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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신의 주인
관리자(cjlee7600@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15년 10월 06일 06:51 1392
“ 정신분석은 제 인생의 가장 귀한 보물이자 행운 입니다.”,“정신분석은 잊고 싶은 골치덩이야 ~”

동일한 개인이 표현한 너무 다른 이 ‘말들’은 대체 어디서 생성되어 입 밖으로 튀어 나오는 것인가?

프랑스정신분석가 Lacan에 의하면 얼핏 이해되지 않는 말일수록 자아의식이나 주체에게서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대타자(大他者)에게서 기원한다. 대타자(Other)란 무엇보다 '말이 구성되는 장소'.'말들을 저장하고 내보내는 무엇'을 뜻한다.

가령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졸음 대신에 의지와 무관하게 이런저런 생각들이 마구 몰려들 때, 끊임없이 상념들을 만들어내는 '그 곳'이 대타자이다. 잠이 들어 기이한 꿈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때, 의식의 언어와 다른 꿈의 언어들을 만들어내는 그 곳 역시 대타자다. 한국 사회 어딘가에서 혹은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인류의 정신을 좌지우지하는 말(기표/의미)들이 생성되어 전파된다면 그곳이 곧 대타자이다.
("인간은 우주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이다" "OO 종교만이 진리이다""돈많이 버는 활동일수록 가치롭다" 등등의 기표들을 생성해 일반인이 욕망하게 의미화시키는 '그곳')

대타자는 눈에 보이는 구체적 대상이나 공간적 장소가 아니라 '기표와 기표 사이를 나누거나 채우는 상징적 빈 공간'이다.
자유가 억압되어 암울했던 1970년대에 한국 지성인들의 정신에 큰 힘을 주었던 말을 하나 떠올려 보자. "진리가~너희를~자유롭게~하리라"
이 문장에서 음소와 음소 사이, 글자와 글자 사이, 단어와 단어 사이 여백에 눈 초점을 맞춰 강하게 응시해보라. 하얗게 보일 뿐인 그 빈 공간은 문장의 의미 구성에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인가? 그곳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 작동되고 있는 것일까?

이 '사이 공간(~)'에서는 서로 다른 기표들 사이를 다양하게 연결시키기도 하고 단절시키기도 하는 (의식에 지각되지 않는) 의미생성 작용이 왕성히 작동된다. 이 사이공간이 없으면, 차이성을 지닌 어떤 기표/의미도 생겨날 수 없다!(진리가너희를자유케하리라 : 정신분열증자에겐 이 '사이 공간이 부재'해서 글자들이 한데 엉켜붙은 덩어리 상태로 되어 의미들이 부재한다. 아울러 글자들 '사이 나눔'의 기준과 양태가 일반인과 달라서, 타자와의 의미소통이 어렵다! 세상이 무의미하게 지각되거나 엉뚱한 기표/의미들이 돌출해 정신을 힘들게 한다.)

언어적 의미를 생성해내 명명하고 전파하는 그 장소(대타자 위치)에 어떤 개인이 자리하게 되면, 그 분은 그와 상징적으로 접촉하는 집단 내지 타자들의 삶에 가치로운 의미와 이상적인 목표를 제공하고 명령하며 승화된 욕망을 일으키는 힘을 지닌 ('아버지의 이름', 주인기표 기능을 하는) '상징적 대타자'가 된다.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만나게 되는 상징적 대타자('그 분')는 일반적으로 어머니, 아버지, (특별한 힘을 준) 선생, 사회의 권위자(이상화대상, 생계를 좌우하는 권력가, 죽은 위인들) 등이다. 이들이 바로 주체 내부와 주체들 사이에서 작동해 (자아의 의도와 다르게) 입 밖으로 뱉어지는 반복되거나 특이한 말들을 생성한 심연의 주인이다. ("아니야~ 내 자신이 내 말의 주인이야~")

반성능력이 결여되고, 스스로 의미를 창조할 힘이 없는 인간들은 안정된 생존을 위해 대타자의 힘-욕망-요구에 의존하고 순응하며 살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것이 꽤 안전한 삶의 방법이다. 반면에 직접 말(의미)을 생성해 음미하고 전파하는 능력을 지닌 주체(집단)의 경우, (기존 대타자에게 처벌당하거나) 그 스스로 집단(인류)의 새로운 대타자 내지 영웅이 되곤 한다.

라깡은 대타자무의식이 언제나 개인과 개인 사이, 단어와 단어 사이, 생각과 생각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의미('말') 생성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런 大타자는 개인의 자아가 그것을 동일시(내사)하여 통제할 수 있는 어떤 대상이 아니라는 면에서 (의식에 대해) ‘근원적 타자성’을 지닌다. (자아에게 냉혹한 운명의 굴레로 지각되기도..)

