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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기애적 성격장애 - '오만의 병'
김은옥(rroye@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08년 08월 22일 23:32 4434
“왜 나는 다른 사람처럼 편하게 살지 못할까요?. ”

수선화씨는 요번주 두 번의 상담시간을 변경하고 오늘도 10분 지각에 흔들림없이 “그러려고 그런 것은 아니였는데 항상 이래요. 까먹고, 늦고, 생각대로 똑바로 제대로 못해요. 다른 사람처럼 난 왜 편하게 안될까요?” 라는 후회로 상담을 시작한다.

"맞선을 보러간 일은 잘 되었나요?" 상담자의 질문에 수선화씨는 “무슨 남자가 세상 돌아가는 정치에 관심도 없고요. 최근 노벨문학상 작가의 이름도 모르고 우디앨런 영화를 감상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하네요. 정말 무식한 작자이고 있는 것은 돈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도 깨는 것이 차를 마시다가 시간이 경과되면 주차비를 내야하니 장소를 옮기자 하더라구요. 매너를 상실한 거죠. 그래서 그날로 The end”.


수선화씨는 누군가와 진실하고 열정적인 관계를 형성하길 늘 염원하지만 이렇게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게 끝나고야 만다. 그 상대가 누구이든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고 느끼게끔 만드는 상대방의 존재를 아예 무시하는 수선화씨의 '원리원칙'을 그 남자 역시 깨지 못했던 것 같다. 상담자인 나또한 수선화씨의 논리정연한 옳은 말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던 것 처럼 말이다.

타인의 판단이나 감정을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하는 거만한 관점은 타인이 자신과 다를 때 자신 것 만큼이나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수선화씨에겐 진실한 사람보다는 호감을 사는 사람이 더 중요한 듯하다. 자신이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고 굳게 믿기에 자기에게 지속적 호의를 베풀지 않으면 굉장한 충격을 받는다. 자기의 중요성을 자꾸 현실보다 더 크게 부풀리기때문에 모든 사람이 수선화씨의 취향이 될 수가 없는게 비극이다.

직장동료가 다른 누군가를 칭찬하면 수선화씨는 "걔는 내 취향이 아니야."라고 그 사람의 독특함을 폄하한다. 물론 무얼 가지고 이야기를 하든 똑같다. 그렇기 때문에 수선화씨에게 솔직하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동료는 수선화씨의 이상화된 관점때문에 늘 상처를 받는다.


수선화씨는 결혼할 남자라면 어느정도의 사회경제적 수준, 외모, 사회성, 학력, 좋은 성격, 번듯한 취미 그리고 맹렬한 열정과 관심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수선화씨는 남들 앞에서 자신은 아무 부족함이 없는 척 허세를 부리지만 그 내면에는 인정받고 사랑받기를 갈망하는 약한 어린아이가 있다.


어떻게 이 많은 원리원칙을 고수하면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수선화씨는 일상에서 진지한 관계를 밀어내듯 상담관계 또한 밀어낸다. 일정하게 정해진 시간에 맞춰오지않고 좋은 답을 주어도 ‘왜 아닌지’에 대해서 지적만 할 뿐이다. “선생님은 상담자이니까 내가 다 말하지않아도 훤히 꿰뚫고 계시잖아요. 그러니 답을 말해주세요.”

상담자가 막상 해답을 내놓으면 ‘소용없다’고 자신만 아는 '완전한 답'을 말하는 것이 마치 수선화씨가 그 누구와도 아무런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결과와 같은 것 일 것이다. 상담자일지라도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을 들으면 상대의 동의를 얻어내고자 더욱 강압적으로 적대적 변명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수선화씨는 왜 관계를 맺고 싶은 욕구를 밀어내는 것 일까?
하지만 수선화씨는 수많은 잣대로 사람들을 밀어내고 있지만 그렇게 하고 싶어하지 않는 소망 때문에도 갈등을 하고 있다.



수선화씨는 진정으로 사람들에게 ‘관심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수선화씨가 바라는 완벽한 사람은 세상에 없고, 조정이 필요없을 정도로 안정적인 관계 또한 세상에 없을테고 실수가 일어날 여지가 없는 완벽한 관계 또한 없을 것이기때문이다.

