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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 냄새
관리자(cjlee7600@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17년 02월 04일 02:43 617
파트릭 모디아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 대한 독서 후 생각나누기 모임이 어제 있었다.

<예술작품에 대한 정신분석> 이론과 실습 체험을 한 분들 중 누군가가, 201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이 책이 무엇 때문에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됬는지 궁금했나 보다. [나중에 들으니, 대학생 아들이 엄마(발표자)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라 권해서, '아들의 그 마음'이 궁금해 함께 읽자 했다 한다. 아들은 엄마에게 왜 이 책을 권한 것일까?]

그런데 프랑스 작가의 이 작품을 읽어가며, 그의 글들이 내 영혼에 진득이 달라붙지 않는다. 눈으로 읽혀진 글들이 영혼의 표면에서 미끄러지는 느낌에 이러저런 생각들이 마음에서 올라온다. 번역이 잘못된 것인가? 그런데 번역자는 눈에 익은 유명인이다. 작가가 33세 때 쓴 글이라서 나이든 내게 어리게 느껴진 건가? 그렇지만 얼마 전 인상 깊게 읽은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30대에 쓴 작품이다.

정신분석 임상을 20년간 해오면서 만났던 격동적 삶을 살아온 분들의 인생담보다 작품 속 이야기가 더 새롭지도 진하지도 않아서 그런 건가? 아마도 그 이유 때문일 것으로 생각되었다. 어떤 내담자의 인생사는 들려오는 그 순간부터 강렬하게 내 영혼을 휘감아 며칠간 정신없게 만들기도 한다. 일상 현실에서는 물론이고 뉴스나 소설에서조차 만나기 힘든,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드라마를 체험한 주인공들이 우리 세상에 적지 않다. 수십년간 삶을 지배해온 자신모르는 무의식의 무엇(충격덩어리)을 쏟아내는 기표들에 익숙해온 내게,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그저 가벼운 스케치 다발로 지각되었을 수 있다.

거기엔 또한 개인의 독서취향이 첨가되 있을 것이다. 내 영혼은 진지한 무드로 뜻밖의 자극을 주면서 심연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텍스트에 끌린다. 그런데 노벨상을 받았다는 이 책은 내용과 구성 형식이 뭔가 가볍고 집요하지 못하다. 단지 마음을 드러내는 방법이 전통 텍스트들과 다른 여운이 남는다. 이 다름의 의미가 뭘까?

책의 뒷부분에 그의 개인사 연대기가 적혀있어 보니, 어릴 때 엄마와 아버지 모두에게서 안정된 돌봄을 받지 못했다는 짧은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음, 그런 개인사와 작품과 작가의 정신성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 이러저런 몽상이 떠오르며, 독서 모임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오늘 작품분석 발표자는 평시에 고집과 자존감이 꽤 쎄다 느꼈는데, 왜 하필 이 책을 선택한 것인지 궁금함을 갖고 참여했다.
모임에서 표현할 말을 염두에 두고 적어둔 나의 첫 감상문은 다음과 같다.


"젊은시절 내가 인상 깊게 읽었던 몇몇 유럽 작가들. '인간'을 바라보는 전통 관점에 문제를 제기하며 '인간의 정체'에 대해 '실존의 물음'을 던진 까뮈의 <이방인>, 레마르크의 <개선문>, 사르트르의 <구토>, 카프카의 <변신>, 사뮤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등등과, 한국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비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들로 구성된' 모디아노의 책은 영혼의 깊이, 진지함의 강도, 독서과정의 흥분도가 많이 떨어진다.
그런데 일반 소설들의 기승전결 구조와 다른 구성 형식, 부담주지 않는 짧은 분량의 에세이 장들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한편의 텍스트를 이루어낸다는 것이 뭔가 특이하다.
작품의 내용보다 ‘형식’에 저자의 정신성이 더 많이 반영되어 있을 수 있다. 이는 마치 꿈의 어떤 내용보다 '형식(구조)'에 꿈을 꾼 자의 주요 정신성이 반영되어 있는 것과 유사하다. 작품의 형식은 작가의 정신구조(성격 유형, 방어 유형, 자아기능 상태)를 표상한다.

