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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이 무의식이란
관리자(cjlee7600@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19년 02월 15일 21:18 207
동양의 명리학은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둘 사이에 자연의 음양오행 기(氣) 운동이 작동하여 예상치 못한 ‘生, 克, 制, 化, 合, 刑, 沖, 破, 害’ 현상이 일어난다고 해석한다. 서로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만난 사람들조차, 각자의 타고난 사주팔자 배열구조가 내뿜는 고유 에너지들로 인해, 서로 뜻밖의 인연을 맺기도 하고 섬뜩한 일을 겪기도 한다.

19세기 말에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프로이트는, 신경증 환자들의 내면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만날 때 사회가 인지하는 의식과 의식 관계 외에, 각자의 억압된 무의식에서 종종 강렬한 비합리적 반응이 일어남을 발견했다. 아울러 신경증자들이 ‘사랑관계와 직업 활동’에서 중요한 순간에 합리적 선택보다 무의식의 욕구·환상·힘에 의한 비합리적 행동을 함을 규명했다. 두 사람이 만나 관계를 할 때, 상대에게서 온 어떤 자극이 내 무의식의 무엇과 우연히 연결되면, 그 순간 뜻밖의 강렬한 정서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왠지 모르게 끌리는 감정, 금지된 욕망, 연민, 골치 아픔, 어색함, 단절감, 회피욕구, 불안, 공포, 분노, 파괴욕구 등등이 솟구칠 때 다양한 인생 파노라마들이 펼쳐진다.

프로이트는 주로 개인의 정신 깊은 곳에서 역동하는 내밀한 억압된 무의식(금지된 욕망, 콤플렉스) 규명과 해소에 몰입했다. 이에 비해 프로이트 이후 정신분석가들은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어떤 상황일 때 어떤 무의식적 작용과 반응들이 일어나는가를 주목한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사이무의식 규명에 기여한 최초 정신분석가는 클라인{Klein}이다. 그녀는 언어를 모르는 영유아가 최초양육자 관계에서 자기 정신을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주목하여, 엄마를 향한 유아의 원초 정신작용인 ‘투사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를 발견한다. 투사동일시는 자기 정신의 일부를 (氣와 유사한) 미립자로 쏘아서 중요 대상의 정신 속에 침투시켜, 대상의 정신을 자신의 정신으로 채워 자신이 원하는 데로 움직이게 조종하는 기능을 한다. 내 정신의 좋은 부분·좋은 감정을 투사동일시하면, 상대에게 좋은 감정을 일으켜 나를 좋아하게 만들고, 나쁜 감정을 투사하면 상대를 불안하고 심란하게 만든다.

현대클라인학파 비온(Bion)은 투사동일시의 의사소통 기능에 주목한다. 즉 유아는 엄마를 향해 원초적 투사동일시로 자신의 상태를 전하며 소통한다. 가령, 유아가 “엄마, 나 지금 몹시 불안하고 힘들어!” 상태에 처할 경우, 말 대신에 투사동일시 기운을 엄마를 향해 쏘면, 엄마의 마음에 홀연 아이에 대한 모종의 불안과 걱정이 일어나, 아이를 정성껏 안아주는 반응을 하게 된다. 그런데 엄마의 영혼이 무디거나 약할 경우, 유아의 투사동일시에 무반응하거나 압도되어 짜증을 내게 된다. 그로인해 엄마의 도움을 받지 못한 유아는 자신이 처리할 수 없는 ‘그 힘든 상태’를 무의식에 분열시켜, 평생에 걸쳐 불편감을 일으키는 짐(病因, 베타요소)으로 갖고 살게 된다.

투사동일시를 너무 많이 작동시키면, 내 정신의 대부분이 내가 투사동일시한 대상에게로 다 옮겨가게 된다. 그 경우 자신의 정신은 고갈되고, 그 대상이 곧 나로 동일시된다. “당신은 곧 나야!”, “당신이 죽으면, 나도 죽은 거야”, “예수(부처)가 곧 나고, 내가 곧 예수(부처)야.”
자신의 생명력과 정신이 투사동일시로 대상에게 다 옮겨가면, 그 대상은 태양처럼 빛나고 위대하게 지각되고, 자신은 빈껍데기같이 초라하게 지각된다. 원시종교의 교주와 신도 관계, 왕과 백성, 장군님과 군졸 사이가 그런 사이무의식 관계였다.

