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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김은옥 http://www.freudphil.com
2010년 06월 20일 21:05 2625
'잘 알지도 못하면서(악성 자기애장애)...'

이미 만성화(구조화)된 심리적 결함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매우 힘든 일이다. 그래서 많은 분석가들은 개인이 어느정도의 결함을 지녀도 직업을 유지하는 기능적 삶을 살 수 있다면 괜찮다 말하기도 한다. 나 또한 심리적 결함을 지닌 전문직업인을 현실적응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자아가 발달한 사람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정신의 병리성이 자신에게 그리고 관계하는 타자에게 '똑같은 성질과 패턴'을 지속, 전염시킨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을 이유없이 심지어 아무런 관계도 없이 경멸로 상처를 주고 관계를 날려버리는 것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개인의 성격과 행동은 다른 개인의 성격과 행동에 암암리에 영향을 미친다. 이들은 병리유발적 신념이 지나치게 강해 어떤 나쁜 기대를 잔뜩 가지고 자신이 기대한 바를 주변으로부터 촉발하기도 한다. 노력의 허망함, 친밀한 관계의 위험성, 배신과 거부의 필연성과 같은 자기 신념이 강하다면 이들은 어떤 상황, 그가 누구든 고통스러운 삶을 절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령 커플 중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내적 대상관계' 패턴은(관계하는 동안 투사 내사되어) 상대방의 감정을 조정하고, 의도되지 않은 행동을 불러일으키고, 심지어 정신구조까지 조직화 한다(서로 미워해도 닮고 좋아해도 닮는다). 그 결과 자신의 비현실적인 요구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실망스러운 상황에서 절망이 아닌 의미있는 그 어떤 것도 발견할 수 없다.

내적대상들과 대상관계 흔적들은 개인의 내면에 있지만, 현실에서의 외부 대상관계들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외부대상에 대한 지각내용을 좌우하고, 외부대상에 대해(긍정적/부정적인) 환상 관계를 일으킨다.

그 대상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끌리고, 좋아하고, 무조건 믿고, 숭배와 찬사를 보내고, 또 반대로 경멸하고, 두려움 느끼고, 시기하고, 평가절하하고, 의심하는 착각이 일어난다.

"어느 학교 나왔어? 몇 살이야? 결혼 했어? 아이는? 배우자는 뭐해? 어떤 캐릭터야? 박사야? 능력 있어? 예뻐? 인간성은? 옷입은 것은 어때? 음~ 별 것 아니네." 이렇게 우리안에 있는 내적 대상들은 새로운 대상을 만날 때마다 진정한 관계맺음을 방해하기도 하고 때론 도움을 주기도 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을 왜곡하는 것은, 사랑을 갈망했지만 좌절시킨 가학적 부모에 대한 유아기의 마음을 고집스럽게 계속 유지하려는 징표이다. 새로운 대상을 자신 안에 들이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던 그 부모관계를 충성스레 반복하는 것이다.

성격은 어린시절 최초 대상관계에서의 만족과 실망 경험들에 의해 구조화된다. 성적 커플, 돌보는 커플, 유기하는 커플, 박해하는 커플, 이용하고 착취하는 커플, 평가절하하고 조정하는 커플, 견고한 토대를 제공하는 안정된 커플등 그 관계 양태는 다양하다.



개인의 내면에 자리잡은 대상들은 상담치료가 오래 진행됨에 따라 무의식적 환상관계에서 '살아있는 현실' 관계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가령 상담자는 상담장면에서 만나는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성실하게 대한다. 그런데 어떤 내담자는 처음부터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녀는 어떻게 상담자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자신을 거부한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런 상황에서 그/녀가 보고 싶어하지 않고 싫어하는 그/녀의 어떤 특징이 상담자 안에 있는 무엇에 의해 자극되어 거부반응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지각하게 된다. 이런 그/녀의 불안이 상담자 내면에 강하게 투사되면 서로에게 맞출 수 있는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그녀가 만나고자 하는 '그 대상'은 눈 앞에 현존하는 상담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신랄한 비난을 퍼붓는 엄마의 입술(두꺼운 입술이 기분나빠), 경멸하는 아버지의 눈빛(나에게 뭘 캐내려는 거지), 윽 엄마가 싫어하는 보라색 옷을 입었네."