책 속의 자유롭게 표현된 '대화체 구절들', 감각인상들에 대한 섬세한 서술과 간간이 노출시킨 내면의 독백들이 어우러짐, 가볍게 흘러가는 자유연상식 전개는, 내가 젊은 시절에 접했다면 꽤 신선했을 것 같다. 그런데 철학 훈련 과정에서 겪었던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고 나 자신을 지탱해주던 주요 신념(선입견)들이 뒤집어지고 해체되는 강한 충격, 카우치 정신분석을 받던 과정에서 밀려든 강렬한 정서 역동들, 내담자의 한 맺힌 인생사를 경청하면서 휘물아쳤던 흥분들을 겪어온 지금의 나에겐, 그다지 특별하게 지각되지 않는다. 자신을 운명처럼 따라다니는 만성 공허감과 불안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과정에서 밀려든 감정들과 세상 인상들을 '어떤 정신 상태'에 억메여 있는 자의 시선으로 수사학적으로 드러낸 정도의 느낌이다.
우리가 의심없이 믿어온 '진리'들의 발생 근원을 추적해가며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는 철학 훈련, 의식이 모르던 사실들을 생생히 직면시키는 정신분석 훈련 과정에서 겪은 예상치 못한 충격 체험들을 누군가가 소설로 언어화한다면, 훨씬 더 파급력을 지닌 작품이 나올 텐데...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자동적으로 올라온다. 이 책이 내게 준 유용성은 어쩌면 글쓰기에 대한 잠자던 욕망과 자신감을 활성화시켰다는 것이다. “이 것 보다는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어~”

그런데, 오후에 예정된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다섯 내담자의 상담스케줄 전에, 가벼운 마음으로 잠시 들린 독서모임에서 의외로 신선한 감성. 직관 기표들이 여기저기서 출렁거린다. 정신에 들어온 인상적인 내용들과 그것에 대한 나의 느낌과 생각을 적어본다.

<오늘 발표자는 프랑스 유학을 한 중년의 여성 철학자다. 평소 그녀는 이따끔씩 '무거운 느낌이드는 화사한 미소'를 짓곤 한다. 지금 그녀는 “내가 왜 노벨상을 받게 되었는지 정말 모르겠다. 그걸 독자들에게 듣고 싶다~!”는 모디아노의 말을 자신의 발표 첫머리에서 모임을 향해 던진다. [마치 자신이 작가의 자리에 위치해 작가 자신이 된 양, 이 책을 읽은 참여자에게 “내 생각을 당신들에게 전하기 전에 먼저, 내 책에 대한 감상을 온전히 내게 전해줘 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도 진정 알고 싶어~”]

그 순간 그녀는, 일반 독서토론 발표자의 행동방식이 아닌, 관습이 요구하는 진행 방식에 저항하는, 관습 규칙에 어떤 가치감. 감흥을 못느끼는, 비사회적(창조적?) 모디아노류의 행동을 하고 있음을 모르는 듯 보였다. 다수의 사람들이 그 태도에 불편감을 느꼈지만, 왠지 그녀를 존중해주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총명하고 여린 소녀-엄마 철학자를 보호해야 해’]에, 모두가 각자의 시선과 속 마음을 기꺼이 자연스레 표현한다. 내가 주목하지 못한 예리한 감성언어들이 뇌와 가슴에 스며들며, 독서나눔의 공간을 가득 채운다.

<열 분의 독자 정신에서 나온 저자분석, 작품감상들> ([ ] 속 표현은 나의 감상이다.)

-[밤하늘] 2차대전 직후에 프랑스에서 출생한 모디아노는 첫 작품 데뷔 이후 50년간의 문인생활에서 세상과의 인터뷰를 단 2번만 했다. 그는 누군가와 말하는 걸 어려워하고 더듬거리고 눌변이며, 말을 할 때 모든 것이 불확실함을 느끼고, 잘못될 것 같은 불안감을 지닌 것 같다. 마치 자기 이름조차도 맞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타인과 유의미하게 관계 맺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이태리 출신 유대인으로 2차대전 중에 유태인 수용소에서 탈출해 불안정한 신분으로 파리에 살며 암거래 등 위험한 일을 자주 했고, 신분노출을 꺼려 가명을 썻고, 늘 불신검문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았다.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모디아노 역시 유명해지기 전까지 여러 가명을 사용하여, 이름이 부정확, 불확실했었다.

