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드 정신분석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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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보여주기 I
관리자(cjlee7600@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18년 01월 07일 20:37 413
인류사랑을 외치던 달변 철학자가 알고보니 지독한 이기적 삶을 반복해 왔고
고상함을 풍기던 목회자, 윤리학자가 비윤리적 행동을 주기적으로 거듭하고
엄격한 공정성의 보루인 법률심판자가 법의 경계선을 암암리에 넘나들고
매력 넘치던 스타연애인이 어떤 재능하나만 있는 인격미숙아임이 드러나고
존경스러 보이던 정치가가 어느 날 갑자기 천하의 잡놈으로 비난 받는 현상들

그래서 뭐. 뭐가 어떤데
그대가 매일 가까이 접해왔던 이런 현실이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지는가? 세월호 사건이?
내숭 떨지 마라. 오랜세월 눈과 귀를 막고 살아서 진정 실상을 몰랐던 것인가? 남탓하는 네가 애써 한 일은 뭔가 ?
단지 특정 부분만 까발려져 어지럽게 느껴질 뿐인, 적나라하지도 진지하지도 못한 이 세상의 중심 특성은 무엇인가?

국회의원 보좌관 하는 지인이 말한다.
“국회의원의 생활은 30분 단위로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나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자에게 자신을 품격 있게 포장하려 애쓰듯이, ‘보여주기’ 하는 생활의 연속이다. 지역구 주민들과 국민들이 ‘그것’을 원하고, 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면 그의 미래는 한순간에 끝장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 카메라 들어대면...그 누구도 마찬가지가 되요 ~ ”

타인의 시선에 자신의 삶을 맞추는 (척하는) 이런 보여주기 삶을 계속하면 그의 인격은 어찌되는가?
정신분석은 그것을 '거짓자기' 또는 ‘페르조나 인격’ 이라 칭한다. (무의식의 불안 때문에) 자신의 본성을 당당히 드러내지 못한 채, ‘사회적 얼굴(페르조나)’에 내면주체가 동일시(동화)되어,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 연기’만 (주체성없이) 반복하는 인격. 단 한번도 자신의 무의식을 직면해본 적이 없어, 정신성(존재)의 깊이가 없고, 겉으로 내 보이는 것이 그가 지닌 정신능력의 전부인 사람. 자신을 '평가'해대는 힘있는 타인들 눈치보며,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에 신경쓰다 '창조성 지닌 진짜 나(true self)'가 마비된 인격, 타인이 뻔히 아는 (안전하고 고상해보이는) 말만 반복하는 사람. (은퇴, 강퇴 등으로) 사회적 지위나 역할, 안전했던 페르조나가 변화, 소멸되거나 없어지면, 휴식과 호기심이 아닌 맨붕이 되는 사람. 타인과 진정한 감정 소통을 해보지 못한 사람.
외부로 표현되지 못한 자신의 본래성이 무의식에 억압. 망각되고 그림자가 되어 정신이 상반된 요소들로 ‘분열된 인격’. 자기 외에 그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믿고 표현. 소통하지 못하게 되는 고독한 인격. 타인은 커녕 자기자신에게 조차 한번도 진실한 대화를 해보지 못한 사람. 세상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폼나게 보이고 대우받는 낙으로 사는 인격. 의식과 무의식이 괴리되어 있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모르며 살다가 무의식이 치솟는 어느순간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겉모습과 정반대 행동 스캔들로 추락하기도 하는 인격.

윤리학자, 철학자, 종교가, 법률가, 정치가, 연예인, 유명인들 대부분은 그들을 필요로 하고 지지해주는 타인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보여주기’ 비법을 나름 터득한 자다. 그리고 대중은 그들의 쇼를 환상적으로 즐기는 관객이다. 그들이 기대를 충족시키는 멋진 장면을 연출하면, 때로 감동해 눈물을 흘리고, 에너지를 받고, 찬사를 보낸다. 그러다 그들이 어쩌다 실망스런 실수(실패한 연기)하면 독기와 토사물, 똥물을 방출하여 한순간에 매장시킨다.

21세기 한국인의 인간관계 양태는 현재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적어도 티비나 언론이나 SNS를 활용해 자신의 능력과 존재가치를 드러내는 인물들의 ‘보여주기 이미지와 언변 쇼’ 게임 문화에 길들여진, 그것이 곧 인간의 본래성, 진실이라고 착각하며 살게 된다.
한순간의 멋진 이미지 달변 연기로 스타가 되기도 하고, 카메라 위력을 망각한 한순간의 본심 표현, 본능욕구 표출로 개망신당해 왕따가 되기도 하는, 보여주기 게임의 경쟁적 경연장이 어느덧 우리를 둘러싼 현실이다.

한때 언론계 신데렐라가 몹시 되고 싶어 열심히 노력하다 좌절겪은 매력있는 30세 여성에게 묻는다.
“수려한 외모와 명민한 언어표현력으로 방송출현 기회는 충분히 열려있는데 다시 도전해보는 건 어때?”
“아니에요. 이젠 생각이 바뀌었어요. 제가 방송에 나가면, 제 과거가 사람들에게 탈탈 털릴 것이고, 그로인해 받을 스트레스를 짊어지고 사느니...제가 하고픈 공부 하며 지내는 지금 상태가 더 좋아요.” (방긋 미소 짓는 표정이 속에서 올라온다.)