그/녀는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던 과거 상처들 때문에 안전감을 얻기 위해 자기자신과 타인을 향해 '완벽한 존재이어야 한다'고 몰아 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로인해 현실에서 불완전해 보이는 사소한 요소들을 못견뎌하며, 불편한 사실들을 '부인'하거나 비난하는 방어가 자동적으로 작동된다. 이런 심리구조와 심리특성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끊임없는 불만과 불안의 원인들에 관해 아무 것도 직면할 수가 없다. 또한 자신의 혼돈을 타인에게 전염시키는 이상한 끌개를 갖고 있기에, 새로운 대상을 만나도 두 주체는 서로에게 아무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없게 된다.

정서가 빠르게 변동하고 즉시 강렬한 관계를 맺는 성향의 사람은(좋고 나쁜), 분열된 성격구조와 부정적 내적대상들로 인해, 타인을 자극하고 감질나게 만들고 유기하고 파괴한다. 그래서 상담자도 그/녀와의 상담을 포기하고 싶어진다. 그/녀의 부정적 내적대상이 상담자에게 투사되어, 그/녀에게 상담자가 고쳐야할 문제 투성이로 보이니까 말이다(자신을 위한 무언가를 갖추지 못한 결함 대상으로 보인다(그녀 엄마처럼...).


상담치료의 중요 요소는 온전한 자기와 자기대상 관계이다. 그런데 구조화된 병리성은 자기와 자기대상 관계를 끊임없이 왜곡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적절한(서로 돕는 관계의) 자기대상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상담가는 자기대상 경험을 좀 더 온전한 방식으로 선택하는데 필요한 내담자의 관계능력 자아능력을 발달시키려 노력한다. '왜곡된 자기 구조의 변형'을 가져다 주는 힘은 무엇보다도 '치료관계 자체'이다. '관계'가 마비된 자기를 깨어나게 하고 자아의 발달을 촉진시키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그/녀의 걱정과 스트레스를 덜어주고 싶다는 소망과 열정이 자연스레 일어난다. 왜 일까? 그/녀가 상담자에게 접촉하기를 원하는 주관적 마음과 외부현실을 이어주는 상호작용적인 관계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상담자를 신뢰하고 소중한 대상으로 대하는 자연스런 반응과, 그/녀의 눈 빛 속에 반영된 상담자 자신의 긍정적 모습이 순환되면, 두 주체는 서로 마음이 통하고, 말이 통한다(무의식에 대한 의미 깊은 치료적 성찰은 이 상호소통 조건이 어느정도 갖추어진 이후에야 가능하다.).

수년간 쌓아온 관계이든, 평범한 모임 중에 일어난 관계이든, 여행 중 잠깐 만난 관계이든 기분 좋고 유익한 이런 만남은 오래된 친밀한 내적대상 관계가 지금여기의 현실 관계에 발현된 것이다. 이 관계는 심리치료 상황에서도 그대로 출현한다.



'말자'씨 이야기.
말자씨는 가죽의자와 대리석 책상이 놓여진 럭셔리한 강의실, 프로이드의 긴 카오치가 있고, 엔틱 가구들로 예쁘게 정돈된 상담자의 공간 그리고 지적이고 아름다운 50대 정도의 노블한 여성이 자신을 따뜻하게 환대해주는 환상을 갖고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자신의 기대와 달랐던 현실 환경과 젊은 상담자의 모습에... 의심으로 할 말을 잃고 충격에 빠져 오랜시간 침묵한다. 그녀의 포기된 희망이 상담자의 무의식적으로 전해오면서 그녀의 완고함에 나는 잠시 불안을 경험하였다.

"유명하다는 정신과 의사를 다 만나봤고, 심리학 박사도 여럿 만났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친구의사들에게도 조언을 받았지만 신경안정제만 처방해 주더라고요."

