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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이무의식
관리자(cjlee7600@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17년 01월 09일 10:01 523
얼마 전부터 외로움이 밀려든다. 시간이 지나도 그 강도가 점점 짙어진다.
물방울처럼 외로움이 가슴에 뚝뚝 떨어진다.

갑자기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동네 아저씨 할아버지가 된 느낌이다.
누구도 가보지못한 심층 진리를 드러내려는 강한 욕망과 자부심을 지녀온 내가 어쩌다 이리된 거지?
나이들면 외롭다는 게 이런 거였나?
모든 정신현상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는 법. 이 돌연한 감정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졸업 40주년 행사에서 몇십년 만에 만난 고교 동창들이 몹시 반가워 여러 번 교류했었다. 어느덧 대다수가 직장에서 은퇴해서 어쩌다 모임에 가면 뭐하고 지내는지 더이상 서로 묻지 않는다. 명암이나 연락처도 주고받지 않는다. 명문학교 출신임을 자부하며 몇 년 전까지 사회에서 명성을 떨치던 자들이 이젠 더 이상 과거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고, 현재 생활이 타인에게 알려지는 걸 어색해 한다. 새로운 활동을 도모하려는 욕망이 현실에서 여러 번 상처입은 듯 무겁게 가라앉은 모습들이다.

정신분석에서는 ‘지금 여기’가 인생의 모든 가능성이 열리고 닫히는 시공간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 흔적들은 ‘현재’ 어떤 정신성으로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의해 그 의미와 질감이 획기적으로 변화된다. 과거 직업에서의 은퇴는 ‘리비도가 남아있고, 자기분석이 가능하다면’ 그동안 못해온 새로운 삶을 개발 향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힘들어하는 사람을 만날 때에 무심결에 작동하는 분석가 심정에, 상대가 모르는 그의 무의식 자원을 이리저리 탐색해, 삶을 새롭게 일으킬 어떤 길을 전해본다. 반응이 개인마다 각양각색인데, 다수가 새로운 삶의 시도를 체념한 채, 과거시절 영화가 사라진 외로움을 그냥 견디는 모습이다.
"마누라도 자식도 사위녀석조차 더이상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밖에 나가면 더더욱 그렇고 ~ 이젠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래야 모두가 편해져~ "

사회적 직업에서 은퇴한 동창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그들 내면의 깊은 외로움이 내 속에 잠재된 유사 감정을 건드렸거나, 내 영혼에 묻어온 것인가?

어떤 점에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과 차별되게 외로움에 대처하기 위한 일련의 새로운 행동들이 몇 달 간 이어졌다.
정신분석 강의 클레스를 늘렸고, 클레스 참여자들과 좀더 능동적인 교류를 하였고, 지난 십수년간 억제해온 종강 뒷풀이 모임에 참석해 담소를 나누었고, 정신분석 스타디 모임도 하나가 아닌 여럿 만들었고, 과거엔 선별해 거부하던 외부특강 요청도 마다하지 않고 했고, 과거엔 다른 분석가에게 소개하던 특정 유형의 내담자도 직접 수용하고,...

그런데 은퇴자의 우울한 허(전)함 무드에서 벗어나려 몸이 피곤할 정도로 사회활동을 했건만, 내면의 외로움이 좀처럼 옅어지지 않는다. 어 이상하다! 과거엔 이러지 않았는데...

여느 때의 나에겐 고독한 기분이, 혼자만 있는 시공간이, 비범한 창조에너지를 응집해 발산하기 위해 필요로하는 필수 배경 무드였다. 중요한 강의를 하기 직전에 늘 혼자만의 사색 시간을 습관으로 지녀왔던 나, 신선한 글을 쓰고픈 욕망이 들 때면, 늘 고독한 무드 속에 얼마간 뭍혀 지내곤 했던 나. 고독한 자를 존중하고 고독을 귀하게 여겨왔던 나.

그런데 언제부턴가 가슴 속에 밀려온 그 ‘쓸쓸한 외로움’은 내가 아껴온 ‘소중한 고독감’과는 질감이 매우 다르다. 이것은 흥분스런 대상을 한껏 껴않는다 해도 좀처럼 사라질 것 같지 않은, 속에서 메마른 냉기가 올라오고 오장육부가 져린 외로움이다. 어. 내 정신의 바닥에 이런 정서가 수십년간 숨어있었단 말인가?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

독신으로 사는 장년의 철학자 후배가 문득 떠올라 만나서 묻는다.
“나이 들어 혼자 살면 외롭지 않아? 요즘 내겐 외로움이 밀려오네.”
“어, 평소의 형답지 않게 무슨 외로움 타령이야
이 나이에 형만큼 심신이 풍요롭게 사는 사람이 주위에 몇 없건만...
나는 지금 죽어도 미련 없어요. 그동안 하고픈 것 원 없이 하고 살았잖아...”

