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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http://www.freudphil.com
2016년 01월 25일 00:49 773

“‘내가 누구인가’는 세상으로부터 받은 것으로가 아니라 세상에 주는(반응한) 것에 의해 결정된다.”
- 빅터 프랭클 -


만약 ‘내 정신’이 세상으로부터 받은(겪은) 것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면, 우리는 어찌되는가?
억울한 사람들이 참 많아지지 않을까? 가령 태어날 때부터 거부나 무시 받은 상처 경험들로 인해 온전히 존중받기 고대하는 내담자를 상담 장면에서 마주할 때면 종종 커다란 허기와 절망이 마치 나의 감정인 양 밀려든다. 특히 엄마와의 애착 실패에서 나오는 소리 없는 비명들은 기쁘고 즐거워야할 인간 만남을 빈곤하고 지루하게 만든다.

스스로 소화해내지 못한 모든 과거사는 고스란히 지금여기의 현실로 반복 재현된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현재 삶을 마비시키고 발목 잡는 과거 불행 흔적을 바꿀 수 있기 바라며 정신분석 공부에 문을 두드린다. 정신분석에선 원인 모르게 현재 삶을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과거 흔적들에, 반복되는 파국적 인간관계 패턴, 경직된 성격, 증상들, 압도당하는 꿈 등을 통해 다각도로 접촉한다.

수치씨는 꿈속에서 시험을 본다. 시험과목이 여러 과목이고 시험이 코앞인데 교재도 구입 못하고 있다. 급하게 하던 모든 일을 미루고 시험에 매진해야하는데 무기력하고 조바심이 일어난다. 느닷없이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채 시험을 보게 되었는데 어찌나 황당하던지 창피하기까지 하다. 이해되지 않는 문제들을 풀며 벌을 받는 것처럼 불안해한다. 졸업을 못하고 다시 학교를 다녀야 할 것 같아 너무나 공포스럽다. (매번 졸업 못하는 시험 보는 꿈이 반복된다). 수치씨는 이 꿈 말고도 엘리베이터를 타면 층 단추를 눌러도 자신 맘대로 통제되지 않아 도중에 멈추거나 엉뚱한 원치 않는 곳에 내리기도 하고, 하늘로 치솟거나 땅으로 떨어지는 무서운 꿈으로 압도당하기 일쑤다.

수치씨는 대체 어떤 경험 속에 갇혀있는 것일까. 이 꿈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 무엇이 달라지길 바라는 것일까. 그녀는 내부 세계를 외부 대상들에게 늘 투사한다. 그로인해 상담 장면에서 상담자에게 역전이가 일어나, 상담자도 답답하고 불안하고 아무 희망이 느껴지지 않아 무기력할 때가 많다. 정서적 허기는 사랑받지 못할 것 같은 불안 상태를 반영한다. 이 꿈 내용은 무심하고, 평가절하하고, 폭력적이고,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차가운 엄마와의 관계가 투사되어 수치씨가 살아가는 주변 세상에 만연해 있음을 보여준다. 유아적 자기가 엄마의 품에서 떨어지고 질시 당했던 경험일 것이다. 엄마에게 받은 상처들은 그녀의 자아를 마비시켜, 엄마세계로부터 벗어나는 시험에서 번번히 실패하게 만든다.

수치씨 정신에는 엄마로부터 부정적인 자극들이 너무 많이 각인되었다. “너를 임신하지 않았다면, 네가 아니었더라면, 네가 제대로 했더라면, 너 때문에...” 어린 시절 내면화된 엄마와의 부정적 경험들이 그녀 정체성의 중심이 되어, 대인 관계를 망치고 싶거나 누군가에게 해침을 당할 것 같은 파국환상이 관계에서 반복 재현된다. 그녀는 사소한 좌절로 기분이 나쁘면, 근거 없이 친구이든 배우자이든 나쁘고 밉게 느껴지고 한심하게 느껴져 상처를 주게 된다. 물론 상처를 주고나면 마음이 아프고 후회스럽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자신이 그렇게 부정적이 되었는지 간파가 어렵다.