엄마는 미모의 벨기에 배우로 파리에 이주해, 전쟁 중에 남자(모디아노의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지만, 생활이 불안정했고, 전국 순회공연을 하느라 아이(모디아노)를 안정되게 돌보지 않고 누군가에게 맡겼다. 엄마는 무뚝뚝하고 냉정한 성격인데, 모디아노는 엄마의 성격 특성을 ‘개 사건’을 통해 비유했다. "애인이 그녀에게 귀여운 개를 선물했는데 그 ‘개’를 돌보기 귀찮아 집에 계속 방치하자, 개가 못견뎌 창에서 투신해 ‘자살’했어요. 엄마는 저에게도 그랬어요.." [작가의 엄마는 자식, 배우자, 타인에게 애정을 줄 에너지가 결핍 고갈된 심한 자기애 성격자로 보인다. 엄마의 이런 특성으로, 작가의 어린 시절 엄마관계 박탈감은 꽤 심각했을 것이다. ]

[엄마 관계 박탈이 심한 자가, 소설을 30권이나 썻다? 이런 다작 현상은 어떤 동기와 어떤 정신성에 기인하는가? 공공적 상황에서 제3자와 인터뷰를 못하는, 피하는 그의 정신성에, 평생에 걸친 글쓰기 작업은 어떤 기능을 한 것일까? 그는 어떤 정신성을 지녔기에, 사회적 인간관계 보다, 혼자 행하는 글쓰기에 몰입하게 되었을까? 이것에 대한 주요 열쇠는 그의 유년기와 사춘기의 개인사 자료와, 망각된 무의식의 흔적들이 표출된 그의 작품에 상당부분 반영되어 있다. 그것을 ‘찾아내 심층 분석하는’ 것은 (작품감상자이자 작품해석가이자 비평가인) 독자의 몫이다.
주목할 또하나 요소는 무의식에 저장되어 평생 영향을 미치는 트라우마 사건들의 유무이다.]

모디아노는 가까이 지내던 하나뿐인 남동생이 10세 때 사망하자 큰 충격을 받은 후, 일반 직업이 아닌 '소설가'가 되었고, 첫 소설 후 십여년간 발간한 작품 모두를 동생에게 헌정했다. [충격받은 그 당시 정신이 감당못해 무의식에 억압했을 '그것'은 과연 작가의 내면에서 온전히 소화되어 극복되었을까? 글쓰기 행위만으로 '그것'이 온전히 성찰되어 변형되는가?] 이 책 출간될 무렵(1978) 10년간 소식 끊고 지내던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이 책을 죽은 동생과 아버지에게 바쳤는데, 그는 아버지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전혀 몰랐다*

-[롤라] 인상적인 첫 문장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를 보며 상징계에 자리잡지 못한 무사회성을 느꼈다. 타인과 유의미하게 관계맺지 못하는 삶, 공허함을 느끼게 하는데, 그것은 '작가에게 영향 미친 아버지 상태를 상징한 듯' 보였다. 알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아버지의 여정, 그 아버지를 애도하기 위한 작품 같다.

-[레이] 눈에 띠는 것은 주인공의 증상 같은 특징이다. 작품 속 주인공은 뭔가를 알 것 같은 시점에서 묘하게도 주위가 시끄러워지거나, 전차가 지나가거나, 안개가 끼거나, 상대의 컨디션이 급히 안좋아지거나 현기증이 생긴다. 어떤 무엇에 의해 방해당하는 현상들이 계속 반복된다. 사람을 만났을 때도 심리적 벽이 있어, 무엇을 물어보려다 마는 느낌이 든다.
이 책 주인공의 직업이 사람 찾는 은퇴한 탐정인데, 기억상실증으로 정체성에 문제를 지닌 그는 왠지 그가 ‘찾아낸 무엇’보다, ‘찾는 과정 자체’에 매료된 느낌이 든다. 아마도 작가와 주인공의 이런 점이, 2차대전 이후 정체성의 혼란 문제로 인해 ‘정체성 찾기’가 중요해진 그가 살던 시대 유럽인에게 어떤 공명을 일으켰기에, 주목받게 된 것 같다.
[노벨위원회가 2014년에 모디아노를 주목하게 된 것은 국제화 환경에서 다민족이 불가피하게 서로 섞이며 영향 미치는 '지금 시대'의 핵심 문제가 '정체성의 모호성'이기 때문이다.]

