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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푼젤을 보고나서...
위니캇반 7.(rroye@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11년 07월 17일 11:39 2707
1. 나의 전능환상 -지그문트 프로이트님

처음 문을 두드리고 시작했던 강의가 어언 3년째 접어 들 정도로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간 거 같다. "그 동안 자신이 바뀐게 있는가?"라는 질문을 누군가 한다면 슬프지만 없다라고 말할 것이다.

주마등처럼 흘러가는 나의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예전의 나라면 "다시 되돌릴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런 식으로 쉽게 말했겠지만 요즘은 그런 말조차 하고 싶지 않다.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아마 난 똑같은 실수들을 반복했을 거니깐... 내 자신이 지금껏 왜 그렇게 당당하고 자신 있어 했었는지도 이제야 알았으니 말이다.

전능환상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이제는 보인다. 최근까지도 "난 잘 될거야", "남편이 언젠가는 다시 사업이 잘 돼서 나에게 윤택한 삶을 줄거야", "그래서 주변사람들이 나를 예전처럼 부러워하게 해줄거야" 이랬었다.

특히 죽음에 대한 막연한 강한 자신감은 그 전능환상의 정점인가 보다. 예전에 남편과 타이타닉 영화를 같이 보면서 끝날무렵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혹시 저런 상황이 닥치면 나 구한다고 힘 빼지 말고 애들 데리고 가면 남자도 구명 보트 태워 주니까 먼저 탈출해 난 내가 알아서 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정말로 사고가 나면 나만 생존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최근 재난 영화를 보면서 불혀듯 들곤 한다. 이제는 알았다. 그것이 나의 환상이었고 그런 환상이 얼마나 무모했는지를 말이다.

얼마 전 수업시간에 질문한 '아이들이 나를 무서워하는 것'에 대해 당시 선생님의 대답을 듣고도 이해를 잘 하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알겠다. 그 의미를...

아이들이 나를 절대적으로 무서워하는 이유는 내가 라푼젤의 마녀처럼, 나의 필요와 이해에 맞추어 아이들의 모든 걸 통제해 왔었기 때문이란 것을 말이다. 아이들은 오늘도 내 눈치를 보면서 나의 손아귀에 갇혀 탈출할 수도 없는 벽에 가로막혀 그 작은 마음과 작은 머리로 벽을 탕탕 부딛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엄마는 다 안단다..., 엄마가 다 널 사랑해서 그런 거야..., 엄마 말이 다 맞아. 수난을 건너뛰고 엄마랑 같이 있자." 마녀가 라푼젤에게 이런 말들을 할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동안 이런 말들, '자식을 위해서' 라는 명분과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게 결국 나의 착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닳은 것이다. 받고 싶은 걸 주었어야 했는 데, 주고 싶은 것을 주면서 자식을 위하여 배려와 희생을 했다고 착각한 것이다. 마녀보다 더 한 내 자신을 보면서 너무도 괴롭다.

나는 요즘 들어 이상한 구상을 한다. 담주 부터 시작하는 인테리어 공사에 아이들 방에 크게 구멍을 뚫고 유리를 끼워 달라고 했다. 밖에서 잘 볼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그건 아이들의 방을 수시로 들여다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는 의아해 하면서 "아이들이 싫어하지 않을까요?"하고 물어보는데 나는 애써 외면하곤, "그냥 그렇게 해주세요" 했다. 속으로는 "그게 제 아이를 위한 거랍니다"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을 통제하고 늘 들여다 보지 않으면 불안한 이 마음, 이게 화근이다. 아이들이 가엽고 불쌍해서 난 오늘도 눈물이 난다. 그런데 마치 악어의 눈물같다. 아이를 너무 사랑하고 , 수난을 건너뛰게 해주고 싶은것이 아이들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않는 무서운 일들임을 알면서도 나는 오늘도 내 오랜 관습을 멈추기 힘들거 같다.

아마 난 오랜 시간 이런 눈물을 흘리며 지낼 거 같다. 그러고 다시 반복되는 일상들을 겪겠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너무나도 소망한다. 평온한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게 눈에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매어 놓은 그 끈을 이제는 그만 놓고 싶다.




2. 반복강박 -하인즈 코헛님

부모교육이 있던 어느 월요일 아침, 늦지 않으려고 부리나케 준비하고 나왔는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나도 모르게 다시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레인지를 껐는지 전원 스위치를 확인했고 창문들이 제대로 닫혀있는지도 한 번 더 확인하고 나왔다. “어~~” 나의 이런 행동은 자주 반복되었던 것이다.

친정 엄마는 집을 나섰는데도 다시 집으로 달려가서 가스 불이 잠겼는지, 현관문을 제대로 잠겼는지 당신이 문을 잠궈 놓고도 몇 번씩 힘을 주어 열어보는 행동을 반복하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도대체 왜 그래? 그만 좀 해” 하며 그런 엄마의 행동을 짜증스러워했는데, 내가 똑같이 그러고 있었다. 그날 아침, 나는 내 안에 살고 있는 엄마를 발견했다. “악~~~~~~~!. 이건 뭐야, 내 안에 엄마가 살고 있었잖아. 이런, 씨~~~~”

나는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나면 다시 꺼내서 여러 번 헹군다. 세제 찌꺼기가 남아 있을까봐 찜찜해서..., 또한 나는 설거지를 하면 그릇을 끊임없이 헹군다. 남편이 설거지를 해 줘도 나는 그 그릇들을 남편 몰래 다시 헹군다. 집안 청소도 한 번 시작하면 정말 끝내주게 한다. 그러고 나서 바로 쓰러진다.

날마다 엄청나게 씻어대는 내 행동에 남편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수도없이 얘기 했건만 나는 듣지 않았다. 시장에 장을 보러가서 반찬거리들을 한 보따리씩 사오지만 당장 먹을 반찬은 만들지도 못하니 김치 하나만 달랑 꺼내 놓고 밥을 먹기가 일쑤다. 이렇게 비합리적인 행동을 반복하면서 삶을 살고 있다는 것도 정신분석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인식하게 되었는데 비현실적인 나의 모습에 너무나 당혹스럽고, 억울하기도 하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될지 두렵기만하다.


또한 어렸을 때 부모에게 제대로 의존해보고 지원받아보지 못한 좌절로 인해 엄청난 전능환상-전능 통제감으로 나는 내 남편과 아이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는 사실도 인식하게 되었다.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 내 나라 내 왕국에서 나는 내가 왕이 되어 살고 있었다.

'정신적인 병' 때문에 현실을 제대로 살 수 없었던 엄마는 나에게 자신의 비현실적인 세상을 그대로 물려 주셨다. 그 비현실적 세상-왜곡된 현실 속에서 고통 받아 살아왔던 내 삶을 뒤돌아보면서 너무 아파 울기도 했다. 정신분석 수업과 상담치료는 내가 알고 있고, 살고 있는 세상의 경험이 전부가 아니라고, 제발 그 곳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과 공유된 현실에서 살아야 한다고 경고의 나팔을 불며 도와주겠다고 큰 소리로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아직은 희미하게 보이고, 멀리서 들리는 소리처럼 느껴지지만 그 소리의 실체를 놓치지 않고 따라갈 것이다.



