인해 난 엄마에게 아무것도 받지 못했고, 좋은 엄마의 표상을 가질 수 없어 지금 엄마가 된 나는 힘겹게 살고 있나 보다. 부모와 좋은 경험이 적어 내 욕구가 충족되지 않고 많은 좌절 속에 나는 눈치 보는 아이, 사랑과 관심 받기 위해 내 감정조차 나에게 숨기면 살아 왔다. 이젠 어떤 게 진짜 내 감정이고 내 모습인지 알 수조차 없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 여기며 스스로 만족하고 살아왔다. 구강초기에 고착되면 자기의 사랑이 파괴적이라고 생각되고 자기는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여긴다고 했다. 처음엔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을까 했다가 그게 행동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란걸 알고 놀랐다. 특별히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무언가를 받으면 그리 늦지 않은 시기에 그에 적절한(?) 답례를 하고 여럿이 식사를 하는 상황에선 괜히 멋쩍어서 내가 먼저 밥값을 계산하고... 내 마음 깊숙이에는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끼고 있나 보다. 아마도 내 스스로가 괜찮은 사람이라 여겨온 것도 엄마와의 관계 손상으로 인해 내 스스로를 이상화한 때문일까.

어제 문득 아이에게 화를 내지는 않지만 잘못을 은근하게 아이 탓으로 돌리는 내 모습을 보며 나의 공격성이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나오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내가 느끼지 못 하는 사이 얼마나 많은 공격성이 독을 품고 뿜어져 나와 아이에게 좌절을 주었을까......공격충동이 많은 나는 엄마와 좋은 접촉을 좌절당해 지나치게 수치스러움과 시기심을 가지고 나만의 방식으로 나 스스로를 이상화하여 사랑하며 살아왔나 보다. 그래서 발달이 멈춰버린 지금의 나로 인해 나 역시 아이와 정서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아이의 발달을 도와 줄 수 없었던 거다. 아이에게 나의 관심을 쏟아 붇고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정작 아이의 감정을 읽어내는 데는 무디고 아이가 호소하는 것을 볼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또한 내안의 많은 분열을 안고 살아가는 나는 세상을 조직화 하여 볼 수 없기 때문에 사소한 문제하나라도 생기면 당황하고 누군가 내 대신 해결책을 제시해주길 기대하고 또 때론 그런 도움을 불쾌하게 여기기도 하고......정신의 파편화로 인해 내가 직접 본거 외에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징화가 되지 않아 어떤 판단이나 문제의 이해가 나한테는 어려웠나 보다. 이 수업 조차도.......

나 스스로가 강하다고 여겨 왔지만 수업을 통해서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무능한지 새삼 알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그걸 알면서도 스스로 은폐해왔는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의 나쁜 감정이나 역할을 해 낼 자신이 없어, 또 다른 사람의 인정을 얻어내기 위해 거짓자기로 살아온 나를 진짜의 나로 알고 살아온 나. 진짜의 내 모습을 만나기 위해 설레는 마음보다는 거짓이라도 ‘나’라고 알아온 내 모습이 없어져 붕괴되는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크다. 그 여정이 힘들 것 같아 망설여지고 불안하다. 과연 내가 내 거짓자기와 분리되는 과정을 이겨낼 수 있을까...좌절이 많았을 내가 만날 나의 참자기가 너무 작아 만나기 힘들면 어쩌지....

페어베언은 어린시절 생긴 병리적 현상은 절대 해소 되지 않고 봉인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근본적으로 대상을 회복하고 싶은 열망이 있다는 말에 희망을 걸고 싶다.



