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드 정신분석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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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은행나무 단상
관리자(cjlee7600@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15년 08월 09일 12:29 911
새로운 환경에서 정신을 순환시킬 겸 경기도 어느 산 속 템플스테이에 한 주 머물러 본다.
사찰생활을 안내하는 30대 중반 쯤 보이는 승려가 사람들 앞에 나타나 첫 인사를 하는데, 목소리와 표정에 불안이 그득 담겨있어 인상에 남는다. “불안증이 있구나. 배고픔에서 벗어난 물질 환경과 헨드폰 중독으로 정신이 흐물해진 요즘 세상에 불안증이 있어야 속세와 떨어져 진지하게 구도할 수 있을거야..” 자연스레 공감이 되며 연민이 올라온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어딘가가 막혀있어 답답하다.(현실에 두루 접촉하지 못한 채 특정 관점과 관념에 경직되게 갇혀 있는 느낌..)
내 직업의식이 자동반응한 건가?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침묵하지만, 존재의 인연이 조금 안타깝다. "정신분석으로 '무의식' 대면 과정을 거쳐야, 불안의 뿌리가 변형되어 자신이 바라는 깨달음에 온전히 도달할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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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스테이 마지막 날이다. 새벽에 일어나 오래전 세상 떠난 부모님과 암투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지인을 향해 108배와 명상을 마친 새벽 6시 경에 어느 한적한 공간에서 아래쪽에 우뚝 서있는 은행나무를 지그시 바라본다.

그때 머리가 희끗한 장년의 남자와 딸 같은데 사연있어 보이는 여성이 저 아래에서 올라와 은행나무 가까이 다가온다. 여자가 손가락으로 거대한 은행나무 중간을 가리키며 뭐라 말하는데 순간 남자가 갑자기 여자를 껴않고 짙게 입맞춤한다. 어, 어. 서있는 나를 갑자기 지각해서인가? 어떤 기운에 들뜬 그들은 곧바로 왔던 길로 내려간다. 사찰 주차장에서 20분을 걸어 올라와 불과 30초 은행나무를 보고 절은 둘러보지도 않고 홀연 내려가는 20여년 차이 커플
그들은 어찌하여 이른 아침에 은행나무를 보러 와 급히 되돌아간 것인가?

금지된 관계로 보이는 그들, 남자가 여자를 무척 아끼는 듯, 여자는 남자에 기대어 허공에 뜬 팔자걸음으로 절 문 밖으로 사라진다. 일련의 모습들이 시야에 우연히 들어왔던 그 순간 내면 어딘가에서 “저 커플의 모습이 바로 중생의 삶, 중생이 바라는 삶 이야 ~” 라는 소리가 들린다. 아울러

나는 저들과 뭐가 다른가? 라는 물음이 올라온다. 그 순간 깊은 곳에서 어떤 단어가 몽실 떠오른다. 무의식의 심연에서 의식에로 우연스레 출현한 그것은 뜻밖에도 ‘불안’이었다. 그리곤 그 단어에 내 마음이 자연스레 반응한다.
“그 래, 너 였구나 ~”

마음속의 '그것'이 마치 자서전을 쓰듯 일순간 나래이션을 쓱 펼쳐낸다.

“원인모를 불안이 마음 한구석에 늘 있어 당황스러웠던 젊은 시절. 그 때문에 본능만족과 사회적 성공을 원하면서도 외면한 채, 불안을 없애 줄 것 같은 이러저런 학자(학문)들과 종교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마음공부에 전념하려 노력했던 지난 40년 인생!

불안아, 너 때문이었구나. 요상한 기운을 내뿜던 너 덕분에 욕구 충족을 지연시키며, 먼 우회로를 돌아와서 지금의 이런 내가 생겨났구나...
그러다 어느덧 강렬했던 리비도와 함께 짙게 내리쬐던 불안 머금은 태양 볕이 저물어 산등성 저편으로 넘어갔구나.

젊은 시절의 강렬했던 불안 갈증아. 지금은 네가 그립기도 하구나! 한번 뿐인 이승의 삶을 교묘히 이렇게 살 게 만든 그대여 ~ 돌이켜보니 고맙기도 하구나. 내 영혼의 샘[격]을 깊게 만들어 주어서... 그냥 저 커플처럼 살면 되는 것을, 그러다 떠나는 게 자연의 길인 것을,,,

내면에서 솟구치던 정체모를 그대 때문에...본능과 가까이 사귀려다가 이상스레 본능에 반대되는 무엇을 붙잡으려 했던 과거야 ~. 지나고 보니 한편의 흥미로운 작품이 되었구나.

애틋한 저 커플과 달리, 일상 사람들이 보려하지 않고 보지 못하는 심연 세계를 헤엄치며, 신탁을 음미하듯 어둠 속 진실을 파헤치는 드라마를 연출한 그 배후 주역이 바로 얼얼한 상처들로 응어리진 너 였구나 ~

나타났다 홀연 사라진 '불안한 매혹'에 빠진 남녀가 우연히 접속된 타자에게 남기는 기운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불안하지만 충분해요. 사랑을 나눌 때 지극한 쾌락을 느끼며. 금지된 관계이지만 서로 더 애틋하며, 어둡던 나를 소중히 아끼고 이뻐하며, 둘만의 상상계에서 행복해요 ~ 그 다음이 어떻게 될지라도 !”

'무의식 체험'에 의해 갈증과 불안이 누그러지고
전국을 다니며 비급의 깨달음을 전하는 현재의 삶
불안으로 애쓰다 만난 인연들로 일구어진 지금의 정신성
어느새 노쇠해 이내 잊혀질 생명아!

세상에는 각기 고유한 사연을 지닌 결코 함부로 평가해선 안 될 수많은 서로 다른 개체들이 공존하며
어느 곳에선가 불쑥 튀어나와 지금 우리 곁을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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