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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꽉찬 대화
관리자(cjlee7600@hanmail.net) http://www.freudphil.com
2018년 03월 11일 10:47 532
오랜만에 철학회 학술 모임에 가보니 단상에서 발표자가 화사한 표정으로 말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진리 추구’ 입니다. 진리를 향한 열린 마음으로 인류에 봉사히기 위해 철학과 심리치료를 함께 수용해야 합니다. ~”
순간 그의 영혼과 모습이 참 아름답게 지각된다. ("귀인이 나타났구나!")

그 감흥을 마음에 담고서 그에게 문자 메시지를 전한다.
“진리를 향해 열린 말씀 참 귀하고 기쁘게 들었어요. 그 마음에 동참하여 철학자들에게 도움 될 정신분석 지혜를 기꺼이 전해 드릴께요.”
“....................................”

한참의 침묵 후에 제3자를 통해 그의 진짜 소리가 나즈막히 조심스레 전해진다.
"철학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철학은 정신분석으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정신분석이 나의 영역을 침범해 자존심을 찌르고 흔들까봐 거북하고 두려워요~.”)

그 순간 한국사회 학자 집단에서 통용되는 대화법과 연관해 의문이 올라온다. 상업적 이익과 권력 추구 관계가 아닌
"영혼의 진실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진리'와 '열린마음'을 강조하는 학자들의 소통법조차, 겉으로 뱉는 언어와 속마음이 본래 이토록 다른 것이었나?"

이번에는 ‘사랑과 영혼의 대화’가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설파해온 원로 학자를 만난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보인다. 그런데 그 미소에 온기가 안 느껴진다.
그에게 사랑과 영혼의 대화가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
일련의 세련된 언어들이 허공에 울려퍼지는데, 철학책에서 수없이 보고 듣던 말들이다.
‘그의 인간적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뭔가 갑갑하다.(“이 인간아 당신의 진짜 목소리를 들려줘봐 ~”)
영혼의 대화가 아닌 무난한 사무적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이 쓱 느껴진다,

내 속이 순간 갈등한다. 상대방이 일상에서 만나는 보통사람이라면, 그것에 맞게 반응할 터인데, 이 분은 ‘사랑과 영혼의 대화’를 세상을 향해 평생 강연하며 살아온 원로 아닌가? 그렇다면 나도 이 분의 말씀에 걸맞게 진짜 영혼의 대화를 나누려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분에게 묻는다.
“이 시대 철학자가 이러저런 고통을 짊어지고 사는 대중의 영혼에 힘을 주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 있는 걸까요?”
“인간을 도우려는 사랑의 마음으로, 이천년 철학사에 나온 철학들을 활용해 대중의 필요에 맞게 안내해야지요.”

그 분 입에서 나오는 말들 모두가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화사한 철학언어들 뿐이다. 정신분석은 이런 말들을 ‘텅 빈 말’이라 칭한다. 내적 방어에 의해 검열된 언어라서, 아무리 수백시간 대화를 나누어도 깊이 있는 소통이 어려운, 예절과 상식으로 꾸며진, 내면 진실을 가리우는, 애써 경청해도 정신의 발달에 기여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말이라는 뜻이다.

정신분석이 가치 있게 여기는 ‘사랑과 영혼의 대화’는 무의식의 진실을 담고 있는 무의식을 드러내 소통시키는 언어이다.
그것을 프랑스 정신분석가 Lacan은 ‘꽉 찬 말’이라 칭했다. 속마음에서 솟아나오는 꽉 찬 말을 들으면 그 순간 두 대화자 사이에 깊은 공명과 정서적 감흥이 일어난다. 아울러 수많은 정신작용들이 분주히 작동하여 예전에 생각하지 못했고 경험하지 못했던 경험영역이 새로 열리어 상호간에 교환 된다.

그런데 (정신분석 관계가 아닌) 보통의 인간사에선 이런 꽉찬 말이 표현되거나 오고가는 대화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보통의 만남에서는 각자 서로의 이익가치를 교환하는 메시지들만 오고갈 뿐이다. 그 소통법의 핵심내용은 익히 알려져 있다.
“자, 너의 진심을 솔직히 꺼내놔 봐. 네가 얻고자 하는 바가 뭐니?
너는 나에게 어떤 이익을 줄 수 있니
내가 원하는 바를 네가 얼마나 채워줄 능력이 있니
애써 쟁취해 얻은 지금 이 권력을 내가 왜 구지 너에게 나눠줘야 하니..”

그런데 소위 이익과 권력을 점유하려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통용되는 전략적 방어적 소통법을, '진리'와 '열린 마음'을 강조하는 진실해 보이는 학자와의 만남, '사랑과 영혼의 대화'를 강조해온 원로와의 만남에서 접하게 되니 마음이 스산하다. "허허 그런 것이었나.."

학자에게 주어지는 국가지원 혜택을 일체 거부하고 마음가는데로 살아가는 종교철학자 후배가 대화 중 쓱 뱉는다.
"선배님은 아직도 인간을 너무 믿으시네요. 유명인일수록 권력욕이 강하다는 것에는 학자든 성직자든 예외가 없어요. 똑 같 애 요
'진리'를 진정 갈구하는 인간은 그렇게 지위에 연연하며 살지 않아요. 쓱 보면 금세 보이는 그것이 보이지 않으세요 ?" ("정신차려 이 사람아. 헛된 인간들에게 기웃대며 헛된 기대하지 말고 당신의 길이나 끝까지 가 봐. 진정 힘이 있으면 나처럼 사회적 직함 없이 우주 기운을 느끼며 살아 보던가 ..당신은 그 살떨리는 불안과 자유의 기쁨을 진정 체험으로 소화했는가 ")

아, ‘거룩한 진리, 영혼의 대화’를 강조하는 사회적 신분, 직위를 지닌 대상일수록, 꽉찬 대화를 하는 것이 참 어렵겠구나.
‘정신분석가라는 직함'이 세상 사람에게 긴장감을 주어 진실의 대화보다 ‘방어’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구나.

권력경쟁 세계로 기꺼이 뛰어들지도 않고, 사회보호막을 내려놓지도 않는 내 마음 자리의 정체는 무엇인가?
"진지한 영혼을 찾아내 고통과 전율 속에서 곱씹어온 정신분석 지혜를 원없이 전수한 후 '학문'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 분을 통해 프로이트와 소크라테스처럼 세속 권력과 운명의 파동에 꺽이지 않은 존재로 기억되고 싶다~"

정신 밑바닥의 콤플렉스에서 피어난 이 애달픈 욕망의 굴레에서 언제야 벗어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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