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20대까지는 나 자신을 밝고 명랑한 성격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결혼 생활을 하면서 또 아이를 키우면서 뭔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체력도 많이 떨어지고, 알 수 없는 불안과 초조감에 시달렸다. 성취감, 유능감, 자신감을 잃어가며 점점 강박적으로 일상에 매달렸다. 생활습관, 소비습관, 식습관 개선에 열을 올리며 사소한 실수에도 지나치게 좌절해 가며 스스로를 자꾸만 비하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마치 생명력이 솟아나는 화수분이 내 안에 있는 듯,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를 느끼며 혼자 있을 때나 타인과 함께 있을 때나 대체로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그러나 주부로 살아가면서 아내와 엄마의 역할 수행만으로도 24시간이 모자란 생활을 하다 보니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력감과 불쾌감, 허무한 감정이 들 때마다 나 자신을 붙들기 위해 이런저런 공감과 위로와 가르침을 찾아 아이들을 재워놓고 새벽까지 책을 읽곤 했다. 현실의 속박이 심해질수록 꿈은 다채로웠다. 꿈에서의 대리체험 등을 통해 에너지를 받는 느낌은 이전에도 경험한 적이 있었다. 낮 생활의 무드를 지배하는 한밤의 꿈의 여운, 이 에너지의 정체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꿈 관련 책들을 찾아 읽어보았다. 로버트 존슨, 고혜경, 제레미 테일러 등의 저서를 읽으며 꿈 해석에 관한 관심은 점점 더 깊어졌다. 고3시절 아랫집에 살던 대학생 오빠가 대문 앞에 내놓은 헌책 더미에서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발견하고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도 되살아났다. 꿈 해석에 관해 좀 더 체계적인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안타깝게도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몇 년 후 지인의 블로그에서 프로이드정신분석연구소에서 꿈 해석 강의를 한다는 후기를 보았다. 바로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커리큘럼을 살펴보았다. 강의 개요와 세부 내용을 읽으며 내가 원하던 바로 그 강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 첫째아이도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고 둘째아이는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어 몇 년 간의 육아에 모처럼 틈을 낼 수 있는 해였다. 동시성의 기적이란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하며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수강 등록을 했다. 첫 수업 때 선생님께서 이 수업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을 한 가지씩 말해보라고 하셨는데, 나는 마음속으로 운전에 대한 공포심을 극복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고 운동 신경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운전대를 잡으면 과도한 불안감이 밀려오는 지 알 수 없었다. 아이들 픽업 문제로 차를 이용해야 하는 일이 많은데 엄마로서의 기능을 잘 할 수가 없어 좌절감을 느끼고 있던 때였다. 만약에 수원 나의 집에서 프로이드연구소까지 차를 몰고 올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소박한 목표를 가지고 매 수업마다 모험을 떠나는 기분으로 무의식을 항해하는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타인과 세상을 위한 역할을 내려놓고 일주일에 한 번 잠시나마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초콜릿을 먹듯 달콤하게 만끽했다. 1학기에는 이론 수업과 사례 분석을 통해 꿈의 문법과 생성원리를 알아나갔다. 꿈이란 나 자신의 무의식이 나에게 보내는 뜯어보지 않은 편지이며, 나의 내면에 접속하는 지름길임을 배웠다. 또 <프로이드와의 대화>를 읽으며 무의식은 시간성이 없기에 평생 반복해서 분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방학 중에는 내 꿈을 기록하는 한편, <신화와 정신분석>, <정신분석과 철학>, <예술작품과 정신분석>, <소중한 경험>, <내 무의식의 방> 등 정신분석 관련 서적을 읽으며 정신분석 언어에 점점 익숙해져 가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운전에 대한 공포를 해부해보고자 운전을 주제로 한 단편소설을 썼다. 글을 써 보려고 시도해도 번번이 시작하는데 그칠 뿐, 이전에는 한 번도 완성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 안의 막힌 한 부분이 뚫린 듯 알 수 없는 에너지로 박차를 가해 드디어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온라인 서점 서평대회에서 2등을 한 것도 소소한 성취로 서서히 창조성이 회복되어 감을 느끼게 되었다. 2학기에는 수강생들과의 집단 꿈 분석을 통해 실전으로 한걸음 더 도약했다. 각자의 꿈 이야기와 그에 따른 해석을 듣고, 연상을 발전해 나가는 시간을 가졌다. 안전한 공간에서 안전한 사람들에게 꾸밈없이 가감 없이 나 자신을 드러내는 흔치 않은 경험을 통해, 내 문제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끊임없이 나 자신을 비하하는 자폐적인 인식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었다. 공감을 통한 진한 위로를 느끼는 집단 꿈 분석의 치유 효과를 실감하는 자리였다.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격한 감정이 올라올 때는 지금 내 무의식의 어떤 부분이 건드려졌구나하는 인식도 할 수 있었다. 또 프로이드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현대정신분석 - 인간 정신의 다면적 진실’을 꿈 해석 클레스 2학기와 함께 수강하였다. 프로이트 이후의 융, 자아심리학, 대상관계론(클라인, 페어베언, 위니컷) 그리고 라캉이 이야기한 아버지 에너지, 어머니 에너지,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에 대한 이론들을 접하게 되었다. 꿈 해석에 매우 중요한 유아기 심리상태에 대한 지식도 얻고, 이해할 수 없는 나의 행동들과 내게 일어난 사건들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획득하게 되었다. 구속으로만 느껴졌던 육아도 만끽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았으며, 나의 방어기제가 무엇인지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년간의 시간동안 일어난 점진적인 변화가,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얼마나 다른 곳에 서 있게 하는가를 실감하고 있다.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초조감, 무력감에 압도되기 보다는 내 삶 속에 기꺼이 불안을 초대할 수 있는 여유도 조금은 생긴 것 같다.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는 크지 않을지 모르지만 일상생활을 하는 나 자신이 체감하는 변화가 크다. 고통스러워 해내지 못할 것 같았던 일들도 이제는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로 여겨진다. 무의식을 대면함으로써 에너지를 회복하는 이러한 경험들은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직접 체험해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꿈 해석을 통해 무의식이 전하는 메세지에 귀를 기울이며 창조성을 회복하고 불안을 껴안으며 생동감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