-[오름] 아버지처럼 자기 이름을 자주 바꾼 모디아노는 “나는 내가 없어진, 내가 내가 아닌 느낌이 든다”는 말을 글과 현실에서 자주 했다. 그의 텍스트엔 특이한 내용이 담겨있는데, 주인공이 어딘가에서 ‘톡쏘는 향기’를 맡으면, 그 ‘톡쏘는 향기’를 현실에서 재현하는 행동을 무심코 하고, ‘초록 눈’을 지각하면, 다른 어딘가에서 ‘초록 눈’을 재현하는 행동이 반복된다. 이는 마치 어떤 무엇(A)을 만나면 자신모르게 그의 정신이 그것(A)이 되고, 다른 무엇(B)을 만나면 다른 무엇(B)이 되는, 경험하는 공간만 지각되고 전체적 시간을 느끼지 못하는 인격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저자는 시간적 연속성을 유지하기 어렵기에, 장편의 책을 쓸 때, 메모지를 여기 저기 사방 벽에 붙여 놓고서, 수시로 떼어내 편집해가며 쓸 것 같다.

[이 말은 모디아노가 젖먹이 시절 젖가슴 박탈이 심해서, 좋아 보이는 누군가를 만나면 그 대상을 영혼 내부에 꿀꺽 삼켜서 그 대상과 닮게 되는 ‘내사형 인격’이라는 말로 들린다. 나와 타자 사이에 ‘경계’가 옅은 사람은, 가까이 접촉한 타인의 정신성에 금새 동화된다. 어릴 때 엄마의 안정된 돌봄을 받지 못한 경우, 좋은엄마 에너지를 지닌 것으로 느껴진 대상을 만나면 그 대상을 내면에 조급히 삼키는 내사 활동이 쎈 정신성을 지니게 된다. 그 내사 작용을 통해, 어린시절에 안정된 외부대상과 내적대상을 갖지 못해 생긴 공허 상태를, 새로 내사한 힘있고 따스한 대상으로 채워서 정체성을 형성하고, 정신을 응집시키는 것이 (잠정적으로) 가능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방식의 정체성 유지술은, 내사한 그 대상이 정신내부에서 주체에 의해 온전히 통합(자기화)된 '내적대상'으로 자리잡지 못하는 부작용을 지닌다. 그로인해 외부대상이 자신과의 관계에서 항상 안정된 관계로 머물러 있어야만, 정체성 효력이 유지될 수 있고, 그 대상이 떠나버리면, '나' 또한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그 경우 정신적 공허감과 자아가 깨지는 공황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안정된 대상을 성급히 ‘내사’하게 되고, 금새 새로운 (잠시 빌려온)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런 사람을 나와 타자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고 정체성이 혼란된 경계선 인격(내사형 인격, 유아성 인격)이라 칭한다. 이런 인격은, 상징계 진입에 실패했기 때문에, 상징계에서 통용되는 시간 연속성 지각이 모호하고, 시간감각이 보통사람과 다르다. ]

- [오름] 주인공(저자)의 자기존재감이 모호하고, 정체성도 모호하게 느껴지는데, 가령, 주인공이 국경을 넘을 때, 검문을 피하려 애인을 두고 기차에서 혼자 내리는 행동은 책임감을 지닌 보통사람과 다르고... 자기를 계속 찾으러 다니는 것 같은데, 막상 자기 실상과의 '직면’은 두려워하는 느낌이며.
‘주소’에 대한 몇 줄 기록만으로 하나의 ‘장’을 채운 것도 특이하다. ‘주소’는 자신이 현실과 관계 맺는 안정된 ‘위치’를 정리하고픈 그에게 어떤 심리적 중요성을 지니는 듯 하다. [‘주소’가 정체성이 모호한 작가에게 정신의 해체, 파편화를 방지해주는 ‘고정점, 매듭점’ 기능을 할 수도 있다. ]

