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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기애 인격
관리자(cjlee7600@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17년 08월 13일 15:36 357
무심씨 : 심리학 책에서 심리검사 조항들을 체크해 보니, 저도, 제 가족도, 남자친구도 모두 자기애 인격으로 진단되었어요. 대체 자기애 인격이 왜 이리도 많은 것인가요? 자기애 성격이 한마디로 어떤 것인가요?

요즘 한국의 문화가 빠른 속도로 서양화되면서, 정신이 서양 '개인주의' 문화에 동화됨과 더불어 '자기애 인격'이 급증하는 추세다.
“현대는 자기애 인격의 시대다.”라는 말은 서양에서 이미 1970년대부터 떠돌았다. 이 말은
현대의 문화와 사회제도와 생활환경이 인류의 정신성을 자기애 인격으로 형성시키는데 심대한 기능을 한다는 뜻이다.

이제는 어느덧 모든 연령대의 한국인이 ‘자기애 성격’이 어떤 것인지 숙지해야 비로소, 가족 관계, 친구 관계, 남녀 관계, 부부관계 등에서 생기는 오해로 당황하거나 적응하지 못해 고통 받는 상황에서 어느정도 풀려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자기애 성격이란 무엇을 뜻하며, 어떤 원인들로 인해 생기게 되는가?

이것에 대해 이미 수많은 심리학적 이론과 설명이 논문과 책, 인터넷 기사로 주어져 있다. 그런데 철학적 배경과 정신분석적 배경을 종합해서 안내하는 입장은 드물기에, 두 배경의 연관성을 주목해 보자.


현대 사회에서 자기애 인격이 유독 만연된 근본 원인은 ‘개인주의 문화'의 대중화 현상에 기인한다.
그런데 철학적 사유에 낯선 대다수 한국인은 '개인주의'를 막연히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주장으로만 짐작하고서 선호할 뿐, 정작 그것을 마음에 수용하게 되면 자신의 정신이 어떤 영향을 받게되는가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개인주의가 어떤 치열한 피의 투쟁을 거쳐서 등장한 이념이고, 어떤 장점과 부작용을 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개인주의 이념은 시민계급이 중세 봉건주의, 근대 왕권주의, 기독교 교권주의 폭정에 목숨걸고 대항하는 과정에서 17세기 영국 사상가 토마스 홉스에 의해 처음 체계화되었다. Hobbes는 “이 세상에서 ‘나’의 생명을 보존하고 향유하는 권리보다 더 우선적으로 소중한 것은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고귀한 가치들(종교, 정치, 도덕, 학문, 예술...) 조차도, 나의 생명권보다 우선하는 초월적 가치를 지니지 않으며, 그것들은 ‘나’의 생명을 보존, 향유하는데 필요한 가치를 지닐 뿐이다.” 라는 그 시대에선 혁명적인 생각을 인류 정신에 처음 각인시켰다.

이런 개인주의 가치관이 널리 퍼진 사회에서, 바람직한 인간상은 어떤 것인가?
사회를 구성하는 각 개인이 자신의 생명을 안전히 보호하고 효율적으로 향유하려는 동기를 유지하고 현실적응적 행동 능력을 습득하는 것이다.

‘사회’란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생명권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보호하는 제도와 기능을 지닌, 개인들 사이를 조화롭게 매개하는 계약·규약(법, 규범, 관습)을 지닌 집단이다. 즉, 사회와 법, 도덕의 제1 목적과 기능은, 개개인의 생명권을 지키고 서로 충돌하지 않게 보장해주는 데 있다.

이런 이념과 가치관에 의거하여 삶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최상의 길이라 보는 것이 개인주의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니는 자연권인 개인의 생명 보존과 향유 권리를 최우선 가치로 믿는 이 이념은 Hobbes로부터 시작하여 4백년에 걸쳐 서양문화의 중심 가치관으로 서서히 자리 잡아 왔다.
그리고 서양의 생활환경이 ‘굶주림 공포’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고, 전통 규범에 억메이지 않는 다채로운 ‘자유’에 대한 욕망과 요구 운동이 신세대를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전개되던 1960년대부터, 개인주의 문화는 서양사회에서 본격적으로 꽃을 피웠다.