라푼젤의 엄마 고델은 자신의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라푼젤에게 늘 “탑 바깥은 무서운 곳이며 연약한 너에게 바깥 세상은 너무나도 위험하다”고 말하며 지나친 과잉보호를 한다. 수업시간에 라푼젤이야기에서 아이를 훔친 마녀는 사실 친모라 했다. '좋은 부모상'에 부합하지 못하는 부정적 엄마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의미라고나 할까. 선생님은 건강한 보통의 적절한 헌신적인 부모의 이미지를 늘 강조하신다.

왜곡되고 부정적인 엄마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고델, 하지만 나는 그녀와 다를 것이 없다. 요즘 우리 딸 아이는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란 노래를 자주 듣는다. 학급 홈피에 들어갈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유행가들... 나는 당장이라도 소리 지르고 싶다. “꺼 버려!.” 또한 난 아이가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들을 사 먹는 걸 용납할 수가 없다. 그런 음식들을 먹으면 당장에 몸이 나빠질 것만 같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에게 매번 몸에 좋고 괜찮은 간식을 만들어 먹인다.

아이가 남편처럼 공부도 잘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고, 나는 어린 시절 가난해서 사립학교를 갈 수가 없었기에, 아이만큼은 좋은 사립학교에 보냈다.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미술을 가르치고 해마다 콩쿨에 내 보내서 상을 받게 하고, 내가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아이의 의견과 상관없이 “넌 이렇게 잘 배워야 해. 요즘 세상에 한 가지만 잘 해서는 인정받기가 어렵지. 넌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해” 거기에다가 아이가 조금만 따라주지 못하면 나는 화가 나서 윽박지르고, 아이가 잘 해서 받는 찬사는 다 내 것이 되었다. 아이가 내 생각과 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으면 나는 견딜 수가 없다.

그러니 딸 아이가 그 나이 또래에 할 수 있는 행동들도 나는 이해해 주지 못했고, 내 생각에 맞지 않으면 절대 안 된다며 그 어느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아이가 내 소유물이 아닌데, 아이를 통해서 내 필요와 만족을 채우려고 했다니... 그 결과 우리 딸은 그 어떤 것도 하기싫어하는 아이가 되었다.

내 생각 - 우리 엄마가 나한테 물려준 비현실적 삶들 - 을 나는 우리 딸에게 그대로 강요하고 있었고 그 안에 우리 아이를 가두고 있었다. "아이가 나 때문에 희생되고 있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네. 이건 정말 미친 짓이야. 정신 차려!"라고 내 자신한테 소리쳐 말한다.




3. 엄마 사랑해요. -마가렛 말러님

어머니는 날 사랑하셨고 많은 것을 주셨다. 사랑도, 온화함도, 때론 피곤함도... 난 어머니가 늘 좋았다. 내게 가장 친한 친구고, 의지체고, 안정지대였다. 결혼하기 전까지말이다. 결혼을 한 후에 어머니와 떨어져 보니, 우리 어머니는 나에게 사랑만 주지 않았다. 나에게 열등감을 주었고, 잔바람에도 흔들리는 약함을 주었고, 40살이 되어서도 작은 것 하나 결정하지 못하는 의존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존재에 대한 인정의 욕구와 강한 의존감을 지녔다. 그리고 가정이나 사회생활에서도 작은 바람에 휘청하여 힘들어한다. ‘진짜 나’, ‘진정한 나의 모습’을 알았을 땐 너무나 슬폈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큰 붓에 의해 그려진 풍경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정말 슬폈다. 분명 나의 어머니는 나를 최선을 다해 사랑 했는데, 어머니에 대한 양가감정이 강하게 일어났다.

다른 사람들은 친정집에 가는 것을 좋아 하지만 ~ 나는 친정집이 어느 때는 시댁보다 힘들고 편안하질 않다. 나는 지금도 친정 부모님과 식사를 하면 많은 말을 듣는다. 이것 먹어라!, 천천히 먹어라!에서 시작하여 한 번도 편안하게 식사를 한 적이 없다. 나는 이것이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알고 자랐다. 나를 정말 사랑하고 위해 준다고... 그런데 그 사랑이 나의 어머니 자신의 성격적 표현이고, 사랑으로 위장한 통제라는 것을 알았을 때~ 정말 듣고 싶지 않았다.

예전이 생각난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 쯤 어머니는 위가 많이 아프셨다. 종합병원에 갔다 오셔서 많은 약봉투를 바구니에 담으시면서 ‘엄마가 많이 아프니,, 이제 엄마 말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 엄마 속 썩이면 큰일 난데...’ 나는 너무나 겁이 났다. 그 뒤로 나는 저녁 식사 설거지며, 집안 청소를 도맡아 했다. ‘엄마가 아파서 죽을 까봐’ 너무나 겁이 났다. 늘 그랬다. 지금도 엄마는 ‘내가 너무 힘들어 죽어버릴 것야, 가슴에 돌덩이가 있어, 내가 니 동생 때문에 미치겠다.’ 라며 나를 옭아맨다.

나는 어머니의 말에 엄마가 ‘아플까봐 아니 죽을까봐’ 겁이 나서 어머니 기분을 맞춘다. 예전처럼 설거지와 청소가 아닌~ 백화점에 가서 옷을 사주거나, 없는 시간 쪼개어 맛 잇는 음식을 사드리는 기쁨조 역할을 한다. 나는 우리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통제 속에서, 어머니의 약한 자의 행포 속에서 라푼첼의 성처럼 갇혀 살았다.

지금도 어머니는 약함으로 나를 가하고, 자신의 굴레로 조정하려고, 통제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 통제와 조정이 너무나 싫어 어머니가 그와 비슷한 제스처를 취하면 나는 미리 짐작하여 강한 방어를 친다. 그런 모습에 어머니는 이제 내 딸이 내말을 안 듣네... 나를 떠나네... 하시며 너무나 서운한 말과 표정을 지으신다.

나는 어머니에게 40년 동안 담아두었던 모든 것을 내놓았다. 많이 울었다. 어머니에게 죄송함보다는 시원했다. 라푼첼이 성에서 나와 진정한 자연 속, 현실속의 공기를 마시고 행복해 하던 것처럼~ 그렇게 시원했다. 마치 밀린 숙제를 한 것처럼...

어머니는 나에게 문자를 보내셨다. “딸아! 정말 나는 너를 사랑했는데... 나는 내가 널 많이 사랑했다고 생각했는데... 미안하구나. 나도 어머니에게 마음의 문자를 보냈다. "어머니 저도 어머니를 많이 사랑해요. 그런데 어머니의 성안의 딸이 아니고 그냥 그대로 나를 보고 인정하고 사랑했음 제가 더 행복 했을 것을 요."

요 며칠 생각지도 못한 일이 어머니에게 생겼다. 많이 울었다.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예전에 나를 사랑으로 기르시고 아끼셨던, 보듬어 주셨던 것처럼 나도 이제 어머니에게 그 보답을 해야 할 것 같다. 오늘도 어머니에게 문자를 보낸다. “어머니 사랑해요.”




4. 나의 참모습 그리고 나의 엄마. -발린트님

난 모범생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내 모습에 대해 크게 불만은 없었다. 그게 당연히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 했었으니까... 가끔 느끼는 외로움이나 무기력함 등을 빼면 그저 그렇게 착하게 잘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중 한명이라고만 생각했다.

무엇을 기대하고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냥 겉으로 들어나는 의식이 아닌 절실하게 어떤 끈을 잡고 싶은 무언가가 나를 이수업에 참여하게 만든것 같았다.

