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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에서 진심으로 존경하고픈 분이 있다면 떠올려 보세요” 이 물음에 마흔 명이 넘는 정신분석 클레스의 수강생들이 조용해진다. 얼마후 다르게 묻는다. “ 당신이 닮고 싶은 부러운 대상이 있으면 떠올려 보세요.” 모두가 침묵하는 상태가 계속되자, 강의실 뒤편에서 장년의 어떤 분이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존경하는 사람은 없지만 닮고 싶고 부러운 대상은 한 사람 떠올라요. 친구 중에 직업적으로 성공해 돈 많이 벌고 만나면 좋은 느낌을 주는 의사가 있어요. 그는 자기 삶의 에너지 절반은 직업에 충실하고 가족을 돌보는데 사용하고, 다른 절반은 여자들과 원 없이 즐기는데 쓰며 살아요. 그는 자신이 관계하는 대상에게 늘 최선을 다해요. 자신과 타인을 위해 가진 걸 다 쓰며 사는 그의 생활이 너무 부러워서 나도 한 때 그처럼 살려고 시도했었어요. 그런데 즐기기는커녕 정신과 생활 전체에 파탄이 일어나서 죽다 살아났어요. 그 후 불안한 마음을 추스리려 명상수련을 10여년간 해왔습니다. 아. 비록 저는 실패해 마음을 접었지만, 그 친구가 여전히 부러워요!” 진정성과 연륜이 묻어나는 장년 남자의 말에 클레스 전체에 한동안 소통의 기운이 감돈다. 깊은 체험에서 우러나온 생각과 소리라서 그런지 복잡한 마음을 ‘소화’시키는 여운과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 분의 말을 한편에 놓아두고, 다시 묻는다) “우리 현실에서 ‘그 분’의 말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고 싶고 닮고 싶은 존경스러운 대상을 떠올려 보세요. 한 사람도 떠오르지 않나요?” 클레스가 계속 조용하다. 침묵이 부담스러운지 어느 한쪽에서 머뭇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인도 해당 되나요?” "......" (그 학기에 똑같은 물음을 무려 세 곳의 정신분석 클레스에서 반복해서 던졌는데, 놀랍게도 수강생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존경스런 대상을 좀처럼 떠올리지 못하는 이 현상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 우리 시대에서 자신이 가장 닮고 싶은 이상적 대상이, 보통사람이 못하는 전문직 활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물질의 풍요와 사생활을 한껏 향유하는 인간이라는데 20대부터 60대로 구성된 정신분석클레스 남녀 수강생들 중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부럽네요. 그 분처럼 살 수 있다면...” “그런 분을 만나 지인으로 관계한다면...좋겠네요..” 정신분석 클레스 수강생들의 이런 반응이 적지 않이 놀랍다. 10년 전에 이 물음을 던졌을 때는, 유명한 성직자, 정치가, 학자, 순국선열, 시민운동가 등의 이름이 호명되었었다. 그런데 지난 학기엔 그 누구도 과거에 '위인'으로 호명되던 분들을 ‘닮고 싶은 목표 대상’으로 떠올리지 않았다. 대체 지난 10년 사이에 한국인의 정신성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인가? 생활 환경에 큰 변화가 생기면, 그것에 적응하는 정신에도 큰 변화가 일어난다. 프로이드 시대부터 1950년대까지 서양에서 (한국은 1990년대 초까지) ‘이상적인 인간상’은 자신의 본능욕구를 잘 억압하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이상적(도덕적) 가치를 잘 구현하는 인간이었다. 