기독교 문화와 제도에서는 상상조차 금지되었던 본능욕구(성..)의 자유로운 충족과, 불평등과 사회적 억압 일반으로부터의 해방을 외치는 목소리들이 사회제도에 적극 반영되면서부터, 개인보다 가족과 사회와 종교의 가치를 우선시하던 전통문화를 내면화하여, 사회의 요구와 타인의 시선을 살피면서 자신의 본능욕구를 억압하며 살아오던 서양인의 정신성은 획기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 시대부터 세상을 향한 인간의 가치관, 욕망양태, 삶의 태도가 전향적으로 바뀌었다.
'나'보다 가족과 타자를 위해 사회로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와 역할을 현신적으로 충실히 수행하며 사는 인격이 과거에는 존경받는 이상적 삶의 모델이었다. 그런데 개인주의 문화에서 그런 인격은 사회체제의 유지를 위한 ‘의무적 역할 수행’ 만 하는 페르조나 인격에 불과하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주체적으로 인식하고 향유할 줄 아는 인성이 발달하지 못한 타율적(무반성적) 인격으로 평가절하되어 주변화 된다. ‘성실한 의무 수행 인격’은 사회적 관계 차원에서는 존중되지만, 개개인의 생명을 향유하는 사적관계 차원에서는 개성없고 재미없고 고리타분하고 미성숙한 인격일 뿐이다. 타인과 충돌하거나 타인에 ‘의존’하지 않고서 자기 삶을 자율적으로 즐기며, 타인이 공유할 수 있는 가치로운 뭔가를 창조해내는 능력과, 타인을 기쁘게 하거나 타인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개인적 능력을 지니는 인격이 바람직한 인간상으로 선호된다.

주체적 생명 향유, 자율적 자기실현이 주목받는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성장 과정에서 우연히 만나서 가까워진 동료나 친구는 영원한 관계이기 보다 그 순간에 서로의 가치를 공유하는 잠정적인 좋은 관계 대상이다. 이후의 삶에서 자기 삶의 보존과 향유에 유익하지 않게 되면, 관계가 멀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움으로 간주된다.
인생은 생리­심리적, 사회적으로 끊임없이 변해가는 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명보존과 향유에 부합되는 최적의 행동과 대상 선택은 얼마든지 유동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오늘 가장 친밀하게 느껴지는 대상이, 나의 정신성이 바뀌고 삶의 상황이 바뀐 미래에도 친밀 대상으로 남는 것이 '나'의 효율적 생명 향유와 존재가치 고양에 최선이라는 보장이 없고, 과거의 친밀관계를 반드시 평생 유지 '해야만 한다는 당위적 의무'도 없다.

동료, 친구, 연인, 심지어 가족(부부, 부모자식, 형제자매) 관계조차 '나' 개인의 생명보존과 향유에 유익하지 않거나 방해 된다면, 언제든 더 좋은 다른 대상으로 대체하는 것이 현명한 삶의 선택이다.
서양의 언론에 자주 등장해 주목받는 재벌, 연예인,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모습들과 스캔들은 바로 이런 개인주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일부 사례일 뿐이다.

(상담 과정에서 내가 만난 최근 한국 젊은이들의 친구관계, 남녀관계, 부부관계, 심지어 부모자식 관계조차 이미 서양의 개인주의 문화를 물씬 반영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장 단계마다 어떤 대상이 좋으면 만나고 연애하다 싫으면 헤어지는 과정이 매우 짧고 자연스러우며 이미 개인의 생명 향유권리와 취향이 제1가치로 내면에서 작동되고 있었다.)

가령 부부관계, 남녀관계, 친구관계, 사제관계, 직장관계 등등이 안정되게 지속되려면, 서로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가치관의 끈’(들)이 온전히 작동해야 한다. 그 정신적 끈의 특성은 사회마다 시대마다 고유하고 다양할 수 있다. 가령 한국인은 역사 속에서 정령주의(애니미즘), 민족주의, 왕권주의, 가문주의, 유교, 불교, 기독교, 과학주의, 계몽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 등등 각 시대마다 개인과 집단의 정신을 하나로 응집시키고 조화시키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이념의 끈(연결고리, 공통가치관)을 지녀왔다.