수업에 참여하면서 겉으로, 머리로 열심히 동의하며 아주 잘 이해하는 우등생의 모습이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절대 내 모습이 아니라고 부정하며 듣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난 정말 좋은 엄마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우리 큰아이의 무기력한 모습은 그냥 게으른 문제라고 또한 작은 아이가 어릴적 보였던 분리불안은 내가 시간을 들여 훌륭히 해결했다고 믿고있었으니까...

그렇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일 뿐이었고, 난 그냥 경계가 없고 인기 있는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었다. 좋은 소통을 하고, 좋은 리미트를 세워주는 엄마가 아닌 융합하려고 경계를 무너뜨리고, 아이들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그야말로 침범 그 자체의 엄마였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빨리 알아차리고 잘 해결해 주는 나의 모습은 좋은평가를 받고싶어 눈치를 보는 것이었고, 가끔 따끔하게 혼내는 일은 아이들의 문제와 내 문제를 분리하지 못한체 하는 그냥 나의 화풀이였다는 것을...


라푼젤을 보았을 때 난 그저 독립해 나가는 라푼젤이 부러웠을뿐 침범하는 마녀는 내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나의 모습을 알기 시작하고 나서야 아이들하고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침범해서라도 융합하고 싶어하는 나의 모습을 인정하게 되었다.

나의 엄마는 현명하고 헌신적이며 외롭지만 의롭게 삶을 살아내시는 분이라고 믿고 분명히 그러한 면이 있는 분이시다. 그렇지만 라푼젤을 보면서 내가 하고 있는 침범보다 내가 당해왔던 침범이 먼저 떠올랐다.

어머니 그리고 지금도 생각만 해도 눈물이나는 그리운 나의 아버지는 좋은 의존을 하게 해 주시기 보다는 날 남들의 눈치를 보며, 남들의 기대에 맞게 살아가면서 나에 대한 평가를 내가 아닌 타인들에게 의존하고 구걸하게만든 분들일 뿐이었다.

세상에 그토록 바래왔던 인정 사랑 그런것들은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아무리 원해도 받아보지 못했던 것이었고, 언니에게로만 향한 그 부럽고 샘나는 사랑을 받기 위해 난 항상 착하고 타인의 기대에 맞추고 남의 눈치보기에만 전전긍긍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라푼젤이 잘 해낸 침범하는 부모로부터의 독립은 언니에게나 가능한 일이지 난 그 단어를 상상조차 할수 없는 아이였다.

난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공격성 한번 써보지 못하고 생기를 잃어왔고, 내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한다는 것이, 이기적인 못된 일이라고 느낄만큼 내 자신을 잃어버리고 가족에게 하는 헌신의 모습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게 되었다. 자신을 위해 사는 언니는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고 그런 언니와 나는 다르다고 믿으면서 그 부러움과 시샘을 견뎌냈다.

나보다 더 상처가 많았을 외로운 나의 어머니는 사랑과 애착을 언니에게 쏟아붓고 이제 착한 나에게 절대적 융합을 원하신다. 어머니가 생각하는데로 판단하시는데로 동의하고 그렇게 살아가는건 나밖에 없으니까... 난 효녀가 되어야 했었고 지금도 “너 없으면 나 어떻게 살수 있을지?” 라는 말로 나를 꽁꽁 엄마에세 묶어놓고 싶어하신다.

엄마의 자기애적 측면은 나에게도 똑같이 와서 다른사람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해야할 때 완벽히 의존하고 싶어하거나, 조그만 문제에도 상처받고 격노하고 보복하며 그래서 단절하게 만들거나 상처가 두려워 다른사람들과의 관계를 처음부터 만들지 않게 되버렸으며, 나혼자만의 우아하고 고상한 세상에 혼자살면서 남에 대한 충고나 참견을 소통이라 착각하며 날 끊임없이 외롭게 만들고 있었다.

아빠는 그러한 나를 한번도 봐주지 않으셨다. 나의 짝사랑 아빠는 아빠에게 절실히 의좋하고 싶어하고, 아빠의 사랑을 받기위해 공부하고 노력한 나에게 한마디 인사도 없이 버리고 떠나셨다. 아빠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상처는 아직까지 아물지 않고 있다.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었던 나의 부모님에 대한 사랑은 끝내 받아보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체 끝났고, 엄마는 더 이상 부모가 아닌 내가 안아줘야할 외롭고 가엾은 대상이다.

그 상처들은 나의 감성적 나이를 아이에 머물게 했고, 그것이 성장할 어떤 환경도 없었던 나는 나의 남편을 부모인지 남자인지도 구별을 못해 대화가 안되는 단절된 사이로 만들어버렷다. 남들에게만이 아닌 남편에게도 난 어른이 아닌 사랑받지 못해 안달난 아이일뿐이었고, 융합과 단절과 보복을 반복한 난, 남편과 성숙한 관계를 만들 수 없었다.

그 문제들을 안고 있는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융합을 시도하고, 그것이 사랑이고 모성애라 믿었고 그 침범으로 아이들을 순종하고 착하게 자라도록 강요하고 독립할수 없도만들어왔던 것이다. 조그만 공격성도 사용하지 못하고 나의 융합으로 어른아이로 거짓자기로 자란 큰아이는 자발적으로 무엇을 하기가 힘들고 그런 자기모습에 갈등하다가 무기력해진게 아닌가 하는 자책이 든다.

지금 큰아이가 보이는 무기력한 모습이 나의 잘못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우리 작은 아이도 나의 침범이 계속 된다면 또 다른 문제를 보이게 될 것 이라는 두려움을 느낀다. 지금 내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나는 내 남은 인생을 아무런 생기도 없이 외롭게 우울해 하며 살게 될 것이고, 아이들 또한 나 와 같은 생기없는 외로운 삶을 살아야 하지 않았을까.

난 지금이라도 달라지고 싶고, 남은 시간은 좋은 사람들과 행복해 하며 생기 있게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시도하고 성취할 수 있기는 꿈꾼다. 꿈같은 희망사항이 아닌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는 바란다. 그래서 수업과 상담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낼수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여기까지가 수업을 들으면서 혼란해 하며, 부정하며, 우울해하며 알게 된 나의 모습이다. 그 혼란들이 힘겹기는 하지만 꼭 필요한 것이라고 믿는다. 개학 후 수업에서, 선생님과의 무서운 상담에서 내가 또 어떤 것을 배우고 알게 될지 두렵기도 하지만 내가 보지 못한 진정한 현실을 만나고 싶고 그 현실에서 잘 살아낼 나를 그려보며 나를 정리 해본다.




5. 도널드 위니캇 강의를 듣고 나서... -앨리스 밀러님

4달간의 위니캇 수업시간 동안, 나 혼자로서는 볼 수 없었을 혹은 보고도 이해할 수 없었을 내 마음과 몸의 증상들을 이해하고 놀라워했다. 물론 그 원인을 알았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닐지라도,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깨달음만으로도 마음속의 큰 짐들이 하나씩 내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평생을 유리 막 안에 갇혀 사는 듯한 이 이 막막한 심정을 처음으로 누군가 이해해줬다는 기분. 이제껏 아무도 듣지 못하는 비명을 질러온 내 목소리를 누군가 듣고서 나를 향해 고개 돌려준 느낌. 그 느낌만으로도 억울한 감정이 참 많이 씻겨 나갔다.