기억을 상실한 주인공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신과 연관해 타인에 의해 호명된 그 ‘이름’이 정말로 기억이 안 난다. 그러다 갑자기 폭발적으로 연상되곤 되지만...혼란스러워한다.
그의 글은 감각적이긴 한데, 정서적인 교감이 거의 안 느껴진다. 가령, 책에서, “나는 저 여자에게 아무것도 원하는 것 없어요! 그러나, 그 여자를 땅바닥에 내버려둘 순 없어 여인숙에 데리고 가요.”

-[바다] 작가가 묘사하는 각각의 경험들 사이에는 존재의 연속성이 부재한다. 그것들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는지 작가 자신도 모호하다. 자기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자기 속으로 깊이 들어가지도 못한 채, 자기 안에 갇혀 있는 자의 느낌이 든다. 작가는 단지 머리 속에 순간 떠오르는 그걸 따라갈 뿐, 정리는 안되고. 어떤 떠오르는 영감, 자기느낌들을 계속 찾아갈 뿐이다.

[ 자극적인 감각언어들을 자주 사용하는 경조증자는, 어린 시절에 미약하게 받은 엄마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새로운 좋은 에너지를 줄 것 같은 무엇(사람, 일, 환경..)을 계속 찾아 다닌다. 그것이 좌절될 경우, 우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마치 자신이 엄마에게서 과거에 좋은 것을 충분히 받은 양 ‘자기애적 환상으로 결핍을 보충’한다. 이런 조적 방어의 댓가로 현실감을 상실하게 되어, 외부세상에서 새로운 대상을 다채롭게 만날지라도, 방어조직 안에 갇혀있기 때문에, 새로 경험한 지각들을 자아에 ‘담아 곱씹어서 통합해내는 기능’이 미약해, 정신의 성장이 막히고, 정체성이 모호해진다.
경계선인격자는 감당하기 힘든 어릴 때 버림받은 상처들을 처리하기 위해 정신을 '분열'시켰기에, 의식이 분열된 무엇에 접근할 때마다 기억이 끊기며, 순간순간 생생한 감각지각들을 할지라도 그것들을 연속성있는 무엇으로 ‘통합’해내기 어렵다. 그로인해 '자신모르는 분열된 무의식'에 정신이 휘둘리는 현상(모호한 정체성)을 반복한다. 뭔가 내면의 느낌을 솔직히 표현하긴 하지만, 그것들에 대한 인지적-정서적 통합-종합 기능이 결여(차단)되어, 온전히 정리된 결실에 도달하기 어렵다. ]

-[고요] 모디아노의 저서를 여러권 읽었는데, <혈통>이란 작품에 젊은 엄마, 젊은 아빠, 주인공 나.와 연관된 가족사에 대한 자서전적 표현이 상당부분 드러나 있다. 가령, 우연히 ‘시간제한등’이 꺼져서, 아버지가 유대인 수용소를 탈출해 파리로 와서 엄마를 만나 결혼해 ‘나’가 출생했다는 말이 나온다. 그의 출생 과정은 뭔가 극적이고 불안정하며, 유년기 역시 엄마관계와 아버지 관계 모두에서 불안정한 돌봄 환경에 놓인다. 그로인해 성년이 되어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정말 느끼지 못한다. [“‘나’가 없어요~. 느껴지지 않아요”]
[아울러 유아기에 양육자가 안정되게 함께 있어주지 못했기에, '대상항상성'(object constancy) 형성에 실패하여, 접촉하는 대상 일반에 대한 항상된(안정된, 연속성있는) 지각과 느낌을 갖지 못하게 된다. 그가 지각하는 대상들은 오늘 생생하다가도 얼마후 다르게 지각되거나 덧없이 사라질 뿐이다.]