8. 분리 (제우스님)
결혼한지 25년이 되었지만 남편과 같이 산 시간보다 같이 안 산 시간이 더 길다. 이혼을 해야 한다고 마음은 먹고 있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기기가 귀찮다.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하지 말라고 해서 미룬다고 변명을 하지만 내가 바로 실행을 못하는 이유가 나에게 구강기에 고착된 상처가 있어서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남편과 같이 사는 동안 그에게 모든 것을 다 해 주었고 동시에 그가 나를 부모처럼 돌봐 주기를 기대했었던 것 같다. 남편 또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남편만큼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친정부모님과 아이들을 데리고 같이 살고 있다. 늦은 나이에 대학원을 가면서 친정부모님과 같이 사는 것을 정당화 하고 나는 “내 공부” 가 항상 먼저였다. 대학원을 끝마치고 나서도 나에겐 항상 부모가 먼저였고 내 아이들은 그 다음이었다. 부모에게 잘하면 그것을 보고 아이들도 따라서 잘 할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진작 관심과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에겐 무관심 하면서 난 스스로 훌륭한 엄마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유아기에 나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은 큰 아이는 유학을 가겠다고 하며 스스로 자립하였다. 큰 아이는 그 때 외가가 너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부모에게서 분리되지 못한 엄마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모든 상처를 작은 아이는 고스란히 받은 것 같다. 정말 관심이 필요한 초등학교 1학년부터 난 내 대학원 공부를 한다고 아이에게 무관심하였다. 내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도 알아서 하겠지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였다. 아이에게 진실된 관심을 주지 않으면서 아이가 알아서 잘 하겠지 하는 말도 안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더 나빴던 것은 난 유혹하는 엄마이면서 거절하는 엄마였던 것 같다. 큰아이도 없는 집에서 작은 아이는 항상 혼자였다. 2층집인 친정은 1층엔 부모님이 2층엔 아이들과 내가 살고 있다. 난 거의 모든 저녁시간을 1층에서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에 할애하였다. 그것이 효도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친할머니가 바로 밑에 태어난 유일한 아들인 남동생을 엄마에게 잘 돌보라고 어린 나를 데리고 시골에 자주 가셨다. 나의 어린 기억에 누워서 여자 달력 사진을 보고 엄마를 그리워했던 기억이 난다. 집에 와서도 엄마는 모두의 엄마였고 특별히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난 항상 친할머니와 같이 자고 같이 지내야 했었던 것 같다. 억지로 엄마에게서 자주 분리된 나는 커서 부모와 동일시 되어서 분리되지 못하고 부모의 기쁨이 나의 기쁨 부모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라고 생각하며 모든 것을 부모님에게 포커스 해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나의 아들은 혼자서 내버려 둔 채로… 나는 아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거절하는 엄마였던 것 같다. 공부는 스스로 알아서 하는 거라고 돌봐 주지 않았고 시험을 치더라도 틀린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뭐가 틀렸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직접 확인해 주지 않았다. 부모에게서 인정을 받고 싶었던 난 어려서부터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고 챙기는 애어른 이었던 것 같다. 어떻게 부모가 아이의 공부를 챙기는 지를 난 몰랐고 지금도 모르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난 아들에게 모든 것을 다 해 주는 흥분하는 엄마였던 것 같다. 항상 식사 때 마다 먹고 싶은 것을 물어보고 해주었고 게임을 하더라도 혼내지 않았으며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고 책가방을 싸주고 준비물과 옷을 챙겨주고 방을 정리해 주었다. 아들의 게임시간을 줄이기 위해 난 아들에게 유혹하는 물건들을 상으로 내세웠고 약속을 못 지켜도 계속 우겨대면 난 아들에게 지고 해주고 말았다. 난 아들에게 아무런 좌절을 주지 못했다. 게임을 하는 아들에게 저녁을 차려 가져다 주면서 난 아들에게 “이런 엄마 없는거 알지?” 하고 생색을 내었다.

나는 아들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면서 훌륭한 엄마라는 칭송을 듣고 싶었지만 진실은 난 유혹하는 엄마면서 속으로는 아들을 거절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다 해주는데 정신을 못 차리고 게임만 하고 공부를 하지 않는 아들이 원망스럽기만 하였다. 그저 빨리 커서 나의 책임을 벗어 나기만을 갈망했던 것 같다.