고통스러운 오만의 상태에선 다른 사람이 위치하지 않는다. 성격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남들이 자신의 문제를 편리하게 모두 해결해 주길 바란다. 이들은 안정적 자기와 대상항상성, 죄책감, 책임감, 다양한 감정들을 의식에서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선화씨의 불평불만인 다른 사람들은 자신 보다 훨씬 더 좋은 위치에 있고, 모든게 더 나아보인다고 끊임없이 주장하는 것 또한 스스로의 삶을 비참하게 할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이 부당하게 돌려지고 자신의 삶이 얼마나 불공평한지 비교하면서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의 인생이 모두 좋고 완벽한 것 처럼 강조해서 자신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다시 강조한다.


수선화씨는 어린시절의 상처 경험으로 크고 작은 실망이 늘 확대된다. 정서적 박탈로 애정에 목말라 아무리 작은 신호에도 지극히 민감해진다. 상대의 예기치 않은 한숨, 웃음, 눈살의 찌푸림도 강하게 알아차린다. 정상적인 감각적 맥락에서라면 이러한 징조들은 의미가 없을 테지만 수선화씨에게는 상대의 긍정적인면과 부정적인 면이 너무나 강조된다.

누가 호의로 밥을 사주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처럼 느껴지고, 더 비싸고 맛있는 밥을 사주기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즉 자신의 의존이 그에게 부담을 주었다는 생각에 몇 배로 보상을 하고싶은 것이다. 반대로 누군가의 사소한 거부는 엄청난 모욕과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은 일상적인 정서적 사건을 가지고 관계맺는 사람들의 통상적인 몸짓을 대단한 호의로 변형시키지않는다.

물론 좋은 관계를 고무시키고 그래서 자신감을 얻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하나하나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애정을 박탈당한 사람은 누군가 친절을 베풀어준 순간을 중심으로 자신의 긍정적 또는 비극적 서사적 드라마로 극대화시킨다.


과거의 좌절은 삶에 대한 내면의 분노로 쌓일 수밖에 없는데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시기심과 분노를 낳는다. 그래서 ‘남탓(상황 탓)’으로 돌려 책임감을 회피하며 산다.

예를 들어 면접시험 약속을 해놓고 수치스러워 가지 않고, 친구나 이웃과 만날 약속을 하면 끌려다니듯해서 약속을 자기 편리하게 바꾸고, 학원을 등록하고 한 두번 나가다 말고, 예쁜 옷을 사서 걸어만 두고, 자신과 타인의 사소한 실수에 범죄를 일으킨 것처럼 화를 내곤한다.

수선화씨는 자신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는 것에 대해 많이 힘들어하고 수치스러움을 느낀다. 그래서 아무도 허락하지 않는한 그 누구도 그녀 옆에 올 수 밖에...

그 대신 흠잡을 데 없는 좋은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정서적 에너지를 사용해서 나약하고 부족한 사람들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하기위해 거만한 사람이 되었다.



“당신의 삶은 힘든 것이었고 분노와 좌절이 컸지만 힘든 환경에도 불구하고 어느정도 성공도 했고 가족에게 최선을 다했고 어려운 문제에 대한 호전도 있었고 개선도 되어왔다. 그래서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좋아질 수도 있겠다”고 나는 오늘도 수선화씨를 위로한다.

수선화씨는 상담을 할 때마다 “앞이 뿌연 것 처럼 생각이 없다”고 한다. “꼭 알아야하는데 알 수 없는 기분이랄까”. 또한 어린시절에 대한 기억을 전혀 할 수 없는데 어릴 적 사진을 보면 이런일이 있었나? 하며 낮설어한다. 아마도, 시간에 걸쳐 존재하는 자기상태가 유지되지 못할 만큼 다 지워버리고 싶어하는 존재의 수치감과 굴욕감이 너무 커서 일 것이다.



생명본능이 우위를 차지하면 자존심은 자존감이 된다. 이는 일종의 성취감이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길 때 즐거움을 공유하게 한다. 반면에

죽음본능이 우위를 차지하면 자존심은 오만이 된다. 오만은 외부세계와 타자일반에 대해 무가치하게 느껴 진정한 타자 관계를 맺지 못하게 만든다. 자신의 영역이 타자에 의해 침범당하는 느낌에, 복수, 응징, 무시, 경멸, 평가절하, 우월감, 자만, 반발심, 짜증, 격노 등의 반응을 보인다.

호기심이 실재를 알고자 하는 욕망이라면, 오만은 현실상황을 무시한 채 알고자하는 욕망이다. 무시나 불이익을 당할 뻔한 상황을 스스로 만들고 자책하는 격이다.

(정신적 재앙의 전조인) 오만에는 어리석음과 호기심이 혼합되어 있다. 특히 언어능력 습득 이전 단계에서의 호기심은 '언어가 없어서 알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기에, (자아가 알고 싶어하는 것을 언어화하지 못해) 좌절을 크게 하게된다.