-[앤] 심리학자 에릭슨은 아버지가 아주 어릴 때 사망해, 아버지가 누군지 몰랐는데, 학교에 들어가 오랜기간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다. 그때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정체성의 발달 과정’을 평생에 걸쳐 연구했다. 모디아노 역시 ‘나를 찾는’ 소설을 수십년간 반복한 것은 에릭슨처럼 어린시절 [그리고 10세 때] 상처가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가 쓴 30권 작품들은 내용들과 결론이 대체로 비슷하다. 그는 초기에 쓴 책 내용을 자기복제해서 이후 책에도 계속 사용하고 있다. 너무 심해 양심이 없어 보였다. 그의 주제는 ‘정체성 찾기, 자기복제, 익명, 추리’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오늘의 나는 내일 확 바뀔 수 있다”는 말을 종종 했다.
아버지처럼 그도 가명을 여럿 가졌고, 이것이 과연 ‘나’의 인생일까? 의문을 갖기도 했고, 아이의 마음처럼 뭔가가 생생하다가 시간 지나면 기억이 계속 지워지는 상태를 반복했다.
그에겐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오늘의 가치와 의미와 생생한 기억은 폐허가 된다.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야만, 내가 존재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를 기억나게 할 안정된 대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을 찾아, 로마로, 외지로...계속 떠돈다.

-[우주사랑] 책 중간의 이 귀절에 작가 마음의 핵심이 담겨 있는 것 같다. " 내가 '페드로'라 불렸고, 저녁마다 이곳으로 돌아오던 시절은 언제였던가? 나는 이 건물 입구와 커다란 신발 털개, 회색의 벽들, 구리로 된 둥근 천장을 알고 있었을까?...전에 내가 하던 몸짓을 되풀이해보고 옛날의 그 도정을 다시 밟아보기 위해 그곳으로 다시 올라가보고 싶었다. 그 건물들 입구에는 아직도 옛날에 습관적으로 드나들다가 사라져버린 사람들이 남긴 발소리의 메아리가 들릴 것 같다. 그들이 지나간 뒤에도 무엇인가가 계속 진동하고 있는 것이다. 점점더 약해져가는 어떤 파동, 주의해 귀를 귀울이면 포착할 수 있는 어떤 파동이. 따지고 보면 나는 한 번도 페드로 였던 적이 없었는지 모른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파동들이 때로는 먼 곳에서, 때로는 더 세게, 나를 뚫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차츰차츰 허공을 떠돌고 있던 그 모든 흩어진 메아리들이 결정체를 이룬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였다."

-[민들레] 책을 읽으며 조각꿈들을 계속 이어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하나의 정체성을 갖고 평생을 살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고, 작가가 매순간 글을 쓰는 것은 조각꿈이 일상처럼 되는 삶 같았다.

-[다니엘라] 주인공은 (어린시절 애타게 바랬던 그) '엄마'를 찾으러 가는 것 같다. 찾아갈 수 있는 것처럼 시도하지만 찾을 수 없는 것.

-[발표자 ‘밤하늘’] 참여자들의 말들을 다 들은 후에야 비로소 준비해온 독후감 기록을 꺼내 발표를 시작한다. 그녀는
모디아노의 '감각언어'에 공명하는 독자로서의 가장 신선한 메시지를, “젊은 시절 유학했던 파리를 15년만에 방문했을 때 빠리가 풍기는 독특한 '냄새'에 몸이 짙게 반응했고, 그것은 틀리기도 하고 속이기도 하는 생각들과 차원이 다른, 거부할 수 없는 무엇이었다.”라는 언어로 표현했다. 나는 그녀가 무심코 전한 파리에서 유학하는 대학생 ‘아들의 말’에 필이 꽂혔다. 엄마는 파리에
“엄마 맘대로 왔다가, 엄마 맘대로 돌아가네”
[“늘 '어떤 생각'에 골몰해 순간순간 자식과의 감정접속이 끊기곤 하는 딴세상에 살고 계신 고집쎈 엄마야~”
(철학자는 자신모르게 가족이 아닌 '사유 세계'와 결혼한다.)]