세속의 출세와 무관하게 ‘원 없이 자유롭게 사유’하고 표현하며 살았음을 자부하는 그의 모습에서 후광이 느껴진다. 겉모습은 담배연기에 찌든 노숙자 디오게네스인데, 실존의 외로움을 곱씹어 극복해낸 승리자 기운이.
개성 있는 독신 철학자를 만나 교류하니 외로움이 한동안 잠잠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생명의 윤기가 사라진 메마른 외로움이 다시 밀려든다.

혹시 가족관계가 소원해서인가? 하는 생각에 배우자와 깊이 대화하고 형제를 만나 식사를 하고, 분가한 자식을 만나 담소를 나눈다. 그런데 만나고 헤어진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외로움이 또다시 고개를 든다.
이상하다. 하루에도 수십명의 사람을 만나서, 보통사람보다 깊은 마음 소통을 하고 있는데, 외로움이 느껴지다니, 내가 지각 못한 그 원인이 무엇인가?

심신을 순환시키려 조금 한적한 수영장을 찾아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본다.
맑은 수영장 물은 종종 마치 자연의 자궁 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물세례 느낌을 주곤 한다.
수영을 하면 머리 속에 막혀있던 덩어리 감정들이 헤쳐가는 물살에 씻겨나가는 느낌이 든다.
가벼운 고독을 즐기곤 하는 나에겐 수영하는 시간이 내게만 들리는 음악 감상 시간과도 같다.

어. 그런데 수영장 물속에 서있는데, 고독과 다른 짙은 외로움이 울컥 밀려든다. 심지어 물속에 머리를 담그고 앞으로 훼처 나가는 동안에도 외로움이 아련히 뒤쫒아 온다. 아, 이 정도면 꽤 심각하구나!
그 순간 홀연 어떤 모습과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서 번득이듯 밀려든다.

아아. 그래 그거 였구나!
물방울처럼 뚝뚝 떨어지는 짙은 외로움의 뿌리가 비로소 내게 정체를 드러낸다.
오십이 되도록 친구도 애인도 없이 혼자 버티며 살아온 내담자 ‘외롬씨’와,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었던 외로운 운명을 절절히 원망하던 노년 내담자 ‘한탄씨’가, 물속에 담긴 내 머리 속에 중첩된 모습으로 출현한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메마른 외로움을 참으며 버텨온 외롬씨와, 원인모를 외로움을 반복해온 한탄씨가 소화하기 힘들어 무의식에 묵혀오다 상담가를 만나자 비로소 밖으로 배출된 감정덩이가 어느 순간 내 가슴속 깊이 들어온 것이다. ["내담자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강렬한 감정, 환상)은 분석가에게 침투되어 실재로 경험된다."]

그것이 은퇴해 외롭게 지내는 동창들에게서 묻어온 정서와 혼합되어, 그 실체가 모호한 상태로 잠복해 있다가, 이제야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 그동안 누군가와 한번도 접촉되지 못해온 무의식의 그 감정덩이가, 상담자인 내게 옮겨와 아기 때 엄마가 담아주지 못한 그것을 제대로 감당해 달라고 절절히 호소하고 있구나~ ("외로워 죽~겠어도, 차마 죽을 순 없어 이날까지 마지못해 살아왔어요...왜 이렇게 살 수 밖에 없었는지 그거라도 죽기 전에 꼭 알고 싶네요...")

간과 심장을 울렁거리게 했던 그 씁쓸한 외로움이 바로 화사하게 미소 짓던 외롬씨의 애타는 마음, 노인이 된 한탄씨의 하소연하고픈 그것이었구나
이것은 거부하거나 피할 수 없는 나의 숙제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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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하는 물속에서 일어난 마치 깨어있는 상태로 꿈을 꾸면서 생생히 대면한 듯한, 외로움의 실체를 자각한 그 순간부터 어느덧 시간이 꽤 흘렀다. 이제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픈 짙은 외로움이 더이상 밀려들지 않는다. (엄밀히 되세겨보면, 피할 수 없는 숙제구나~라고 능동적으로 마음먹던 그 순간부터 외로움의 질이 변화됨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그 강력했던 메마르고 습기찬 외로움이 생생히 느껴지지도 세세히 기억나지도 않는다.)

지금 돌이켜보니 외로움 증상이 생기기 직전 무렵 여러 시공간에서 만났던 대상들 중에 놀랍게도 뼈속까지 외로움을 호소하던 사람이 여럿 더 있었다. 우연하게 운명처럼 만난 그분들이 억압해온 무의식의 강렬한 외로움 기운들이 연이어 나의 심신에 침투해 들어와...평상의 정신이 그것을 감당해내던 한도를 넘어서, 한동안 자아기능 저하상태, 과부하 감정 상태에 처했던 것이다. 다행이도 평시의 자기분석 습관과 위기 순간에 무의식에서 심연의 지혜를 전하는 영혼 불꽃이 작동하여 '그것'을 소화해낼 수 있었다.

무심코 접촉해 서로에게 옮겨지는 자신모르는 무의식의 기운들
한동안 힘들었지만, 오래 꼽씹어 벗어나고 보니, 귀한 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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