누군가를 나쁘다고 인식하면 그에 부합된 행동을 하게 된다. 더 무서운 일은 그녀에게 상처를 입은 사람이 떠나가거나 거부적 행동을 하게 되면, 혼자 남겨지게 되면서 원래 갖고 있던 자신의 부정적 감정이 입증되어 충격에 휩싸인다. “결국 나를 버리고 떠나가는구나. 내가 싫구나. 나를 사랑하지 않았구나. 내가 나쁘구나!”

과도한 공격성은 이미 가족내에서 형성된 자신의 부정적 이미지와 부합되지 않는 좋은 경험들을 지속적으로 거부하게 만든다. 수치씨는 자신의 공격성을 늘 외부로 투사하기 때문에 (자기혐오로 인해 타인에게 부정적 소리를 크게 내거나 큰 싸움을 하고 다니지는 않지만) 도움 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희망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인간관계와 일 모두 지속적으로 이어 나가는게 매우 어렵다. 아파서, 힘들어서, 쉬고 싶어서, 어려워서, 잘 모르겠어서, 부담스러워서, 못마땅해서 늘 중간에 포기하고 만다.

감정과 사고가 유년기의 부정적 경험흔적들로부터 미분화되면, 나이를 먹어도 인간관계와 일 능력이 성장하지 못한다. 과거의 경험으로 현재가 왜곡되기 때문에, 자기와 타인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만성적으로 반복될 뿐이다. 어릴 적 좌절과 고통을 주었던 그 대상을 동일시해서, 현재의 자신과 외부대상들과 병합하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의 누구 때문에 상처를 받아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예전의 그 상처를 주었던 그 분과 냉소적 적대적으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수치씨는 일상생활에서 상식적으로 알아두어야 하는 정보들이며, 관습적으로 성실하게 해치워야하는 많은 의무와 책임들, 문화적 가치와 사회적 매너, 엄마로서의 가져야할 덕목, 삶에 대한 활력, 타인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마음, 심지어 상담자의 공감어린 시선과 따뜻한 위로의 말조차 아무 소용없다는 듯, 과거 엄마와의 관계처럼 밀어내 버린다. 엄마가 제대로 반응을 해준 적이 없기에 그 엄마처럼, 때론 밀림을 당한 자신처럼, 사람으로부터 철수한다.

상처받음을 반복하는 이유는 따뜻하고 관대한 엄마에게 보여지고 인정받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의 좋은 엄마는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지만 자신이 잘못했다고 인정하며 회복을 무수히 시켜준다. 상담자의 역할은 이런 활동의 일종이다(엄마의 살아있는 반응).

관계 트라우마 반응은 심리적 어려움의 종합세트다. 수치씨는 늘 처음부터 다시 듣고 말해야하고, 불필요한 갖가지 댓가를 지불해야하고, 때론 조용히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고, 타인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사람들이 다양하게 경험하는 감정의 복잡성에 무감각하고, 외로워도 도움청할 이가 없고, 손해만 보는 것 같고, 아무도 진심으로 자신을 위해주지 않는다고 느끼고 믿는다. 그래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겨우 상담 장면에서 위로 받고 이해를 주고받고 돌아가지만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선 상담관계와 연결 지어 아무 노력을 하지 않는다. . 다시는 위협적 상황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 몸도 계속 긴장하게 된다.

심리치료는 내가 스스로를 도울 수 없던 상처 상황을 다시 재현하되 컨트롤 되는 경험을 하게 돕는 활동이다. 진심으로 자신을 위해 울 수 있게 되고 그 다음 천천히 통제되는 상황으로 이끌어준다. 어린 시절에 경험한 트라우마는 살면서 계속 나타나는데, 몸 아픈 것으로도 나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행동으로도 나온다. 그것은 어깨에 바위를 올리고 다니는 것과 같아 내려놓는 작업이 필요하다. 아프다고 이야기하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아픈 걸 아프다고 해야 하고, 아픔을 ‘느껴야’ 한다. 누르는 연습을 계속하면 감각을 느낄 수 없게 되거나, 전체를 있는 그대로 느끼는 감각이 떨어진다.