재수를 하면서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아들을 보면 내가 지난 시간 동안 얼마나 잘못 했나 하는 미안함과 후회가 밀려온다. 아직 내가 어떻게 해야 아들에게 진정 도움을 줄 수 있을 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페어베언 공부를 하고 나서는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는 아들을 보면서 난 지금 옛날만큼 화가 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잘못했길래 내 아들이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물론 가끔은 아직도 화가 나지만 옛날에는 “아휴~ 저렇게 해서 어떤 인간이 될꼬?” 라고 냉소를 했다면 이젠 내 스스로 “왜 이런 행동을 할까?” 라는 질문을 먼저 하게 된다.



9. 나의 퍼즐 조각을 찾아서 떠나는 무의식의 여행 (다나에님)
눈을 감고 시간 여행을 떠났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어린 시절까지로~ 여행을 떠났다. 나의 의식으로는 당연히 영아기 때 무슨 일들이 있었으며...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과거의 ‘나’라는 퍼즐 조작을 찾아 나를 이해하고 싶었다.

첫 번째 조각들- 내가 아는 그 시절 히스토리 중에서 가장 구강기 초기의 사건이 생각났다. 물론 부모님의 언어로 듣었던 이야기이다. 나는 태어나 몇 주 동안 시름시름 앓았다고 한다. 태어날 때도 조금 힘들게 태어나서 몇 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도 않았다고 한다. 부모님은 혹 아기가 죽을 까봐~ 집 가까이 있는 성당에 신부님을 모시고 와서 유아세례를 급하게 하셨다고 하였다. 아이는 몇 일 힘들어 하더니~ 그런대로 회복되어 잘 자랐다.

두 번째 조각들- 과거 나의 어머니는 위로 두 언니가 있었지만 둘 다 태어나자 마자 죽어서 비록 세 번째 자식이지만 장녀로 사시게 되었다. 외할머니는 어머니마저 잃을 까봐 애지중지 키우셨다고 한다. 나의 어머니는 그냥 정원의 화초 같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현실적이고 야심 많은 남편을 만났다. 늘 현실과 싸워야하는 남편은 집에서 격노를 많이 하였다. 나의 엄마는 그런 남편 때문에 늘 불안했다. 나는 엄마에게는 딸이면서 엄마이기도 하다.

세 번재 조각들- 나는 어려서부터 사랑이라는 과잉보호의 울타리로 많은 경계를 침범 당하고 살았다. 또한 이중의 속박 메시지를 들으면 살았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도 ‘잘 먹는 다.’가 아닌~ 많이 먹어 '무식하다, 살찐다.' 말을 들었다. 공부를 못하는 것은 이 세상의 낙오자이며 죽음이었다. 늘 어려서부터 옆집아이, 엄마 친구들의 자녀들과 비교당하고 살았다.

네 번째 조각들- 나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가끔씩 이런 꿈들을 꾼다. “길을 찾는 데 눈으로는 오른쪽 길로 가면 되는 데... 왜 안가지지, 다리가 안 움직여진다. 다시 마음으로는 갈 것 같아서 다시 시도한다. 안 된다. 여전히 그 자리에서 마음만 바쁘고 불안하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아! 번호가 적혀있는 버튼이 안 눌려 진다. 마치 마비된 손처럼 아무리 눌러도 안 된다. 어떻게 하지~ ”, “아니면 높진 않지만 늘 떨어진다. 아찔한 느낌에 실제로 다리를 움츠리다 일어난다.” “화장실이 급해 화장실을 찾아다니다~ 반갑게 발견한 화장실... 그러나 그 안에는 대변이 한가득... 어떻게 하지하며 당황한다.”

다섯 번째 조각들-나는 어렸을 때 건강한 질투보다는 시기심이, 자긍심보다는 평가 절하가, 현실적이기 보다는 비현실적 이상화만 많은 아이였다. 늘 밖은 나에게 우울과 불안을 주었다. 그래서 다시 안으로 들어와 이상화된 나만을 키웠다. 때론 너무 현실과 안 맞는 이상화가 커서 늘 우울하고 버거웠다. 비현실적 이상화는 늘 우울한 나의 모습과 같았다. 힘든 일이 생기면 직면하지 못하고 며칠씩 잠만 자던 아이....그래서였는 지... “늘 다 끝이야. 끝났어” 라고 극단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곤 했다.