이런 시대에서 사회에 적응하는데 불편함과 ‘문제를 지닌 인간’의 표상은 신경증자(강박증, 공포증, 히스테리) 였다. 그런데 1960년대부터 '굶주림 공포로부터 해방된' 미국을 선두로 전 세계에 전파된 ‘counter-culture movement(반-문화 운동: 사회혁명-운동권 & 사회탈피-히피)’ 이후, 그리고 자본주의 가치관, 인터넷 정보화 문화, 포스트모던 문화를 구현하는 오늘날의 한국에서, 이상적 인간의 모델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본능욕구를 엄격히 억압하는 인간상에서, 욕망을 현실에서 탈 없이(타인에게 피해줌 없이) 다양하게 향유하는 인간상으로 삶의 이상적 모델이 바뀐 것이다. 이런 시대에 부각되는 ‘문제 많은 인간’은 타인과 조화롭고 기분 좋은 관계를 맺을 능력이 없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도 자각하지 못하고 소통이 꽉막혀 지탄받는 (여러 유형의) 셩격장애자다. 신경증자는 무의식에로 과잉 억압한 유아성욕(성환상)과, 그 욕구에 휘둘리려하는 자아를 강력히 비난 처벌하는 냉혹한 초자아의 힘 사이에서 갈등과 불안에 시달리는 자다. 신경증자는 규범을 벗어나는 향락을 소망하지만, 거세불안과 초자아불안이 워낙 강력히 작동되어, 향락없이 메마른 삶을 살아가거나, 용기를 내 쾌락상황에 도달할지라도 억압이 작동되어 향락을 못느끼거나, 향락 대신 신경증 증상에 시달리는 자다. 그런데 신경증자가 우연히 어떤 외부대상의 유혹에 접할 경우, 어찌되는가? “나에게 (아내 외에) 꿈에 그리던 멋진 연애를 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정작 기회가 주어지니까, 나도모르게 (욕망충족을 방해하는) 엉뚱한 행동을 하게 되고, 결국 그 좋은 기회를 날리게 되더라구요...” “딱 한번 멋진 여자와 사귀게 된 적이 있었는데, 갑자기 불안이 밀려오고, 오해와 탈이 생기고, 처음에 좋던 관계도 이상하고 끔찍하게 변질되서, 죽다가 살아났어요!” 한 한기 정신분석클레스에서 자연스레 표현된 위의 말들은 전형적인 신경증자의 언어이다. 초자아가 비대하고 억압 활동이 과도하여 ‘현실에서는 도저히 향락을 즐길 수 없는’(설령 금지된 관계를 시도해도 쾌락은 없고 불안만 남는) 정신구조를 지닌 사람! 내적 갈등에 시달리느라, 사회적 성공을 적극 추구하지도 못하고, 잠재능력을 온전히 발현하지도 못한... 금지된 욕망과 고상함 사이에서 평생 ‘고뇌하는 인간’! - “ 무의식의 소망을 하나만 표현해 보세요.” - “마음을 흥분시키는 여자랑 원 없이 섹스해보고 싶어요!”~ "아니 이런 내 마음의 뿌리를 제대로 알고 싶어요!" 자신이 겪은 반복되는 욕망과 이에 연이은 불안-무효화(undoing) 행동의 원인을 깨닫고자 명상을 열심히 수련해온 그의 얼굴이 수업 중에 홀연 희귀한 삶의 모델처럼 지각된다. 타인에게 피해주는 걸 못견뎌하고, 자신의 내적 욕망을 자신모르게 스스로 처벌하며, 향락을 포기하지도 즐기지도 못해온 인간! 보통사람이 그럭저럭 즐기는 향락마저 도저히 실행하지 못해 번뇌하며 금욕적으로 살아온 교양인. 그가 자신모르는 신경증자였기에, 불안과 갈등없이 품위있는 직업 활동과 (금지된?) 향락을 조화롭게 병행하는 친구가 진심으로 부럽고 잠시라도 닮아 보고 싶은 유일한 이상적 대상으로 지각된 것이다. 이상적 인간의 모델이 개인마다 서로 다르거나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 오늘날, 안과 밖에서 밀려드는 수많은 자극들에 어떤 스타일로 대처할 것인가? 오늘의 한국인 중 누가 ‘인간다움’을 구현하는 삶의 모델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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