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예술에 대해 생각하면 할 수록 우리가 소위 "예술"이라고 부르는 활동의 영역이 얼마나 광범위한지 깨닫게 됩니다. 결국 모든 시대와 문화를 아우르는 공통된 속성보다는, 다만 "가족유사성"을 지니고 당대의 시대정신에 따라 정의되는 것이 예술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정 음악가의 자아기능과 심리적 재료를 다루는 것은 이처럼 예술 안에서도 시대와 문화에 의존하는 좁은 영역에 속합니다. 이 글에서 다룰 예술은 소위 "클래식"이라고 불리는, 18세기말에서 19세기말, 불과 100년 남짓한 시기 동안 유럽에서 번성했던 당대 상류층의 음악입니다. (이 시기까지는 "미"라는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했기 때문에 현대 예술과는 상당히 양상이 다릅니다. 예술을 규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 변화했는대도 그 명칭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지요.) 우리가 상식으로 아는 대부분의 작곡가가 여기에 속하는데,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이 시대의 대미를 장식했다고 평가하고 싶은, 1833년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1897년 빈에서 생을 마감한 브람스가 이 글의 주인공입니다. 더 범위를 좁혀서, 이 글에서는 그 작곡가의 젊은 시절 한 작품만을 다루려고 합니다. 부담 없이 읽으실 수 있도록 특별한 배경 지식이 필요 없도록 설명하겠습니다. 브람스가 불과 25세 때 완성한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은 작곡가의 외적 상황을 근거로 비교적 분명한 심리적 재료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예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브람스와 슈만, 그리고 클라라의 유명한 관계를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1853년, 20세의 브람스는 당시 43세로 이미 유명 작곡가이자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던 슈만을 찾아가고, 슈만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화려한 "데뷔"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슈만은 정신분열 증세로 불과 3년 뒤에 세상을 떠나게 되지요. 동시에 브람스는 14살 차이가 나는 슈만의 부인 클라라를 만나 깊은 연모에 빠집니다. 슈만과 결혼하여 육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지만, 클라라는 매우 유명한 여류 피아니스트이기도 했습니다. 존경스런 스승의 미망인인 동시에, 아름다움과 모성, 성숙함과 재능을 갖춘 여성을 브람스가 얼마만큼 이상화했는지는 그의 삶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브람스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클라라와 그녀의 자녀를 돌보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아래는 그 열정이 절정에 달했을 무렵인 1856년 브람스가 클라라와 떨어져 함부르크에서 쓴 편지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부드러운 편지를 쓸 수 있다면, 내가 당신에게 기도하는 모든 좋은 것들을 전할 수 있다면. 당신은 내게 무한히,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사랑스럽습니다. 만약 더 오래 보존할 수만 있다면 당신을 유리로 씌우거나 금에 박아 넣어야 할 것만 같습니다. 만약 내가 당신과 나의 부모님과 같은 마을에 살 수만 있다면..." 그리고 바로 이 시기에 브람스는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작곡하였습니다. 편지에서도 드러나듯, 흠모하는 그리운 여인을 마치 보석과 같이 소유하고 영속시키고 싶은 욕망은 음악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전체 3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피아노 협주곡은 서정적이고 느린 2악장을 갖는데, 여기서 브람스는 이 2악장을 클라라와 동일시합니다. 그는 작품을 작곡하면서 그녀에게 "저는 당신의 사랑스런 초상화를 그리고 있습니다"라고 씁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사랑하는 이의 얼굴이라는 시각적 표상과 사랑하는 대상이라는 심리적 표상을 "아름다움"을 매개로 추상적인 음악적 등가물로 옮겨 놓으려는 시도입니다. 그리고 이상화 대상이라는 심리적 재료를 작품화시키는 이 지점에서 음악가의 자아기능이 발휘됩니다. 