자아가 맘대로 통제할 수 없는 근원적 타자성은, 인간의 정신성을 구성하는 뼈대인 동시에 정신을 특정 양태로 작동시키는 ‘근본 조건’인 ‘언어와 법’에 해당된다. 인간은 어린시절에 불가항력적으로 각인(내면화)된 특정 언어 및 규범체계에 의거하여 사고하고 행동하며 언어와 법의 보호막에 의존하는 동시에 그것의 한계를 짊어지며 사는 존재이다.
이렇듯 (개개인의 주관적) 자아에 동화-포섭되지 않는 타자성인 대타자는, 의식과 다른 무의식적 주체의 본질을 구성하는 동시에 주체들 사이의 관계를 중개하는 (언어와 법으로 구성된) '상징계의 힘'을 뜻한다.

가령 경직되게 반복되는 특정한 생각과 행동, 벗어나기 힘든 강박적 도덕관념, 뜻밖의 자극을 받을 때 자아가 의도하지 않은 비합리적 언어들로 정신을 가득 채우는 공상, 욕망, 꿈들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그것들은 개인의 정신성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내면화된 무엇인 동시에 주체 바깥(인간들 사이)에서도 작동하는 대타자가 무의식의 주체('기표들의 군집')에게 압력을 가해 주체 밖으로 방출하는 (자아에 침투된 최근 자극들에 대한 무의식의 주체의 반응) 결과물(기표들)이다.

“(아이야 그리고 세상아) 잘 듣거라 인생은 이런 것이란다 ~ 진리를 추구하려 했고 소중한 그 분을 만났는데 ~ 저 놈을 죽여라 아니 네가 죽일 놈이다~ 힘든 과정을 거쳐서 뭔가를 얻었는데 ~ 그것은 가엾은 쓰레기다 어어 희귀 보물이네 ~ 욕망이 솟구쳐 누군가와 만나고 싶었고 ~ 멋지고 원 없이 살아라 안 돼 거세 안 돼 ~ 세상을 감동시키는 뭔가를 전하려 무대에 올랐는데 ~ 아 인간의 좋은 기운이요 앗 부질없고 귀찮다 ~... ” (욕망 율동)

보통사람들은 현재에 자기 내부와 외부에서 자아모르게 작동하며 삶을 연출(무의식의 욕망운동을 좌우)하는 그것(대타자, X)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보통의 우리는 대타자(‘그것’)가 만들어낸 결과적 생성물인 생각,욕망, 꿈, 도덕규범, 반복되는 생활 패턴, 고상한 의미들의 표면만을 (실상을 모른 채) 지각할 뿐이다. ("아니야, 내가 내 생각과 욕망의 주인이야~")

개인의 내면과 개인들 사이에서 어떤 특성을 지닌 대타자가 작동하고 있는지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무의식의 나로 하여금 언제 어떤 일을 벌이게 만들지, 외부세계의 현상을 관찰 지각할 뿐인 개인의 자아는 좀처럼 파악하거나 예측하기 어렵다. 무의식의 심연에서 뜻하지 않은 말이나 엉뚱한 행동언어를 생성해내 의식에 표출하기도 하는 ‘그것’(대타자의 은유, 환유율동, 말들의 운동)의 정체와 힘에 대해 보통사람은 무지하고 무관심하다.

보통사람은 “나는 내 인생의 실상을 온전히 판단하며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고 스스로 믿으며, 착각하며, 제멋에 취해 살고 있다. 그러다가 무의식의 나에 의해, 혹은 알 수 없는 외부의 힘에 의해, 일상의 질서와 안정이 뒤집어지는 뜻밖의 사건이 일어나면, 그 원인을 심층탐색하지 않은 채 한동안 당황하다가 방어기제가 자동작동되어 원인을 망각하거나 남 탓으로 돌리며 안정을 취한다.

보통 인간은 자기 내부와 외부에서 (자아의 의도와 다른, 상식과 어긋나기도 하는) ‘말들을 생성해내는 그것’의 정체를 구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대타자가 강력한 힘과 더불어 어떤 결함을 지니고 있는지(=‘나’가 나도모르게 그 대타자로부터 어떤 결여와 욕망을 물려받았는지) ‘(다시) 대면’하는 것이 너무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이란, 개개인의 정신성을 형성시킨 근원적 힘, 근원적 타자성, 의식 배후에 숨겨진 자아가 동화될 수 없는 또 다른 주체, ‘나’의 타자이자 주인인 무의식의 대타자와 대면하고 대타자의 운동원리와 결과물들을 해독해내고 초일상적인 소통을 시도하는,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활동을 뜻한다.

‘나’의 사고와 언행을 좌우하는 '숨겨진 주인’인 내가 모르는 그 대타자는 결코 내 자아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모습으로 만나지지 않는다. 자아가 그것을 포착해 붙잡으려는 순간, 그것은 저만치 물러나 있고, 순간순간 펼쳐지며 사라지는 꿈이미지들 처럼 차근히 대면할 수도 간직할 수 없는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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