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드 정신분석 연구소

사이트맵


칼럼


자기 위로
관리자(cjlee7600@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17년 09월 06일 10:20 112
shame [수치심]

스티브 맥퀸 감독. 2013영화. 뉴욕 여피 브랜든과 그의 여동생 씨씨의 '심리적 생존술' 나래이션

첫 장면 : 자기 집 침대에서 편안한 나체 상태로 뭔가 어떤 생각에 취해있는 듯한 독신 남자 모습.
지난 밤에 집으로 불러서 성관계한 콜걸의 이미지와 감각지각들에서 쾌감을 좀더 떠올려 느끼려는...
그때 전화기에서 어떤 여자의 음성 녹음 메시지가 울리자, 불쾌한 표정으로 무시하고 화장실에 가서 배설한다.
거실 여기저기에 온갖 음란서적, 음란영상들이 가득하다.
전철에서 자신에게 쾌락을 줄 것 같은 여성에게 시선 집중해, 즉석 헌팅 시도하다 절반의 성공 실패
직장에서 자기 역할 그럭저럭 수행. - 직장에서 자기 컴퓨터가 예고 없이 상사에 의해 수거되자 당황. (그 안에 자신의 성관련 자료가 담겨있기에) 스트레스 상태에서 화장실에 가 ‘자위’로 기분을 푼다. 자위는 그에게 무엇인가?

‘자기애 인격’과 '스키조이드 성향'을 지닌 자의 성생활, 성심리. 남녀관계, 일상생활이 (꿈이 삶의 내면을 반영하듯이) 영화 스크린에 펼쳐진다. [그의 여동생은 경계선인격. 현대사회에서 주목받는 두 병리적 인격 유형이 상징 표상으로 등장한다.]
연애할 대상을 간절히 찾는 직장상사와 함께간 술집에서 만난 여성이 상사가 아닌 브랜든에게 관심을 표현하며 그녀 차에 태우자...그녀 집이나 호텔로 가지 않고, 어두운 길모퉁이에서 즉석 섹스를 하고 관계를 끝낸다. 그리고 다음날엔 어느 호텔 근처에서 호텔 거실 유리창에 드러난 어느 남녀의 야한 성관계 장면을 응시하며 흥분한다.

브랜든은 자기중심적인 방어막이 강하기 때문에, 그 누구와도 진정으로 소통하기 어렵다. - 연예 관계도 짧다. - 자신에게 깊은 호감을 표시하며 다가오는 대상일 수록 더더욱 (뭔가가 부담스러워) 일회성 성-관계만 한다.
타인에게 흥분을 느끼긴 하되 진정한 관심을 주지 않는(못하는) 그에게 ‘성’이란 단지 긴장과 불안을 덜어주고 외로움 해소하는 자위적 생존수단 용도로 필요한 무엇이다.
서로에게 깊이 빠지게 될지 모르는 연애 관계에서는 상대에게 자신의 내면 결점이 드러날까봐 (혹은 자신모르게 상대를 파괴할까봐) 불안이 일어난다...잠재된 수치심 때문에, 친밀함을 원하는 대상과 성관계를 시도할 경우 무의식의 방해로 인해 성교불능 상태에 빠진다. 자신의 몸과 마음 전체를 도저히 어느 한 대상에게 맡길 수 없다. (오래 연애할 안정된 파트너를 찾는 같은 직장의 여성과 친근한 모드의 성접촉 상황에서, 갑자기 정신이 위축되어 발기와 성교에 실패한다. 바로 이 상황이 생후 첫 육개월 기간에 모성 박탈이 심해 사랑을 주거나 받는 것에 무능해진 인간의 본질 상태다. 브랜든은 그녀를 보낸 후, 그 자리에서 사랑을 주지 않아도 되는 콜걸을 곧바로 불러 성욕을 한껏 방출한다. )
내면이 탐색당할 걱정이 덜 드는, 사랑하지 않아도 죄책감이 덜 드는, 돈을 지불하고 자기 뜻대로 움직여주는 매춘녀들하고야 성관계와 생리적 배설이 가능하다.

