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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봄학기에 '모르던 범인'에서 '아는 죄인'이 되다 어느 날 밤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1여년 전에 학회에 특강을 하러 온 소장님의 연구소와 이 강좌를 알게 되었다. 강좌 시간에 참여할 수 있기에 바로 수강 신청을 하였다. 내가 사는 곳이 지방이었지만 KTX가 있었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 강좌에 그렇게 오고 싶어 했는가? 특강이 있기 전 휴식 시간에 어떤 분이 나에게 특강 장소를 물었다. 그때 내가 뵌 분은 조금은 침울해 보였고 무거워 보이는 분이었다. 그리고 특강이 시작되었는데 내게 길을 물었던 그 분이 강연자였다. 강연은 충격적이었다. 그곳은 철학박사학위를 가진 분들이 대다수인 곳이었는데 강연자는 ‘이제 소크라테스에서 다시 소피스트로~!’를 주장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신전에서 인정한 최고의 지혜를 가진 인물이고, 소피스트들의 상대적인 철학에서 보편적인 철학의 토대를 마련한 철학과 학문의 아버지이다. 그런 충격적인 강연의 내용과 함께 강연자의 강연에는 지도교수와의 갈등과 지도교수를 넘어서려는 노력들과 그리고 이제는 지도교수를 이해하고 그런 지도교수와의 관계를 가진 자신에 관한 이해까지 완수한 한 영혼의 목소리가 녹아있었다. 철학이란 지도교수를 넘어서는 과정이고 철학적 결과물들이란 그런 과정의 결과물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철학의 아버지 소크라테스를 계승하며 그 소크라테스를 넘어선 자가 플라톤이고, 플라톤의 학당에서 공부하며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넘어서 자신의 형상과 질료에 관한 이론을 전개한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러하다. 화이트헤드는 서구 철학사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이중 변주곡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했었다. 강연자 역시 지도교수를 넘어서며 자신 만의 새로운 사상과 삶의 방식을 정신분석에서 찾고 있었고 어느 정도 자신 만의 세계를 구축한 것 같이 보였다. 그 강의를 듣고 나는 복도까지 따라 나가며 ‘저도 지도교수님과 그런데 어떻게 하면 좋나요?’라고 물었다. 그때 복도를 내려가며 강연자는 ‘지도교수님이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간단하지 않아요. 조금은 거리를 두세요’라는 말을 남기셨다. 그때 들었던 말,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그러한 증상들이 쉽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는 말. 내게는 그 말들이 큰 위안이 되었고 실제로 그렇게 해 보았다. 주관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면서 언젠가 간단치 않은 그 분석을 한번 해 보아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개인적인 배경을 가졌기에 나에게 이 강좌의 수강은 열쇠를 찾는 곳이자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베이스 캠프이자 해방구의 성격을 지녔다. 다행히 소장님의 허락이 떨어졌고 첫 수강을 하게 되었다. 비온에 관한 강의를 들었던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독학으로) 정신분석을 공부한지가 10여년이 되어간다. 따라서 비온에 관한 이론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비온에 관한 책도 가지고 있고 읽었으며 한 학회에서 비온에 관한 논문 발표도 들었다. 어느 정도 아는 나는 소장님의 강의를 듣고 또 충격을 받게 되었다. 물론 소장님의 맑고 밝은 인상에 충격을 받은 터였는데 강의는 더 놀라웠다. 내가 아는 정신분석 강의는 정신분석에 관해 많이 아는 강연자가 수강자들을 위해 그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식이었다. 가끔 강의 전에 서로에 대한 소개를 하고 중간중간 질문하는 형식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 근본 틀은 어디를 가나 변함이 없었다. 지금까지의 정신분석 강의와 다르게 소장님의 강의는 30년이 넘는 나이차와 다른 전공자들과 다른 지역출신들이라는 수강자들의 편차가 몹시 심한 상태에서 그 수강자들이 하나가 되어 그 수업의 강의 주제에 집중하게 하고 그것을 자신의 문제와 현실의 문제에 적용하도록 도왔다. 나는 사범대를 나와서 2급 정교사 자격을 가지고 있었고, 교단에 선 적도 있으며, 강단에 선 지도 올해로 10여년이다. 교육하는 사람들이야 누구든지 어떻게 하면 학생 중심의 강의를 할 것인지를, 어떻게 흥미를 일으켜 수업에 집중하게 할 것인지를, 어떻게 그 주제들을 학생들의 삶과 연관시킬지에 관해서 고민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스스로 문제를 찾아가고 고민하게 할 것인지를 최대의 과제로 삼는다. 