위에 열거된 이념들 중에서, 한국인이 어느 하나를 정신에 내면화할 때, 그의 정신성은 그 이념의 특성에 조화되게 재구성된다. 이처럼 태어날 때부터 개인생명을 에워싸며 각인되는 '사회의 이념'은 개인과 집단전체의 정신성과 판단지각, 가치관, 삶의 태도을 보이지 않게 좌우하는 거대한 무의식의 힘으로 작동한다. [보통사람은 자신이 무심코 접한 어떤 이념(공통가치관, 이데올로기)이 자기 삶에 어떤 위력을 지니는지 모른채, 언론에 나타난 유혹적 선전언어에 홀려서, 특정 이념의 장점에만 주목하여 내면화 한다.]

현대의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각 개인이 타인 관계에서 자신의 생명을 안전히 보호하고 효울적으로 향유하려면, 타자가 필요로하는 (결핍을 채워주는) ‘어떤 가치’를 적절히 제공해야 한다. 각 개인의 생명권과 연관하여, 개개인 상호 간의 생리­심리적 만족, 사회적 안전, 자존감 고양, 자아 발달, 존재가치 고양..에 나름 긍정적 기여를 해야 한다. 즉, 개인의 생명보존과 향유권을 보호하려면, 그 댓가로 타자일반을 위한 모종의 의무와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 만약 혹자가 개인주의의 장점에만 주목하게 되면, 간단치 않은 부작용에 직면하게 된다.

가령, 미국 결혼문화의 경우, 짧지 않은 연애 기간에 신중하게 서로의 성적 만족도, 심리적 만족도, 사회적 대인관계와의 조화 등등을 경험으로 확인한 후에 커플(두 개인) 중심의 결혼을 선택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신중하게 맺어진 커플 중 절반은 이혼을 하게 된다. 그런 현상을 생기게 되는 (보이지 않는)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철저한 개인주의 문화가 개개인의 정신배경에서 작동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존하고 최고로 만족스레 향유하는 데 있어, 내가 선택한 그 대상이 최적의 대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순간, 다른 대상이 훨씬 더 좋다고 느껴지고 생각되는 순간, 두 사람을 연결해주던 심리적 가치의 끈들이 자연스레 풀어지는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 라는 명칭은, 일반적으로 '자식'을 자신의 방식으로 키우는 절대적인 힘과 권리와 더불어 의무와 책임을 지닌 존재라는 뜻이다. ‘가문, 가족, 종교’ 등을 가치의 1순위로 내면화했던 시대의 문화에서는 ‘어머니, 아버지’는 자식을 훌륭한 존재로 키워내는 데 자신의 모든 생명권을 기꺼이 헌신하기도 하고 절대 권력과 권위를 행사하기도 하는 존재를 의미했다. 그런데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어머니, 아버지 역할 이전에 ‘나’의 생명보존-향유권이 우선이다.
‘나’가 먼저 삶을 안전히 보존하고 자유롭게 향유해야, 자존감과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고유 가치를 창조하는 능력을 지니게 되며, 자식에게도 건강한 정신성을 물려줄 수 있다고 본다. (혹자가 자식 키우는 것에 몰입하는데 만족감과 자존감을 느꼈다면, 그것으로 자족하여, 자식에게 보상받으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개인주의 문화에선, 자식 역시 탄생 순간부터 고유의 자연생명권을 지닌 존재로 간주되며, 성장과정에서 자기존재의 가치감을 마음껏 만끽하고 고양시키는 주체(주인공)이며, 성장해서는 자신에게 헌신했던 부모에게 감사하며 봉양하는 것보다, ‘나’의 생명을 최대한 자유롭고 가치롭게 실현, 향유하는 것에 1순위 가치를 두게 된다.