[생후 첫 일년기간에 흥분시키곤 거부하는 양육자 관계경험을 한 사람은, 감당할 수 없어 무의식에 억압한 고통스런 유아기 대상관계 흔적들로 인해, 안정된 사랑(연애) 관계를 맺어야 하는 성인기에 친밀한(깊은) 인간관계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시도로, 부분적(신체적 혹은 정신적)인 관계에만 집착하게 된다. 흥분을 방출하곤 (거부당하기 전에) 곧 철수하는 관계 패턴을 반복한다.]

그에게 성쾌락과 성관계는 어떤 기능을 하는가?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고 ‘자기가 깨지는 불안’을 완화시켜주는 심리적 생존차원의 ’자기 위로’ 기능을 지닌다. 그야말로 타인의 성기관을 이용 수단으로 삼는 ‘자위’인 셈이다.
집과 직장, 노트북, 길거리, 술집 모두에, 자기를 위로해주는 온갖 성적 매체 수단들이 가득하다.

여동생 출현 : 퇴근 후 집에 오니, 집안에 들어와 있는 여동생 ‘씨씨’를 발견하고 놀란다. 마치 자신의 사적 영역이 타인에 의해 침입당한 듯 당황하는 모습. 피해의식.
각자 나체로 지내기도 하는 ‘경계가 모호한’ 사이.
밤에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하는 여동생이 침대 속으로 파고들어 오빠 등을 껴않는다.
브랜든은 자기중심적 자기애 세계에 갇혀 있기 때문에, 온전히 관심받는 대상관계, 융합된 관계를 갈망하는 여동생의 요구와 욕망을 결코 채워줄 수 없다. 그의 무의식에 잠재된 의식이 지각하지 못하는 자기애 상처와 수치심 때문에, 타자 일반과의 전정한 대화 자체가 정신구조적으로 어렵고, 두려워 회피하게 된다. 그래서 버럭 소리지른다. "내게서 떨어져란 말이야~"

떠돌이 가수 여동생이 자신을 알아달라는 듯 자신이 노래 공연하는 술집에 오빠를 초대한다. 마음 속 깊은 결핍과 바램을 표정에 가득 담고서, ‘뉴욕인의 삶’을 노래하는 여동생 씨씨. 전 세계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제1의 도시 뉴욕인의 화려한 포부와 자부심. 그러나 그 이면의 우울한 고독함을 드러내는 노래가사가 (삶의 심연을 반영하는 꿈 시나리오처럼) 잔잔히 흘러나온다. 그 노래를 들으면서 브랜든의 눈에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린다. 마치 현대 미국인의 삶과 내면을 공명하듯 드러내는 가사와 멜로디인 양.

반복되는 전화 음성녹음 메시지 소리를 뿜어대던 인물의 정체는 브랜든의 엄마였다. - 느끼한 전화 음성으로 자식의 삶을 끊임없이 침범 통제하는 역겨운 타자(고향같은 느낌이 않드는 엄마의 섬뜩함).“너 지금 거기서 내 목소리 듣고 있지 내 전화 받아라...할 말이 있다..” 성장한 자식을 아이 취급하고, 자신을 위해 봉사하게 하려 드는 자기애인격 엄마. 암이 걸렸다는 거짓말로 아들과 전화 연결 하고 싶어 하지만, 자기애인격이 이미 구조화된 자식은 일단 자립능력이 생기면, 더 이상 엄마에게 자기 삶을 통제당하는 걸 못견뎌하여 관계를 끊거나, 거리두기를 한다.