그 누구를 만나든 자신의 삶은 변화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녀가 정한 규칙, 지각, 절망, 공허감을 채워주기 위해서 그리고 그녀를 염려하고 돌보기 위해 애를 썼던 과거의 그들이 떠올려 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말자씨를 만족시켜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제한되고 규정된 말과 행동에, 두말할 나위 없이 대상에 대해 평가절하하고 경멸하는 감정이 상담자인 내게도 전달되었다. "말자씨는 왜 왔을까? 나도 도움을 줄 수 없겠지. 부디 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그 누군가가 있기를 바란다." 설레는 마음으로 그녀를 만나기를 기대했던 시간이 가치없게 느껴진다. 나는 벌써부터 그녀의 치료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억지로 상담시간을 참아내며, 상담자가 보여준 관심이나 해 준 말을 받아서 그것들을 쓸모없게 만들어, 상담자에게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을 안겨주는 것이 그녀의 전형적인 행동같았다. 자신을 도우려는 타인의 견해에 바람직하지 못할 정도로 강하게 지배력을 행사하려 하는 모습을 보고 당혹스러웠다. 결국 내가 말자씨를 도와도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지 그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의미없는 시간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꿈이야기를 건네보았다. 말자씨는 상담 오는 아침 꿈을 꾸었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나무와 꽃, 식물이 가득한 정원에 갑자기 불도저 한 대가 나타나서 그 모든 것을 뭉개버렸다고 한다. 어쩌면 그 불도저에게 꿈꾸는 이가 경험한 좌절처럼, 나도 말자씨에게 화가 나고 그녀에게 내쫒긴 느낌이 들었다.

어느순간 그녀가 일상의 관계들을 정돈하는 모습이 익숙하게 들어왔다. 그녀의 엄마는 말자씨의 어떤 요구든 전적으로 무시해 버렸을 것이다. 사랑과 관심을 바라지만 침범, 침해가 두려워서 말자씨는 도망간다.

자신의 외로움과 슬픔, 공허 그리고 고통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을 유혹하고 버리는 걸까? 엄마가 불도저처럼 자신을 찌르고 모욕, 금지를 주었기에, 말자씨 역시 다른 사람을 망치고 파괴하는 걸까? 진정으로 아무런 도움을 바라지 않는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엄마가 어떻게 자신에게 실패했는지 말하고 싶은 걸까?

어떤 방식으로든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를 아주 멀게만 느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주장하고, 기존 정신성의 상실을 감내하기를 회피해서 다시 상담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유아의 자기는 헌신적인 부모와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탄생한다. '자기'는 타자가 확인해주고 반응해주며 사랑해주는 오랜 상호 돌봄 관계 안에서야 적절하게 성숙할 수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안아주는 환경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가 어머니에게 주는 선물도 산산조각 내버렸을 것이다.

외부대상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내면의 구성물들을 깊이 이해할 수록, 우리는 서로를 그리고 우리 자신을 잘 알 수 있게 된다.

위니캇에 의하면, "아기가 없다면 엄마도 없다." 개인이 안전하게 속해 있는 대상이 없다면, 또한 그의 타자성을 규정하고 가치를 확인해주는 대상들이 없다면 정신의 발달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엄마-아이'가 사랑과 상호적 관심이 충분하지 못하다면, 내적대상 관계는 침체되고 외부대상 관계들도 평가절하되고 왜곡된다(자신이 경험한 부정적 극단으로만 보고 느낀다.).

그래서 혼란을 주는 끌기로 현실 관계를 악화시킨다면, 그 개인은 파편화된 자기 경험과 부분대상 관계가 지배하던 유아기(편집-분열 자리) 상태를 반복하며 살아가게 된다(모든게 다 불만족스럽고 적대적 의심만 있는 상태).

대상에 대한 오만하고 공허한 승리를 보여주는 자기(애) 장애를 지닌 채, 부정적 내적대상에 사로잡혀 자신을 살아있게 도움주는 모든 관계에 대해 공격적으로 대치하게 된다("그 누구도 믿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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