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드 정신분석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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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코어
관리자(cjlee7600@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17년 06월 14일 20:24 385
서로 다른 주관성을 지닌 개인과 개인이 만나는 순간부터 의식이 어찌하지 못하는 ‘무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미세하고 강력한 운동(충돌/융합/조화/파괴/타협..)’이 작동한다.

이런 사실을 혹자가 알고 있건 모르고 있건 이 ‘사이-무의식’은 태고부터 자연 생명체들 사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존재의 인연을 운명처럼 좌우하는 강력한 힘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인생사의 지독한 꼬임과 풀림이 어떤 원인에 의한 것인지 모른 채 운명(엉뚱한 대상..)을 원망하거나 곤혹스런 사태에 휩쓸림을 반복하게 된다. 그런데 이 (제3의) 사이무의식을 나름 숙지한 사람의 삶은 어떻게 전개 되는가?

한 사례를 통해 이 주제를 곰곰이 음미해보자.

과거에 어느 단체에서 정신분석 강의를 한 학기 하게 되었다. 정신분석을 전공하려는 예비상담사들로 구성된 클레스다. 그런데 주어진 수업시간이 아침부터 강의와 상담 스케줄이 꽉 찬 요일의 야간이다. 보통의 경우 야간강의 있는 날은 주간 스케줄을 비우고 쉬면서 강의준비를 했었기에, 그 학기 수업에 생리-심리적 부담이 느껴졌다. 이런 부담감을 사라지게 하려면 어떤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선생에게 최상의 보상은, 진리에 대한 앎을 갈구하는 명민한 학생을 만나는 것이다.
“내 진액을 아낌없이 물려줄 Platon 같이 진지한 후계자를 만나고 싶다~”

첫 수업날 오전오후 일과를 마치고 기운이 약간 고갈된 상태로 내 연구소에서 한시간 거리에 있는 그 단체 강의실에 들어갔다.
이십대부터 육십대로 보이는 사람이 열 명 남짓 앉아있다. 선생과 수강생 사이 첫 대면.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사람들의 이러저런 시선들이 내 눈과 마주치는 때부터, 무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접속하며 뭔가를 감지한다.

순간 '남의 집에 온 방문객' 같은 느낌이 든다. 학생들의 표정도 무엇을 원하는지가 모호하다.
내 목에서 나즈막한 ‘쉰 목소리’가 나온다.
“이 수업에서 꼭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한마디씩 해보세요.
그것을 얻지 못하면 크게 실망할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해 보세요 ”

사람들의 반응이 뭔가 불편하고 스산하다.
야간수업이라 그런가? 어수선하고 피곤한 표정,

첫 만남의 순간 어떤 기대를 지녔던 선생과 수강생들의 정신이 서로 답답해한다.
"저희는 유명하신 선생님께 힘을 얻는 따스한 말씀을 듣고 싶었는데, 처음부터 저희에게 뭔가를 표현하라 하니 힘들고 당황스러워요~"
보통의 대학원 클레스와 확연히 다른 느낌. 내가 떠안아 돌봐주고 기분 맞춰주며 위로해주어야 하는 엉뚱한 관계 그믈에 놓인 느낌.
“어디 당신의 좋은 에너지를 보여 줘 봐.." 뭔가를 확인하려는 피곤한 눈들..이 지각되더니... 무의식에서 색다른 묘한 소리가 들린다.
“지식을 전해주되, 너무 강하게 짙게 전하지는 말어. 사람들의 기존 정신성을 당신의 무엇으로 바꾸려들지는 말어~”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고는 싶지만, 너무 깊게 흡수하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만들지 말라고? 이 (환각적) 소리가 왜 학생들에게서 들리지? 이 소리의 정체는 내게 금세 파악되었다. 강의를 요청한 그 단체의 장은 과거에 초빙했던 어떤 선생이 학생들 대다수를 자기 집단으로 빼앗아가, 큰 피해를 겪은 상처가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키워낸 학생들에게 좋은 지식을 전하되, 마음을 빼앗아가진 말라는...배신감 상처의 소리가 당황스럽지 않게 이해되었다. 과거에 도움받은 적이 있던 그 분과 좋은 인연을 맺으러 온 것이니, 이 정도는 감수하자는 마음이 들었다.
"어리석은 걱정을 하는군, 정신분석은 내 편 니 편을 가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일 뿐인데..."