괴로워 그렇게 소리를 질러도 가족들 가운데 누구도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듣고서도 멀뚱하니 별 소리 다한다는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내 말이 허공으로 흩어질 때의 그 무력감에 온 존재가 마비되었었다. 내 부모도 그랬고, 사랑한다고 여겨 결혼한 남자 역시 그랬다. 애초에 그들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버렸다는 항변만이 생생했던 내게, 그런 식으로 자아동조된 내가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다시,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부분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고 말해야했을까를 조금은 이해한 지금, 상대와 내가 만들어낸 세계의 비정상성을 밖에서 객관적인 눈으로 관찰하게 된 지금, 이제 원망과 보복의 고리를 끊고 나올 사람은 나뿐이란 것도 알았다.

참 열심히 살아오긴 했는데, 친정 가족과 남편으로부터 뭘 그리 잘되려고 용을 쓰느냐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굼벵이처럼 끈질기게 걸어오긴 했는데, 그 사회적 노력을 지속하는 나는 늘 스트레이트재킷 속에 두 팔이 갇혀 움직일 수도 없는 기분이었다. 입에는 재갈이 물려 소리치고 악을 써도 내 목소리는 밖으로 들리지 않는 그 무력한 상황을 정말 오래 버텨야했다. 아마도 그 노력은 내 말과 감정의 타당성을 어디선가 확인받고 싶은 욕망의 크기에 비례했을 것인데 답이 없는 길을 걸으며 숨 쉴 곳을 찾아 헤매 다녔구나 싶다.


강의에서 들려주는 여러 케이스들을 들으며 목젖까지 울먹해지는 때가 많았다. 그들 안에 내 모습들이 다 들어있었다. 내가 때로 왜 그렇게 포악해지고 자기 안으로 깊이 숨어버렸는지, 세상을 두려워하고 나 아닌 모든 사람들을 다 비난해야했는지, 그래서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마치 남의 케이스처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케이스 속의 그들이 바로 나였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치유의 과정을 들을 때마다, 나 자신이 이해받고 수용되는 경험이 되풀이 되었다. 내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내 사정을 다 알고 여러 각도에서 근원적 고통을 살펴보게 해주는 이 수업은 가장 친밀한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했다는 억울한 감정에서 날 해방시켜줬다.

마음 약한 사람들이, 존중받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북어대가리만큼 거칠고 뻣뻣해질 수 있는지를 나는 안다. 그 뻣뻣함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방망이가 아니라 따듯한 물이라는 것도. 방망이로 나를 길들이려하는 세상에 내가 얼마나 더 거칠게 복수해왔는가.

처음으로 따듯한 물속에 잠겨드는 경험을 했다. 수업을 통해. 그러자 얼어붙었던 몸이 풀리며 녹는 기분이 들었고 점차 부드러운 여자가 되는 기분이었다. 함께 들었던 꿈 분석 수업에서 좀 더 깊은 곳의 내 욕구를 만나본 것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내 몸에 대한 열등감이 옅어지고 생활에서 좀 더 부드럽고 너그러워지는게 느껴졌다. 아파 누워있는 엄마의 몸을 처음으로 만져줄 수 있었고 얼굴을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말로 달래줄 수도 있게 되었다.


내 인생에는 애증의 아버지만 있고, 어머니는 통째로 부재한 무가치한 대상이었기에 내가 평생 따스함을 갈구해 온 것이 실은 엄마를 찾는 아이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고서 맥이 탁 풀리기도 했다. 의식에서는 엄마라는 존재를 폄하해왔기에 내게 그 따위는 필요 없다 여기며 참으로 남자처럼 살아왔다. 속으로는, 무의식에서는, 엄마의 보살핌을 그토록 원하는 여린 아이 마음이면서도. 때문에 나는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른 채 남편에게서 엄마 같은 따스함을 원했다. 그가 내놓는 것마다 다 아니라고 부정만 했지 원하는 것이 뭔지 말하지 않는 내 앞에서 남편이 느꼈을 당혹감이 이제는 이해된다.

남편이 나를 사랑할수록 내 앞에 펼쳐놓는 패는 당연히 모두 남성성을 과시하는 것이었을 텐데, 그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을 텐데, 겉만 여자였지 내면으로는 남자였던 나는 나 역시 갖고 있거나 혹은 그보다 더 많이 갖고 있는 것을 왜 내 앞에서 자랑하려 드는지 이해하질 못했고 나중에는 우습게 보았다.

그리고는 왜 내가 원하는 따스함, 친밀함을 주지 않는가 원망을 넘어 비난을 했다. ‘두 남자의 동거’가 삐걱거리는 것은 당연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무시당하는 열패감. 여자가 될 수 없었던 아내를 둔 남자의 삶은 참으로 고달팠을 것이다. 북어처럼 뻣뻣하게 상대를 상처 내 놓고서, 상대는 알지도 못할 연약함 때문에 도리어 자기가 상처 받았다고 피해의식에 시달리는 관계. 역시 엄마처럼 나도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 그를 내쳤다.

수업을 들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경험은 엄마를 한 인간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자리가 생겨난 것이다. 이해불가의 경멸대상이었던 엄마가 어떻게 저런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자 엄마를 대하는 접근법이 완전히 달라졌다. 언제나 내 말을 쳐내던 엄마가 처음으로 힘없이 내 말을 따르기 시작했고,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랬어요?’ 하며 웃다가 울먹이다가하는 나를 보고, ‘그때는 내가 너희들한테 마음을 주지 않았었다’, ‘나 사는게 힘들어서 너희들을 그렇게 때렸구나’ 하신다.

그렇다고 엄마 집이나 병원을 더 자주 방문하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일로 움직여야 할 때 전처럼 화부터 나지는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드리자, 엄마한테 편한 쪽으로 일을 처리해 드리자는 마음이 들고 전과는 달리 가볍게 몸을 움직여 상황을 처리한다. 그러니 힘이 덜 든다. 동생들은 이전의 나처럼, 응급실행과 입퇴원을 수시로 반복하는 엄마로 인해 피해보는 것에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일단 피하고 보자는 마음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그런 감정의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만도 일단은 큰 변화이다.

내 쪽의 꽉 찬 감정들이 이해받으며 빠져나가는 만큼, 지금은 떨어져 사는 남편에 대한 미움도 줄어들었고 엄마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단순해지고 딸과의 관계에서도 전에는 경시하던 푸근한 엄마 밥해주는 엄마 역할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아버지처럼 남자처럼 생각하고 살아온 것은, 실은 엄마가 없어서 슬펐던 아이가 그 슬픔을 상쇄하기 위해 엄마를 미워하고 폄하하는 식으로 자가발전해 만든 어린아이다운 해결방식이었을 뿐이다.

내 고통과 분노의 근원이 엄마 없음에서 시작되었음을 아는 것만으로도 고슴도치처럼 날 섰던 내 과거가 정당화되는 기분이다. 또 엄마의 빈자리는 채워줄 수 없으면서 아버지의 권위를 들고 지나치게 침입해 들어온 아빠로 인해 생긴 과도한 자의식 때문에 세상과의 만남을 늘 도피해온 나의 행동패턴도 그대로 보였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는건지를 알 수 없어 미로를 헤매는 굼벵이 신세는 면하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가.