모디아노가 기획한, (은퇴한 탐정인 주인공이) 기억상실자이자 기억추적자가 되어, 단서가될 흔적들을 추적해 ‘자신의 정체'를 발견(기억)해내려는 과정은 성공하는가? 모디아노에겐 한편으론 기억을 되찾고 싶어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기억상실을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어 보인다. 아마도 (너무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던 어릴적) 부모에 대한 무의식의 양가감정 때문으로 추정된다.
가령 책의 첫 귀절인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그는 '타인의 기억을 통해' 나를 찾아가는데, 나를 기억해줄, 중요한 증인들이 각각의 이유로 사라지면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방해된다.
[신경증자는 '숨겨진 진실을 명료히 밝히고 싶어하는 강한 욕구'를 지니는데, 무의식의 어떤 복합감정(외디푸스 콤플렉스) 때문에, 정작 '그것'에 가까와질때마다 쓱 비껴가거나, 모르고 지나치거나, 그것에 도달하는 것을 지연시키거나 방해하는 내적 리듬을 <자신모르게> 반복한다. 다수의 철학자 역시 의식 배후에 묻혀있는 '감정의 진실'에 대해 유사한 태도를 보인다.]

텍스트를 서술하는 <화자는 ‘나(저자)’인 동시에 (저자가 어린시절 자신모르게 동일시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나치 점령기의 파리에서 말소(죽임)당할 위험에 처한 유대인, 무국적자, 가짜 신분증명서를 지닌 자 였다. 즉 저자의 정체성을 보증해줄 아버지, 엄마 자체가, 상징계 내부에서 안정된 자리를 갖지 못한 아웃사이더였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모디아노를 남겨두고 어딘가로 가버리곤 했고, 엄마 역시 수시로 그랬었다.
그에겐 덧없이 사라지곤 하는 사람보다 지속성을 지닌 대상 (건물, 거리...)을 통한 자기 확인이, ‘나’를 확인하는 더 안전한 수단일 수 있다.
[밤하늘의 이 말에, 15년만에 방문해 지각한 '빠리의 냄새'를 통해 '청춘시절의 나'에 대한 기억을 되찾은 듯 흥분하는, '나에 대한 기억 흔적 찾기를 시도한 작가의 심정'에 공명하는 열쇠를 찾아낸 듯한 뿌듯해함이...비로소 청자로서의 내게 전해진다.]

[.....며칠 후 게시판에 올려진 밤하늘의 발표 후기글을 보니 거기에, '잃어버린 나'를 찾게 해줄 뜻밖의 열쇠가 담겨 있었다. 그녀가 이 책을 통해 상기하게 된 '빠리 냄새의 감춰진 의미'는 오직 그녀의 기억연상을 통해서야 비로소 타인에게 읽혀질 수 있다. 그 기억연상은 뜻밖에도, '30대 중반무렵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그녀가 온전히 감당해낼 (떠나보낼) 수 없었던, 어릴 적 아버지와의 정겨웠던 추억과 서운했던 감정이었다. "아버지, 당신의 죽음은 사실이 아니에요~내가 당신을 미워해 잠시 눈앞에서 사라졌을 뿐이에요~저를 벌하세요~" ...갑자기 밤하늘이 힘주어 뱉었던 어떤 말이 허공의 중심을 가득 채운다. <이 책을 서술하는 자는, 작가 자신인 동시에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아, 밤하늘의 평소 '무거운 미소' 표정의 의미가 이거였구나! 고집쎈 남성성과 소녀의 미소. 그것은 소녀 밤하늘인 동시에, 그녀가 떠나보내지 못한 채 가슴속으로 삼켜 아무도 모르게 함께 지내온, 고집쎈 (죽은)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녀는 과연 온전히 이세상 사람일까? ]


상담시간이 다가와서, 발표자의 발표를 다 듣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문학술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독서나눔 모임이 '작품과 작가'에 대한 심층 이해에 꽤 많은 유익함을 줄 수 있겠구나~!하는 (열 종류 악기-연주자가 발산하는 협주곡을 들은) 그득한 느낌과 더불어, 시간이 있었다면 좀더 깊이 진입하는 대화를 했으면 좋을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다수에게 짜증 반응을 유발한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은) 작품을 통해서도, 이런 풍성한 독서 나눔이 가능했다는 것이 신기하다. 아래 주제를 여럿이 함께 음미하면 모디아노의 무의식에 짙게 공명하며 넘어서는 새로운 무언가가 더 나올 것 같다.