그런데 학생들의 뭔가가 내 심정에 거슬린다. 다른 건 다 포용할 수 있어도, 예절이 별로이면서 ‘배우려는 진지한 마음이 안 느껴지는 것’은 감당하기 어렵다. (정신분석은 내담자들의 간절한 요구를 기반으로 비로소 특별한 관계 맺음이 시동되는 학문이다. '능동적 요구'가 없는 대상을 향해 분석가는 무의식에 관한 어떤 지식과 에너지를 먼저 제공할 수도 없고 제공해서도 않된다. )

학기 첫 시간에, 언어적 대화보다 비언어적 움직임이 빡빡하다. 선생의 정신성을 포착하려 힐끔거리는 여러 질감의 눈초리, 표정과 몸짓, 굳게 닫힌 입들. "저 분이 과연 평생 마음을 주어도 좋을 안전한 '내 편'이 될 선생님 맞어?"
상담사를 키워내는 이곳이 언어적 소통의 가치를 자각하고 '진실/거짓'의 냉철한 분별과 그 너머를 추구하는 의미세계가 아닌, 의존할 힘있는 대상에 융합하여 공감받고 위로받고 싶어하는 유아성 인격들의 모임인가? 기대했던 만남과 전혀 다른 곳에 온 느낌이 점점 짙어진다. "내가 왜 구지 이 자리에 있어야 하지?"

(간절함이 않 느껴지는) 학생들 각각이 바라는 내용들을 다 들은 후, 내 안에서 갑자기 예기치 못한 말이 튀어나온다.
“여러분에겐 '하드코어'가 필요한 것 같네 ~ ”

이 뜻밖의 말에 학생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귀를 쫑긋한다. '하드코어'요?
그 말을 재차 들으며, 내 속에서 일련의 기억이 올라온다.

프로이트를 한국의 일반인들에게 처음 소개하며 제법 강렬한 인기를 끌던 십수년 전에, 어떤 시립 성상담센타의 요청으로 ‘프로이트의 성이론’ 특강을 했었다. 그런데 강의를 다들은 성상담사들의 표정이 어둡고 무덤덤하고 실망스러워 보인다. 그런 반응이 당시에는 꽤 뜻밖으로 지각되었다. 왜냐면 당시 프로이드 성이론을 접한 일반인들은, 생전 들어보지 못한 내용에 해방감을 느끼며 신기해하고 흥분하는 반응이 다수였기 때문이다. 자신감에 차있던 나는 속으로 “어, 이 사람들이 왜 이러지?”

기대하는 바가 무엇이고, 뭐가 채워지지 않은 건지 물으니, 서로 눈치를 보고 머뭇거린다. 그러다 한 상담사가 마지못한 무거운 표정으로 말한다.
“이곳은 서울시 전역에서 의뢰된 하드코어 성상담 전화를 받는 곳입니다. 선생님이 전해준 프로이드 이론은, 저희들이 경험한 것과 많이 다르게 느껴져요.”

“어떤 점이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는 건가요?”
“너무 싱거워요 ~”

“프로이트가 싱겁다구요?”
“........저희는요......대부분 상담내용이 .... 근친상간을 이미 겪고 있는 사람들의 소리에요.....엄마가 아들을, 아들이 엄마를, 아버지가 딸을, 딸이 오빠와 아버지를.... 저희는 매일, 정신이 너 무 혼란스럽고 힘들어요 !” (갑자기 울먹인다 )

그 순간, 아, 그렇구나. 저 분들의 몸 표정 반응이 속마음에서 올라온 깊은 진실의 표현이었구나 !
대중에게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을 전하던 유일한 선생이라고 자부심에 젖어 있던 그 시절 처음으로, 프로이트 이론의 한계를 절절히 느끼는 순간이었고, ‘선생’으로서의 내 능력의 한계를 처음으로 씁쓸히 대면했던 희소한 순간이었다.
[그 후 그때까지 한번도 주목하지 않았던 '정신증자의 성심리(하드코어)'를 애써 연구하게 되었고, 반년후 그 성상담센타에 다시 초대받아 가서 곱씹어 전하니,비로소 답답하고 덩어리진 뭔가가 풀린 듯 고마와하는 상담사들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원로 선생이 된 지금에 와서, 정신분석을 전하러 온 어떤 집단과의 첫 만남에서, 정신 깊숙이 박혀있던 그 씁쓸했던 말 (‘프로이드가 싱거워요~. 우리는 하드코어만 접하는 무지 골치아픈 사람입니다..’)이 '무의식이 감지해낸 어떤 이유로' 선택되어, 의식이 아직 잘 모르는 ‘무의식의 메시지’를 수강생들을 향해 내밷게 한 것이다.