동양에선 기(氣)가 강한 사람과 기가 약한 사람이 만나면, 기 강한 사람이 기 약한 사람의 영혼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지배 조종한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누구의 기가 더 강하고 약한지 판단하기가 간단치 않다. (유명 지휘자 R과 반사회인격 여성 Y 중 누가 더 기 쎈 영혼인가. )

‘기를 쏜다’, ‘기로 누른다’ 등의 우리말 표현은 정신분석학의 투사동일시와 유사한 원시인류의 정신 특성을 반영한다. 그리고 방황하는 자가 귀인을 만나면 귀한 에너지를 받아 수렁에서 벗어나게 되고, 악인을 만나면 악의 기운에 전염되어 비극의 늪으로 추락한다는 한국의 전통 격언 배경에도 클라인의 투사동일시와 연관된 두 사람 ‘사이무의식’ 운동이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정신분석학 고유의 ‘사이무의식’은 정신분석 임상상황에서 분석가와 내담자 사이 관계에서 발현되는 전이/역전이 작용과 연관된다. 분석가와 내담자가 ‘신뢰할 수 있는 안전한 치유 환경’에서 만나는 순간부터, 두 영혼 사이에 일상 관계와 질적으로 다른 사이무의식이 역동하여 강렬한 전이/역전이 현상이 일어난다.

만성 고통에 시달려온 성인 내담자는 카우치에 누워 무의식의 심연에 진입할 때, 곁에서 정성스레 관계하는 권위 있는 정신치료사에게 인생 최초의 구원자였던 유년기 엄마 또는 아버지와 연관된 긍정적 또는 부정적 감정과 표상을 투사동일시하게 된다. 유년기 부모상이 분석가에게 전이(轉移)된 것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 부모관계에서 아이가 감당하지 못해 무의식에 억압했던 ‘그것’을 투사동일시를 사용해 분석가에게 쏘아 넣게 된다.(“부디 내가 감당하지 못해온 ‘골치 아픈 이것’을 내 대신 감당해서 나를 수렁에서 건져주세요!”) 그 순간 분석가의 정신은 내담자가 내쏜 강력한 ‘그것’에 전염된다. 갑자기 머리가 아프거나, 멍해지거나, 흥분되거나, 불안이 밀려들거나, 분노, 연민 등등이 일어나, 무심결에 내담자를 향해 어떤 반응(enactment)을 하게 된다. 이것이 내담자의 전이와 투사동일시에 전염되어 일어나는 분석가 정신의 역전이 현상이다.

분석가와 내담자 관계에서 어떤 사이무의식이 작동될지 대략은 짐작할 수 있어도, 완벽히 예측하고 대비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어떤 탁월한 의식도 자신과 타인의 무의식을 단기간에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분석가 자신의 무의식과, 내담자의 무의식에서 어떤 무엇이 상대를 향해 투사동일시 될지 분석상황에 따라 변수가 많다. 가령 분석가와 내담자의 그날 정신 상태에 따라 내담자가 투사동일시한 ‘그것’의 강도와 내용이 달라진다. 아울러 분석가의 내담자 관계 반응이 매우 달라질 수 있다.

(내담자가 분석가를 향해 쏟아놓은 고통덩어리·독기운을 분석가는 피하지 않고 내면에 담아내고, 섬세히 소화시키고 보약으로 변환시켜 내담자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 그런데 때로 의외의 기운을 내뿜는 내담자를 연이어 만날 경우, 분석가의 정신이 버텨내기 어려운 경우도 생긴다. 시카고 원로정신분석가 John Gedo는 내담자들의 강력한 투사동일시를 감당 못해 정신이 붕괴된 정신분석가 37명을 장기분석 치료 했다. 정신분석가와 내담자 사이의 사이무의식 흐름도, 지휘자 R과 방황하는 Y 사이의 파동처럼, 상황의 우연성에 따라 다양한 결말로 이어질 수 있다.)

오늘날 정신분석학계에서 ‘사이무의식’은 분석가가 내담자의 내면상태를 곧바로 감지하여 치료에 이용하는 핵심 통로로 공인되고 있다. 분석관계에서 내담자의 내면상태를 이해 공감하는데, 그가 투사동일시한 무의식의 ‘그것’이 ‘지금 여기’의 분석가 정신신체에서 생생히 지각 체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내담자를 만날 때마다 유독 정신이 멍해져 그에게 전해줄 ‘적절한 말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무능 현상이 반복될 경우가 있다. 사이무의식에 숙련된 분석가는 그 현상이, 내담자의 시기심이 투사동일시 되어 분석가의 정신을 마비시켰기 때문으로 금세 이해하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다.

분석상황에서 분석가의 정신에 출현한 특이한 감정과 생각들 상당부분은 내담자와의 사이무의식에서 발생되는 것임을 숙지하면, 내담자 이해와 치유를 위한 귀한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분석가의 정신이 멍해지는 역전이 현상의 경우, 그 내담자의 현재 상태에서 당장 치유를 필요로 하는 제1 내면 과제가 유아기에 해소되지 못한 채 무의식에 유폐된 시기심임을 이해해, 그것의 뿌리를 심층 추적·해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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