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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순 - '비소통, 비현실적 왜곡의 진실'
김은옥(rroye@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10년 01월 31일 21:20 2984
모순을 수용한 해리씨 이야기.


꿈1.
<지갑에 200만원의 현금을 넣어 두었다. 세금도 내고, 친구의 생일 선물도 사고, 좋은 일을 하는 곳에 기부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도 대접하려고 말이다. 하지만 잠시 딴 생각하다가 가방을 지하철 선반에 두고 내려 버렸다.

난감하고 당황했지만 이성적으로 차분히 생각해보니 2호선은 순환선이니까 시간을 맞춰 그 자리에서 다시 탄 다면, 누군가 가져가지만 않는다면 가방을 찾을 수있을 것 같았다. 당황한 마음을 가다듬고 지하철 물품 보관소에 전화를 건다. 하지만 통화가 쉽게 되지 않는다. 잘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예상과 어긋나는 상황들에 답답하다. 겨우 역무원과 통화가 되었는데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들을 소리만 한다.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에 "똑바로 잘하라"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 누구라도 좋으니 정확한 의사소통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역무원과 통화가 되었는데 순환선이니 그 자리에서 시간을 맞춰 타보라고 정확한 시간과 차번호, 자리위치를 확인시켜 주었다. 나는 정확한 시간에 그 지하철을 탔고, 가방을 발견해서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꿈2.
정해진 상담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아침부터 서두른다. 여러번 지각한 탓에 오늘 만은 늦지 않으려고 노력해서인지 십 여분 일찍 도착했다. 하지만 주차장 입구를 찾을 수가 없다. 몇 번을 돌다가 기억을 더듬어 겨우 찾았는데 상담 오피스건물이 아닌 다른 아파트 주차장이다. 시간을 보니 상담약속시간이 30분정도 지나 버렸다.


꿈3.
선생님과 상담중이다. 옆 사무실에 록음악소리가 크게 나고, 한 쪽의 사무실에서는 싸움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상담문의를 한다고 들어왔다. 상담중인 우리를 보고 그 사람은 조용히 듣고 서있다. 또 누군가 들어왔다. 하지만 선생님은 흔들림없이 내 이야기에 집중을 하고 계신다. 왜 선생님은 이 모든 소음과 침해적 행동에 아무런 조처를 하지않는 것일까. 난 너무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인간에겐 상처를 치유해 변화 성장하고픈 욕구와 상처를 반복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래서 우리 자신에게는 악한 감정과 격한 파괴성이 있지만 좋은 감정 또한 주기적으로 돌아온다. 아울러 현실에서는 좋은 일도 일어나고 나쁜 일도 일어난다.

정신분석가 Winnicott은 치료자들에게 "모순처럼 보이는 역설을 잘 수용하라"고 당부했다. 어떤 정신 현상의 심리적 가치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라는 뜻일 것이다.


이 꿈의 주인공 해리씨는 경계선자일 수도, 자기애자일 수도, 심각한 공생적 성격병리를 지닌 자일 수도 있다. 무관심한 부모와 버림받은 아이, 가학적인 공격자와 분노하는 희생자, 이상화된 구원자와 기대와 요구만 하는 오만한 자의 특성은 '엄마-유아' 이자관계에서 드러나는 역할의 재현이다.

우리는 관계를 잘 맺어 잘 지내고 싶어하지만 잘 못지내고, 잘 지내지 않는 불만과 화내는 부분이 더 많고 크다. 자신 스스로와 잘 지내지 못하는 것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때론 그 고통들을 없애려고 더 큰 상처를 내기도 하는데 그것은 우리 속 죽음욕동의 자태이다.


상담장면에서 해리씨는 자신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과 유사한, 모순되고 부조리한 형태의 꿈들을 가지고 온다. 사방이 유리로 된 집에 살면서 자신의 사적 부분이 모든 사람에게 노출되는 장면이라던지, 고속도로에서 스키를 탄다던지, 상담실 방이 오픈되어 수 십명의 상담자가 칸막이를 치고 상담을 하고 있다던지, 벌레가 집 채 만하게 나온다던지, 열심히 걸어갔는데 거꾸로 되돌아 왔다던지, 재래식 화장실 밑에 바다가 있는데 거기서 수영을 한다던지, 50층 건물에서 뛰어내려도 상처 하나 없고, 칼로 베었는데 피 한방울 나오지 않는 그런 꿈들이다.

