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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부부싸움의 근원 - 악마 연인 콤플렉스
김은옥(rroye@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12년 07월 26일 21:54 3240
페어베언에 의하면, 어린 시절 강렬하게 내면화된 대상관계 경험은 성인이 된 후 현실세계의 대상(타인) 관계에서 고통스럽게 재현된다. 가령 부부갈등이 커서 늘 배우자와의 관계를 끝장내고 싶어하고, 분노폭발 충동에 시달려 서로를 파괴적으로 대하고 있다면, 실상 이들의 무의식엔 출생후 초기 대상에 대한 깊은 두려움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친밀한 대상이 혐오스럽고 불안하게 지각된다면, 그것은 곧 그 자신의 부모와의 불안한 초기 대상관계를 보여주는 것과 같다.

대상관계론의 창시자 페어베언은, 우리의 자아를 구성하는 부분들이 항상 타자(대상)와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그에게 정신병리는, 현실에서 실속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적대상으로 표현되는 과거의 (비합리적) 관계양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부적응적 자아역동을 지칭한다.

부부가 각자 좌절이 심한 초기 환경 경험을 지녀왔다면, 그로인해 분열될 수밖에 없는 자아의 부분들과, 대상과 온전히 관계맺기 힘든 문제를 지니게 된다. 아울러 부부로 살아가면서 드러나는 이러한 열패감을 견뎌내는 중심자아의 힘이 약하면, 서로에 대해 그 어떤 도움도 주고받는 것이 어렵게 된다.

이 경우 부부는 각각 자신을 주로 희생자로 지각하고 상대방은 가해자로 보는데, 마치 배우자가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의도적으로 소홀히 대한다고 생각한다. 서로에 대해 너무도 다 잘 알고 있다고 고함치지만 사실 진정으로 상대배우자를 새롭게 있는그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이들은 각자 그들 내면에 자리한 부정적 초기대상 이미지를 상대에게 투사해, 이미 내재된 대상을 외재화시켜 볼 뿐이다. 이에 비해 보통의 원만한 부부관계에선 좌절되거나 기대하는 내밀한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부부관계나 개인의 성숙이 성취된다.

페어베언은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아니 자궁속에서 조차 대상과 관계하고 싶은 갈망이 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몇 년씩 교육과 심리치료를 병행하면서 얻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은 대상과 온전하게 접촉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회복하고, 사랑을 줄 수있는 좋은 대상을 내면에 형성하기 위함이다. 페어베언이 말하는 '나쁜 대상'은 살아오면서 현실에서 실제 경험한 심각한 좌절을 준 대상을 일컫는다. 성장 과정에서 감당하기 힘든 외상이 발생할 경우 불안과 방어가 작동되어 외부세계와 외부대상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고 수용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아울러 나와 다른 타자의 관점에서 숙고하는 자아기능이 마비된다.

이런 외상은 자아를 분열시키고 그 분열이 정신구조화되면 초기 경험이 허용하는 만큼만 지각이 제한되며, 새로운 현실과의 접촉지점 없이 독립국처럼 살아가게 된다. 자기내면 드라마에 따라 나쁜 대상이미지에 사로잡혀 평생 똑같은 상처를 반복 재현한다. 심한 경우 외부세계 관계들을 단절시킨 자폐아처럼 내면화된 관계 밖에 할 수 없게 되면, 상대 배우자와 관계된 모든 친인척 관계마저 소홀히 하고 적대적 관계로 돌아설 수밖에 없게 된다. 대상을 열망하고 사랑하고 싶지만 공격당하고 거절당하고 무시당하는 흥분된 나쁜 경험만 반복된다.


관계는 내가 주체적으로 하는 것이지 남이 나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어떤 관계가 늘 소원하고 불화가 일어난다면 그 관계 안에 자신이 하는 어떤 역할이 반드시 있다 ! 외부대상과 의 접촉을 불안해하는 나 일 수 있고, 작은 실망에도 좌절을 크게 느끼는 나, 갈등이 힘들어서 늘 철수하는 나도 있다. 엄마와의 동일시 경험에 실패해서 누구든 가까워지면 침해받는다는 망상에 시달리는 나, 나의 공격성을 담아주는 대상의 결핍으로 인해 박해불안에 압도당하는 나, 멸시당한 수치심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입만 열면 평가절하를 해서 그 불완전함에 상처받는 나, 가까이 있어보지 못한 부모 때문에 늘 혼자만 애쓰는 공허감에 지쳐하는 나..가 있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더 많은 소외되고 잊혀진 나의 조각들이 내 안에 숨어있을 것이다. 결국 이들에게 현실의 대상이란 그 누구든, 자기를 반복해서 두렵게 느끼게 하고 버리는 나쁜대상으로 지각될 뿐이다.

