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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비몽' - 반복강박
김은옥(rroye@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08년 12월 06일 21:13 3787
반복강박

부모교육 중 '프로이드 입문'을 전할 때 수업의 첫 주제는 '반복강박'이다. 또한 프로이드 이론을 통해 배운 특정 증상이나 상처 이해의 마지막 결과도 '반복강박'이다. 그래서일까? 교육생들끼리는 누군가 '강박프로세스'하면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절감하며 함께 웃음과 눈물을 짓는다.


어느 날 상담을 받고 있던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싸워 담임선생님에게 야단을 맞은 일로 학부모가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전화를 했다. "선생님 억울해요. 담임이 우리 아이를 친구들,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 앞에서 모욕을 줬어요. 선생님이 자질에 문제 있는 것 같아요. 교육청에 고발이라도 할까봐요." 문제 상황을 만든 담임선생님과 학교, 나쁜 아이들에게 불이익을 당한 미숙이를 위해 상담자 또한 그 책임을 공감하며 그들을 함께 질타해야만 했다.

자신의 아이가 거부나 미움을 당했다는 것으로 자존심이 상해, 비참하고 분한 감정을 여러 사람에게 전염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미숙 엄마는 '너무 예민하게 일을 처리하지 마시라'는 충고에 상담자 또한 나쁜 사람으로 느껴져 불쾌감에 전화를 내려놓으셨다.

상담자는 어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사람 안에서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타인을 어떻게 느끼는지, 그 타인들을 통해 자신을 어떻게 느끼는지, 느끼고 말하고 행동하는 자기들이 여럿 있다.

이들의 말과 행동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그(녀)가 현실에서 겪고 있는 여러 인간관계 갈등 상황들과 일관된 유사성이 발견된다. 사랑(관심)의 필요와 욕망에 대한 모든 신뢰를 배신하는 존재들로부터 거부당하거나 버림받는 시나리오 말이다.

미숙이 엄마는 현재의 '자기 문제'를 부인하면서 반복적으로 상처 주는 관계를 맺는다. 아마도 분열이 심해 '자신의 정상성'만 강조하던 엄마로 인해 미숙이는 지속적인 고통받아 왔을 것이다.

좀 게으르고 싶고, 공격성을 갖고 세상을 탐구하다가 실수를 할 때, 또 가끔은 이유없이 파괴하고 싶을 때, 불안하고 두려워 실수 할 때, 큰 죄가 아닌 경미한 일탈을 했을 때 아이의 자연스러운 퇴행적 욕구에 부응해주지 못하던 엄마에게 가차없이 '나쁜 아이' 취급을 당하지 않았을까...

미숙이 엄마의 말대로라면 아이가 정말 운이 나빠 자질 없는 담임선생님과 나쁜 아이들 때문에 불이익을 당해 인격이 파괴되고 있고, 그래서 자기 아이를 위해 그들이 좋고 훌륭한 사람이 되지못하면 아이는 구제 받을 길이 없다. 정말 그 학교선생님과 몇몇 지칭된 나쁜 아이들은 미숙이를 위해 어느 기관에 가서 자질 연수나 심리치료라도 받아야 하는 걸까?

미숙이 엄마는 현실에서 아이가 성장하기 위한 특성을 이해하고, 아이의 문제를 인정하고 상담자나 엄마처럼 아이를 care할 수 없는 학교 환경과 선생님 그리고 다양한 성격과 때론 어려운 환경으로 다소 문제를 지닌 또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또한 이상적인 환경에 덜 기대하는 평범한 마음을 지닐 수 있다면 학교를 다 뒤집어 엎어 버리고 싶을 만큼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을 것이다.

미숙이는 과외든 학원이든 오래 다니질 못한다. 항상 지나친 기대를 했다가 실망하는 엄마로 인해 더 비싸고, 더 좋은 선생님이 있는 완벽한 학원을 찾아나선다. 불편하고 불쾌한 자극들을 삭 잊고 버리는 반복적인 행동으로 미숙이는 어떤 가치든 제대로 배울 수 없었고 그것을 내면화하여 자신의 행동을 수정할 수 없게 되었다.


학대란 아이 자체 또는 잘못에 대한 증오보다 어린 시절 한 번도 푼 적이 없던 분노를 자신이 부모가 되어, 아이에게 무자비하게 방출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느꼈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경멸하고 하찮게 여겨서,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나쁜 아이다"는 감정을 엄마는 자신의 아이에게 똑같이 재현한다.

그러면 아이는 또한 만만한 어른과 친구들을 향해 엄마에게 받은 상처주는 말과 행동을 복수심에 되돌려주게 된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잘못해서 야단 맞았던 것이 아니라 엄마의 불안과 결핍으로 위협 당했던 것이기에, 그 억울한 감정은 '분열'되었다가 자신도 모르는 '해리'상태로 어떤 대상에게든 표현되기 때문이다.

엄마의 모순된 격노는 이렇게 아이의 정신을 병들게 해 현실에서 '왕따' 등 많은 대가를 지불하게 되는데도 그 엄마의 반복강박 때문에 좀처럼 멈춰지지 않는다. 깊숙이 각인된 상처는 그 개인과 더불어 가족의 역사가 되고마는 것이다.

"미숙이 엄마는 아이에게 부당하게 대했다고 생각되는 그들과 다르게 진정 아이를 소중히 존중하며 매순간 깊은 신뢰와 사랑으로 대할까?".