-[나] : 타인의 기억에 의존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지각하고 찾아가는 과정이 결코 완전할 수 없음을 드러낸...모디아노의 텍스트는...그의 성격 특성의 반영일 뿐인가? 아니면 과학기술의 고도발달과 정보화 문화에서 인터넷과 언론으로 홍수처럼 쏟아지는 거부하기 힘든 수많은 정보기표들에 정신이 영향 받으며, 그때그때마다 자신에게 에너지를 줄 것 같은 대상(인간, 사물, 정보..)을 재빨리 흡입해 정신을 안정화시키는 생존술을 취하는 게 효율적 선택일 수 있는 현대인의 보편실존을 반영한 것인가?

'내가 없음'을 반복해서 표출하는 모디아노는 어떤 정신성을 지닌 사람인가? 그는 제임스 조이스처럼 '글쓰기를 통해서야', '지각(a)과 지각(b) 사이, 단어와 단어 사이를 연결해주는 고리들이 모두 파괴되어 세상과 '나'에 대한 (종합-응집된) 기억과 의미들이 덧없이 사라지고 망각되는 현상들', 정신증적 붕괴 위협과 만성적인 해체불안-멸절불안을 방어해내는 ordinary psychosis 정신구조를 지닌 예술가인가? '대상항상성' 결여로 인해 타인들의 끊임없는 주목(기억, 관계)를 통해서만 '나'를 지각(회복, 유지)할 수 있는 ‘정체성 혼란’ 문제를 지닌 (에너지 주는 주요 대상이 바뀔 때마다 '나'의 정체성이 새롭게 reset 되어 기존의 나는 사라져버려 '연속성있는 나'를 갖지 못하는, 든든한 누군가가 없을 땐 '나가 안느껴지는') 경계선 인격인가? 마음이 끊임없이 새로운 에너지 자극들을 향해 떠돌면서 보통의 자극들이 주는 평범한 감각인상들을 섬세하고 화사한 감각언어들로 미화시켜 어릴 때 애정을 덜 받아 '암울했던 나'를 (30권의 몽환적 책들을 통해) '생생한 나'로 환상화하려드는 조적 방어를 지닌 조증 인격, 친밀관계 불안 혹은 나의 문제점이 세상에 노출되는 불안 때문에 밀도있는 인터뷰를 회피하는 분열성인격, 자기애인격인가?

개인주의화된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오늘날, 하나의 개인일 뿐인 어떤 작가의 마음상태에 대한 '정확한 인식' 노력은 더이상 가치있는 활동으로 주목되지 않는다. 작가가 어떤 동기로 이 책을 썼는가를 엄밀하게 규명하려는 노력 또한 무의미하다. 현대인의 관심은 어느덧, 개개인의 독자가, 어떤 작품(텍스트)에서 어떤 종류의 에너지와 즐거움과 의미를 느끼고 얻을 수 있는가에 집중될 뿐이다.

꿈의 무의식적 의미에 대한 정신분석적 해석을 생생히 체험한, 자유연상이 일으키는 뜻밖의 진실 현현을 체험한 작품분석모임 참여자들에게, 모디아노가 보여준 자유연상적 글쓰기 '형식'을 활용하여, 그가 반복해온 무의식의 굴레를 넘어서는, '접근을 허용치않는 무의식의 상처'에 대한 집요한 대결 흔적을 담고 있는, 현대문화의 모호한 병리성에 대한 파격적 분석을 담고 있는 더 매력적인 텍스트 작업을 모색할 수는 없는 걸까?

[아들은 왜 하필 이 책을 엄마에게 권했을까?
'파리 냄새'를 묻어두고 살아온 중년의 엄마 철학자'는 '아들의 그 마음'을 감지해 냈을까?
그녀는 진정 자기 자신으로 살아온 걸까?
"(어린 아들인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무엇에 대한 생각에 종종 빠져계시던 (철학자) 어머니,
(당신자신의 모습이자, 당신과의 접속이 끊겨 혼돈스럽던 제 심정 느끼시려면) 부디 이 책 주인공(저자)의 마음을 꼭 찾아 내셔야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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