엄마와의 초기 경험이 안정되게 내면화되면, 인생에서 경험하는 그 어떤 서운한 경험도 사소한 실망정도로 끝날 수 있다. 믿을 만한 대상에게 자신의 공격성이나 욕망을 분출하면서도 자아 정체성을 지킬 수 있으며, 서로 살찌우는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부부가 관계를 하면서 상대의 여러 특성들을 두루 지각하고 감정을 조율하는 것이 어렵고 그래서 오직 자기경험만 중요하게 다루려 한다면, 무릇 친밀한 관계는 생기기도 유지되기도 어렵다.



은숙씨는 우울증으로 늘 관계가 나쁘게 끝나버리는 불행을 한탄하면서 분석을 시작했다. 무력감과 우울감 그리고 타인에 대한 증오감과 복수심으로 점철된 자신의 삶이 지겹다고 했다. 심지어 자기와 상관없는 사람들을 특별한 이유 없이 욕하며 다니는 자신이 한심스럽지만 이상하게도 멈출 수가 없다고 한다.

은숙씨의 부모는 삶을 살아가는데 너무나 지치고 그래서 늘 불만과 체념속에 사는 우울한 분들이시다. 은숙씨는 가족의 비참한 관계 양태를 대를 이어 물려받은 셈이다. 살아오면서 부모님이 친인척과 오순도순 지내는 것을 목격한 적이 없고, 늘 친인척 누군가의 불행과 고난에 함께 우는 것이 가장 큰 친밀감의 형태였다. 주변인 누군가가 행복하고 성공하면 도덕적으로 의심받는 일이 되곤 했다.

은숙씨는 자기실현을 돕는 활동이나 관계를 추구하는 것으로부터 늘 물러나 있는 사람이다. 오랫동안 심리학을 배우고 싶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공부를 시작할 수 없었다. 연구소에서 하는 강의도 여러 번 신청했다가 당일이면 온갖 이유로 취소를 하곤 한다. 주변에서 소개하는 단기 강의든 경제적으로 부담이 없는 기초이론을 배우는 수업도 포기되기 마찬가지였다. 은숙씨는 부모와 독립적으로 경험할 수 없었던 것을 외부 경험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부모가 한 번도 제대로 자신의 바램에 관심을 둔 경험이 없기에 은숙씨는 그 어떤 것에도 잘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 늘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흥분은 몸을 사리는 적응으로, 자아실현에 대한 성취감은 두려움으로 대체되었다.

어렵사리 부모님에게 도망치듯 결혼을 했으나 자신의 경험이 남편에 의해 침범 받는다는 두려움때문에 이혼을 생각중이다. 결혼 초기부터 남편과 갈등이 생기면 친정식구와 친구들에게 수위가 넘는 비난과 험담을 해버려서, 남편은 자신 주변의 그 누구와도 편안한 관계를 할 수 없어 고립된 상태이다. 이제는 은숙씨 보다 모든 사람이 남편을 더 나쁘게 보고 싫어하게 된 것이다. 은숙씨는 자신의 무드와 다른 사람은 아예 접촉을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남편과 화해를 유도하고 좋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도움을 원천봉쇄 해버린다.

평생 부모님의 주변이 못살고 불운한 사람들로 가득차서 서로의 불행으로만 접촉했듯이 은숙씨도 마찬가지이다. 은숙씨는 남편과 화해하고 행복해지면 천박해지고 손해 보는 듯한 감정이 일어난다고 한다.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불행한 만큼 자신도 불행해지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불행과 슬픔앞에서 행복해지는 것은 잔인한 짓이니까...

초기관계 경험으로 만들어진 내적대상은 한 사람의 정서생활의 자연스럽고도 불가피한 특징이 된다. 내재화된 대상관계는 사고와 감정경험은 주된 형태로 반복되기 마련이다. 페어베언은 부모가 건강하면 자신들처럼 아이를 외부세계와 외부대상과 관계하도록 외향적으로 키운다고 했다. 아이는 자기 나이에 맞는 탐색과정을 부모에 의해 허용받고 지지 받아야 한다.