김기덕 감독의 '비몽'

'진'(오다기리 죠-전각새기는 남자)이 꿈을 꾸면 '란'(이나영-옷을 짓는 여자)은 무의식 상태에서 행동으로 옮긴다. 란은 의식에서 해리(분열)된 무의식적 인격으로 고통 받는 몽유병자다. 이 둘은 각자 서로 다르지만 한 사람이다. 한 사람의 인격 안에 있는 자아 대 본능이다.

감당할 수 없는 정서적 부담(갈등)을 해소하려는 자아의 노력일 수도 있고, 최초시기의 만족들을 되찾으려는 현실과 타협이 불가능한 무의식의 소망일 수도 있다.


'진'은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mania적 집착을 한다. 내면화한 특정 대상에 애착되어 그녀가 보여주는 잠깐의 친절로도 행복해지지만 정신의 분열로 인해 상대를 사랑할 수록 그 사랑이 진짜인지 의심하는 사랑...

'란'은 mania적 집착 때문에 자신을 소유물로 만드는 남자에게서 간신히 벗어나 그를 잊으려고 애쓰는 중이다. 하지만 진이 지나간 사랑을 그리워해서 꿈을 꾸면, 란은 의식의 의지와 달리 진을 대신해 혐오스런 옛애인을 찾아가 사랑을 구걸을 해야한다. 그래서 진이란 존재는 란의 악몽이다.

진이 '잠을 자지 않아야' 란은 '옛남자'에게 되돌아가는 해리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 '잠'은 좌절스런 현실에서 철수해 다시 돌아가고 싶은 환상계로의 통로다. '잠을 잔다'는 것은 '현실의 나'에서 억압된 소망들이 역동하는 '무의식의 나'로 퇴행하는 것이다.


우연한 현실 사건을 통해 접촉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대상임을 비로소 알게 된다. 그러나 유아적 일차사고에 함입되어 사는 이들은 의식과 무의식이 분열되고 사고와 정서가 분리되어 서로를 인정하는게 쉽지 않다. 분열된 세계를 각각 경험할 뿐, 이들을 통합하질 못하는 것이다.


증상의 형성은 일차적으로 현실에서의 좌절에서 시작된다. 사랑의 실패, 과제의 실패, 심각한 질병 등 인생의 작고 큰 사건들은 증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이들은 각자의 애인에게 유년기의 상처를 재연하는 강렬한 좌절 경험을 한 상태다. 물론 반복해서 좌절을 주는 현실의 최초 애인은 어린 시절 엄마와 아빠다.

초기 외상(박탈, 좌절, 과잉자극)이 자아를 너무 많이 손상시켜서 '손상된 자아'가 구조화되면 란과 진처럼 자신의 문제에 파묻혀 스스로 극복할 능력이 없게 된다. 보통사람도 자아가 많이 손상되면 자기 문제를 홀로 극복하기 힘들다.



대신 이들은 증상을 통해 자신과 세상을 향해 끊임없는 호소와 보상을 요구할 뿐이다. 진이 바늘, 끌, 망치로 자해하며 '잠자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도 결국 깊은 잠속에 빠지는 것처럼, 란도 몽유병 증상을 통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좀 봐주세요. 너무 아파요. 통합해서 편히 살게, 성장하게 도와주세요". 라는 자학적인 불평의 사인만 보낼 뿐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누구도 그 호소를 알아듣지 못하며 보상 받을 길도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미 현실에서 철수해 아무런 도움도 친구도 없이 환상속에서만 살기 때문이다.


이들을 도우려는 정신분석가가 "두 사람은 한 사람이기 때문에 치료(통합)하려면 서로 사랑(관계)해야 한다" 말하지만 그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 못한다. 이들은 현실에서 자신을 구원하는 방법을 결코 모르는데, 이는 벌써 모든 삶이 증상구조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를 악마로만 인식하기에 침범자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날 수가 없다. 사랑과 필요에 의해 열려 있고 자신의 취약한 상태를 인정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자기극복 장치'는 현실세계와 연결되고 외부대상들과 접촉되어야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어느 정도 회복되어 작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증상의 회복은 상처를 감당하거나 인내할 각오를 하고 '초기 외상'을 왜곡없이 직면하고 (강렬한 전이) 관계 속에서 성찰해야 비로소 해결된다. 분석가의 말대로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게 되면 끔찍했던 초기상처가 완화될 수 있겠지만 이들은 서로를 도울 수가 없었다.

물론 각자 최선을 다해 증상을 벗어나려 시도했지만 결국은 실패했다. 이 둘이 서로 관계만 잘 했어도 좌절을 준 옛 대상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건만 ................


안타깝게도 둘은 친밀한 관계가 되려하자 (사랑받다가 버림받던) 초기 외상 불안이 솟구처 과거의 섬뜩한 고통을 다시 경험하느니 차라리 합쳐지길 포기한 채 각자 자살한다.

쾌락원칙(삶욕동)을 넘어서는 죽음욕동 작용인 반복강박이, 살려고 기를쓰던 란과 진의 심신을 되돌릴 수 없는 퇴행...쾌락도 고통도 없던 원상태로 데려간 것이다

죽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지겹던 장벽이자 보호막이던 '분열'이 풀려 '옷'에서 해방된 한마리 나비는 소망하던 '그'에게 사쁜 날아가 따스히 손을 잡는다!



<<연구소 칼럼은 현대정신분석이론을 공부하시는 교육생들과 치료를 받는분들을 위한 자기성찰을 목적으로 작성된 임상상황에서 이해하실 수 있는 내용입니다. 블로그에 올리시셔서 개인적 목적으로 이용하시는 분은(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행동등) 그 책임을 지셔야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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