여섯 번째 조각들- 나는 과잉보호로 늘 현실감이 부족하고 부모가 정해진 길로, 정해준 사람으로 살았다. 거짓 자기로 똘똘 뭉쳐서 무엇이 참된 나인지, 거짓 나인지도 조차 구분 못하는 사람... 나는 지금도 작은 것도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 가장 고통스럽다. 예전에 비하면 조금 낮아졌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건 의식에서만 이다. 옷이나 책을 살 때도 결정을 못해 갈등이 되는 두 개를 다 사곤 한다.

나의 과거의 조각들을 맞춰 보니 나는 유아적 의존을 포기 하지 못하며 사는 몸통만 큰 거북이 였다. 나의 무의식적 표현들은... 내가 구강 초기와 후기에 모두 다 걸려 있지만 구강 후기에 더 많이 걸려 있는 사람인 듯 보인다. 늘 유아적 의존에 묶여 마치 거북이 목처럼 내안에 있다가 잠시 세상 밖을 보고자 얼굴을 내밀고는 다시 얼굴을 깊게 넣는 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나에게 많은 일들이 생겨서 그래도 예전에 비해 철도 들고 마음 그릇도 켜져 성숙한 듯 해도... 직도 내 모습은 과거 퍼즐의 조각들로 만들어진 목이 긴 거북이다. 큰 몸에 의지해 세상을 보고자 잠시 얼굴을 내밀고 다시 내 세상으로 들어가는 거북이~

나는 나의 아이들은 거북이로 만들고 싶지 않다. 밖에 나가 모든 것을 만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느끼고 살라고 하고 싶다. 김은옥 선생님 강의중에 그 말씀이 생각난다. 건강한 엄마는 아이들을 힘써 밖으로 나가게 한다고... 많은 관계를 맺게 하라고... 나는 우리 아이들은 목이 긴 거북이가 아닌~ 들판을 마구 뛰어 다니는 말처럼, 때론 강한 사자처럼, 때론 힘이 센 코끼리처럼, 때론 사랑스러운 강아지처럼.... 되길 기도한다.




10. 페어베언강의를 마치고 (글라우케님)
어릴 적 나는 엄마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언니를 보면서 언니가 불쌍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나를 힘들게 하고 못 살게 하는 언니가 혼나는 것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낀 적도 있다. 엄마는 언니에게 할말 있으면 해보라고 하지만 정작 언니가 얘기하면 말대꾸 한다며 더 혼내기 일쑤였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엄마는 화풀이 상대로 삼았던 언니에게 넋두리를 하고 언니는 장단을 맞추며 서로 의지했다.

언니와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딸과 분리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아이에게 너무나 많이 의지하며 살고 있다. 언니와 엄마의 관계가 좋은 관계로 비춰져서였을까? 가끔 딸아이와 싸우고 난 뒤면 아이의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보고 짜증이 났을 때 아이가 없었으면 아니면 다른 사람이 좀 키워줬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하지만 이쁜 행동을 봤을 때는 못해 줄 것이 없는 엄마처럼 행동한다.

나는 엄마의 입맛에 맞는 순한 아이였지만 정작 나에게는 없었던 엄마, 거절 당할까 봐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던 그 아이는 항상 마음 속에 억울함과 분노가 가득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 병원에서 진료순서를 기다리던 내 앞에 모녀가 앉았다. 그 엄마는 딸에게 걱정을 많이하는 괜찮은 엄마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했고 딸은 그러한 생색이 싫은 듯 계속 엄마의 말을 자르고 말대꾸를 하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만하라고, 어른한테 그러면 안 된다고." 아마도 어릴 적 억울한 일이 있어도 말 한번 해보지 못하고 혼이 났는데, 그 딸이 자신의 생각을 엄마에게 빠짐없이 말하는 것이 너무 부러웠을지도 모르겠다.