정신분석가는 개인의 생명향유권을 어느시기에 어떤 대상과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 사용하는가의 문제와 연관하여, 출생 초기에 양육자와 자녀 사이의 관계 문제에 유독 주목한다. 바로 여기서 종종 개인주의 문화의 본질과 연관된 심리적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임신과 출산 직후부터 한 개인은 자식 양육에 전적으로 몰두하는 양육자(어머니) 역할과 더불어 자신의 (사회적, 직업적. 경제적, 생리적, 심리적 ) 결핍을, 생명향유 욕구를 만족시키고, '나'의 존재가치를 고양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선택적 상황'에 운명적으로 놓이게 된다. 이때 자녀 양육을 타자(할머니, 가정부..)에게 맡기고, 자신이 원하는 활동(...)에 몰입한 어머니의 자녀는...아기 때 이미 양육자로부터 선택받은 제1순위 가치대상이 되지 못했다는 좌절감, 자존감 상처, 수치감..을 갖게 된다. 아기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어 무의식에 집어넣게 된 그 소화되지 못한 감정덩어리(complex)로 인해 훗날 자존감에 민감한 ‘자기애 성격’을 형성하게 된다.

[개인주의와 더불어 남녀평등주의로 인해 여성의 사회적 직업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엄마가 신생아에게 가정에서 오랜기간 안정된 양육을 제공하던 전통적 양육환경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이, 서양은 1960년대부터 한국은 2000년대부터, 정서적 애정 결핍을 지닌 자기애성격이 만연하게 된 주요 요인이다.

여기에다 '자본주의' 의 마력("돈 많이 모으면, 온갖 세상 즐거움을 한껏 누릴 수 있다~."), 정보의 파노라마에 정신을 쏟게 유혹하는 정보화문화의 위력("불편과 불안감을 덜어주고 호기심을 채워주며 생명 향유의 최고 비법을 전해주는 최신 정보들을 지금당장 편리하게 마음껏 누리고 싶다~") 이 결합되면, 아기 출산후 최소 1~ 3년간 유아와의 관계에 전적으로 몰두해야 하는 '엄마의 헌신적 정신성'이 현실에서 좀처럼 존립. 유지되기 어렵게 된다. ("아기와 온종일 붙어있으니, 힘들고 지치고 내 삶이 무의미, 무가치, 무기력하게 느껴지고...우울해져 숨막혀 죽을 것 같애 ~. 두 번 없을 내 생명을 이 순간 향유하면서, 결핍을 채우면서 살아야 해 ~ " )

내부에서 불쑥 올라오는 이런 불편하고 당황스런 감정들은 특정 이념에서 온 것이기 보다, 대부분 애기엄마 자신이 애기 때 엄마 관계에서 직접 겪고서 감당할 수 없어 무의식에 쑤셔넣은 어떤 결핍 체험에 기인한다. 개인주의( '나' 중심주의, 자유주의) 이념은 이런 감정을 자기통제하는데 기여하기 보다, 상승시키는데 기여한다.

개인주의에 동화된 아기 엄마가 이미 자기애 인격인 경우, 자신을 생리심리적으로 힘들게 하고, 자기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듯한 대상(아기...)이나 현재 힘없어 보이는 대상에 대해, 심리적 가치감을 거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 대상을 향해 자신의 리비도(욕망에너지)가 지속해서 집중되기 어렵다. 자기애자는 자기보다 힘있게 느껴지는 대상에게만 관심과 욕망이 느껴지고 정신을 집중한다.

그로인해 현대의 유혹적인 물질환경과 개인주의 문화 속에서 태어나 '양육'된 다수의 현대인은 자신모르게 타인(유아기 엄마..) 과의 '정서적 관계에 있어 만성화된 결핍감과 성격의 어떤 문제(과민한 방어, 자기중심성)을 지닌' '자기애 인격'으로 양산되어 간다.

