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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의 상담을 마치고
자유인
2011년 05월 17일 22:11 1928
* 내 어릴 적 기억은 아주 희미할 뿐 아니라 학창시절 기억도 거의 나지 않는다. 멀쩡한 명문학교를 다녀 놓고도 "나는 검정고시 출신인 가봐" 쓴 웃음을 지며 친구 하나 없는 슬픔을 감추어야 했다. 제대로 관계한 사람 하나 없는 세상을 한탄하고...외로워하고...저주하고...격노하며...

어릴 적부터 나는 늘 실수했고, 넘어져 멍과 상처를 달고 살았다. 그런 나를 엄마는 '저런 덜렁이'라고 놀리셨다. 엄마의 놀리는 말투 속에 숨겨진 비난으로 상처가 컷다. 급기야 나중에는 난 원래 그런 아이라며 자연스레 엄마의 맞춤형 덜렁이가 되고 말았다. '맞지! 난 덜렁이니까...'

커서도 항상 이런 자신을 비관하며 스스로를 '불운의 여자', '재수없는 불쌍한 인간'으로 치부하며 살아왔다. 절대적으로 나 하나 보호해줄 사람 없는 현실세계의 불공평에 대해 한탄하는 증오만 컸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럭저럭 아니, 잘 사는데 왜 나만! 나만! 이렇게 살아야하는지 억울해하고 또 억울해했다.

시간 약속을 제때 못 맞추고, 약속장소가 아닌 엉뚱한 장소에 가있고, 잦은 자동차 접촉사고에, 준비를 아무리 철저히 해도 한 가지씩 꼬~옥 빼먹는 등등의 일들은 자동적으로 나만 바로 나만! 힘들게 살라고 만들어 놓은 세상의 불공평으로 느껴졌다. 나는 너무 억울했다. 나를 도와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하면서 힘들고 약한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 누구와도 진실로 관계 맺지 않았다.

사실, 그 어떤 누구도 믿지 못했기 때문에 '난 지금 너무 힘들어요. 당신의 도움이 절실해요.' 를 감히 표현하지 못했다. 아니 해본적도 없고, 어떻게 하는지도, 더 솔직히는 보통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소통하고 좋은 교류를 하고 사는지 몰랐다.

나를 괴롭히기 위해 만들어진 현실세계는 나를 모함하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만들 뿐이라고 생각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세상의 그 누구도 내 곁에 없었기에, 나는 우울하고 무력하게 신체와 정신 모두 점점 마비되어 갔다. 그로인해 누군가와 소통하고 관계할 수 있는 심리적이고 물리적인 에너지가 없었다. 심지어 내 남편, 아이들에게도 잘 해줄 수 없었다.

어렸을 적부터 시작된 나의 격노와 증오는 오랫동안 숨어 있었을 뿐 해결되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자동적으로 소중한 사람들에게 잔인하게 아무 죄책감 없이 증오가 뿜어져 나와 남편을 괴롭히고, 아이들을 방치하고, 시부모님을 악마로 만들어 버리고... 끔찍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자동적으로 일어난 정신 구조적 문제였기 때문에 실제로 나는 나의 파괴적 행동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었다.

가뜩이나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시달려 죽겠는데, 시어머니는 시집살이시키려 안달이고, 남편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이고, 아이들은 나를 들들볶고 못 잡아먹어 난리고...오로지 죽고 싶다는 생각과 이 지긋지긋한 집구석에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지옥같은 세상, 왜 내게 이런 가혹한 일들이 벌어지는지 억울했지만 간혹 정신이 들면 그 여유로움에 나 혼자 애쓰고, 참고 그들을 용서해 준다고 착각했었다.


긴 시간동안 정신분석을 공부하면서 이런 불쾌하고 짐스러운 삶의 무게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온전한 지지를 받지 못해 고착된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혼인 전에 나를 임신했기 때문에 본인의 인생이 망쳐졌다는 피해의식으로 자살을 결심했었다 말했다. 당연히 뱃속에 있는 내가 수치스러워 없애버리고 싶었을 테고, 난 태어나기 전부터 버려짐을 경험했을 테니, 우울하고 늘 수치감에 시달리는 나의 존재감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엄마는 평생 편집증적 망상에 시달렸는데, 본인이 모든 것에 희생당했다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가족을 들들볶고 갑자기 격노하다가 급 우울상태에 빠져 드러누워 가족 모두를 방치하곤 했다. 난 엄마의 변덕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늘 혼란스러웠다. 너무 무섭고, 외롭고, 힘든데 보살펴주거나 보호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현실을 도피하고 망상 속에서 부자가 되어 돌아오는 마음씨 좋고 능력있는 친엄마를 원하고, 백마탄 왕자님이 이 고난에서 구출해 주길 바라고 또 바랬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부자가 되어 돌아온 친엄마도, 백마 탄 왕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친엄마 대신 돌아온 건 무시무시한 괴물같은 시어머니였으며, 백마 탄 왕자님은 고사하고 바보 온달 같은 남편이 전부였다. 내 인생의 1부에서 엄마에게 희생되었던 것처럼, 슬프게도 인생 2부에서는 평강 공주가 되어 시어머님과 남편을 보살피는 가련한 희생녀가 다시 되고 말았다.

반면에 영화 '트와이라잇'에 등장하는 에드워드처럼 날 위해 모든 것을 함께 하고 너가 나, 내가 너와 하나가되는 꿈을 꾸는 그런 마술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끊임없이 융합욕구가 솟아올라 강렬하게 그 누군가와 퓨전하려는 관계를 하곤 했다. 누군가와 전화를 하면 언제 끊어야 할지 모르고, 만나면 헤어질 줄 몰라 인사를 하고도 주차장에서 다시 몇 분에 걸려 인사를 하며 다음 약속을 정하고, 집에 와선 날 내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에 다시 전화를 걸어 긴 통화를 했다. 그러고 나면 에너지가 고갈되어 정작 해야 할 집안일과 보살펴야 할 아이들을 방치하고, 우리 엄마처럼 이불속으로 숨어 버렸다.