심리치료는 느끼는 것(센세이션)을 통해 우리 몸이 환경으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게 하기 때문에, 트라우마를 치료하면 영적성장을 하게 된다. 피할 수 없었고 돌이킬 수 없던 상처가 있는 사람일수록, 성장하면 잠재자원이 풍부하게 발현된다. 트라우마는 인간을 절망에 빠뜨리는데, 고통상태 때문이 아니라(“이게 없으면 살 것 같아요”가 아니라) 고통의 이유를 알지 못할 때 느끼는 혼란 감정 때문에 그렇다. 고통지각이 마비되거나 고통의 이유를 모를 때와 달리, 제대로 느끼거나 알면 고통극복의 힘이 거기서 나온다.

몇 년동안 관계해온 수치씨는 사실 마음이 착하고, 따뜻하고, 섬세하고, 정도 많고, 의리도 있고, 재주도 많은 정말 긍정적인 예쁜 사람이다. 그녀는 오랫동안 성실하게 상담에 임하고 자녀를 성심성의껏 돌보는 좋은 엄마이다. 그녀는 누구나 갖고 사는 실수나 미숙함을 너무 치명적으로 경험하는 경향성 때문에 늘 탈이 난다. 진심으로 상담자를 믿고 존경하는 제스처를 하다가도 금방 풀이 죽어 자신을 부정하거나 도망가 버린다. 상담자에게 맛있는 음료수 하나를 선물하기위해 많은 고민을 하다가 한 순간 가치 없게 느껴져 마음이 콩알 만해진다.

대상관계 정신분석이론에선 대상상실과 자기상실은 하나의 궤를 이룬다고 본다. 수치씨는 언어습득 이전 시기에 병리적인 엄마로부터 받은 모욕으로 인해 정신화되지 못한 경험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무의식에서 영향을 미처 현실대상들과 소통되지 않는 단절이 반복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얼마 전 네 살 때 상담 받았던 아이가 고학년이 되어 추수상담을 하러 오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어릴 적 상담자와 역할극을 하고 놀았던 figure들을 낱낱이 기억하며 행복했던 추억을 회상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었다. 과거의 부정적 정서 경험들이 소화되어 상징화되고 창조적 생각을 위한 재료들로 변형되었음을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수치씨 또한 마비당하고 늘어지고 조각나고 압도당하고 파괴당한 상태에서 삶을 견디고 긍정적으로 소화해내는 상태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일곱 번의 긍정으로 한 번의 부정이 사라진다고 말한다. 누구나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단계에서 몸과 마음이 괴로워 앓아누우며, 더 나빠지는 것 같아 성장을 위해 선택했던 모든 것을 그만 두고 싶어 한다. 그런데 예전에 아팠던 것들이 풀리면서 더 큰 고통을 체험하기도 한다. 고통 상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좋아지려고 나빠지는 것이며, 누적되었던 고통들이 치료되고 있는 것이다. (바닥을 치는 것은 비범한 누군가의 도움을 진정으로 욕망케하여 진정한 만남 관계와 새로운 정신발달을 일으키는 희망의 시작 지점일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을 참아낸다면 자기 자신과 외부 관계가 바뀌기 시작하고 삶에 대해 긍정과 확장된 의미부여가 일어나며, 자기에 대한 지각이 새롭게 변화된다. 부정적 자아상이 깨지면 세상에 의지로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겸손). 자기가 직접 경험한 것들 때문에 다른 사람의 경험에 공감능력도 높아지고 마음도 넓어진다. 삶의 의미에 대해 주체적으로 소화해낸 답을 찾아내 영적으로 성숙해간다.

심리치료란 불가피하게 겪게 된 상처 충격들에 정신이 함몰되지 않고, 상처 속에서 긍정적인 의미(로고스)를 찾아내 예전보다 깊이 있는 영적 성장의 계기로 전환시킬 귀한 힌트를 제공하는 일종의 로고 힌트(Logos hint)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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