태어나면서부터 하루에 한번 너무 바쁜 엄마 품에 안길 수 있었던 나는 먹는 것, 보살핌을 모두 거절 당했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다가가면 엄마가 일을 못 할까 봐 엄마의 입장만을 고려하고 살아왔다. 지금도 사람들을 만나면 나 때문에 방해 받으면 어쩌지라는 부담감에 관계를 철수하게 된다. 모든 일정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맞추느냐고 나의 생활은 없었다. 그리고는 외롭다고 나를 알아 주는 사람이 없다고 늘 다른 사람을 탓한다.

열등감, 부담감, 철수, 외로움, 고립감 나를 표현하는 단어들이다. 엄마와의 접촉 경험이 없었던 나는 스스로를 평가절하 하면서도 겸손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야만 사람들이 나와 관계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항상 나는 머피의 법칙에 주인공이었다. 어릴적의 초기 경험을 실패했던 나는 항상 손해보고, 나한테만 이런 나쁜일이 일어나나봐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어릴적 부터 믿고 살아왔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11. 유아 (아테네님)
이번 수업를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부족하나마 적어본다. 다른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고 그럴듯해 보이기 원하지만 수업 중 만나게 된 나는 구강기초기에 고착된 유아이다.

나이 사십에 접어들었지만 어른스럽지 못하여 홀로 있지 못하고 남편과 늘 함께 하고 싶은 나이다. 의존하고 있는 남편이 내 생각에 동조해 주지 않으면 내 생각에 확신을 가질수 없고 혼란스럽다. 남편이 내 생각과 다른 견해를 얘기하거나 나를 동감해 주지 않을때 남편에게 날 배려해 주지 않는다고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매도하길 반복하는 나이다.

될 수 없는 일차적 동일시 상태를 남편에게 기대하며 기대대로 안 되면 화가 나고 화를 내다 너무 슬프고 창피하고 사는게 두려워진다. 남편과 내가 개별적이라고 느껴질 때 난 이세상에서 혼자라는 심한 고립감을 느낀다. 이런 반복에 남편마저 점점 지쳐가는 것 같다.

또한 나는 음식을 만들고 남편과 아이들을 먹이는 일이 너무 힘들다. 눈에 보이는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가정일은 조금만 일해도 많이 내 몸을 지치고 아프게 한다. 남에게 주는 것도 너무 어렵고 안된다. 선물을 받아도 시치미를 뗄때가 많다. 다른 사람에게 뭘 선물해야 할까 알기가 힘들었는데 이런 내 모습들이 구강기초기에 멈춘 내 발달때문이라 했다. 나는 남편과 내 아이들, 그리고 내 주변 사람과 주고받고 공감해주고 이해해주고 배려해 주지 못하는데 이것이 유아적 의존만을 기대하는 내 성격구조때문이었다.

또한 의존적 성격구조를 가진 나로인해 아이들은 보통의 좋은 엄마를 경험하지 못했다. 아이는 학습동기도 약하고 공부를 어려워해서 남편이 많이 실망하고 힘들어 한다. 그러나 나의 비현실감은 상황이 안 좋아도 우리가족이 항상 화기애애하기 원한다. 수업을 듣기 전에는 이런 비현실감이 꿋꿋함인줄 알았다. 겉치레를 벗고 나의 내면에 성숙을 위하여 수고해야 함을 절실히 느낀다.



12. 분열 (가이아님)
'미러링'은 수업중 각인된 단어이다. 아들이 한 열살쯤 되었을 때 거울을 보고 노래 부르는 수업을 거부한 적이 있다. 그 후에 미용실에서도 ‘거울보기’ 를 싫어 했다. 그 당시엔 참 특이한 반응이라고 여겼지만 수업후엔 혹시 미러링(엄마의 찬사)을 받은 적이 없어서 ‘거울’ 에 대한 낯설음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의 감정이나 행동을 읽어준 적이 없다. 아이에게 그런 것을 하는지 조차 몰랐다. 내 감정이 그냥 아이의 마음인 줄 알고 행동했던 것같다. 감정은 배제하고 도덕의 잣대로, 완벽한 기준으로 아이에게 늘 모욕을 주었다. 아들이 간혹 숙제장이나 도시락을 놓고 오면 나는 크게 화를 내었다. 아들에게 실수가 용납되지 않았다. 아이는 먹고 싶은 것보다는 몸에 좋은 것을 먹어야 했고, 놀고 싶어도 자야할 시간이면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미안하다. 엄마가 잘 못 했어.” 우리 집에서 그런 말은 존재치 않았다. 난 완벽한 엄마로 보여야 하니까 아이가 넘어져도 “일어나 울면 안돼.” 라는 식으로 아이의 감정을 담아 주지 못했다. 아이가 늘 완벽한 어른이길 원했다. 정작 아이로서 누려야 할 행동이나 권리는 배제당하고 로보트처럼 내 조정에 움직이기만을 바랬다.