아이는 자신이 겪는 고통경험에서 벗어 날 해답을 찾기위해 이런저런 질문을 해댄다. 어느 질문이 옳은지 어떻게 질문하는지 몰라서 알고 싶어서 질문을 많이 할 때 야단을 맞거나 관심조차 받지 못한 아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오만해지게 된다. 오만은 호기심을 극에 다르게 한다.

‘무지의 가면’인 오만은 알지 못하는 것을 숨기기위한 방어에서 비롯된다. 본인이 모른 다른 것을 인정할 수가 없기에 그래서 ‘늘 아는 척’ 해야한다. 이에비해 호기심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지로 인해 무능력하다는 느낌과 연관된다.

예를들면 친구끼리 골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하자. 그때 전혀 못알아 듣겠는데 아는 척하는 경우, 오만의 파괴적 성질은 더 이상 골프에 대해 배우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왜냐하면 '아는 척'했기 때문에 배우는 것은 자신의 무지한 상태가 밝혀지는 것이기에 두려움과 공포를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오만으로 고립되어 더이상 아무것도 배울 수 없게 된다.

대처방법(학습)을 배울 수 없는 것은 자기의 발달(장애)과정과 관련이 깊다. 자신의 성장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수선화씨는 상담자가 내주는 과제를 전혀 해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너무 바빠서, 간혹 잊어서, 때론 너무 뻔하고 시시해서, 좋은 아이디어가 없어서 그렇다고 합리화한다.

하지만 과제를 하지않은 진짜이유는 무능력을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해서이다. 알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날까봐 말이다. 똑똑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이 탄로날까봐 그렇다.


수선화씨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았다는 것이 노출 될까봐 늘 학력이 높은 사람과 사귀고 싶어한다. 똑똑한 사람들 앞에서 늘 잘 아는 척을 했기에 이런 무능력은 자존심과 자기애에 큰 타격을 주었다.

또한 어른들의 보호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을 돌봐야 하는 아이는 모든 걸 결정할 자격이 있다는 권위를 지니게 된다. "왜 안돼?" 라는 태도로 패배라는 경험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을 부당하게 대했다고 여겨지는 적대자를 만들어 지치지 않는 분풀이를 한다. 그래서 이들는 친밀한 관계 대신 서로의 필요가 맞아떨어질 때만 잠깐씩 관계를 맺을 뿐이다.

수선화씨에게는 치료를 받는 것 또한 자존심 상하는 경험이다. 그누구도 알아서는 안되고 더 중요한 약속이 생겨 그들에게 상담에 가야한다고 설명할 수없으면 그냥 상담을 빠지곤 한다.

또한 자신이 병리적인 사람이 되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것 같아 제 시간에 상담을 오는 것 조차도 자존심이 상한다. 상담실에서 누군가와 마주치면 자신을 문제있는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아 너무 비참하고 하찮게 느껴져서 삶에 통제력을 상실한 것처럼 불안하다. "상담만 안하면 내 인생이 아주 평화로울 것 같아요 선생님.!"라고 수선화씨는 말한다.


수선화씨의 생존전략은 오만을 완곡하게 표현한 ‘똑똑함’이었다. 똑똑하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 자존심 상하고 자신의 존재자체를 부인당하는 일이 된 것이다.

수선화씨는 호기심 때문에 상담을 시작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새로운 사실과 지식을 지금 막 배우고 있는 중이다. 과거에 자신에 대해 알지 못했을 때 스스로에게 얼마나 화가났었는지 그것이 얼마나 끔직한 일이었는지 그결과 여지껏 알고싶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대한 저항이 얼마나 컸었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

오만은 하나의 죄이다. 왜 굳이 가치판단을 하는것일까? 그것은 파괴적인 공격성과 합쳐져 주위사람들을 신뢰하지 못함으로써 반발심으로 밀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우정이나 사랑보단 돈이나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이가 성취하고 자존감(자기긍정)을 일으키는 성취(성숙)를 하려할 때 엄마가 비난하거나 헐뜯고, 부담스러워 거부한다면 거기에 엄마의 파괴적 공격성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는 호기심이 손상되어 내재화된다. 아이는 자존심이 바닥에 떨어져 수치심이 생겨난다.

또한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한 부모에게서 물러서거나 보상으로 오만한 태도를 보이게 된다. 거기에 타고난 공격성의 양이 많을 때 더 오만해진다. 공격성이라는 자원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사용되는데 실패를 하면 낮은 자존감을 보상하기위해 오만한 아이가 될 수밖에 없다.

