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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공격성, 진정성
관리자(cjlee7600@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18년 03월 28일 12:17 702
생글생글 미소 띤 얼굴의 내담자 미소씨가 카우치에 누워 예전과 다른 소리를 발산한다.

“선생님의 나지막하고 쉰 목소리가 힘없게 들려요.”
“............... ㄱㅅ ................”
“늙어 보이지 않는데, 일부러 꾸미는 것 같애요”
“.................... ㅛㅡ ..............”
“전체 모습이 힘없게 느껴져요”
“............... ㅎㄴ...............”
“해주시는 말씀들 직접 체험해보신 거 맞나요?”
“...................ㅛㅔ................”
“뭔가 아시는 그 성 경험들을 다 해봤다는 말인가요. 믿기지 않아요”
“............ r x...................”
“분석은 얼마나 받아 보셨어요”
“...................ㅈz................”
“상담료가 다른 곳에 비해 비싸요”
“................ㅔㅠ..............”
“선생님의 뭔가가 짜증이 나요 ....”
“ .............o e .................”
.....................................
그날따라 부정적 정서를 담은 언어들이 그의 속에서 계속 뿜어져 나온다. 비꼬고 경멸하는 감정도 얼핏 느껴진다.
속에 숨어있던 ‘전이 감정’이 이제야 나오는 구나. ‘휴, 다행이다’
그동안 분석가를 배려하는 듯 부드럽고 유혹적인 눈빛과 표정만 보여 온 미소씨.
공격성을 제대로 표출하지 않아서인지 그의 언어가 뭔가 무게 없고 공허하게 느껴졌었다.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그의 언어가 꽉 차고 묵직하고 바늘로 찌르는 느낌이다.
그의 ‘여성스러운 아이 같음’ 배후에 억압된 분노가 있음을 짐작해 왔기에,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내 영혼이 그의 심통난 내면 아이의 독설들에 자연스레 반응한다.

“그동안 많이 불편했겠어요. 이렇게 표현하니 얼마나 좋아요. 내 마음이 편해지네..”
“정말 괜찮으세요?”
“어, 내가 안 괜찮아 보여요?”
그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나간다.
그가 떠난 후 이러저런 여운이 남는다. “오늘따라 나도 모르게 순간순간 계속 반응을 해주었네. 가만히 침묵하며 그의 소리를 되돌려 주는 것이 더 좋았을까.”
........................
다음 회기에 그가 와서 말한다.
“지난번에 상담실 밖에 나가서 길거리를 정신없이 걸었어요. 모처럼 신나게 여러 정거장을 지나쳐 걸었어요! 정말 그렇게 시원한 느낌 처음이에요.. 무례한 저를 자상하게 유머로 버텨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언어가 유머스러웠는지 기억에 없다. 그의 표현욕구가 중단되지 않기 바라며, 성마른 아들과 대면하는 제3 아빠 느낌으로 반응 했던 듯하다. 단지, 소년 같은 30대 미소씨가 가끔 송곳 같은 말을 불쑥 뱉곤 한다는 사실과, 그 특이 행동이 무엇에 기인하는지 감지하고 있었을 뿐이다. 미소씨는 사춘기에 아버지에게 불만에 찬 감정을 예리하게 찌르는 말로 표현했다가, 당황하며 무너지는 아버지 반응에 충격을 받았었다. 자신의 공격성을 든든히 버텨주며 풀어주는 어른 경험을 하지 못해, 그때부터 아버지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마음 길이 끊어진 상태로 지내왔다. ("권위를 내세우는 어른들 모습은 아버지처럼 겉만 번듯하게 꾸민 가짜일 뿐이야~") 끊어진 그 마음의 길을 어떻게 이어갈지 그 언저리에서 방황을 반복하며 정신 성장을 못한 채 십 수년을 소년으로 지내온 것이다.