분열이 심한 나는 아이의 생생한 기분이나 감정, 상황에 대한 배려를 하지못했다. 나는 우리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거나 함께 공유하는게 불가능하다. 항상 내가 느끼고 경험하는게 그 아이였다. 분열된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아이의 수학여행 전 날 저승사자가 어린 동자를 데리고 가는 꿈을 꾸었다 . 그 꿈을 대수롭지 않게 엄마에게 말했는데 불안이 큰 엄마는 불길하니 여행에 보내지 말라고 하셨다. 나 역시 그 말에 동요되어 수학여행을 못가게 막았다. 사실, 현실적 관점에서 아이의 발달수준에 맞는 적절한 현실적 접촉이나 계발을 전혀 시키지 못하는 나의 심리상태가 반영된 꿈인데 거꾸로 아이를 다시 묶어 놓는 격이 되었다.


아기때부터 나는 엄마의 불안 소지를 줄이기 위해서 아무 것도 하면 안됐다. 다칠까봐 아무것도 놓지 않은 <거울도 없는> 엄마의 안전한 방에만 내가 대장이 될 수 있었다. 나는 그 안에서 맛있고 좋은 것을 실컷 받아 먹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세상 구경을 할라 하면 엄마는 “하지마라. 무엇하려고 그런 걸 하니?” 하면서 내 욕망을 잘라 버렸다. 대신 엄마 전용 양장점에서 옷을 맞춰 주고 전문 과외 선생을 부쳐 주셨다. 나 역시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고 그 대신 과한 물질로 보상했다. 내 것은 안 사고 네 것은 이렇게 좋은 걸로 샀다고 생색을 내면서.

그동안 아이에게 내 모든 것을 희생한 줄 알았다. '최고의 선생님, 최고의 학교' 이렇게 정성을 쏟으면서 내 노고를 알아주지 않는 아이에게 서운해 했다. 그리고 분노폭발로 아이를 내몰곤했다. 내 소통은 늘 이런 식이었다. 내가 원하는 방식이나 수고를 몰라주는 데에 대한 섭섭함 그리고 분노. 상대의 감정은 배제하고 늘 내 마음대로 일을 처리한다. 난 상대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이 그들이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될 뿐이다. 난 엄마에게서 ‘주의 깊게 듣기, 관찰하기, 소통이나 타협하는 법’ 을 배운 적이 없다. 그래서 그 누구와든 대화가 불가능하고 대신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곤 한다. 옳다고 좋다고 생각된 나의 모든 행동에 감사함으로 그들이 환호할 것을 기대하면서.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공허하고 외로워진다. 아직도 난 어린아이처럼 내 입장만을 고집하고 서운해하며 떼를 쓴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떼를 쓰고 나서 인정이 된다. “또 그랬네.”



13. 혼자라는 외로움(갈라테리아님)
나는 혼자 있는 상상을 할 때 가장 힘이 나고 정신이 또렷해진다. 환상안에서 집을 짓고 온갖 것들을 전지전능하게 통제하면서 희열을 느낀다.

정신을 차려보니 현실의 내 곁엔 나를 몰아세우는 성질 나쁜 남편이 있다. 저 눈빛이 싫다. 저 말투가 싫다. 저 몸짓이 싫다. 그 중 어느 것 하나도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의 눈빛이 현실에서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그의 말 뒤에 어떤 상징이 담겨있는지, 그의 몸짓이 유도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는 그냥 성질 나쁜 악마가 되어버렸다. 답답함에 숨이 막혀온다.

