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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는 것이 아는 것 아니다
관리자(cjlee7600@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17년 05월 28일 08:07 326
인간에겐 누구나 이러저런 자신모르는 불안들이 있다.

욕구를 제대로 채우지 못한 불만과 감당하기 힘든 자극들로 인한 상처가 있고

태어날 때부터 형제자매보다 온전히 관심 받지 못한 수치감, 억울함, 증오감도 있다.

불안, 상처, 수치심으로 마음이 위축되어 사람을 피하며 사는 사람도 적지 않다.

........

현실생활에 부적절한 불안, 부정적 감정, 망상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내 의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내가 모르는 어느 시절 어떤 상황에서 형성된 내가 통제할 수 없던 ‘그것’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의식·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기에, 정신분석가는 인간에 대해 좀처럼 ‘평가’하지 않는다, 평가를 ‘유보’한다. 보통사람들, 시민운동가, 철학자, 종교가들은 자신의 가치기준에 어긋나는 사람들에 대해 냉혹한 선/악 평가와 인격적 비난을 하곤 한다. 이에 비해 의식 이면의 무의식을 탐색하며 지내온 정신분석가는, 의식세계의 가치기준과 평가들에 덜 억메이게 된다.

심지어 세상으로부터 비난받는 언론에 오르내리는 범죄자들에 대해서조차, ‘평가’하기보다 그가 어떤 심리적 요인들로 인해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 다중으로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는다.

어떤 사람의 내면에 온갖 파괴욕동, 부정적 감정, 반사회적 생각들이 들끓는다 해도, 타인과 사회에 심각한 상처나 피해를 ‘실재로’ 주지 않는 한, 그의 인격에 대해 좀처럼 ‘도덕적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그런데 정신분석학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간 평가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병리적 정신구조와 증상들을 변형시켜 정신기능과 욕망을 회복시키려는 치유목적을 지니기에, 정신분석가는 자신과 타인의 정신형성과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인격 특성 내지 행위에 대해 ‘병리적’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한다.

인간은 출생 순간부터 원초 상태에서 성숙한 상태로 ‘발달’해가려는 타고난 잠재력(본성)을 지닌다. 그 발달 운동을 좌절시키는 어떤 자극과 행동, 관계 흔적, 타자의 욕망은, ‘무의식에로 들어가 평생 동안’ 삶을 온전히 발현시키지 못하게 방해하는 집요한 이물질(에어리언) 기능을 한다. 그것이 인생 행로에 너무도 집요한 악영향을 미처 비극을 만들어냄을 수없이 확인해왔기에, 정신의 형성과 발달에 손상을 주는 모든 관계와 부정적 요소들에 대해서, ‘병리적’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

분석가는, 어떤 사람이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시절에 깊은 상처를 지녀, 사람과의 친밀 관계를 불편해하는 정신성을 지니게 됬을 경우, 그로인해 인간관계가 너무도 미숙해 어떤 결실도 이루기 힘든 상태에 처했을 경우, 그것 자체에 대해, 그것 만 가지고는, 결코 ‘병리적 상태’라는 진단-평가를 하지 않는다.

인간에겐 내면의 부정적 감정, 불안, 상처와 연관된 병리적(방어적, 미숙한) 인격 부분이 있는 데 비해, 사회와 타인과 더불어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건강한 인격조직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내면이 여러 불안들과 망상들로 가득 차 있다 해도, 그가 타인에게 좋음을 주는 어떤 정신성을 개발해,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할 경우, 그의 인격을 병리성 진단언어로 분류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문제는 개인 무의식에 잠재된 미숙한 인격부분이, 불안이, 상처가, 온전히 대면되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그가 어느순간 세상의 중요한 위치에서 활동을 하게 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그 때 의식에서의 중요 역할('성인' 대학생, 직장인, 연인, 엄마, 아버지, 집단의 리더, 고결한 선생,...)과 무의식(해소 못한 유아적 불안, 상처, 부정적 감정 상태) 사이의 괴리가 갑자기 심해지기 때문이다. 어떤 증상, 실수, 사건 사고는 대부분 이 때 발생한다.
"종교가, 교수, 의사, 법조인, 정치가.. 신분으로 어찌 그런 짓을 할 수 가 있어요 ~"
" 저도 모르게 ! '내'가 한 게 아니에요 ~ "

자신의 무의식을 ‘대면’하는 경험을 단 한번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세상에 꽤 많다.
의식에 이질적인 그것을 대면하는 것이 죽도록 싫고 불편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회피하고 살아온 인간들이 꽤 많다. 그로인해 무의식은 더더욱 비대해지고, 의식에 대한 반발이 심해져, 정신의 균형이 갑자기 교란되거나, 정체모를 무드에 빠지게 되고, 불편한 마음 상태에서 벗어나려 바둥되다가 자신모르게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과거엔 별 문제가 아니던 것이, 그가 중요한 위치에 놓이게 되는 순간 부터는, 평생에 영향을 미칠 큰 문제로 부각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의식/무의식 사이가 괴리되면서 일어나는 정신율동의 전형적 패턴이다.