이제야 여자처럼 엄마처럼 사는게 무엇인지를 처음 배우는 것 같다. 나한테는 그토록 어렵고 진지하고 무거웠던 일들이 훨씬 수월해지고 있다. 딸로 태어나 여자의 길로 들어서질 못하고 남자처럼 살아온 내가 한 바퀴 돌고 돌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기분이다. 하지만 그간의 여정이 헛발질만은 아닐 것이다.

남자처럼 살아오면서 얻게 된 기술과 기능은 내게 그대로 남아있다. 이제는 내 몸과 마음이 세상과 딱 들어맞지 않아 늘 2프로 겉도는 그 느낌의 근원이 내안의 여성성을 거부한데서 비롯되었음을 알았으니, 잃어버렸던 여성성을 되찾고 과장되었던 남성성이 희석되어간다면 더 풍요롭게 살 가능성도 커진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부모에서 비롯된 내 문제는 이렇게 가벼워졌고 살만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전의 내가 만들어낸 삶의 양상으로 인해 딸이 고통받고 있다. 내 문제로 괴로워 딸에게 충분한 관심을 줄 수 없었던 그 시기, 딸에게는 절대적인 그 시기에 내가 저지른 일에 몸이 떨리기도 했다. 딸이 겪는 여러 문제들의 원인이 고스란히 엄마인 내게 있었다.

그렇게 살아야했던 그 시절의 내가 안쓰럽고, 그런 엄마로 인해 마땅히 받았어야할 사랑과 관심을 박탈당해야했던 딸이 불쌍하다. 되돌아가 고쳐놓고 싶기만 한 몇 장면들이 떠오를 때면 내가 얼마나 못할 짓을 했는지 도망치고만 싶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저지른 일의 과보를 달게 받고 딸에 대한 참회를 하는 길 뿐이다. 이제라도, 마구 어긋장을 놓고 포악스럽게 말대답하고 기어코 엄마를 이겨먹겠다고 달려드는 저 딸을 전처럼 찍어 누르려 하면 안 된다. 풀썩 안고서, 네 생일인데 온전히 관심을 보여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딸의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인정해줄 일이다. 다 큰 애가 어찌 그리 네 생각만 하느냐고 쏘아붙이는 엄마를 향해, 몇날 며칠 한을 풀지 않고 표독스럽게 달려들던 딸이, 단지 그 말 한마디에 더 이상은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지 않던가.

딸은 너무 오랫동안 참아왔다. 이제와서 터뜨리는 그 화풀이를 다만 받아줄 일이다. 사랑을 넉넉히 주지 않는 엄마 곁에서 의젓한 척 하느라 얼마나 고단했을 것인가. 그런 엄마였으면서, 나는 한창 예민할 시기인 중 1에 남편과 별거를 결정하면서 딸 가슴에 또 한 번 못을 박았다. 그 상처받은 마음으로 거칠어진 딸은 왕따를 경험했고 이후 친구 관계에서 극도로 예민해지고 턱없이 자신 없어했다. 이 모두가 엄마아빠로부터 변함없이 든든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자기 의구심에서 비롯된 것일테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아이비리그를 갔어도, 변함없이 자기 곁을 지켜주는 엄마가 있어도, 그 치명적 두 시기에 새겨진 불안의 기둥은 아직도 딸 마음속의 자존감을 무너뜨린다. 그래서 그렇게 과도하게 자기입장만이 중요하고 그래서 인간관계가 어려워진다. 자신만만하면서도 자기 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 관계를 시작하거나 가까운 친구이건만 먼저 전화하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이 여름방학에는, 조금쯤 더 무디고 부드러워진 엄마가 되어 딸의 마음을 보듬어주어야겠다.




6. 내가 나인 것이 좋다. -도널드 우즈 위니캇님
우리 아이는 놀이치료를 2년 째 받고 있다. 상담 결과는 잘못된 양육 방식으로 인한 아이의 스트레스가 높다는 게 이유였다. 나는 남편과 함께 부모 상담을 받았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아이가 내게 분노와 적대감이 많다는 것과 검사 결과 부부 문제에서도 내게 문제가 많이 있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남편은 잘 하고 있으니 부부가 서로 도와 문제를 잘 해결하라고 하셨다.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너무 화가 나서 그곳의 부모 상담을 몇 번 밖에 받지 않았다. 나는 다른 곳에서 확인 받고 싶었다. 내게 문제가 있기보다는 아이가 예민한 것이고, 남편에게도 역시 나만큼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그래서 프로이드 연구소에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검사 결과 나는 편집적 성향으로 주변인과 관계 맺기가 너무나 힘든, 의존도가 매우 높은 그런 사람이었다. 검사 결과를 듣고 정말 눈앞이 캄캄하여 몇 시간 동안 앞이 보이지 않는 신체화 증상을 겪을 만큼 결과는 내게 너무도 충격이었다.

이제 부모 교육을 들은지 8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어느 선까지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수용하게 되었지만 나를 들여다보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들여다보면 볼수록 나는 엄마였고, 엄마는 곧 나였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엄마의 눈으로 아이를, 엄마의 눈으로 남편을 대하면서 내 인생에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처럼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로 “유서방은 부모 없이 자라 가정 교육을 못받아서 그런거니까 니가 다 참고 살아라”라는 말을 계속 듣고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내 남편이 못 배워서 그런 행동을 하는 거라서 내가 참고 산다는 착각을 했었고 “니네 애는 다른 애들이랑 다르게 너무 예민하고 까탈스러워서 키우기가 너무 힘들다.” 혹은 아이가 아이다운 행동을 해도 “니 엄마 힘들게 하지 말고 니네 아빠한테 해달래, 지 아빠를 닮아서 애가 힘들어” 같은 얘기를 들으면 난 우리 애가 정말 버릇이 없는 애인 줄 알았고, 할머니를 힘들게 한다는 이유로 버릇을 고쳐준다고 무섭게 하였다.

나와 엄마가 현실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고, 우리의 생각이나 행동이 얼마나 이상한 지를 정말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나는 부모 교육과 상담을 통해 라푼젤처럼 그 성 너머에 활기차고 자유롭고 신선한, 그리고 엄마 눈치 안보고 엄마 말을 안들어도 하나도 불편하지 않고 더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현실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함께 살던 엄마에게 이제 우리 분리해서 따로 떨어져 살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말했고, 엄마는 내 말에 배신감으로 치를 떨며 “네가 나를 쫓아내는 거냐”고 격노하며 더 이상은 가까워지기가 힘들 정도의 말들로 나와 내 남편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런데 엄마가 쏟아내던 그 말에 예전 같으면 “미안해, 내가 힘들어서 그랬어, 앞으로 잘 할게, 내가 제 정신이 아니었나봐, 우리 애들이랑 내가 엄마 없이 어떻게 살아?”라고 했을텐데 그런 얘기가 이상하게도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이제 엄마와 떨어져 산 지 2주째인데 이사 가기 전부터 지금까지 아직도 나는 계속 비슷한 꿈을 꾼다. 내가 새집으로 이사를 가서 부푼 마음으로 주방의 수납장을 열었는데 엄마가 그릇을 다 정리해 놓은 꿈, 내가 집에서 아이들과 자고 있는데 내 집으로 한 밤중에 엄마가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 꿈, 새집으로 이사를 갔는데 갑자기 현관 옆의 방에 엄마가 이미 살고 있는 꿈, 내 집에 아무 때나 엄마가 먹을 것을 들고 찾아오는 꿈들을.