이탈리아 정신분석가 Ferro 는, 분석상황에서 나온 모든 이야기들은, 분석가와 내담자 사이의 상호 주관적 관계가 생성해낸, 서로 다른 두 무의식 사이의 접촉에서 파생된 결과물임을 주목한다. 이 메시지는 정신분석 수업상황에서도 상당부분 그대로 적용된다.

특정 년도에 특정 정신상태에서 만난 정신분석 선생(나)과 야간 정신분석 클레스 수강생들 사이에서 어떤 ‘제3의 사이무의식’이 생성되었고, 그것에 이끌려, 십수년전에 있었던 어떤 경험 흔적이 ... 정신 깊은 곳에서 '중요한 뭔가를 전하려고' 기억 표면에로 올라와, '이색적인 말'을 학생들을 향해 표출하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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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학기 내내 나의 목에서는 '여느 때와 달리' ('하드코어'를 감당하지 못해 어둡던 표정의 성상담사처럼) 기운이 탈진된 쉰 소리가 나왔고, 품격있고 감동적인 생각이 아닌 유치하고 부정적 기억들이 자주 올라왔고, 생동감주는 비범한 메시지보다 수강생들의 심리 문제를 민감하게 건드리는 거친 언어가 쏟아져 나왔다.
그 때마다 절반의 수강생들은 마치 프로이드 이론 자체가 자신의 정신성을 상처주고 비하하는 하드코어 자극인양, 일그러진 표정과 성난 눈총을 쏟아냈다.
매 수업마다 폭력배 사이의 기싸움 비슷한 거친 투사적동일시 기운들이 내뿜어져 머리가 수시로 띵했고, 박해불안이 밀려왔다.

그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좋게 변환시킬 수 있는지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뭔가 자존감이 상한 내 무의식이, 그걸 실행하는 걸 좀처럼 허용하지 않았다.
“ 배우려는 기본자세가 안 된 사람들에겐 결코 생명의 진액, 귀한 지혜를 헌신하듯 주고 싶지 않아 ~
나태한 너희를 위로해주어 편안하게 만드는 건 정신분석의 정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 ”

[이런 무드와 마음은, 원인모르게 생겨난 불안과 불편한 증상들로 인해 어찌할바 모른 채 혼자 콤플렉스에 시달려온 영혼들을 회복시킬 비급의 지혜를, 아낌없이 선물하고 싶어하던 평상시 나의 그것과 너무도 다르다. 한마디로, 선생 답지 못한 상태다!
첫 수업 만남 이전부터 그 집단원들의 환경과 영혼을 좌우해온 제3 무의식의 바램대로, 프로이트도 나도, 학생들의 영혼과 깊이 접촉하는 만남을 할 수 없었다.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좀처럼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대는 결코 주인이 아닌 '방문객' 역할을 해야할 뿐임을 명심해야해~"

(강한 개성을 지닌 몇을 제외한 다수 학생들의 정신엔 이 준엄한 암시 메시지가 첫수업 전부터 이미 각인되어 있었고, 그것에 맞게 처신하려 속마음을 자유롭게 표현못한 채 눈치보거나 감추거나 엉뚱한 말로 표출하는 복잡한 현상이 이어진 것이다.)
만남의 첫시간에 이질적 정신성들이 서로 충돌하는 어떤 '사이-무의식 Form'이 일단 형성되면 그순간부터, 나도 그도 더이상 온전한 의지의 주체가 아닌, 모호한 제3의 힘에 끌려가는 무엇이 된다. ]


'이상한 기운들이 오고가고 훼처가다 멈추고 다시 대립하는' 고된 과정을 학기 내내 겪고 난후, 가르치는 활동을 쉬고싶은 마음과 더불어, 지난 30년간 희노애락을 느끼게했던 수많은 수강생들에게 색다른 감정이 밀려왔다.
그동안 과민한 자책감에 괴로워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너무도 고상한 수업 환경에서 지내온 거구나.
진지한 앎의 욕구를 지닌 그 눈빛들, 음성들, 간절한 바램들. 그것에 내재된 고농축 생명 에너지로 인해 그동안 누군가와 깊은 소통을 하고 싶어져 내면세계 탐구 활동을 꾸준히 해올 수 있었구나..


선생의 선생다운 강의욕망과 지혜에너지 상당부분은 비범한 뭔가를 습득해 '진정한 나'를 회복 실현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무의식적 욕망으로부터 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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