(서양은 불안하고 격동적인 역사속에서 합리적 생존술의 묘책으로 개인주의 이념을 주체적으로 생성하였고, 아울러 그것의 결함을 보완하는 여러 이념적 교육적 제도적 장치를 꾸준히 발달시켜 왔다. 그런데 서양의 문물을 단기간에 삼키고 모방해온 한국인은 아직, 그것의 장점과 부작용을 주체적으로 소화하고 깨닫고 대처할 준비가 안 된 상태다.
무릇 처절하고 귀한 깨달음은 '강한 고통 체험'으로부터 온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획기적으로 확장시킨 개인주의(자유주의)의 장단점에 대한 균형있는 이해와 성찰에 도달하려면, 그것의 소중한 매력과 더불어 심각한 부작용을 뼈져리게 직접 체험해보아야 한다. 그 체험의 서곡은 다양한 질감과 양상을 지닌, '자기애 인격'의 대대적 출현 현상 으로부터 들려 올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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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애 성격은 주로 ‘탄생 초기, 유아기에 겪은 (기억도 나지 않는) 상처입은 감정덩어리가 정신의 바닥(분열된 무의식)에 무겁게 자리 잡고 있는 정신성이다. 자기애자는 과거의 그 상처 감정을 두번 다시 겪지 않으려고, 타인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자신의 자존감과 존재가치를 높이려고 부단한 애쓰는 삶을 산다. 그 결과로 타인이 무시할 수 없는 어떤 사회적 전문 능력을 획득하게 된다. (사회적 권위자, 과시할 수 있는 뭔가를 지닌 사람...전문직, 전문가 자격증, 연예인...)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가 애써 개발한 ’잘난 나‘ ’자존감 높은 나‘의 바닥 아래에, 상처입어 예민한 나, 수치감에 분노하는 나, 우울한 나, 억울하고 외로운 나. '나'가 깨져서 소멸될까봐 불안해하는 나...’가 잠재되어, 생명을 온전히 향유하지 못하고, 불편하고 위축된 삶의 무드 속에서 지내곤 한다. 자기애자는 열심히 학습하여 개발한 높은 지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의 부정적 감정들을 의식에 스스로 ‘통합’해낼 수 없기 때문에, 늘 감정적으로 타인의 부정적 자극에 민감반응하고 과잉 방어하는 자기중심적인 굴레(방어막)에 갇혀 지낸다.

자기애 성격자는 타인 관계에게 자존감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는 일반적 자극들에는 매우 관대하고 탁월하고 객관적인 판단력과 평정심을 유지한다. 그런데 일단 그의 수치심을 건드리는 부정적 자극이 주어지면, 정신이 예민해지고, 감정이 격해지고, 객관적 판단능력과 평정심을 잃게 된다. 평시에 탁월한 인간이던 그가 황당하게도 고도의 자기중심적인 굴레에 갇혀, 어릴 적 상처에 기인된 과거 감정의 파동에 휩쓸려, 약간 불편한 자극을 드러냈을 뿐인 지금 눈앞의 어떤 대상에게 마치 큰 상처를 받은 것인 양 느껴 격노하게 된다. ["그 년/놈에게 받은 상처는 죽을 때까지 결코 용서치 않을 거야~."]

자기애 성격자는 ‘어린 시절에 받은 자존감의 상처’를 방어하기 위한 고유의 취향과 방어기제를 정신(성격)에 구조화시킨 존재다. 그의 성격구조에는 자존감을 보충해주는 어떤 대상을 찾아내어 과거의 결핍을 보충하고 보상받고픈 강한 욕구가 늘 역동한다. 아울러, 자존감을 손상시키는, 과거의 박탈과 좌절 상처를 재발시키는 상황이나 대상, 부정적 자극을 주는 대상에게 과도한 방어와 공격적 행동을 반복해서 드러낸다. ["이 세상에는 나의 감성 주파수를 알아서 잘 맞추는 좋은 대상과, 전혀 맞추지 못하고 엉뚱한 반응을 해대는 구역질나는 대상들이 있어요~"]

자기애성격자는 현재의 대상에게 강한 부정적 자극을 받으면, 그것이 큰 상처로 정신 깊이 각인되어, 그토록 친밀한 언행을 주고 받던 관계도 한순간에 깨지게 된다. 보통사람의 경우, 어떤 대상과 싸움을 벌여 사이가 멀어지면, 그 대상과 맺었던 좋았던 감정의 흔적들이 정신에 남아 있어, 부정적 감정에서 평상심으로 회복되며, 이후에도 재결합할 여지가 남게 된다. 그런데 자기애 성격자의 경우는, '자기'가 민감하여 깨지기 쉽고, 분열된 무의식의 어릴 적 상처감정으로 인해, 조금의 부정적 자극을 준 대상에게 조차 마음이 쉽게 상해, 강한 ‘평가절하’와 ‘부인’ 방어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에, 일단 관계가 틀어지면, 스스로 회복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가깝던 관계였어도, 일단 관계가 한번 틀어지면, 원상태로 돌이키기가 현실에선 도 저 히 안 되 요." ]

