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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감정이 중요해
김은옥(rroye@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12년 01월 08일 12:44 2695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안에 취약한 감정과 그것에 대한 경직된 방어를 지닌 채 살아간다. 개인마다 감당할 수 없었던 상처와 그걸 두번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는 것이다. 사람은 정서적 고통의 무거움에서 벗어나려 각양각색의 애를 쓴다.

정신분석을 공부하러 연구소에 오는 사람들의 한 부류는 자신의 만성적 고통에 대한 까닭을 알고 싶어 하고, 꾸준히 노력해서 자신의 힘든 마음을 바로잡아보려고 시도한다. 또 한 부류는 그러한 이유 따윈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저 고통을 자신 아닌 어떤 대상에게 대신 맡기고 잠시나마 자유롭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자신의 정서적 고통과 그 원인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살게 되면 그 고통이 중요한 대상에게 전해졌을 때, 그 대상은 그를 도와주고 싶어도 지원해줄 수 없게 된다.

일상적인 삶을 효율적으로 유지하느라 저 무의식 깊이 저장된 힘겨웠던 경험을 외면하며 살수는 있다. 하지만 그 힘들었던 경험을 되돌이켜 신경 써서 보지않으면 '그 경험 자체'가 (겉모습만 다를 뿐) 반복해서 되돌아온다. 정신분석은 고통과 불안을 반복해서 일으키는 무의식의 정서들을 다루는 작업이다. 정신분석의 희소가치는 누구에게나 있는 정서적 고통의 무의식적 근원이 어떤 고상한 의식체험에 의해서도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무의식의 욕구들과 감정들'은 단지 다른 외양으로 변신해서 자신과 타인에게 불편한 압력을 주며, 다양한 심적 고통(증상)으로 변형되어 평생을 따라다닌다. 무의식의 특성과 원리를 모르는 자가 그 고통을 없애려고 시도할 때 오히려 상처가 더 악화되기도 한다.

정신분석을 공부하면서 개인은 분열 억압된 정서(분노, 수치, 충격..)에 기인한 파국적 관계패턴을 다시 직면하고 그 원인을 하나씩 인식해가게 된다. 정신분석은 고통스런 감정들의 망각된 근원을 탐색해 다루는데, 이 과정은 결코 쉽지도 빠르게 진행되지도 않는다. 분열된 외상 감정들에 접근하는 걸 '내면의 연약한 아이 영혼'이 너무도 진저리치기 때문이다. 상처입은 감정은 함부로 접근할 경우 돌연 삶 전체를 포기하게 만들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지닌다. 그래서 '의식에 수용되지 못한 감정들이 파동치는 무의식'에의 접근은 아무리 탁월한 지능을 지닌 자라 할지라도 쉽지가 않다.

정신분석가는 감정 문제 해결과 연관해 명료한 해결책이 아니라, 주체가 직접 경험하며 나아가야 할 거시적인 방향과 방법을 안내하고 함께 보조를 맞춘다. 이름도 뜻도 알 지 못한 채 정신없이 망각되었던 괴로운 감정들의 호소를 하나씩 되찾아 이해하고 공감하며 위로해야, 그제서야 정신은 상처를 떠내보내는 애도 반응을 시작한다. 가령 '꿈'을 통해 자신을 괴롭히는 고통 증상의 정서적 뿌리를 대면하는 과정 중에, 내면을 경직되게 구성하던 요소들의 배열이 조금씩 유연하게 바뀌는 체험을 한다.

정신분석을 공부하는 이들은 "아프다" 고 모두 비명을 지른다. 마음 속 비명은 '정서적 언어로' 표현되지 못한 채 포기되고 얼어붙은, 성격전체가 마비되어 닫힌 상태를 일컫는다. 그것은 작은 소리조차 크게 느껴지는 약하고 민감한 상태이다. 사실 삶은 기쁨의 요소보다 짜증나는 요소가 더 많다. 삶을 잘 사는 느낌은 현실 내지 대상과의 관계에서 전체성을 향해 나아갈 때 생긴다. 부분과 부분이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고 서로 어우러져야 좋은 일이 생기 듯이, 인간은 자신의 취약함에 넘어지고 뒹굴고 낙담하지만 취약한 자신의 인격 부분을 끌어안는 힘으로 좋음을 생성해내기도 한다.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어도 새로운 해결을 시작하게 하는 우리가 모르는 힘들이 '그곳'에 묻혀 있는 것이다..

반복되는 꿈은 아무런 변화가 없고 새로울 것이라곤 없는 몽자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에 대한 정보와 해결 과제를 나타낸다. 무의식이 의식을 향해 계속해서 모종의 메시지와 영향을 표현하는 것이다. 비온은 꿈이 '열어보지 않은 신의 편지'이며, 우리 다수는 그 편지를 열어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편지는 무섭고 불안한 감정, 금지된 욕구, 좌절되어 수치스런 경험, 성취되지 못한 소망을 담고 있다.

반복되는 꿈은 정서와 인지가 특정 발달 단계에서 과도한 좌절이나 외상으로 인해 발달이 정지된 상태를 반영한다, 이런 '정지된 꿈'에 대해, 엄마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매를 맞으며 자랐기 때문에 자신의 친정엄마처럼 자신도 자녀를 마구 모욕주고 때리는 것이라고 '해석'해주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해석이 발달이 지연되고 회피된 무의식의 감정과 정지된 소망 상태를 벗어나게 하진 않기 때문이다. 생각이나 소망 그 자체만으로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발달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약함을 견뎌내면서 감정의 발달을 도모할 수 있을까.