현실에서 그는 어느 집단에 참여해 얌전한 태도를 취하다가 돌연 권위자를 향해 송곳 같이 찌르는 언어를 내뱉어, 사회적 관계가 난처해지는 경험을 반복해왔다. “이상해요. 평시의 저는 권위자의 기분을 잘 감지해 맞추는 스타일이에요. 그러다 그의 결점들이 지각되면 잠시 참다가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무례하게 찔러대는 행동이 튀어나와요. 그로인한 낭패를 무마하는데 많은 댓가를 치르게 돼서, 인간관계에 거리를 두게 되요.”
그런데 자신의 불만을 송곳 찌르듯 표출해도 일상의 모습으로 받아주고 버텨주며 그의 상태를 거울처럼 비추는 권위자 관계 체험을 드디어 처음 해본 것이다. 그 때 그의 정신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대상관계론’(object relation theory)의 대변자 위니컷이 말씀한다. “유아의 타고난 공격성이 양육자에 의해 품어지는(holding) 경험을 하지 못한 채, 보복당하거나 무시당하면, 세상과 진정한 관계를 맺는 인격 형성이 좌절된다. 그로인해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감추며, 안전하고 무탈하기 위해 힘있는 대상의 기분을 맞추는데 급급한 ‘거짓자기’ 인격이 되고 만다. 거짓자기가 정신의 중심구조로 자리 잡으면, 타고난 개성을 발현시키는 ‘참자기’ 인격이 포기되어, 공허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미소씨는 분석상황에서 속마음을 나름 진솔하게 표현한다. 이런 태도는 공격성 표출이 엄마에 의해 품어지는 경험을 유아 시절에 어느 정도 경험했다는 징표다. 그런데 아동기(오이디푸스기)와 사춘기에 닮고 싶은 이상화 모델로 삼은 아버지 관계에서, 자신의 공격성이 아버지에 의해 품어지고 버텨지며 의미 있게 되돌림 받는 관계 경험이 과도하게 좌절되었다. 그로인해, 그의 정신성은 사춘기 소년 상태에 고착되고, 현실에 적합한 사용법을 익히지 못한 타고난 공격성은 무의식에 억압되었다. 그 억압물이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어른 관계와 권위자 관계에서 가끔씩 의식에로 치솟아 수동공격 양태로 발산되었던 것이다. ‘수동공격’은 불만스럽게 지각된 대상이 명확히 알지 못하게 공격성을 간접적 우회적 완곡하게 표출하여, 상대방을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쁘게 만드는 방어기제다. 수동공격 방어가 정신에 자리 잡으면, 대상을 향해 자신의 공격성을 당당히 ‘말로’ 표현하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로 진정한 대화 통로가 막히게 되고, 정신성의 성장이 멈추게 된다.

미소씨는 늘 다정한 표정으로 타인에게 다가가지만, 억압된 공격성이 돌연 표출되어 관계가 파괴될까봐, 오래 지속하는 친밀관계를 피하며 살아 왔다.
“따스함과 정이 그립고, 사람을 좋아해요. 하지만 짧은 관계만 할 뿐, 오래 지속하는 관계는 왠지 부담스러워서 하지 않아요.”

위니컷의 말에 귀기울여보자. 유아의 타고난 공격성과 공격적 몸짓들은 ‘보통의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에 의해 공감적으로 수용되고 엄마 마음속에서 소화되어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부드러운 양태로 변형되어 유아에게 되돌려진다. “오. 소리 지르고 발버둥치는 애야, 배가 고파서,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아서, 엄마가 보이지 않아서, 네가 화가 났구나. 알았어..” 아이의 공격성이 엄마에 의해 존중받고 반영 받는 그 관계 경험을 통해, 그 유아는 자신의 공격성을 세상과 소통하는 가치로운 에너지로 느끼게 된다. 아울러 공격성을 세상에 대처하는 생산적·창조적 에너지로 사용하는 개성있는 인격을 형성하게 된다. 타고난 공격성을 당당히 가치롭게 사용하는 인격을 그는 ‘참자기(true self)’라 칭한다.
반면에 아이의 공격성과 공격적 몸짓이 양육자에 의해 존중받지 못하고 비난받으면, 아이는 자신의 타고난 공격성을 무가치하고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무엇으로 지각하게 된다. 그 결과 그의 공격성은 파괴성으로 변질되어, 세상의 좋음과 좋은 관계들을 파괴하는 무엇이 된다.

영국 정신분석가 위니컷의 눈에는 인간들이 두 가지 인격 유형으로 분별된다. 하나는 자신의 타고난 본능에너지와 개성을 타인과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창조적으로 표현하며 살아가는 ‘참자기’ 인격이다. 그 반대는 자신의 본능욕구와 공격성을 억누른 채, 환경(사회, 힘 있는 대상들)의 눈치를 보며 타인에게 공격당하지 않는 안전한 삶을 모색하는데 급급한 ‘거짓자기’(false self) 인격이다.
개인이 참자기 인격이 되느냐, 거짓자기 인격이 되느냐를 좌우하는 핵심 요인은 무엇인가? 위니컷은 그것이 '참자기'가 발현되는 유아기와 사춘기에 자기 삶에 중요한 대상과의 관계에서 개인의 공격성이 온전히 존중받으며 품어지는 소통 체험을 했느냐 못했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그가 사회적으로 출세하지 못하고, 심지어 신경증 증상에 시달리는 삶을 살지라도, 그가 참자기를 지닌 개성 있는 인격이라면, 안정된 직업을 유지하고 증상이 없는 보통사람보다 더 영혼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아, 공격에너지를 대상·세상을 향해 정당하게 표현하면서 ‘의미 있는 소통 경험’을 하는 것이 정신의 성장에 이토록 중요한 기능을 하는구나!
그 분석 회기 이후, 미소씨의 반복되던 부정적 대인관계 증상의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의 수동공격 태도가 줄어들었고, 인간관계에서 지속성 있는 친밀관계를 맺으려는 계획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년에 걸쳐 금지된 욕망과 경직된 방어를 짊어지고 분석상담에 온 미소씨에게, 욕망의 내밀한 정체와 방어의 비합리성을 직면시켜왔다. 그리고 그의 협소한 자아의식 경계에 타격 주며 깨우치는 무의식 ‘해석’ 언어를 전했었다. 그런데 그 일 년의 분석과정이 마치 공격성이 용기있게 표출된 이 돌발적 회기를 준비하기 위한 과정인 양 지각된다. 지난 일 년 기간 보다 그 한 회기 동안에, 그와 나 사이의 신뢰감도와 그의 억압된 무의식의 변형이 더 크게 감지되었다. (눈치 보는 수동공격에서 벗어나) 공격성의 당당한 표현이 정신성 발달에 그토록 중요 기능을 한다는 진실을 미소씨가 내게 선물하듯이 내놓는다.
“이제야 답답하게 막힌 속이 확 뜷린 느낌이에요! 신기해요. 선생님과 오래 만나고 싶어요”