오만한 이들은 주위의 공격성을 일깨우는 역할을(말과 행동으로) 함으로써 주변사람들을 수치스럽게 만들고 화나게 만든다. 본인 스스로도 화난 사람들이 가득찬 세상에 자기가 있다고 불쾌감을 느끼면서 살게 된다. 마치 상대가 수선화씨의 욕망을 몰라 ‘무식한 작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 처럼 말이다.


수선화씨는 유아 때(5세이후) 엄마랑 헤어져 외가에 맡겨졌다. 할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엄마, 아빠가 왜 이혼했는지? 왜 함께 살 수 없는지? 물을 수가 없었다. 무심코 한 질문에 할아버지와 삼촌들까지 합세해서 아버지를 ’나쁜 놈‘으로 몰아 세웠기 때문에 자신이 마치 세상에 존재하면 안되는 가치없는 물건처럼 느껴져 어린 꼬마 였지만 마음이 상해 참 서러웠다고 한다.

또한 수선화씨는 가족에게 자신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고 아펐는지 표현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힘들게 양육해주시는 할머니가 마음 아파하거나 배은망덕하다고 자신을 버릴까봐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친구관계로 부터 시작된 모든 관계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로 설명할 수 없게 되었고 침묵은 늘 다른 사람의 해석으로 거짓말 아닌 거짓말의 결과를 만들어 내곤했다. 말을 안 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수선화씨는 "괜찮지 않지만 늘 괜찮다고"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는 것들이 자신의 것이 되야만 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기정체성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늘 아는척’으로 살아왔기에 아무것도 발달하거나 정진할 수 없는 ‘정지’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또한 자신을 배신하는 행위와 같을 정도로 무엇인가를 새롭게 배울 수 없었다. 새로움은 늘 호기심이 아닌 좌절된 무능감으로 무섭고, 두려운 불안에 압도당해 자신이 드러날까봐 늘 물러서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호기심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한도내에서 표현되어야만 했기에 신나는 것도 재미있는 것도 없었다. 어렸을 때 처럼 ‘그냥 그대로만’ 있어야 했다. 무엇을 배우고 실천해도 아무런 자긍심을 느낄 수 없었다. 자신을 드러내기 직전까지만 호기심을 발휘하고 “이제 그만 이정도면 됐어!” 라고 물러서기의 후퇴를 했기 때문이다(굴욕감).


수선화씨는 요새 모든지 처음하는 것 처럼 새롭게 시작한다고 한다. 자신이나 상대방을 사실적으로 파악하기 시작했다. 일방적으로 분출했던 자신의 말을 멈추니 상대방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고, 자신이 틀렸다고도 인정하고, 불편했던 사람들과 함께 여행도 가고, 뭐든지 맛있고, 쉽고, 친구에게 전화걸어 안부를 묻기도 하고, 다 알고 있는 내용을 누군가 자신의 관점으로 설명할 때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감동을 하면서 듣는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거짓말, 더 정확히는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머리, 몸통, 꼬리까지 다 붙혀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신나해 한다. 자신의 본능이 어디서 막혔는지, 어디서 앎을 원하지 않았는지 포기했는지 알게 되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모르겠다.



정신분석가 Bion은 질문을 많이 하는 성가신 아이였다고 한다. 헌데 엄마가 귀찮아 하며 경멸의 말투로 “너 그 질문 몇 번째인 줄 알아? 그만좀 해라. 한 번만 더하면 100번이다!”라고 모욕을 주었다고 한다.

비온은 그 상황에 고착되어 스스로 가치없다고 느꼈고 청년이 되어 전쟁에 나가서 훈장을 받았지만 스스로가 세상에서 제일 비겁한 겁쟁이라고 생각했다.

부인의 증언에 의하면 비온은 상담을 마치고나서 항상 “아~이제 알 것 같아!” 하다가 얼마 지난후에 “전혀 모르겠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부모의 반복된 비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그는 '오만'보다 '물러나기'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는 약한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는 뛰어난 분석가였고 탁월한 지성으로 주변 동료들을 놀라게 해 독립학파를 이룰 정도였음에도 정작 그는 자신의 가치를 내세우지 않았다.

비온은 상담자 자신이 때론 ‘어리석고 잘 알 수 없고, 내담자를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괜찮은 일로 간주했다. 자신이 계속 잘 알고 있다는 것은 오만이기에, 기억과 욕망없이 내담자를 만났다고 한다. '내담자가 자신을 가르치게 내버려두는 것'은 깊은 안도감을 경험하게 한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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