자식의 삶을 심리적으로 착취하려드는 악성 자기애 엄마. 내지 자식의 삶을 끊임없이 통제하여 자신과 융합된 자신의 분신 대상(주체적인 '나'가 없는 인격) 으로 만들어 놓으려드는 경계선인격 엄마. – 그 엄마로부터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다 자신모르게 엄마와 유사한 정신구조를 형성하게 되는 자식들의 운명.

정신의 결핍을 해소해줄 ‘대상’을 끊임없이 필요로 하고 갈망하고, 누군가에게 애정을 구걸하는 여동생. 개성 있어 보이는 예술가 기질, 떠돌이 가수. 자신을 구원해줄 누군가를 향해 사랑받고 싶은 가슴을 강렬히 전하지만....늘 불안하고 공허하고 ‘정체성 지닌 나’가 없고, 성욕과 파괴욕구를 통제 못해, 자신에게 관심보이는 대상과 즉각 성관계하고, 안정된 융합을 간절히 바라다 버림받는 생활을 반복하고, 유기불안에 시달릴 때마나 ‘자해, 자살시도’를 하는 경계선인격. 강렬한 융합욕구 때문에, 오누이 간의 근친상간 경계조차 모호하게 만들기도 하는...

자기애인격 브랜든은 과연...자기자신을 위로하는데 전념하는 고독한 자기애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걸까? 자기의 긴장과 불안을 달래줄...산소 같은 자기대상(self-object)을 필요로 하지만, 그 대상에게 스캔되고 침범당해 자기 내면의 수치심이 발각되어 자존감이 깨질까봐, 오래 지속하는 연애 대상관계를 해본 적이 없는...독신자의 삶.
안전한 생존을 위해 사회적 힘을 지닌 직장 상사에게 나름 기분 맞춰주려 하지만, 결코 마음은 주지 않는 어찌 보면 냉철한 지성을 지닌 합리적 자기도취자 브랜든.

최초 양육자에게, 태어난 모습 그대로, 진심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헌신적으로 돌봄 받지 못한 경우, 근원적 수치심(shame)이 내면에 쌓이게 된다. ; 사랑을 무조건적으로 베푸는 대상이 아니라, 침범하고 통제하려드는 엄마의 흥미꺼리 수단으로 존재한 아이에게 형성되는 근원적 수치심.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여자’에게 자기 속마음을 편안히 전하거나 맡기거나, (엄마 같은) 여자를 위해 봉사하고픈 마음이 진정 없다! 지겹고 진 빠진다. 엄마의 위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내 자신이 주인이 되어, 엄마처럼 나도 누군가를 내 쾌락 수단으로 한껏 이용하며 기분 좋게 살고 싶다.
엄마를 기쁘게 해 줄 별다른 가치나 능력이 없어 보여 자기애인격 엄마의 관심 순위에서 밀려나 버림받은 여동생의 바닥모를 수치심과 파괴욕구.

헌신적인 따스한 양육을 받지 못해, 엄마(세상, 환경)의 좋음과 나쁨을 두루 지각하는 ‘우울자리’에 도달하지 못해, ‘대상’에 대한 진정한 관심, 위로, 대상을 회복시키고픈 욕구와 정신성이 결여된 많은 현대인들. 자신모르는 무의식의 수치심 때문에, 누군가를 진정 사랑할 수 없는, 자기 속에 갇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고독한 인간상!

영화 종반 무렵, 어느순간 자기 삶에 너무 가까기 접근한 듯 느껴지는 여동생에게 불만을 표출하며, 자기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치는 브랜든. 여동생의 하소연.
여동생 : “오빠, 제발 오빠와 함께 있게 해줘. 나를 버리지 말아줘. 우리는 오누이, 가족이잖아, 서로 도우며 살 수 있는 관계잖아!”
오빠 : “내 삶에 짐만 되는 이 한심한 것아. 네가 현실에서 내게 무엇을 도울 수 있는데. 무 엇 을 해 줄 수 있냐구 ~ ”

