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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좀비영화의 텍스트무의식
관리자(cjlee7600@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16년 10월 12일 16:25 504
천만관객이 보았다는 연상호 감독의 영화 <부산행>과, 같은 주제를 다룬 <서울역> 을 어제 보았다.

과거에 천만관객 운운하는 영화들을 보았을 때는 오락 느낌만 받았는데, 이 좀비영화는 감독이 지닌 문제의식의 여운이 길게 남는다.

21세기 한국에서 좀비 영화의 어떤 요소가 무려 천만 한국인의 마음을 끌리게 만들었을까?
<사이비> <돼지의 왕>에서 현실 문제를 진지하고 강렬한 무드로 표현해온 40대 초반 개성파 감독 연상호에게
좀비란 무엇인가?

열차승객들이 돌연 좀비로 변질되고 오직 두 사람만이 극적으로 생존하며, 한국 대부분이 흉측한 좀비들에게 전염. 점령되고, 오직 일부 지역만이 ‘인간 거주지’로 남아있는 작품 속 상황은 무엇을 뜻하는가?

영화, 작품에는 꿈에서처럼 일상현실에서 볼 수 없는 신기한 이미지 장면들이 등장한다. 정신분석이 주목하는 것은 그 이미지들 자체가 아닌 그것 배후에 숨겨진 메시지다. 의식의 눈으로 뻔한 의미를 지닌 영화는 시시하고 지루하다. 그런데 <부산행><서울역>에 등장하는 좀비와 인간 기표들이 펼치는 장면들은 보는 내내 왠지 시시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감독이 다루는 주제가, 그 어떤 전문가들도 결코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우리 시대 현실의 곤혹스런 문제를 찌르고 있기 때문이다.
“어, 좀비가 어느덧 우리 삶이 더이상 외면하기 힘든, 외면하면 큰 탈이 날 수 있는 핵심 주제구나~”

<부산행>에서는 뜻밖에 발생한 감정통제 불능 증상인 전국의 폭력사태와 좀비바이러스의 근원과 해결책을 알지 못해 당황하다가, ‘돈’을 다루는 펀드메니저 집단이 돈벌이를 위해 방송에 뿌린 거짓선전을 통해 바이러스가 유포되었음이 뒤늦게 발견되어 탄식하는 펀드메니저의 통화 내용이 나온다. <서울역>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관심받거나 존중받지 못한 채 무시 회피 방치되다 사망한 노숙자에게서 좀비바이러스가 시작된 걸로 묘사된다. 아울러 흉물스럽고 비천한 좀비가 우리 현실에 출현하게 된 숨겨진 배경에는, 청춘과 인권을 돈버는 활동에 바치게 강요하는 가짜 '아버지'들('아버지'로 호명되는 포주, '겉'과 '속'이 너무도 다른 엉터리 권위자들,,,)과, 돈을 그 무엇보다 우선가치로 여기게 조장하고 만연시키는 사회문화구조가 있음이 영화 장면들 사이사이에 간헐적으로 암시된다. 그런데 이런 환경에서 우리 모두는 도망가거나 벗어날 수 없다.

현 시대와 사회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의 정신을 좀비로 변질 전염시키는 병인(病因)은, 우리자신과 너무도 이질적인 괴물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감을 유혹하며 전통 가치들과 도덕감을 흐믈하게 해체시키는 상업주의 문화와, 그 문화에서 소외된 낙오자들의 분노에서 나오며 나올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가 영화 사이사이 발송된다.