그리고 꿈에서 깨면 항상 중얼 거린다 “엄마 제발 그만 좀 해. 제발, 제발”.

처음에는 엄마가 너무 원망스럽고 미웠다. 정말 저주스런 말을 실컷 내뱉어도 분이 가시지 않을 만큼. 그러나 올 해 엄마가 한식 즈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산소에 다녀오시던 날 내 앞에서 울며 “나는 니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너무 원망스럽다. 자식만 많이 낳아놓고 공부를 제대로 시키기를 했나, 밥을 실컷 먹여주기를 했나, 말 안 듣는다고 작대기로 때리기나 하고 난 어릴 때 매 맞기 싫어서 엄청 도망 다녔다. 그런 친정이 싫어서 아주 멀리 시집을 왔건만 오늘날까지 나 사는 것도 그렇고 니네 이모나 외삼촌들 사는 것도 그렇고... 친정 식구들만 생각하면 잘된 사람이 없어서 너무 속상하다. 너는 나같이 살지 말아라” 말씀하시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날 이후로 나는 엄마를 이해하는 게 좀 더 편해졌던것 같다. 그리고 내 엄마도 아기였고 학생이였고, 아가씨였을 때도 있었을텐데... 엄마가 불행한 시대에 태어나 좋은 양육을 받은 경험이 없는 참 안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요새 부모 교육을 통해 조금씩 달라지는 나를 느낀다. 아이와 남편의 말과 행동, 표정이 그것을 말해주기도 하고, 남들을 조금씩 의식하지 않고 소신껏 말하는 것도 늘고 있고, 어떤 말을 들어도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나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더 잘 성찰할 수 있어야 하고, 내가 자기 중심적이라 타인의 마음을 잘 공감할 수 없지만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사실 살면서 노력을 하지 않고 누군가가 다 해결해줘서 거져 살았기에 수고로운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 내게는 너무 어렵다. 그러나, 이제 그 노력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해서 내 안에 숨어있는 내면의 아이가 성숙하도록 도울 것이다. 40대에는 내 얼굴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앞으로 더 편안해지고 나날이 발전해갈 나를 생각하니 매우 흐뭇하다. 선생님의 도움 항상 감사합니다.




7. 거짓자기 -해리 건트립님

부모교육 두 번째 강의 위니컷. 최근 들어 자꾸 생각나는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이 있다. 내가 5,6살 때인 것 같다. 엄마 아빠와 함께 고궁에 놀러 갔는데 엄마 아빠가 나의 뒤에서 속삭인다. “우리 한번 숨어볼까...?” 나는 분명히 엄마 아빠가 일부러, 나를 놀리시려고 숨은 것을 아는데 막상 엄마 아빠가 내 눈 앞에서 사라지자 고궁 한 가운데에 앉아 소리지르며 운다. “앙~~ 엄마~~ 엄마~~” 한참이 지나 엄마 아빠는 웃으시며 나에게 다가온다. “엄마 아빠가 널 다보고 있는데 왜 울어. 바보같이...” 이때 울고있는 나의 모습이 사진첩에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어린 시절의 나. 항상 아빠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큰 언니. 엄마의 이쁨을 받던 작은 언니. 그리고 집에서 가장 소중한 아들... 남동생. 난 이 형제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귀여움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았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참패.

내가 아무리 공부해도 큰 언니를 따라잡을 수 없었고, 아무리 애써도 작은 언니의 야무짐을 배울 수 없었고, 난 단지 집 안의 귀한 아들을 낳기 위해 태어난 셋째 딸에 불과했다. 그래서 난 항상 엄마 아빠의 눈치를 살피고 알아서 움직이는 비서같은 존재, 내 자신의 의견은 말하지 못하는 ‘착한 막내’ - 거짓 자기- 로 살아왔다.

나는 엄마 아빠와 융합하려고 몸부림친 것이다. 하지만 나의 엄마 아빠는 자기애적 성격으로 그런 나를 당연하다는 듯이 키우셨고 그러한 습관은 커서도, 사회생활 속에서도 계속되어왔다. 나보다는 남의 눈치를 살피고 남을 배려하고 좋은게 좋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그게 당연하고 모두를 위한 좋은 것이라 여겼다.

결혼 후엔 어느 자식보다는 친정집을 들락거리며 자주 전화하며 부모님의 일거수잍투족에 관심을 보이며 상냥하게 심부름을 한다. 내가 우리 남매 그 누구보다도 부모님에 대해 잘 알고있어야 사랑받을 것 같아서...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가 생각하는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으면 격노에 휩싸인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보복을 하고 모든 것이 상대방의 탓이라고 나는 이용당한 것이라고 여겨왔다. 이런 상황이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

착한 우리 큰 아들. 엄마의 포악함과 경계없는 행동을 단순히 아들이라는 이유로 당하고 있다. 나는 라푼젤의 마녀 고델처럼 겉으로는 아이를 위하며 아이를 사랑한다는 변명 하에 아들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감시하고 생각대로 아이가 움직여주지 않으면 격노하고 화풀이한다. “내가 널 제일 잘 알아. 세상은 위험하고 넌 엄마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모든 게 엄마가 널 사랑하기 때문이야..”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수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러한 행동은 내가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나는 아이에게 존재감보다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통제와 구속, 침범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우리 아이는 나를 그리워하며 무서워한다.

얼마 전 피곤함에 지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자고 있는데 미국에 계신 엄마 아빠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전화를 억지로 받았는데 “우리 예쁜 막내~~”라는 아빠의 목소리에 “왜 자꾸 나한테만 전화하는데----!”하며 고함을 지르곤 전화를 끊었다. 잠시 뒤 잠에서 깨어난 나는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을 못하며 안절부절... 서둘러 전화기의 수신내역을 찾아보았다. ‘아! 나 때문에 엄마 아빠가 서운해 하시면 어쩌지...? 놀라셨을텐데...’ 그런데 그건 꿈이였다. 난 꿈 속에서 엄마아빠에게 소리치며 나를 놓아달라고 애원했던 것이다.

조금 전의 불안감은 사라지고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도 부모님의 사랑을 애걸하는 나는 다음날 엄마아빠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안부전화를 한다. 그리곤 갖은 애교를 떨며 또다시 엄마아빠의 비위를 맞춘다,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나도 엄마 아빠에게 나의 참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서운해 하실 수도 있지만 사랑으로 버텨주시겠지.’ 엄마 아빠와 진정한 융합을 하고 싶다. 그리고 내 아이에게도 허울좋은 부모가 아닌 건강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다. 라푼젤처럼 엄마의 세상에서 나와 진정한 나를 찾고 싶다.




8. 남편과 나 -이디스 제이콥슨

남편과 결혼한지 내년이면 10년된다. 10년 전이지만 남편을 결혼상대로 생각하게 된 과정을 생각하게 되면 새삼 나의 취약성이 느껴져 전율이 일어난다. 나는 30대 중반의 늦은 나이까지 연애를 한 번도 해본적이 없고 결혼을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린다는 것에 대해 관심도 없었지만 제일 두려운것은 어떻게 모르는 남을 만나서 여생을 함께 하고 살 수 있는지 무모하고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였다.