이 때 필요한 자아기능은 일상 생활의 대인 관계 기능이 아니라 타협 및 조직화 기능입니다. 다른 예술 분야와 달리 클래식 작곡가 중에 어릴 때부터 두각을 드러내는 인물이 많은 것은, 이처럼 특별한 자아기능을 극단으로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서구 클래식 음악만의 고유한 특징이기도 한데, 길게는 1시간을 넘는 작품은 매우 논리적인 형식을 통해서 구축됩니다. 이와 더불어 도제식 교육을 통해 이어지는 전통 및 규율과 자유로운 감정의 표현 사이의 타협 역시 고도의 자아기능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불과 10분 남짓한 악장을 작곡하기 위해서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사람이 길게는 수 년 동안 매달린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압축된 요소가 있을지, 거기에 투입되는 에너지는 얼마나 클지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브람스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형식적 측면과 심리적 재료를 <피아노 협주곡 제1번> 2악장과 3악장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여유가 되시는 분은 1악장도 들어보시면 좋습니다. https://youtu.be/L5XtH3gq1a4 비발디에 의해 확립된 빠름-느림-빠름 협주곡 형식에 따라 아다지오로 지시된 2악장은 브람스 자신이 "클라라의 초상화"라고 말한 악장이기도 합니다. 역설적으로 이 2악장은 그와 동일한 진한 향수와 민감성을 갖추지 않으면 그다지 즐길만한 악장이 못 됩니다. 브람스답지 않게 성긴 구성은, 정말로 회화를 의도한 듯, 정체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기에는 인내심을 시험하듯, 단 한 차례의 파도처럼 밀려드는 클라이맥스(6:18)와 역시 클라라를 상징하는 제1악장 소나타의 제2주제의 변형(10:35)이 잠깐 등장할 뿐입니다. 그리고 브람스는 이 아름다움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아름다움은 이처럼 "한 순간"으로 나타납니다. 서투른 그림 솜씨로 극도로 절제된, 그래서 성스럽기까지한 팀파니의 고동으로 곡을 끝마치는 이 내밀한 음악은 어떤 음표로도 다가갈 수 없었던 존경의 대상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자신의 자필 악보에 시편의 구절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Benedictus qui venit in nomine Dominus)" 3악장은 또 다른 측면에서 흥미로운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여기서 브람스는 하나의 주제가 에피소드를 끼고 반복되는 전통적인 론도 형식을 취하면서도 동시에 이를 독창적으로 변형시키고 있습니다. 곡의 중간에 삽입된 작은 푸가로 그의 바로크 양식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며, 1악장에 없었던 카덴차(피아노 독주)는 3악장 코다 직전에 나타납니다. 이처럼 전통의 연속선상에 있는 요소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요소는 곡의 해석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https://youtu.be/W34csyv1CR4 0:00 A 1:34 B 2:47 A' 4:09 B' 5:27 푸가 6:18 A'' 7:53 B'' 8:33 카덴차 9:34 코다 그리고 여기서 사용된 음악적 재료들은 1악장의 주제에서 차용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소 음울하고 남성적인 A부분은 1악장의 제1주제와 같이 브람스 자신의 "자아"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B부분은 2악장의 재료가 등장하며 마치 클라라를 상징하듯 여성적인 성격을 띱니다. 이처럼 불안을 유발하는 주제와 위로와 안식을 가져다주는 주제 사이의 대조와 조화를 통해 하나의 이야기를 상상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3악장의 가장 큰 특징은 곡의 전체 피날레를 형성하는 확장된 코다입니다. 조급하지 않게 멋과 환희를 드러내는 방식은 그가 남긴 작품들의 공통된 특성입니다. 실제로는 작은 체구를 지녔던 브람스가 음악을 통해 이정도로 거대한 자기를 표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언제 생각해봐도 놀랍습니다. 만약 음악가의 사회성이 부족하다면 이러한 세계에 한 발을 담그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결론적으로 전체 형식과 작곡가의 심리를 파악하면 훨씬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 답변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