좀비는 반성적 사유능력과 타자를 배려하는 애정감정을 상실한 존재다. ‘인간미를 지닌 잘사는 듯 보이는 멋진 인간’을 보면 시기심과 파괴욕구가 발동하여, 정신없이 달겨들어 파괴하고 싶고, 자신과 동일한 영혼 없고 사랑을 못느끼는 추한 존재로 만들고 싶어져 발광한다. 타자로부터, 환경으로부터 뜻밖의 황당한 상처를 겪은 인간은, 안전히 생존하기 위해 타자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상처입은 상태에 머물다보면 무기력해지고 세상과 인간일반에 대해 괴리감이 느껴지며, 따스한 감정이 마비된다. 나아가 불행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행복하게 살아가는 인간을 보고 싶지 않아, 모두 없애고 싶어지고, 상처에 꽉 달라붙은 부정적 감정에 종속되어 반성적‧주체적 사고를 상실하게 된 인간....이 곧 우리시대의 좀비인 것이다.

영화 속의 좀비는 열차의 <문>을 열지 못한다. 원시시대부터 현재까지 각 민족의 신화와 꿈에서 ‘문’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거나,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거나, 성숙한 정신성을 얻기 위한 입구를 뜻한다. 아이가 소년으로, 소년이 성인으로 변신하려면 험난한 시험과정 ‧ 통과의례를 견뎌내야 한다. 이 과정을 견뎌내지 못해 문을 통과하는 체험을 하지 못한 인간들은 ‘문’을 여는 능력을 지니지 못한다.

좀비는 또한 '어둠'속에 있으면 방향감각을 상실하여 무기력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 상태는 보편적 진리가 부재하여, 삶의 안정된 목표를 제시하지 못하는 현대문화 환경에서, 정체성의 혼란과 대상항상성 결여로 방황하는 (경계선 인격자로 변질되어 가는) 현대인의 병리상태를 드러낸다.

이 점에서 좀비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타자일반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책임 있게 해낼 수 있는 정신능력 습득에 실패한 존재다. 주관적 욕구세계에 함입되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조화롭게 관계하는 마음능력을 키워내지 못한 채, 자신의 기쁨과 이익을 위해 타인이 지닌 좋음을 표적 삼아 본능적으로 달겨 들어 마음껏 뜯어먹고, 타인의 생명에너지를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케 하다가 에너지가 고갈되면 팽개치는 악성자기애성격자의 상징이며, 군중심리에 휩쓸려 생각없이 날뛰는 '대중'들의 표상이다.

좀비는 전염력이 강해, 좀비인줄 모르고 가까이 하다가 좀비에게 물리면 ‘인간’이 좀비로 변질된다.
원시인의 사고관에 의하면, 가까이 있는 영혼과 영혼은 서로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가령, 나쁜-저급한 영혼과 접촉하면, 그 순간 보통사람의 영혼은 나쁘게-저급하게 변질되거나, 기쎈 타자의 영혼에 지배당하게 된다. 우리 시대 우리 사회에서 보통사람들의 영혼을 망가진 상태로 전염시킬 정도의 저급하고 강한 기운. 에너지는 어디로부터 오는가?

연상호 감독은 그 근원을, ‘돈’에 제1가치를 부여하게 만드는 이 시대 자본주의 문화와 사회구조. 그것에 정신이 깊이 물든 자본가집단과 '생각없이' 그들의 명령에 복종하는 하수인 집단들(펀드메니저, 포주, 상인, 운동선수, 군인, 보통사람들..)로 본다. 아울러 이런 사회제도권 진입에 실패한 부적응자들과, 그들을 경시하는 사회분위기, 그 사회분위기에 전염되어 그들을 회피하고 경멸하는 일반인, 점점 해체되어 가는 한국 가정의 부부, 부모자식 관계들. 감정 소통 없이 명령과 지시에 따를 뿐인 위계적이고 사무적인 사회제도 등이 <부산행><서울역>의 배경 이미지로 등장한다.

핸드폰과 컴퓨터로 외로움을 달래고 호기심을 채우는 개인주의화된 정보화 시대에서, 천만 관객은 좀비영화의 표면에 드러난 이미지들과 말들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연상호 감독이 숨겨놓은 승부수는, 편안히 영화를 즐기는 천만관객 바로 너희가 더 이상 도망갈 마땅한 환경을 찾지 못해, 좀비가 될 수밖에 없는 예비좀비들이라는 것을 전하는 것이다.
“단단히 준비하지 않는다면, 너희 중에서 누군가 구원자가 나오지 않는다면, 너희 대다수는 곧 부산행 열차 안밖에 등장하는 괴상한 좀비떼가 될 수밖에 없단 말이야~”

그런데 그의 핵심 메시지가 과연 관객에게 전달이 되었을까?