세상에 믿지 못할 것이 사람인데, 무얼보고 그런 결정을 하는 걸까... 나는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해서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보통 사람들이 용감하기도 하고, 생각이 없기도 하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가던 중 만나게 된 남편은 같은 직장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나에게 별 관심이 없었고(과장되거나 강렬한), 술을 좋아하는 모습이며 하다못해 과거 연애사까지 보여주는등 나에게 포장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단지 그러한 사실, 즉 결혼을 위해 사람들은 무언가 부풀리고 속인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나는 더이상 속을 것은 없겠구나라는 생각으로 남편과 결혼하게 되었다.

사랑에 대한 확신과 신뢰보다는 최소한의 기만은 피할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에서 선택 된 남편은 별로 좋을것도 없는 조건과 나에 대한 열렬한 애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사실, 남편이 나를 좋아한다는 확신이 없었다. 단지 내 조건이 좋으니까 결혼을 했겠지하는 생각이 들면서 남편이 조금이라도 내게 서운하게 하면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남편의 애정에 확신이 없으니 대수롭지 않은 말도 모욕으로 느껴져 격노하여 큰 싸움을 만들고, 남편이 내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조해주지 않으면 공격당하는 느낌이 들어 참을수가 없었다. 휴일에도 내가 정해놓은 스케쥴대로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참을 수 없이 화가나서 집안 분위기를 않좋게 만들어 놓곤 했다.


왜 이렇게 남편이랑 얘기가 않되는 걸까. 그냥 한지붕에서 말없이 살더라도 이 정도면 그냥 살아가는게 맞는건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 남편과 점점 대화가 사리지고 모든 게 짜증스럽고 흥미가 없는 일이되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어느순간부터인가 남편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남편과 10년 가까이 함께 살면서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남편에 대해 잘 아는게 없다는 생각이 들자 좀 당황스러워졌다.

솔직히 남편이 나에 대해 맞춰주기만을 기다렸지 남편이 어떤 생각을 갖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는 관심도 없었고, 그건 남편이 알아서 할 바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힘든 이야기에도 공감해주기 보다는 짜증스럽고 나를 힘들게 한다는 생각에 미워지기까지 했다.

그러한 내모습은 바로 친정 엄마의 모습이었다.

엄마는 주위사람을 그대로 보지 못했다. 항상 타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면의 다른 뜻이 있다고 믿으며 신경을 곤두세웠고 자신의 우울모드를 자식들이 맞춰주지 못하면 격노하곤 했었다.

결혼을 얼마 앞두고서 엄마는 남편과 서로 사랑하며 살라는 말대신 남편에게 특별대접을 받으라했다. 나는 엄마의 얼굴을 보며 '특별한 대접'이 뭘까... 그건 엄마한데 받는게 아닐까, 엄마가 주지도 않은 걸 왜 신랑하데 요구하라고 하나 하며 의아해했었다.

항상 아빠가 당신을 존중하지 않는다며 자식들앞에서 무시하시고, 드라마에서 나오는 이상적인 남자를 보면서 그런 남자랑 결혼하지 못한걸 억울해 하셨다. 엄마의 이러한 마술적 사고는 내안에 강하게 남아서 가족들이 늘 내 기분에 동조하기 바랬고, 남편이 본인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해, 싸울때면 남편과 대화가 아니라 남편의 대사까지 예측하고 거기에 맞춰서 '역시 너는 이런 사람이었어, 내가 맞았어... 아니 엄마말이 맞았어...'라는 결론을 내게 되었다.

사실은 나를 힘들게 하던 엄마, 나를 존중해주지 않고 나의 감정을 무시했던 엄마에 대한 분노가 남편에게 투사되어 과거 엄마와의 관계를 재현하여 서로를 힘들게 하고 있는 것 같다. 남편은 엄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끊임없이 불편한 관계를 재현하고 이를 통해 어떤 보상을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곤 한다.

어렸을때 엄마한데 받지 못한 존중과 관심으로 인해 나는 더욱 더 나에게만 에너지를 쏟게 되며, 때론 자기를 좀 봐달라는 남편의 얘기 조차 귀에들어 오지 않는, 그리고 최소한의 식사준비도 너무도 힘든 일이 되어버리곤 했다.

나에게 가장 충격이 되었던 거는 항상 손해보고 피해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사실은 남편에게 가족을 얼마나 외롭고 힘들게 하고 있는냐는 거다. 항상 수치감, 전능환상에 사로잡혀 내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집안일을 하는 것은 내 살을 떼어주는 것처럼 아프고 힘들며 쓸모없는 일이 되어버려 남편의 욕구를 무시한 것이다.

강의를 듣고 조금은 달라진게 있다면 남편에 내 의사와 감정을 표시하는 것이다. 예전같으면 수치감때문에 내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고 남편과의 오해를 쌓아두었다면 이제는 조금은 내 감정과 생각을 얘기하먄서 나를 표현하게 된 것이다.

'남편은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라는걸 조금은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남편에게 따뜻하게 다가가지 못하고 차갑게 관계를 거부하거나, 아니면 관계안에서 융합되고자 하는 욕구때문에 아직은 미숙하게 상처주고 받는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래도 이제는 조금씩은 내 앞에 나 아닌 사람이, 또한 가장 가까운 사람이 있음을 느끼며 참된 대화를 조심스럽게 시작하고 싶다.




9. 존재의 연속성인 '쉼' -해리 스택 설리반

나는 늘 뭘 해야만 존재감을 느낀다. 하지만 무엇을 고되게 하고 나서도 너무 지치기만 하고 만족감이 없고 화가 난다. 난 한 때 하루, 10시간 이상 한 번도 앉아보지 않고 환자들을 치료했었다. 그런데 그 일로 얻은 보상을 기가차게도 누리지 못했다.

물론 누가 빼앗아 간 것은 아니고, 내 욕구와 욕망과 상관없는 것에 다 소모해 버렸다. 쓰지 않고 모아둘 수도 없었다. 다 써버려야 했다. 나는 그렇게 힘들게 많은 일을 하고도 그 당시에는 구두 한 컬레 사지 못했다. 눈치가 보여서... 아무도 눈치 주는 사람이 없는데말이다. 아,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었는지?

나는 생애초기에 엄마에게 충분히 의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번 위니컷 강의를 들으면서 내 불안한 강박적 행동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힘들게 일 만하지 않아도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드라마를 보고 키득거려도 아무도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는 것을...

내 자신의 소중함, 나 그대로의 존재함, 사람이 대단한 일을 해 내지 않아도 인격 그대로 편안하게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는 다른 사람과 주고 받고 교류하면서 사는 삶도 있었다.


내가 예전에 살아 왔던 시간들은 '존재감' 없이 상대방에게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오직 강박적으로 쫓기면서 주변을 통제하고, 통제되지 않는 것에 화를 내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나도 힘들었고,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내 동료와 직원들 조차 힘들게 하지않았을까싶다.

불행했다... 이 불행이 나의 생애초기 엄마와의 관계에서 온 것임을 이번 위니컷 강의를 통해 배우게 되었다. 수업이 진행될 수록 난 많이 멍해졌고, 부인하고 싶고, 무조건 공부내용을 피하고 싶고, 덮고 싶었다.

엄마을 이해해 주어야 하는데, 우리 엄마도 나를 이렇게 키우고 싶지 않으셨을텐데... 엄마도 할머니에게 좋은 것을 받았다면 나에게, 오빠와 언니에게 그렇게 의존을 받아주지 못하면서 조정하고 융합하고 경계없이 혼란을 주지는 않았는텐데...

