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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개체마다 정신의 특성이 꽤 다르다. 중요하게 지각하는 가치도 성격에 따라 참 다르다. 어떤 사람은 '정확한 앎과 공정한 관계'를 중요시하는데, 어떤 사람은 ‘정서’를 가장 중요시한다. 정확한 인식과 공정성(fairness)을 주목하는 사람에겐, 상대방이 자신에게 어떤 정서를 지니고 있는가 보다, 자신과 상대방이 정확한 인식을 함께 공유하고 공정한 (3자)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대한 확인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고와 정서가 '분리'된 정신구조를 지닌 신경증자의 경우, 초자아가 경직되고 비대하여 사회적 일과 대인관계에서 지적-도덕적 완벽주의를 추구하는데, 그 과정에서 정서적 관계나 소통은 주요 요소로 지각되지 않는다. (과도하게 간과한다) 지적 사유에 과도하게 몰두하는 신경증자는 어찌보면 인생의 진정한 맛(감정)을 온전히 느끼거나 교류하지 못하는 심각한 정서소통 무관심 성향을 지닌다. 그런데 신경증자는 유아기에 엄마 관계에서 나름 안전하게 돌봄받는 경험을 했기에, 성인이 되어 모성적인 정서 관계 보충에 일차적 관심을 갖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성의 부모와 세상으로부터, 동성의 부모보다 능력있는(훌륭한, 매력적인) 존재로 인정받기 전까지는, (오이디푸스기에) 상처입은 (복잡하고 갈등이 심한) 자신의 원 정서와 대면하기를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보류한다. 신경증자는 무의식에서 금지된 소망과 연관된 갈등 감정을 종종 느끼고 시달리지만, '억압' 작용 때문에 자신의 원래 소망과 감정은 늘 변형(왜곡)된 양태로 지각된다. 내면의 방어(억압) 작용으로 인해, 그는 자신의 원 감정과 직접적으로 접촉하지 못하기에, 자기 감정을 자신이 잘 모른다! 그(녀)는 진실을 알고싶어 하면서, 늘(=심리 구조적으로) 스스로에 의해 속임 당하는 자다. 또한 그는 타인의 정서와 직관적으로 접촉해 공감하는 원초 정신활동인 투사적동일시를 좀처럼 사용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소화하지 못해 골치아픈 감정덩어리를 결코 타인에게 옮기고 전염시켜 즉각 동조하게 만들지 못한다. 그는 그 누구를 전적으로 편들거나, 전적인 자기 편으로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공정하고 꼼꼼한 지적 사고와 규범적 행동으로 사회적 맥락에선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유익하고 존경스런 인간이지만, 사적 관계 차원에선 정서의 직관적(직접적) 지각과 접촉이 정신구조상 방어(방해)되어 있기에, 정서적 공감과 합일을 욕망하는 타인에게는 종종 오해와 답답함을 일으킨다. ( "도대체 당신의 진짜 마음이 뭐야? 진정 바라는 게 뭐야? 나를 사랑하는거 맞어? 내 편 맞어? ") 이에 비해 정서를 매우 중요시하는 사람에겐 ‘옳고 그름, 참과 거짓의 정확한 분별’은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타자관계에서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나에게 얼마나 우호적(내 편)인가, 기분좋은가. 나를 전정으로 위해주는 따스한 사람인가에 쏠린다. (정서적으로 좋은 느낌을 주는 대상이라야 비로소 그 대상과 연관된 지적 관심과 특정한 사고 활동이 작동한다.) 정서 소통의 뿌리는 어린시절 엄마와의 관계에 있다. '엄마'는 이 세상에서 아이의 마음을 가장 가깝게 교감해주는 존재다. 그래 정서적 인간은 엄마 같은 보호자를 원하며, 엄마-유아 관계처럼 전적으로 돌봄주고 돌봄받는 융합된 삶을 추구한다. 상징계의 언어적 사고와 상징적 의미 분별에 미숙하거나 엄밀하지 못한 채, 정서에 민감하게 집착하는 이런 인격을 ‘엄마 인간’이라 칭한다. 일종의 유아성 인격인 엄마인간은 유아기의 ‘엄마-아이’ (2자, 정서적 친밀) 관계에 고착된 삶을 산다. 세상을 적과 아군으로 나누고, 과도하게 융합된 가족주의 성향을 지니며, 타자일반에 대해선 진정한 믿음을 주지 못하는 엄마인간과 인연을 맺으면, 자연스레 그의 정서적 무드에 융합된 삶을 살게 된다. 