그런데 비록 자기애 성격자 일지라도 자존감을 불편하게 건드리는 어떤 관계를 전적으로 단칼에 자르기 힘든 대상이 있다. 부모 자식과 배우자가 그것이다. 자기애자에게 ‘자식’은 세상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유일한 분신이기 때문이다.
고도의 자기중심적 가치감각을 지닌 자기애자가 기대하는 기준에 못미쳐서 불편한 관계가 되는 부모-자식 관계를 회복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자기애인격에겐 어떤 ‘환상’이 내면에 늘 있다. 그 환상은 삶의 과정에서 자신을 보호해준 긍정적 기능을 한 동시에, 어떤 문제를 부딪히게 만든 무엇이기도 하다. 그것은 ‘나는 대단히 존귀한 존재’라는 환상이다. 물론 그 반대 영역에는, ‘나는 엄마에게 방치당한(버림받은) 하찮은 존재다, 억울한 인간이다!’ 라는 유아가 감당할 수 없었던 부정적 감정덩이가 이 환상과 연결되어 있다. 이 자기애적 환상은 한편으로는 그를 '고상한 정신성으로 고양'시키기도 하고, 부정적 수치감이 의식에 올라와서 정신을 깨뜨리는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순기능을 한다. 그런데 바로 이 ‘자기애적 환상’이 바로 자신의 문제를 온전히 직면하지 못하게 만들고, 타자 관계와 부모 자식 관계를 온전히 객관적으로 지각 판단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역기능을 한다.

자신이 자식을 위해 엄청 헌신했건만, 어처구니 없게, 천하에 재수없게, 자식새끼들은 자신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외면한다)고 상심하여 분노하는 나이든 사람들 중에 자기애인격이 꽤 많다. 그런데 대체로 높은 지능을 지닌 자기애자가 한탄하는 자식에 관한 비난 내용들이 과연 정확한 판단인가?

자기애 성격자는 과연 자신이 자녀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그만큼 실재로 ‘헌신’했던 것이 사실인가?
안타깝게도 자기애 인격은 타인과 관계를 할 때, 일정시간 이상을 자기자신 아닌 타자에게 정신 집중하기 어렵다. 욕망과 관심의 리비도가 자기 자신을 향해 부착되어 있기 때문에, 타인을 향해서는 짧은 시간만 관심을 집중할 수 있다. 물론 자신의 존재가치 고양 내지 심리적 만족감을 채우는데 희소가치를 지닌 대상인 경우에는, 고도의 에너지 투여가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대상은 일상에서, 인생에서, 극히 드물다.

자식의 경우, 배우자의 경우는 어떠할까? 자기애인격의 가장 약점은 주로 배우자 관계, 자녀관계에서 발생한다. 사회적 대상들에 대해서는 ‘방어’가 자동작동되기 때문에,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키고, 단점을 최대한 적게 보이려 노력하기에, 사회적 관계는 그럭저럭 능력만큼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가족관계에선, 자신의 단점들에 대한 방어가 작동될 수 없고, 작동되어서도 않된다. 그로인해 자기애인격자는 외부세계에서는 대학총장, 장관, 최고의 권위자로 대우받을 지라도, 가족에게 존경받는 대상인 경우는 극히 드물다.

부모와 자식관계가 않좋은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 그런데 자기애성격의 경우, 가장 중요한 원인은, 자기 자신이, 자식에게 쏟은 ‘정성의 양’이 배우자나 다른 일반 부모에 비해 ‘적은’ 데 기인한다. 가령, 자기애성격구조를 지닌 아버지는, 자신이 자녀에게 잘해준 것들만 기억하고, 무심하게 방치하거나 상처 준 부분에 대해선 금세 ‘부인’되어 망각한다. 그로인해 자신이 지각하고 있는 정성을 쏟은 자식 관계와, 자식이 기억하고 있는 상처입은 썰렁한 부모 관계가 서로 매우 다른 것에 대해, 황당해하며 분노하곤 한다. "나쁜 년놈들 같으니라구, 엉뚱한 것만 기억하고, 내가 쏟은 정성을 다 망각하다니..."