정신증적인 사람이 좋은 음식점에서 근사한 식사를 하면서 즐겁고 행복해하다가 웨이터가 잔에 커피를 반만 따른 것에 격노해서 그날 좋았던 저녁시간을 망치는 경우처럼, 외식을 기대했는데 남편과 아이가 자신을 기다리지 않고 라면을 끓여먹은 것을 보고 물컵을 집어 던지며 분노하는 한 엄마처럼, 닦고 쓸고 정리한 자신의 공간에 누군가 침범할까 철통 방어를 하는 사람처럼, 누구든 자신에게 피해를 주거나 이용해 먹는다는 의심을 하는 사람처럼, 상담과 수업을 매번 신청했다 취소하고 사라지는 사람처럼, 잘 하고 싶고 변화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처럼, 비위에 거슬리는 부정적인 말 한 마디 때문에 대화의 전체내용을 부정하고 밤새 싸우는 사람처럼, 자신의 욕구나 필요를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어려운 사람처럼, 단지 실망스러울 때 거부당하거나 공격당했다고 느끼는 사람처럼,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 홀대당하는 느낌으로 시작된 격노는 결국 오래전에 발달이 정지되어 고착된 어떤 감정 상태를 의미한다.

이들은 서운한 감정이든 두려운 감정이든 '나는 옳다'는 관점을 내세워 화를 내기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정지된 감정과 정신의 성장이 필요하다. 이들은 이 지점에서 외상을 겪어 발달이 멈춘 사람들이다. 이 지점에서 예상치 못한 신뢰롭고 따스한 정서적 경험들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이 중지되었지만 중지할 수 없는 부분에서 우리는 차근히 배워야하고 꾸준히 노력을 해야 한다. 어떤 한계에 걸려있는 이 상태는 마치 변화를 두려워하는 "아기와 같은 상태"라 할 수 있다. 이 중지된 나쁜 정서 상태를 좋은 정서상태로 바꿔주기 위해서는 무의식의 감정과 자아의 기능들을 활성화하는 노하우를 지닌 정신분석의 도움이 필요하다.

정신분석수업을 5년째 받고 있고, 상담치료를 5년째 받고 있는 미미씨는 이제서야 자신이 삼분의 일 정도 노력해 온 것 같다고 말한다. 무엇에 대한 노력일까. 정신분석은 자신의 존재를 진지하게 받아들임을 시도하게 한다.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도록 고무시키는 일은 일생을 건 과제일 수 있다. 꿈속에서 벌어지는 반복되는 장면이든, 실수든, 파국적 실패이든, 파괴적인 분노로 인한 관계이든 이 부분적인 한계는 전체 경험의 잠재성을 활용하지 못하는 중지되고 마비된 자신의 인생 상태를 표상한다. 멈춰버린 2~3세의 고통스런 감정과 정신구조를 갖고 50대를 살아간다면 이 사람의 내적, 외적현실은 어떨까.

서로를 비난 공격하는 부모 밑에서 아이가 자라났다면 이는 지지와 지원을 파괴하는 환경에서 자라는 것과 같다고 위니캇은 말했다. 그런 '좋음이 손상 박탈된' 환경을 겪으면서 그것이 아이의 정신에 각인되고 회복없이 축적되면, 거기서 벗어나 살아남으려는 의욕과 의지가 사라지게 된다. 좋은 엄마는 '머리'를 통해서 환경을 제공하지 않고, (의존이 쾌락이 될 수 있도록) 좋은 감정(느낌)을 통해 채워준다. 그런데 엄마가 정서적으로 아플 경우에는 어쩔수없이 정서 대신 지적 노하우를 아픈 만큼 사용해야한다.

우리는자신의 삶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주 많다. 자신이 정서적 불능상태, 자신과 타자를 진정으로 배려하고 사랑할 수 없는 정지 상태에 처할 경우, 장기적이 될지라도 반드시 정서적 소화능력을 키워야 한다. 정서적 불능상태란 가령 아기가 발로 무언가를 걷어차 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지만, 인지적 통합능력이 부족해 그 고통이 어디서 어떻게 얼마만큼 오는지 알 수가 없어 정서적으로 소화해내지 못하는 상태이다. 소화되지 못한 정서들은 방어기제에 의해 무의식 깊은 곳에 봉쇄되어, 평생 영향을 미친다. 2~3세 정신구조에 고착된 성인도 아이와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여기저기 부딪쳐 정서적 고통을 받지만 그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상태로 지낸다. 오랜기간 내면에 잠재되었다가 비합리적 행동과 증상으로 돌출된 정신현상들의 의미에 대해 직면하는 것을 부인, 회피, 평가절하하거나 격노하는 것은 충격적 외상과 그것에 대한 원초방어로 인해 풍성했던 본능적 정서 경험들이 꽁꽁 마비된 지점이 있다는 신호이다. 이 신호에 우리는 어찌 반응해야 하나..

인간은 거친 세상에서 살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뜻밖의 상처와 내적 외적 갈등을 피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정서적 불능'이 아닌 정서 능력이 성장하도록 다양한 외부세계, 외부대상들과 부단히 접촉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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