공부를 통해서 엄마가 우리를 이렇게 키우신 것에 대한 이해가 생겨나고 있지만, 요즘은 엄마를 만나는 것이 힘들다. 왜냐하면 우리 가족이 제대로 서기위해 많은 노력중인데 그래서 아이들을 보듬고 경계 세우는 것이 버거운데, 엄마를 만나면 나의 혼란이 가중되어 더욱 힘들어 지기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공부를 더 하면서 나 자신이 엄마에게 도움과 위로가 될 수 있을 때를 기대는 하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서글프지만 어쩔 수 없다고 내 마음을 다독여 본다. 이런 엄마관계로 인해 난 우리 아이들에게 튼튼한 의존을 주지 못했고, 엄마와의 좋은 경험이 없어서 아이들에게 잘 맟춰주지도 못했었다.

병원에서 나름 능력도 있고 인기있는 의사였지만 그 모습이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 의사라는 권위적인 직업때문에 나의 사회성 부족과 소통부제가 들어나지 않았던 것인가 보다. 그래서 그러한 좋은 영향이 그다지 나에게 긍정적으로 미치지 못했던 것같다.

난 아직도 내가 원하는 것이 수치스럽고 무가치하게 느껴진다. 내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즐겁고, 현실에 발을 딛고 튼튼히 서서 나와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과 자연과 문학을 누리고 느끼고 싶다. 아주 어릴때 부터 나는 세상에, 엄마에게 내 자신을 맞추고 순응하며 하루하루 연기하듯 힘겹게 살았던 것 같다.

그동안 집도 직장자리도 참 많이 옮겨다녔다. 안 좋아서가 아니라 좋아도 옮겨야만 했다. 내 안의 좋은 것이 내 무의식에서는 용납이 안 됐던 것 같다. 이제 난 나를 찾고 싶다. 내가 나를 소중하게 느낄 때 더욱 내 두아이을 편안히 바라볼 수 있고, 아이들에게 반응해 주고 때론 교육을 위해 안 되는 경계를 세워주며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의 소중함을 만나고 싶다.

예전과 달리 난 근래 병원에 나가서 반나절 근무하는 날이 기다려진다. 사람들에게 짜증나는 것을 숨기고, 친절을 가장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위니컷 가을학기가 기대된다. 두려움을 떨치고 거짓된 나를 벗고, 진실하고 행복하게 사람들과 관계하는 비전을 위해서 선생님과 함께 노력해 보고 싶다. 수고하신 김은옥 선생님과 함께 들었던 어머님들께 박수들 보내드린다.




10. 엄마, 내가 더 사랑해요. -오토 컨버그님

나는 언제나 혼자였는데, 어릴 적 동무가 되어준 것은 산이었다. 혼자 공터에 앉아 왠지 모를 서러움에 서글프게 울었다. 실컷 울고나면 다시 모든 걸 맞춰줘야하는, 그래야 사랑 받을 수 있는 집으로 되돌아 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마음에 나를 알아주지 않는 가족들이 원망스럽고, 하기 싫지만 인정받기위해 애썼던 현실에 대해 너무나도 억울했던 거 같다.

라푼젤은 말한다. “엄마! 내가 더 사랑해요!” 나또한 삶에서 온 몸으로 이를 실천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무의식의 나는,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이 항상 불안할 뿐이다. 혹시 지금도 나에게 뭔가를 바라고 있지는 않을까? 제발 나를 그냥 놔뒀으면, 건드리지 말아줬으면... 정말 바라고 기도한다.

사람관계에서는 주고 받지를 못하고, 늘 타인을 배려하고 그 사람을 더 이해하는 척하고, 양보해서 겉으로만 그들과 잘 지내는 듯 어울렸던 것 같다. 그 결과 언제나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는 피해의식만 컸다. 눈치를 보면서 타인의 기분을 맞춰주어도 그들은 똑같이 나에게 해 주지 않았을 뿐더러,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늘 억울했다.

또한 나는 고집불통에다 나만 잘난 사람이다. 내속에 이상적인 삶을 만들어놓고 문제가 생길때마다 내속의 나에게 물어보고 문제를 해결해왔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말은 항상 무시하는 내 생각이 정말 맞는 것이라고 착각했었다. 왜 이렇게 답답하고 불안한 스스로 불쌍하게 만드는 삶을 살아왔을까? 사실 난 내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 의존 할 누군가가 너무나 절실히 필요했다.

내 마음은 요즘에도 산(어릴적 울던 곳을 상상한다)을 찾아가고 있다. 시부모님, 아주버님, 남편, 아이들과의 관계속에서 늘 맞춰주고 살아야하는 나를 어루만져주기 위해서이다. 산에서 서글프게 엉엉 울던 아이는 아직도 그 상태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하지만 산을 아무리 찾아도 이제 더 이상 내 마음의 평화를 찾기 힘들다.


우리 아이가 나처럼 조숙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무의식에서 내가 부모에게 했던 것처럼 나에게만 맞춰주지 않으면 화가 나서 아이에게 짜증을 부린다. 그리고 내가 기분이 좋을 때만 아이에게 사랑을 말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무의식적인 거절과 격노로 상한 마음만큼 보복을 한다. 아이가 상처 받는 줄은 모르고...

부모교육을 받기 전에 '왜 우리 딸은 저럴까' 나를 정말 힘들게 하는 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수업을 통해 아이가 왜 그러한 행동을 하는지, 내가 또 아이에게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매일 한숨을 쉬어도 풀리지 않았던 답답함의 원인을 조금 알게되었다.

나는 자라고 싶다. 산에서 울지 않고 산에 기분좋게 올라가 “야호”를 부르고싶다. 모든 것에서 해방된 편안함을 가지고 싶다. 조숙했던 어린시절의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나'를 찾아서 평범한 엄마, 아내, 딸이 되고싶다.

수업을 통해 나라는 사람의 진실을 보고 느끼며, 가슴 아프고 너무 서러울 때가 많아서 며칠동안 운적도 많았다. 나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이 정말 피하고 싶을 만큼 불안하고 무섭기는 하지만 그것이 내 삶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또 나를 얼마나 풍요롭게 해 줄 것인지 기대되어 지금은 참 소중하다. 예전보다는 내 자신이 무턱대고 그리 불쌍하지는 않다. 앞으로 잘 살 수 있을 것이고, 부모교육이 의존의 문제로부터 나를 구해줄 내가 붙들어야할 동아줄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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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위니캇강의를 마치고...  부모교육반17.01.17
26 중간대상  부모교육반16.08.01
25 나의 자아발달  프로이드반15.12.13
24 페어베언의 '도덕적 방어'  페어베언반15.07.28
23 코헛강의를 마치고.  코헛반14.12.23
22 두번의 위니캇 강의를 마치고.  위니캇반14.08.06
21 내가 인간관계를 잘 못하는 이유  위니캇반13.12.31
20 프로이드 강의 후기  프로이드반13.07.26
19 하인즈 코헛 후기  하인즈 코헛반12.12.28
18 페어베언 강의를 마치고...  페어페언반12.07.23
17 이별과 상실(경계선 인격장애)  위니캇반 8.11.12.25
16 라푼젤을 보고나서...  위니캇반 7.11.07.17
15 4년의 상담을 마치고  자유인11.05.17
14 위니컷 수업을 마치고  위니컷반6.1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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