과거엔 칭송받던 인물이 어느순간 국가적으로 비난받는 쓰레기로 추락하고, 종교계, 학계, 정치계, 문화계 유명 인물들의 추락하는 사건 사고 에피소드들이 끊임없이 언론에 보도된다. 그리고 거기에 경멸하는 잔인한 비난 평가들이 오줌똥 갈기듯이 벌레 떼처럼 쏟아진다. 이것이 과연 단지 타인의 문제일 뿐인가?
주목할 점은, 21세기에 상영되는 (오이디푸스왕의 인생 과정과 유사한) 행복과 비극, 성공과 추락 드라마가, 어떤 피하기 힘든 무의식의 힘에 기인한 것인지에 대해, 관심 갖는 사람들이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정신분석이 인류에게 준 새로운 에너지 선물은 "너 자신의 무의식을 보라"로 요약할 수 있다.
이것이 실행되면, 인류의 정신성이, 상호 관계가, 사회 문화의 질감이 확연히 바뀌게 된다.
원초불안, 상처, 부정적 감정들이 부드럽게 변형되고, 타인에 대한 평가가 유연해지고,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괴리가 줄어들어 우발적 충동과 사건 사고가 줄어들고, 인간 관계와 소통의 질이 풍성해진다.
그런데 이것은 상상속의 이상적 그림일 뿐이다. 2백만년전부터 인류의 무의식에 자리한 공포, 불안, 상처, 부정적 감정들의 위력은 거대하기에, 압도당할까봐 두려워 자신의 '그것'을 대면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매우 드믈다. 그래

무의식을 모르면서 인간을 가르치고, 상담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인물들이 메스컴에 화려히 등장하고.

그의 생각과 주장, 설교, 교육, 저술, 정책, 그에게서 나온 모든 것이, 의식과 무의식이 타협하여 생성된 것이건만, 대다수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자신의 부분만 지각하고 표현하기를 원할 뿐, 자신의 미숙함, 불안, 상처, 어두운 부분을 결코 지각하거나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자신의 '그것'에 접속하려할 경우, 기겁을 하거나, 독기를 내뿜거나, 욕을 해대며 공격하거나 회피한다.
‘무의식’을 떠올리거나 대면하게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관계를, 이런저런 이유들을 대며 차단하며 지낸다.

이런 인간이 누구를 가르치거나, 언론에 주목을 받거나, 책을 내거나, 중요한 위치에 오르게 되면 어찌되는가? 그에게서 나온 온갖 것들(기운, 표정, 태도, 몸짓, 말, 작품, 정책...)은 세상에 놓여지는 순간, 선전 매체에 현혹된 주변 대상들에게 접속된다.

그것들 속에는 진솔하게 상징화되지 못한, 위장(변장)된 무의식의 기표들이 섞여 있는데, 결핍이 심한 사람일수록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 채, 유명인의 그것을 그대로 내면에 흡입하게 된다.
세상은 무의식의 불안-상처-미숙함을 최대한 감춘, 의식의 현란한 언어, 이미지, 환상들의 파노라마로 가득한 쑈 무대가 된다.

‘무의식’을 대면하지 않은 채, 자신의 불안, 상처, 부정적 감정, 미숙한 인격을 외면한 채, '그것'들에 의해 자신의 의식지각과 사유가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우주가 어떻고, 인간 역사가 어떠하며 어떠해야 한다는 ‘거대담론’을 세상을 향해 던지는(배설하는) 사람은, 자기자신의 진면목을 회피하고 '관념적 지식의 은신처'에 거주하는 조적방어와 전능망상에 사로잡힌 지식꾼일 뿐이다.
"광대한 사유 세계 속에서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드높은 전망대와 고성능 눈을 지닌 거대한 관찰자다~"

자기무의식을 전혀 모르는 자들의 내면에서 나온 현란한 언어들. 위대하고 매혹적인 생각들.
그것에 눈과 귀와 영혼이 접속되는 순간, 그것에 도취(전염)되어, 힘있어 보이는 타자(메스컴 속 유명인들..)가 제공하는 생각과 욕망을 자신의 생각과 욕망인 양 착각하며 살아가는 ‘as-if’ 모방적 인격이 대량 생성된다.

그런데 사고되지 못한 심연의 진실을 밝히는 ‘무의식’의 학문인 (어색한 불편함을 주는) 정신분석학의 등장으로 인해, ‘자신의 무의식’조차 모르는 사람이 ‘인간 일반’에 대한 학문적(치유적) 가르침을 권위있게 전하는 쑈는, 21세기엔 더 이상 성공하기 어렵다.

[필요 정보가 핸드폰으로 즉각 접속되 불편을 해소해주는 시대의 진정한 권위와 구원 에너지는 앞으로, 결코 정보화되지 않는(자동 방어기제에 의해 만성적으로 차단된) 운명처럼 자리잡은 "무의식의 상처. 불안, 부정적 감정 덩어리들을 (방어를 점진적으로 변형시켜가며) 집요하게 뿌리까지 바닥까지 대면. 대결해 소화해낸 '의외의 제3 인간'에게서 나오게 될 것이다.]

이 시대 지성인들은.. 데카르트-흄-칸트-니체, 나가르주나가 개척해낸 '존재의 심연'을 성찰하는데 있어 인간의 '언어적 사유가 지닌 한계'에 대한 ‘인식론적 반성’ 작업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의식의 경계 배후에 위치하는 ‘무의식’이 나의 사유 활동과 존재무드에 어떤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치열하게 탐색하고 대결해야 하는 심대한 낯선 과제 앞에서, '눈뜬 장님처럼' 심히 주춤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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