[어찌보면, 자존감의 바닥에서 끊임없이 헤매며 수없이 절망하고 섬뜩하게 자해하며 살아온 여동생 씨씨가...오빠 드랜든의 심연의 외로운 수치심을 동질감을 가지고 깊이 공감하며 품어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다. "오빠, 그런건 아무 흠도 아니야. 그냥 내게 마음껏 배설해도 되~" 그러나 그런 여동생이 그에겐 더더욱 부담스럽다. 내면의 수치심을 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인격구조는 근원적 수치심에 대한 견고한 ‘방어’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외부로 노출되는 순간, 자존감과 더불어 ‘자기’가 붕괴되는 불안에 함입되기 때문이다. “으으 씨발, 누구도 내 속을 알아선 안 된단 말이야~” ]

여동생과 심하게 다투고,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어찌해서든 풀어야 한다. 혼술, 즉석 헌팅, 동성애, 매춘으로 에너지가 방전될 때까지, ‘자기 위로’가 될 때까지 마음속 스트레스를 자기 밖으로 방출하고 또 방출하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배설한다. 긴장이 사라지자 비로소 ‘현실’이 눈에 들어오고, 너무 심하게 상처준 여동생이 걱정된다. 집에 오니 피투성이로 실신해 있는 여동생의 자살 모습에 충격을 받고 영혼이 혼비백산된다. 그 충격이 그의 기존 인격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는 그동안 자신을 위로해주던 모든 성적 물건들을 노트북까지 다 쓰레기봉지에 담아 밖으로 버린다.

응급실 혼수상태에서 간신히 깨어난 동생의 말. “이 나쁜 놈아” [“사랑하는 오빠, 내겐 믿을 대상이 오빠 밖에 없어!”]

내면이 공허하고 수치심이 가득해 타인과 진정으로 영혼의 사랑나눔 관계를 맺을 수 없는 브랜든. 그리고 너무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자신보다 자존감이 더 바닥인 생명이 위태로운 여동생. ("나를 부담주는 모든 인간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다~. 아니야 나보다 불쌍한 저 동생을 살려야 해~")
평시의 냉정한 얼굴과 달리,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몰라 '진정으로' 난감해하는 표정 !

[ 울먹이는 아이처럼 고뇌 갈등하는 이 한 장면의 얼굴 표정에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들이 압축된다. 망각된 어린시절에 사랑을 거부당하고, 또다시 상처받을까봐 두려워 '부인'해온 자신의 본래 인간적 애증 감정, 유아적 불안, 연약한 자기 이미지들이 여동생 충격으로 인해 파열된 방어막 틈새로 범람하여 섬뜩하게 절절히 느껴지는, 나르시스트에게 매우 드문 절절한 절망의 순간! "아 어찌해야 하는가., 나는 도저히 문제있는 누군가를 오래 가까이 보살피지도 사랑을 줄 수도 없는 메마른 생명체일 뿐인데...나 좋을 때만 잠시 반짝 애정을 표현할 수 있을 뿐인데..." 앞으로 그의 영혼이 어찌될 지 알 수 없는 궁금함과, 실존 무드의 변형에로 뭔가가 빼꼼 열려 있는 듯한 복잡한 클라이맥스 상태..]

겉은 성공한 직장인으로 냉철하고 핸썸해 보이지만, 속은 빈곤하고 연약하고 고독한 브랜든(자기애인격+schizoid 성격)은, 그보다 더 깊은 결핍과 극심한 불안에 시달리며 안정된 정체성이 결여된 씨씨(경계선인격)와 더불어, 현대인의 내면 실상을 반영하는 생생한 오누이 표상이다.

운명처럼 주어진 냉엄한 현실에 적응하려 애쓰다 이미 이렇게 되어버린 우리들의 정신성.
마음 깊은 곳의 수치심과 뜻밖의 현실 긴장들을 앞으로 무엇으로 어떻게 풀고 위로할 수 있는가?



▲ Go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