이것을 가장 먼저 고민한 사람, 그리고 그 실천을 가장 처음으로 한 사람을 철학과 교육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데 그러한 방식의 교육은 서구 사상의 두 축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가 바로 소크라테스인데, 소크라테스를 넘자고 한 소장님의 강의가 내가 볼 때는 소크라테스식 방식이어서 정말 놀랬었다. 소장님 강의의 특징을 들라고 한다면 단연코 ‘기다려주기’라고 하겠다. 소장님은 정신분석 주제에 관해 충분히 소화된 자신만의 개념으로 학생들에게 퀴즈나 수수께끼를 내듯이 질문을 유도하신다. 충분히 수용적인 환경에서 학생들은 이런저런 말들을 하기 시작한다. 그런 질문들이 가능한 것이 바로 ‘기다려주기’ 때문인 것 같았다. 소장님께서 질문을 던지고 포용적인 태도로 꽤 기다려주기 때문에 그리고 이러저러한 질문들에 관해 반드시 피드백을 하신다. 피드백의 방식은 그 질문은 이런 면에서 괜찮고 저 질문은 저런 면에서 날카로운 통찰들을 담고 있다는 식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의문은 증대되고 모든 학생들이 추리소설에서 범인이 누군지를 추리하듯이 답을 찾기 시작한다. 마침내 범인(?)이 공개되고 모두 감탄한다. 왜냐하면 그 범인이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모두들 자신도 공범이었음을 자각하고 지금까지의 범죄 행위에 대해 자백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른 범죄 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그것이 범죄 행위인지도 모르고 죄를 저지르고 있는 자신 이외의 다른 모든 사람들에 대해 용서하고 연민하게 된다. 나는 이번 학기 강좌들을 수강하면서 내내 이것을 느꼈다. 나는 어떤 죄를 저질렀는가? 나는 분열형 죄인이었다. 분열형은 태아기때로의 퇴행의 욕구를 가진 일처리에 있어서는 유능한 감각을 지닌 인간형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유능한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일처리에 있어서는 어디를 가나 인정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나 역시 그러하다. 하지만 어디를 가나 인간 관계를 못해서 문제였던 것을 생각하면 나의 죄는 분열에서 온다. 나를 좋아했던 단짝 친구와 나에게 헌신적이었던 이성 친구와 가족들과 나는 잘 모르겠고 안 다가오지만 나를 향해서 많이들 하는 말이 ‘인정머리 없고’, ‘무심’하고, ‘무관심’하고, ‘냉정’하다는 것이다. 그렇게들 말하면 나는 ‘더 이상 어떻게 하라고..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라고 속으로 대꾸하곤 했었다. 내 앞에서 울음을 터트린 사람이 한 둘이 아닌 것을 보면 내 죄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지금도 머리로만 이해되지 진정 마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내 죄. 정말 진심어린 마음을 주지 않는 죄. 죄많은 나는 절대로 먼저 연락하지도 않고 가는 사람을 붙잡지도 않는다. 후배가 내게 어느날 ‘지난 8년간 선배한테 먼저 연락 받아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누구에게나 먼저 연락한 적이 거의 없다. 후배 말로는 요즘은 많이 나아져서 6개월에 한번은 연락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 내 옆에는 언제나 내게 헌신적인 사람만 남아 있다. 지금도 머리로는 이 사람들에게 잘 해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어떻게 잘 할지를 생각하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분열형 죄인인 나는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 내 나름대로는 죄를 짓지 않았고 잘못하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나 당당했었다. 그 당당함이 사람들과의 거리 유지를 정당화시켰다. 잘못한 것이 없는 나는 사람들에게 쓸데없이 먼저 다가 갈 필요로 없었다. 나는 머리로는 ‘아무런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가장 큰 죄인’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조언해 왔다. 그 죄인이 나인줄은 꿈에도 몰랐다. 왜냐하면 내가 가장 큰 죄인이라면 도덕적 우월감을 지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나의 도덕적 우월감은 도덕적 우울감으로 바뀌려 한다. 편집분열적 자리에서 우울적 자리로의 이행은 또 다른 성장이라고 클라인은 말했지만 힘든 일이다. 칸트가 인식론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주장했던 새로운 혁신이 나 개인의 정신분석적 과정에서도 반드시 일어나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느낀 한 학기였다. 코페르니쿠스 주장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서구 사회가 어떤 반응을 보였던가를 생각하면 나를 죄인으로 만드는 정신분석적 작업이 얼마나 힘들지를 짐작해 본다. 하지만 진리는 나를 새로운 방식으로 자유롭게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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