이들은 비록 '말'을 사용하긴 하지만 핵심 소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 표현하지 못한) 자신의 정서를 상대에게 쏘아 집어넣는 투사적동일시를 사용한다. “(말하지 않아도) 내 정서를 척 알아주기 바래..” 부모 자식 관계, 형제 관계, 대인 관계에서 (상위의) 중요 위치에 있는 자가 엄마인간일 경우, 어떤 점에서 주위 대상들과 정서적 친밀감을 지닌 끈끈한 관계가 형성된다. (네 마음이 내 마음이고, 나는 곧 너야. 우리는 하나야) 어떤 면에서 그(녀)는 참 따듯한 인간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운명의 아이러니에 의해 어느순간 그 주위 대상에게 ‘나의 욕구’는 더 이상 나 자신의 욕구가 아니게 된다. 그들은 엄마인간의 욕구에 전염되어 살면서 그것이 자신의 욕구인지 아닌지 분별하지 못한 채, 그냥 엄마인간이 이끄는 삶을 더불어 살아가게 된다. 몇 달, 몇 년, 관계가 이어지는 그날 까지..! 엄마인간의 내면에는 엄마와 융합되어 행복했던 정서와 더불어, 엄마에게 상처입어 소화되지 못한 채 분열된 부정적 정서(수치감, 공허감, 분노..)가 일렁인다. 그래 엄마인간은 그 정서를 자기 대신 담아주고 공감하며 소화시켜줄 제3의 대상을 원한다. 그(녀)는 유아기 엄마처럼 아기의 결핍을 금새 알아채 채워주는 전능한 마술적 대상을 원한다. 그로인해 달콤하고 거대한 말로 현혹하는 대상에게 속아서 상처 입는 쓰라린 경험을 반복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다정한 기운으로 화려한 말을 속삭이는 대상이 여전히 그립다. 엄마인간이 사회적 약자일 경우, (생각과 정서가) 아이같이 미성숙한 그(녀)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연민이 일어난다. 그런데 엄마인간이 사회적 힘을 지닌 위치에 있는 경우, 그의 주변대상들은 오직 ‘그/녀’의 정서적 충족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들러리 인생을 살게 된다. 가치있는 무엇을 접할 할 때마다 금새 떠올려지는 힘있고 다정하고 무서운 그 분 ! 그녀의 투사적동일시(정서에너지)는 너무도 강하기에, 누구도 감히 그녀의 뜻을 거부할 수 없다. 혹자가 그녀의 뜻을 거스릴 경우, 따스하던 그녀는 홀연 상처입은 아이 심정, 또는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아이에게 보복하는 가혹한 엄마로 변해, 유아기부터 내부에 분열시켰던 부정적 감정들을 일시에(부지불식간에) 투사적동일시로 그 대상에게 쏟아넣어, 상대의 영혼을 오물로 덧씌운다. 자신의 의지와무관하게 타자의 부정적 투사적동일시에 점령당하는 사람은 원 정신이 파괴되고 곤혹스럽기 때문에, 부모자식, 형제관계, 직속 부하일 경우 적절한 거리두기나 정신적인 분리 독립은 불가능해진다. "그 분을 결코 거스를 수 없어요. 제 정신이 없어지기 때문에 ...이 기분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인간이 사회적 과업 성취를 위해 필요로하는 '객관적 사고, 정확한 언어, 옮고 그름의 공정한 심판' & 개인의 실존 무드와 희노애락을 좌우하는 근원적 힘인 '정서'. 사고가 엄밀한 (정서에 둔감한) 신경증자와 정서에 민감한(객관사고가 미숙한) 엄마인간이 현실에서 만나면 어찌되는가? 양자는 가치관과 의사소통 방식이 너무 달라서 서로 오해와 싸움을 반복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한다. (분쟁 커플의 상당수는 이 문제를 지닌다.) 이 두 부류의 사람은 외적으로 동일한 시공간에 함께 있지만, 실상은 각각 전혀 다른 주관적 실재를 체험한다. 이들은 서로에게 영원한 이방인이다. 그런데 현실 속 인간들에게는 신경증적 요소와 엄마인간적 요소가 다양한 비율로 혼합되어 있다. 위 내용은 극단적 경우에 해당한다. 만약 서로 다른 그 두 인격이 (정신분석의 도움으로) '(언어적) 사고'와 '(비언어적) 정서'를 조금씩 통합하여 서로를 조화롭게 보충하는 방법을 터득한다면 두 인격 사이의 진정한 관계를 가로막아온 '미묘한 그것(운명의 힘, 무의식)'에 관한 심연의 수수께끼가 상당부분 풀리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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