일주일에 하루 개방하는 야간상담에서는 종종 몸이 피로해 노쇠한 쉰 목소리가 나온다. 야간에는 자주 기운이 없고 심지어 피로로 인해 뇌의 명민함이 급격히 떨어지기도 한다. 야간에 왔던 미소씨에겐 어떤 섬세한 감지력이 있었다. 그가 분석가를 향해 뱉은 송곳 같은 말들이 전혀 근거없는 표현은 아닌 것이다. 분석가는 그가 감지한 것이 대상의 전체성 지각이 아닌 일시적 특성에 대한 '부분지각'임을 환기시키고 대면시켜 해소해줄 필요가 있다. ( 그의 민감한 부분지각과 언행은 아버지를 좋아했다가 크게 실망했던 과거 그 순간에 고착되어 그 상황과 장면을 반복 재현한다. 아버지에게 자신의 불만을 풀어줄 힘있는 반응을 기대하며 비난하던 그 때 그것이, 현재의 어떤 불만족스런 자극에 촉발되어 재연된 것이다.) 그의 표현이 약간 무례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의 꽉 막힌 공격성이 온전히 표현되지 않는 한, 미소표정에 은폐된 수동공격 방어로 인해 정신의 어떤 성장도 일어나지 못함을 내 정신 내부에 자리한 위니컷이 감지했나 보다. 그렇기에 마치 아이와 엄마, 소년과 아버지 관계처럼 자연스레 주고받는 약간 유치하고 약간 긴장이 감도는 적나라한 대화를 진지한 놀이하듯 하게 된 것이다.

위니컷과의 내적 만남이 없었다면, 프로이트만 내면화했다면, 내 무의식이 미소씨에게 어떻게 반응했을까? 어리석은 소리를 내뱉는 그의 무의식 뿌리를 낱낱이 직면시키고 망치를 내리치듯 ‘해석’하는데 주의를 집중했을 것이다. 적어도 그 회기처럼, 아이-소년의 ‘참자기’가 발현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부모의 마음으로, 그의 독설을 품고 버티며 진지하게 노는 태도를 삼가 했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폐허가 된 영국에서, 다수의 영국인은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안전한 생존’을 제1가치로 삼고 진실한 의사 밝히기를 포기한 채, 기성 제도에 순응하고 권력자의 기분을 맞추며 살았다. 위니컷은 거짓·위선과 당당히 대결할 정신에너지와 개성을 결여한 인격은 비록 그가 사회에서 안정된 자리를 차지할지라도 ‘자기 인생을 온전히 살지 못하는’ 심각한 병자임을 세상을 향해 외친 휴머니스트다. (대다수 거짓자기 인격은 열심히 노력해 안정된 지위에 도달한 중장년기에 삶의 기쁨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 뜻밖의 증상에 남모르게 시달린다. 성실해 보이던 출세한 인물이 돌연 휘말리는 각종 스캔달은 주로 이 때 발생한다. "사는게 무미건조하고 껍데기만 남은 듯한 이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다. 부디 내게 삶의 생생한 기쁨을 제발 느끼게 해줘~!")

위니컷은 거짓자기 인격이 형성되는 과정을 탐구하고, 거짓자기를 참자기로 변형시키는 치유 비법을 발견해 정신분석가 집단과 인류에게 특별한 유산으로 남겼다. 그 치유작업의 핵심에, 유년기 양육자와 사춘기 권위자 관계에서 금지-좌절-거부된 공격성을, ‘지금 여기’의 중요 대상에게 표현해, 그 대상이 공격성을 품고 버티며 진지하게 소통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자. 어디, 그대의 공격에너지를 원 없이 당당하게 ‘말로’ 표출해 봐요
그대의 공격성이 상대를 파괴하지 않는 창조적 소통으로 연결된다면 그대는 이미 영혼이 건강한 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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