보좌관 왈 “국회의원은 카메라를 즐기는 성격을 지닌 사람이라야 오래 버틸 수 있어요. 아닌 사람에겐 일종의 고역이야 ~”


‘보여주기’ 문화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성격은 어떤 정신성인가? 그것의 최적 모델은 ‘자기애성격’이다. 자기애성격자들은 타인의 관심과 시선을 받을수록 자존감이 상승하여 얼굴이 환해지고 기운이 솟는다. 그들은 어린시절에 중요한 대상으로부터 가치로운 존재로 온전히 주목받고 사랑받고 공감 받는 진득한 정서 체험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타자일반에게 ‘가치로운 대상’으로 관심 받는 주인공이 되어야만 실존적 행복감을 느낀다. 그것이 되지 않으면 ‘열등감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우울해진다. 그로인해 행복해지기 위해 늘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자신을 위로할 대상과 이벤트를 늘 갈구하며 찾게 된다. 자기애성격자의 대인관계는 늘 타인에게 자신의 잘난 면만을 ‘보여주기’ 하여, 그들의 생명에너지를 자신을 향해 쏟게 하는데 쏠린다.(“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내 수치스런 속마음을 타인에게 표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앞으로도 평생 절대 그런 일을 없을거야~”) 이들은 카메라를 받을수록 멋진 존재가 되기 때문에, 보여주기 문화의 대중 관객들과 나름 코드가 맞는 성격이다. 그러다 내면에 숨겨진 수치감과 열등한 요소들이 과잉축적되어 무의식에서 솟구치면, 어느덧 카메라를 망각하여 자만스런 언행을 노출하는 실수를 저질러 추락하곤 한다.(“야, 이 쓰레기 관객들아. 내가 너희들 써비스맨이라 착각하지마, 너희는 단지 잠시 이용하다 내버릴 나의 놀이감일 뿐이야.~”)
의식-무의식이 분열된 인간성으로 인해, 카메라 문화에 완벽히 적응하는 인간은 없는 법이다.


오늘날의 한국인은 타인들의 시선에 의해 성공하지 못한 하찮은 존재로 보여지고 부정적으로 평가당해 상처입을 까봐 연연해하며, 늘 타인과 자신의 이것저것을 ‘비교’하며 ‘남보다 나은 모습 보여주기’에 급급하던 20세기 한국문화에서 과연 정신적으로 얼마나 벗어난 것일까?

위 물음에 대한 어떤 답을 기대하며, 인간의 평등성을 주장하며 정신성의 고양을 위해 몰두한다는 철학자들의 학술행사에 가보았다. 그런데 분위기가 묘하다. 동일한 철학자인데 대학 ‘교수’인가, 교수가 되지 못한 학자인가에 따라 사회자가 언급하는 ‘호칭’이 다르다. ‘교수님/선생님’ (철학자의 사망 소식 공지할 때도 이 호칭은 그대로 따라다닌다 한다. 내게는 '소장님'이라는 제3의 호칭이 주어진다.)
발표와 토론 시간에 ‘깊은 실존 체험에서 나온 심연의 진실(진리)을 전하는 음성(학자의 향)’은 전혀 들리지 않고, 누가 더 ‘이목을 끄는 논리적 말’을 멋지게 던졌는가에 제1관심이 쏠린다. 그리고 철학자들의 먹고사는 생존환경이 열악해서 인지, 학술행사 진행자들과 참석자들에게 보다 중요한 관심사는 ‘호소력 있는 달변’ 게임보다 철학계에서 힘을 쓰는 ‘권력(교수. 회장)의 위치, 자리’를 누가 얻느냐 누구에게 가느냐에 신경을 쓰고 있음이 확연히 감지된다. 이들은 이미 (곱씹어 반성해낸 실존의 깨우침이 아닌) ‘뛰어난 언변을 보여주는 능력’이 (사교술과 더불어) ‘그 자리’에 도달하는데 필요한 주요 수단이라는 것을 서로 상식처럼 알며 관계· 행동하고 있었다.

멋진 ‘보여주기’ 능력이 ‘현실 권력 자리’ 유지에 필수조건임은 국회의원, 철학자뿐 아니라, 종교계에도 다를 바 없었다.
어느 목회자 왈 “목회자 모임에서는 관례적으로 담임교회(사찰) 신도수 크기에 따라 권위와 발언권의 서열이 정해짐을 이미 서로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분수'에 어긋나는 말과 행동을 하면 금세 큰일나요..”

정신분석가의 경우 개개인을 만나면 그가 겉을 꾸미는 사람인지, 본심을 말하고 있는지 느낌이 쓱 온다. 정신분석가는 직업활동에서 의식의 자기합리화 언어와 무의식의 욕망(진심)을 분별하는 데 늘 신경 써왔기 때문이다. 그래 임상을 오래 거친 연륜있는 분석가(상담가)들 사이는 (보여주기 태도가 곧 병리적 방어의 기호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권력위계 없이 대체로 편하게 대하려 노력한다. 적절한 보여주기는 안전한 사회적 관계 소통의 한 방식일 수 있지만, 편안히 소통해야할 대화 자리에서조차 ‘보여주기’ 태도를 취하는 대상을 보면...불편감과 더불어 어떤 마음 찌꺼기가 남는다.
("오늘도 페르조나에 길들여진 거짓자기들과 관례에 따르는 가짜 만남으로 괞히 헛된 시간을 보냈군~")

그 찌꺼기가 우연히 여기저기서 여러겹 쌓이면 정신이 피로해지기 때문에 이따끔 외부로 방출해야 할 때가 있다. 그로인해 분석가도 때로 타인을 향해 과도 진솔한 거친 표현을 하게 되고, 진심 소통 준비가 안 된 사회적 매너로만 살아온 그 대상은 종종 당황하게 된다.

“(고상한 모습만 보여왔던 당신. 죽기 전에) 속 마음을 진솔하게 단 한마디라도 표현하시기 바래요 ~”
“ ................................................(불편하고 불안해. 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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