"선생님 뭔 뜻이예요? 제 꿈이지만 황당하기만 해요. 정신없고 어지러워요. 개꿈이죠?"


신뢰할 만한 좋은 대상에 대한 '관계 결핍'은 세상과 현실의 가깝고 중요한 사람들에 대해 경멸과 조롱 그리고 피해의식, 피해망상을 만든다. 부모와 아무런 질적 관계도 없었고 특히 엄마를 대리해 줄 수 있는 튼튼한 관계 경험이 부족했던 해리씨는, 상상속에서는 이상적으로 부모와 관계를 맺어가지만 불안정한 정체성으로 인한 내적 혼란으로 모순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해리씨는 직접 받아 본 적이 없는 부모의 사랑과 역할을 배우자와 자녀에게 주려고 하면서 이상적 자기와 현실적 자기 사이의 괴리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울러 해리씨는 외부세계(대상)와 자기 사이에 경계를 명료히 유지하면서 동등하게 상호작용하고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를 놓치며 살고 있었다.

해리씨는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잘해주는 사람에게 '뭐든 다 주고픈 무의식적 욕망'이 크다. 애착하고 융합하고 싶은 욕구가 너무나 커서 누구에게든 잘 해줄 것 처럼 유혹을 한다. "나에게만, 오로지 나에게만 무한정 사랑을 베풀어주세요.!" 이때 자기를 보호해주는 대상은 절대로 결핍을 갖고 있으면 안된다. 하지만 상대가 "당신도 날 채워줘. 나에게 헌신해주고 인정해주고 사랑해줘!'" 라고 자기를 쾌락의 대상으로 삼으면 마치 그 대상이 자신을 착취하고 무시한다고 비하로 처리해버린다. "날 이용하지마. 날 수단으로 삼지마!."


해리씨는 꿈2, 3을 늘 반복한다. 자신 스스로 무의식에 들어가는데 방해하는 요소가 너무 커서 방어하는 내용이다. 해리씨는 심각하게 비소통적이고 비현실적이게 자신의 결핍을 채워줄 환상적인 이상화 대상을 만들어 all good을 하고, 무지 무지 큰 기대를 했다가 좌절을 당하면 "말도 안돼요.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죠? 내가 무슨 죄를 지었죠? 그 인간이 혐오스러워요. 죽을 때까지 용서하지 않을거예요!."

왜 자신이 그런 상처나 피해를 당했는지 '반성차원'이 아닌 자기가 한 것(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과대해서 일어난 탈인데도 불구하고)에 대해선 인지왜곡해서 지워버린다. 그러면 그 대상은 all bad되어 이기적이고, 파렴치하고, 인색한 나쁜 사람으로 지각된다. 해리씨의 자기이해가 전혀 없는 이런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제 삼자가 밖에서 보았을 때 '모순'으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대상인 부모에게 시작되어 배우자에게서 신뢰하는 기반을 느끼지 못할 때 "왜 내겐 믿을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야?"라고 상실감에 무너져 내린다. 해리씨는 부실했던 근원적인 안정감을 찾기 위해 제대로 받아본 적 없는 공생적 관계를 만들어 상대가 누구이든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여보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봐. 당신만 잘했고 나만 잘못했다고 나만 나쁘다고 하지마. 나도 잘해보고 싶어. 기회를 줘!"라는 남편의 간절한 소망에 해리씨는 "더 이상 상처 받고 싶지 않아. 내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그 때 당신은 뭐 했어? 나에게 어떻게 상처주었는지 몰라? 이제 방법은 끝이야!."라는 방어자세로 정말 잘 살아보고픈 진심과는 달리 남편을 평가하고 경멸한다.


어린시절에 엄마와의 공생 경험이 과도 결핍된 사람은 이후 삶에서 평생 공생욕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엄마와 따뜻한 융합을 경험하지 못했던 아이는 엄마로부터 편안히 '분리'되기 힘들어 자율성 발달에 큰 장애가 생긴다. 그런 개인은 나와 다른 사람의 '차이'가 자기를 위협하는 거부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녀에게 늘 거대한 기대만 받는 사람의 입장이나 마음은 어떨까?