20년 가까이 살면서도 낯선 남편은 성숙한 배우자 역할을 할 수 없는 나로 인해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보내고 있다. 또 아이는 현실대처능력이 떨어져 친구를 제대로 사귈 수가 없어 집에서만 머문다. 그럼에도 나는 그저 어떤 문제도 느끼기가 싫다. 여기서 벗어나고자 나름 노력을 하지만 늘 제자리 것 같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나를 힘들게 한 남편을 악마로 만들고 벌 주는 방법을 궁리하느라 몇 일 동안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그리고 에너지가 바닥난 후에야 어렴풋이 내 마음이 보였다. ‘나 너무 무서워. 이것 너머에 아무 것도 없을까 봐. 또 나 혼자일까 봐. 날 좀 도와줘.’라고...

그러나 이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가 무서워. 인간이 한번 죽지 두번 죽니? 지금 못 간다. 네가 알아서 해.” 어린 나에게 감당치 못할 좌절을 준 진짜 악마는 나의 엄마였다. 또 난 외톨이가 되어 세상에 버려졌다. 진절머리가 나도록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고, 어느 누구에게도 가까이 가지 못하고, 어느 누구와도 접촉되지 못하며 사는 나. 이러한 암흑같은 반복되는 삶에서 벗어나 남들과 접촉하고 교류하며 생동감있게 살아보고 싶다.



14. 거절하는 엄마 (판도라님)
도대체 엄마와 나의 유아시절은 어땠던 걸까...? 이 공부를 시작한지 2년이 다 되어가지만 나는 아직도 이 의문에서 헤메고 있다. 엄마와 나의 교류가 월할하지 않았다는 것, 엄마를 무서워하고 어려웠다는 것... 이 생각에서 한발자욱 더 나가 나의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직도 너무 어렵다.

영화 멜랑꼬리아를 보면서 지친 표정으로 힘 없이 널부러져 있는 저스틴의 모습이 마치 나의 모습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스케쥴을 만들어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하루 종일 집에 누워만 있고 싶은 나. 아무 생각없이 눈감고 뒹굴뒹굴하며 시간을 허비하면서 자꾸 땅밑으로 기어들어가는 듯한 느낌.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거대한 나무줄기가 내 몸을 휘감아 나는 꼼짝달싹 할 수가 없다.

나는 늘 '거절하는 엄마'이다. 아이가 뭘 원할때면 기분좋게 Yes 하지 못한다. 아이가 내게 말하기 전에는 나혼자 아이의 욕구사항을 헤아리며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도 막상 아이가 원한다고 하면 갖은 폭언과 질시, 모욕를 퍼부으며 아이에게 절망감을 안겨준다. 아이에게 끝없는 공격과 질투를 해놓고서는 마지막에 못이기는 척하며, 아니 너무 좋은 엄마인 척하며 선심을 베풀듯 아이의 요구사항을 해결해 준다.

우리 아이는 기쁠까...? 아닐 것이다. 엄마가 어린시절 나에게 이렇게 하면 나는 기진맥진하고 허무하고 다 귀찮아져서 막상 내 손 안에 뭔가가 들어왔을 때는 하나도 소중하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았으니까... 엄마가 어린시절 나에게 했던 행동들을 내가 아이에게 똑같이 하고 있다... 끈기가 없어 금새 싫증내고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하거나 지나치게 다가가다가 실망할까봐 내 맘대로 안될까봐 스스로 뒤로 물러나 버려 하루에도 열두번 나만의 드라마를 쓰고있다. 이러한 불안이 내 아이에게 쏠려 공격적으로 나간다. 아무도 보지 않는 나 혼자만의 모노 드라마이다. 그 희생자는 아들이구...

서로 주고 받는 관계를 하고 싶다. 나만의 생각과 염려와 불안에서 벗어나 나와 남이 다름을 인정하고 마음 편하게 의존해보고 싶다. 진정한 대상관계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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