은숙씨는 외부대상, 외부세계와 관계맺는 발달과정에 실패를 했다. 아이의 필요에 의해서라기보다 부모자신의 필요에 따라 아이를 양육했기 때문에, 은숙씨는 스스로 주체적이거나 자율적이 되지 못하고 부모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만 자기를 경험했다. 은숙씨는 대상에 대한 자발적 관심이 발달하지 못해 자신의 좌절이나 기대가 전혀 현실에서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 "선생님 어젯밤 꿈에 급히 남편과 통화를 해야 하는데 아무리 다이얼을 눌러도 통화신호가 안 떨어지는 거예요. 친구 집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 해도 버튼이 작동을 하지 않고, 메일을 써야하는데 자판이 작동을 하지 않고 정말 돌아버리는 줄 알았어요".

은숙씨는 꿈에서도 중요한 대상들과 연락을 할 수 없는 고립상태의 불안을 경험하고 있다. 내재화된 별로 유익하지 않고 행복하지 않은 대상경험만으로 삶의 변화무쌍한 경험을 대처하려니 얼마나 고되고 피곤할까. 대상관계가 주로 외부세계에서 일어나는 건강한 사람은 타자에게 자신의 소중한 것을 주는 가치를 만들어 내며 자기존중감을 지켜낸다. 그러나 대상관계가 주로 자기 내면세계에서만 일어나는 개인의 경우 타자에게 자신을 '주는 것'은 자신에 대한 가치절하와 상실로 느껴진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무엇인가 획득했다는 생각 대신 소중한 것을 늘 빼앗긴다는 망연자실 상태...

우리는 의미 있게 자신을 이해해주는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자기가치감을 느끼게 되고 그 사람들과 더불어 삶을 멋지게 살아낼 수 있다. 아이가 부모과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없다면 아이는 외부에 존재하는 타인과 행복한 교류를 하기보단 내면세계로 후퇴하여 내적대상들과 관계를 맺는다. 은숙씨의 반복되는 대상고립의 꿈엔 버림받은 경험들이 압축되어 숨어져 있다. 은숙씨는 아주 오랫동안 친구가 없었다. 학창시절 내내 한 두 번을 빼곤 왕따가 되기 일쑤였고, 어쩌다 관계를 맺게 되면 늘 극단적으로 회피와 파괴만 일어났다. 은숙씨는 이제 건강해지 위해 의심을 한다. 그가 아닌 왜 자신이 불행할까? 하고 말이다. 관찰할 수 없는 그녀의 불안은 정신의 깊은 차원에서 위협하는 유기당하는 관계와 연관된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타인과 관계하는 존재이다. 현실속의 대상 관계가 방해받고 박탈당할 수록, 내적대상 역시 사랑을 주고받는 갈망을 채울 수 없게 된다. 내면세계에 항구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악마-연인 부모상'은 꿈에 외부세계 관계에서 사랑과 필요에 대한 모든 신뢰를 배신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내가 믿고 의존하는 남편이나 아내가 한 순간 공격하고 거부하고 버리는 차가운 괴물로 느껴진다. 의지와 무관하게 자동적으로 반복되는 이 살벌한 리듬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불가능하다. 이미 이 나쁜기운에 들어가면 서로를 돕거나 사랑하는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게 된다. 배우자에게 따뜻한 미소 한 번 보내는 것 조차도 힘겨운 일이 된다. "아내가 웃으면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남편이 비웃음으로 거부할 까봐 못하겠어요.." 대인관계 장애가 그토록 변화되기 어려운 것은 지각하기힘든 출생 초기의 대상 관계가 내면에서 계속 서로에게 투사되고 다시 내면화되기 때문이다. "그럼 그렇지..니가.. "

악마 연인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은 사람에 대해 열망하고 사랑하고 싶지만 공격과 무시를 당하는 경험만 반복하게 된다. 왜냐하면 부정적 경험이 중심자아에서 분열(차단)되어 외부세계 대상과 현실적 연결지점이 없이, 외부로 일방적으로 '투사'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가까운 대상에 대해 긍정적 관심이나 긍정적 표상을 일관되게 유지하지 못해 관계가 돌연 악화된다. 내적대상과 다른 현실 속 새로운 대상에게 자신의 걱정 근심을 정직하게 소통해서 개선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은숙씨는 자신의 슬픔과 불행을 부모에게 발설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행복하고 성공을 느낄 때 부모와 단절된 것처럼 느꼈을 수도 있겠다. 은숙씨는 부모와 상호작용을 통해 정서적 접촉을 해본 일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 누군가와 상호작용을 하는게 너무나 서툴고 어렵다. 상호소통하는 대상관계를 하려면 기존 틀을 벗어난 새로운 관계를 다시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이해받고 타인과 진실로 교류하는 경험이 확장될 수 있다.

사랑하지 못하는 파괴적인 행동패턴을 우리가 꾸준히 직면할 때, 부부싸움과 악마연인 콤플렉스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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