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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들녀석이 좋아해서 함께 몇 번이고 읽었던 이토우 히로시의 동화 3부작이 있다. <원숭이는 원숭이>, <원숭이 동생>, <원숭이의 하루>, 구지 하나 더 하자면 <괜찮아 괜찮아요>. 어린아이들이 읽어도 어른이 읽어도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은 철학적 주제를 동화적 언어와 유머러스한 삽화로 쉽고 깔끔하게 잘 표현해 냈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인기가 많고 일본의 의미있는 유소년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알고 있다. 아이들이 읽는 책이라고 생각해서 별 생각없이 아들에게 읽어주곤 했다. 무인도 섬에 갇혀 사는 원숭이의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엔 어떤 의미가 있는지, 형 원숭이 다음 번 동생은 뱀이나 개구리나 해파리가 태어나면 안되는지, 똑같은 원숭이를 다른 원숭이와 구별되게 하는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 들여야 하는지 등의 문제제기가 아이의 시각에서 어렵지 않게 맛깔나게 묘사되어 있다. 심리적 재료라는 관점에서 이 책을 다시 읽어 보았는데 흥미로운 것들이 눈에 띄인다. 내 눈에 보인 것은 이 원숭이 3부작에 드러난 대타자 무의식으로서의 천황의 존재이다. 작년 <정신분석 총론> 수업에서 일본 사회에서 엄마, 아빠의 존재와 역할을 능가하는 전능한 상징계적 수호자로서 천황의 존재에 관한 특이한 견해를 설명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서 과연 정말 그러한가, 그것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가졌다. 이 동화책의 경우엔 가능한 설명인 것 같다. 원숭이가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그것을 더 큰 시각으로 환기시켜주거나 설명해 주는 존재가 나타난다. '할아버지'이다. 4권 중 3권에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가 드러내는 의미가 엄마의 역할이나 아빠의 역할을 훨씬 뛰어 넘어 있다. 엄마는 동생 원숭이를 임신해 주인공 원숭이를 돌봐줄 여력이 없는 상태이고 아빠 원숭이는 아예 등장조차 않는다. 아버지의 부재가 두드러지는 상황에 할아버지의 등장이 그 부재를 매우면서 원숭이의 정체성 혼란을 바로 잡아주고, 일상의 반복이 주는 지루함을 세대의 존속이라는 의미로 확장시켜주고, 심지어 몇 백년을 살아 나이조차 까마득하다는 거북이 할아버지는 영원히 사는 존재로까지 묘사되어 있다(그 거북이 할아버지가 세계를 여행하다가 큰 배에 머리를 부딪혀서 너무나 깜짝 놀랐다는 대목에서는 2차세계 대전의 패전한 천황의 모습이 겹쳐진다). 쉬를 하고, 바나나를 먹고, 물놀이를 하고, 귀를 잡고 안 떨어지는 게 때문에 정체성 혼란을 겪는 주인공 원숭이에게 할아버지는 법이자, 신이자, 중심을 잡아주는 에너지이자, 원숭이 사회의 살아 있는 역사, 자기 존재의 근원을 알려주는 자궁같은 존재다. 강력한 지혜의 근원으로 묘사되며 단순한 할아버지 의미 그 이상이 녹아 있는데 생각해보니 그 힘은 대타자 무의식으로서의 천황적 존재, 강력한 초월적 아버지의 힘, 사회 전반을 통치하고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게 하는 신적 힘을 가진, 부모 그 이상의 존재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살짝, 그 구도는 출산이라는 생리적 모성기능만 제공하는 엄마의 한계, 일하느라 바빠서 아이 성장기에 부재중인 샐러리맨 아빠의 현실, 평생을 가족에게 주부로서 물리적인 봉사만 하다가 말년에 자기 인생을 찾겠다고 집을 뛰쳐나간다는 황혼이혼의 일본 할머니들의 부재 상황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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