자신에 대한 인식과 상대방의 마음 상황에 대한 예측은 동시에 발달한다. 현실적 자기 체험은 중요한 초기 대상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현실대상 관계 전반에 영향을 주고 받는다. 섬세하고 유연한 감정의 교류는 서로 사이에 오가며 발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타인에 대한 긍정적 신뢰를 기반으로 형성된다. 누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부부상담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이 해리씨처럼 상대 배우자를 야단치고 고쳐달라고 부탁한다. 이럴 때 소통이 아닌 거부와 배신을 느끼는데, 그것은 상담선생님이 남편 또는 아내말만 들어주고 자신이 틀렸고 나쁘다고 한 것같아 서운한 모순된 오해를 안고 씁쓸하게 돌아간다. 사실, 상담자는 단지 원래의 비틀어진 그 모순을 약간만 제자리에 돌려 놨을 뿐이다. 한 사람만이 아닌 두 사람다 자기 입장에서 느끼고 말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사람의 말이나 마음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고, 상대방의 어느 수준을 이해하려면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도 함께!. 하지만 모순속에 빠져 사는 사람은 오랫동안 반복해서 자신을 괴롭혀온 문제를 마술처럼 시간과 공을 들이지 않고 누구에 의해 단 한번에 해결되길 바란다. 그런데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상대가 틀리고 나쁘고 종국적으로 그(녀)가 사라지는 것이란다.

어릴 때부터 소중한 대접을 받은 적이 없고, 안정된 따뜻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인간적인 부드러운 면목을 사용할 수없다. 이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힘들면 그 아픔을 정직하게 제대로 직면하고 표현하지 못한다. 고맙다고, 아프다고, 더 달라고, 괴롭다고, 기쁘다고, 어떤 것이 두렵고 걱정된다고 말을 하지 못한다. 감정이 억압되어 모순에 고착된 삶을 살아왔기에 상대방도 자신처럼 거짓으로라도 순종해서 시키는 대로 하게 하고, 뒤로는 조절할 수 없는 피해의식에 시달리게 만든다. 자신이 정직하지 못하기에 남도 정직하게 볼 수 없는 것이다.

해리씨는 자신이 무엇이든 논리적으로 잘 알고 모든 고충을 잘 처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신뢰감 없이 뭐든 자기중심적인 충동으로 행동하기에 자신이 하는 일들을 현실 관점에서 통찰하고 판단할 수가 없다.

해리씨는 인생에서 너무나 고통스럽고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감정에 관해서 물으면 지적인 생각들로 포장된 내용들을 지루하게 반복한다. 때론 서럽게 울지만 아무런 교감이 느껴지지 않고, 판타지도 없고, 기도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인간의 의지로 해결한다고 핀잔을 주는 목사님의 말에 혼란스러워하고 (자신의 공격성인줄도 모르고), 꿈도 꾸지 않고, 철갑을 두른 듯 함께 지내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공감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 느끼는 문제도 없다. 그저 상담의자에 앉아 어떤 처분만 기다리는 사람이랄까.

해리씨는 외부대상과의 관계가 모순으로 지각되어 외면하고 경시했기 때문에, 대상을 통해 자신이 옳은지 그른지 교정하며 살 수가 없었다. 우리는 내재된 대상과 소통하고 관계하는 것 처럼 외부대상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고 그들의 좋은 모습을 배워가면서 자신에 대해서도 알아 간다.

하지만 내부와 외부의 대상 관계들이 모두 차단되었을 경우 세상과 현실에서 그 누구도 (자신조차) 믿을 수 없게 된다. 해리씨의 인생은 모순된 자기지각과 태도로 인해 현실의 누구에게도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고, 이용당하고, 욕먹고 거부된 시나리오로만 가득하다. 상담에 와서 힘든 얘기를 하면 (분열되어 모순된 내적 요소들 중) 자신의 추하고 결핍된 부분만 드러날 것 같아,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다. 그것은 자신에게 맞지 않고 없는 일로 치부해버리면 (해결)된다고 (아이처럼 주관환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해리씨는 꿈에서 좋은 의도를 갖고 출발하지만, 이상스럽게도 의도와 다르게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악한 반대의 결과를 주고 받게 된다. 미모의 여성이 마녀로도 보이는 (입체 마술) 그림처럼, 공간을 여러가지로 경험하는 것은 정신의 모순 통합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 정신의 한 부분(요소)에만 집중할 경우 우리는 덜 불편한 모습으로 '방어(변장)된 나'를 선호하고 지각하며, '본래의 나'를 박해 망각한다.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절대적 해답을 찾으려는 것은 그 타인을 박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단지 자신의 기대치를 내려놓고 '가능한 부분'에서 용서를 하고 사는 것이다.