영화는 꿈처럼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소망을 환상으로나마 충족시키는 소중한 심리적 보상기능을 한다.
관객은 좌절되고 억압된 소망을 잠시나마 해소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고 어떤 영화를 선택해 감상을 한다.
그런데 문제의식이 깊은 감독이 자신의 무거운 메시지를 작품에 너무 많이 적나라하게 드러내면, 관객의 마음이 무거워지고 버거워지고 질리게 된다. 그런 영화는 일만 관객을 모으기조차 어렵다.

그래서 현명한 예술가는 작품을 만들 때, 텍스트 표면에는 가벼운 메시지와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깊고 무거운 메시지는 금새 알아채지 못하게끔 간간히 짧게 집어넣어...무의식을 슬쩍 건드리기만 한다. 그래서 어떤 작품의 메시지와 질은 표면내용보다 ‘남겨진 여운’으로 판별하는게 보다 정확하다.

영화 속 장면들은 우리가 자면서 생생히 지각하는 일련의 꿈이미지와 유사하다. 보통 사람은 자신이 지각한 자기 꿈의 심층의미를 알지 못한 채, 내면에서 보았던 꿈을 이내 망각한다. 깨어있을 때 보는 대다수의 영화들 역시 꿈들과 비슷한 운명에 처한다.

그런데 이따끔 몇십년도 더된 오래된 꿈들이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 “뭔가 강한 느낌을 주었던 그 꿈의 의미가 아직도 궁금해요~” 라는 말을 하는 분들이 있다. 그들의 정신 깊은 곳에 그 꿈이 어떤 강한 정서역동을 일으키고, 그 영화가 관람자에게 깊은 공명작용을 일으켜서, 기억조직의 중요한 곳에 남아 있다가, 현재의 어떤 자극을 받을 때마다, 그때 그 꿈의 심층메시지와, 영화의 깊은 뜻을 온전히 이해하고 소화해서, 반복되는 내부-외부의 어떤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해대는 것이다.

꿈의 생성원리이자 본능의 율동인 ‘압축, 전치, 상징화, 이미지화’ 기법과 장면이 많이 반영된 작품일수록, 무의식에 공명을 일으키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정신 속 뭉친 감정과 콤플렉스를 순환 ‧ 정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삶에 대한 깊은 문제의식을 지닌 감독의 정신성이 너무 많이 반영된 영화는 보통의 경우 대중들이 선호하지 않는다. 대중은 무거움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소문난 배우와 좀비를 등장시켜 볼거리를 제공하는 영상미학의 효과로 인해, 무려 천만 한국인이, 무거운 정신성의 소유자 연상호의 작품을 나름 가볍게 즐겼을 것이다.

열차 승객들 중 마지막 생존자인 순수성을 지닌(상업주의에 덜 물들은) 소녀와 자식에 대한 따스한 인정을 지닌 임산부의 생명에너지를 물어뜯고 흡입하여 영혼없는 존재로 감염시키고 싶어 열차난관을 붙잡고 올라타려는 수많은 좀비떼들이 바로, 현재 또는 미래의 관객 자신을 가리킬 수 있음을 모른 채, 인기 배우들의 연기, 의상, 볼거리에 도취하며, 안락하고 재밌게 살고 싶어 하는 이시대 한국인에게, 좀비에게 물려 전염됨을 피할 수 있는 한국 내 안전지대가 더 이상 찾기 어렵다~고 강한 메시지를 전하는 감독의 무의식과 텍스트무의식의 메시지가, 얼마나 전달 공유되고 있을까?

“ 가볍고 재밌는 게 좋아. 무거운 건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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