"남편이라는 존재는 마냥 귀찮아 죽을 지경인데, 아이들은 따라다니며 징징거리고, 시부모님은 사사건건 참견하시며 숨 막히게 하고, 세상 밖을 봐도 나를 질투하고 헤치려는 사람들 뿐..."

엄마로부터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을 못 받은 억울함을 두 배 채워 줄 내사랑이 곁에 없어 난 지겹게 외롭고 우울했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거니? 언제 내게로 와서 날 구해 줄거니? 어디 있니 에드워드... 나에게 있어 우울무드는 삶의 시작부터 아마 영원히 계속 될 것이다. 다만 내가 인식하며 스스로 벗어나려 끊임없는 노력만이 살만한 세상으로 나가게 할 뿐...


엄마에게서 날 보호해주지 못한 아빠는 너무 무기력하셔서 사실 오랫동안 존재조차 잊고 지냈었다. 정신분석 공부하면서 돌이켜보니, 날 방치한 아빠는 엄마 하나만 보살피기도 벅차서 나를 지켜주기가 어려웠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엄마 곁엔 평생 헌신한 아빠가 있었는데, 난 아무도 없잖아, 너무 억울해!. 불공평 하잖아!" 하고 펑펑 울었다.

단절된 아빠를 대신하여 날 보살펴주고 절대적으로 지지해 주는 새로운 힘있는 아빠를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혼란 속의 나는 현실에서 무차별적으로 사람들과 경계없이 관계 맺으려 했는데, 학교에 가서는 선생님들에게 아빠와 엄마의 사랑을 기대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의사선생님들에게 부모와 같은 따뜻한 보살핌을 바랬다. 어느 곳, 어느 사람에게나 무조건적 사랑을 마구 갈구했다. 다른 사람의 삶과 내 삶이 같은 것이라 착각하며 나만의 마술세계 속에 살고 있었다.

나에게 현실을 찾아가는 작업은 지금도 쉽지 않다. 현실을 인정하기보다 나만의 세계에서 꿈을 꾸며 사는 쪽이 더 행복하다. 그러나 어렴풋이나마 내안의 세상은 나만의 것이지 다른 사람과 공유될 수 없기도 함을 알게 되었다.

과거를 다시 인식해보니 실상은 이랬다. 내가 괴물로 만들어 버렸던 시부모님께서는 날 딸처럼 생각하시며 사랑을 주시는 분들이셨고, 내 남편 역시 묵묵히 날 지지해주며 열심히 노력해주는 남자였다, 무엇보다 나의 분신들인 내 아이들이 평생 사랑을 베풀고 보살펴야 할 귀중한 보석이었다...

지금은 소중한 인연들을 파괴할 뻔한 찰나에 다행히도 이후에 벌어질 일들이 (엄청난 후회로)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빈껍데기 같은 공허함으로 내가 무얼하고 싶었고, 무얼 먹고 싶었고, 얼마나 아팠었는지 이해가 된다. '아무거나'라는 말과 '죽고싶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라는 말로 살았던 반평생에 대한 애도가 밀려든다. 5년가량 정신분석 공부와, 새로운 관계를 맺어보는 상담을 통해 혼자, 때론 선생님과 울고 웃으며, 싸우며 상상할 수 없는 아픔과 고독의 시간을 지나왔다.

새로운 인간관계를 상처받지 않을 적절한 거리에서 즐길 수 있다면 비싼 값을 지불하더라도 보석 같은 인생의 가치를 지니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느낀다.

아직도 미숙한 나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엄마로부터 당연하게 배워야 하는 일반적인 상식과 지식, 그 밖에 경험했어야 했던 많은 것들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들을 찾아 평생 배워야 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인생경험은 어느 것 하나도 필요 없고 가치 없는 것은 없을 것이다. 비록 실수와 시행착오를 경험할 지라도 나에게 모두 값진 경험들일테니까...

지난 날 잃어버린 소중한 인연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터져나오고, 관계를 회복하게엔 늦어버렸다는 아쉬움에 절규하고 싶지만, 이렇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나도 나 였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무겁고, 힘겨운 팔 다리를 옮겨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평생에 걸친 나와의 투쟁도 먼 훗날에 돌이켜봤을 때 행복한 반쪽 지난날을 회상시켜 주지 않을까...

오늘도 난 보통의 건강한 사람이 되길 꿈꾸며 나를 찾아 떠나는 채비를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도 난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날에 잃어버린 엄마를 기다리며 울고 있다. 언젠가 나타나 내게 미안하다며 사랑한다 말 할 것 같은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아직도 강한 융합을 꿈꾸며 경계 없는 세상을 기다리는 이 느낌을 평생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 빛을 보기 전부터 깨져버린 나의 존재가 계속됨을 느끼는 작업은 외롭고 힘들지만 평생 걸쳐 내가 인식해 나가야 할 수 밖에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여 다시 한번 기운을 내 보련다.

항상 '그 자리'에 나를 위해 '그 시간' 존재해주신 그리고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버팀목이 되어 주셨던 김은옥 선생님과의 오랜 인연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 존재감과 자존감을 찾는 발달과정이었고, 개인적으로 성취감을 느낀 경험이었다. 흔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대한 경험이었다. 나에게 없었던 현실감을 찾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함께 공부해온 동료분들에게도...

힘들게 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긴 터널을 지나 빛이 있음을 희망의 메시지로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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