따라서 한 가지 방식으로만 보았다가 다른 방식으로 보는 것은, '분열 모순된 나'를 있는 그대로 지각 수용하는데 기여하는 더 넓은 안목이다. 입장을 바꿔 상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능력과도 같은 것이다.

예를들어 오염불안(청결강박)이 센 해리씨는 남편이 와이셔츠를 한 번정도 입으면 세탁을 해버린다. 편하게 입을만 하면 없어지는 세탁물에 대해 때론 불안하고, 선택할 의지없이 통제당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는 남편의 말에 아내는 비소통적이고 비현실적 대응을 한다. "더러워서 빨았다고 그게 뭐가 잘못이냐고, 그게 왜 비난 받을 일이냐, 더러운 아내랑 그렇게 살고 싶냐, 고마운줄 모른다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른다. 해리씨는 남편이 편하게 입을 수 있고 선택할 수 없는 자유가 없는 것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다. 무엇보다도 소통되지 않아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남편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다. 아마도 누군가 해리씨말만 듣게 된다면 그 남편을 아마도 게으르고, 잔소리쟁이에 꽤 지저분한 남자쯤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나만 생각하지 않는 능력은 우유부단한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 덜 경직될 때 우리는 회복이 가능한 존재가 되고, 타인과 조화를 이루는 관계가 된다.


강렬한 융합 관계를 맺은 부모의 자녀는 (부정이든 긍정이든) 흔히 강렬한 감정을 갈망한다. 방임적인 부모의 자녀들은 자신을 방치하는 사람을 상대로 사랑과 연민을 느끼며, 우울하고 변덕스러운 엄마를 가진 아이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끌린다. 또한 가학적인 사람은 피학적인 사람들을 감지하는 예민함이 특별하다. 이들은 문제 있는 부모와 정반대되는 사람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새로운 모든 관계에서 어린 시절에 겪었던 경험이 무서우리만치 다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끈질기게 변하지 않는 '무의식' 때문에 치료자 또한 새로운 긍정적인 애정 대상으로 받아들여지기보다 과거의 고질적인 부정적 대상으로 경험된다. 아울러 친숙한 자신의 행동패턴에 따라 우울과 상실 그리고 불안을 안타깝게도 다시 경험하곤 한다.

상담자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상담을 하는 것으로 보여 박탈감을 느끼기도 하고, (모녀 상담을 함께하는 경우) 상담자가 친밀한 자신의 자녀를 빼앗아 자신을 버리도록 유도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자기중심적인 부모로 보여 비위을 맞추고 겉으론 순종적으로 잘 따르는 것 같지만 속으론 강한 적대감을 품고, 친밀해지면 간섭받을까봐 오지 않고, 자신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거부자로 느껴지고, 원시적 이상화로 한계없는 지혜로운 대상으로 보이기도하고, 인정머리 없는 인색한 아버지처럼 상담자를 바라본다.

해리씨는 지지적일 것이라고 믿었던 의존 대상에 대한 깊은 상처로 얻은 수치심을 방어하기위해, 경멸적 태도로 상담자의 관계나 노력을 무산시키기 일쑤였다. 함께 이룬 작은 성취에 대해 "내가 도움 받으면 그 공로가 선생님에게 다 돌아 가는 거죠. 왜 내가 문제를 해결하면 선생님이 인정을 받죠? 꿈도 말하기 싫어요. 꿈을 말하면 결국 선생님이 옳고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 확인될 뿐이니까요."