“에미 년이 (못된 애비가) 아이들을 나쁘게 가르쳐서 저렇게 된 것이야” 라며 ‘남 탓’을 한다. 이런 현상은 자기애인격이 지닌 ‘자존감의 상처, 수치감을 견디기 힘들어서 부인’하는 방어기제에 기인한다. 자기애자의 ‘남 탓’은 자기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내고 삶을 향유하기 위한 방어에서 나온 전형적 현상이다.
자신에게 상처 준 과거의 그 대상, 환경 일반, 현재의 대상을 향해 강력한 방어와 자기중심적 주장을 방출하게 되기 때문에, 보통사람이 자기애인격과 온전히 소통하기란 참 간단치 않다. 그래서 그의 내면은 고독하다!

그는 자신의 어떤 예민함과 경직된 방어, 자기중심적 남 탓 때문에, 자신의 가장 소중한 대상들이, 자신과 온전히 관계 맺지 못한 채, 자신과 끊임없이 단절될 수밖에 없었음을 좀처럼 자각하지 못한다. 너무도 마음이 아파서, 자신을 반성해보는 어떤 특별한 경우, 머리로만 슬쩍 자기 결함을 일부 지각하지만, 내면의 연약하고 상처입은 아이 감정 때문에, 그것을 도저히 있는 그대로 대면할 수가 없다. 분석상담 도중에 어쩌다 ‘그것’을 온전히 대면하는 순간...내장이 굳어지고 심장이 답답해지고 머리가 멍해져서...이내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무의식 감정'을 '나'가 감당해내지 못하면, 자기성찰과 '자아 통합'은 좀처럼 가능하지 않게 된다.

이것이 타인의 생명에너지를 사악하고 교묘하게 착취하여 자기 삶을 향유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곤 쓸모없어지면 미련없이 버리는 악성자기애 인격장애(disorder)와는 질이 다른, 개인주의 문화에 내포된 어떤 장점과 문제로 인해 형성되는, 타인에게 피해주는 나쁜 대상이 되지 않으려고 나름 신경쓰는, 보통의 자기애 성격구조(organization)의 어떤 특성이다.

자기애인격을 치료하기 위한 일차 과제는 ‘분열된 무의식에 남아서 삶을 계속 민감하고 억울하게 만드는 상처 입은 아이의 감정덩어리’를, 타인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애써 개발한 잘난 나의 인격부분’과 부단하게 연결시키는 것이다. 그(녀)의 자동방어 때문에 좀처럼 자각할 수 없었던 그의 그림자 부분을, 그(녀)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매 회기마다 조금씩 꾸준히 자각하여 스스로 소화해내게 해주어야 한다.

무의식과 의식 사이의 이 ‘연결’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 연결은 ‘상처 대면을 두려워하는 내면의 민감한 아이’로 인해 전의식에서 자동 차단된다. 그에게는 자신에게 뭔가 비범한 에너지를 줄 수 있거나, 진정성 있는 정성을 쏟는 신뢰할만한 ‘자기대상’이 필요하다. 곁에서 ‘나의 실상을 온전히 바라보게 비추어주는 거울’ 역할을 하며, 수치와 패배감에 휘둘려온 ‘나’가 보지 못해온 ‘또 다른 나’의 잠재능력을 온전히 자각하여 회복하게, 누군가(분석가)가 그의 내면 여행에 함께 참여하며 (양육자가 '그 때' 주지 못한) '지극 정성’을 쏟아야 한다.

그 ‘연결’이 성공하면, 그동안 그를 민감하게 만들었던 무의식의 부정적 감정덩이가 ‘성숙한 나의 인격’과 접촉하면서 한동안 내면의 광풍에 휩싸이며 영웅교향곡이 아련히 들리고 노자, 장자, 부처, 니체, 프로이트, 코헛...이 쓱 지나가고, 눈앞에 배우자와 자녀가 예전보다 생생히 지각되며, 인간을 보는 눈이 편안해지는 상태가 된다.

"이제야 내게 씌어진 저주의 주술이 느슨해진 느낌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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