그녀는 엄마와의 상처 경험처럼 무관심으로 내쳐질까봐 상담자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자신이 잘 되기를 바랄 것이라는 마음의 그림이 없다. 신뢰해본 '대상'이 내면에 없다! 도움을 받고 싶지만 상담이 부담스럽고 힘든 것은, 아무런 도움없이 힘들었던 순간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불안했던 무의식적 과거 상황이 상담자에게 그런식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상담받는 위치의 사람을 잘 이해 할 수있는 방법은 그러한 역할을 스스로 경험해 보는 것이다. 분석치료를 받으면서 도움 받았던 상담자 자신의 경험은, 내담자의 그 어떤 말이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준다. 어려운 순간들에 어떤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잘 알기 때문에 동일한 상황에서 내가 상담자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으로서 느꼈을 좌절이나 실망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좋았다가 나빠지고 나빴다가 좋아지는 것은...과거가 반복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정신분석 치료는 '무의식의 영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깨닫게 해준다. 변화에 저항하는 자신과의 투쟁("힘들게 살기 싫어. 그대로 살고 싶어"), 어린 시절의 인지적, 정서적 경험으로 인생 경험들을 모두 동일하게 채색하려는 반복강박("니들 다 똑같어"), 좋아지기 전에 늘 나빠지는 듯한 느낌들("아무 소용없어"), 치료자와 새로운 관계를 맺기위해 신뢰해야 하는 두려운 체험들("정말 믿어도 되나"), 그리고 이 모든 노력을 쏟아 부어도 시간들이 필요하다("언제까지?").

하지만 분석받은 과거 경험으로 나의 인생이 좀 더 살만하고 긍정적으로 변화되었던 만큼 그들(내담자)도 변화된다는 것을 확신하고 기대한다.

정신분석은 '분열'된 정신구조로 인해 한 번도 못해본 통합적(모순이 불안 방어없이 수용되고 합일된) 사고를 조금씩 체험해가는 과정이다. 그래 현실에서 선호/회피하는 어느 특정 요소와 의미에 확신하듯 머무는, 그런 고정된 결론은 없고 늘 새로운 시작이다. 변하지 않고 반복되는 과거의 (특정 요소에 고착된) 사고와 정서들 중에서, 사람은 무엇보다 '자기 증오'를 극복해야 한다.

마이클 아이건은, 내담자가 자기자신과 삶이 어둡다 어두웠다고 말 할 때, 무의식의 중요한 무엇(무지, 원초적인 불안과 공포)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빛이 오면 어둠은 사라지는데 무의식이 의식화되면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두려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상담을 통해 특히 자기 내면의 가치있는 내용물들이 증오로 모두 파괴되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날 까봐 두려워한다.("'내'가 없으면, 보잘 것 없는 내 모습이 드러나면 어떡하지!")


해리씨는 자기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강한 역할을 하려고 했었는지 그리고 그 역할을 통해서 자기의 약하고 수치스러운 점을 감추고자 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강압자의 역할이 자신에게 얼마나 과도한 부담인지를 알게 된 시점에 이 꿈들을 꾸게 되었다. 해리씨의 꿈2, 3은 어떤 의미에서 악몽이다. 불쾌하게 반복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해리씨는 반복되는 무의식을 직면하면서 언뜻 '미래의 재탄생 과정'을 맛보았다.

"당신은 이제 그런 무시무시하고 고달픈 무의미한 삶을 반복하지 않을거예요. 잘 하고 있어요. 지금처럼만 노력하면 돼요. 조금만 더 힘내세요!."



인간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현실 관계를 통해서야 (타인에게 반영받는 만큼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 '상호 관계'는 자기자신에 대한 체험과 세상에 대한 체험을 본질적으로 바꿔줄 수 있다. 의존관계에서 생기는 사랑받고 싶은 공생 욕구와 자율성을 추구하는 '분리' 욕구는, 어느 하나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모순상태로 공존하는게 인생 리듬이다.

이 모순적 리듬은 어린 아이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대면해야할 중요 과제이다(연결되었으나 고착되지 않고 탄력적인 관계). 이 모순을 잘 다루기 위해서, 때론 슬픔과 고통이 따르지만 모순(갈등)을 자연스런 현실로 인정하고 견뎌내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고 유지해 가야한다.

사람을 상담을 통해 자극하고 격려하는 일은 상담상황의 '숙고한 상호 관계'를 내담자의 내면 속에 옮겨주기 위함이다. 상담자의 공감하는 거울 반응과 지지 관계는 자기 자신의 가능성으로 변환되어 의미있는 새로운 대상과 세상을 만들어 낸다.

"자 치열하게 전투적으로 다시 잃고 그리고 다시 얻는 행복한 관계를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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